트럭드라이버 헝그리울프

작가 Writer ...... 트럭 드라이버 Truck Driver ...... 프론트 엔드 웹 개발자 Front End Web Developer ....... 두 딸의 아버지 Father of two daughters

이쁘다! You're Pret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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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의 단편 시리즈

2020. 6. 24.

이쁘다!

You're Pretty!

by

Wolfkang Lim

(단편 200자 원고지 75장)

 

 

북아메리카에 대륙을 횡단하는 트럭 운전사가 삼백만 명이 넘는다. 연령층도 다양해서 20대부터 70대 할아버지까지 하이웨이 위의 인생을 산다. 최근 들어 남미, 유럽, 아시아등 세계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크게 늘었다. 대부분은 트럭운전으로 자금을 만들어 안정적인 삶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장거리 트럭 운전의 신체만 건강하면 은퇴가 없는 직업으로 주목받기에55세를 전후한 은퇴세대가 전문직업을 마다하고 대륙횡단의 꿈과 안정적 수입의 일거양득을 노리는 부부가 생겼다. 한때 여자들에게는 금기의 장벽이 되었던 트럭 운전사이었지만 이제는 5%가 여자 트럭 운전사들이다.

장거리 트럭 운전사는 숙식을 모두 트럭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다. 1년 365일을 집에 가지 않고 트럭에서 살 수 있다. 나도 99일 동안을 쉬지않고 트럭에서 생활하며 미국과 캐나다 전역을 떠돌아다닌 적이 있다. 북미의 트럭 드라이버,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쉽다. 낡은 모자, 장발, 덥수룩한 수염, 지저분한 얼굴, 헐렁한 셔츠, 불룩한 뱃살, 유난히 굵은 팔뚝 그리고 햇볕에 그을린 피부, 편한 바지에 부츠, 전체적으로 어두운색을 즐겨 입는다.

이런 전체적인 이미지와 다르게 개성이 강하고 독특한 트럭 운전사들도 있다. 북아메리카 대륙은 광활하고 볼 것도 많고 인종도 많은 만큼 견문을 넓히고 경험을 쌓고 여러 취미를 즐기는 유별난 트럭 운전사를 자주 만난다. 대부분 트럭에 요란한 장식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좋아하는 문구를 새겨 넣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트럭 크기를 두 배로 늘려 실내를 호화스럽게 꾸며 아예 트럭에서 살기도 한다. 각자 제멋에 산다고나 할까. 카우보이모자에 레이스 달린 가죽 재킷을 입은 멋있는 카우보이도 있고, 영화를 수백 개 수집해서 싣고 다니는 영화광도 있다. 물론 성인 잡지를 잔뜩 싣고 다니는 녀석들도 있고…, 고급 카메라 장비를 갖춘 준 프로급 사진작가도 있으며, 틈틈이 소설을 써서 책으로 출판한 소설가도 있다. 시를 쓰고 수필을 쓰고 그림을 그려 블로그를 운영하는가 하면 스스로 작사, 작곡하여 노래까지 부르고 음반을 내는 음유시인 트럭 운전사도 있다. 북아메리카에는 고상한 품격을 갖춘 트럭운전사들이다. 그들은 자신 있게 말한다.

‘남자라면 북아메리카의 트럭 운전에 한번 쯤 도전해 봐야 한다.’ 라고.

 

트럭 휴게소에 주차하고 있는데 트럭 엔진의 소음을 뚫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잘 아는 음률인데 기분이 묘했다. 트럭스탑이라는 장소에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창문을 열고 소리가 나는 곳을 살펴보니 한 트럭 건너 주차한 트럭에서 트럭 운전사가 색소폰을 신나게 연주하고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어깨를 들썩이며 스스로 음에 취한 듯 흐느적거렸다. 케니 지도 트럭 운전사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주 솜씨가 보통을 넘어 프로급으로 거침없이 고음과 저음을 구성지게 넘나들었다. 나는 창문을 열어두고 한참을 느긋하게 감상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음악이 멈추고 그의 모습이 창문에서 사라지기에 나도 다시 할 일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귀에 익은 곡이 흘러나왔다. 으음 이 곡은? 코플란의 정적의 도시! 다시 창문으로 가서 보니 그 색소폰 불던 친구가 이번에는 트럼펫을 불고 있다. 더구나 오케스트라 연주곡으로 자주 들었던 정적의 도시!

대체 저 친구는 누구야?

트럭 운전사 맞아?

와! 보통 솜씨가 아닌데?!

나는 아예 트럭 문을 활짝 열고 그의 모습에 집중했다. 8분여의 긴 곡이 끝나고 그는 클라리넷으로 바꿔 들었다. 이제는 모차르트다.

클라리넷 콘체르토 2악장이라니? 트럭 휴게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야말로 넋을 잃고 라이브음악을 감상했다. 바로 그 트럭 옆에 주차하지 않은 것이 후회막급이다. 그 운전사는 놀랍게도 클라리넷연주가 끝나자 플루트를 연주하고 마지막으로 피콜로까지 연주하고 나서 트럭에서 내려 휴게소로 사라졌다. 그는 트럭에 오케스트라 악기를 모두 싣고 다니는 것일 거야! 틀림없다. 저 트럭 안에 그랜드피아노가 있을 것이다.

연주가 끝나면 가서 이야기 좀 붙여보려고 했는데 연주가 끝나자 바로 가버려서 그럴 기회는 없었다. 저렇게 훌륭한 연주 솜씨를 가지고 트럭운전을 하고 있다니, 필시 뭔가 애절한 사연이 있거나 아니면 자기 멋에 취해 자유롭게 인생을 즐기며 사는 진정한 자유인이 분명하다. 문득 나도 기타를 싣고 다니고 싶었다. 트럭 안에 노래방 기계와 스테레오를 설치하고 다니는 동료 운전사가 생각났다. 골프클럽을 싣고 다니며 아메리카의 컨트리 클럽을 순방하는 친구도 있다 그뿐인가? 인라인 스케이트, 롱 보드, 산악 자전거 심지어 모터사이클을 뒤에 싣고 다니는 트럭 운전사도 보았다. 나도 그들처럼 나만의 여유를 찾고 싶다. 트럭 안에 낚싯대를 싣고 다니는 여유, 1년에 단 한 번밖에 낚시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런 여유와 낭만을 누리고 싶다. 사실은 미국과 캐나다의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최고의 낚시 포인트를 모두 기록해 두고 있다. 훗날 꿈의 캠핑카를 장만하고 아내와 함께 자유롭게 대륙횡단을 할 때 오직 낚시만으로 북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할 것이다.

내가 트럭 운전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고독을 즐기는데 있다. 성격이 조용고 말을 적게 하는 타입이라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의미 없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뻔한 대화는 질색하여 귀찮게 말을 걸어오는 친구들을 피한다. 침묵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지 않아야 할 때를 아는 것이다. 침묵이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요즘처럼 말과 글이 넘쳐나는 시대에는 더 절실하다.

오늘도 그렇다. 일주일 전부터 던캔 중사와 함께 팀이 되어 트럭 운전을 하고 있다. 던캔은 캐나다 직업 군인으로 10년을 근무했다. 근사한 콧수염 기르고 있어서 장교인 줄 알았는데 행동하는 것을 보니 역시 졸병의 티가 났다. 갈매기 세 개니까 서전트 SGT, 우리 계급으로 치면 중사 계급으로 전쟁의 화약고라고 하는 보스니아 이라크 등 실전에 참여한 경력의 용감한 참전용사다.

서전트 데니스 던캔, 캐나다 군에 20년 이상 근무하면 노후연금이 상당하므로 보통은 20년 채우고 전역하는 것이 대부분이라는데 던캔은 10년 만에 전역했다. 이유는 가족들과 함께 살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군대 이야기를 자랑삼아 떠벌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군 출신치고는 말수가 적어서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가 있으니까…

 

새벽 2시. 별안간 요란하게 울리는 벨 소리에 눈을 떴다. 캄캄한 트럭 안이다.

알람소리도 아니고 내 전화벨 소리도 아니었다.

“헬로?” 벙크베드 위층에서 잠에서 덜 깬 던캔의 목소리가 들리며 부스럭거렸다. 던캔의 목소리는 계속됐다.

“누구야?”

던캔은 일어나 실내등을 켰다.

“뭐라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인 듯 그의 목소리가 졸린 기운이 사라지고 정색을 했다.

“수류탄?”

그의 전화는 오랫동안 이어졌고 곤히 잠들었던 나는 고스란히 밤잠을 설쳤다. 통화를 모두 마친 던캔은 일어나 앉아 있는 내게 상황을 설명했다. 고향의 친구에게서 온 전화인데, 그가 아버지의 집을 수리하다가 수류탄을 발견하게 됐고 어떻게 해야 하나 궁리하다가 던캔이 군 출신이라는 것이 생각나 전화하게 된 것이란다. 수류탄을 만졌냐고 묻는 던캔의 질문에 지금 손에 들고 있다고 하는 그 친구의 대답에 던캔이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다.

친구의 할아버지가 전쟁에 참여한 전역 군인이었으므로 아마도 기념으로 수류탄 한 개를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했다. 그래서 던캔은 그에게 수류탄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일단 그곳을 벗어나 대피하고 나서 경찰을 부르도록 충고한 것이다.

경찰은 그 집을 안전하게 확보한 후, 폭발물 처리반이 와서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래된 수류탄이나 불발된 폭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이 있다. 안전핀이 부식해서 자칫 건들기만 해도 뇌관을 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는 폭발물을 발견할 경우 절대 건들지 말아야 한다. 발자국 같은 조그만 진동에도 폭발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 다시 던캔의 친구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예상대로 경찰이 오고 폭발물 처리반을 불러서 안전하게 폭발시켰는데 수류탄은 예상 시간보다 일찍 터졌다고 했다. 하마터면 위험한 상황이 됐을 수도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군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드디어 그의 입이 열렸다. 자기의 화려한 군 생활 10년의 경력과 두 번의 파견 전쟁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풀어냈다. 지겨운 이야기, 남자들의 부질없는 용맹과 과시뿐인 거짓말 같은 이야기들...... 징그러운 군대 이야기들.

독일에서 군 트럭을 세운 경찰차를 콜트 C 8 자동 소총으로 박살 내버린 이야기, 보스니아 조그만 마을에서 순찰하다가 한 빌딩 안에 발견된 마을에서 전 주민이 모두가 잔인하게 학살되어 있었던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일, 순찰 중 C7 자동소총 하나를 발견해서 분해해가지고 몰래 캐나다로 가지고 들어온 이야기 등등…. 이렇게 그의 자랑스러운 군대 이야기를 시작했다.

버지니아주 해리슨버그,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81번, 쉐난도우 계곡에 한국인이 경영하는 큰 트럭휴게소가 있어 자주 들리는 곳이며 24시간 오픈하는 레스토랑과 슈퍼 모텔이 가까이에 있는 제법 규모가 큰 휴게소이다. 천연 종유석으로 이루어진 동굴 루레이가 주립공원 가까이에 있고 존 덴버가 천국 같다고 노래한 컨트리 로드의 불루 리지 마운틴 사이로 쉐난도우 강이 흐르는 인상적인 곳이다.

“서전 던캔, 잠시 정차한다.”

“옛, 써.”

화물을 픽업해야 할 목적지는 여기에서 30분도 안 걸리는 곳이라 점심도 먹고 잠시 휴식하기 위해서 들렸다. 던캔이 막 주차를 마치자 바로 옆에 또 한 대의 트럭이 들어왔다. 그 트럭 옆면에 커다란 스티커가 부착되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POW, MIA]

나는 무심코 말했다.

“저 운전사도 틀림없이 군 출신일 거야!”

던캔은 낡고 구질구질한 모자를 항상 쓰고 있었는데 그 모자에도 POW(Prisoner Of War), MIA(Missing In Action)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던캔은 즉시 창문을 내리더니 그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핼로, 브라더!”

아이쿠, 이제 시작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그 운전사는 미군 출신이었다. 나는 가볍게 손 인사만 하고 트럭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들은 서로 죽이 맞아서 신나게 군대 이야기를 침 튀기며 나눌 것이니까……. 한참 후, 트럭으로 돌아오니 그때까지도 둘은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좌우지간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는 끝이 없다니까……. 나까지 끼면 캐나다군, 미국군 그리고 한국군까지 합세해서 3개 국가 대전이 벌어질 것이므로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안 봐도 뻔한 일이다. 세계대전으로 번져 지구의 멸망을 초래 할 수도 있다.

그 미군 트럭 운전사는 자기 이름이 랜스포드이고 켄터키 주가 고향이라고 소개했다.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는데 랜스포드가 내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습니까?”

“캐나다.”

랜스포드가 웃으면서 재차 물었다.

“중국인입니까?”

나는 할 수 없이 마지못한 척 대답했다.

“아니, 한국.”

랜스포드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능청스러운 연기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 한국말 좀 할 줄 아네!”

“네, 쪼끔 해요.”

그는 한국이 아름다웠으며, 서울은 복잡하고 사람이 많다는 둥, 동두천, 인천, 부산……. 신나게 떠들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한국에 대해 아는 미국인을 만나면 반가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별로 반갑지 않게 되었다. 대부분 한국에서 근무한 미군들의 이야기로 모두 비슷했다. 최근에는 원어민 영어 강사로 몇 개월 다녀온 젊은 놈들이 많아졌는데 그들의 경험담은 정말 듣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한국에 간 원어민 영어교사 중에는 까마득한 시골에 사는 사람이 많다. 뉴욕에 가보지도 못한 촌놈, 바다 구경조차 못한 시골뜨기들이 영어가 모국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진국 대접을 받는 꼴이 눈에 시었다. 촌놈들이 세계 첨단 도시 서울을 갔으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OMG! 원더풀! 비명을 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음식, 술, 문화, 노래방, 성형, 와이파이 강국, 그리고 여자 이야기. 그 중에는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이 켄터키 촌놈인 랜스포드 역시 처음으로 간 외국이 바로 한국이었고, 그것도 군인 졸병으로 파병되어 간 것이다.

“한국 여자들 예뻐요!” 랜스포드의 첫마디에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이쿠, 더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구나! 보나 마나 양공주들 이야기일 거야.’ 속으로 그가 그만두기를 바라며 딴청을 피웠다. 던캔 녀석이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랜스포드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나는 일부러 못 들은 척 대답도 안 하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하나 해 주지.”

하면서 랜스포드는 그의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나도 처음엔 듣는 둥 마는 둥 흘려듣고 있었는데 어느새 자리에 앉아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이야기에 집중되어 고객에게 가야 하는 시간도 까맣게 잊은 채,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다.

젊은 나이에 한국 근무를 자원했던 랜스포드 병사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미국 내에 근무하는 것보다 월급이 많다. 특별근무수당 그리고 위험수당 더해져 상당한 돈을 저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돈을 모아 켄터키 고향에 조그마한 농장을 사서 말과 소를 기르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물론 중동지역으로 가면 더 많은 급여를 받지만, 목숨을 담보로 하기는 싫었다. 한국이야말로 안전한 최고의 근무지이었다.

한국에서의 미군들의 근무 생활은 자유스러웠고 따분하기까지 했다. 6개월 정도 지나 랜스포드는 심심해서 군에서 가르치는 한국말 배우는 클래스에 등록했다. 특별히 배우고자 한 것은 아니었고 여러 동료가 배우니까 따라서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은행에 볼일이 있어 서울 시내에 있는 홍콩계 은행을 찾아갔다. 은행 창구에 다가선 그는 창구에 있는 여직원을 보고는 그 자리에 얼어 붙어버렸다. 첫 눈에 반하는 운명의 여자가 있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 여직원이 눈부시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랜스포드가 말을 못 하고 서 있으니까 그 여직원도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랜스포드는 뭔가 할 말을 찾아 애를 쓰다가 겨우 한마디 말을 꺼냈다.

“이쁘다!”

순간 말없이 바라보던 그 여직원은 이 미군의 의외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랜스포드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사랑의 병을 앓게 된 랜스포드는 외출 때마다 이 은행을 들르게 됐고 그때마다 이 여자의 미소를 보는 것이 유일한 즐겁고도 행복한 시간이 됐다. 은행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자연히 한국말도 열심히 배우고 그때마다 한마디씩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녁을 사고 싶다고 했지만 번번이 거절하고 밖에서 커피 한잔하자는 것조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랜스포드는 애가 닳고 초조해졌다. 한국의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했던 랜스포드는 미국에서 하던 식으로 밀고 나가기로 했다. 졸업파티에 여자 친구를 데리고 가기 위해서는 여자의 부모에게 먼저 허락을 받고 나서 하는 미국식이다. 먼저 미군 내에 근무하는 한국군에게 부탁해서 그녀의 주소를 알아내었다. 술 두 병이 수고비로 투자되었지만, 결코 아까운 돈은 아니었다. 그리고 근무 없는 날, 군복을 잘 데려 입고, 술 마신 병을 잘 포장해서 싸 들고 무조건 택시를 타고는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서울 시내 지리도 모르는 그는 도대체 어딘지 모르지만, 무지하게 멀리 갔던 것으로 기억했다. 그가 말하는 중에 홍xx라고 발음하였다. 나는 홍은동이라고 생각했다. 서울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홍으로 시작되는 동네는 홍은동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이렇게 랜스포드는 용감한 미군 정신으로 무장하고 여자의 집으로 바로 진군하듯 직진했다. 사랑에 눈이 멀면 누구나 용감해지는 법이다. 그녀의 집은 길가에 3층 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곳은 가게이었다. 랜스포드의 말에 의하면 가구 판매점이었는지, 가전제품이었는지, 또는 철물점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부부인 주인이 앉아 있다가 미군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는 엉거주춤 일어섰다. 랜스포드는 깍듯이 인사부터 했다. 영어 반 한국말 반 섞어서 자기소개와 온 이유를 설명했다. 다행히도 아버지가 영어단어 몇 마디를 어느 정도 이해했다.

“당신의 딸과 저녁 식사를 하고 싶습니다.”

한참 만에 그 뜻을 이해한 아버지가 되물었다.

“어떤 딸?”

“당신 딸.”

“그러니까 내 딸 누구를 말하냐고?”

“당신의 딸…….”

아버지는 손가락을 하나, 둘, 셋, 펴 보였다. 랜스포드는 그에게 딸이 셋이나 있을 줄은 미처 몰랐었다.

“뱅크, 은행, 홍콩 뱅크……” 랜스포드가 계속 되풀이하자 옆에 있던 어머니가 눈치가 더 빨랐다.

“송이?” 하고 묻는다.

“예스, 송이!”

랜스포드는 그녀의 명찰에서 ‘송’이라는 글자가 생각났다. 랜스포드는 항상 그녀를 ‘송’이라고 불렀다. ‘송’이 이름인지 성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여기에서는 이름이라고 치고 그녀를 송이라고 부르자.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집에는 딸이 셋이 아닌 넷이나 있었다. 은행에 근무하는 송이가 제일 큰 딸이고 그 아래로 동생이 셋이나 주르르 있고 막내는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경계에 가득 찬 눈초리를 무시하고 랜스포드를 이 층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일 층은 집에서 운영하는 가게, 이 층은 거실 겸 안방이 있고 3층은 딸들 방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지하실은 한때 조그만 주점이 세 들어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비어 있었다. 아버지는 랜스포드가 건네준 술병을 받아 들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즉시 뚜껑을 열었다. 거침없이 한잔 따라 마시고 랜스포드에게도 한잔 권했다.

아버지는 랜스포드에게 송이와 데이트하러 왔느냐고 재차 확인하더니 그럼 기다리라고 말했다. 지금 시각은 오전이므로 송이가 퇴근해서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아버지는 기다리라고 명령하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둘은 영어단어와 한국말을 섞어서 대화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아버지도 군 출신이었다. 대한민국 남자야 당연히 군대에 갔다 오지만, 송이의 아버지는 월남전 참전 용사였다. 그리고 미군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받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는 갓 스무 살 나이에 월남전에 참전했고, 한미합동 수색작전 중 한 미군 병사가 자기 앞에 서서 가다가 저격병의 총에 맞아 전사한 일이 있었다. 그 미군 병사가 없었다면 그 총알이 자기에게 왔을 것이다. 아버지가 친절하게 해주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둘은 군대 이야기를 비롯해서 즐거운 대화를 나누게 됐고 서로 좋은 인상을 받게 됐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저녁 시간, 송이가 퇴근할 시간이 됐다. 랜스포드는 그녀의 태도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 초조했다. 아무 이야기 없이 불쑥 찾아와 그녀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를 보면 과연 그녀가 뭐라고 할 것인가?

“당신, 우리 집에서 뭐 하는 거예요?”

막 집에 들어선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으로 랜스포드를 보자마자 소리쳤다.

“우리 집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요?”

그녀는 뭐라고 설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매섭게 소리쳤다.

“당장 돌아가세요!”

화가 잔뜩 난 송이에게 대답하기도 전, 아버지가 더 큰소리로 딸에게 소리쳤다. 무슨 말인지는 랜스포드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내용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랜스포드가 너에게 정식으로 데이트를 신청하고자 찾아왔는데 그렇게 거칠게 대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당장 같이 나가서 함께 저녁 먹고 들어오너라.”

그렇게 화를 내고 팔팔하던 그녀는 아버지의 한마디에 그저 ‘예’ 한마디 대답하고 고분고분해졌다. 랜스포드의 눈에는 그런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 신기했다.

아버지의 말에 순순히 따르는 자식들의 모습은 상상도 못 하는 일이다.

랜스포드는 ‘존경(Respect)’이라고 표현했다. 그가 그녀 송이와 첫 데이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그녀의 아버지 덕분이다. 이렇게 시작한 데이트는 여러 번 이어지고 송이는 랜스포드에게 서울의 명소 경복궁, 남산, 한강공원, 청계천을 안내 구경시켜주었다. 어설프던 송이의 영어 실력도 유창하게 늘기 시작하고 또한 두 사람의 사이도 점점 무르익어갔다. 소위국경을 초월한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 사이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가로놓여 있었다. 국적이 다른 것 외에도 송이는 랜스포드보다 다섯 살 많았다. 더구나 송이는 결혼했던 경력이 있다. 이혼하였고 아들이 하나 있는데, 지금은 전남편이 키우고 있었다. 국경을 초월하는 것이 사랑이며, 다섯 살의 나이 차이가 사랑 앞에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둘 사이는 연인이라기보다는 친구 사이처럼 지냈다.

랜스포드는 그녀의 집에 자주 초대받아 그녀의 아버지와 술을 나누는 일도 많아지고 또 그녀와 그녀 친구들을 미군 부대로 초대해서 그의 부대 동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다.

랜스포드의 동료는 송이 친구에게 반해 열렬히 구애했다. 그들은 급속도로 가까워져 바로 깊은 연인 사이가 되었고 약혼까지 하는 관계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햇수로 2년이 지나도록 송이와 랜스포드의 관계는 더 발전이 없었다. 키스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랜스포드가 송이 집에 초대되어 저녁을 함께 먹던 날이었다. 마침 태풍이 전국을 강타하는 날이어서 랜스포드는 군대에 전화를 해서 태풍 때문에 복귀할 수 없노라고 보고했다. 군인은 항상 비상시를 대비해서 현 위치 보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핑계를 댔다. 덕분에 그녀의 아버지와 술을 밤새도록 마실 수 있었다. 랜스포드는 젊었지만, 그녀의 아버지의 술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만 마신다고 포기하고 방바닥에 누워버렸고 아버지는 혼자서 술을 홀짝홀짝 비우셨다. 랜스포드가 취해서 쓰러져있자 아버지가 송이 방에 데려다 재우라고 하셨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한방에서 송이와 함께 하는 기회를 노린 작전이 멋지게 성공했다. 송이와 나란히 누운 그는 송이의 태도에 적잖이 실망했다. 송이는 옷도 벗지 않은 채 벽 쪽으로 몸을 돌려서 누운 것이다.

“내 얼굴이 말이 아니다.”

그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무슨 뜻이야?”

“나는 지금 송이네 집에 손님으로 와있다.”

”그런데?”

“너는 내가 와있다고 해서 내게 등을 돌려 자고 있다. 내가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느끼게 하고 있다. 그게 바로 내 체면을 잃게 하고 있다.

그녀는 랜스포드옆에 나란히 누웠다. 그날 밤, 밤새도록 비바람만 몰아쳤을 뿐 둘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송이의 태도에서 아직 때가 이르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송이의 얼굴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송이에게 시시덕거리며 놀리고 있었고 송이는 신경질 내고 있었다. 그는 뭔가 잘못됐음을 느끼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 없었다. 남녀가 한방에서 잔다는 것은 이미 허락한 거나 다름없는데 아무 시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그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이다. 랜스포드는 한국여자의 정서를 잘 이해 할 수 없었다.

한국의 식탁은 나지막하다. 그래서 랜스포드는 엉거주춤 쭈그리고 앉아서 먹어야 한다. 눈치를 읽은 그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옆에서 밥을 먹고 있는 송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송이의 얼굴을 덮쳐 키스했다 밥을 먹다가 그대로 음식물을 입에 문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생각하면 정말 우스운 순간이었다.

그날 밤 랜스포드와 송이는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다. 그녀를 만나기 시작한 지 꼭 2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후로 둘 사이는 연인 사이로 발전했지만, 송이는 그를 여전히 친구처럼 대해주었다. 그녀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는 싫었다.3년이 됐을 때 랜스포드는 그녀에게 정식으로 청혼했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왜 안 되느냐고 물으면 그녀는 “당신은...... 너무 커요, 그리고……” 하고는 말을 중단해버리는 것이었다. 아담한 송이에 비하면 랜스포드는 거구였지만 이것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송이와의 관계는 랜스포드가 두 번이나 군무연장을 하여 6년 동안 이어졌다. 미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랜스포드의 청혼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 그녀를 마냥 재촉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기에 안타까운 속만 태울 뿐이었다.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고, 선물 공세를 펼치기도 했고, 협박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변하지 않고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송이의 친구는 랜스포드가 소개해 준 미군 동료와 결혼해서 미국 코네티컷주로 남편 따라 가버렸다.

랜스포드는 미국으로 돌아오기 전, 중대한 결심을 했다. 그는 농장을 사기 위해 군 복무기간 동안 꾸준히 모아온 통장을 들고 송이네 집을 방문했다. 송이와 부모님이 계신 자리에서 그는 그 통장을 내밀었다.

“송이 씨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를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나는 송이 씨를 사랑하기 때문에 송이 씨의 의견도 존중합니다. 나의 마지막 부탁 하나만 들어주세요. 나의 꿈이 담긴 이 통장을 송이 씨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송이 씨의 마음이 바뀌든 안 바뀌든 이것은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물이고 혹시 생각이 바뀌면 미국으로 건너오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제 바람입니다.”

송이는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건 받을 수 없어요.”

랜스포드는 아버지에게 드리면서 또 부탁했다. 항상 그의 편이 돼 주던 아버님도 이번만큼은 난처한 표정을 보이며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는 이번에는 어머님을 붙잡고 사정했다. 어머니는 어쩌지 못하고 아버님 눈치만 살폈다.

이때 아버님은 슬그머니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 가버리셨다.

그제야 어머니는 “그럼 일단은 내가 맡아 두겠네.” 하며 받으셨고 송이는 펄쩍 뛰며 나가버렸다.

그 후 랜스포드는 한국에서의 군 복무기간을 채우고 전역과 동시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수중에 가진 돈 하나 없는 빈털터리로 마음의 상처만 가득 안고 돌아왔다. 그는 농장 살 돈을 모으기 위하여 트럭 운전을 시작하였다.

세월은 흘러 또 다시 6년이 지났다. 송이를 만난 지 어느덧 12년의 세월이 흘러버렸다. 랜스포드가 열심히 트럭운전을 하면서 지내고 있는 어느 날, 코네티컷주의 옛 전우로부터 연락이 왔다. 바로 송이의 친구와 결혼해서 사는 그 친구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송이가 미국에 온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코네티컷주의 친구 집에 방문하러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뛸 듯이 기뻤으나 그 기쁨도 잠시뿐, 친구의 말은 송이씨가 랜스포드의 근황을 물어 오긴 했지만 자기가 미국에 온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 주었으면 하고 부탁했단다. 하지만 옛 전우의 의리상 연락을 안 할 수 없어서 몰래 연락하는 것이니까 알아서 하라고 덧붙였다.

아무리 송이가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랜스포드는 당장 코네티컷으로 날아갔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팠고 또 한편으로는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데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처지다.

12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랜스포드가 서른여섯이고, 그리고 송이 씨는 랜스포드보다 다섯 살이 위니까 벌써 마흔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한 가닥 희망을 건 것은 아직도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있다는 그 친구의 귀띔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태도를 염려했었지만, 막상 랜스포드를 만난 그녀는 무척 반가워했다. 물론 그 또한 더할 나위 없이 기뻤고 사랑이 불이 다시 피어오르는 행복한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결혼 문제에 대해서는 역시 고개를 돌려 피하는 그녀였다. 그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는 분명히 그녀를 사랑하고 있고 그녀 또한 그가 싫은 눈치는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확신을 가질 수 있지만 결혼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받아줄 의사가 없다는 것은 그로서는 풀 수 없는 의문이었다.

얼마 후,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랜스포드는 다시 트럭운전으로 돌아왔다.

그의 가슴 한구석에 지울 수 없는 시퍼런 멍이 들어 있는 채로…….

던캔과 나는 랜스포드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를 모두 듣고 나서 뭐라고 위로 해 줄 말을 찾지 못했다.

 

“여보게 친구들! 나는 어떡하면 좋은가?”

랜스포드가 트럭 창문 쪽으로 바짝 다가와 나를 바라보면서 애원하듯 조언을 요청했다. 나는 그에게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한 가지 밝혀 둘 것은 그의 이름은 랜스포드가 아니다. 그의 이름을 제대로 물어보지 않아서 내가 임의로 붙인 이름이다. 본명은 나도 모른다. 켄터키가 고향이고 지금은 P모 트럭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그녀 또는 그녀의 가족과 함께 갔다는 지명, 인천 부두의 횟집에 갔다거나, 한강 공원에서 보트를 타고 북한산을 올랐다는 등등의 이야기와 함께 그의 말하는 태도에서 절대 거짓이 없고 진실하게 보임을 확신한다. 송이 자신이나 그녀의 가족뿐 아니라 그녀의 주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다만…. 다만 한 가지, 송이 씨가 랜스포드의 사랑을 거절한 이유가 랜스포드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가 아니었기를 감히 기대해본다. 천만분의 일의 확률이라도 송이라는 분의 마음이 바뀌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사랑은 위대하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면서도 나 자신은 다양한 국제문화 속에 어울려 살지만 한국의 단일 민족의 고유문화와 미국의 융합문화가 충돌하면서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코리안 아메리칸이라는 경계에 선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괴리감에 견딜 수 없도록 혼란스럽다.

왜냐고? 나는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두 딸을 둔 아버지니까......

 

 

 

이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