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드라이버 헝그리울프

작가 Writer ...... 트럭 드라이버 Truck Driver ...... 프론트 엔드 웹 개발자 Front End Web Developer ....... 두 딸의 아버지 Father of two daughters

트럭 스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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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의 단편 시리즈

2020. 6. 26.

트럭 스탑 이야기

(단편 200자 원고지 30장)

 

북아메리카의 트럭 스탑에는 트럭 운전사뿐 아니라 여행자, 캠핑족, 출장 중인 사업가 등 이런 사람들이 들리는 곳이지만, 정처 없이 떠도는 배낭족도 있다. 배낭 하나 메고 히치하이킹 하면서 대륙을 누비는 사람들이다. 홀로 다니는 외로운 방랑자가 대부분인데 다정해 보이는 커플도 있다. 목적지를 써서 마냥 들고 서 있기도 한데 도대체 어디를 가는 걸까? 무슨 사연이 있을까? 자못 궁금하기 짝이 없다.

입구에는 'will work for food'라고 쓰여 있는 종이를 들고 있는 노숙자도 있다. 때로는 "맥주를 사기 위하여"하고 솔직하게 써놓은 사람도 있고, 무전 여행자처럼 보이는데, 몸집이 큰 개까지 데리고 있는 사람도 있다.

불쌍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도 그들처럼 자유로운 영혼처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배부른 생각하는지도 모르지만...

그래서인지 트럭 스탑에 있으면 트럭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종종 있다. 어떤 때는 돈이 다 떨어지고 집에 갈 개스비가 모자라니 좀 도와줄 수 없느냐고 다짜고짜 요구하는 당찬 녀석도 있다. 거짓말이라고 확신은 하면서도 혹시 사실이라면 안타깝고 간절한 사연에 동정이 간다. 한밤중에 한창 자고 있는데 문을 두드려서 배고프니 5불만 달라고 요구하는 날강도 같은 어처구니없는 놈도 있다. 100% 어두컴컴한 복장을 하고 있으며 어떤 놈은 손에 일부러 피를 묻혀서 내민다. 일종의 협박인 셈이다. 케첩이 아닐까 의심이 든다.

주자니 돈 뺏기는 것 같아 약 오르고, 안 주자니 무슨 해코지를 할 줄 모르겠고…. 아주 난감하다. 토끼 간을 뺏기는 기분......, 난감하네~

'Want some company?'(친구가 필요하세요?)

깊은 밤중에 트럭 문을 두드리는 여자도 있는데 어떤 친구가 되어주고 싶은지 호기심이 발동한다. 트럭 드라이버끼리는 이런 사람들을 ‘'Lot Lizard 파킹장의 도마뱀’이라고 부른다. 도마뱀처럼 잘 보이지 않는데, 갑자기 아무 데서 튀어나온다. 또 주의 깊게 살펴보면 보인다.

한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 아메리카 땅에도 있다. 길거리 전도사! 해병보다 더 강한 훈련으로 무장하고 극강의 정신력을 가진 독한 맹신도들. 여호와의 증인들..., 파수꾼인가 뭔가 하는 책자를 서넛이 뭉쳐 다니며 나누어 준다. 여기서 알게 된 영어는 지호바스 위트니스라고 한다.

이렇게 아메리카 대륙의 트럭 스탑에는 별별 사람이 다 모여 있다. 그래서인지 트럭 스탑에는 괴담이나 전설, 얽힌 이야기들이 많다.

 

파일럿 트럭 스탑에서 생긴 일이다.

텍사캐나(Texarkana)라는 도시는 이름 그대로 텍사스(Texas)와 아칸소(Arkansas)주의 경계에 있다. 캐나다에서 멕시코를 오가는 트럭들은 화물은 꼭 이곳을 통과하는 길목으로 하루에 수천 대의 트럭이 오가는 무지무지하게 바쁜 곳이다. 큰 트럭 스탑 두 개가 마주하여 있지만, 항상 빈 자리가 없다.

가까스로 자리를 찾아 주차하고 난 후, 일과를 정리하고 다음 화물 정산을 하고 있는데 누가 트럭 문을 두드렸다. 창문을 열고 보니 한 남자가 서 있다. 소년처럼 어려 보이는데 우물쭈물하는 몸짓이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아 아이 니 니니드 머머머니 포 개개개스...... 캐캐캔유 헤헤헤헬미?” (I need money for gas. Can you help me?)

자동차 기름이 떨어져서 돈이 좀 필요한데 도와달라는 전형적인 구걸 수법인 줄 눈치챘지만 왠지 측은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 생김은 멀쩡한데 표정이 어색했다. 입고 있는 셔츠는 구질구질하고 바지는 여기저기 얼룩이 묻어 지저분했다. 도저히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다 말까지 더듬거리는 모습은 안쓰러웠다.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Where is your car?” (차는 어디 있는데?)

“아아이 아이 도도돈 해해해브 어어 크크크카.” (나는 차가 없어요)

“왜 거짓말했니?”

그가 계면쩍은 듯 배시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말을 하면 사람들이 돈을 주더냐?”

다시 내가 묻자 그가 반은 웃는 얼굴 반은 애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돈 많이 받았어?”

그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바로 가로로 흔들었다.

“이 아이아임 ㅎ 허허 헝그리”(I'm hungry)

배고프다는 소리에 측은한 생각이 들어 주머니를 뒤져 잔돈을 다 꺼내 주었다. 트럭 스탑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직업을 구해서 일하는 게 더 낫지 않겠니?” (Why don't you get a job?)

질문을 해놓고 나서 후회가 됐다. 누가 이렇게 어설프고 말을 더듬는 사람을 고용할까?

“노노노바디 하하하하이어 미.” (Nobody hire me)

당연한 대답이었다.

"Then sell something! Don't just ask for money!" (그럼 장사라도 해! 그냥 구걸하지만 말고)

내 말은 생각과 다르게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그냥 몇 푼 준 거로 마무리될 인연이건만 안타까움 마음에 엉뚱한 충고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나는 남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줄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큰 도움을 줄 만큼 능력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말해놓고 보니 내가 괜한 소리 했다고 후회됐다. 이 사람에게 무엇을 팔라고 강요한단 말인가? 그도 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I mean…. sell Gum, candy, matches, books, movies or anything...."

(내 말은 껌을 팔던가. 과자, 성냥, 책등 아무거나 파는 게 좋을 거란 뜻이야)

그동안 트럭 스탑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영화 DVD를 팔거나, 수제 공예품을 팔거나, 본인 CD를 펼쳐놓고 노래 부르는 무명 가수도 보았다. 심지어 롤렉스 금딱지 시계를 파는 이도 있었다. 트럭 스탑은 워낙 유동인구가 많음으로 뭘 팔아도 푼돈 장사는 할 수 있는 곳이기에 무심코 그에게 꺼낸 말이었다. 그의 처지를 고려하지 못한 한심한 조언이었다.

“아이아이 라이크 부부북스.” (I like books)

나는 책을 좋아해! 그가 대답했다.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정말로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말하는 것은 부자연스러워도 책 읽는 것을 잘 할 수 있겠다.

“That is good! Then sell books. Used books. Some truck drivers reading books." (좋아! 그럼 책을 팔아, 중고 책이라도. 트럭 운전사들도 책을 읽으니까)

이 말을 하면서 갑자기 좋은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나는 트럭 안에 항상 책을 갖고 다닌다. 트럭 운전 중에 무료하게 기다리는 시간을 보내기에는 독서가 제일이다. 특히 화물을 싣고 내리는 동안의 대기 시간은 짧게는 15분 길게는 몇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리고 영어 공부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최근 읽는 책은 존 그리샴 (John Grisham)의 책들인데 그의 대표작은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The Firm, 줄리아 로버트가 주연한 Pelican Brief 등이다. 그동안 틈틈이 읽던 소설 책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닌다. 트럭에 있던 책을 모으니 모두 열권이었다. 모두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럼 이 책들을 팔아 봐. 다 팔면 너 먹고 싶은 것 사먹어!”

책을 보는 그의 눈이 행복해 보였다. 그는 책들을 가슴에 안아들고 트럭들 사이로 사라졌다.

큰일이 아닌데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면서도 그 친구가 과연 책을 팔 수 있을지는 걱정되었다. 책을 좋아한다니 본인이 읽을 수도 있지만 내가 안 보이는 곳에 가면 쓰레기통에 버릴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한 시간 정도가 흐른 후에 그가 돌아왔다. 빈손이었다. 궁금해서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그는 모두 팔았다면서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보여주었다. 생글생글 웃는 그를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았다. 책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루에 한 두 권을 팔아도 다행일 텐데 헌책 열권 모두를 짧은 시간에 팔아치운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2에 팔았는데 어떤 이는 $5도 주고 $10을 건네준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만약 내가 책을 구해 주면 계속 팔 거냐고 물으니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했다.

그날부터 나는 여기저기에서 헌책들을 구했다. 동료들에게서 다 읽은 책을 얻기도 하고, 가라지 세일에서 50센트씩 파는 소설, 책들만 골라 사 모았다. 대부분 낡은 것들로 종이도 누렇게 변하고 찢어지고 말 그대로 낡은 헌 책들이었다.

며칠 후, 다시 그 트럭 스탑에 갈 때는 모두 50여 권이나 되는 헌 소설 책들이 모여져 있었다.

다시 만난 그는 말투나 행동은 여전히 부자연스러웠지만 나를 보자 아주 반가워했다. 책을 보는 그의 눈이 반짝 빛났다. 일단 반 정도의 책을 낑낑대며 들고 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번에도 제대로 팔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내가 괜한 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후회도 됐다.

오늘은 몇 권이나 팔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또는 책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어디로 가버렸는지도 걱정반 기대반 하고 있는데 한 시간도 안되어 그가 돌아왔다. 역시 빈손이다. 책을 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냥 오기에 내가 괜한 기대를 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책을 또 가져가겠노라고 하였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는 나에게 책 판 돈이라면서 보여주었다. 그래서 어떻게 파냐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그냥 쉽다고만 대답했다.

유행하는 인기상품도 아닌 헌 책을 그렇게 순식간에 팔아 치우다니? 그럴 수는 없다. 의심스러웠다. 틀림없이 뭔가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씨 좋고 숨은 귀인이 있어서 책을 몽땅 사주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손에 들 수 있는 만큼 책을 들고 다시 트럭 사이로 사라졌다.

스무 권이나 되는 책, 그것도 아무도 안 읽을 것 같은 헌 소설책들을 몇 시간 만에 다 팔다니..., 상식적으로 최소한 몇 주 또는 몇 달이 걸려도 모두 팔기는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이 어설픈 녀석이 어떻게 책을 파는 걸까? 궁금해서 마냥 트럭에만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가 세 번째로 책을 들고 갈 때에는 살짝 뒤 따라갔다. 도대체 어떻게 그 많은 책을 팔 수 있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는 책 몇 권을 들고서 주차하고 있는 트럭에 가서 문을 두드렸다. 운전사가 나오자 그가 책을 보여 주었다.

“우우우주유 라라리이크 바바바이 어어어 부부북?” (Would you like to by a

book?)

-책 한 권 사세요!

"No Thank you, I don't read a book" (필요 없네! 나는 책을 안 읽어!)

"이이잇스 오오오케이 아아아ㅣ 케케켄 리리리드 어 부부북 포포 유 이이이

스 프프프프리!" ( It's ok i can read a book for you, It's a free.)"

-괜찮아요. 그럼 내가 공짜로 읽어줄게요.

그리고는 책 하나를 펴서 첫 장부터 큰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워워워원스 어펀 어 타타타임, 데데데데어 워스 어 보이....”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boy…….)

-옛날에 한 소년이 살았는데...

"Alright! alright!, stop it! how much is it?" (알았어! 그만 그만! 얼마야?)

사람들은 그가 책을 읽어주기만 하면 두말없이 책을 사는 것이었다.

 

세상은 공평할 때도 있다. 그는 무엇을 하든 잘 해낼 것이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트럭 스탑을 떠났다.

 

 

-트럭 스탑에 관한 유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