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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2016. 6. 11. 17:55

 

 

 

 

복면가왕 음악대장 하현우와 '응답하라 88' 신해철

 

 

복면가왕 사상 역대 최장으로 9연승을 달리던 우리동네 음악대장 '국카스텐 하현우', 결국 10연승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았다. 더 좋은 선곡으로 10연승을 넘볼 수 있음에도 가볍게 부르는 곡으로 내려놓았다,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하지만 경쟁 출연자를 배려한 멘트로 들리었을 뿐이었다.그 정도로 그의 호소력 높은 가창력은 청중을 매료시켜 왔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곡으로 감동시킨 가수 거미 이상의 가창력은 없을거라 여겼지만 음악대장은 감동을 넘어 노래의 진수까지 선사했다.

 

음악대장을 능가할 아티스트는 과연 누가 될까 상상했을때 하현우와 같은 락 버전의 아티스트가 되지 않을까하여 실제 김경호와 최종 대결에서 경연을 펼쳤지만 김경호도 역부족이었다. 김경호다운 실력발휘 못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동네 음악대장 하현우는 자신의 목소리에 맞게 편곡하며 청중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선곡에서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하현우 특유의 일관된 개인 취향이 대중의 갈증과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다름아닌 그것은 신해철이다.

 

그는 듀엣 아닌 솔로 첫 곡으로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으로 시작해 라젠카라는 웅장한 락곡으로 가왕에 올랐다. 연이어 일상으로의 초대 등 신해철의 여러곡으로 연승을 달리는 등, 추모 시기에서 추모열기일 뿐 하마터면 우리 사회가 잊혀질 뻔한 신해철의 죽음을 기리는 뜻이 엿보였다.

 

덧붙여 신해철과 함께한 서태지의 하여가, 서태지의 친구 양현석 연예기획사 소속이자 광주 5.18을 추모했던 빅뱅의 노래도 편곡해 열창한 모습들이 뭔가의 코드를 읽게 했다. 러시아 가요로 알려진 '백만송이 장미' 선곡도 진보 코드의 그것이 아니었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머나먼 80년대 대학가요 락그룹 티삼스의 '매일 매일 기다려'를 통해 클라이막스를 이루었고 음악대장 선풍을 이끌었다. 티삼스의 락곡를 알리려는 책무도 보였다. 그 후로 그는  스스로 내려놓는 모습이 역력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소개된 티삼스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우리동네 음악대장 선풍은 '응답하라 88'의 인기와 겹치기도 했다. 음악대장도 응팔에서 더욱 알려진 전인권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응팔에서는 매회마다 '신해철의 그대에게' 연주로 시작한다. 실제로 88년 말 음악계에 충격을 준 노래였다

 

우리는 가끔 쌍팔년도라는 말을 가끔 하게된다. 쌍팔년도가 88년을 뜻하는게 아닌데도 88년으로 생각한다. 지금의 패션들과 노래들을 비교해봐도 후지다고 이미지화된 것이 쌍팔년도다. 심지어 70년대 패션보다 유치한 브레이크 댄스복과 펑크 스타일 패션, 그리고 장발 머리에 어울리지 않는 가분수적 옷차림과 어깨뽕으로 인식하게 된다. 흐릿흐릿한 80년대 칼러 영상들과 함께.. 이것은 또한 당시 정치권의 후진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지금 보면 당시의 80년대는 절제없고 어설픈 화려함, 미국 문화 따라하기로 동양인에 맞지 않는 어설프고 촌스러운 패션들, 그러면서 세련됨이 없는 머리 스타일, 현대화 물결에 적응지 못한 과도기의 사회의식 등, 90년대 2000년대에 비해 어설프고 촌스럽게 보이기는 하다.

 

 

그러나 오늘날 각 분야에서의 세련됨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거기에도 명맥이 있다. 80년대 하면 김완선, 소방차 등의 어설픈 패션이나 조악한 음악조류들이 대표적으로 기억되지만 사실상 뜯어보면 80년대 청소년들은 군부독재 정권 속에서도 영상세대로 싹트였고 시대에 앞선 음악 흐름들을 즐겼다.

 

이문세 유재하 김현식 다섯손가락 조용필의 몇몇 곡 등의 수준 높은 음악들이 90년대 이소라 신승훈 조관우 이은미 김동률 서영은 등과 2000년대 GOD, SG워너비 더원 바이브 성시경 등 세련되고 성숙된 발라드나 우리 스타일로 융화된 R&B로 발전해 나갔다.

 

락계에서는 시나위, 들국화, 부활, 김현식 엄인호의 신촌블루스라는 뛰어난 그룹의 명맥이 90년대 서태지 신해철 임재범 김종서 공일오비 윤도현 밴드 자우림 언니네이발관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복면가왕이나 나가수를 통해 스타가 된 국카스텐 하현우 등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드니 김완선 소방차 박남정 이상은의 노래도 추억이 되어 다시 불리어졌듯이, 당시의 댄스 음악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한 명맥들이 김건모 듀스 터보 이정현 싸이 핑클을 거쳐 2ne1 빅뱅 시스타 EXO 등 우리 스타일로 융화된 아이돌 곡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88년도는 쌍팔년도로만 비하할 수 없는 것이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의 민주화 흐름이었으며, 오히려 지금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깊게하는 음악들이 70년대보다 풍성하게 하였다. 이른바 포크송으로서 동물원의 김광석, 시인과 촌장, 신형원, 정태춘 노찾사 해바라기 노래 등이며 90년대 여행스케치 권진원에 이어 2000년대 버스커버스커, 로이킴 등의 노래로 모던하게 감미로워진다 

 

 

복잡다단한 지금 사회보다 그 때가 그리운 것은 공동체적 유대감이 지금보다 높았던 사회풍조들이 집단적 민주화 운동을 이끌게 한 힘이 아니었을까? 응팔의 학생운동권 보라의 시위장면도 그래서 가능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면 양김분열에 따른 정권교체 실패로 완성도의 민주사회가 되지 못했을 뿐이지, 개인주의에 빠진 지금보다 그때가 더욱 더 이웃을 사랑하고 내 나라의 정의를 위해 생각하는 유대감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의미의 드라마 응팔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공교롭게도 응팔의 덕선과 그 친구들은 나의 세대를 그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대학입시 시험에 찌든 그때라서, 고교생으로서 민주화 운동에 눈 뜨다 실망하게된 그때라서 기억하고 싶지 않는 88년이지만 그래서 필자 스스로도 쌍팔년도라 칭했지만 드라마 응팔을 통해 그때를 다시 조명하게 해주었다

 

걸스데이 혜리의 연기도 단연 돋보였다. 흡사 80년대 여고생 특유의 얼굴상을 보는 듯했다. 패션 또한 그러했다. 청잠바에 약간의 짧은 바지, MY MY 카세트 등 당시의 유행 상품들과 옛 모양의 장농과 TV, 생활 도구들이 그때를 생각하게 했다.

 

이렇듯 당시의 청소년 문화가 자유의 흐름으로 성장해갔지만 전두환 독재라는 어두운 역사 때문에 밝게 비추는 시대가 되지 못하고 기억하기 싫은 쌍팔년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그 때의 밝은 얼굴들이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에 찌들어야하는 보라의 얼굴을 보게되면 군부독재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사회 이미지에도 큰 해악이 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박정희 정권 시대의 청소년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도 모르고 아직도 여전히 박정희 노래를 부르며 박정희 추모 예산을 늘이는 박근혜 정부, 그러면서 그들은 서민들의 복지예산에는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못해 지방정부의 재정도 빼앗으려 한다.

 

 

드라마 응팔은 '응답하라 94'처럼 용모의 화려함과 먼 연기자들을 주인공으로 놓고 키우는 파격됨을 여전히 보여주었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당시 어른들의 애환도 조명해 주었다. 80년대인만큼 당시 이웃들의 유대감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요즈음 알파고 현상을 예상한 방송사인지 모르겠으나 미생에 이어 응팔에서도 바둑을 두는 장면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러한 선풍이 바둑계의 정치권 영입도 낳기도 했다

 

드라마 응팔에게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88년이면 5공청문회가 한창이었는데 당시 청문회 스타들이 현직으로 활동해서 그래서인지 비춰주지 않았음을 이해하더라도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문회 질의 모습은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지 않는가라는 점이다. 88년 청문회 대상자와 연계된 정치인들이 정치권 양당의 한 축으로 남아 있어서일까?  

 

드라마 작가는 확연하게 우리 세대가 맞으며 코드도 또한 비슷하다. 문화적으로도 88년 말 신해철의 노래로 시작하여 90년대 초 이승환의 노래도 빠지지 않는 등 정서적으로도 코드가 일체한다. 88년, 94년들이 추억이 되어버린 필자에겐 고맙지 않을 수 없다. 비록 CJ 그룹 방송의 드라마이긴 하지만 종편보다 못하겠는가

                   

 

복면가왕 우리동네 음악대장도 음악의 폭 뿐만 아니라 세대를 뛰어넘었다. 빅뱅에서부터 신해철, 티삼스, 전인권, 공일오비, 백만송이 장미, 봄비까지 다양함의 힘으로 압도했다. 청중을 휘어잡는 노하우가 무엇인지, 정상에 있을 때의 처신과 멘트가 어떠해야하는지, 조그만 부분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내려놓을 때를 아는 음악대장을 보며 내려놓을 때를 모르고 정치권의 혼란만 야기한 박근혜 이한구 박지원 김한길 정동영 김종인 등의 노욕들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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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물론 복면가왕의 옥의 티가 있다면 개그맨 이윤석이다. 더민주당 선거운동 노래에 참여한 그 이후로 복면가왕에 보이지 않는 작곡가 김형석에 비해 야당에 대해 친노당 호남당이라며 부정적인 뜻으로  비하한 정치발언 이윤석임에도 자리를 유지시킨 MBC의 고약함이다. 

 

MBC는 그 사건 이후로 이윤석의 멘트를 더 늘리는 오기도 부렸다. 실상 이윤석은 나이에 맞지 않는 오바와 가식적 멘트들이 보기에 좋지 않았다. 음악대장 마지막 무대에서는 좋게봐줄 멘트였지만 전반적으로 못봐줄 장면이었다는 감정은 어쩔 수 없다. 개그맨 이윤석 씨도 응팔 세대라 할 수 있는데, 이젠 좀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품위있고 곱게 늙어야하지 않을까?

 

 

*아고라 - 유스피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