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U2 2016. 1. 16. 15:20

 

 

 

 

디턴 “불평등은 성장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

 

 

 

 

 

 

 

 

앵거스 디턴 교수 이메일 인터뷰.. 대담하게 왜곡된 ‘위대한 탈출’
국내 첫 인터뷰와 사건의 전말  “무조건 성장이 좋다는 건 아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턴(70)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최근 자신의 저서 번역본(<위대한 탈출>)을 두고 국내에서 불거진 왜곡 번역 논란과 관련해 처음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한국시각으로 지난 25일 <한겨레>에 보내온 전자우편 답변서에서 자신이 불평등을 옹호한 학자로만 한국에 소개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며 “불평등은 성장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장단점에 적절한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지나친 불평등은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평소 지론을 재확인한 셈이다.

 

<한국경제> 등 보수언론에 의해 자신과 상반된 입장을 가진 것으로 분류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에 대해서는 “최상층 소득분포 자료에 관한 피케티와 사에즈의 연구가 (불평등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연구를 촉발한 기폭제가 되었다. 그들의 작업이 매우 중요하고 많은 영감을 준다”고 긍정적으로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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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현진권 자유경제원장은 번역본 서문에 쓴 ‘피케티 vs 디턴, 불평등을 논하다’라는 글에서 디턴을 불평등을 비판하는 토마 피케티 교수와 대립하는 것처럼 소개해 오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불평등의 심화를 우려한다는 점에서 디턴과 피케티의 입장에는 큰 차이가 없고 이는 현 주류 경제학과도 궤를 같이한다는 지적이 출간 당시부터 제기됐다. 결국 ‘교과서 국정화’를 주도하는 주요 세력 중 하나인 자유경제원은 노벨상 수상자의 책까지 왜곡 번역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게 됐다.

 

해당 출판사인 한국경제신문 한경비피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현 원장의 서문 ‘피케티 vs 디턴’은 일종의 홍보 포인트였지만 개정판에선 빼기로 했다. 급하게 번역을 맡긴데다 편집을 외주로 주면서 제작 과정에서 빚어진 실수다. 왜곡 의도나 시도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이는 ‘날림 출판’을 사실상 인정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앞서 18일과 21일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원문에 있던 내용 등을 상당수 생략하거나 축소한 채 번역이 이뤄져 결과적으로 디턴을 불평등을 옹호한 학자로 왜곡했다며 해당 출판사인 한경비피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원서를 발간한 프린스턴대 출판부는 “한경비피가 기존 번역본을 판매중지하고 디턴 교수의 원문을 정확하게 반영한 뒤 독립적인 검토를 거친 개정판을 출간하기로 동의했다”고 22일 밝힌 바 있다.

 

▶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며 가장 ‘핫한’ 학자로 떠오른 미국의 앵거스 디턴 교수를 아시나요? 디턴의 한국어판(<위대한 탈출>) 저서에 대한 번역 오류가 최근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이 문제를 최초 제기한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해당 출판사인 한경비피와 모회사인 한국경제신문사, 그리고 ‘교과서 국정화 돌격대’ 자유경제원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디턴에 대해서 왜곡 번역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디턴을 둘러싼 ‘기승전왜곡’의 전말을 김공회 연구위원에게 들어보시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선수 요기 베라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야구의 묘미를 기가 막히게 포착한 표현이지만 다양한 인간사에 적용할 수도 있다.

 

특히 최근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저서 <위대한 탈출>(한글 번역판 제목)의 왜곡 사실이 밝혀져 국제적 망신을 당한 출판사 한경비피(BP)와 모기업 한국경제신문사, 그리고 자유경제원을 보면 그렇다.

 

이를 통해 적어도 보수진영의 ‘디턴 아전인수’가 한동안 줄어들겠거니 했던 기대는, 오는 11월3일에 ‘앵거스 디턴 노벨경제학상 수상 의의와 한국 경제에 주는 시사점’이라는 심포지엄이 한국경제연구원(한경원) 주최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참히 깨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안팎의 부담 때문인지 공지 이틀 만에 심포지엄이 취소되었다는 점이다.

 

11월3일 예정된 ‘디턴 심포지엄’은 취소

 

누군가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다음 사항들은 이미 사실로 드러났다. 첫째, 한국경제신문사 계열 출판사인 한경비피는 지난해 9월 앵거스 디턴의 책 <위대한 탈출>을 왜곡 출판했다. 둘째, 이 왜곡에 기반을 두고 한경비피는 물론 <한국경제>의 정규재 주필, 자유경제원의 현진권 원장 등은 당시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토마 피케티에 대한 우파의 ‘대항마’로 디턴을 내세웠다. 셋째, 최근 한경비피가 <위대한 탈출>을 왜곡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저자인 디턴과 원출판사인 프린스턴대학교출판부는 한경비피의 한국어판의 판매를 중단시키는 한편 원문을 제대로 복원해 새로운 번역본을 내라고 한경비피에 주문했다. 이 셋은 모두 명백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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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턴의 저서 한국어판이 출간된 것은 2014년 9월3일이다. 피케티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을 때다. 이것이 못마땅했을까? 정 주필과 현 원장 등은 디턴이 ‘불평등은 성장을 촉진시키는 좋은 것’이라 했다며 디턴을 피케티를 겨냥한 ‘대항마’로 내세운다.

 

이에 경제학에 눈밝은 많은 누리꾼들이 디턴과 피케티는 대립되지 않는다는 증거들을 잇따라 내놓았다. 하지만 ‘디턴 대 피케티’라는 구도를 고수하던 이들은 요지부동이었다. 어차피 디턴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해석’의 문제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8일, 즉 책이 출간된 지 13개월 반이 지난 다음, 그러한 왜곡이 단순히 해석의 차원에 그치는 게 아니라 책의 출간 과정에서 원문의 상당 부분이 변경됨으로써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디턴의 노벨상 수상으로 <위대한 탈출>이 다시금 주목받은 바로 그 시점이다.

 

이 의혹은 얼마 안 가 사실로 드러났다. 먼저 한국어판을 내놓은 한경비피에서 20일 서문 등에 일부 변경이 가해졌음을 인정하는 공지를 냈고, 22일(현지시각)에는 프린스턴대출판부에서도 한국어판의 왜곡 사실을 확인하고 그에 대한 일련의 조처를 담은 보도자료를 학교 누리집 게시판에 올렸다.(<한겨레> 26일치 8면 참조)

 

한경비피의 왜곡은 의도적인 것일까? 일단, 의도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디턴 교수의 저서가 왜곡 번역됐다는 것과 이를 토대로 자유경제원과 한국경제신문이 ‘디턴 대 피케티’의 대립구도를 만들었다는 것은 각각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시중의 책을 전량 회수하고 원문을 복원해 책을 새로 번역하며 이 새로운 번역은 독립적인 감수과정을 거쳐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책이 불평등에 관한 다른 저작들과 대척점에서 읽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현 원장의) 서문도 새로운 번역에서 빠져야 한다”는 프린스턴대출판부의 요구는 당연한 것이다. 다만 별다른 증거가 없다면, 한경비피가 자행한 왜곡이 저자의 의도를 특정한 방향으로 ‘재창조’하려는 목적 아래 이뤄졌는지를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 실제 왜곡의 양상을 보고 일정하게 짐작할 수는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디턴 교수..국내 처음 출간된 그의 <위대한 탈출>
<한국경제> 자회사인 ‘한경비피’가 책제목부터 장 제목까지 왜곡 번역
‘디턴 vs 피케티’라는 아전인수까지

 

일생을 불평등 연구한 디턴 교수는 저개발국의 빈곤 등에 주목한 학자
성장제일주의자로 ‘해석’된 그는 <한겨레>에 직접 보내온 메일에서
되레 성장의 부정적 측면 우려해

 

“피케티 작업에 많은 영감 받아”

 

프린스턴대출판부의 조처가 미온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최초 의혹 제기가 10월18일(한국시각)이고, ‘번역 왜곡’을 확인한 프린스턴대출판부의 보도자료가 나온 것이 22일(현지시각)이었다. 프린스턴대출판부가 <위대한 탈출>의 한국어판에서 어느 정도의 왜곡이 있었는지를 판단하기에 결코 충분한 기간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27일 프린스턴대출판부의 고위관계자는 <한겨레>와의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당분간은 이 문제에 대한 공식 입장 발표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우리는 이 사안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여전히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 그 결과에 따라 추가 조처도 나올 수 있음을 내비친 것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스웨덴왕립고등과학원은 디턴의 노벨상 수상 이유를 ‘소비(consumption), 빈곤(poverty), 후생(welfare)’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로 요약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게 소비다. 그것은 개인의 후생 수준을 직접적으로 반영할 뿐만 아니라 흔히 소득을 기준으로 정의되는 빈곤이라는 것도 소비의 차원에서 재정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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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70년대 초반부터 소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거시적 데이터에 의존하는 기존의 지배적인 접근을 비판하고 미시적 차원에서 소비를 측정하는 기법들을 개발했고, 이를 현실에 응용해 다양한 연구 성과를 쌓아왔다. 현재 프린스턴대 누리집에 올라온 디턴 교수의 페이지에는 그의 연구 관심사로 세계·인도의 빈곤, 건강과 경제학, 가계 조사라는 세 가지 주제가 명시돼 있다.

 

일생 동안 학술논문을 쓰는 데 온 힘을 써온 디턴 교수에게 대중교양서인 <위대한 탈출>은 신선한 시도였을 것도 같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간 그가 집중했던 두 가지 주제, 즉 건강과 경제적 불평등을 한데 버무려냈다는 점에서 그의 주요 연구 업적들과 궤를 같이한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의 세계적 현황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그는 자신의 소비(자)에 대한 연구들에 의거해 보다 정확하고 의미있는 비교 방법을 다소 복잡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 책을 잘 읽어보면 디턴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그의 핵심적인 연구 업적의 일면까지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경비피의 한글 번역본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적지 않게 잘려 나갔다. 재출간에서 각별히 신경쓸 대목이다.

 

한편, 디턴 교수는 자신의 책 <위대한 탈출>의 한국어 번역본에 대한 왜곡 의혹을 처음으로 제기하고 관련 증거를 성실하게 모아준 데 대해서 감사를 표하면서, 그 보답으로 간단하게나마 전자우편 인터뷰에 응했다. 다만 번역 왜곡에 대한 질문은 삼간다는 조건을 걸었다.

 

현재 이 문제를 프린스턴대학교출판부에 전적으로 맡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인터뷰에서 디턴 교수는 그간 왜곡된 번역본 때문에 국내 독자들을 혼란케 했던 성장, 불평등, 피케티, 재분배 등에 대한 그의 견해를 비교적 명쾌하게 밝혔다. 디턴 교수는 한국시각으로 25일 새벽, 아래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신을 보내왔다.

 

-노벨 경제학상의 수상 이유로 소비, 빈곤, 후생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가 제시되었다. 이를 당신의 언어로 간략히 표현한다면?

“그것들은 모두 사람들이 행동하는 방식과 그것이 그들의 복리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갖느냐에 대한 연구다. 사람들의 행동 동기에 관한 것인 동시에, 무엇이 그들의 삶을 좋게 만드는가에 대한 것이다.”

 

-한경비피와 그 모회사인 한국경제신문, 그리고 자유경제원은 당신의 <위대한 탈출>의 핵심 논지를 ‘불평등은 성장을 촉진하므로 좋은 것이다’라는 식으로 제시했다. 결국 당신은 한국에서는 성장론자, 불평등 옹호론자로 알려지게 되었는데?

“모든 분별 있는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는 친성장(pro-growth)론자이다. 그러나 무조건 성장이 좋다는 건 아니다. 불평등은 성장의 부산물일 수도 있고, 성장을 위한 인센티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불평등)은 성장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 이러한 장단점에 적절한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 사회의 역할이다.”

 

-최근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최상층 소득분포 자료에 관한 피케티와 사에즈의 연구가 폭넓은 관심과 연구를 촉발한 기폭제가 되었다. 이들의 연구가 있기 전에는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득이 최상층에 집중되는지를 알지 못했다. 나는 평생 동안 불평등에 대해 연구해왔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그들의 작업이 매우 중요하고 많은 영감을 준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탈출>에서 당신은 특히 미국에서 불평등이 커지는 데 우려를 표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양극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가계소득이 정체되고 있다. 불평등 심화가 경제의 성장잠재력도 짓누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성장’에만 목을 매고 있다. 부자와 대기업을 위해 세금을 깎아주는 반면, 뒤처진 사람들을 위한 공공지출에는 인색하다. 당신은 이것이 올바른 정책방향이라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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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직접 연구하지 않은 나라의 국내정책에 대해서는 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장의 과실이 널리 공유되는 것은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먼저 이득을 본 사람들(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먼저 ‘탈출한’ 사람들)이 세금을 내서 뒤처진 사람들을 돕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 몰두하고 있는 연구에 대해 짧게 알려달라.

“중년의 백인 미국인들, 특히 교육 수준이 비교적 낮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망률과 질병률의 급작스런 증가에 대해 연구중이다. 또한 무작위대조시험(RCT)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과 얻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연구도 함께 진행중이다.”

 

국정교과서 올인한 자유경제원장

시장주의 설파한 한국경제 주필이 왜곡된 해석 확대 재생산 앞장서
번역 통해 보수주의 확산하려면 밀턴 프리드먼 같은 책 이용하라

디턴 교수의 원서명은 <대탈출> 일어판에도 없는 ‘위대한 탈출’과
‘불평등이 성장 부른다’는 부제는 왜? 무슨 의도로 삽입되었을까?
시장주의 위해 그를 이용한 걸까?

그는 피케티와 비슷한 방식으로 미국의 최상위 소득 고찰하기도
불평등의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 고소득 은행가·금융가 비판 단락
어찌된 영문인지 번역에서 누락

 

불평등 양상 다룬 5장 왜곡 심해

 

실제로 무엇이 왜곡되었는지 살펴보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제목이다. 디턴 책의 원제목은 <대탈출: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The Great Escape: Health, Wealth, and the Origins of Inequality)이다. 이것이 한글판에서는 <위대한 탈출: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발시키나>로 옮겨졌다. 부제목에 큰 변경이 가해진 것이다. ‘불평등은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자유경제원의 생각이 번역 과정에 투영되었다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과감한 변경을 고려하면, ‘위대한 탈출’이라는 주제목도 심상치 않다. ‘The Great Escape’라는 제목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할리우드 영화에서 따온 것으로, 흔히 ‘대탈출’이라고 번역된다. 이런 선례를 두고 굳이 긍정적인 뉘앙스가 강한 ‘위대한 탈출’을 쓴 이유가 무엇일까? 참고로 같은 책의 일본어 번역본의 제목은 ‘대탈출’이다. 이것만 봐도 본문에서 가해질 엄청난 텍스트 변경과 왜곡의 ‘방향’이 어떨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제목을 바꿨으니, 각 부와 장의 제목, 장에 딸린 소절들의 제목을 바꾸는 것은 이미 문제가 아닐 것이다. 실제로 제목뿐 아니라 각 부와 장의 편성도 슬쩍 바뀐다. 왜 책 전체에 대한 ‘도입 성격의 개괄’인 제1장을 제1부 안에 넣었을까?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대목은 각 부의 제목 번역에서는 ‘위대한 탈출’이 아니라 ‘대탈출’이라고 쓰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한경·자유경제원 및 그 주변의 우파 지식인들이 그간 디턴을 피케티와 대척점에 선 것처럼 묘사했던 것을 생각하면, 왜곡은 물질적 불평등의 양상을 다루는 제5장에서 특히 심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실제로 제5장은 제목부터 바뀐다. 원문의 ‘미국에서 물질적 풍요’라는 제목은, 그 아래 있는 절들을 봤을 때 ‘오늘날 대표적인 선진국 미국이 겉으로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엔 어두운 이면도 있으며, 이러한 미국의 외관상 풍요를 입체적으로 조명하겠다’라는 의도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글판의 ‘물질적 웰빙에 변혁을 가하다’라는 제목은 이러한 이중적 과정을 표현하기엔 매우 부적절해 보인다.

 

장 제목 변경의 효과는 절 제목의 변경으로써 강화된다. 원문은 미국의 경제성장-빈곤-소득분배를 순차적으로 살핀 뒤, 불평등의 원인을 일(직업 간 격차 등), 정치, 가계구성 등의 측면에서 다양하게 고찰한다. 특히 디턴 교수는 피케티와 거의 비슷한 방식으로 ‘미국의 최상위 소득’을 고찰한다. 그는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증가하는 불평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역설하면서 장을 끝맺는다.

 

이에 비해 한경비피는 각 절의 제목을 바꾸는 데 각별한 ‘편집상’의 노력을 기울인 것처럼 보인다. ‘미국의 경제성장’(원문)을 살펴보는 절을 ‘물질적 진보라는 황금사과’(번역본)에 대한 것으로 탈바꿈시켜, 애초 저자가 경제성장의 명암을 두루 보겠다는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 원문에는 세 개의 절로 나뉜 것이 한글판에서 하나로 뭉뚱그려지기도 했다. 이는 각 절을 나눔으로써 각각에 상이한 목적과 위상을 부여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훼손하였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불평등’에 대한 그의 관심의 강도를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출판사는 ‘불평등’이라는 말이 너무 반복적으로 나와 독자들의 이해를 방해한다고 판단한 것일까?

 

장과 절의 제목 변경은 본문 텍스트 자체의 변경으로 이어진다. 제5장의 세 번째 문단으로, 장의 전반적 성격을 규정하는 다음의 구절을 보자.

 

“지난 수백 년에 초점을 맞춰 미국의 물질적 웰빙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미국을 선택한 이유는 이야기가 극적이기도 하고 이 책의 중심 주제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웰빙 수준이 향상될 때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므로 빈번히 개인 간 격차가 벌어진다. 변화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종종 불공평하다.”(<위대한 탈출>, 196쪽)

 

자, 어떤 느낌이 드는가? ‘웰빙 수준의 향상’, 곧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불평등이 나타나는 것은 자연스럽다는 느낌, 그러니 불평등을 받아들이고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깨달음 같은 것이 전해지지 않는가? 적어도 불평등 발생의 불가피성을 말하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뭔가 좀 애매모호하다. 사실 위 인용문은 원문을 전부 번역한 게 아니다. 번역본의 마지막 문장 ‘~불공평하다.’ 아래 원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장이 곧장 이어진다.

                   

 

“불평등을 고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삶의 개선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뒤처지는지를 고찰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며, 불평등은 그 자체적인 효과를 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불평등이 뒤처진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식으로 작용한다면, 불평등은 성장을 확산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물질적 개선을 깎아내릴 수도 있고, 심지어 그것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다.

 

불평등은 뒤처진 이들의 사기를 북돋아 그들의 삶을 개선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반대로 불평등은 아주 고약해질 수도 있고, 이익이 소수의 수중에 너무 집중된 나머지 경제성장을 질식시키고 경제의 작동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한국어판에 누락된 부분)

 

체계적으로 용의주도하게 왜곡 실행

 

이쯤 되면 한글 번역본에서 느껴지는 애매모호함의 정체가 드러난다. 분명 저자는 번역본의 생략된 부분에서 불평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매우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를 뺐으니 논지가 애매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앞서 ‘이 책의 중심 주제’라는 표현까지 있음을 보면, 이 생략이 독자에게 초래하는 이해의 손실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5장의 첫인상뿐 아니라 책 전체의 취지를 왜곡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 가지 사례를 더 들어보자.

“소득이 가장 높은 사람들 중에 잘 나타나는 다른 집단은 은행과 헤지펀드 회사의 고위 경영진이다. 이들도 아주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으며 자신이 받은 교육과 창의성을 사용해 새로운 상품을 고안한다. 모든 경제학자가 이런 새 금융 상품이 상품을 만든 사람을 위해 만들어내는 수익에 부합하는 사회적 가치를 갖는가 하는 문제에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는다.”(번역본 236쪽)

여기서 디턴은 피케티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최상위 소득자 집단, 특히 은행가·금융가가 거두는 높은 소득의 사회적 정당성을 따지고 있다. 이에 대한 디턴의 견해는? 번역본을 보면 그의 견해를 도통 알 수 없다. 영문판에 있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한글판에는 빠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까지 나타난 금융혁신 중에서 마지막으로 쓸모있었던 것은 현금자동화기기(ATM)였다는 폴 볼커의 언급에 동조하지 않기는 어렵다. 은행가와 금융가에게 그들의 사회적 인센티브를 과장되게 만드는 사적인 인센티브가 있다면,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은행업과 금융업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여기서 만들어지는 불평등을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한글판의 내용만 보면 은행가·금융가가 거두는 높은 소득에 대해 경제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는 진술 외에 디턴의 시각은 알 수가 없다. 이것이 왜곡이 아니라면, 우리는 왜곡이라는 말의 뜻을 새롭게 정의해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5장에는 수많은 생략과 문맥 변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물론 이 중에는 전체 논지의 전개상 없어도 될 것 같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특별한 계약이 맺어져 있는 게 아니라면 그것을 뺄 권한이 번역본을 내는 출판사에 있는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봤듯이 <위대한 탈출> 번역 왜곡의 특징은 다름아닌 그 ‘체계성’에 있다. 곧 책의 제목 변경→책 전체의 편성 변경→장 제목 변경→절 제목 변경→텍스트 변경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체계적인 과정을 따라 왜곡은 매우 용의주도하게 실행된 것이다. 이 왜곡을 주도한 쪽이 외국 저작의 번역을 통해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자 한다면, 처음부터 그런 목적에 부합하는 저작을 고르면 된다. 한경비피에서 ‘신자유주의’의 대표 이론가인 밀턴 프리드먼의 저작이 출판된 것도 그런 식이었다. 이번처럼 ‘불평등은 성장의 원동력이다’라는 이데올로기에 동의하지 않는 저자의 저작을 굳이 왜곡해서 번역한 뒤 사실과 다르게 광고하는 것은 너무도 대담한 일이다.

경제성장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이 세계에서 여전히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는 오직 빈곤 탈출을 위해서라도 경제성장이 절실하다. 선진국 사람들도 다르지 않다. 다만 이들은 이미 부유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소득으로 일정 정도의 삶의 만족감을 더 느끼기 위해선 상대적으로 많은 소득이 필요할 뿐이다. 분명 성장은 <위대한 탈출>에서 디턴이 강조하는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이고, 그런 점에서 그는 ‘성장론자’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에서라면, 한경비피 등에서 디턴에 반대된다고 내세웠던 피케티도 성장론자다. 디턴의 말을 빌리면, ‘모든 분별 있는 사람들’은 성장론자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성장이 아무런 대가 없이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때로 경제의 더 높은 성장은 거기 속한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것은 불평등을 증가시킨다. 이렇게 특정 방식의 성장 추구가 불평등을 낳아 궁극적으로 성장의 발목을 잡는 자가당착적 상황 앞에서는, 아무리 성장론자라 해도 조세를 통한 재분배같이 불평등을 완화시킬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최근 불평등 증가를 걱정하는 주류경제학자들의 입장이 대체로 이렇다.

디턴은 성장론자인가?

경제성장은 똑같은 투입물을 가지고도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으므로, 우리는 수치상의 성장률뿐 아니라 서로 상충되는 다양한 가치들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성장률은 조금 떨어져도 불평등을 완화하고 경제의 지속가능성도 높일 수 있는 방식도 한 번 추구해볼 만도 하다.

또한 경제를 구성하는 세부 항목도 사실은 가변적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경제의 크기를 재는 데 가장 널리 쓰이는 지표가 국내총생산(GDP)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합의된 표준에 의거해 산출되고 작성된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은 유엔이 2008년 자산과 비용의 개념, 각 항목의 가치산정 방식 등에 대해 규정한 국민계정체계(SNA 2008)를 쓴다. 결과적으로 지디피가 삶의 질이나 물질적 풍요를 나타내는 적합한 지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가 지디피를 고수하는 한 그런 것들을 더욱 잘 반영하도록 지디피의 산출 기준을 바꿀 수도 있다.

성장과 분배는 종종 대립되는 것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특정 상황에서 누군가가 분배 쪽에 방점을 찍는다고 해서 그를 ‘반성장론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맥락 속에서 누가 성장의 중요성, 나아가 성장을 촉진하기도 하는 불평등의 역할을 강조했다고 해서 그를 ‘불평등 옹호자’로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보면, ‘성장 대 분배’라는 식의 구도는 잘못된 것이라고 해야겠다. 그보다는 ‘어떤 성장인가’가 더 중요한 질문이 아닐까? 성장론자로서 디턴은 좀더 포용적이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 그 과실을 누리는 성장을 선호하는 게 분명해 보인다. 다만 한글 번역본 <위대한 탈출>은 그의 이런 면모를 찾기 어렵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앵거스 디턴 이메일 인터뷰 전문

 

 

-Congratulations on your winning the Nobel Prize. The Committee for the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 summarised your work in three keywords: consumption, poverty and welfare. Could you explain how you have developed these topics in your lifelong work, and how they are related to each other?

 

=THE NOBEL COMMITTEE DID A MUCH BETTER JOB THAN I CAN. THEY ARE ALL ABOUT HOW PEOPLE BEHAVE, AND WHAT THAT MEANS FOR THEIR WELLBEING. ABOUT WHAT MAKES PEOPLE TICK, AND WHAT MAKES THEIR LIVES GOOD.

 

-Hankyung BP, the publisher of the Korean translation of your The Great Escape, and its affiliate newspaper, The Korea Economic Daily, have represented your book in such a way that its main argument is ‘inequality is good in that it promotes growth’. They also insist that your winning the Nobel Prize signifies the committee’s decision to take side with ‘promoting growth’ rather than ‘fighting against inequality’. As a result, you are known in Korean society as a pro-growth (and even pro-inequality) economist. Would you agree to this view?

 

=LIKE ALL SENSIBLE PEOPLE I AM PRO-GROWTH, BUT NOT AT ALL COSTS. INEQUALITY CAN BE A BY-PRODUCT OF GROWTH, IT CAN BE AN INCENTIVE TO GROWTH, BUT IT CAN ALSO CHOKE OFF GROWTH. SOCIETIES NEED TO BALANCE THE PROS AND THE CONS.

 

-It is obvious that inequality sometimes plays an important role in promoting the development of the economy as well as the persons living in it. But, recently, it appears that there is a growing concern from economists about inequality. Could you explain why? Perhaps this question is about the motivation which made you write The Great Escape in 2013, for it is in a sense exceptional in that your work has been mostly for scholars, not for the public.

 

=THINK THAT PIETY AND SAEZ’S WORK on DOCUMENTING THE VERY TOP OF THE INCOME DISTRIBUTION WAS AN IMPORTANT IMPETUS TO THE BROADER DEBATE. BEFORE THAT WE DIDN’T KNOW JUST HOW MUCH OF THE GAINS WERE FOCUSED AT THE VERY TOP. I HAVE WORKED on INEQUALITY THROUGHOUT MY LIFE, BUT LIKE OTHERS, FOUND THEIR WORK VERY IMPORTANT AND INSPIRING.

 

-In The Great Escape, you have expressed your concern about the growing inequality in the US. But Korea is not so different. The economy is being polarised very fast whilst, especially, household incomes are shrinking or stagnating. For the ten years up to 2014, household debt almost doubled while the nominal size of the economy grew by 1.6 times. While the ‘official‘ unemployment rate remains as low as 4%, more than 20% of those aged 15-29 are either out of work or ‘under-utilised’. In brief, it seems that growing inequality is choking up the ability of the economy to develop in Korea. Both the suicide rate and poverty rate for the elderly are highest in the world. But the government is still obsessed in ‘growth’; they are cutting taxes for the rich and big companies still expecting there would be some trickle-down effect, rather than raising expenditure for the ‘left behind’. Do you think it is the right policy direction?

 

=DO NOT COMMENT on INTERNAL POLICIES IN COUNTRIES THAT I HAVE NOT STUDIED. HOWEVER, IT IS IMPORTANT THAT THE BENEFITS OF GROWTH BE WIDELY SHARED, AND THIS MEANS THAT THOSE WHO BENEFIT FIRST MUST PAY TAXES AND HELP THOSE LEFT BEHIND.

 

-What are you working on recently? Is there any plan of writing a book for the general public like The Great Escape?

 

=ON A DISTURBING INCREASE IN MORTALITY AND MORBIDITY AMONG MIDDLE-AGE WHITE AMERICANS, ESPECIALLY THOSE WITH RELATIVELY LITTLE EDUCATION. ALSO on WHAT WE CAN AND CANNOT LEARN ABOUT RANDOMISED CONTROLLED TRIALS.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오승훈

ⓒ 한겨레 ( http://www.hani.co.kr/)

 

 

 

 

 

 

 

 

 
 
 

도서비평

U2 2015. 5. 19. 01:41

 

 

 

 

소년이 온다..  광주에 갇힌 5.18을 꺼내 온 이야기

그날 그들은 죽으러 도청에 갔다

 

“삼십 센티 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중략)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이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166~167쪽)  

우리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잊지 않았을까. 5·18은 1980년 5월 18일부터 10일간 신군부가 광주를 참혹하게 진압했던 사건 정도로 머릿속에 남아있을 뿐 잊혀진 사건, 아니 사실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사건이다. 세월호 참사를 두고 잊지 않겠다고 했지만 5·18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도 없는 한국 사회는 과연 세월호를 잊지 않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1980년 5월 15일을 정점으로 서울역 앞에 모인 학생 10만 명과 시민들은 대규모 가두시위에 나섰다. 시위에 등장한 구호는 크게 세 가지. “비상계엄령 해제”, “신군부 퇴진”, “유신 헌법 철폐” 이에 대한 신군부의 대응은 계엄령 전국 확대, 대학교 휴교령, 국회폐쇄였다. 군부가 다시 들어서는 데 대한 저항은 국민이 주인이고자 했던 몸부림이었기에 5·18은 광주만의 일일 수 없다.

 

하지만 5.18은 어느새 광주라는 지역에 갇혀 지금보다 좀 더 참혹했던 과거의 일로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세월호도 광화문 광장 안에 갇힌 것은 아닌지 싶은 생각도 든다.     

 

15살 소년이 시위대에 가담했다 계엄군의 총에 맞아 죽은 친구를 목격한 뒤 상무관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자원하게 되고 ‘미성년자는 모두 집으로 돌려보낸다’는 시민군의 요구를 무시한 채 끝까지 도청에 남게 된 이야기, 도청 안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막내아들을 한번 만나게 해달라고 하는 어머니와 곧 군인들이 오니 집으로 가 안전하게 있으라며 어머니를 막는 시민군의 모습 등 ‘소년이 온다’는 5·18의 참상을 옮겨 놨다. 

 

작가 한강은 광주 출신이다. 그는 5·18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왜 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피구경기에서 용기가 없는 사람은 계속 공을 피하기만 한다. 그러다 결국 혼자 남는다. 그러면 피하지 않고 공을 맞든 받든 맞서야 하는 상황이 찾아온다. 5·18에 대한 글이 많다는 핑계로 광주에 살며 5·18을 피해왔지만 나에게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고통의 잔혹함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저항하던 시민들의 ‘깨끗함’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5·18 당시 광주도청에 남아있던 사람은 희생자가 아니다. “죽기 위해 그 도시에 다시 갔어”(171쪽) 그들은 희생당하지 않기 위해서 그곳에 남아 끝까지 싸운 것이다.

 

그 숭고했던 자들은 죽는 순간까지 이 사회의 주인이었던 자들이다.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중략)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거야.”(173쪽) 어쩌면 5·18마저 기억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민주주의를 꿈만 꾸던 우리가 신군부의 희생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211쪽)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자신이 취재했던 과정도 소개했고 소설을 대하는 감정상태를 드러냈다. 

 

소설은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에필로그까지 7개의 장은 화자가 각각 다르다. 5·18을 바라보는 여러 사람의 시선이 녹아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몸은 열십자로 겹겹이 포개져 있었어”(46쪽)로 2장이 시작된다. 군인이 죽인 한 소년의 영혼으로 화자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깨닫게 되면서 작품은 신선한 충격을 제공한다. 

 

독자가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질 때 쯤 한강 작가는 ‘기울임체’를 통해 가독성을 떨어뜨렸다. 소설가 김중혁은 이를 ‘과속방지턱’이라고 표현했다. 문장의 강약을 조절해 읽는 이의 감정까지 배려한 장치다. 죽을 줄 알고도 시민군이 도청에 남아있었던 이유는 ‘양심’이었다고 한다. 목숨보다 무거운 양심을 기억하기 위한 작가 한강의 노력을 추천한다.  

 

 

​- 장슬기

ⓒ 미디어오늘 (http://www.mediatoday.co.kr)

 

 

 

 
 
 

도서비평

U2 2015. 5. 3. 12:25

 

 

 

 

​‘지대넓얕’의 표상

 

 

 

역사적으로 ‘인문학’은 모든 대학의 토대이자 핵심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문학 대신 한국 대학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취직’이다. 소위 ‘스카이’(SKY)에서부터 ‘인서울’에서 ‘지잡대’에 이르는 한국 대학의 위계는 엄격하지만, 이 위계는 취직이라는 정언명령 앞에서는 허물어진다.

 

취직하지 못한 채 졸업한 한 ‘스카이’ 명문대생은 졸업식장에 냉소하는 플래카드를 붙이고, 한 ‘인서울’ 대학에서는 (취업) ‘경쟁력 있는’ 학과만을 남겨놓을 수 있게 학과 체계를 없애는 구조조정안을 만들었다 논란을 불렀다. 소위 ‘지잡대’를 배경으로 한 인기 웹툰 <복학왕>에서 학생들의 유일한 꿈은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다.

 

‘스카이’와 ‘지잡대’의 차이는 그 이름값의 위계가 취직과 직결된다는 데 있다. 일류라는 이름값을 지키고 싶은 대학생과 하류라는 이름값에 주눅 든 대학생이 서로 나누는 멸시와 동경의 물결 역시 그 원인은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취직하는 곳의 이름값과 관련된다. 모두가 그 앞에서 불안을 공유한다.

                   

 

실용학문들에 비해 취업률에서 뒤처지는 인문학이 대학에서 당하는 굴욕은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 가능하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은 교수나 학생이나 ‘비판’만 일삼고 ‘학교발전’에는 관심이 없으니 사라져야 한다는 식의 논의가 대학에서 공공연하게 제기되는 것이다.

 

확실히 인문학은 ‘비판’을 자신의 업으로 삼고 있으며, ‘학교발전’에 대해서도 역시 비판적이다. 왜일까?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인문학은, 인간의 복잡다단한 측면을 쉽게 판단할 수 없듯이 인간이 만들어내는 사회 역시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간단히 제시되고, 수용되고, 환호받는 개념들에 언제나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그것의 본질이 뭔지를 따진다.

 

‘비판’한다는 것은 그렇게 천천히 꼼꼼하게 개념의 본질과 맥락과 역사를 살펴보는 일이다. 비판을 뜻하는 영어 ‘criticism’(크리티시즘)의 어원은 ‘양 갈래 길’이다. 이 양 갈래 길 앞에 선 사람은 위기(crisis)를 느끼지만, 여기서 그는 제대로 결정할 의무 역시 있다. ‘비판’은 그런 위기 앞에서의 결정을 의미한다.

 

인문학의 비판은 제대로 된 결정을 위해 먼저 제대로 읽겠다는 태도이고 자세다. 인문학이 텍스트 ‘읽기’를 핵심으로 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인문학적 읽기의 테크닉과 비판적 자세가 없다는 것은, 그저 되는대로,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편하게 살아가겠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사회문제들의 기저에는 바로 이런 반인문학적 태도가 있다.

 

인문학을 혐오하는 정서 저편에는 인문학을 상품화하고 대중화하는 흐름도 있다. 이 둘은 상반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동일하다. 연예인 패널이 없이는 제작되지 않는 텔레비전의 인문학 교양 프로그램에서부터 ‘콘서트’라는 이름을 붙여야만 하는 인문학 토크쇼나 강의에 이르기까지 오늘날의 대중적 인문학은 교양 판타지를 보너스로 제공하는 완벽한 ‘엔터테인먼트’ 상품이다.

 

쾌락과 결합시킨 인문학 패키지는 지루하고 느린 읽기의 시간, 기존 질서를 해부하고 파헤치는 비판의 태도를 결여할 뿐 아니라 그것을 멀리한다는 점에서 인문학 혐오의 또 다른, 하지만 훨씬 더 기만적인 판본이다. <지대넓얕>이라는 서점가의 ‘인문’ 베스트셀러는 깊고 느리고 꼼꼼하게 파헤치는 인문적 읽기를 부정하는 방식, 곧 사유를 요점정리로 대체함으로써 인문학을 팔아치운다는 점에서 오늘날 반인문학적 태도의 궁극적 표상이다.

 

취직, 발전, 경쟁력 구호 속에 담긴 이 ‘얕음’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책과 대학과 사회. 이 긍정의 물결을 비참한 위기로 느끼며 끊임없이 거슬러가는 역설, 그것이 진짜 인문학이다.

 

 

- 문강형준

 

 

ⓒ 한겨레 ( http://www.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