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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2016. 2. 1. 00:29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2016 총선 정강정책연설’ 영상

 

 

“국민이 원하는 건 경제민주화 실천이지 부자에게 너그러운 편파적인 정책이 아니다”
 

속이 시원해진다는 ‘사이다’ 발언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의 더불어민주당 정강정책연설 영상이 누리꾼들 사이에 널리 공유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인재 영입 1호인 표 소장은 20일 한국방송(KBS)에 출연해 20여분 동안 더불어민주당의 ‘2016 총선 정강정책연설’을 했다.

 

표 소장은 먼저 자신이 경찰대에 진학하게 된 이유에 대해 “정의에 대한 열망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찰로 사는 동안은 언제나 공정함과 정의를 지키려고 노력했다”며 “단 한 번도 부당한 권력이나 압력에 굴한 적 없다”고 말했다. 그는 “가난한 형편 때문에 이사가 잦고 불안정한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툭하면 주먹다짐을 하고 말썽을 피우기도 했다”며 “약자와 억울한 사람을 도와주고 나쁜 사람의 잘못을 밝혀내는 정의의 사도가 되고 싶었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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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고교 시절 담임 선생님에게 들었던 “‘행동하기 전에 네가 옳다고 믿는 것이 객관적으로 옳은지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라’는 말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밝혔다.

 

표 소장은 경찰대 교수에서 스스로 물러난 이유가 됐던 2012년 12월11일 발생한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도 언급했다. 그는 “당시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적인 전문가가 나서야한다고 생각했고 경찰의 증거 확보를 통해 진실 규명 촉구했다”며 “본래 의도와는 달리 전문가로서 내놓은 주장은 한쪽 편들기로 매도되며 좌파라는 집중 공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경찰과 학자로 살아왔던 표 소장이 불신하던 정치의 길에 들어선 이유에 대해서는 “내 편과 네 편을 나누는 것이 혐오스러웠다”며 “서민들은 작은 잘못에도 처벌을 받는데, 권력형 범죄자들은 요리조리 법을 피해가는 것을 보며 ‘유전무죄’는 잘못된 정치인 탓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경찰과 법질서가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다고 느꼈다”며 “아무리 큰 위험과 불이익이 예상된다고 해도 꼭 필요할 때는 할 말을 하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한다..할 말은 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토록 좋아했던 경찰대 교수의 지위를 내려놓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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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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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2015. 12. 3. 23:56

 

 

 

 

"장관은 1억2천만원, 양심 있어라" 심상정 '호통'


 임금피크제 관련 유튜브 동영상 화제... 노동시장 구조개편 비판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노동시장 구조 개편을 추진 중인 정부를 호통 친 동영상이 10일 만에 조회 수 150만을 넘기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달 22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온 이 영상은 2일 오후 3시 15분 현재 조회 수 164만544회를 기록했다. 정의당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해당 동영상이 조회 수 100만을 넘어 200만을 향해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1분 50초 분량의 해당 영상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심 대표가 지난 11일 고용노동부(아래 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이기권 노동부 장관을 질타한 내용이다. 정부는 이날 국감에 앞서 합동브리핑을 열고 임금피크제 도입 등의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마이크를 잡은 심 대표는 "장관도 임금피크제에 동참하고 있나? 여기 있는 국회의원들은 (포함)되나 안 되나?"라며 "왜 고액 연봉자는 포함 안 시키나. 왜 장관 (연봉) 1억2천만 원을 다 가져가고 국회의원은 1억4천만 원을 다 받나"라고 따져 물었다. 이 장관이나 국회의원, 기업 고위 임원들이 임금피크제를 실시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그는 "(연봉) 5000만~6000만 원 받는 늙은 노동자들에게 3천만 원짜리 청년 일자리 만들라고 하면서, 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고액 임금 다 받아가나"라며 "(월) 200만 원도 못 받는 940만 명의 노동자들은 졸라 맬 허리띠도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대표는 "유럽에 '살찐 고양이법'이라고 있다, 살찐 고양이들의 살을 들어내는 게 고통 분담인 것"이라며 "정부가 청년고용 의무할당제를 5% 수준으로만 실천해도 23만 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졸라 맬 허리띠도 없는 사람들이 무슨 고통을 분담하나, 노동자의 목을 조르는 노동부장관은 자격 없다"라고 비판했다.

- 이주영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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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2014. 5. 11. 19:17

 

 

다이빙벨 투입 '현장중계' 영상을 본 소감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의 다이빙벨 작업이 담긴 중계 동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뒤늦게 보았지만 언론이 왜 실패라고 규정하고 비난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당시의 중계상황을 본 언론인이라면 이종인 대표가 왜 다이빙벨 기기를 철수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중계 영상이었다.  

 

물론 청해진해운과의 계약업체인 언딘과 박근혜 정부의 친밀도에 대해 그들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어서 나오게 된 '친박근헤 언론인'들의 비난이겠지만 그 외의 언론인들은 다이빙벨 기기를 철수할 수 밖에 없는 정황들을 충분히 이해했어야 했다.

                   

 

 

이종인 대표는 다이빙벨을 바닷속으로 투입해 신속하게 구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해 주면, 해경의 잠수사 지원을 비롯해 여러가지로 협조해 주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한 것 같다. 실제로 다이빙벨의 잠수사는 장시간 동안에 버틸 수 있었다.

 

2차 투입 후 이종인 대표는 교체 요원의 잠수사가 없음을 안타까워 했다. 그래서 다이빙벨 투입이 성공될 시에 해경의 지원을 기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경은 오히려 다이빙벨이 작업되고 있는 그 시각, 방해만 일삼았다. 언딘의 보트들이 그 주변에서 빠른 속도로 운행했는가하면, 해경의 어선이 다이빙벨 작업 근처의 바지선에 위험스럽게 접안하여 바지선에 부딪히고 엔진으로 물보라를 일으켰다. 작업이 원할하게 되지 않기 위한 방해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어났다. 해경은 또한 이종인 대표에게 주변의 제대로 된 도면조차 제때에 제공해 주지 않았다.  

 

이에 따라 이종인 대표로서는 해경의 태도로 보아 더 이상의 협업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돼 철수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동료 잠수사의 안전 문제와 더불어 부당한 방해공작이지만 본의 아니게 불필요한 갈등으로 비춰져서 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철수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약간의 기술적 오류들도 철수의 배경이겠지만 처음부터 시간이 주어지고 협조가 가능한 상태라면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이빙벨 투입이 성공된 것만으로 만족한다는 그의 발언이 사업적 홍보로서 성공했다는 말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불만이야 있지만 괜한 갈등이 되지 않도록 "실패했다. 내 책임이다"라며 시크하게 말한 이종인으로 보게한다.

 

문제는 해경이 일찍부터 언딘과의 유착이 아닌  동원할 수 있는 민간 지원의 모든 투입을 허용해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더라면 그 결과가 어떠했을까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가 언딘 업체의 이해타산적 행동을 제지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적극성을 보였더라면 사후약방문 식으로 투입된 다이빙벨이 되었겠느냐는 것이다. 한가닥의 희망을 걸고 자비로 투입된 다이빙벨의 실패를 두고 언딩의 방해공작에 앞서 비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뒤늦게야 다이빙벨 투입을 허가한 해경의 결정이 다이빙벨 투입을 계속해서 거부하면 여론의 비난을 받을 것 같으니 마지못해 허가해주면서 현장에서는 성과가 없도록 하게하는 꼼수로 보이기도 한다. 언딘 업체가 계속해서 다이빙벨 작업을 방해하다 못해 위협까지 했다는 증언들이 증명한다.

 

참으로 통탄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촌각을 다투어야할 재난구조작업마저 언딘이라는 한 민간업체의 이해타산에 따라 갈등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의 모든 일이 돈벌이 논리로 전락한 박근혜 정부의 민낯들이다, 하라는 구조는 하지 않고 한 줄기의 희망에서 나온 다이빙벨 투입에 대해 시기와 질시로 얼룩진 특정 구조업체의 방해 및 구조지연 의혹의 구설수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이게 정상적인 정부인가

 

 

*오마이뉴스 독자란 - 해의 바다

 

 

 

 

 

밤새 작업하는 영상. ( 1부와 2부로 나뉘어진 3시간이 약간 넘는 풀 동영상 )



 

 

 

 

 

 

 

다이빙벨 투입에서 철수까지 52시간, 무슨 일이 있었나
 

 

 

 

 

세월호 침몰 사고해역에 투입돼 잠수까지 마쳤던 알파잠수기술공사의 다이빙벨이 지난 1일 자진 철수했다.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는 철수 직후 진도 팽목항에서 “실종자 수색이 목적이었는데, 결과가 없었으니 결국 실패”라며 실종자 가족에게 사과했다. 또 이 대표는 “기존 해오던 작업보다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여태 고생한 해경 등의 공을 가로채는 격”이라는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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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6:00am
진도 팽목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팽목항 한 쪽에서는 알파잠수공사 다이빙벨이 출항을 준비했다. 이날 출항에는 알파잠수 직원, 자원봉사 잠수사 그리고 취재진 15여명과 단원고 실종학생 학부모 2명이 동행했다. 이번 출항의 취재진 허용은 실종자 가족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실종자 가족들은 “기자님들이 현장에서 잘 검증해주세요. 우리는 아무도 못 믿어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아무도 믿지 못한다면서도 희망을 놓지 못했다. “저는 애초에 다이빙벨 투입을 반대했어요. 검증이 안 됐기 때문에. 그래도 어쨌든 투입을 결정했기 때문에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실력 있는 사람(잠수사)가 들어가서… 우리 애가 아직 못 나왔거든요.” 아들을 물 속에 둔 이아무개씨가 말했다. 사고 13일째였다. 그는 이날 언딘과 해경의 수색 작업을 보기 위해 언딘 바지선으로 간다고 했다.

4월29일 12:00pm

                   

 

 

비가 그쳤다. 다이빙벨도 ‘가동시험’ 준비를 마쳤다. “다이버, 다이버, 잘 들려요?” 이 대표가 마이크를 잡고 잠수사들에게 무전을 보냈다. 잠수사 한 명이 다이빙벨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를 향해 ‘오케이’ 표시를 해보였다. 잠수 준비가 시작된 것이다. 세 명의 잠수사를 태운 다이빙벨이 관매도 앞바다로 서서히 들어갔다. 가동시험이 이뤄진 관매도 앞바다는 사고해역에서 5km 떨어진 지점이다.

바지선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바지선 한쪽에 위치한 두 개의 모니터 앞으로 취재진이 모여들었다. 이는 다이빙벨 내부와 잠수사가 가진 CCTV와 연결된 것이다. 이 대표는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잠수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조금 더 들어가야 할거야. 그 상태에서 다이버2가 벨에서 나갔다가 들어오는 것으로 합니다”, “다이버, 형상이 될만한 걸 카메라로 비춰봐.”

10분 남짓이었지만 가동시험은 성공적이었다. “잠수함에 탄 기분이었어요.” 다이빙벨을 타고 물 밖으로 나온 김명기(36)씨가 말했다. 특수부대 UDT 동지회 간사인 그는 잠수 경력 15년차다. 그는 “조류 영향을 덜 받는 것 같아요. 이 대표가 40~50분 잠수 가능하다고 했는데 가능할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표도 기자들에게 “이 정도라면 오늘 수색작업 투입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말했다.

4월29일 2:00pm
“해경이 아주 협조를 잘해줬어.” 회의를 마친 이 대표가 바지선으로 돌아왔다. 이 대표는 “해경과 협의를 통해 선미 4층을 맡기로 했고, 언딘 바지선에 붙여 작업하기로 했다. 아직 언딘 바지선이 작업 중이라 인원(잠수사)이 물 밖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배를 근처로 옮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해군 중령이 작업상황의 자세한 부분까지 알려줬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상황은 쉽지 않아보였다. 무엇보다 잠수사가 부족했다. 앞서 25일 이 대표는 8명의 잠수사를 데리고 출항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잠수사는 3명이 전부였다. 장시간 작업에는 부족한 인원이다. “다 떠났는데 지금 와서 협조를 잘 해주면 뭐하냐”는 불만도 나왔다. 출항 소식을 들은 자원봉사 잠수사 두 명이 곧 도착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그래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그때 언딘 바지선에서 시신 8구가 수습됐다. 해경은 이날 오후 일반인 1구, 학생으로 추정되는 8구의 시신이 5층 로비와 4층 선수 좌편에서 발견됐다고 전했다. 아이들이 5층에서 나왔다는 말에 실종자 가족들이 술렁였다. 5층에는 아이들 방이 없었다. “2학년 8반 안아무개가 5층에서 나왔대. 물이 차오르니까 아이들이 위로 기어올라갔나봐…”

4월29일 6:00pm
드디어 알파와 언딘이 만났다. 알파 바지선이 언딘 바지선과의 접안에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알파 바지선이 이날 오전 팽목항을 떠난 지 12시간 만이었다.

4월29일 8:40pm
‘물때’가 돌아왔다. 6시간 마다 다가오는 물때는 바닷물살의 흐름이 바뀌는 시간으로 이때 바다가 가장 잔잔하다. 작업하기에 적절하다는 의미다. 알파와 언딘 바지선 모두 바빠지기 시작했다. 알파 바지선에서는 두 명의 잠수사가 1차 버팀줄 설치를 위해 물 속으로 들어갔다. 버팀줄은 언딘 바지선에서 세월호 4층 선미 쪽 출입구로 연결돼야 한다.

버팀줄은 다이빙벨이 세월호 선체에 쉽게 진입하기 위한 장치다. 후에 다이빙벨은 이 버팀줄을 타고 선체로 내려가게 된다. 1차 버팀줄을 설치한 잠수사들은 취재진에게 “25m아래로 내려가 줄을 설치했다”며 “새벽 2시에 다시 한 번 들어가 두꺼운 줄로 단단하게 묶을 것”이라고 말했다. 2차 버팀줄이 성공하면 사실상 수색의 준비 작업이 마무리되는 셈이다.

버팀줄 작업이 끝났을 때 쯤 문자가 울렸다. 실종자 가족이었다. “언딘 바지선에 있는 학부모인데요. 알파는 앙카(닻)없이 작업하네요. 보고 있는데 설치를 안 하는 것 같아요. 앙카를 설치하지 않으면 (배가) 흔들려서 작업하기 어렵다고 하는데…입수 19분 만에 버팀줄 가고정 했다는 건 믿기 힘들어요. 우리가 직접 보지 않았기 때문에요.” 희망이 불신으로 바뀌고 있었다.

4월30일 2:00am
사고해역의 아침은 일렀다. 하늘에는 노란 조명탄이 터졌고 오징어잡이 조명도 켜졌다. 대낮같이 환했다. 물때가 시작됐다는 신호였다. 잠수사들은 바빠졌다. 언딘 바지선에는 총 6명의 잠수사가 물에 들어갔다. 해경 3명, 해군 2명, 언딘 1명. 이들은 4층 선수 좌현 객실에서 4명, 5층 로비에서 1명 등 총 5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알파 바지선의 상황은 녹록치 않았다. 2시 30분께 두 명의 잠수사가 2차 버팀줄을 설치하기 위해 입수했지만 실패했다. 잠수사들은 “4층 선미에 묶을 자리가 없어, 3층 선미에 줄을 연결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이빙벨이 수색해야 할 곳은 4층 선미다. 과제 하나가 더 남은 것이다. 3층 선미와 4층 선미를 추가로 연결하기. 그만큼 다이빙벨 투입 시간은 늦춰지게 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애가 탔다.

“모두 반성해.” 이 대표가 잠수사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잠수사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구조적인 문제였다. 사고해역 투입은커녕 도면도 보지 못한 잠수사들이 첫날 작업에 성공한다는 건 어려워 보였다. 이날 새벽 3시가 넘어서야 해경은 알파에 세월호 도면을 제공했다. “이제서야 이런 걸 주네.” 알파 바지선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4월30일 8:50am
하늘이 돕지 않았다. 6시간 만에 돌아오는 물때였지만 조류가 심했다. 알파와 언딘 모두 수색작업을 벌이지 못했다. 다음 물때는 오후 2시 20분이다.

4월30일 2:20pm
“분명 선미라고 했는데, 아무리 가도 끝단이 안 보여요.” 버팀줄 작업을 마치고 물에서 나온 잠수사가 말했다. 해경의 설명이 맞았다면 끝단이 보였어야 했다. 회의가 시작됐다. 해경 장비과장도 참가했다. 그는 해경과 알파 바지선 사이에서 여러 사안을 조율하고 있었다. 도면을 보면 장비과장이 말했다. “여기는 선미 중앙.”

이 대표의 언성이 높아졌다. “이걸(도면) 주면서 끝단이라고 했다. 대체 몇 탕을 소모한거냐. 그러니 다이버가 들어가서 문을 찾으려고 가도 가도 끝이 없는거야.” 엉뚱한 곳에 작업을 한 셈이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해경 장비과장은 “왜 일부러 그러겠냐. 소통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나 애초 도면으로 설명을 한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해경 경비안전국장이 이 대표를 언딘 바지선으로 안내를 했고, 언딘 바지선 관계자가 설명을 했던 것이다. 결국 해군 SSU 중령이 알파 바지선으로 넘어와 도면을 보며 다시 설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제와 선미 끝단에서 작업을 ‘다시’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 다이빙벨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4월30일 3:40pm
노란 다이빙벨이 물 속에 잠겼다. 전날 가동시험 이후 처음 만나는 물이었다. 이 대표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몇미터?” 잠수사는 다이빙벨 안에 설치된 카메라를 향해 손가락을 펴보였다. 19. 모니터에 비춰지는 화면은 선명했고 통신 상태도 좋았다. “다이버가 마스크 쓰고 벨 밖에 나가서 엥카줄이랑 닿아있는지 봐주세요.” 이 대표가 지시를 내렸다.

마스크를 쓰는 잠수사의 모습이 모니터로 보였다. 그때 불안한 목소리가 들렸다. “공기가 잘 안 들어와요.” 바지선 위가 분주해졌다. “지금은 어때?” “안 들어와요.” 바지선에서 다이버로 연결된 공기주입호스가 터진 것. 이 대표는 “바지선이 파도에 흔들리면서 여러 선들이 꼬이다가 끊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이빙벨은 그대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출항 33시간째였다.

5월 1일 3:20am
출항 45시간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성공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공기주입호스를 고친 다이빙벨이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갔다. “선체를 확인했어요.” 잠수사가 말했다. 수심 23미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였다. 이 대표가 지시를 내렸다. "선체 진입하라." 다이버 두 명이 벨에서 이탈해 선체를 향해 다가갔다. 다이버와 연결된 모니터에는 세월호 난간 기둥이 보였다.

 

 

“저건 세월호 난간이 맞네요.” 한 실종자 가족이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다이빙벨은 목욕탕 같은 조용한 곳에서 해야 효과가 있는 거예요. 여기서는 안 될 거예요. 저는 기대 안 해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했다. 언딘 바지선에 있던 다른 실종자 가족들도 모두 알파 바지선으로 건너와 초조한 마음으로 작업을 지켜봤다. 벨에 들어가지 않은 한 잠수사는 두 손을 모았다.

5월1일 5:05am
멀리서 해경 P-62정이 다가왔다. 이춘재 해경 경비안전국장을 태우러 온 것이다. 그런데 접안하는 과정에서 해경정 뒷부분이 알파 바지선에 부딪혔다. 해경 경비정 뒤로 하얀 물살이 일었다. 자칫하면 다이빙벨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보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다이버들은 작업을 마치고 감압중이었다.

알파잠수 선원들이 해경에 항의했고, 이 대표도 언성을 높였다. “아니 왜 그러지, 왜 배를 갖다 박지. 옆에 칠라고 그러는 거 아냐.” 불신이 쌓여갔다. 해경 관계자는 “조류를 잘못 알고 실수를 했다”고 해명했다. 이춘재 해경경비안전국장도 4일 “그날 밤 파도가 높아 경비정이 계류차 접근하다 순간적으로 높은 파도에 밀린 것뿐인데, 이를 고의로 밀어붙이면 뭐라 하겠느냐”고 말했다.

5월1일 5:10am
잠수사들이 돌아왔다. 그러나 객실 진입에는 실패했다. 벨에 투입됐던 허철(50) 잠수사는 “가이드라인과 밧줄 등이 엉켜있어 객실 진입은 어려웠다. 4시 8분쯤에 후카(수상에서 수중으로 공기를 공급하는 잠수 장비. 속칭 머구리) 호스가 주변의 줄과 엉켜 4시 15분께 다이빙벨로 복귀했다”고 말했다. 이후 이들은 2차로 벨을 이탈해 몇 개의 줄을 끊고 이날 작업을 마무리했다.

45분, 75분, 105분. 이 날 다이빙벨의 수색시간, 해저 체류 시간, 총 입수 시간이다. 총 입수 시간에는 다이빙벨의 이동시간, 감압시간이 포함됐다. 이 대표와 잠수사들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실종자 가족들은 이해가 안 갔다. “성공적이라면서 왜 객실에 진입하지 않은 겁니까. 성공적이라면 시신을 한 구라도 데리고 왔어야죠.” 이 대표는 “상황을 봐서 벨을 재투입할 것”이라 답했다.

문제는 잠수사였다. 투입할 잠수사가 없었다. 허 잠수사는 “다이빙벨이 2시간 작업을 하고 나왔으면 다른 다이버들이 곧장 투입돼야 작업에 속도가 붙는다. 소속을 떠나서 총력을 다해야 한다. 좋은 장비(다이빙벨)는 같이 쓰고 인력도 공유해야 한다. 해경 측의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자원봉사를 끝으로 진도를 떠났다.

5월1일 8:00am
이제 취재진은 알파 바지선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다이빙벨이 투입에 ‘성공’했으니 곧 재투입될 것이라 생각했다. 철수를 결정했다. 당시 바지선에는 고발뉴스, 국민TV, 미디어오늘, 민중의소리, 팩트TV, 1인 미디어 김종환씨가 있었다. 출발 직전 기자가 이 대표에게 “오늘 다시 투입할거냐”고 묻자 이 대표는 “상황을 봐서 투입할 것이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다”고 답했다.

전화가 왔다. 실종자 가족이었다. “이종인 대표가 자진해서 철수한다고 합니다. 기자님 혹시 현장에서 들은 거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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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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