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U2 2016. 6. 11. 17:55

 

 

 

 

복면가왕 음악대장 하현우와 '응답하라 88' 신해철

 

 

복면가왕 사상 역대 최장으로 9연승을 달리던 우리동네 음악대장 '국카스텐 하현우', 결국 10연승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았다. 더 좋은 선곡으로 10연승을 넘볼 수 있음에도 가볍게 부르는 곡으로 내려놓았다,

 

내려놓은 것이 아니라고 그는 말하지만 경쟁 출연자를 배려한 멘트로 들리었을 뿐이었다.그 정도로 그의 호소력 높은 가창력은 청중을 매료시켜 왔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 곡으로 감동시킨 가수 거미 이상의 가창력은 없을거라 여겼지만 음악대장은 감동을 넘어 노래의 진수까지 선사했다.

 

음악대장을 능가할 아티스트는 과연 누가 될까 상상했을때 하현우와 같은 락 버전의 아티스트가 되지 않을까하여 실제 김경호와 최종 대결에서 경연을 펼쳤지만 김경호도 역부족이었다. 김경호다운 실력발휘 못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동네 음악대장 하현우는 자신의 목소리에 맞게 편곡하며 청중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선곡에서 탁월한 능력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하현우 특유의 일관된 개인 취향이 대중의 갈증과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다름아닌 그것은 신해철이다.

 

그는 듀엣 아닌 솔로 첫 곡으로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으로 시작해 라젠카라는 웅장한 락곡으로 가왕에 올랐다. 연이어 일상으로의 초대 등 신해철의 여러곡으로 연승을 달리는 등, 추모 시기에서 추모열기일 뿐 하마터면 우리 사회가 잊혀질 뻔한 신해철의 죽음을 기리는 뜻이 엿보였다.

 

덧붙여 신해철과 함께한 서태지의 하여가, 서태지의 친구 양현석 연예기획사 소속이자 광주 5.18을 추모했던 빅뱅의 노래도 편곡해 열창한 모습들이 뭔가의 코드를 읽게 했다. 러시아 가요로 알려진 '백만송이 장미' 선곡도 진보 코드의 그것이 아니었겠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는 머나먼 80년대 대학가요 락그룹 티삼스의 '매일 매일 기다려'를 통해 클라이막스를 이루었고 음악대장 선풍을 이끌었다. 티삼스의 락곡를 알리려는 책무도 보였다. 그 후로 그는  스스로 내려놓는 모습이 역력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도 소개된 티삼스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우리동네 음악대장 선풍은 '응답하라 88'의 인기와 겹치기도 했다. 음악대장도 응팔에서 더욱 알려진 전인권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응팔에서는 매회마다 '신해철의 그대에게' 연주로 시작한다. 실제로 88년 말 음악계에 충격을 준 노래였다

 

우리는 가끔 쌍팔년도라는 말을 가끔 하게된다. 쌍팔년도가 88년을 뜻하는게 아닌데도 88년으로 생각한다. 지금의 패션들과 노래들을 비교해봐도 후지다고 이미지화된 것이 쌍팔년도다. 심지어 70년대 패션보다 유치한 브레이크 댄스복과 펑크 스타일 패션, 그리고 장발 머리에 어울리지 않는 가분수적 옷차림과 어깨뽕으로 인식하게 된다. 흐릿흐릿한 80년대 칼러 영상들과 함께.. 이것은 또한 당시 정치권의 후진성과도 연결되어 있다.

 

실제로 지금 보면 당시의 80년대는 절제없고 어설픈 화려함, 미국 문화 따라하기로 동양인에 맞지 않는 어설프고 촌스러운 패션들, 그러면서 세련됨이 없는 머리 스타일, 현대화 물결에 적응지 못한 과도기의 사회의식 등, 90년대 2000년대에 비해 어설프고 촌스럽게 보이기는 하다.

 

 

그러나 오늘날 각 분야에서의 세련됨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거기에도 명맥이 있다. 80년대 하면 김완선, 소방차 등의 어설픈 패션이나 조악한 음악조류들이 대표적으로 기억되지만 사실상 뜯어보면 80년대 청소년들은 군부독재 정권 속에서도 영상세대로 싹트였고 시대에 앞선 음악 흐름들을 즐겼다.

 

이문세 유재하 김현식 다섯손가락 조용필의 몇몇 곡 등의 수준 높은 음악들이 90년대 이소라 신승훈 조관우 이은미 김동률 서영은 등과 2000년대 GOD, SG워너비 더원 바이브 성시경 등 세련되고 성숙된 발라드나 우리 스타일로 융화된 R&B로 발전해 나갔다.

 

락계에서는 시나위, 들국화, 부활, 김현식 엄인호의 신촌블루스라는 뛰어난 그룹의 명맥이 90년대 서태지 신해철 임재범 김종서 공일오비 윤도현 밴드 자우림 언니네이발관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복면가왕이나 나가수를 통해 스타가 된 국카스텐 하현우 등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드니 김완선 소방차 박남정 이상은의 노래도 추억이 되어 다시 불리어졌듯이, 당시의 댄스 음악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한 명맥들이 김건모 듀스 터보 이정현 싸이 핑클을 거쳐 2ne1 빅뱅 시스타 EXO 등 우리 스타일로 융화된 아이돌 곡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88년도는 쌍팔년도로만 비하할 수 없는 것이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의 민주화 흐름이었으며, 오히려 지금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깊게하는 음악들이 70년대보다 풍성하게 하였다. 이른바 포크송으로서 동물원의 김광석, 시인과 촌장, 신형원, 정태춘 노찾사 해바라기 노래 등이며 90년대 여행스케치 권진원에 이어 2000년대 버스커버스커, 로이킴 등의 노래로 모던하게 감미로워진다 

 

 

복잡다단한 지금 사회보다 그 때가 그리운 것은 공동체적 유대감이 지금보다 높았던 사회풍조들이 집단적 민주화 운동을 이끌게 한 힘이 아니었을까? 응팔의 학생운동권 보라의 시위장면도 그래서 가능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면 양김분열에 따른 정권교체 실패로 완성도의 민주사회가 되지 못했을 뿐이지, 개인주의에 빠진 지금보다 그때가 더욱 더 이웃을 사랑하고 내 나라의 정의를 위해 생각하는 유대감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의미의 드라마 응팔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도 해본다.

 

공교롭게도 응팔의 덕선과 그 친구들은 나의 세대를 그리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대학입시 시험에 찌든 그때라서, 고교생으로서 민주화 운동에 눈 뜨다 실망하게된 그때라서 기억하고 싶지 않는 88년이지만 그래서 필자 스스로도 쌍팔년도라 칭했지만 드라마 응팔을 통해 그때를 다시 조명하게 해주었다

 

걸스데이 혜리의 연기도 단연 돋보였다. 흡사 80년대 여고생 특유의 얼굴상을 보는 듯했다. 패션 또한 그러했다. 청잠바에 약간의 짧은 바지, MY MY 카세트 등 당시의 유행 상품들과 옛 모양의 장농과 TV, 생활 도구들이 그때를 생각하게 했다.

 

이렇듯 당시의 청소년 문화가 자유의 흐름으로 성장해갔지만 전두환 독재라는 어두운 역사 때문에 밝게 비추는 시대가 되지 못하고 기억하기 싫은 쌍팔년도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그 때의 밝은 얼굴들이 전두환 노태우 군부독재에 찌들어야하는 보라의 얼굴을 보게되면 군부독재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사회 이미지에도 큰 해악이 되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박정희 정권 시대의 청소년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도 모르고 아직도 여전히 박정희 노래를 부르며 박정희 추모 예산을 늘이는 박근혜 정부, 그러면서 그들은 서민들의 복지예산에는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못해 지방정부의 재정도 빼앗으려 한다.

 

 

드라마 응팔은 '응답하라 94'처럼 용모의 화려함과 먼 연기자들을 주인공으로 놓고 키우는 파격됨을 여전히 보여주었다. 청소년 뿐만 아니라 당시 어른들의 애환도 조명해 주었다. 80년대인만큼 당시 이웃들의 유대감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이한 것은 요즈음 알파고 현상을 예상한 방송사인지 모르겠으나 미생에 이어 응팔에서도 바둑을 두는 장면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러한 선풍이 바둑계의 정치권 영입도 낳기도 했다

 

드라마 응팔에게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88년이면 5공청문회가 한창이었는데 당시 청문회 스타들이 현직으로 활동해서 그래서인지 비춰주지 않았음을 이해하더라도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문회 질의 모습은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지 않는가라는 점이다. 88년 청문회 대상자와 연계된 정치인들이 정치권 양당의 한 축으로 남아 있어서일까?  

 

드라마 작가는 확연하게 우리 세대가 맞으며 코드도 또한 비슷하다. 문화적으로도 88년 말 신해철의 노래로 시작하여 90년대 초 이승환의 노래도 빠지지 않는 등 정서적으로도 코드가 일체한다. 88년, 94년들이 추억이 되어버린 필자에겐 고맙지 않을 수 없다. 비록 CJ 그룹 방송의 드라마이긴 하지만 종편보다 못하겠는가

                   

 

복면가왕 우리동네 음악대장도 음악의 폭 뿐만 아니라 세대를 뛰어넘었다. 빅뱅에서부터 신해철, 티삼스, 전인권, 공일오비, 백만송이 장미, 봄비까지 다양함의 힘으로 압도했다. 청중을 휘어잡는 노하우가 무엇인지, 정상에 있을 때의 처신과 멘트가 어떠해야하는지, 조그만 부분에서도 배울 점이 많았다.

 

내려놓을 때를 아는 음악대장을 보며 내려놓을 때를 모르고 정치권의 혼란만 야기한 박근혜 이한구 박지원 김한길 정동영 김종인 등의 노욕들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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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물론 복면가왕의 옥의 티가 있다면 개그맨 이윤석이다. 더민주당 선거운동 노래에 참여한 그 이후로 복면가왕에 보이지 않는 작곡가 김형석에 비해 야당에 대해 친노당 호남당이라며 부정적인 뜻으로  비하한 정치발언 이윤석임에도 자리를 유지시킨 MBC의 고약함이다. 

 

MBC는 그 사건 이후로 이윤석의 멘트를 더 늘리는 오기도 부렸다. 실상 이윤석은 나이에 맞지 않는 오바와 가식적 멘트들이 보기에 좋지 않았다. 음악대장 마지막 무대에서는 좋게봐줄 멘트였지만 전반적으로 못봐줄 장면이었다는 감정은 어쩔 수 없다. 개그맨 이윤석 씨도 응팔 세대라 할 수 있는데, 이젠 좀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품위있고 곱게 늙어야하지 않을까?

 

 

*아고라 - 유스피플

 

 

 

 

 

 
 
 

미디어

U2 2016. 1. 3. 12:17

 

 

 

 

미교수, NY타임스 '위안부 합의' 오류지적
 
 
 

 

 

 

 

 

 
미국의 여성교수가 한일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오류를 지적했다.

 

델라웨어 대학 여성학과 마가렛 D 스테츠 교수는 1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뉴욕타임스가 구랍 29일 보도한 기사에서 일본 군대에 '한국 여성들'이 끌려갔다고 했지만 피해자는 대부분 미성년자였으며, 이같은 성범죄가 일본 교과서를 통해 교육되어야 정의가 바로 세워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테츠 교수는 '2차대전 위안부의 유산'(2001)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스테츠교수 "위안부피해자 거의 소녀들…일본교과서 아동성범죄 기술해야"

 

"일본이 끌고간 것은 성인들이 아니라 13-14세의 소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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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성학 교수가 한일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오류를 지적해 관심을 끈다.

 

델라웨어 대학 마가렛 D 스테츠 교수는 1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뉴욕타임스가 구랍 29일 보도한 기사에서 일본 군대에 '한국 여성들'이 끌려갔다고 했지만 피해자는 대부분 미성년자였으며, 이같은 성범죄가 일본 교과서를 통해 교육되어야 정의가 바로 세워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테츠 교수는 "뉴욕타임스는 이날 기사에서 2차대전때 일본 군대 매음굴에 속여서 혹은 강제로 끌고 간 '한국여성들'에 관한 분쟁을 타결지었다고 했다"며서 "생존자들이 증언했듯이 잔혹한 성노예 시스템의 대상은 어른들이 아니라 13세, 14세의 소녀들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짐짝처럼 배에 실려 아시아 각지의 전쟁터로 끌려가서 매일같이 강간을 당한 소녀들은 초경조차 치르지 않은 어린 나이였다"고 덧붙였다.

 

스테츠 교수는 "일본의 행위는 전쟁범죄일뿐만 아니라 어린이에 대한 인신매매와 성범죄였다. 이러한 사실들이 일본의 교과서에 기술되고 서구의 언론들이 보도하지 않는 한 희생자를 위한 진정한 정의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마가렛 스테츠 교수는 하버드대 박사출신으로 버지니아대학과 조지타운대학을 거쳐 2002년부터 델라에워 대학 영어학과에서 주로 여성학을 가르치고 있다. '2차대전 위안부의 유산'(2001) 공동저자이기도 하다.

 
 
 - 노창현
 
 

ⓒ 뉴시스 ( http://ww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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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타임지,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영문판 영상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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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가 영어 자막을 달아 배포한 '절규' 영상…전세계에 급속도로 '확산'

​영어 자막을 단 위안부 동영상이 SNS에서 급속도로 퍼지자, 해외 언론도 주목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타임지는 "한국 '위안부' 여성이 외교부에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을 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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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는 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타결한 점을 들며, 이 타협이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여성들로부터 비난을 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지난달 28일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이 정대협 쉼터를 방문해 위안부 할머니를 만난 사실도 언급하면서, 이 현장을 촬영해 영어 자막을 달아 배포한 CBS노컷뉴스의 동영상을 기사 안에 함께 게시했다.

영상 속에서 이용수(88) 할머니가 울분을 토로한 내용을 "which country do you belong to?", "You could have at least let us know what kind of deal you were striking with Japan" 등 영상에 달린 영어 자막을 이용해 구체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 영문판 동영상은 미국 예일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임현수 씨의 제안과 도움으로 제작된 것이다. 영상은 사흘 만에 250만 도달수를 올렸고 외국인들의 댓글이 줄을 잇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러자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어졌다. 해외에서는 잘못 알려져있는 정확한 국내 현실과 피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알리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CBS노컷뉴스는 시민들의 도움으로 일본어판 영상도 제작했고, 이밖에 다른 동영상들에 대해서도 계속 번역 재능기부가 잇따르고 있다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를 본 외국인들의 반응

韓 시민들 "해외언론이 안 다룬다고? 그럼 직접 번역해서 퍼뜨리자"

 

 

 

 

(사진=노컷뉴스 페이스북 동영상 캡처)
 
 
24년 만에 이뤄진 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의 후폭풍이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국내 분위기를 해외에도 알리자고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는 위안부 협상 결과가 무엇보다도 '뜨거운 감자'이지만, 일본이나 미국에서 보도되는 내용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은 이번 협상이 아베 신조 총리에게 호재가 될 외교적 협상이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영미권 언론은 한일 양국이 해묵은 과제를 해결했다며, 역사적 합의라고 추켜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결국 지난달 29일, 미국에서 유학 중인 한 한인 학생이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동영상에 영어 자막을 달아 SNS에 올리자는 것.

지난달 29일 CBS노컷뉴스는 외교부 임성남 제1차관이 정대협 쉼터를 방문한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전한 바 있다. 이 영상에는 이용수(88) 할머니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왜 우리를 두 번 죽이냐"고 절규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단 앉으시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하지도 못한 채 서 있는 임 차관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영상이 이틀 만에 페이스북에서 도달수 150만 건을 넘어서며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예일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임현수 씨는 "해외에도 이 영상을 알릴 수 있도록 영어 자막을 달아 배포하자"고 제안했다.

임 씨는 "북미 미디어에서는 이 협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도하고 있고, 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대변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어 자막을 넣어 많이 알리고 싶다"면서 직접 영어 자막을 만들어 보냈다.

영어 자막을 입힌 영상을 올리자, 실제로 효과가 나타났다. 영상을 본 외국인들이 앞다퉈 댓글을 달기 시작한 것.

댓글만 달 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 주변 지인들을 게시물에 태그하면서 "바로 이 내용이다"라고 소개하기까지 한다.

(사진=노컷뉴스 페이스북 게시물 댓글 갈무리)

 
 
댓글을 보면 "마음이 아파서 울고 싶어 진다(Very sad. Makes me want to cry)", "할머니의 마음이 무너지는 모습에 영상을 보기 힘들었다(That's a really hard watch, that poor woman, her heart's breaking again)" 등의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수업 중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한국인들에 대해 얘기했던 것 기억하지?(remember that class we talked about slave South Korean prostitutes by Japan in one of the classes?·Kat Moreno)"라며 친구들을 태그하기도 한다.

동영상 속 정부 관계자가 일본 측이 아닌 한국 측 관계자라는 설명에는 "잠깐, 뭐? 말도 안돼...(Wait...what?! Omg... No...serious?!·Tetiaroa Crlt)"라는 반응도 보였다. 이 할머니가 울분을 터뜨리며 임 차관을 몰아붙이는 모습에 차마 우리 정부 인사일 것으로 짐작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논란의 핵심인 '최종·불가역적 해결'에 대해서도 "돈을 주고 침묵을 샀나?(They paid a silence?)", "돈을 냈으니 이제 비밀을 지켜야 하나(so we need to keep secrets with money)" 등의 댓글이 잇따랐다.

"정부가 자국민 대신 사업을 택했네(the government chose 'business' over there own people·Layomi Alao)", "이 여성들은 강도 당한 것과 다름 없다(These women were robbed·Kimberly Renae)" 등 신랄한 비판도 이어졌다.

이에 질세라 한인들도 영어로 이번 협상 결과를 설명하며 "진실을 알아달라"는 댓글을 달고 있다.

영어 자막을 제안한 임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절대 안주하지 말고 피해자들과 끝까지 함께 싸워야 한다"면서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분들께 '이만하면 됐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고 일갈했다.

영어 자막을 단 이 할머니의 영상은 페이스북에서 1일 오전 9시 현재 240만 명이 넘는 도달수를 올렸다. 또 일본어 자막을 달아 별도로 제작한 영상 역시 150만 명에게 전달됐다.

​- 김지수

ⓒ CBS 노컷뉴스 (www.nocu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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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위안부 관련 단체들 한·일 합의 비판적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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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미국 내 위안부 관련 단체들도 비판적 성명을 내놓았다.

시민참여센터(소장 김동찬)는 28일 성명에서 “한·일간 이루어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상에 대해 심각한 염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뉴욕에 소재하며 풀뿌리 한인 유권자 운동을 하는 이 단체는 “양국 간 협상은 그간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이 요구해온 사과나 배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 그 누구도 이번 협상을 마지막 해결책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이 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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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만일 일본 정부의 사과가 생존자 할머니들이 요구하는 진정한 사과라면 일본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본군 위안부 이슈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일본 내각이 승인하는 총리의 사과여야 할 것이고, 그 사과는 분명하고 명백한 것이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소재한 가주한미포럼은 김현정 사무처장 명의의 성명에서 “한·일간 좁은 의미의 외교 문제로 이 이슈를 축소·폄하하고자 하는 일본의 의도에 그대로 말려들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이 단체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보편적인 여성 인권 문제이고 한국 외에도 10개 국에 피해자들이 있으나 이번 합의는 이들의 인권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다면서 이 같이 밝혔다.

 

워싱턴정신대대책위원회는 29일 성명에서 이 합의를 “소중한 성취이고 양자관계를 위한 큰 걸음”이라고 긍정 평가하면서도 일본 정부의 합의 이행을 면밀히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의 이정실 회장은 이날 한미과학재단에서 낭독한 성명에서 “이 합의가 진정성이 있는 것이라면 세계는 일본 정부가 전시 및 전후 대우를 담은 기록 문서고를 개방하고 미국 출판사에 위안부 기술 수정을 요구하는 등의 역사 왜곡을 중단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합의에 진정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2년에 설립된 이 단체의 초기 부회장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심슨 어메리칸대 교수는 “1950년대에 일본 측 인사들이 미국의 국립문서고에 와서 전시하 일본군의 행위, 전후 처리와 관련된 많은 자료들을 가져갔다”며 “일본 정부는 이러한 자료들을 연구자들에게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손제민

ⓒ 경향신문 ( http://www.kha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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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 “100억 시민모금”…위안부 합의 무효화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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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재단 설립”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시민들 스스로 100억원을 모아 일본 위안부 피해자를 돕는 재단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10억엔(100억여원)을 받아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겠다는 한일 양국 정부의 합의를 사실상 거부하고 독자적인 민간 차원의 대응에 나서겠다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30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20만명당 단 5만원이면 100억이 된다”며 “시민들 스스로가 재단을 만들어 회담을 무효화하자”고 글을 띄웠다.
 
윤 대표는 31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1만원씩 100만명이든 5만원씩 20만명이든 아직 구체적으로 정한 건 없지만, 회담 무효화를 위해선 범시민 운동이 필요하니 정대협 이사들의 의견을 모아 정식 제안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대협은 함께 참여하길 원하는 다른 시민사회 단체와 협의해 다음달 6일 이 내용을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윤 대표가 구상하는 이 민간 재단은 가칭 ‘한일 위안부 희생 여성 손잡기 운동’으로, 시민들이 일본에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지원하는 취지의 성금 100억원을 모아 한-일 정부가 추진하는 재단을 대체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30일 수요시위에서 이미 570만원이 모였다. 나부터 10명의 (일본) 할머니와 손잡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렇게 모인 100억원의 자금으로 윤 대표는 피해자 지원금 전달, 진상규명, 역사교과서 제작 및 무상배포, 각 지역 평화비 설립 등을 제안했다. 이나영 교수는 “1965년 한일협정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가난해서 일본 정부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은 위안부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해야한다는 뜻을 가진 사람들의 힘으로도 만들 수 있는 돈”이라며 “정의로운 해결을 지향하는 길로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생 30명 “위안부 협상 무효” 일본대사관 기습시위
 
-일 외교장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관련 ‘12·28 합의’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합의안에 반발하는 대학생들이 주한일본대사관에 들어가 기습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31일 오전 11시53분께 일본대사관 직원들이 임시로 근무하고 있는 서울 종로구 중학동 트윈트리타워 건물에 무단 침입해 기습 시위를 벌인 혐의(건조물 침입,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로 대학생 30명을 검거해 연행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낮 건물 2층에서 ‘대한민국 국민은 한일협상 거부한다’ ‘기억하는 것이 책임이다. 위안부 문제 역사에 기록하라!’등의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손팻말을 들고 “대한민국 국민은 한일협상 거부한다” “위안부 한일협상은 무효다” “소녀상 철거는 없다” “한일협상 폐기하라” 등을 외치며 기습 시위를 벌인 혐의를 받고 있다.
 
대학생들은 시위에 앞서 건물 앞에 ‘2015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제목으로 대자보를 붙여 위안부 문제 협상 무효를 선언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을 서울 양천·구로·종암·노원경찰서로 나눠 연행해 정확한 신원 파악 및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김미향 박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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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에 위안부 역사교육 빠져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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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합의 후폭풍

김동석 재미 한인유권자단체 이사..“역사 진실 가르치겠다는
일본 약속 없어 매우 실망”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재미 한인유권자단체 ‘시민참여센터’의 김동석 상임이사는 28일 한-일간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위안부 문제의 가장 중요한 핵심 가치는 그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후대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것인데, 이 부분이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김 상임이사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역사의 진실을 후대들에게 교육시키겠다는 입장을 내보여야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런 측면에서 김 상임이사는 “소녀상 자체가 후대에게 교육 가치가 높은데, 그것을 옮기라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 온 마이크 혼다 미국 연방 하원의원도 29일 성명을 통해 “이번 합의에 더 이상 역사적 진실을 눈가림하지 않고 미래 세대에 제대로 교육하겠다는 일본의 약속이 없어 매우 실망했다”며 김 상임이사와 같은 입장을 보였다.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에도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국제사회의 권고에 따라 현재와 미래 세대들에게 이 범죄를 교육할 것’이란 조항이 들어가 있다.
 
김 상임이사는 아울러 “홀로코스트는 독일이 법적 책임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피해자가 나오면 독일이 배상·보상하는 것”이라며, “성을 목적으로 납치한 것을 진정으로 사과한다는 것은 법적인 책임을 지는 것인데 이번 합의안에선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합의안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고 명시한 것에 대해서도 “위안부 문제는 해결이라는 게 없다. 인간 역사가 계속되는 한 계속 알리면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도록 해나가야 하는 것”이라며 “어디서 면죄부를 받아 그런 일이 전혀 없던 것처럼 해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역사 진실의 문제이고, 보편적인 여성 인권의 문제인데 한-일간 진실 공방의 문제로 변질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 한겨레 ( 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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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국민 속이려...'성노예 합의문 작성도 안해' 日언론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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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불가역적인 해결’ 문구가 들어가지 않으면 교섭 그만두고 돌아오라' 지시

박근혜 정부가 한일정부간 일제 성노예 타결과 관련, 국민들의 반발을 우려해 일본측에 합의문 작성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는 일본언론들의 폭로가 나와 박정희-박근혜로 대를 이은 친일 정권의 '국민기만 밀실협상'에 대한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은 29일 "기시다 외상과 윤병세 외교장관은 28일 회담후 위안부 문제 합의를 나란히 설명했으나, 정식 회담 합의 문서도 없었고 기자들로부터 질문도 받지 않는 이례적 형식이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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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는 이어 "한일 외교관계자들에 따르면, 합의문서 작성은 한국 국내 여론의 동향을 우려한 한국측의 요청으로 최종적으로 보류됐다"며 "이에 따라 외상 두 사람의 발언으로 회담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가 돼 두 외상은 수시로 메모를 들여다보면서 한마디 한구절을 신중하게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합의문이 발표되지 않으면서, 일본정부가 일본언론에 흘리는 각종 내용이 합의안으로 굳어져가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또 요미우리는 아베가 이달 24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을 총리관저로 불러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의를 위한 방한을 지시하면서 "합의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문언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교섭을 그만두고 돌아오라 했다"고 전했다.

 

아베는 이와 더불어 주한 일본대사관 근처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도 고집했으며 한국이 응할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에 "그렇게 말해도 '민간이 했다'고 말하고 계속 만드는 것을 허용하면 안 된다"고 당국자에게 의견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일본 지지통신은 29일 일본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어 "위안부 자료 유네스코 유산 등재 신청을 보류하기로 합의했다"며 "한국측 요청에 따라 공동기자회견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일본 교도통신은 29일 한일 외교장관의 회담에서 일본측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성노예란 표현을 사용하지 말라"고 요구하자 한국 측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유일한 공식적인 호칭"이라고 설명했다고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관방 부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다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한국측이 이같은 답변에 대해 "한국 정부가 향후 ‘성노예’ 표현을 자숙할 방침을 시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 서울의 소리 ( http://www.am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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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살리기 vs. 위안부 역사 지우기
 
 
 
2016년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 예산

총 403억 원.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예산을 취합한 결과, 내년 편성예산(403억 원)을 포함해 최근 7년간 책정된 예산이 1,356억 5,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6년 새마을운동 지원 예산

총 143억 원.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행정자치부의 ‘2016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에 따르면 ‘새마을운동 지원예산’은 2014년 4억6200만원에서 2015년 56억5300만원으로 증가했고, 내년도엔 143억2300만원이 편성됐다. 출처: 미디어오늘 – 정부 새마을운동 지원 예산 30배 폭증
 
 
2015년 한국 정부가 받아낸 일본 정부의 위안부 기부금 약속

약 97억 원 (10억 엔).
앞서 말씀드린 예산 조치에 대해서 규모로서는 10억엔 정도 산정하고 있다. 
출처: 한일 외교장관 간 공동기자회견 중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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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협상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 의미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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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지배자들에게 두 번 죽임 당한 할머니들
 
전시 성범죄의 피해를 겪은 수십만 명 중에 대부분이 돌아가시고, '위안부' 할머니들은 이제 46분 밖에 살아남아 계시지 않다. 46분의 온 몸에는 그 끔찍한 기억과 상처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일본 지배자들의 태도는 이 할머니들이 다 세상을 떠나서 그 기억들이 사라지길 기다리는 듯한 것이었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를 '한일관계 개선의 걸림돌' 취급해 온 한국 지배자들의 태도도 다르지 않았다. 1965년 박정희 정부가 한일청구권 협상을 통해 많은 문제를 헐값에 '땡처리'한 후부터 줄곧 그랬다.

그러나 한일 지배자들에게는 '불행'하게도 이 '기다리기' 정책은 계속될 수 없었다. 한일 지배자들에게 인내심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진실을 밝히고 정의를 세우는 것을 피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기다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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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했던 것은 미국 지배자들의 인내심이었다. 제국주의 경쟁의 격화 속에 일본의 재무장,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 중국 포위라는 큰 그림을 완성시키려는 미국의 조바심은 최고조에 달했다. 결국 미국의 닦달 속에서 한국과 일본의 지배자들은 그들 사이의 이 '걸림돌'을 치워버리기 위해 서두르게 됐다.

지나간 제국주의와 전쟁의 시대에 희생자였던 여성들이, 이제 다가오는 제국주의와 전쟁의 시대에 걸림돌 취급을 받았다. 이어서 나온 합의문은 65년에 이어서 또 한번의 '땡처리'라 할만하다.이 합의문에는 일본 국가가 이 범죄의 책임자라는 점과 그에 대한 법적 책임과 사과, 배상 약속, 재발방지를 위한 진상규명과 역사 교육 등의 내용이 없다. 즉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알맹이들은 하나도 없다.

위안부 합의 계기로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하려는 미국

반면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를 통해 새로운 제국주의와 전쟁의 시대로 나가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은 다 들어가 있다. '이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하며, 일본의 안녕과 위엄을 지켜주며, 한일은 서로 비판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특히 일본 지배자들은 '소녀상'이 치워질 거라는 기쁨과 기대를 숨기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무슨 짓을 했고 앞으로 하려는지 너무나 잘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검은 속내를 꿰뚫어보는 듯한 소녀상의 눈을 보면서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이제 그 굴레를 벗었다고 생각하는 일본 지배자들은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위한 질주에 더욱 속도를 높일 것이다. 일본 총리 아베는 "모두 끝이다. 더 사죄하지 않는다. 한국 외교 장관이 카메라 앞에서 불가역적이라고 말했고 미국이 그것을 평가하는 절차를 밟았다"고 합의의 취지를 분명히 했다. 일본 외무상도 "일본 정부가 잃은 것은 10억엔뿐"이라 했다.

미국 정부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만큼이나 중대한 합의", "새로운 이정표"라며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다. 이제 미국은 한미일 군사동맹을 더욱 강화하고 '일대일로' 등 중국의 육상·해상로를 봉쇄하기 위한 그물망을 더욱 촘촘히 할 것이다. 일본의 오키나와 기지, 한국의 평택기지와 강정 해군기지 등은 그 전초기지가 될 것이다.

65년에 일본의 식민지배와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준 박정희 정부는 독재권력을 유지하며 온갖 반인권 범죄를 저질렀고 베트남에서 일제의 모방 범죄까지 저질렀다. 박근혜 정부는 그런 과거를 바로 잡거나 참회하긴커녕 그 주역이던 김기춘같은 자들을 앞세워서 종북몰이와 조작, 세월호 진실 덮기, 교과서 국정화, 노동개악 등을 자행해 왔다. 따라서 이런 박근혜 정부가 일본의 국가 성범죄를 대충 덮어준 것은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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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이 아니다. 정영환 교수의 지적처럼 한국 정부는 이번 합의에서 일본 정부의 '하청'도 받았다. "한국정부는 당사자에 대한 설득과 일본대사관 앞에서 소녀상을 철거하는 것도 포함한 교섭을 담당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일본 정부는) 한국정부와 당사자들이 다투는 것을 강건너 불구경하듯이 보기만 하면 된다."

이제, 소녀상만이 아니라 '일본의 안녕과 존엄'을 위협하는 모든 저항운동과 목소리는 정부 탄압의 칼날 아래 놓일 것이다. 심지어 위안부 할머니들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를 키워내려는 이간질까지 시작됐다. 이번 '최종적·불가역적 해결'로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와 원폭 피해자들의 문제 해결은 더욱 힘들게 됐다.

이 상황에서 박유하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 논란도 돌아보게 된다. 박유하 교수는 최근 재판부에 제출한 최종변론문에서도 다시 기존 논지를 반복했다. "한 위안부할머니는 저에게 '위안부는 군인을 돌보는 사람'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강제연행은 없었던 걸로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어떤 이야기들은, 여전히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합의를 통해서 정말로 '침묵을 강요당해 온' 이야기가 무엇인지 다시 분명해졌다.한국 정부와 메이저언론들은 박유하 교수같은 '화해론'을 비판하며, 그 반대편에서 정대협의 수요 시위를 돕고 소녀상 건립에 앞장서고, 반제국주의적 역사관과 역사교육을 장려한 적이 없다. 오히려 한국 국가와 주류 지배자들은, 일본 국가와 학계처럼 '화해론'을 키워서 '한일관계 개선'에 이용하고 싶어 했다.

박유하 교수 논란에 대한 일부 지식인들의 태도

따라서 소송은 반대해야겠지만, 박유하 교수 논란에 대한 일부 지식인들의 태도는 아쉬웠다. 만약 베트남에서 한 학자가 '베트남 여성들은 강제로 끌려간 것은 아니며 일부 한국군과 동지적 관계였고 한국 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는 책을 내서 고발을 당했다면, 그 학자의 '학문의 자유'를 옹호하고 나서는 게 한국 지식인으로서의 자세였을까?

그런 지식인들은 대개 민족주의에 대한 일면적 관점과 거부감을 보여 준다. 물론 민족주의는 한계가 있지만, 인종적 억압과 성적 억압을 계급적 착취와 교차시켜서 분석하고 운동을 연결해야 하듯이 민족적 억압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박유하 교수 등은 '정대협의 협소한 반일 민족주의'를 비판하지만, 몇 주전 <김어준의 파파이스>에는 정대협의 베트남 연대 활동이 방영됐다. 그것을 보면 정대협 할머니들이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에 사과하고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데 누구보다 적극적이었고, 일찍이 앞장섰다는 걸 알 수 있다.

정대협과 할머니들은 팔레스타인 민중과 콩고 내전 희생자와도 연대해 왔다고 한다. 이 내용을 보면서 진행자인 김어준은 "할머니들의 정신은 지식인들의 얄팍한 글 너머 멀리 가 계시네요"라고 감탄했는데, 정말 그럴 수밖에 없다. 할머니들은 그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지나며,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과 연대하고 공감하는 길을 찾아내신 것이다.

반면 얼마전 <한겨레>에 실린 박근령 씨의 인터뷰를 보면 '아버지가 죽고 피묻은 셔츠를 언니(박근혜)와 함께 빨아서 청와대 옥상에 가서 태웠다'며 우는 대목이 나온다. 비극과 슬픔을 겪었을 두 자매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 자신들의 아버지가 어떤 잘못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상처를 줬는지 돌아봐야 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3년을 겪으며, 우리는 그 트라우마가 공감능력 결여와 삐뚤어진 복수심으로 발전했다는 것을 목격해 왔다.

이제 그것이 낳은 '외교적 참사' 속에서 할머니들이 "왜 두 번 씩이나 이렇게 우리를 죽이느냐!", "한을 못 풀고 가신 238명의 할머니의 한을 풀어달라!"고 절규하고 계신다. 할머니들이 보여 준 공감과 연대의 자세를 우리 모두가 배우고 뒤따라야 할 시간이다.

 
 
- 전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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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졸속 해결, 후폭풍은 어찌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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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적 책임' 외면한 타결... 한미일 공조 강화로 '동북아 신 냉전시대' 가속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한일 외교장관 회담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타결, 양국 정부가 이를 수용했다고 밝혔다.

두 나라는 이날 합의로, 향후 위안부 문제에 대한 협의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피해 당사국인 한국 국민이 이를 수용할지는 불투명하다. 야권은 이번 합의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고, 시민단체도 굴욕 외교라고 비판한다.

한미일 동맹 강화, 한반도 전쟁 위기 더욱 고조될지도
 
이번 합의로 향후 한일 관계가 순항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이는 결국 미국이 추진하는 중국 포위 전략을 위한 한미일 삼각 동맹 강화로 귀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미일 동맹 강화가 심화할 경우 동북아에 신냉전시대 등장해 남북간의 전쟁 위기가 더욱 고조될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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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두 정부는 최근 정상들이 직접 나서 위안부 문제 타결을 독려했고 한국 헌법재판소와 검찰이 한일 관계를 배려한 결정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위안부 문제 타결이 예고됐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정부 합의는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명시되지 않았고, 위안부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재단 설립으로 종결지었다. 이는 그동안 피해자들이 요구하던 '법적 책임에 따른 배상금'과는 거리가 멀어 야권이나 시민단체, 위안부 피해자의 비판을 받고 있다.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비(위안부 소녀상) 이전을 시사한 것도 큰 논란이 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를 합의한 후 사전 각본에 따른 것처럼 신속한 후속조치를 취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일본 외무상을 접견해 회담 결과에 만족을 표한 데 이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를 하면서 "양국 정부가 어려운 과정을 거쳐 합의에 이른 만큼 이번 합의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가며 새로운 관계를 열어갈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일 외무장관 회담에서 이날 합의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불가역적인 결정이라고 밝힌 데 이어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서둘러 회담 결과를 기정사실로 한 것은 향후 한일 관계가 한미일 동맹 강화에 수렴되어야 한다는 미국 측 희망을 충족시킨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도 즉각 "한일 위안부 합의, 대북 공조 도움"이라는 내용의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위안부 당사자는 물론 시민사회단체 등의 견해를 듣는 최소한의 시간조차 마련하지 않고 합의를 밀어붙이는 듯한 박 대통령의 태도는 비판을 자초했다. 군국주의화와 과거 전쟁 범죄를 부인하는 일본에 대한 일반 국민 정서를 철저히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앞장서서 위안부 문제에 종지부를 찍는 행사를 벌인 것은 정부가 한미일 3각 동맹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압력에 한국이 서둘러 합의해주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그동안 미국은 한일 과거사 갈등을 중지할 것을 직간접적으로 요구했고 특히 아베 총리의 방미 당시 최 국빈대우를 하면서 미국의 속셈이 무엇인가를 한국 등에 보여주었다. 미국은 한미일 동맹강화를 위해 일본의 군사 대국화가 절실하며 한국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미국은 한일 두 나라가 과거사 문제로 갈등하는 것은 중국을 견제하고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기 위한 한미일 공조에 방해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는 이번 한일 위안부 문제 타결의 추동력 중 하나가 된 것으로 풀이된다.

일본의 군국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최근 한일 관계가 북한 문제를 두고 긴밀한 공조를 유지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미국 정부가 견인한 일이다. 또한, 얼마 전 개정된 미·일 새 방위협력지침에 따라 '자위대가 한반도 주변 작전을 전개할 때 한국의 사전 동의를 구하는 규정이 없다'는 점이 드러나는 등 미국이 한국 정부에 한미일 공조를 위한 양보를 압박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위안부 문제가 굴욕 외교로 지탄받으면서 졸속으로 합의된 배경에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미국 최대의 무기 수입국이 되어 수조 원어치의 첨단무기를 들여왔는데도 미국의 대북 정책에 철저히 예속되는 등 남북 관계에서 독자적 추진력을 전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한심한 일이다.

한반도의 평화적 관리가 결국 동북아의 평화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지구촌 전체의 행복지수를 높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의 무리한 타결이 더욱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것 같아 불안하다.

 
- 고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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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위안부 협상, 막후엔 미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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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라-태프트 밀약 재판... 한반도 현실 냉철히 인식해야
 
역사는 반복되는가?

2015년 12월28일 한일 외교장관 사이에 타결된 위안부 합의 소식을 접하자 문득 뇌리를 스쳐간 의문이다. 잠깐 시계를 110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1905년, 미국은 일본과 밀실협약을 체결하고 일본의 한반도 병탄에 힘을 실어줬다. 이른바 카쓰라-태프트 밀약이다. 2015년 타결된 위안부 합의는 여러모로 이 밀약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미국내 분위기부터 알아보자. 한일 양국 외교장관이 합의에 이르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CNN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이를 속보로 타전했다. 이들의 논조는 환영일색이다. 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이번 기념비적인 합의는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한일 양국 사이에 가장 치우기 힘든 장애물을 없앨 것으로 보인다."

- <뉴욕 타임스> 

"이번 합의는 한일 양국의 해묵은 역사 문제를 해결했다는 점에서 희소식이다."

-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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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어조는 언론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미국 정부 역시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나섰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즉각 성명을 내고 "한국과 일본의 합의와, 합의의 전면적인 실행을 지지한다"면서 "두 나라의 포괄적인 합의는 치유와 화해를 위한 중요한 제스처"라는 입장을 내비쳤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제3국의 외교 문제 언급을 자제했음을 감안해 본다면, 위안부 합의에 보인 미국 정부·언론의 반응은 무척 이례적이다.

사실, 위안부 문제 해결이 한일 관계의 급진전으로 직결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제 강점기를 논외로 해도 한국과 일본은 서로를 적대할 때가 더 많았다. 지금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만성적인 대일 무역적자, 독도 영유권 분쟁,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왜곡 등등 난제들 투성이다.

위안부는 양국 간 산적한 현안 중 하나였을 뿐이다. 더구나 위안부 문제가 시급을 다툴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기념비적'이라는 낱말을 써가며 합의를 반겼다. 왜일까?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서 한일 양국의 우호적 관계 구축이 핵심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다.

동북아, 미국 대외정책의 중심축 

지난 2월 웬디 셔먼 당시 미 국무부 정무차관은 워싱턴DC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 기조연설에서 이 같이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 임기 내내 동북아 지역은 미국의 대외정책의 중심이 될 것이다. 미국의 안전과 번영은 아시아·태평양 지역과 불가분의 관계다."

미국이 동북아 지역을 주시하는 주된 이유는 중국의 부상이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28일(현지시간)자에서 한일 간 위안부 협상 타결 소식을 전하면서 "동북아 평화의 가장 심각한 도전은 권위주의적인 중국으로부터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이렇게 보도를 이어나갔다.

"중국 지도부, 특히 시진핑 취임 이후 공산당 지도부는 경제력에 힘입어 대외정책에서 공세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강압적이고 비밀에 휩싸인 중국 정부의 군사 대국화 움직임에 주변국들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보도는 미국의 속내를 정확하게 드러낸다. 미국은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무장한 중국에 맞서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이 성공적으로 관철되기 위해선 일본, 그리고 한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미국은 한일 양국이 껄끄러운 과거사에 얽매이지 않고 우호관계를 구축하기를 원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일본에 상당한 압력을 가했다.

그간 미국은 노골적으로 일본을 편들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4월 아베를 미국으로 불러 환대했다. 이에 앞서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드는 작업도 착착 진행했다. 미·일 양국 외교·국방장관은 지난 4월27일(월) 미국 뉴욕에서 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2+2회의)를 갖고 "자위대의 미군에 대한 후방지원활동을 일본 주변에서 전 세계로 확대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새 가이드라인에 최종 합의했다. 그러나 위안부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지난 8월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일본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시도를 규탄하고, 피해자들의 권리 침해에 대한 조사를 통해 가해자들을 처벌하라"고 권고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공립 고등학교 교과서엔 위안부 문제가 반영되기도 했다. 일본의 역할 확대를 전폭 지원하는 미국으로서는 아베가 어떤 식으로든 위안부 문제를 매듭지어 주기를 바란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우회적으로 촉구했다. 이 지점에서 다시금 웬디 셔먼의 발언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웬디 셔먼은 기조연설에서 한국, 그리고 중국을 겨냥한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물론 민족주의 감정에 기댈 수는 있다. 그리고 과거 적국을 헐뜯어 값싼 박수를 받아내기는 쉽다. 그러나 이 같은 도발은 진보보다는 마비를 불러올 뿐이다."

한국과 중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위안부를 문제 삼아 일본과 관계개선에 나서지 않고 있는 한국을 비판하는 발언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위안부 합의,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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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한일, 특히 일본을 압박해 끝내 원하는 결과를 얻어냈다. 그러나 미국의 무게 중심은 어디까지나 일본이었다. 한편 한·미·일 3국은 지난 10월부터 수차례에 걸쳐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요건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협상을 벌였다. 위안부 합의를 계기로 이 같은 논의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백찬홍 씨알재단 운영위원은 자신의 SNS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한일 간의 기만적인 위안부 문제 타결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추진하는 한미일 군사동맹을 위해 한일 간 첨예한 사안을 가능한 빨리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한마디로 피해당사자를 무시하고 미일 간의 이해관계에 맞춰 진행된 것이라는 의미다. 결국 이번 타결은 일본으로 하여금 한반도 내 영향력 확대와 군사진출의 길을 터주게 될 것이다."

다시 처음의 문제의식으로 되돌아가보자. 역사는 반복되는가? 그렇다. 미국은 110년 전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하고자 일본과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고 한반도 병탄에 힘을 실어줬다. 오늘날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 차단을 위해 다시금 일본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비관만 할 수는 없다. 이번 합의는 그저 합의일 뿐, 최종적으로 합의문이 마련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번 합의는 결함 투성이다. 근본적으로 위안부 동원의 불법성, 그리고 불법의 주체가 일본 정부임이 분명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또 협의문은 아베 총리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협정 체결 당일인 28일 아베의 부인인 아키에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는 사실을 SNS를 통해 알리는가 하면, 기시다 외상은 일본 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의 "적절히 이전"을 언급하는 등 합의문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하는 일들이 불거졌다.

110년 전 이 나라는 밀실협약의 희생양이 돼야 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 한반도와 주변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정보는 곳곳에 넘쳐난다. 미디어의 발달로 정보의 재생산과 전파도 수월하다. 그러나 국민이 깨어나지 않으면 이런 도구들은 무용지물이다. 한반도 상황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행동해야 역사의 반복을 피할 수 있다. 지난 역사의 반복은 제2의 위안부로 귀결될 것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하는 때이다.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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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U2 2015. 12. 28. 11:45

 

 

 

 

 

응답하라 1988 보라가 ‘정권 퇴진’을 외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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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보는 1988년 ①] ‘1980년대’가 만든 대학생들과 미래

 

매주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고 있는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는 최근 드라마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캐릭터가 등장한다. 공부를 유달리 잘한 덕에 1987년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에 입학해 대학생활을 하는 ‘열혈 운동권’ 성보라(배우 류혜영)가 그 주인공이다.

 

다만 <응답하라 1988>을 이루는 두 축은 성덕선(배우 혜리)의 남편 찾기와 따뜻한 가족 이야기인 탓에 성보라의 대학생활이 그리 비중 있게 나오지는 않는다. 보라가 민정당사 점거농성에 참여해 부모와 갈등을 겪는 등 몇몇 장면에서 시청자들이 알아챌 수 있는 정도로만 노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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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골목에서 가장 똑똑한 아이”이자 부모가 “너만 믿고 산다”는 말을 할 정도로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보라는 왜 <민중의 함성>, <한국 민중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같은 책을 읽고, 정권 퇴진을 외치며 위험한 시위 현장에 그렇게 자주 나가야 했을까. 1980년대 후반이라는 ‘시대’는 당시의 대학생들을 어떻게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독재 청산’과 ‘민주화’ 열망 폭발했던 시기

 

1980년대는 말 그대로 혼란과 격동으로 점철됐던 시기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쏘아 죽인 1979년 10·26 사태로 무너지는 줄 알았던 독재정권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전두환은 단숨에 군권을 장악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도들의 반란’으로 규정한 후 시국을 수습했고 7년간 대통령 자리를 꿰차고 있다가 직선제 개헌을 통해 ‘절친’ 노태우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1988년을 배경으로 하는 극중에서 보라는 대학교 2학년이다. 보라가 대학생이 되던 1987년 역시 한국 현대사에 획을 긋는 굵직한 시국 사건들이 많았다. 그 해 1월, 치안본부 남영동 분실에서 조사받던 서울대생 박종철 씨가 심한 고문을 당하다 사망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한 경찰의 해명은 사람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고, 그리하여 ‘박종철 정국’이 시작됐다.

 

야권과 시민운동단체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론악화를 우려한 전두환 정권은 모든 개헌 논의를 불허하는 조치를 내렸지만, 박종철 사건을 축소 및 은폐하려고 했던 계획이 뒤늦게 드러나 ‘개헌 요구’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여기에 <고문살인 은폐 규탄 호헌 철폐 국민대회>를 하루 앞둔 6월 9일 진행된 시위에서 연세대생 이한열 씨가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전두환 정권의 폐해를 가장 명백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었고 자연히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열기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전두환 정권과 민주정의당 대선 후보였던 노태우는 결국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한 6·29 선언을 내놓는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과정의 희생으로 얻어낸 직선제는 만병통치약이 되지 못했다. 양김(김영삼-김대중)이 분열해 각각 선거에 나와, 노태우 후보가 어부지리로 1987년 대선의 승리자가 된 것이다.

 

보라와 보라의 친구들이 고민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보라의 입장에서 보면,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선배들이 독재 청산을 앞장서 주장하다 정권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건을 새내기 시절에 연달아 목격한 셈이다. 그러니 보라의 마음 속에서 ‘다른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어렵지 않게 피어났을 것이다.

 

특히 그가 속한 서울대 학생들의 마음의 빚은 더 컸을 수 있다. 1980년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시위가 일어났을 때, 쿠데타에 명분을 줄 수 있다며 시위대 자진 해산 결정을 내린 ‘서울역 회군’의 주요 멤버 역시 서울대 출신이었다.

 

이들의 결정은 결국 광주에서 비극이 일어나는 하나의 도화선이 됐다. 이후 당장 투쟁에 나서기보다는 ‘운동’을 잘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게 먼저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던 그들에게 앞서 두 사람의 죽음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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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만이 참여한 대규모 민주화 항쟁이 일어나도 세상은 꽤 더디게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계기였던 1987년 대선 결과는 보라에게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을 것이다. 직선제라는 제도를 쟁취했음에도 민주화 세력이 분열해 신군부의 통치를 연장하는 등 쉽게 나아지지 않는 정치 상황은 더욱 더 그를 운동(movement)에 매달리게 하는 동력이었을 수 있다.

 

예상대로 노태우 정권은 5공 청산에 소극적이었고 그 덕에 대학생들의 시위도 끊일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나 운동하러 갔어요”, “엄청 잘 도망 다녀요”라며 어깨를 으쓱하는 남동생의 말처럼 보라는 또래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했다.

보라와 보라의 친구들이 주목했던 문제는 ‘5공 청산’만이 아니었다. 미국에 대한 강한 반감 역시 보라를 설명하는 중요한 특성이다. 본의 아니게 ‘열혈 운동권’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부모와의 갈등을 고조시키는 ‘민정당사 점거 사건’을 예로 들 수 있다.

1988년 11월, 서울지역총학생회연합(서총련)과 수원지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산하 애국결사대 소속 대학생들은 △전두환-이순자 부부 구속 △공범인 노태우 정권 퇴진 등을 주장하며 가락동 민정당 중앙정치연수원 본관 옥상에서 농성을 벌였다. 극중 보라도 ‘민정당사 점거 사건’의 주요 참가자로 나오는데 이때 보라의 친구가 요구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광주학살 배후 조종자 미국에 대한 응징’이었다.

80년대에는 1980년 12월 광주 미 문화원 방화, 1982년 3월 부산 미 문화원 방화, 1983년 9월 대구 미 문화원 폭탄 투척, 1985년 5월 서울 미 문화원 기습 점거 등 반미 정서를 바탕으로 한 각종 사건이 이어졌다. 신군부가 시위 진압 훈련을 받은 공수부대를 투입해 수많은 희생자를 발생시켰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미국이 방치하고 묵인했다는 이유였다. 군부독재정권이 친미 성향을 보였고, 대중들이 이런 정권을 반대하는 것을 곧 ‘반미’로 인식한 시대적 상황도 한 몫 했다.

독재자의 죽음이 곧 독재정권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대학생들은, ‘다른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목적 아래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맹렬히 토론하기도 했다. 역량을 축적한 후 운동에 나서자는 무림파와 조직적 투쟁이 우선이라는 학림파의 무림-학림 논쟁부터 NL-PD 대립까지 80년대 내내 각기 다른 이념을 견주는 학술적 논쟁이 벌어졌다.

정파에 따라 사회 현안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랐다. 1980년대의 가장 큰 국가적 행사였던 88 올림픽 개최에 대해서도 여러 사회모순을 촉발한다는 이유로 아예 반대하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평화 올림픽’, ‘남북 공동 올림픽’ 개최를 주장하는 입장도 있었다.

보라의 동생 덕선이 올림픽 피켓걸 연습을 하면서 자신을 건드리자 “정부의 우민화 정책(Sports, Sex, Screen 앞 글자를 따 3S 정책이라고 불렸음)에 놀아나고 있다”며 “올림픽 때문에 얼마나 많은 철거민이 생겨났는지 알아?”라고 일갈한 장면은, 보라가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철거민 이야기를 하기 전 보라가 읽고 있던 책은 도시 빈민층의 애환을 담은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었다.

 

거칠게나마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캐릭터 ‘보라’

 

그렇다면 이렇게 ‘운동’에 몸을 던졌던 보라는 자라서 무엇이 되었을까. 10화까지 진행된 극중 배경이 여전히 1988년이라, 보라는 아직 대학 2학년에 머물러 있지만 ‘유추’는 가능하다. 시청자들이 가장 높은 가능성으로 점치는 미래는 ‘국회의원’이다. 실제로 학생운동을 하다 정치권에 발을 디딘 인물이 많기 때문이다. 주요 배역들이 판사, 대선 후보, 의사 등 사회 요직을 꿰차는 인물로 그려진 역대 <응답하라> 시리즈의 전통(?)을 고려해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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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보라는 서울대 사범대 출신이라는 점에서 정의당 심상정 대표를 모델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돌기도 했다. 심상정 대표의 경우 학생운동을 하다 현장에 위장취업해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한 후 서울노동운동연합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며 장기간의 수배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보라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이름있는 노동운동가로 성장하고 이후에 정치권에 진입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물론 심상정 대표처럼 독자적인 진보정당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새정치민주연합과 같은 제1야당에 합류한 전대협 세대의 뒤를 따를 수도 있다. 현실에서 보자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이인영, 오영식, 우상호 의원이나 임종석 전 의원과 같은 사례다. 아니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는 생각으로 새누리당과 같은 여당에 몸을 던질 수도 있다. 민중당 실패 이후 문민정부 시절의 여당인 신한국당에 입당했던 이재오 의원,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의 길을 걸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사회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 유지해 시민운동가 또는 노동운동가로 남을 수도 있다.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에서 성장해 정치권을 좌우하는 인물이 될 수도 있고, 민주노총의 주요 인물이 돼 종교시설로 도피하는 삶을 살 수도 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사범대로 방향을 틀었지만 서울대 법대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학업성적이 좋았던 것을 감안하면 교수나 법조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무사히 사범대를 졸업해 교사가 될 수도 있겠다. 교사가 되었을 경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 가입할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응답하라 1988>는 극의 중심이 되는 쌍문동 5인방도 아니고 여주인공 덕선의 친언니라는 설정임에도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많은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밝고 사랑스러운 여성’이라는 클리셰를 뛰어넘어, 1988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에서만 가능한 특징과 그에 따른 자신만의 서사를 갖췄기 때문일 것이다.

 

보라는 읽고 있는 책, 외치는 구호, 듣는 음악, 학교 안팎에서의 모습 등으로, 굳건한 신념 아래 공부와 투쟁 활동 모두에 열심인 ‘운동권 대학생’이라는 캐릭터를 시청자들에게 지속적으로 각인시킨다. 그렇게 보라는 거칠고 서투르게나마 과거(1988년)와 현재(2015년)의 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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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엄마의 희생, 대학생 성보라의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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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운동에 투신한 학생과 엄마, 희생의 숭고함 일깨워주다

​tvN <응답하라 1988>에서 성동일의 큰딸 성보라(류혜영 분)는 그 시절 많은 대학생이 그랬듯이, 운동권 학생이다.

 

없는 집안에서 용케 서울대에 들어간 그는 자신을 향한 부모님의 기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의 열망에 따라 민주화 운동에 투신한다. 그리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시위에 나섰다가 비밀 경찰에게 쫓기는 몸이 된다. 뒤늦게 보라가 데모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성동일과 이일화는 눈이 뒤집어진다. 안다. 딸 보라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 시절만 해도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잡혀 들어가면 반 병신이 되거나, 목숨을 잃는 일이 허다했기에 행여나 딸이 잘못될 까 봐  부모의 가슴은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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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방송된 <응답하라 1988> 7회의 또 다른 테마는 '희생'이었다. 첫 번째 '희생'은 가족을 위해 무조건적인 헌신을 베푸는 어머니들의 이야기이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시어머니의 모진 구박 속에서도 아이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선우 엄마(김선영 분)에게는 온전한 양말 한쪽조차 없다. 죄다 헤지거나 구멍이 송송 뚫렸다.

 

선우네보다 형편이 나은 정환이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시도 때도 없이 여보, 엄마를 찾는 세 남자 때문에 정봉 엄마(라미란 분)는 쉴틈이 없다. 여기에 보라 엄마(이일화 분)는 큰 딸이 민주화 운동에 연루되어 있어 속이 말이 아니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이 세상 모든 엄마는 슈퍼맨이라고. 본래 이름 대신 '누구 엄마'로 더 많이 불리는 그녀들의 삶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가족이다. 때로는 몇몇 엄마의 과도한 자식 사랑이 지탄을 받을 때도 있지만, 엄마의 사랑과 희생이 있기에 세상 모든 아이들이 큰 걱정 없이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응답하라 1988>은 1980년대 하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숭고한 희생을 말한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고 하나, 서울의 주요 거리에는 최루탄 냄새가 끊이지 않았다. 절반의 민주화 성공. 그래서 대학생들은 끊임없이 거리에 나서 진정한 민주화를 바라는 열망을 표출하고자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나도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갈 것 같은 두려움, 힘들게 들어간 학교에서 제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 자신 때문에 속 끓일 부모님 등이 생각났겠지만 1980년대의 성보라들은 걱정과 고민을 뒤로 하고 용감하게 거리에 나섰고, 싸웠다. 그들의 희생 덕분에 대한민국은 어느 정도 민주화의 과실을 맛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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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이 27년 전의 시대상을 소환하는 방식은 상당히 감상적이다. 가족, 이웃 간의 사랑이 전면에 등장하며, 웬만한 문제는 가족의 이름으로 용서되고 해결된다.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다가 결국 철창 신세를 지게 된 성보라 또한 딸을 대신하여 경찰과 합의를 보고, 민주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딸을 도통 이해할 수 없지만 그 또한 너그럽게 감싸는 부모의 사랑으로 일단락된다.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봉합일 뿐, 어느 것도 완벽하게 해결된 것은 없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은 그 시절 어두웠던 시대상을 낱낱이 고발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1988년 서울 변두리 골목에서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다루는 픽션이다. 전반적인 시대 분위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어져 새로운 에피소드가 만들어지는 만큼, 1988년을 대표하는 어떤 이야기가 등장할지는 철저히 연출자와 작가의 마음에 달려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응답하라 1988>은 최루탄 가스에 힘겨워하면서도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싸웠던 청춘들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은 가족의 안위를 위해 온몸을 내던진 어머니의 희생과 결부되어 더욱 뜨거운 눈물과 감동을 자아냈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다가 경찰에 잡혀갈 위기에 처한 대학생의 위기와 딸의 체포를 막고자 폭우 속에서도 애걸복걸하는 엄마의 눈물. 그 한 장면에 서울 올림픽, 유례없는 경제 호황기에 가려진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낸 <응답하라 1988>은 가족을 위해,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수많은 보라 엄마와 성보라를 호명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운 이들의 노력과 일련의 변화에도 결국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는 것과 다름없이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여전히 우리는 1980년대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대신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는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비록 많은 것들이 예전 그대로 돌아갔다고 하나, 그들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1988년을 빌려, 2015년을 사는 우리에게 희생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주는 <응답하라 1988>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 권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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