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과 칼럼

U2 2016. 2. 18. 23:15

 

 

 

 

무모한 대통령, 죽어나는 국민

 

 

 

 

드디어 일이 또 터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무모하고 독단적인 성정으로 보나 그녀의 능란한 정치 셈법으로 보나 이제 일이 또 터질 때가 되었는데 하던 중이었다. 박 대통령은 무언가 ‘꽂힌 일’에는, 대개 극우적인 황당무계한 일이 그렇지만, 앞뒤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 식으로 밀어붙이는 행동을 하곤 했다.

그녀의 유일한 성공 경력 증명서라고 할 수 있는 ‘선거의 여왕’이라는 칭호가 대변하듯이 박 대통령은 동물적인 본능으로 정치적 속셈도 잘한다. 벌써 경제 실정과 엉터리 위안부 합의 책임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지 않았나.

무모하기는 북한의 김정은도 매일반이다. 그런 그가 때마침 좋은 핑계를 만들어주었는데 우리 박 대통령께서 그런 호기를 마다할 리가 없다. 물론 박 대통령의 뒤에는 당연히 미국과 일본의 치밀한 계산과 전폭적인 지원이 따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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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까지만 해도 경제가 위기 상황이라고 호들갑이었다. 그런데 수천 개의 멀쩡한 기업을 도산 위기로 몰아넣으며 해야 할 만큼 개성공단 폐쇄가 그리도 시급하고 불가피했나.

개성공단 폐쇄가 정말 북한의 핵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막는 데 효력이 있을 거라 생각했나. 달리 대안은 없었나. 박 대통령의 강공에 과연 북한이 무릎 꿇을 거라 생각하는가. 그렇게 하기 위한 추가적인 수단은 있나.

이제 박 대통령과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정부는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있는 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는 선언적 의미를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모를 리 없다. 그러니 박 대통령의 외교적 대북 압박이란 사실 미국에 매달리겠다는 것이다. 흡사 ‘빅 브러더’에게 “쟤 좀 혼내주세요” 하는 모양새다.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리고 우리와 이미 입을 맞춘 듯이 재바르게 나서고 있다. 신속하게 대북제재법안을 통과시켰고, 그보다 더 신속하게 남한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이 우리를 위해서, 돈독한(?) 전략적 외교관계를 맺은 박 대통령을 위해서 북한을 혼내주려는 건가? 대북제재법안은 별 효과가 없을 테니 결국 사드인데, 그러면 사드는 우리를 위한 것인가? 미국은 절대 자선사업가가 아니다.

군사전문가들의 분석과 설명을 종합 평가해 보면 사드는 북핵을 대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남한의 안전을 위한 것도 아니다. 남북한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사정거리 수천킬로미터짜리 장거리 미사일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드는 미국과 일본을 위한 것이고, 그러니 미·일이 합심해서 군사적으로 견제하기 바쁜 중국도 당연히 사드의 감시 대상에 포함된다는 건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물건이다. 중국이 극력 반발하고 러시아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 한반도에 사드가 배치되면 우리나라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보복 등 피해도 우려되지만, 중국의 주요 공격 대상에 남한도 포함될 것이므로 우리나라의 안보는 극히 위험해진다. 중국이 자국의 미사일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적국의(미국이든 한국이든) 방어체계를 유사시 선제적으로 파괴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냉전시대 때 본 미-소 간의 창과 방패의 끝없는 군비경쟁 아니었던가.

그러니 이번 사태는 미·일과 중국의 군비경쟁에 우리가 끌려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미·일의 이해에 우리나라가 동원되고, 그런데 이익은 미·일이 모두 먹고 위험은 우리가 고스란히 다 짊어지는 일이다.

사드 비용까지 우리 돈을 대가면서. 이렇게 안보 위험을 감수하면서 미·일의 이익을 위한 하수인 역할을 하는 것이 ‘한 단계 더 높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왔다는 박 대통령의 외교적 성과인가? 이것이 박 대통령이 대책 없이 저지른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의 정치경제학적 계산의 결과다.

 

경제는 무능하고, 외교는 무지하고, 안보는 무모한 대통령. 죽어나는 건 국민들뿐이다.

 

 

-이동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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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끝장’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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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핵실험·로켓발사로 이어진 북한의 잇단 도발에 대해 북한이 다시는 ‘핵실험을 도발하지 못하도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끝장 결의’(terminating resolution)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제사회의 협조를 끌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언론은 정부가 이런 이유로 개성공단을 “끝장”내는 극단의 조처를 취했다고 전한다. 통일부 장관은 “더는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이용되는 것을 막고, 우리 기업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라고 개성공단 전면 중단의 공식 사유를 밝혔지만, 그 얘기가 그 얘기다.

 

이 조처가 얼마나 비상식·반민주·즉흥적인지는 이미 많이 지적됐으므로 굳이 첨언하지 않겠다. 다만 국제사회의 어느 나라도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들한테 지급되는 임금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전용된다고 주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당사자인 한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2094호를 위반한 ‘죄인’이라고 고백한 ‘자해성 희극’, 피눈물을 흘리며 전면 중단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들 앞에서 정부가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우리 기업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홍용표 통일부 장관)라고 말하는 후안무치는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유엔의 “끝장결의” 추진한다며 개성공단을 ‘끝장’내버렸고
북방경제의 꿈을 ‘끝장’냈으며 군사적 안정을 ‘끝장’에 몰고
균형외교 노력도 ‘끝장’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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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는 이번 유엔의 “끝장 결의”를 이끌어 내겠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공영을 위한 자산들을 “끝장”내며 이를 판돈으로 걸고 ‘올인’하고 있다. 정부의 시도가 실패하면 한반도는 냉전 시대의 갈등과 분쟁 상황으로 퇴보할 것이며, 박근혜 정부는 통일·외교 분야에서 식물정부라 불릴 만큼 무기력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이 무기력을 극복하려고 집권세력은 어떤 형태건 ‘북풍’의 유혹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끝장 결의” 추진은 성공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북핵 문제는 남북의 문제를 넘어서 미국·중국 등의 이해가 얽힌 복잡한 사안이다. 따라서 “끝장”을 보려면 우리만 판돈을 다 걸어서는 안 된다. 다른 나라도 걸어야 한다. 특히 중국이 걸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제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며 “근본으로 돌아가 (한)반도 핵문제를 협상의 궤도로 돌려놔야 한다”며, “끝장”을 위해 모든 힘을 다할 뜻이 없음을 이미 밝혔다.

 

중국에 공세 펴면서 제재동참 요구 먹히겠나

 

사드 배치땐 한-중관계 재조정에 북-중 군사협력 강화도 배제못해

 

더구나 박근혜 정부가 중국을 압박할 명분을 움켜쥐려면 최소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문제를 이렇게 일찍 언급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전략적으로 볼 때, 사드 배치 찬성론자라도 우선 안보리 제재 결의에 집중해야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이후 중국과 제재 문제로 진지한 협의를 할 틈도 없이 대통령이 나서서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사드 배치를 언급하고, 곧장 한·미 협의에 나섰다. 그러면서 중국한테 “끝장” 제재를 하자고 하니 누가 그 진정성을 믿어주겠는가? 중국을 향한 공세적 대결 구도의 공고화를 위한 한·미·일 연대를 공공연히 주장하며 “끝장 제재”에 동참하라고 하니, 중국 지도부로선 어이가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끝장 결의”를 도출해 내겠다며 개성공단까지 폐쇄하는 비장감을 보였으나, 사드 배치 문제로 스스로 발목을 잡아 스텝이 결정적으로 꼬였다. 중국은 사드 배치 문제를 한·미의 대중국 안보 전략의 리트머스시험지로 볼 것으로 예상된다.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은 한-중 관계의 수준을 조정하고, 안보적 조처들을 취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 궁극적으로 북-중 군사협력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이 북한 체제를 동요시킬지 모를 “끝장” 제재에 동의하기 어려운 데는 양국의 전통적인 정치안보적 이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못지않은 새로운 이해관계가 양국 사이에 형성되고 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낙후한 중국 동북지역의 지방정부가 북한의 경제개방 속도가 빨라지자 북한과 협력을 경제발전의 중요 축으로 인식하고 관련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구상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창한 “일대일로” 전략과 결합돼 있다. 중국은 육상에서 14개 국가와 2만㎞의 국경을 접하고 있는데, 최근 중국 국무원은 동부해안이나 중앙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한 이 변경지방에서 인접국가와 공동 경제개발을 통해 공동 발전을 도모하는 전략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역사적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아 늘 불안했던 중국의 국경선을 안정시킨다는 안보전략적인 포석도 깔려 있다.

 

1월 초 중국 국무원은 국경지방의 경제를 발전시키겠다며 “중점지구”를 지정했다. 북한과 인접한 지구로는 7개의 국경도시와 3개의 변경경제합작구가 지정됐으며, 연변조선족자치주와 단둥시는 국제관광합작구로 발전시키라는 방침을 내놨다.

 

이는 북한과의 협력이 중국 동북지방의 발전 및 일대일로 전략 수행에 중요 포인트가 된다는 뜻이다. 이런 복합적 사정 탓에 중국이 “끝장 결의”에 동참하려고 이 국가전략을 포기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유엔의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가 나오면 북-중 경협에서 일정한 지체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중국이 이 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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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박근혜 정부는 “끝장 결의”를 추진한다는 구실 아래 아무런 실익도 없이 너무나 중요한 우리의 자산을 “끝장”내 버렸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통해 남북공영의 현실적 실험장을 “끝장”내버렸고, 오직 3면 바다만으로 오늘을 이룬 한국 경제가 새로운 도약을 위해 기회의 창으로 삼은 남북경제공동체와 ‘북방경제’의 꿈을 “끝장”냈으며, 개성공단 덕분에 지난 10여년간 일체의 교전이 멈춘 서부전선의 군사적 안정을 “끝장”냈다.

 

어렵더라도 남북화해와 민족공영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많은 이들의 꿈 역시 “끝장”에 몰렸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는 한-미 동맹 일변도에서 벗어나 중국의 성장에 대응해 균형외교를 추구하겠다고 공언해 놓고, 섣부른 사드 배치 언급으로 균형외교 노력을 “끝장”냈다.

 

무엇보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박근혜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결정체계가 사실상 붕괴된 것으로 보인다. 5자회담, 사드 배치 등 대통령이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중대 현안에 대해 무절제하게 공식 석상에서 발언하고, 이를 수습한답시고 비현실적이며 비합리적인 정책을 각 부처가 잇따라 내놓으며 추종하는 형국이 초래되고 있다.

 

외교안보 부처 관리들이 대통령의 5자회담, 사드 배치 언급이 얼마나 부적절한지 모를 리 없고, 통일부 관리들이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 기름을 안고 불섶에 뛰어드는 무모한 행동이라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할 리 없다고 본다. 그러나 그들은 대통령의 판단을 교정하려는 결기보다는 대통령의 심기 관리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한국 외교에는 ‘지피’(知彼)나 ‘지기’(知己)는 없고, 오로지 ‘지통심’(知統心)만이 존재한다. 막장 드라마의 연속이다.

 

이 비극을 멈출 동력은 존재하나? 답은 간단하다. 제재도 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론 한반도의 적대적 불신 구조를 해소하려면 대화 국면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6자회담의 유용성을 의심했으나, 북한의 4차례의 핵실험은 6자회담이 중단된 상황에서 발생했다. 대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도발이나 로켓발사는 없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가 이런 인식과 접근법에 동의할 리 없다.

 

한가지 길이 있긴 하다. 북한의 첫 핵실험 한달 뒤인 2006년 11월 부시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참패하자 네오콘의 상징인 럼스펠드를 경질하고 6자회담에서 2·13 합의를 도출한 선례가 보여주듯 ‘선거의 힘’이다. 그러나 야권의 분열로 그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우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 이종석

 

 

ⓒ 한겨레 칼럼 ( http://www.hani.co.kr/)

 

 

 

 

 

비밀댓글입니다

 
 
 

사설과 칼럼

U2 2016. 1. 30. 23:26

 

 

 

 

‘비가역’ 한국외교

 

 

 

 

작년 말 위안부 합의 이후 ‘비가역’이라는 말이 유명해졌다. 비가역의 사전적 정의는 이전 상태에서 현재 상태가 되었을 때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일상에선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지만 한국외교의 키워드로 떠올랐다.

 

처음 비가역이라는 말이 사용된 것은 북한의 핵폐기를 강조하면서였는데, 부시와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책을 대변했던 CVID, 즉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irreversible)’ 해체를 구성하는 세 번째 단어다. 임기 초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대화할 수 있다고 협상의지를 밝혔던 오바마 정부도 지난 7년간의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 아래 무대책으로 일관하다 결국 CVID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문제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가 아니라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돌이킬 수 없게 하였다. 북한이 문제의 근원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실질적인 문제 해결 과정과 방법론이 부재한 가운데 압박과 배제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북강경파의 희망과는 달리 붕괴하지도 않았다. 4차 핵실험 이후 또다시 강경론으로 북한을 압박하겠다고 하지만 제재수위를 조금 더 높인다고 북한 핵개발의 비가역성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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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비가역이 등장한 것은 위안부 합의다. 일본으로부터 법적 책임과 제대로 된 사과도 받지 못했음에도 이번 합의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이며 비가역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후 한국은 위안부와 관련한 어떤 발언도 못한다고 못 박았다. 인류 역사상 가해국 정부가 사과하면서 향후 문제제기 및 비판까지 못하게 재갈을 물린 예는 전무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박정희 정부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이라고 동의해주는 바람에 그 후 우리가 겪은 어려움을 알고서도 이를 또 수용한 박근혜 정부는 역사의식의 부재는 말할 것도 없고 국익에 대한 무개념과 무능을 드러냈다. 아베는 보란 듯이 지난 18일 도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곧바로 부인했으며, 일본의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단언했다. 비가역은 결국 한국에만 족쇄다.

 

세 번째 비가역성을 요구받는 곳은 이미 가시화되고 있는 동북아의 신냉전 경향인데, 우리의 미래를 좌우할 핵심변수가 될 수 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북한의 비가역적 핵개발이 빌미가 되고, 한·일 위안부 합의로 한·미·일 군사협력네트워크 구축의 장애물이 제거되었다. 이는 미국이 북한 핵문제를 해결보다는 활용으로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대중 견제를 포함한 동북아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아시아 회귀전략이 날개를 달게 되었다.

 

북한 4차 핵실험에 대한 대응조치로 한반도 배치가 거론되고 있는 사드, 스텔스기, 항공모함, 전략핵폭격기 등 전략무기들은 따지고 보면 북한 비핵화나 한반도의 안보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무기들이 아니다. 결국 동북아의 군비경쟁을 초래하며, 미·중, 중·일 간의 패권경쟁에 한국이 비용까지 대면서 연루될 위험성을 높인다.

 

게다가 미국의 전략적 자산의 일시적 배치로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위안부 합의를 배후에서 이끈 미국은 그야말로 3각 동맹에 준하는 한·미·일 군사협력을 비가역적으로, 그것도 빠른 속도로 제도화시키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더 큰 문제는 지난 수년간 급속하게 강화된 미·일동맹이 중심축이 되고, 한·미동맹은 미·일동맹의 하부구조로 작동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지난 수년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꾸준히 강조되어온 한·미동맹의 상호운용성 확보는 이제 일본과의 3각 운용성으로 진전시킬 것이다. 더욱이 일본의 집단자위권 확보와 더불어 우리의 전시작전권 부재의 현실에서 한반도 유사시 우리는 미국을 대신한 일본의 지휘통제를 받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과연 이러한 구조적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의 박근혜 정부 외교는 화려한 외양과 자화자찬과는 반대로 항상 일이 터진 후 막는 데만 급급하면서 우리의 입지를 약화시켜왔다.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드 도입과 연계해 중국의 대북제재를 압박하는 행보는 확실한 전략이나 다양한 카드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진영 대결구조의 비가역성을 막기는커녕 가속화할 뿐이다.

 

 

- 김준형

 

ⓒ 경향칼럼 ( http://www.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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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부재의 한국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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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에 전략은 있는가. 우리는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당국자들을 믿고 발 뻗고 잘 수 있는가. 지난해 말과 올 초를 달구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협상과 북한의 제4차 핵실험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한 나라의 외교·안보 전략은 그 나라의 흥망을 좌우한다. 특히, 세계 및 지역 질서가 요동치는 시기의 전략은 생사를 가른다. 바로 지금이 그런 때다. 세계적으로 미국의 초국적 지배 체제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해가 갈수록 거세지고, 이슬람국가(IS)의 발호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중동 패권 다툼이 지각을 흔들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는 미-중 대립·경쟁 구도에 중-일 패권 경쟁과 김정은 북한 정권의 불가측한 도발이 더해지면서 정세의 유동성이 커지고 있다.

항해에 비유하자면, 바람이 거칠고 파도가 높은 험한 바다를 그리 크지 않은 배를 타고 무사히 건너야 하는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선장과 기관사들이 안전 항해에 필수적인 해도와 나침판은 제대로 구비나 하고 있는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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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위안부 문제를 보자. 대통령 스스로 제시한 ‘피해자가 수용할 수 있고 국민이 납득할 만한 수준’을 만족하기는커녕 ‘불가역적’이라는 모멸적 용어가 담긴 협상 내용과, 그것이 ‘지금 상황에서 따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이니 ‘대승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수용해 달라는 정부의 위압적인 후속 대응에 당장은 비판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대일 관계를 한 꾸러미로 꽁꽁 묶어 제기한 애초의 전략적인 실수에 있다. 이런 탓에 밖에선 중국 견제에 중점을 둔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과 어긋나게 되고, 안에선 경제와 안보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국제보편적 가치 문제가 양자 간 정치 문제로 축소됐다. 굴욕적인 ‘12·28 위안부 합의’는 이런 자승자박 외교가 자초한 참사다. 위안부 문제에 다걸기(올인)를 하지 않았더라면, 미국의 압박도 피하고 더욱 강하게 일본을 몰아칠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집권 초 ‘대일 탈레반 외교’를 설계하고 집행한 사람의 무능과 책임이 크다.

북핵 문제도 우왕좌왕, 임기응변의 비전략적인 언행만이 춤을 춘다. 북한이 2006년 이후 대략 3년 단위로 협상이 중단된 기간 중 핵·미사일 도발을 자행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정부의 부작위도 4차 핵실험을 몰고 온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중동과 우크라이나 문제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미국이 ‘전략적 인내’ 정책을 취한 것은 그렇다고 해도, 북핵의 가장 큰 위협권에 있는 한국 정부가 내용도 없는 ‘코리안 포뮬러’(한국 방식)와 ‘탐색적 대화’만 되뇐 채 북한이 협상에 복귀할 아무런 유인과 동력을 제공하지 못한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윗분의 지시인지 모르지만 정부가 핵실험에 확성기 재개로 맞불을 놓은 것은 무전략의 극치이다. 국내 보수층을 염두에 둔 정략적 대응으로 짐작되지만, 선후와 경중을 잃은 조처로 국제 공조에 역효과만 낳고 있다. 영국 외무장관이 확성기 재개에 자제를 촉구했고, 중국도 확성기 재개 이후 대북 비판에서 ‘각국의 냉정과 절제’로 강조점을 옮기기 시작했다.

지난해만 해도 박 대통령은 몇 가지 아주 ‘이상한 외교’를 했다. 중동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나라가 텅텅 비도록 청년들을 중동으로 보내라”고 지시하는가 하면, 중국의 시진핑,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만나 손을 잡고 있는 동안 경제외교를 한다고 한가하게 남미를 순방했다. 미국, 일본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감행한 중국의 전승절 참가는 제4차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어떤 효험을 발휘할 것인지 지금 중대한 시험대에 올라 있다.

​다시 한번 진지하게 묻고 싶다. 지금 박 정부는 나라를 살리는 외교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눈앞의 이해에만 급급한 정치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가. 그 답변을 행동과 결과로 듣고 싶다.

​- 오태규

ⓒ 한겨레 ( http://www.hani.co.kr/)

 

 

 

 

 
 
 

사설과 칼럼

U2 2016. 1. 23. 14:41

 

 

 

 

눈 감고 경제 살리기

 

 

 

 

 

 

 

지난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재계가 주동하는 ‘민생 구하기 입법촉구 1000만 서명운동’에 참가했다. 대통령이 길거리 서명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서명은 석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여당을 돕는 행동이므로 공무원의 중립 의무 위반일 가능성이 높고, 심지어 탄핵감이란 주장도 나온다.

 

그런데도 총리와 장관들이 줄줄이 서명에 동참하고 있다. 서명 안 했다가는 진실성을 의심받을지 모르니까. 몇 달 전 청년 일자리를 만드는 ‘청년희망펀드’에 대통령이 1호로 가입하자 장관, 여당 시장, 도지사들이 뒤질세라 가입하던 풍경과 흡사하다. 이는 너무나 유치한 발상이라 해외 토픽 뉴스감이다. 펀드에 돈을 모아 일자리 창출이 이루어진다면 그것 못할 나라가 어디에 있으며, 청년실업 문제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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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서명이나 펀드나, 상식을 가진 사람은 그런 발상을 할 수가 없다. 양심이 있는 참모라면 이러면 안 된다고 대통령을 말려야 한다. 대통령이 어느 날 창의적 발상을 하고, 의논 없이 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그 밑의 참모와 여당은 대통령한테 바른말을 하지 않는다.

 

대통령이 장관들의 대면보고를 받지 않으니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고, 무슨 대책을 세워야 하는지도 모른다. 여당 지도부와도 의논, 소통 없이 구중궁궐에 앉아 계신다. 이러니 국정이 표류하는 것 아닌가.

 

작년인가 대통령이 TV 중계에 나와서 뭔가를 설명하고는 기자들과 문답하는 장면을 우연히 보았는데,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받지 않는 데 대한 질문이 나왔다. 대통령이 답하면서 뒤에 앉아 있는 참모들을 돌아보더니 “대면보고 필요하세요?”라고 묻는 게 아닌가. 대통령이 장관의 대면보고를 안 받는다는 소문이 있더니 사실이구나 하는 걸 확인하는 자리였다.

 

도대체 대면보고 없이 어떻게 복잡한 국정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지구상에 장관의 대면보고를 받지 않는 대통령은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이론과 철학이 없으니 국정의 방향이 서지 않는다. 진실하지 않은 사람을 수시로 다그치고, 국정 표류 책임을 국회에 돌리고, 참모들은 대통령 눈치만 볼 뿐 입을 다물고 있다. 그래서 대통령의 즉흥적 발상대로 그냥 이리저리 흘러가는 정부다. 이렇게 무능하고 비겁한 정부는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눈 감고 술래잡기하는 놀이가 있다. 술래는 수건으로 눈을 가려 놓았으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방향을 알 수가 없고, 그냥 허공에다가 마구잡이로 손을 휘두를 뿐이다. 혹시 손끝에 누군가 걸려들 것을 희망하면서. 지금 박근혜 정부가 하는 정책을 보면 아무런 비전도 철학도 없이 즉흥적으로 무조건 경제 살리기 한다고 손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방향 설정이 없으니 성공할 확률은 제로다. 보여주기는 보여주기로 끝날 뿐이다. 몇 년 뒤 청년희망펀드의 재원 조달과 용처의 적법성을 놓고 국정조사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왜 대통령이 대면보고를 안 받는지 나는 그게 매우 궁금한데, 어느 민완기자가 좀 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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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구하기 입법의 내용은 경제활성화법과 노동입법인데, 하나같이 논란거리다. 법안의 종류가 많아 일일이 논할 지면은 없으나 경제 살리기와 거리가 멀고 부작용이 우려되는 게 많다. 예를 들면 영리병원의 도입, 귀족 국제학교 설립, 재벌들의 문어발 확장 도와주기, 부동산 투기 조장 종합판 이런 것들이다.

 

게다가 파견법을 바꾸어 파견을 더 쉽게, 더 널리 하겠다고 하니 이미 비정규직 세계 1위인 한국을 더욱 지옥으로 몰아넣겠단 말인가. 이런 입법이 민생 살리기, 경제활성화라는 탈을 쓰고 등장하니 표리부동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는 민생과 아무런 관련도 없고, 정확히 말하자면 재벌 살리기, 경제 망치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역사에서 재벌 편이었던 하딩, 쿨리지, 후버가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고, 재벌과 맞싸웠던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최고 대통령이란 사실을 새겨보기 바란다. 부자, 재벌 편들었던 레이건, 부시(아버지와 아들)가 결국 경제를 망쳤고 지금도 진행 중인 경제위기의 주범이란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정부가 진정 민생과 경제를 염려한다면 답은 대통령 아주 가까이 있다. 대선 때 박근혜 후보가 공약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는 오리무중이고, 김종인 위원장은 야당으로 옮겼다. “증세 없는 복지”를 한다더니 “복지 없는 서민 증세”만 열심히 하고 있다.

 

한때 보수 쪽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가리켜 ‘잃어버린 10년’이라 했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난맥상을 보면 그 정도 수식어로는 부족할 듯싶다. ‘악몽의 10년’이 되지 않을까. 나는 그게 두렵다.

 

 

ⓒ 경향 - 이정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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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를 위한 정부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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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터넷에서 ‘흙수저 빙고게임’이 유행하고 있다. 일명 가난 공감 놀이로, ‘화장실에 물 받는 다라이 있음’ ‘부모님이 정기 건강 검진 안 받음’ ‘여름에 에어컨 잘 안 틀거나 에어컨 자체가 없음’ ‘집에 곰팡이 핀 곳 있음’ 같은 항목이 25칸에 담겨 있다.

 

빙고하려고 가벼운 마음으로 펜을 들었는데 항목을 다 채웠다는 한 네티즌의 ‘웃픈’ 댓글에 각자 몇 줄을 그었다며 부모에게 기대기 힘든 흙수저들의 푸념이 이어진다.

 

최근 흙수저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이가 있으니 바로 최경환 경제부총리다. 세대 간 부(富)의 이전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상속세ㆍ증여세 부담을 완화하겠다며 11일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중장기 조세정책 운용계획’은 양극화 해소에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보였다.

 

구조적인 소비 부진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로의 부의 이전이 필요하다는 논리까지는 그렇다 쳐도, 그 방법이 부자 부모 돈을 자식 세대에게 넘기겠다는 것이라니 아연실색하다. 청년들에게 괜찮은 일자리와 적정 임금을 보장하자는 방향이 아니라 세금 적게 내고 부모 돈을 물려받을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쪽이라니. 상속과 증여를 통한 ‘부의 이전’을 마치 노인세대에서 젊은 세대로의 ‘부의 이전’이라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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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부총리는 15일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한 야당의원이 금수저, 흙수저를 거론하며 결국 증여세 과세 대상자를 줄인다는 거 아니냐는 지적하자 소비 활성화를 위해서도 부의 이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왕에 편법 증여와 상속이 만연하니 양성화시키고 제도화하자고 말했다.

 

부와 가난의 대물림이 고착화하면서 우리사회의 양극화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소득이 너무 적어 세금을 내지 않는 과세미달자를 통계에 포함하면 국민 3명 중 1명(33.64%)이 최저임금만큼도 벌지 못한다. 개천에서 용 나기 힘든 세상에 대한 개탄이 최 부총리 귀에까지는 가 닿지 않는 듯하다.

 

정부가 저소득층 국민에게는 눈감고 지금도 남부럽지 않게 먹고 사는 금수저들에게 조금 더 넉넉하게 쓰라고 부모 돈을 얹어 주자는 것인데, 과연 증여세가 줄면 우리 경제에 보탬이 될 만큼 부자들이 소비를 더 늘릴까. 괜스레 열심히 일하는 젊은이들만 맥 빠지게 한 것은 아닌지. 청년을 핑계 삼아 부자감세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정부의 행태가 볼썽사납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사정 대타협의 기치를 이어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뜻으로 15일 청년 고용 지원을 위한 ‘청년 일자리 펀드(가칭)’를 제안하고 첫 기부자로 나선 것 역시 박수를 받기 힘들다. 정부기관을 움직여 정책으로 큰 그림을 제시해야 할 대통령이 참모들과 사전 논의도 없이 깜짝쇼를 펼친 것부터 문제다. 청년 일자리가 펀드 조성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거니와 필요하면 국가 예산을 편성해야 마땅하다.

 

대통령이 운을 뗀 마당이라 거국적 국민운동으로 확산될 조짐인데 아직 구체안이 나오지도 않은 데다 이렇게 모은 돈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일지 의문이다. 청년 취업과 창업 시범사업과 청년을 고용한 기업에 대한 지원에 쓰일 예정이라지만 지금 있는 정부부처 산하 교육기관도 넘쳐난다.

 

청년들이 교육이 부족해서 취업을 못 하는가. 과연 기업들이 지원금을 받기 위해 고용을 늘릴까.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의무)’ 실천이라는 용비어천가도 들리지만, 오히려 정부가 더 내놓을 대책은 없다고 시인한 것 아닌가 싶어 절망감마저 든다.

 

성인이 되면서 누구나 노력한 만큼 가질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지만 그래도 노력하며 살아가는 건 지금보다 나아질 거라는 희망 때문이다. 흙수저들이 절망하는 사회가 과연 앞으로 뻗어 나갈 수 있을까.

 

현실적 여건상 어려움이 크더라도 최소한 정부의 기조는 노력하는 사람이 잘 살 수 있는 공정한 사회에 둬야 한다. 불공정한 룰을 고칠 생각은 안하고 흙수저들의 희생과 노력만 요구하니 이 나라를 지옥에 빗댄 ‘헬조선’ 같은 신조어가 나오는 것 아닌지.

 

 

- 채지은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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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해고·연금 축소·무한 경쟁…불안한 삶에 ‘더 멀어진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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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국민행복시대’
수도권 스트레스 가장 높아…‘건강하지 않다’ 인식도 늘어

 

박근혜 정부 출범 2년차에 ‘정신적·육체적 행복감’이 대폭 떨어진 것은 취업난과 소득정체 등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과도한 경쟁을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함께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다. 정부는 국민행복시대를 열기 위해 경제성장 4%, 국민소득 4만달러라는 목표를 세웠지만 저성과자에 대한 쉬운 해고, 각종 연금 축소 등 경쟁 강화와 사회안전망 축소가 계속되어서는 국민들이 정서적 안정감을 느끼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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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통계청의 ‘지역통계’를 통해 박근혜 정부 첫해인 2013년과 2014년을 비교해보면 주요 행복지수가 후퇴했다. 지난해 ‘스트레스 인지율’은 17개 시·도 중 12개 시·도에서 전년보다 높아졌다. 스트레스 인지율이란 일상생활 중 스트레스를 ‘대단히 많이’ 또는 ‘많이 느끼는 편이다’라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다.

 

영남권에서 전년 대비 증가율이 높았다. 울산의 증가율이 4.7%포인트로 가장 높았고, 경북(2.6%포인트), 경남(2.1%포인트), 부산(1.6%포인트) 순이었다. 수도권에서도 인천 1.6%포인트, 서울 1.3%포인트, 경기 0.6%포인트 높아졌다. 충청권은 떨어진 곳이 많았다. 충북은 마이너스 0.3%포인트, 대전은 마이너스 0.5%포인트였다. 세종은 5.8%포인트나 떨어졌다.

 

증가율이 아닌 스트레스를 느끼는 사람의 비율(절대치)은 수도권이 높았다.
 
인천(33.2%), 서울(30.6%), 경기(30.2%)가 나란히 1~3위였다. 10명 중 3명 이상이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충남(30.1%), 충북(29.4%), 대전(28.7%), 세종(28.5%) 등 충청권도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밀도의 수도권과 인구가 급속히 유입되는 충청권은 타 지역에 비해 경쟁이 심한 특징이 있다.
 
지난 1년간 연속적으로 14일 동안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의 슬픔이나 절망감을 느낀 ‘우울감 경험률’은 17개 시·도 중 16개 시·도에서 일제히 상승했다. 강원(2.3%포인트)이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고, 세종(2.0%포인트), 충북·충남(1.9%포인트), 광주(1.8%포인트), 제주·울산(1.7%포인트)도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서울(1.1%포인트), 인천(0.8%포인트), 경기(0.5%포인트) 등 수도권도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대전만 유일하게 전년보다 0.9%포인트 떨어졌다. 절대치로는 충북(8.8%), 인천(8.3%), 서울(8.1%), 강원(8.1%) 등이 높았다. 도시와 시골 할 것 없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다.
 
자신의 건강수준이 ‘매우 좋다’ 또는 ‘좋다’고 응답한 주관적 건강수준 인지율도 16개 시·도에서 전년보다 떨어졌다. 강원(-4.2%포인트), 전남(-4.1%포인트), 경북(-4.0%포인트)에서 많이 떨어졌다. 인천(-3.9%포인트), 경기(-0.8%포인트)도 떨어졌지만 서울만 유일하게 0.2%포인트 높아졌다.
 
국민들의 정신적·육체적 행복감이 갈수록 나빠지는 것은 사회가 경쟁을 강조하면서 정서적 취약성을 방치하는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경쟁 스트레스가 과도해지면서 생존까지 위협받는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정부가 기업경쟁력 강화를 위해 추진하는 ‘쉬운 해고’와 복지축소는 설사 성장이 이뤄지더라도 사회적 스트레스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이나미 원장은 “가족 해체가 진행되면서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성공해야 한다’,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등 고도성장의 프레임에 갇혀 있으면 계속 피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박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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