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U2 2016. 4. 13. 08:07

 

 

 

 

‘을들’의 권리, 투표로 찾자

 

 

 

얼마 전 기사화됐던 대형 프랜차이즈 회장의 경비원 폭행, 재벌 3세를 수행하는 기사가 경험한 폭언과 폭행은 슬프게도 놀라운 사건이 아닌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갑질’의 한 사례일 뿐이다. 그들은 엄연히 계약관계에 놓인 고용주와 고용인이지만, 현실에서는 주종관계에 가까웠다. 정해진 시간에 건물의 문을 닫는 원칙을 지켰던 경비원은 회장의 심기를 건드렸고, 수행기사가 살아오면서 습득했던 사회적 룰은 재벌 3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2014년 발생한 ‘땅콩회항’ 문제가 언론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른바 ‘갑질’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대중적 공감이 형성됐고,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대중적 인기를 끈 영화 <베테랑>은 관객의 가슴을 갑갑하게 했던 재벌을 응징하는 과정을, 드라마 <오만과 편견> <개과천선> <리멤버-아들의 전쟁> 역시 권력을 등에 업고 약자 위에 군림하려는 세력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들의 힘겨운 과정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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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자본권력을 통해 약자를 억압하고 부정을 일삼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면서 대중적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그 구체적 방법을 명확하게 설명하지는 못했다.

정의와 원칙이 통하지 않는 관계가 이렇게 비일비재하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무원칙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자본으로 구성된 권력관계라는 것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자본의 권력은 우리를 불의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참고 외면함으로써 작은 권력이라도 얻으려는 수동적인 삶을 선택하게 만들고 있다.

일례로 문자로 해고를 통보받는 경비원들, 종업원을 무례하게 대하는 손님들처럼 우리 역시 계약관계가 아닌 주종관계로 사람을 대하는 문화에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고민해봐야 할 때인 것 같다.

최근 갑질이 버젓이 자행되는 세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던 단계에서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략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있어 반갑다. 드라마 <욱씨 남정기>의 주인공 옥다정은 불의를 외면하고 침묵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소심한 남정기를, 함께 불의에 맞서 싸우는 동지가 되도록 변화시킨다. 결국 갑질은 을들의 침묵 때문이며, 갑질을 없애기 위해서는 을들 스스로가 수동적이고 패배주의적인 상태에서 변화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드라마 <동네 변호사 조들호>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처음에는 혼자 갑질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다 모든 것을 잃고 좌절했지만, 저항의 방식이 변화해야 함을 동네 영세상인이 처한 명도소송에 맞서는 과정에서 깨닫는다. 그는 자포자기하고 있던 주변 상인들이 스스로 변화를 선택하고 연대하도록 만들었다.

 

 

이렇듯 앞의 두 드라마는 주인공을 통해 갑질은 ‘을들’이 수동적이고 패배주의적으로 침묵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누군가 나서 문제를 해결해 주길 기다리지 말고 을들 스스로 부당함에 맞설 것을 촉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고통과 희생의 짐을 혼자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눠 질 것을 당부한다. 결국 을들이 침묵을 깨고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태원에 위치한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재건축 명목으로 임대인으로부터 명도소송을 당했지만, 이 부당한 계약이 가지고 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네 주민들, 예술가들, 학자들, 카페 손님들 모두 힘을 모아 오랫동안 투쟁을 했고, 결국 건물주와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여러 번의 강제진압으로 연대한 사람들 모두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지만 결국 임대인과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 합의에서 멈추지 않고, 소송 과정에서 연대했던 ‘맘 놓고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들의 모임’과 함께 위기 상황에 놓인 임차인들과 연대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드라마 <동네 변호사 조들호> 속 에피소드는 결국 현실을 소재로 구현한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구현된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매일 힘겨운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 우리 역시 ‘변화’가 쉽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부당함을 참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참고 외면한다고 내가 부당한 권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삶을 벗어나 내가 주체가 되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의 시작은 멀리 있지 않다. 선거권 행사가 바로 그것이다. 나의 한 표 행사가 정치계뿐만 아니라 내 삶의 터전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연대를 향한 변화의 시작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이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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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U2 2016. 2. 8. 15:14

 

 

 

(헬조선 혼용무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

 

 

 

 

 

 

 

루이스 캐럴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세계는 ‘말도 안되는 일들’ 투성이다. 회중시계를 꺼내 보는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 앨리스는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 안고 있던 아기는 돼지로 변한다. 트럼프 나라에선 홍학 채로 고슴도치 공을 치는 크로케 경기를 한다. 이 나라의 하트 여왕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목을 치라고 명령한다. 앨리스는 이런 여왕에게 반발하다가 카드 병정들의 공격을 받고 잠에서 깬다.

소설은 캐럴이 하숙하던 집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가 바탕이다. 아마 아이들은 캐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흥분과 기대를 느꼈을 것이다. 터무니없는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소설 속 앨리스도 비슷한 심정 아니었을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얘기를 한 건 우리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말도 안되는 일들’의 끝판은 무엇일까라는 황당함과 아득함을 느끼고 있는 게 다르지만.

                   

             

 

 

‘혼용무도(昏庸無道·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 지난해 말 교수신문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다. 해가 바뀌었어도 별반 사정이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청년세대의 절망적인 현실을 빗댄 ‘헬조선(지옥+조선)’은 일반어로 자리 잡았다. ‘금수저’ ‘흙수저’ 등 수저로 출신 환경을 구분하는 ‘수저계급론’도 널리 쓰인다. 직업 지위와 계층의 고착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조사는 이 ‘수저계급론’이 현실임을 확인시켰다.


문제는 이런 현실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오히려 확산시키는 일들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집권여당 실세와 의원들은 채용 비리 의혹과 ‘갑질’ 인사 청탁 논란에 휩싸였다. 아리랑TV 사장은 미국 출장길에 아내와 딸을 데리고 고급호텔에 투숙해 한끼 113만원짜리 식사를 하는 등 공금을 흥청망청 써댔다. 권력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의 ‘민낯’이 이 정도인가.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말도 안되는 일들’이 어디 그뿐이랴. ‘국가비상사태급’ 경제위기라던 청와대는 경제부처 장관들의 ‘총선 출마용 개각’을 했다. 대구에선 장관 시절 ‘총선 필승’ 건배사를 했던 전직 헌법학자를 필두로 ‘진박(진실한 친박) 연대’가 만들어졌다.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친박 실세는 ‘진박 후보’ 밀어주기 투어에 나섰다. 후보자의 비전은 없고 “내가 대통령과 가까워”라는 비정상적 정치행태만 가득하다. “헌법보다 대통령과의 관계”라는 얘기까지 버젓이 한다.


이런 수준이다보니 “진박이 아니라 짐박”이라는 비아냥이 나오고, “웬갖 잡박이 날아든다”는 ‘박(朴) 타령’ 등 ‘진박’들을 풍자한 패러디물들이 유행한다.


그러자 “비아냥거리고 조롱해서야 되겠냐”고 발끈한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희화화한 게 누구인가. 오만과 독선과 구태로 스스로를 ‘조롱박(朴)’에 가둔 게 누구인가.


잠에서 깨어난 앨리스는 “정말 이상한 꿈이었어”라며 쏜살같이 방을 나선다. 하지만 지금 이곳의 ‘앨리스들’ 앞에 펼쳐진 세계는 꿈이 아니다. 그렇다면 ‘헬조선론’에 나오듯 ‘탈조선’ 하거나 ‘죽창’을 들어야 하나.


비극은 희극으로. 동요, 탈춤, 꼭두각시 놀음, 판소리…. 예로부터 해학 속에 녹아든 풍자는 민초들의 분출구였다. 풍자와 해학이야말로 ‘이상한 나라’를 가로지르는 방법이다. 현실의 부조리와 기득권 체제의 위선을 뒤집고 드러낸다.


사이다(속 시원함)’에 불과한 행위라고? ‘균열’이 생기다 보면 박은 깨진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농담은 정치적 이상을 표현하고, 더 공정하고 더 멀쩡한 세상을 창조하는 방법”(<불안>)이라고 했다. 비극은 희극으로. 그것이 ‘혼용무도’의, ‘헬조선’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들의 무기다.

 

 

- 김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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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U2 2016. 1. 28. 16:19

 

 

 

 

 

헬조선의 비겁한 윗분들

 

 

 

 

역사적으로 볼 때 한반도에 거주하는 피지배층이 진정 이 땅에서 태어나길 잘했다고 느낀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살아가는 고통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시대에 걸쳐 다양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최근 인터넷의 집단지성에 의해 그것은 ‘헬조선’이라는 신조어로 압축되었다.

 

물론 임진왜란 당시에는 영어가 쓰이지 않았으므로, 한양을 향해 질주하는 일본군을 피해 자기 집안 위패를 싸들고 도망가던 선조를 바라보던 조선의 백성들이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취지의 분노와 원망의 언어는 다양한 기록에 남아 있다. 조선의 백성들이 영어를 알았다면 ‘헬조선’을 부르짖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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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상흔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병자호란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외적이 북쪽에서 내려온 탓에 임금에게는 백성과 나라를 버리고 만주로 도망치는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고, 결국 남한산성에 틀어박혔다가 항복을 했다.

 

당시 조선의 여성들은 침략자들에게 집단으로 납치되었다가 그 중 일부가 무사히 돌아왔는데, 제대로 나라를 지키지도 못했던 남자들이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에게 ‘환향녀’라고 손가락질을 시작했다. 역시 용어만 없다 뿐이지 ‘헬조선’이었던 것이다.

 

‘헬조선’의 역사는 조선왕조가 몰락하고 대한민국이 시작된 이후에도 지속됐다. 북한군의 동태가 심상치 않았지만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요지부동이었다. 실제로 침략이 개시되자 그는 누구보다 민첩하게 도망길에 올랐고, 모두가 다 알고 있다시피 한강 철교를 폭파하며 자신의 도주로를 확보했다.

 

폭파되는 다리 위에서 목숨을 잃은 800여명의 국민들, 다리를 건너지 못한 채 발이 묶인 수많은 국민들에게 과연 이 나라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이었겠는가?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나 해방 후나 일관되게 ‘헬조선’이었을 따름이다.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지 나는 한마디로 단정짓지 못하겠다. 하지만 ‘헬조선’은 그 성격이 매우 뚜렷하다. 의사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그 의사결정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는 나라, 그것이 바로 ‘헬조선’의 본질이다. ‘윗분’이 되면 아무 판단이나 함부로 내려도 된다. 반면 당신의 신분이 ‘아랫것’으로 결정되어 있다면, 심지어 자신이 내리지도 않은 결정 때문에 덤터기를 쓰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가령 걸그룹 트와이스의 쯔위 사태를 되짚어보자. 애초에 문제의 씨앗을 뿌린 것은 MBC다. 소품으로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들고 와서 쯔위의 손에 쥐여주지 않았다면 그런 논란이 생기지도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 생중계 영상이 나왔고, 그것을 중국의 누리꾼들과 대만 가수 황안이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JYP엔터테인먼트에서 소속 가수를 보호해야 할 차례 아닐까 싶었는데, 그들은 초췌한 모습의 쯔위를 앞세운 사죄 동영상을 내보냈다. ‘어떻게 자신들이 보호해야 할 가수에게 저런 짓을 시킬까’ 놀랍지만, 다시 말하건대 ‘헬조선’의 문화적 전통을 염두에 둔다면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재벌 기업들이 앞장서서 벌이고 있는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1000만 서명운동’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넣었다. 대통령이 이렇게 팔을 걷어붙이자 총리부터 공직자들이 줄줄이 서명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입법부의 일원인 국회의원들까지 충성 경쟁에 나서는 추세다.

 

법과 제도에 의해 움직이는 나라라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지만, ‘헬조선’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이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윗분들’은 이 법이 필요하지만, 그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는 확고한 의사의 표현이다. 만약 이렇게 해서까지 법을 바꿨는데 경제가 안 살아나면 그건 서명운동에 참여한 1000만명의 국민 때문이지, 죽었다 깨어나도 박근혜 탓은 아니게 된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는 권한과 책임이 따로 노는 ‘헬조선’에 대한 거부 선언이기도 하다. 국가, 기업, 기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윗분들’이 책임을 지는 나라, 그런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 노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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