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U2 2016. 2. 1. 19:21

 

 

 

 

 

김홍걸, 안철수 측 오보사건으로 입당결심

 

 

 

김대중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 박사의 더불어민주당 입당은 안철수 의원 측의 오보사건이 결정적 계기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겨레 신문>과 인터뷰에 나선 김홍걸 박사의 입을 통해서다.

 

29일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김 박사는 “제가 이번에 (입당을) 결정하게 된 것은 문재인 대표가 요청을 해서 한 게 아니다. 지난번 오보 사건 이후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고,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분들을 만나서 의견을 구했다”며 “그 분들 중에는 정치권 밖에 있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그 분들이 이번엔 나서는 게 좋겠다. 이 상황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에 동의를 하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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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녹취록 문제에 대해서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녹취를 누가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깜짝 놀랐다. 왜 그걸 녹취하고 내용이 또 밖으로 나갔는지 잘 이해가 안 간다”며 “그 일에 개입된 사람이 누구일 것이라는 대충 짐작은 하는데, 그 분들이 대부분 아버님을 모셨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머니께는 실망하실까봐 차마 말씀을 못드리고 있다. 얼마나 실망스러우시겠나. 그 분들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다. 아무리 정치판이 혼탁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곳이라지만 최소한 인간의 도리는 지켜야 되지 않겠나”라고 질타했다.

 

앞서 4일 안철수 의원은 신년인사차 동교동을 찾아 이희호 여사를 예방했다. 예방이 끝나고 안 의원 측은 이번 비공개면담에서 이 여사가 안 의원에게 ‘이번에는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뭔가 이뤄질 수 있는 희망을 느꼈다. 꼭 주축이 돼 정권교체를 하시라’고 덕담했다고 취재진에게 전했다.

 

그러나 김 박사는 안 의원 측의 이 같은 발언에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고, 사건 이후 더민주에 정식 입당했다.

 

최근에는 안 의원 측에서 이 여사의 예방을 녹취한 사실이 공개되면서 파문이 일었다. 안 의원은 해당실무진을 경질했으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더구나 녹취록에 따르면, ‘꼭 주축이 돼 정권교체를 하시라’ 등의 덕담 내용은 없었다.

 

 

*시사위크 정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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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걸 “아버지 이름을 팔며 야권분열 일삼는 것에 분통,, 내 발로 더민주 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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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연세대 객원교수는 ‘이희호 여사 녹취록’ 사건에 대해 “그 일에 개입된 사람이 누구 누구일 것이라는 것을 대충 짐작은 하는데…. 그분들이 대부분 저희 아버님을 모셨던 사람들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9일 인터넷판으로 보도된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녹취를 누가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깜짝 놀랐다. 왜 그걸 녹취하고, 내용이 또 밖으로 왜 나갔는지. 누가 했든지간에 왜 내보냈는지도 잘 이해가 안 간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인터뷰는 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이뤄졌다. 김 교수는 지난 24일 더불어민주당 입당 이후 중국에 머물다가 27일 귀국했다.

 

짐작 가는 사람들에 대해 김 교수는 “어머니한테는 실망하실까봐 차마 말씀을 못 드리고 있다”며 “그런데 그분들한테 한마디만 하고 싶다. 아무리 정치판이 혼탁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곳이라지만 최소한 인간의 도리는 지켜야 되지 않겠나”라고 일갈했다.

 

또 이훈평‧박양수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일부에서 ‘이희호 여사가 자신의 정치참여를 만류했다’고 한 것에 대해 김 교수는 “정치하는 걸 반대하셨다고 하는 표현은 옳지 않고 염려를 많이 하셨다는 표현이 옳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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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정치판이 워낙 험하니까 제가 다칠까봐 염려를 많이 하신 것”이라며 “정치를 절대 하면 안 된다, 누구 누구를 위해서 너는 정치하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희호 여사가 “문재인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제가 입당하는 걸 반대하셨다는 것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문재인 대표가 물러나시면서 인사드리러 가겠다고 드린 건데, 번거롭게 오실 필요는 없다고 해서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 받으신 것”이라고 정정했다.

 

지난 24일 더민주 입당 당시 “DJ와 호남을 분열‧갈등의 수단으로 삼지 말라”고 한 것과 관련 김 교수는 “아버지께서 과거에 정권교체를 해서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한반도 평화를 이루시려는 대의를 위해서 다른 정치세력에게 어떨 때는 필요 이상으로 양보하시고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으셨는데 그런 점을 다시 새겨봐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김 교수는 “(DJ가) 돌아가시기 대략 두 달 전에, 문재인, 박지원, 정세균, 안희정 이런 분들을 불러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제 그동안의 감정이나 서운함, 이런 것들은 다 버리고 다른 야권 세력까지도 다 끌어 모아서 어떻게든 정권 교체를 해라, 이 수구 보수 정권이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그 유지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탈당파들을 비판했다.

 

더 구체적 동기에 대해 김 교수는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 나선 게 아니고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나선 것도 아니다”며 “가만히 있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아서….”라고 밝혔다.

 

그는 “아버지의 정신이 훼손되고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 아버지 이름을 팔고 다니고 있다”면서 “제가 보기에는 ‘저 사람이 호남 출신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여권 보수 세력에 가 있을 텐데’ 하는 성향의 사람까지도 아버지 이름을 들먹이고 하니까…”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아버지의 정신, 통합과 화합의 정신이 훼손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점을 많이 우려했다”고 DJ의정신을 지키기 위해서임을 강조했다.

 

입당 과정과 관련 김 교수는 “1월5일 쯤인가 6일엔가 문재인 대표를 잠깐 뵀는데 ‘권노갑 고문님을 탈당하지 마시라고 설득해야 겠는데 어떻게 말씀을 드리는 게 좋겠냐’고 물어보셔서 조금 말씀드리고 말았다”며 “그 자리에서는 들어와라 마라 말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후 6일 중앙일보 보도 사건이 터지자 “오보 사건 이후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분들, 불편부당하게 판단하는 분들 만나서 의견을 구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 분들 중에 한 두 분은 소위 친노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문 전 대표에 대해서 서운한 감정을 갖고 평소에 그리 좋게 말씀하시던 분들이 아니다”면서 “그런데 제가 얘기하니 의외로 잘 생각했다, 그렇게(입당) 해라, 하시더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어떻게든 나서서 당을 돕겠다고 했다”며 먼저 입당 제안을 했던 사실을 밝히며 “대부분 사람들이 내가 당원이 아닌 걸 모른다. 평생 한번도 정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입당 형식으로 하면 어떠냐 해서 한 것이고 영입이 아니다”며 “제 발로 찾아갔으니 일종의 자원봉사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셔간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출마 등 향후 행보와 관련 김 교수는 “출마에 별 뜻이 없는 건 분명하다”고 선을 긋고 “그런데 어쨌든 나섰으니까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 정도만 있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나서면서 주변 반응을 보면서 좀 놀랐달까 실망했달까 하는 게, 너무 정치판이 혼탁해지니까 순수한 의도로 뭘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아예 상상을 못하더라”며 “뭔가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아무것도 생기는 게 없다면 왜 하나 이런 생각을 하더라”라고 전했다.

 

김 교수는 “당연히 뭘 해주면 대가를 받아야 되는 것으로 보는 거다. 근데 이건 장사가 아니지 않냐”라며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절대 그런 거래하는 식의 주고 받고 하는 식의 정치를 하지 않으셨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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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녹음’ 사과에도 논란 확산…“독대직후 安 인터뷰 진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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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이 파문을 일으킨 ‘이회호 여사 독대 녹취록’과 관련 27일 녹음자는 수행원이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국민의당 최원식 대변인은 이날 긴급브리핑에서 “안철수 의원을 수행했던 실무진이 녹음했다”며 “오늘 중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겠다,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문성근 ‘백만송이 국민의명령’ 상임운영위원장은 트위터에서 “수행원이 녹음했다” 치고, 그럼 안철수 의원의 이 발언은 뭐죠?”라고 연합뉴스TV에 보도된 안 의원의 발언을 지적하며 의문을 제기했다.

 

연합뉴스TV에 따르면 안 의원은 이희호 여사와의 독대 직후 인터뷰에서 “(이 여사가) 앞으로 만드는 정당이 정권교체를 하는데 꼭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많은 기대를 갖고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파문의 발단이 된 지난 6일 <중앙일보>의 보도와 일맥상통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그러나 <월간중앙>이 25일 공개한 녹취록 전문에 따르면 이 여사는 덕담 수준에 불과한 말을 짧게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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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중앙>은 6일 <“꼭 정권교체 하세요, 꼭” 이희호 여사, 안철수 지지>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희호 여사가 무소속 안철수 의원에게 사실상 지지 의사를 밝혔다고 안 의원 측 핵심 관계자가 5일 말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 여사가 ‘이번에는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뭔가 이뤄질 수 있는 희망을 느꼈다. 꼭 주축이 돼 정권교체를 하시라’, ‘올해 총선에서도 많은 숫자(의석)를 가져가야 하는데’라고 말했으며 “꼭 정권교체 하세요, 꼭”이라고 재차 강조했다고 핵심 관계자는 전했다고 보도했다.

 

<중앙> 보도 직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연세대 객원교수는 입장문을 내고 “어머님은 안철수 의원의 말씀을 듣기만 하였을 뿐 다른 말씀을 하신 적이 없음을 확인했다”며 “사실과 다른 보도 내용에 대해 어머님께서는 어이가 없어 하셨다”고 부인했다. 김홍걸 교수는 중앙일보에 정정 보도도 요청했다.

 

이후 <월간중앙>이 김홍걸씨의 더불어민주당 입당 다음날인 25일 비공개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뻥튀기’ 왜곡 의혹과 정치 도덕성 논란으로 확산됐다.

 

또 <월간중앙>은 이희호 여사와 이 여사 측 관계자의 발언을 잘못 표기해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안 의원의 “꼭 건강하셔서...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꼭 정권교체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꼭 정권교체가 되도록 밀알이 되겠다는 마음입니다”라는 말에 이 여사가 “꼭 그렇게 하세요”라고 덕담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독대 녹음과 공개’에 대해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런 면담을 녹음하는 게 일반적 관행인가요?”라며 “그렇지 않다면 처음부터 정치적 활용을 염두에 두고 녹음을 한 것일테고 설사 관행이다 하더라도 그것을 언론에 공개한 것은 범법 내지 부도덕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비판했었다.

 

‘수행원 소행’ 발표에 대해선 진 교수는 이날 트위터에서 “녹음하고 녹취 깐 것은 몰랐다 해도, 적어도 이 부분은 안철수씨의 잘못으로 보인다”며 “유권자들 앞에서 진실하지 못했던 거죠. 이희호 여사에게도 해서는 안 될 무례를 범한 것이기도 하구요”라고 지적했다.  

 

김민아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26일자 <안철수, 이희호, 녹취록> 칼럼에서 “통신비밀보호법은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자신이 대화의 당사자인 경우, 녹음이 합법이라는 뜻이다”며 “안 의원 측에서 녹음했다 해도 불법은 아니다. 다만 정치적 도의나 윤리 측면에선 비판받을 소지가 짙다”고 경고했다. 

 

또 김 위원은 “배석했던 안 의원 측근들은 “녹음한 사실이 없다”며 부인했다”며 이날 긴급브리핑 전 안 의원측의 분위기를 전했다.

 

 

- 민일성

 

© go발뉴스닷컴 ( http://www.goba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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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걸 “아버지, 별세 두달 전 문재인·박지원 불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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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삼남 김홍걸씨 생애 첫 인터뷰


“서운한 감정 다 버리고 야권이 힘 합쳐 정권교체하라고 당부
이번 녹취에 아버님 모셨던 분들이 개입…인간의 도리 지켜야
내가 누구 아들이니 ‘더민주’ 찍어달라는 식으로 얘기 안할 것”

 

‘동교동’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야권이 분열하면서 누가 야당의 정통성을 잇느냐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한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셋째아들 김홍걸(53) 연세대 객원교수가 자리하고 있다. 1월24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이후 그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도 ‘법통’의 문제와 얽혀 있다.

 

김 교수를 1월28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평생 처음’이란다. 그는 자신이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버님이 평생 노력하신 게 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 평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그 모든 게 무너지는 걸 보시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함을 안고 돌아가셨다. 지금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다. 전 맨 주먹이지만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려고 나섰다.” 인터뷰는 <한겨레> 정치팀의 송경화 기자와 함께 1시간여 동안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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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이희호 이사장의 건강은 어떤가?

“어제 중국에서 귀국하자마자 병원에 들렀다. 골반뼈에 금이 갔다고 한다. 안 좋으신데 경과를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안철수 의원이 동교동에 인사를 갔다가 녹음을 한 게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에서 뉴스를 보고 놀랐다. 녹취를 누가 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깜짝 놀랐다. 왜 그걸 녹취하고, 내용이 또 밖으로 왜 나갔는지. 누가 했든지간에 왜 내보냈는지도 잘 이해가 안 간다. 그 일에 개입된 사람이 누구 누구일 것이라는 것을 대충 짐작은 하는데…. 그분들이 대부분 저희 아버님을 모셨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어머니한테는 실망하실까봐 차마 말씀을 못드리고 있다. 얼마나 실망스러우시겠나. 그런데 그분들한테 한마디만 하고 싶다. 아무리 정치판이 혼탁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곳이라지만 최소한 인간의 도리는 지켜야 되지 않겠나.”

 

-안철수 의원 쪽 사람들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이 관련된 건가.

 

“네. 짐작을 한다는 거다. 그런 걸 다 알 수 있는 위치니까.”

 

-아버님을 모셨던 분들이라면 복수의 사람들인가?

 

“그렇다. 언론 쪽에 계신 분들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계시고 있더라. 뭐 엄청난 비밀도 아니고….”

 

-국민의당이 녹취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했는데, 발언의 뜻을 과장한 부분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제가 사과하라고 요구할 생각은 없다. 그분들의 양식에 맡기겠다.” 

 

 

어머니는 제가 정치하는 걸 염려했지만 반대는 안해

 

-이훈평 전 의원, 박양수 전 의원 등 동교동계 몇분이 ‘이희호 이사장이 아들의 정치 참여를 만류했다’고 하면서 어머님과 아드님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하고 있다.

 

“지금 어머니는 분명히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으신다고 했고 제가 이번에 나선 이유 중에 하나도 어머니의 명예에 누가 가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도 있다. 지난번 (안철수 의원 관련) 오보 사건이 큰 계기가 됐다.

 

어머니에 대한 것은 지금 이 한마디만 하고 더 이상 하지 않겠다. 어머니가 제가 정치하는 걸 반대하셨다고 하는 표현은 옳지 않고 염려를 많이 하셨다는 표현이 옳다. 제 성격이 정치에 맞지 않고 또 제가 집안 일도 챙겨야 될 것이 많고 정치판이 워낙 험하니까 제가 다칠까봐 염려를 많이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제가 다른 걱정거리가 없고 모든 게 다 안정돼 있고 험난한 걸 다 헤쳐나갈 준비가 돼 있다면 해도 좋다, 그런데 지금 그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좀 염려된다, 그렇게는 말씀하신 적은 있다. 그러나 정치를 절대 하면 안 된다, 누구 누구를 위해서 너는 정치하면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말씀하신 적은 없다.

 

어머니가 문재인 전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제가 입당하는 걸 반대하셨다는 것도 전혀 사실과 다르다. 전화는 문재인 대표가 물러나시면서 인사드리러 가겠다고 드린 건데, 번거롭게 오실 필요는 없다고 해서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 받으신 것이다. 거기서도 어머니가 저에 대해 하신 말씀은 ‘그냥 좀 별탈 없이 아들이 지혜롭게 잘 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는 정도의 염려 말씀이었다. 잘 해야 할 텐데, 그런 투의 말씀을 한마디만 간단히 하신 것이다. 그것을 마치 어머니가 문재인 전 대표에게 먼저 연락을 해서 ‘아들을 데려가지 마라’ 이렇게 하셨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평소 어머니 성격을 아시는 분이라면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어머니를 알 만한 분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란 걸 안다. 확인 안 해보고도 알 것이다.

 

제가 입당 다음날 중국으로 떠나기 전에 어머니께 당부의 말씀을 드렸다. 요즘 워낙 혼탁하고 쓸데 없는 말이 많으니까 누가 뭐라고 해도 듣지 마시고 ‘자기 일을 알아서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됐으니 소신껏 하게 놔두라’ 이렇게 말씀해달라고 하니 ‘어, 알았다’고 하셨다.”

 

-이훈평·박양수 전 의원 등은 어머님을 잘 아시는 분들일텐데 왜 그런 얘기까지 하는 건가?

 

“그분들의 마음속은 제가 알 수가 없으니까 뭐라 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짧게든 길게든 아버지를 모셨던 분들은 다 이제 잘 되시기를 저는 바라고 있다. 지금은 좀 다른 길을 가더라도 그분들이 특정 정치 세력을 반대하고 특정 세력을 도와주기 위한 게 아니고 통합해서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해 갔다고 하니까 저는 그 말씀을 믿고 그렇게 약속을 지켜주시리라고 생각하고 있다.”

 

-동교동계가 명분은 통합이지만 사실은 더 분열의 길을 걷는다고 보지는 않는가.

 

“그분들 속을 알 수가 없으니까…. 또 제가 연락해서 따진다고 갑자기 태도가 바뀔 것도 아니다. 제 입장은 그분들 입장을 존중해줄테니 그분들도 제 입장을 존중해달라는 것이죠. 제가 평소에 과묵하고 아주 친한 사람, 편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말을 많이 안 하기 때문에 아직도 저를 어린애로 생각하실 수 있다. 또 남의 사주를 받아서 억지로 끌려서 혹은 속아서 이런 걸로 오해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저도 제 나름대로 소신이 있고 그 소신에 따라서 행동하는 거다.”

 

-입당할 때 ‘더 이상 아버님과 호남을 분열과 갈등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네거티브한 의도로 얘기한 게 아니고 포지티브한 의도로, 나아갈 방향이 이래야지 않겠는가 하는 뜻이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것을 저는 따라 할 뿐이다. 제가 솔직히 그렇게 잘난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의 가르침을 충실히 잘 따랐다고 큰소리 칠만한 입장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게 하고 싶다. 이제 아버지께서 과거에 정권교체를 해서 민주주의를 확립하고 한반도 평화를 이루시려는 그 대의를 위해서 다른 정치세력에게 어떨 때는 필요 이상으로 양보하시고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으셨는데 그런 점을 다시 새겨봐야 할 것이다. 또 돌아가시기 대략 두 달 전에, 문재인 박지원 정세균 안희정 이런 분들을 불러 식사하는 자리에서 ‘이제 그동안의 감정이나 서운함, 이런 것들은 다 버리고 다른 야권 세력까지도 다 끌어 모아서 어떻게든 정권 교체를 해라, 이 수구 보수 정권이 계속되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던 그 유지를 따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신에 비춰볼 때 국민의당에 대한 평가는?

 

“그 당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기 때문에 뭐라고 평할 수가 없다. 그리고 국민의당에 반대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누구 누구에 반대하기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게 아니다. 좀전에 말씀드린 그런 대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제가 부족하지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려고 나선 것이다.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 나선 게 아니고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나선 것도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죄를 짓는다?

“아버지의 정신이 훼손되고 이 사람 저 사람 아무나 아버지 이름을 팔고 다니고 있다. 제가 보기에는 ‘저 사람이 호남 출신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여권 보수 세력에 가 있을 텐데’ 하는 성향의 사람까지도 아버지 이름을 들먹이고 하니까…. 아버지의 정신, 통합과 화합의 정신이 훼손될 수 있지 않나 하는 점을 많이 우려했다.”

 

-입당 때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의 정통 본류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물론 부족한 점이 많고 지지해 주셨던 유권자들을 실망시킨 부분도 많은 것을 안다. 회초리를 맞아야 되는 부분이 많은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래도 민주 개혁 세력이 모일 수 있는 구심점은 거기밖에 없다고 봤다. 무너진 집이라도 다시 세워서 살 곳을 만들어야지, 조금 헐었다고 그래서 때려 부술 순 없는 것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더불어민주당을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특정인이나 특정 세력을 일방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다. 원칙에서 벗어나면 누구든지 비판할 수 있다. 앞으로도 나의 주관대로 말과 행동을 할 것이다. 내편이니까 두둔해 주고 남의 편이니까 욕하고 이런 것은 안 한다. 불편부당하게 하겠다.”

 

-국민의당은 제3의 중도 정당을 표방하고 나섰다.

 

“말씀드린대로 국민의당은 잘 모르고, 자꾸 뭐가 변하고 상황이 변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함부로 말씀을 드릴 수가 없다. 아마 언론에서도 뭐라고 딱히 규정짓기가 힘드시지 않을까 싶다.”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관계는 어떻게 보나. 한때 대북송금 특검으로 갈등도 있지 않았었나.

“아버지께서도 그때는 마음에 상처를 많이 입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노무현 정권에서 판단을 잘못한 것이지 악의적으로 한 일이라고는 보지는 않는다. 잘못된 판단이었고, 또 당시 한나라당과 언론에서 그렇게 압박을 가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하셨을까 싶다. 그 때 한나라당이 다수당이었지 않나.”

 

-두 분 정신이 같은 것이라고 보나?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지역감정 해소, 사회의 민주화, 권위주의 타파, 한반도 평화 등등. 큰 것에서 동의를 하면 작은 것에서 좀 틀리더라도 그것은 서로 조정을 해가면서 같이 손잡고 가야지, 작은 것에서 맞지 않는다고 분열해서는 안 된다. 민주 개혁 세력이 같이 뭉쳐도 이기기가 쉽지 않은데 분열하면 이익을 볼 사람이 누구겠나.”

 

-통합과 단결을 김대중 정신의 요체로 보는 건가.

“그렇다. 아버님에 대해 한 말씀 드리자면, 아버님이 전쟁 전에 사업가이셨는데 사업가로 꾸준히 하셨으면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할 수 있었는데 힘든 정치의 길로 나선 이유가 전쟁 때 동족 상잔의 비극을 보시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선 안 되겠구나 생각을 해서이다. 그 당시에 인민군들에 잡혀서 총살을 당하기 직전에 살아나셨는데 보통 전쟁 때 그런 경험을 겪은 분들은 극우파가 되고 강경파가 되는데 반대로 아버지는 그런 경험을 증오가 아닌 동포에 대한 사랑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를 시키셨다.”

 

 

제 발로 찾아갔으니 영입이 아니라 자원봉사

 

-더민주에 입당하게 된 계기는?

 

“제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아무런 거래도 없었다. 그리고 문재인 대표께서도 지난해 두 세번, 저하고 함께하고 싶다는 말씀은 하셨지만 제가 ‘정치엔 뜻이 없다 또 상황이 좋으면 고려해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내 분란이 심한데 특정 계파, 특정인을 편드는 것처럼 보여서 곤란하다, 다만 대의명분이 있는 좋은 일이라면 나서서 도울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만 얘기했다. 한참 된 얘기다.”

 

-그럼 최근에 다시 논의가 된 계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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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5일 쯤인가 6일엔가 문재인 대표를 잠깐 뵀는데 저하고 무슨 얘기를 하기 위해서 본 게 아니고 ‘권노갑 고문님을 탈당하지 마시라고 설득해야 겠는데 어떻게 말씀을 드리는 게 좋겠냐’고 물어보셔서 조금 말씀드리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는 들어와라 마라 말도 없었다.

 

그러니까 제가 이번에 결정을 하게 된 것은 문 대표가 요청을 해서 한 게 아니다. 지난번 오보 사건 이후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면서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중립적인 분들, 그러니까 불편부당하게 판단하는 분들 만나서 의견을 구했다.

 

그 분들 중에는 정치권 밖에 있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다들 이번엔 나서는 게 좋겠다, 이 상황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에 동의를 하셨다. 또 이번에 감동을 받은 것이 그 분들 중에 한 두 분은 소위 친노라고 하는 사람들이나 문 전 대표에 대해서 서운한 감정을 갖고 평소에 그리 좋게 말씀하시던 분들이 아니다. 그런데 제가 얘기하니 의외로 잘 생각했다, 그렇게 해라, 하시더라. 그런 분들은 아버님처럼 개인 감정에 치우쳐서 판단하는 게 아니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대의에 따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분이고 그런 분들이 바로 정말 김대중 정신을 제대로 계승한 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먼저 입당을 제안한 것인가?

 

“어떻게든 나서서 당을 돕겠다고 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내가 당원이 아닌 걸 모른다. 지난 번 대선 때도 약속한대로 대선 기간 동안만 돕고 그냥 제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나. 당원이 아니었다. 평생 한번도 정당에 가입한 적이 없다.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입당 형식으로 하면 어떠냐 해서 한 것이고 영입이 아니다. 제 발로 찾아갔으니 일종의 자원봉사자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셔간 게 아니다.”

 

-입당 때 출마 문제는 나중에 분명하게 밝히겠다 했는데.

 

“출마에 별 뜻이 없는 건 분명하다. 그런데 어쨌든 나섰으니까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 정도만 있지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다. 출마가 목적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서 나선 것이 아니다. 이번에 나서면서 주변 반응을 보면서 좀 놀랐달까 실망했달까 하는 게, 너무 정치판이 혼탁해지니까 순수한 의도로 뭘 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아예 상상을 못하더라. 뭔가 대가가 있어야 하지 아무것도 생기는 게 없다면 왜 하나 이런 생각을 하더라. 당연히 뭘 해주면 대가를 받아야 되는 것으로 보는 거다. 근데 이건 장사가 아니지 않냐. 그리고 아버지께서도 절대 그런 거래하는 식의 주고 받고 하는 식의 정치를 하지 않으셨다. 1980년도에 사형을 앞두고도 그 쪽에서 우리하고 협조하면 살려주고 좋은 자리도 주겠다고 했는데 거절하고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셨고 3당 합당 때도 먼저 제의를 받으셨지만 거절하지 않았냐. 3당 합당 때 제의를 받아들이셨으면 대통령에 5년 빨리 되셨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머님도, 1980년도에 아버지가 그 사람들하고 타협하고 손 잡았다면 아마 아버지를 용서 못 하셨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저도 똑같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다 똑같은 마음이었다. ‘타협하고 살길 찾지’ 이런 얘기는 꿈에도 할 수 없는 게 집안 분위기다.”

 

-앞으로 당을 위한 구체적 활동 계획은?

 

“아직은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상의를 더 해봐야 될 것 같다. 어떤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지를. 제가 일방적으로 내가 누구 아들인데 더불어민주당 좀 찍어주시오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구시대적 방법이고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민주가 그동안 이렇게 잘못했는데 반성을 하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하니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 이렇게 할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 나도 말할 명분이 생기지 않을까.” 

 

-천정배 의원이 ‘재산은 상속해도 정치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김대중 정신의 승계권이 김 교수에게 있는 게 아니라는 취지다.

“나는 잘난 사람도 못 되고 큰일을 할 인물도 못 되지만 뒤늦게나마 아버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아버님이 항상 말씀하신 게,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 하셨다. 그러니까 제가 김대중 정신을 독점해서 제가 하는 말이 무조건 진리다 이런 뜻이 아니고, 그저 제 나름대로 과거에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을 되새기면서 그 길을 따라가려 하는 것 뿐이지 제 방식만 옳고 남들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말하고 싶다. 솔직히 재산은 물려받을 게 없다. 남기고 가신 게 집밖에 없는데, 그 집도 벌써 30년 전에 저희 자식들에게 ‘이 집은 내 힘으로 마련한 게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도와줘 생긴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공공의 목적으로 쓸 것이다’고 아버지가 말했기에 그건 물려받을 게 없다. 대신 정신은 물려받으려고 한다.”

 

 

-자라면서 아버지로부터 얘기를 많이 들었나.

 

“자식들한테야 정치적인 얘기를 많이 하시진 않으셨다. 그런데 다른 분들하고 말하는 걸 옆에서 들으면서 그 분의 뜻을 어느 정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때부터다. 저희 부모님은, 흔히 보는 부모 자식과는 다르다고 봐야 한다. 민주화운동이라든가 여러가지 큰일, 공적인 일을 우선시하신 분들이다. 자식 출세시켜야지, 재산 물려줘야지 이런 걸 생각하신 분들이 아니다. 일반 부모님들하고는 틀리다. 과거 독립투사를 보는 것 같은 분들이라 일반 부모님들하고는 근본적으로 사고방식이 틀린 분들이다.”

 

 

‘게이트 연루’로 부모님께 누를 끼쳐 두고두고 죄송

 

-아버님이 어렵지 않았나.

 

“당연히 어려운 점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자식들에 다정다감하고 세세한 것까지 신경써주시고 이러시는 타입은 아니었다.”

 

 

-1980년에 아버님이 김 교수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게 있다. ‘어린시절과 사춘기의 너에게 준 충격이 얼마나 컸을까 생각할 때 아버지는 언제나 너에게 본의 아닌 못할 일을 한 것 같은 죄책감을 느껴왔다.’ 이런 미안함을 평소에 표현했나.

 

“1980년도 사형선고 받으신 후에 가족들이 면회를 갔을 때 한번 그런 말씀을 유언처럼 하신 적이 있다. 입원하시고 한 달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입원하기 1~2주 전에 뵀다. 그 때 건강 상태가 안 좋으신 상황이었는데 과거의 일들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셨다. 저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많이 이해를 해주셨다. 왠지 그게 유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된 부분도 공격을 받고 있다.

 

“제가 세상 물정 모르고…. 그 당시에 사실 말이 삼십대 중반이지 사회 생활을 안 해봐서 뭐가 뭔지도 모르고 소심해가지고 짚고 넘어갈 것도 대충 넘어가고 말을 못 꺼내…. 말을 하자면 할 말은 있지만 그래봐야 변명으로 밖에 더 들리겠나. 부모님께 누를 끼친 게 두고두고 죄송할 뿐이다. 아버님은 평생 바른 길만 걸어오셨고 임기 중에도 어떠한 부정이나 편법도 배제하셨다. 70대 중반의 노구셨는데도 정신력으로 버티시면서 오직 사명감으로 일하셨다. 그런 아버지 명예에 큰 손상을 입혔다. 아버지의 업적이 아들 때문에 훼손됐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죄송스러웠고, 사건 뒤 2년 동안은 얼굴도 들기 힘들 정도로 힘들었다. 사건 뒤 10여년이 지났는데 속죄를 하기 위해, 그냥 무기력하게 살지 않고 이번에는 뭔가 옳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서게 됐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그 분이 살아 계실 때는 효…(흐느끼느라 말을 잇지 못함) 한 번도 효도를 못했는데… 돌아가신 후에라도…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번에는 한 번 하늘에서 내려다 보실 때 자랑스런 아들이 한 번 돼보려고 생각한다.”

 

 

-김의겸 송경화

 

ⓒ 한겨레 ( http://www.hani.co.kr/)

 

 

 

 

 
 
 

인터뷰

U2 2015. 3. 16. 00:59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사람들’ 첫 인터뷰

 

 

 

 

 

 

“박 대통령 비판 전단지, 우리가 뿌렸다”
“우리는 소시민…SNS 등 통해서 알게 된 사이”
“옛날식 저항 방식, 정권이 과거로 회귀한 탓”
“박근혜 정부의 온갖 비정상 비판 메시지 전하고 싶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이 지난해 말부터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에서 수백, 수천 장씩 뿌려지고 있다. 지난달 25~28일에는 나흘 연속 청와대 인근 버스정류장, 신촌, 명동, 강남 등지에서 전단이 뿌려졌다. 전단에는 주로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파기와 국정원 대선 개입 등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단 살포의 주체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인데,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의 고층빌딩에서 전단을 뿌린 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들의 정체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에는 마스크와 두꺼운 옷으로 얼굴과 몸을 가린 사람들이 옥상으로 올라가는 모습만 찍혀 있다.

 

경찰은 이들을 건조물 침입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체포하려 하지만 아직까지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왜 전단을 뿌리고 있는지, 앞으로도 계속 전단을 뿌릴지 등을 놓고 SNS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한겨레>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사람들’ 회원 중 한 명을 인터뷰했다. 신변 노출 가능성 때문에 인터뷰는 몇 단계를 거쳐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진행했다.

 

-‘박근혜 대통령 비판 전단지’를 잇따라 뿌려지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당신들은 누구인가?

 

= 특정 단체에 다 같이 모여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새롭게 단체를 만든 것도 아니다. 전단지 배포를 통해 지속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임시로 명의를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로 만들었다. 이 일을 서로 도운 몇몇은 소시민들이다. 간혹 집회에 참여하고, SNS를 통해서 알게된 몇몇이 함께 기획하게 된 일이다.

 

- 어떤 조직이나 체계를 갖추고 있는 단체인가?

= 조직이나 체계는 없다. 다만, 그때그때마다 누구는 복사하고 누구는 어디로 가서 배포하고 이런 분업은 한다. 이 일에 실질적으로 함께 한 사람들은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다.

 

- 전단지를 뿌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난 이후 자행된 온갖 비정상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던지고 싶었다.선거 부정은 정권의 정당성을 흔들 수 있는 문제다. 이를 은폐하는 검은 권력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다. 비판세력에 대한 압도적인 탄압, 종북몰이는 권위주의 그 이상이라고 생각됐다.

 

불통과 독선, 자의적인 법 적용으로 민주주의도 고사되었다. 경제민주화 공약의 대대적 후퇴, 친재벌·반서민 정책도 문제가 된다고 본다. 세월호 사태에 대한 대응이나, 대통령의 대화 수준, 정책 이해를 보면 능력도 너무 없는 정부라고 생각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종북으로 몰리는 세태에 대해 지적하고 싶었다.

 

- 요즘은 인터넷과 SNS 등 사람들에게 의견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수단들이 많은데, 왜 옛날 방식인 전단지를 선택했는가?

= 수만명이 모여 집회를 해도 그들의 메시지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 여론을 형성하는 책임이 있는 언론이 길 막히니까 돌아가라는 수준이다. 짧지만, 선명한 메시지라도 정확히 전달하고 싶었다. 정권이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로 회귀하니 저항 방식도 80년대식으로 하는 것도 일종의 풍자라고 보았다. 그래서 삐라 살포 같은 방식을 생각하게 되었다. 예전에 어디 옥상에서 전단지 뿌리고 구호 외치다가 잡혀가고, 그런 식이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식이라면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전단지는 불과 몇천장이다. SNS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 숫자보다 훨씬 작다. 하지만, 언론이 이를 다뤄준다면 SNS보다 훨씬 큰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도 포탈 메인뿐 아니라 공중파에서도 다뤄졌다. 성과가 있다고 본다.

 

- 전단지를 뿌릴 때마다 내용이 달라진다. 전단지 내용은 어떻게 정하나?

= 가장 시의적절하고,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면서 현 정부에 대한 가장 비판적인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나, 저속한 풍자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우리에겐 중요하다. 팩트를 기반으로 풍자하고자 한다.

 

- 적게는 수백장에서 많게는 수천장을 뿌리는데 인쇄는 어떻게 하는가?

= 한겨레신문사에서 좀 수만장 찍어주면 안되나?(웃음) 복사로도 가능하고 인터넷 주문으로도 가능하다. 수천장이라고 해봤자 크기가 작아서 별일 아니다.

 

- 전단지를 본 시민들의 반응을 살펴봤나? 시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 현장의 시민들 반응을 살펴본 적은 없다. 다만, 인터넷 반응을 보면 매우 우호적인 것 같다. 그런 분들만 글을 남겨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없는 말 지어낸 것도 아니기 때문에 비난받을 일은 크게 없을 것 같다. 물론, 사실 자체를 은폐하고 싶은 일부에게는 욕을 먹을 수 있다고 본다. 새누리당의 과민한 반응을 보면 그런거 같다.

                   

 

 

경찰이 건조물 침입죄, 경범죄, 대통령 모욕죄 등을 들어 수사에 나섰다고 한다. 대구나 부산에서는 전단지 뿌린 사람들의 집을 압수수색하고 오토바이 불법 개조를 문제 삼았다. 경찰의 대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전단지 몇천장 뿌린 것이 쓰레기 무단 투기라? 공적인 목적이 크다.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본다. 그것을 누구 몰래 버리려고 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를테면 종량제 봉투값을 아끼려고 버린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권의 눈치 보는 경찰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건조물 침입 역시 해당 없다. 모든 장소가 외부인에게 오픈된 곳이다. 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가거나 그런 것은 한 곳도 없다. 우리집에도 압수수색이 오면 사회과학서적 가지고 종북세력 운운할 것 같다. 평생의 행적을 탈탈 털어 나오는 것들을 엮어서 종북조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공권력이 정권의 시녀가 되었다’는 표현만큼 이 과민한 반응들을 잘 나타낼 수는 없다.

 

- 일부에선 ‘국가원수 모독죄’를 부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만약 국가원수 모독죄가 부활된다면 전단지 살포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보는가?

= 국가원수 모독죄? ‘최고 존엄’은 쳐다보지도 말고, 언급하지도 말라는 것인가? 너무 촌스럽고 유치한 발상이다. 70년대의 주역들이 모여서 내온 방식답다. 인쇄, 출판물 모두 검열하고, 나라 전체가 거대한 감옥이 될 것이다. 전단지 살포를 막으려고 법까지 만든다면, 이민 가야겠다. 좀 격에 맞는 사람들과 품격 있는 논쟁과 대립을 하고 싶을 뿐이다. ㅜㅜ

 

- 국가인권위원회가 탈북자단체들이 북한에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라고 하는 반면, 경찰이 박근혜 대통령 비판 전단 살포를 수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견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국가인권위?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되지 않았나? 정권의 눈치를 보는 것은 여기도 마찬가지다. 전쟁을 도발하는 대북 삐라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보호하고, 자국 정부를 비판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막는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건 문제가 있다.

 

대북전단 살포가 휴전선 일대에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는 이야기를 알고 있다. 남북관계가 이렇게 안 좋은 때에는 작은 도발도 국지전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야 말로, 표현의 자유 차원이 아니라 국민 안전을 위해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탈북단체는 마치 본인들이 샤를리가 된 것처럼 표현의 자유에 대해 말하지만, 서방언론들이 특정종교 지도자에 대해 지나치게 모욕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이 동성애를 하는 것처럼 묘사하는 삐라를 보면 얼굴이 뜨거워진다. 북한 사람들이 그런 걸 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긴장 고조 자체가 목적인 것만 같다.

 

우리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 이를 보장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을 성적으로 비하하거나, 과도한 추측과 비약을 확정적으로 말하는 방식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전단지에 기사를 인용하는것도 알려진 사실 중심으로 말하려는 것이다. 공적인 비판까지 재갈물리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표현의 자유를 해치는 일이다.

 

 

- 김명진

 

 

 

 

 
 
 

인터뷰

U2 2015. 1. 11. 00:57

 

 

 

 

강제출국’ 신은미 “마음만은 모국에서 강제퇴거시킬 수 없어”

 

 

 

 

 

 

 

 

 

 

법무부로부터 강제퇴거 명령 받은 뒤 신씨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신당한 심정” 소감밝혀
10일 오후 7시30분 출국 앞서 페이스북 성명 “대통령도 폭발물 테러 언급없이 ‘종북 낙인’”
“테러 피해자가 되레 가해자 신분 조사받아”

 

국가보안법 위반(찬양·고무) 혐의로 기소유예된 재미동포 신은미(54·여)씨가 결국 강제퇴거 명령을 받았다. 법무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10일 오후 3시13분께 종로구 안국동 이민특수조사대에서 신씨에 대해 1시30분가량 조사한 뒤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 강제퇴거 처분을 받은 신씨는 향후 5년간 재입국이 금지된다.

 

신씨는 조사 직후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신당한 심정이다. 저 혼자 짝사랑한 느낌”이라며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소감을 밝혔다. 그는 “몸은 오늘 모국을 나가지만 마음만은 사랑하는 모국에서 강제퇴거시킬 수 없다”며 “해외에서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국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겠다”고 말했다.

 

강제퇴거 명령을 받은 신씨는 이날 오후 7시50분 미국 로스앤젤레스(LA)행 항공편으로 출국하기 앞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명을 내놨다.

 

지난 11월1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통일 토크콘서트’를 연 이후 이른바 ‘종북콘서트’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는 ‘출국성명’을 통해 그동안 자신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첫 콘서트가 끝나기가 무섭게 몇 종편 언론들이 마녀사냥식 종북몰이를 했다... 마침내 세뇌에 가까운 허위보도를 지켜 본 한 청년이 2014년 12월10일 ‘익산 강연장’에서 폭발문 테러까지 저지르게 되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일부 언론의 보도에 영향을 받은 고등학생 일베 회원인 오아무개(18)군이 강연장에 폭발물을 던져 2명이 다치고 20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한국에서 드문 폭발물 테러가 도심에서 발생한 것이다. 

 

신씨는 “그러나 대통령께서는 폭발물 테러에 관하여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종편 보도에 따라 ‘통일 토크콘서트’를 ‘종북콘서트’라고 명명하시며 낙인까지 찍으셨다. 저는 테러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3차례 출국정지, 가해자의 신분으로 경찰에서 3차례 30시간 동안, 검찰에서 한 차례 15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북한은 지상낙원이다’라고 말했다는 허위 보도에 대해서도 경찰이 ‘토크콘서트에서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발표했고, ‘북한 3대 세습을 찬양했다’는 허위 보도에 대해서도 사실무근임이 조사에서 밝혀졌다”고 밝혔다. 신은미씨는 지난 8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도 “북한의 3대 세습 체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독재에 반대한다”고 답했고, “유엔이 통과시킨 북한인권결의안은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인권을 향상시키는 법과 제도들은 무엇이든 찬성한다”고 답변했다. 

 

신씨는 자신이 북한을 다녀온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한 저서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이미 정부로부터 통일에 도움이 된다며 ‘우수도서’로 (지정했고), 통일부는 홍보를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제 책과 강연 내용에 관한 검증을 다 해주었다.

 

공영방송인 KBS는 제가 북에서 찍어온 동영상을 다큐멘터리 제작에 사용하기도 했다”며 자신이 북한을 보고 기록한 내용들이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면 자신의 저서를 소개한 정부나 언론들도 북한 찬양에 동참한 것이 된다고 주장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3년 신씨의 저서를 ‘우수도서’로 지정했으나, 최근 논란으로 인해 지난 7일 우수도서 목록에서 제외했다.

 

한편, 미국 국무부는 앞서 신씨의 강제출국 조치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지난 9일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신씨 관련 질문이 나오자 “한국이 대체로 인권증진과 인권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헌신해 왔다”면서 “(그러나) 국가보안법에 관해서는 일부 경우에서 보듯이 그 법이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 접근을 제한하고 있어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신씨가 지난 3주 동안 한국에서 출국정지되고 검찰이 강제출국을 요청했다는 언론 보도를 접해서 내용을 잘 알고 있다”면서 “미 정부는 미국 시민을 (영사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윤형중

 

아래는 신씨가 남긴 ‘출국성명’ 전문이다.

 

 

<출국성명>

 

지난 2014년 11월 19일, 서울 조계사에서 첫 ‘통일 토크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첫 콘서트 끝나기가 무섭게 몇 종편 언론들이 마녀사냥식 종북몰이로 ‘북한을 지상낙원이라 했다’, ‘북한 3대 세습을 찬양했다’, ‘11월 19일, 북한 인권 결의안이 통과된 날에 맞추워 콘서트를 연 저의가 뭔가’라는 등...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해 가며 ‘통일토크 콘서트’를 ‘종북콘서트’라고 허위, 왜곡보도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내려왔다’는 등 그 황당한 허위, 왜곡의 수위는 날로 더 높아만 갔습니다.

 

마침내 세뇌에 가까운 허위 보도를 지켜 본 한 청년이 2014년 12월 10일에 ‘익산 강연장’에서 폭발물테러까지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테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또한 허위보도한 한 종편의 ‘마녀사냥’의 결과물이며 그 청년 역시 희생자입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는 폭발물테러에 관하여서는 단 한 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종편의 보도를 따라 ‘통일 토크 콘서트’를 ‘종북 콘서트’라고 명명하시며 낙인까지 찍으셨습니다.

 

저는 테러의 피해자 임에도 불구하고 3차례의 출국정지를 당해가며 꺼꾸로 가해자의 신분이 되어 3차례, 30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경찰에서 그리고 또 한차례 15시간에 걸쳐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사실 11월 19일의 토크 콘서트 내용에 관해서는 짧은 시간 안에 조사가 끝났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저의 책 그리고 미국에서의 활동에 대한 조사로 보냈습니다.

 

11월 19일의 콘서트는 2014년 8월달 부터 이미 계획이 되었으며, 콘서트 날자는 2014년, 11월 22일과 12월 5일에 한국에서 있을 저의 가족 행사에 맞춰 정해졌으며, 적어도 ‘통일 토크 콘서트’ 한 달 전 부터는 광고가 나간 상태였습니다. 그러니 ‘11월 19일, 북한 인권결의안 통과 날자에 맞춰 콘서트를 열었다’는 종편의 억지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뿐만아니라 ‘북한은 지상낙원이다’ 라고 한 허위 보도에 대해서도 경찰에서는 ‘토크 콘서트에서 그런 말 한 사실 없다’라고 조사에 대한 사실을 발표 했으며, ‘북한 3대 세습을 찬양했다’라는 허위 사실에 대해서도 사실 무근임이 조사 내내 잘 밝혀 졌습니다.

 

토크 콘서트에 관한 조사가 끝난 후, 장 시간 동안은 국가보안법에 해당되는 죄 몫을 찾기위해 저의 책인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와 몇 년에 걸쳐 수십 차례 동안 해 왔던 국내외의 강연 내용에 대한 심도높은 조사를 했습니다.

 

이미 정부(문화체육관광부)는 통일에 도움이 된다며 ‘우수문학 도서’로, 그리고 통일부는 홍보를 위해 다큐멘타리 제작으로 제 책과 강연 내용에 관한 검증을 다 해 주었고, 뿐만아니라 여러 TV방송을 포함한 많은 언론 매체들에서 책의 내용과 사진들, 저의 인터뷰가 지금의 북한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며 이 점을 높이사 방영을 했습니다. 공영방송인 KBS는 제가 북에서 찍어온 동영상을 다큐멘타리 제작에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부를 비롯한 많은 TV, 언론매체들도 북한 찬양에 동참한 것이 됩니다.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모순된 이야기들로 저에게서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되는 죄몫을 찾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비상식적이며 비이성적인 상황에서 조사가 이루어 졌으니 당연히 저로부터 확실한 죄몫을 찾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지막 조사 날에는 ‘출입국 관리법 위반’에 대한 수사를 했습니다. ‘외국인이 남의 나라에 관광으로 들어와 강연을 했다. 위법이다. 그리고 남의 나라에 들어오면서 그나라 출입국 관리 위반 지침서 정도는 한 번 살펴보고 와야하지 않나’등의 이유가 ‘출입국 관리법’을 위반한 죄목이 되었습니다.

 

800만 해외 동포들은 자신들의 모국에 들어오면서 단 한 번도 외국사람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들어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 대한민국이 남의 나라입니까. 내 부모, 형제, 친지, 친구들이 살아가고 있는 영원한 나의 고향입니다. 정말이지 한심하리 만큼 슬픈 질문들 이었습니다.

 

결국 검찰은 기소를 유예하고 법무부에 저의 강제출국을 요청하였습니다. 공공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저는 북한 여행 후, 민족애와 동포애가 생겼으며 민족의 화합과 평화적인 통일을 염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남과북의 동포들은 같은 언어, 역사를 공유함은 물론 같은 음식을 먹고,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함께 눈물 흘리는, 오랜 세월 동안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민족적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한민족이요, 한 형제요, 한 겨레라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책에서나 강연에서나 ‘우리 남과 북의 동포들은 한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하루빨리 평화로운 통일을 이루어 가자’라는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저는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와 다를 바 없는’ 우리 북녘동포들의 삶과 우리가 함께 공유하고 있는 민족의 정서를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얘기들이 우리 모국의 공공안전과 이익에 해를 끼치는 일인지요.

 

통일의 대상은 저처럼 평범한 남과 북의 동포들입니다. 이들이 통일의 주인이며 대다수를 이루는 남과북의 대중인 것입니다. 제아무리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인 통일 방안을 훌륭하게 연구하고 계획을 세웠다 할지라도 통일의 대상인 저같은 평범한 국민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분단의 장벽을 허물지 못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이상적인 통일 방안도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하는 얘기 입니다.

 

강제출국을 당하는 저는 앞으로 5년간 입국이 금지된다고 합니다. 괜찮습니다. 비록 몸은 강제출국 당할지라도 모국을 향한 제 마음까지는 강제출국 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치 ‘사막에서 물줄기를 찾아 헤메이는 것’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남북의 화합과 평화적인 통일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의 사랑하는 동포들, 그리고 어떠한 힘든 상황에서도 소망의 끈을 놓지않고 열심히 근면하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내 모국의 동포들과 항상 함께 할 것입니다.

 

여러분! 제아무리 ‘힘센 악’도 ‘선함’을 이길 수 없고, 제아무리 강건하게 포장되어진 ‘옳바르지 않음’도 ‘옳음’을 범할 수 없습니다.

 

저도 늘 사랑하는 여러분을 생각하며 우리 모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며 애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신은미 올림

 

 

 

 

 

 

 

 

 

신은미 “어머니조차 ‘얼굴 보지 말고 살자’고 문자”

뉴스분석, 왜? 강제출국당하는 신은미씨

 

▶ “대중은 처음에는 거짓말을 믿지 않지만 거짓말을 계속 들려주면 그것을 믿게 된다.” 나치 선동가 괴벨스의 말입니다. 신은미씨의 책은 201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했습니다. 최근 ‘종북 도서’로 몰리면서 결정이 취소됐고 신씨는 강제추방 예정입니다. 책은 그대로인데 무엇이 달라진 걸까요. 거짓말을 계속 듣다 보니 사물이 달리 보이는 걸까요. 신은미씨를 만나봤습니다.

지난 연말 한국 사회는 ‘종북 콘서트’ 논란에 휩싸였다. 발단은 <조선일보>였다. 지난해 11월21일 이 신문은 1면에 ‘서울 한복판 종북 토크쇼’라는 제목으로 “재미교포 신은미(54)씨와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황선(41)씨가 방북 경험을 소개하는 콘서트를 여는 자리에서 김일성 부자 3대에 대해 칭찬만을 늘어놓았다”고 보도했다.

신은미씨는 당시 콘서트에서 평양 등에서 만나고 온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등 정권 지도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밝혔다. 부정적인 내용을 전하지 않은 것은 맞다. 다만 신씨는 자신이 주민들에게서 들은 내용 그대로를 설명한 것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티브이조선> 등 보수 언론은 이후 신씨가 북한 체제를 찬양한 것으로 몰아갔다.

<티브이조선>은 신씨가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지만 경찰은 그런 발언은 없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종북 콘서트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우려스러운 수준에 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법무부는 10일 신씨를 강제 출국시킬 예정이다.

지난해 12월10일 전북 군산의 강연장에서 사제폭발물이 투척되는 등 최근 느끼는 신체적·정신적 위협 때문에 신씨는 요즘 서울 지인의 집에 머무르고 있다. <한겨레>는 8일 그를 찾아가 만났다. 그가 2012년 낸 책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와 이번에 논란이 된 콘서트 발언을 정리한 대담집 <그래도 나는 노래하리>를 사전에 살폈다.

                   

신씨는 북한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평양·개성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기록했다. 북한 체제를 옹호하거나 노골적으로 미화하는 표현은 찾기 어려웠다. 다만 대도시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 북한 전체의 모습인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해석될 수 있어 보였다.

​신씨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지난 한달여간 한국 사회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다음은 신씨와의 대화를 정리한 일문일답이다. 

 

내 눈으로 한번 보고 싶었다

 

-북한은 왜 가게 됐나?

“우리 부부가 여행을 좋아했다. 2011년 남편이 색다른 여행을 해보자 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남한 국적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북한 여행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신씨는 대구 태생이나 현재 미국 국적자다. 이화여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1990년대 중반 미국으로 건너가 미네소타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에서 성악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여행사를 통해서 가면 된다. 처음에는 북한에 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보수주의자다. 미국에서는 공화당을 찍어왔다. 집안 자체가 보수적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북한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곳은 얼굴이 빨갛고, 호전적이고, 늘 당과 나라만을 위해 사는 이상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길을 가다 넘어져도 ‘엄마야’ 하지 않고 ‘수령님’을 외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애증인 건지 한편으로는 관심이 가는 나라가 북한이었다. 호기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내 눈으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함께 순수하게 여행을 간 것이었다.”

 

-가보니 어땠나?

“책과 콘서트를 통해 밝힌 그대로다. 그냥 남한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평양 거리에는 사람들이 웃으면서 걸어다니고,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뛰어다니고, 출근길에 지하철은 붐비고, 밤에 술집을 가면 여자들끼리 와서 수다 떨면서 술 먹고, 곳곳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다른 나라처럼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는 그런 곳이었다. 북한은 그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가난한 나라’였을 뿐이다.”

 

-당신이 특별대우를 받은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북한 관련 여행사들은 인터넷 들어가서 확인하면 금방 찾을 수 있다. 우리도 처음에는 놀랐다. 북한은 그곳에 친지가 있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다. 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물론 북한에서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도 ‘재미동포가 순수 관광 목적으로 북한 방문을 하는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하더라. 우리는 그냥 다른 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순수하게 관광을 다녔다.”

 

-2012년 봄 방북 때는 분명 북한의 초대를 받아서 간 것인데?

“그렇다. 그때 한번뿐이다. 2011년 우리 부부가 북한 여행 다녀온 것을 아는 지인들이 북한에 예술단 일행으로 함께 방문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2012년 2월29일 북-미 간 합의가 있었다. 문화·예술·체육 등 친선 교류를 자주 하자는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재미동포 대표로 초대를 받아 간 거다. 정확히는 북한이 우리를 초대한 건 아니고 방문단을 대표하는 안용구 교수(전 서울대·미국 피보디 음악원 교수)가 우리 부부를 방문단에 합류시킨 것이다. 그때 150명이 넘게 북한을 방문했고 나는 방문단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두고 내가 북한의 특별대우를 받으며 방문한 것처럼 보수 언론들이 호도하고 있다.”

 

 이미지

 

-<티브이조선> 보도(1월8일)를 보면, 당신은 2013년 9월 노동당 창건 기념 열병식에 참가한 것으로 나온다. 평범한 관광객의 모습은 아닌데?

“종편은 계속 왜곡보도를 하고 있다. 그때가 북한에 다섯번째 방문한 거였는데 북한은 늘 축제와 연관시켜 관광상품을 만든다. 2013년 9월 관광상품에도 열병식이 끼여 있었다. 가이드가 내게 열병식 가겠냐고 묻더라. 안 가도 되는데 그냥 궁금해서 간 거다. 나만 간 게 아니고 같이 놀러 간 외국인들이 다 갔다. 참가한 게 아니고 그냥 구경 간 거다.”

 

-당신의 책을 읽으면 북한 주민들이 굶주리거나 독재에 시달리는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당신이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말한 건 아니지만 미화하려 했다고 비판받을 여지도 있어 보인다.

“나는 북한을 여행객으로서 간 것일 뿐이다. 여행 가서 꽃제비(북한 거지)도 보고 정치범 수용소도 들러야 하나? 남한의 여행사는 외국인에게 ‘쪽방촌 투어 상품’을 추천하나? 여행자로서 여행기를 쓴 거라 내가 본 것에 대해서 책을 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거다. 다만 내가 북한에서 순간이동을 하며 관광지를 옮겨 다닌 게 아니기 때문에 이동 중에도 북한의 여러 모습을 보게 됐다. 그런 부분들도 책에 기록했다.”

 

신씨는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에 가솔린 대신 목탄을 이용한 차량을 목격한 내용(128쪽)과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150㎝ 키의 군인들의 모습(119쪽), 발전시설 미비로 자주 정전이 되는 상황(267쪽), 평양의 교회가 진짜인지 의심하는 경험(105쪽) 등도 기술했다.

 

-북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면 좋은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을 골고루 실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여행자로서 평양의 시민을 보았건, 1% 기득권층의 사람을 보았건, 그들도 북한의 일부다. 100개의 퍼즐 조각이 있다면 100개의 조각을 모두 맞춰야 그게 퍼즐의 온전한 모습 아닐까. 탈북자들이 증언하는 고단한 삶도 북한의 일부고, 여행자가 목격한 북한의 모습도 북한의 일부다. 내가 만난 평양 주민들이 세뇌가 되어서 내게 자신들의 사회를 옹호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북한의 일부인 것이다.

내가 만약 인권조사관으로서 북한을 방문했다면 책의 내용이 달라졌겠지만 그냥 관광객으로서 기행문을 쓴 것이니 내가 만나고 대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 것이다. 내가 책과 콘서트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똑같은 사람들이고 그들이 우리의 대화 상대라는 것이다.”

 

신씨와 인터뷰할 때 신씨의 남편 정아무개씨가 배석해 있었다. 그는 신씨와 기자의 대화를 듣고 화를 냈다. 정씨는 “북한에 대해 조금도 좋은 얘기를 해서는 안 되는 나라야! 어떻게 같은 민족끼리 무조건 욕만 하라는 거야! 대동강 물이 맑다고 말하는 게 그게 왜 욕먹을 일이야!”라고 소리친 뒤 방을 나갔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탈북자들 증언도 북한 모습이고 내가 본 모습도 북한이었다..안 좋은 모습만 보라는 것인가
북에서 초청하면 통일콘서트 열어 남쪽의 좋은 점 알릴 수 있다”

“외할아버지는 국가보안법 발의 난 할아버지 마음 이해한다..이렇게 악용될 줄은 몰랐을 거다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계실까 할아버지는 내 진심을 알 것이다”

 

대동강 물 맑다고, 북한에서 휴대전화 쓴다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검찰 조사 받을 때 내 책에서 북한 주민들이 휴대전화 쓰는 장면을 기술한 것을 문제 삼더라. 검사가 이게 믿어지냐고 묻더라. 나는 그냥 내 눈에 보인 것, 사진 찍은 현장을 책에 기술했을 뿐이다. 북한의 전국 방방곡곡이 세트장일까. 관광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모두 연기하는 걸까. 북한이 그럴 여력이나 있는 나라일까. 남한 사회에서 갖고 있던 북한에 대한 생각과 조금이라도 다른 게 적혀 있으면 북한 체제를 고무·찬양한 것처럼 몰고 간다. 보수 언론들은 내가 (4대강 녹조와 비교하며) 대동강 물 맑다고 말한 것을 두고도 문제 삼던데, 맑은 것을 맑다고 말해야지 그럼 오염됐다고 말해야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닌 건가.”

 

-당신의 뜻과 달리 당신을 북한 정권이 악용할 우려에 대해선 생각 안 하나?

“‘우리민족끼리’(북한의 대남 선전기구)라는 곳에서 나를 옹호하는 주장을 하니까 검사도 그걸 보여주면서 ‘봐라. 네가 이용가치가 있으니까 너를 환대해준 거다’라고 말하더라. 만약 북한이 그랬다면 내 뜻을 왜곡한 게 맞다. 남한의 보수 언론들이 내 뜻을 왜곡한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북한이 내 뜻을 왜곡하는 것을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북한의 3대 세습 체제나 유엔이 통과시킨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한 내용은 왜 책에 담지 않았나?

“아까 말했듯이 나는 북한 인권보고서가 아니라 여행기를 쓴 것이다. 그런 건 다른 전문가들이 다뤄야 할 영역이다.”

 

통합진보당 일부 세력의 북한에 대한 무비판적인 태도에 대해서는 전신인 민주노동당 때부터 내부에서 논란이 이어져왔다. 신씨와 토크콘서트를 함께 진행한 황선씨도 그런 태도를 지닌 사람으로 여겨져왔다. 최근 보수 언론은 황선씨가 2005년 평양에 가 아기를 출산한 것을 ‘평양 원정출산’이라고 부르며 종북 인사라고 공격했다.

 

-황선씨와 토크콘서트를 하면 당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생각이 바뀌어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콘서트를 주최한 쪽(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에서 아시안게임 때 북한 선수들이 오니까 가을에 남북대화 분위기를 이어가는 통일콘서트를 제안했다. 황선씨와 함께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솔직히 황씨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었다. 다만, 통일을 말하려면 진보든 보수든 친북이든 친미든 어느 누구와도 함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신이 너무 둔감했다고 생각지 않았나?

“나는 정치에 큰 관심 없는 사람이다. 내가 강연자로 가치가 있었다면 어떠한 정치색 없이 그냥 보고 듣고 느낀 것만 전달했기 때문일 거다. 만약 주최 쪽이 내게 콘서트에서 어떤 쪽으로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면 참가를 재고해봤겠지만 그냥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 해서 정치적인 부분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또 설사 주최 쪽이 종북이면 어떤가. 우리가 통일하고 대화해야 할 대상이 바로 종북의 종주국인 북한이다. 종북이 무서워 그들과 대화도 못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북한에 가서도 이런 통일콘서트를 열 생각 있나?

“그들이 초청한다면 얼마든지 할 거다. 남한에는 농촌에 가도 차가 한대씩 있다고 그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의 서민들이 빈부격차로 힘들게 살고 있는 것만 생각한다. 남한에 대해서도 좋은 얘기를 해줄 거다. 남이든 북이든 서로 안 좋은 면만 부각하니까 서로 마음의 장벽만 쌓는 거다.”

 

황선과 함께하는 순간 모든 시선이 변해

 

인터뷰 중간 남편 정씨가 방으로 들어와 ‘법무부가 10일까지 강제출국을 통보했다’고 알렸다. 신씨는 예상했던 일이라는 듯 담담했다.

 

-쫓겨나듯 출국당하는데 심정이 어떤가?

“친정에 훈수 몇마디 뒀다고 엄마가 시집간 딸에게 너는 내 딸이 아니니 앞으로 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내 몸은 비록 쫓겨나지만 내 마음까지는 못 쫓아낸다. 내 모국은 남한이다. 강연 다니면서 통일운동 하는 분들 많이 만났는데 사막에서 물줄기 하나 찾는 그런 힘겨운 모습들이었다. 내가 이제 그 분단의 상처를 몸소 겪고 쫓겨난다.”

 

-가족들은 뭐라고 하나?

“우리 집안은 대구의 보수적인 집안이다. 어머니가 내게 문자를 보냈다. 당분간 얼굴 보지 말고 살자고 하셨다. 어머니도 종편 방송의 피해자다. 그들의 왜곡보도만 보고 딸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신다.”

 

-한국 사회가 당신에게 왜 이런다고 보나?

“나도 모르겠다. 사실 내 강연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이전부터 계속해왔던 거다. 늘 평화로웠고, 통일부에서도 내 얘기가 꼭 필요한 이야기라며 나를 인터뷰하고,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내 책을 우수도서로 선정했었다. 지금의 종편(엠비엔 등)들도 이전에는 나와 인터뷰하고 그랬던 방송이다. 그런데 황선씨와 함께 콘서트를 하는 순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변했다. 가슴이 아프다.”

 

-당신의 외할아버지가 국가보안법을 직접 발의한 분이다.

“박순석 전 국회의원(1948년 제헌국회 의원)이 내 외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국가보안법이 있어야 자손만대에 자유국가를 물려줄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 나는 할아버지 마음을 이해한다. 기독교인이셨기 때문에 공산국가가 되면 종교의 자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셨을 거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이 이렇게 악용될 거라고 생각 못 하셨을 거다. 내가 통일을 촉구한 것만으로 국가보안법으로 조사를 받고 쫓겨나는 것을 보면서 할아버지가 얼마나 안타까워하고 계실까. 할아버지는 내 진심을 알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다. 종편 등 보수 언론은 남남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거기에 시야가 가려지지 않으셨으면 한다. 나는 우연한 기회에 북한을 여행한 뒤 동포애를 갖고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게 됐다. 내 인생의 값진 경험이다. 미국에 돌아가서도 열심히 민족의 화해를 위해 일할 것이다.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우리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다.”

 

 

- 허재현

ⓒ 한겨레 ( http://www.hani.co.kr/)

 

 

​"대통령, 책 서문만 읽어도 달랐을 것.. 친정에서 쫓겨나지만 기죽지 않겠다"


'강제 출국' 앞둔 재미동포 신은미씨

​폭발물 테러, 출국정지, 네 차례 총 45시간의 검·경 소환 조사, 우수문학 도서 선정 취소 그리고 강제퇴거(출국) 조치. 지난해 11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재미동포 신은미(54)씨에게 일어난 사건들이다. 보수언론이 시작하고 박근혜 정부가 화답한 '종북몰이' 광풍이 그를 휘감았다.

신은미씨가 지난 8일 오후 검찰이 자신을 기소유예하면서 법무부에 강제퇴거요청을 했다고 밝힌 직후  <오마이뉴스>와 만나 심경을 밝혔다.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단 그는 한 시간 가량 담담하게 그간의 일을 정리했다. 그는 법무부의 강제퇴거 조치로 10일 오후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다.

"기죽지 않고 남북의 벽 허무는 일 계속하겠다 "

그는 출국 심경을 '친정에서 쫓겨난 딸'에 비유했다. 미국 국적인 그가 친정인 대한민국에서 남북 화합을 바라는 마음에 했던 말들로 정부에 버림받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실연을 당했다는 비유였다.

"집 떠나서 살던 딸이 신바람이 나서 친정에 왔어요. 친정을 사랑해서 친정이 잘 되면 좋겠다하고 말을 한 거죠. 그런데 부모님이 '너는 출가 외인',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해'라고 해버린 거예요. 그러고 나서 '너는 이미 내 딸이 아니야, 왜 간섭이야, 다시는 친정에 오지마'라는 거예요. 딱 그런 심정이죠." 

                   

 

그럼에도 신씨는 마음만은 언제나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방북 여행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던 때처럼, 평화 통일을 위해 기죽지 않고 계속해서 남북을 오가며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제2의 신은미가 나타나지 않도록 '종복몰이'를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선례가 되겠어요. 종복몰이, 마녀사냥에 밀려 비록 제 껍데기는 추방되지만 제2의 신은미가 생기지 않도록 제가 (종북몰이를) 극복하면 되잖아요. 저는 남과 북, 동포 사이의 벽을 허무는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비록 쫓겨나지만 기죽지 않고, 남과 북이 함께여야 하는 당위성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이래서 분신 자살하는구나...가슴 갈라 마음 보여주고 싶었다"

광풍의 시작은 지난해 11월 19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신은미·황선 전국순회 통일토크 콘서트'였다. 종편 등 보수 언론은 이 행사에서 신씨와 황선 희망정치연구포럼 대표가 북한을 찬양하는 등 '종북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보수단체가 두 사람을 국가보안법의 반국가단체 찬양·고무 혐의로 고발하면서 수사가 본격화됐다. 이후 신씨는 경찰에서만 세 차례 총 서른 시간, 검찰에서는 한 차례 열다섯 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 과정 내내 당국의 유도 질문이 이어져 답답함을 느꼈다고 밝혔다.

"나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책을 쓰고 말을 했는데 검사가 '이런 식이 아니죠'라고 하니까 속이 탔어요. 순간순간 울분이 끓어올랐어요.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을까 싶었지요. 너무 억울하니까 이래서 사람들이 분신자살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서 설명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그 결과에 순순히 따르겠습니다."

그는 조사를 받으며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식의 수사 방법 때문이었다. 머릿속에는 'So stupid(정말 어리석다)'는 표현이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부질없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보법 때문에 고문 받고, 가정이 파탄 나는 그런 얘기들을 들었죠. 하지만 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당해보니까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법이라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래도 부질없는 시간을 그나마 의미 있게 만들려면 최선을 다해야 했어요. 오죽하면 검사님에게 어떻게 하면 제 마음을 받아들이겠느냐 하고 하소연까지 했어요. 제 가슴을 갈라서 마음을 보여주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결국 기소유예 판결이 났다. 검찰이 죄를 인정했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점, 북한 체제와 인권 상황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점 등을 이유로 재판에 넘기지 않은 것이다. 검찰은 또 법무부에 강제퇴거를 요청했다. '극심한 국론분열과 사회혼란이 초래돼 사회적 위험성이 적지 않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재판에 들어갔을 경우 검찰이 법원의 유죄 판결을 받아낼 수 있었을까. 이번 기소유예 결정은 유죄 판결을 확신하기 어려운 검찰의 고육지책이라는 평가가 많다.

통일부와 문체부의 대응..."유치하고 우습다"

종북몰이는 '폭발물 테러'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달 10일, 전북 익산의 한 성당에서 열린 토크콘서트에서 한 고등학생이 신씨를 향해 인화물질을 던졌다. 그 학생은 폭발물을 던지기 전 신씨에게 종편의 주장처럼 "북한은 지상낙원이라고 발언한 것이 사실이냐"고 질문했다.

이 일로 참석자 200여 명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를 물고 늘어진 경찰마저도 수사과정에서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발언은 없었다"고 인정했다.하지도 않은 발언을 지어낸 종편이 만들어낸 비극이었다.

이후 신씨는 소환 조사 외에는 외출을 삼갔다. 자신을 알아보는 시선이 불편해졌다.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고 택시를 타도 기사가 알은 체를 하며 "김일성 찬양한 사람 아닙니까"라고 물었다. 또 다른 사람은 넌지시 "우리나라 문제예요. 종북이 이 나라 뒤집어놓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비슷한 테러를 당하지 않을까 불안하기도 했다.

"낯선 누군가가 옆으로 오면 내게 황산이라도 뿌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는 기침이 심해져서 한의원에 갔더니 화병이라고 하더라고요. 감기가 화병하고 섞여서 고질병처럼 속에 꽉 찼대요. 고질병을 고치는 침도 맞았어요.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폭발물 사건 있고 일주일 정도는 일어나질 못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비이성적인 마녀사냥에 정부도 적극 거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일 신씨의 방북기,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2013년 상반기 우수문학 도서에서 취소했다.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유였다.  출간된 지 2년이 넘었고 우수문학도서로 뽑힌 지도 1년이 훌쩍 넘은 책이다. 앞서 통일부는 신씨가 출연한 통일부 'UniTV'의 동영상을 이념적 편향성이 있다며 삭제했다. 신씨는 정부의 조치가 "유치하다"고 말했다.

"경제대국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런 조치를 취한 게 한마디로 우스웠어요. 개개인은 선진국 시민인데, 나라를 이끌어가는 분들이 왜 국민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는지 궁금해요. 나 같은 아줌마가 보기에도 이런 조치는 유치하고 우습다는 생각이 들어요."

면담 요구했지만 묵묵부답..."박 대통령, 책 서문만이라도 읽어달라"

신씨는 논란이 이어지자 지난해 12월 초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청한 바 있다. 청와대는 무응답이었지만 신씨는 박 대통령의 답을 이미 얻었다고 생각했다. 박 대통령이 신씨의 토크콘서트를 '종북콘서트'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주민들의 처참한 생활상이나 인권침해 등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자신들의 편향된 경험이 북한의 실상인양 왜곡 과장했다"고 말했다. '종북몰이'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면담 요청에 답은 이미 왔다고 생각해요. 박 대통령이 '종북콘서트'를 하는 저와 면담할 수 없다고 여긴 것 같아요. 하지만 2002년 박 대통령이 방북한 뒤 하신 말씀을 보면 통일에 대한 방안이 저와 다를 게 없습니다. 제 책을 읽어보지 않은 것 같아요. 서문이라도 읽어보신다면, 제가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이 박 대통령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아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당분간 대한민국을 방문하지 못하게 된 사실을 안타깝게 여겼다. 향후 최장 5년간 법무부에 의해 출입이 제한될 수 있다. 그의 변호인은 재입국 거부에 대해서 행정 소송 등의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신씨는 "해외동포는 태아가 탯줄로 엄마와 연결돼 있는 것처럼 조국과 이어져 있다"며 "이렇게 강제출국을 당하게 돼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남과 북 그리고 해외 동포들을 사랑하겠다고 밝혔다.

"몸만 출국당하지 마음은 (조국으로부터) 출국 못 시켜요.(웃음) 해외동포가 됐든, 대한민국 동포가 됐든, 북한 동포가 됐든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동포들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을 더욱 사랑하고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 박정호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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