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U2 2016. 2. 5. 20:03

 

 

 

 

미국의 기성 정치에 일격 가한 샌더스의 선전

 

 

 

 

 

 

미국 민주·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선거의 첫 관문인 아이오와주 당원대회(코커스)에서부터 이변이 연출됐다. 당일 실시된 코커스 결과 공화당에서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이 예상을 깨고 27.7%의 지지율로 여론조사 지지도 1위인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눌렀다.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려온 트럼프는 3위인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에게도 1.2% 차로 쫓기는 처지가 됐다. 민주당에서는 전국 지지도에서 앞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승패가 무의미할 정도로 코커스 사상 가장 적은 표차였다.

                   

 

 

힐러리는 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샌더스는 열세를 만회하고 사실상 동률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민주·공화 양당의 향후 대선 판도가 요동칠 것임을 예고한 서전이었다.

 

공화당의 첫 경선 결과는 트럼프 후보의 거품을 걷어냈다는 점에서 판이 자리를 잡아 간다고 볼 수 있다. 이민자와 무슬림 등에 대한 막말과 증오를 부추기며 선거판을 달구던 트럼프가 일격을 당해 주춤했기 때문이다.

 

아직 트럼프 우위가 무너졌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대세론이 깨질 가능성은 높아졌다. 공화당 경선이 트럼프보다는 쿠바 이민자의 아들로 극우성향인 크루즈 후보와 공화당 주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온건파 루비오 후보 간 대결로 좁혀질 공산이 크다. 이번 당원대회의 진정한 승자는 루비오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재벌 출신의 정치 문외한이 출사표를 낸 지 7개월 만에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한 것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보수당 지지자들의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그만큼 뿌리 깊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번 코커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샌더스 후보다. 샌더스 후보는 8개월 전만 해도 힐러리에 비해 지명도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낮았다. 게다가 민주당 소속도 아닌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무소속이다.

 

그러나 샌더스는 더 이상 아웃사이더가 아니다. 당일 선거 결과로 민주당 대선 후보에 한걸음 다가갔다. 1주일 뒤 열릴 예정인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 지지율 조사에서 힐러리를 두 자릿수 이상으로 압도하고 있어 이곳에서 승리할 경우 대세를 거머쥘 수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양극화를 해소하고 기성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는 샌더스의 목소리가 일시적인 바람이 아니라 현실 정치를 변화시킬 만한 실질적 힘으로 등장했음을 뜻한다. 월가의 기득권을 깨고, 국민 전체가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겠다는 그의 공약이 유권자들의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도 입증됐다.

 

샌더스가 이렇게 약진한 것은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정치 무관심층과 중도층의 참여를 이끌어낸 덕분이기도 하다. 코커스에 처음 참여했다는 유권자 비율이 40%로 조사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08년 대선 때 일으킨 돌풍과 비슷하다. 소액의 정치자금에 의존하는 선거운동도 샌더스 지지에 힘을 보태고 있다.

2011년 반월가 시위 이후 불평등을 해소하라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의 등장 역시 백인들의 좌절을 반영한 결과라는 점에서는 샌더스 돌풍과 맥락이 같다. 양극화 해소와 기성 정치의 개혁이 시대정신이라는 점을 아이오와 코커스는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아웃사이더를 주류로 바꿀 만큼 그들은 절박하다.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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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 “주류 미디어들 똑똑히 보라···‘무’에서 50% 이뤄낸 정치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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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잘 웃지 않는 노 정치인은 청중들의 “필 더 번(Feel the Bern)” 구호에 함박 웃음을 지었다.

미국 대선의 민주당 첫 경선에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1일 밤 디모인 공항 홀리데이인 호텔 홀에 모인 청중들을 향해 “땡큐 아이오와”를 연발하며 주먹 쥔 손을 들어보였다.

 

그는 이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의 첫 대결인 아이오와 코커스의 결과를 “아직 개표가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절반은 얻은 것 같다”며 “사실상의 동점”이라고 선언했다.

 

약 95%의 표가 집계된 상황에서 힐러리는 665명(49.9%)의 관구 대의원을 확보해 662명(49.6%)을 확보한 샌더스를 간발의 차이로 앞섰다. 하지만 CNN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이 결과를 동점으로 표현했다.
 

■“사실상의 동점”
 

 

코커스의 정확한 결과는 5~6월 쯤에 나온다. 아이오와주를 대표할 민주당 대의원의 수가 그 때쯤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이렇게 적은 표 차이는 번복된 사례가 과거에도 있다. 게다가 아이오와주의 대의원 몫은 전국의 민주당 대의원 4764명 중 아이오와 몫은 54명 뿐이다.

 

따라서 두 사람의 표 차이는 큰 의미가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샌더스는 이번 경선 결과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무엇보다 샌더스는 앞으로 더 많은 풀뿌리 선거자금의 기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미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인 힐러리가 대세론을 수성해야 하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샌더스가 패배했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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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스는 “9개월 전 우리는 아무런 조직도 없고, 돈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의 경선 결과는 미국의 정치적 주류, 경제적 주류, 그리고 미디어 주류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미디어 주류 언급은 샌더스가 거의 처음 하는 것으로 최근 뉴욕타임스가 힐러리 지지선언을 하고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이 샌더스의 공약을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평가절하한 것을 겨냥한 것이다.

 

그는 이들 언론에 똑똑히 들으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고백한다. 보편적인 건강보험이 특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누릴 권리라고 믿는다.” 이어 “진보, 보수, 중도 모두에게서 듣는 얘기가 있다. 바로 우리의 부패한 선거 캠페인 시스템을 끝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샌더스는 “1%의 억만장자가가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에 선출되게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제는 월가가 중산층을 도울 차례”
 

샌더스는 ‘미국 주식회사’와 월가의 돈을 한푼도 받지 않고 선거운동을 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했다. 9개월 전 5% 미만의 지지율로 시작했던 샌더스 캠프는 수백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전국적으로 나섰고, 350만 건의 풀뿌리 개인의 소액 기부가 이어지며 첫 경선에서 힐러리와 사실상 동률을 이루게 된 점을 강조했다.

 

샌더스는 청중들에게 물었다. “여러분들은 정말로 래디컬한(근본적인) 아이디어를 들을 준비가 돼있습니까? 내가 말하는 래디컬한 아이디어는 억만장자 계급뿐만 아니라 노동하는 가족을 위해 작동하는 미국 경제를 만드는 것입니다.” 청중들 사이에는 눈물을 짓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는 여성들에 대한 임금 평등,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 대학 등록금 무상화 등 자신의 공약들을 차례대로 읊었다. “이 사회의 주류는 이 모든 비용을 어떻게 댈 것이냐고 묻는다”며 “내 대답은 월가의 투기이득에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경제위기 때 중산층은 월가를 위해 희생했다. 이제는 월가가 중산층을 도울 차례다”라고 했다.

 

끝으로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이 모든 일들은 버니 샌더스를 포함한 어떠한 대통령들의 힘으로도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함께 할 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이오와가 오늘 한 일이 바로 그러한 정치혁명의 시작입니다”

 

-디모인(아이오와)|손제민

 

 

ⓒ 경향신문 ( http://www.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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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샌더스는 어떤 시장이었나?

 

 

 

 

 

 

 

 

“모든 사람이 겁을 먹었다.”

 

1981년 3월4일, 미국 동북부에 위치한 버몬트주의 가장 큰 도시 벌링턴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가 무소속으로 시장에 당선됐을 때 <유피아이>(UPI) 통신은 기사 제목을 이렇게 뽑았다고 한다.

 

버몬트주의 유일한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지금은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사표를 던진 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바짝 뒤쫓고 있지만, 당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샌더스에 대한 미국 주류 사회의 공포를 이해할 만하다.

 

1981년은 미국 신자유주의의 원조 격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했던 해이고, 냉전이 최고조에 이르던 때였다. “트로츠키주의자가 벌링턴에 입성했다”거나 “샌더리스타스(Sanderistas)들이 벌링턴을 접수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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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더리스타스’는 1979년 니카라과에서 아나스타시오 소모사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정권을 세운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과 샌더스의 이름을 합해 만들어낸 말이다.

 

샌더스는 4명의 후보가 겨루는 시장 선거에서 10표 차로 가까스로 당선됐다. 아무도 그를 시장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시의회는 그가 몇몇 참모들을 시청 직원으로 채용하려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견고한 관료사회는 그의 구상들을 좌절시키려고 시도했다. 벌링턴의 기업인들도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표시했다.

 

그랬던 샌더스가 1981년부터 2년 임기의 시장을 네번이나 연속으로 재직한 뒤 하원의원 8번을 거쳐 상원의원까지 연임하고 있다. 벌링턴 시장 때의 ‘업적’이 그를 전국적 정치인으로 밀어올린 게 틀림없었다. 그가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지난 5월 처음 출정식을 치른 곳도 벌링턴이었다. 그는 도대체 어떤 시장이었을까?

 

샌더스는 벌링턴의 갑부였던 토니 포멀로가 섐플레인호 호숫가의 불모지에 호화 호텔을 지으려는 계획을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누구나 보트를 빌려 탈 수 있고, 핫도그도 사먹을 수 있으며,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시민을 위한 호수’로 바꾸었다. 시장으로 당선되자마자 시장 직속의 예술위원회를 만들어 시민들이 무료로 예술과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서민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사업도 벌였다. 시예산 20만달러를 종잣돈으로 공공기금을 조성해 토지를 매입하고, 서민들은 여기에 집을 지어 자신이 소유할 수 있도록 했다. 주택 매매도 시장 원리에 충실한 미국 사회에서 혁명적 정책이었던 셈이다.

 

게다가 슈퍼마켓이 없던 벌링턴 시내에 대형 식료품 체인점이 마켓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그는 이런 제안을 거부하고 소비자들이 주인인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시민들은 환호했고, 시장에 당선될 때마다 그의 지지율은 한 계단씩 올라갔다. ‘갑부’ 토니 포멀로조차도 샌더스의 추진력과 열정을 보고 든든한 우군이 됐다.

 

벌링턴은 샌더스가 시장이 되기 전부터 ‘좌파 도시’ 아니었느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아름다운 풍광과 싼 물가, 버몬트대학 때문에 상대적으로 젊은층이 많고, 1960년대 뉴욕 등에서 반전운동을 벌였던 사람들이 일부 이주해 오기는 했다. 하지만 유권자 분포로 보면 보수적이지도 진보적이지도 않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편안하게 공존하는 곳’이었다고 미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현재로선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가능성은 낮다. 그러해도, 30여년에 이르는 정치 인생을 사회주의자로 외길을 걸어온 그에게 유세 때마다 지지자들이 몰려드는 현상은 흥미롭다. 2008년 금융위기로 드러난 미국 사회의 병폐가 그만큼 깊고, 진정한 변화를 통해 희망을 찾고 싶은 사람이 적지 않다는 뜻일 게다.

 

-노스찰스턴/이용인

 

 

ⓒ 한겨레 ( 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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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샌더스'가 답인 이유, 미국 청년들에 물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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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 청년들 "버니 캠페인은 풀뿌리 운동"... 놈 촘스키도 "가치 있다" 지지

​미국의 버니 샌더스, 영국의 제레미 코빈, 스페인의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와 그리스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20·30대 청년들이 지지하고 있는 지명도가 크지 않은 노령의 정치인, 정치를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지만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꾸고 싶은 30·40대 젊은 정치인들. 미국과 유럽을 뒤흔들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특히 버니 샌더스의 약진이 눈에 띈다.

뉴햄프셔 리버티 대학에서 힐러리보다 6배나 많은 청중을 모은 버니 샌더스(73). 버니 샌더스가 지난 5월 말 대선후보 출마를 선언한 이후, 미국 젊은층의 정치에 대한 참여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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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CNN 등이 진행한 뉴햄프셔 예비선거 투표 여론조사에서 샌더스는 힐러리에 16%p나 앞선 46%의 지지율을 보여줬다. 버니 샌더스는 자칭 '민주사회주의자'이며,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 출신의 무소속 상원 의원이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었고,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관련 링크: 버니 샌더스 - 저를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며 정치 혁명을 외치고 있다.

정치 혁명이라 불리는 현상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일까? 아니면 선거 때나 경제위기 때만 찾아오는 일시적인 현상일까? 정치 혁명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기득권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아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까? 이들과 지지자들은 영향력을 미치는 새로운 운동으로 진화할 수 있을까? 중산층 구하기와 소득 불평등 해소정책을 핵심으로 하는 선거 전략을 내놓고 목소리를 높이는 샌더스는 과연 힐러리를 넘어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답을 하려면, 지지자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봐야 한다. 그를 지지해서 자원봉사자로 나선 사람들이 이미 17만5000명이 넘었단다. 어떤 사람들일까?

버니 샌더스를 위해 뛰는 아마추어 청년들, 그들의 순수함

 

궁금해하던 차에 버니 샌더스 자원봉사자들의 모임이 근처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둘러 이메일 등록을 했다. 샌더스는 무소속 상원 의원이자 작은 주에서 정치하던 사람이라 지명도가 낮다.

아직 힐러리와 비교하면 히스패닉이나 아시아계의 지지를 크게 얻지 못하는 상태이다.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인지, 이번 행사의 제목은 '뷰포드 하이웨이 히스패닉과 아시안 지역사회 봉사활동'이다.

 

"가정집을 방문하거나 쇼핑몰 상가나 버스정류장을 찾아 시민들에게 샌더스의 정책을 알리는 일을 할 계획이니 재미있게 활동해 보자"는 이메일 답장이 왔다. 이메일에 첨부된 구글 링크 서류에는 자원봉사자들의 면면이나 활동계획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들어있다. 이런 식의 풀뿌리 활동은 오바마 대통령의 후보 시절부터 민주당 외곽조직들이 많이 쓰던 방식이다.

이후 두어 번 더 이메일로 진행 정도를 점검하며, 만남을 기대한다고 알려준다. 이번 행사는 조지아 주 애틀랜타 뷰포드 하이웨이 지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행사를 주관하는 첫 번째 모임이었다.

 

 

참여하겠다고 한 사람들끼리 소그룹으로 나뉘어 시민들에게 샌더스의 정책을 설명하고 투표일정을 안내하는 일을 하게 된다는 설명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그러면서 이미 참석 제한 인원 60명이 다 차서 더는 등록을 받을 수 없다는 내용도 함께 보내준다.

첫 만남의 장소는 쇼핑몰의 주차장이었다. 청년들이 유인물을 인쇄 상자째로 준비해오고, 처음 참여하게 된 사람들과 통성명을 했다. 이날 활동 방식을 설명해준 후, 마음에 드는 사람 2, 3명씩 짝지어 쇼핑몰의 상가나 버스 정류장 등을 방문해 달라고 부탁한다. 선거운동 자금이 부족해 사무실조차 없다. 처음 행사를 주관하는 자원봉사자들이라서인지 행사진행이 서툴다. 처음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떠한 증명서도 요구하지 않고, 상자째 유인물을 나눠 주며 수고해주기를 바란다.

점심은 각자 알아서 해결하고, 각자가 맡은 한 상자씩의 유인물을 다 돌린 후 주차장에 다시 모이자고 안내한다. 각자가 유인물을 돌리면서 겪은 경험이나 느낌 등 그날의 에피소드를 공유한 후,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활동을 마무리 짓는 순으로 이어진단다. "유인물 나눠줄 때 해줄 말이나 에티켓에 대한 교육이 더 필요하다"라는 행사 마무리 참여자들의 발언이 나왔다. 이들은 '아마추어'이고, '순수한 풀뿌리 운동을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어 시간 그들의 활동을 도와 그날의 할당량을 채웠다. 고마움에서인지, 이 행사를 주관한 자원봉사자들과 사진도 함께 찍고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20·30대가 주축이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였다.

다음은 이번 행사를 주관한 타일러 오프라수스(25)와의 인터뷰이다.

- 당신과 당신의 조직에 대해서 말해 달라. 왜, 어떻게 해서 이번 행사를 주관하게 되었나?
"나는 타일러 오프라수스이다. 25살이고, 경영과 마케팅을 전공했다. 자원봉사 건으로 버니 샌더스 공식 캠페인과 연락을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이 너무 바빠 효율적으로 조직을 운영하지 못하는구나 생각했고, 나 자신이 자원봉사모임을 조직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오바마는 지난 2012년 선거 때 조지아주에서 30만 표 차이로 밋 롬니에게 패했다. 많은 사람이 조지아주가 보수적인 주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이 말이 사실이었지만, 이제 애틀랜타는 민주당에 표를 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나는 뷰포드 하이웨이 근처에 살며, 나와 내 친구들은 한국식당이나 베트남 식당에서 자주 식사한다. 우리는 뷰포드 지역의 다양성에 대해 알고 있으므로, 버니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투표하도록 격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왜 버니 샌더스인가?
"나는 예전에 정치에 참여한 적이 없었고, 늘 피하기만 했다. 왜냐하면, 내 투표가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후보와도 어떤 관계를 맺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유튜브에서 버니 샌더스의 연설을 보게 되었고, 즉시 나는 그와 연결됐다. 그는 최초로 진정성이 있는 후보이고, 나는 그가 선거에서 이겨도 기업의 돈을 위해 우리의 표를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누군가가 '당신이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아라. 그리고 거기에 서 있으라'고 말했다. 버니 샌더스는 40년 동안(보통 사람을 위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민권을 위해 마틴 루서 킹과 함께 행진했고, 동성애자 권리를 위해 싸웠으며,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다. 그의 투표 성적이 일관성을 보여준다. 그는 부자들이 아니라 서민과 중산층의 번영에 관해 관심을 가진다. 그는 미국이 아이들과 손자들을 위해 더 나은 곳이 되기를 원한다."

- 오늘 행사에서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나?
"오늘 행사에서 우리는 버스정류장이나 공원으로 나갔다. 시민들에게 버니를 알리는 유인물을 나눠주고, 아파트촌이나 쇼핑센터를 찾아가서 유리창에 투표 관련 광고를 붙이고 전단도 나누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운동으로 만들고 싶었다."

- 몇 번이나 이런 행사를 조직했나?
"오늘이 첫 행사이다. 다음 달 정도에 한 번 더 할 생각이다. 다음 행사는 개선되어 있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관심 있는 사람은 내게 이메일을 보내면 된다."

- 오늘 공유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우리는 뷰포드 하이웨이 근처에 산다. 여기에는 많은 식당과 가게들이 있고 다양한 인종들이 산다. 그래서 버니에 대해 알리기 좋은 장소라고 생각했다. 버니와 버니의 정책을 알리기 위해 버스정류장, 식당, 가게, 공원, 가정집을 일일이 방문했다. 사람들이 우리가 나눠주는 유인물을 잘 받아줬다. 오늘 우리는 많은 사람에게 버니를 알리는 데 성공했으며, 다음 행사에 더 많은 사람을 모으고 알려 나갈 것이다."

- 아시안 지역사회에 바라는 게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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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니 샌더스는 그의 말을 전파하기 위해 아시안 지역사회에 의존하고 있다. 친구와 가족들에게 지속해서 말하라. 똑똑하고 성공적인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똑똑한 유권자다. 조지아주 예비선거(프라이머리)가 있는 오는 2016년 3월 1일에 투표하도록 하자."

지금까지 민주당 예비선거 유세장에는 예측을 뛰어넘는 군중이 모여들었다. 경제 정의와 평등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반영하듯, 샌더스의 '미국 경제 개혁의 12단계 전략'에는 노동조합 강화, 최저임금 상승, 월스트리트접수, 국가건강보험, 실효 세제개혁 등 파격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이들이 나눠준 유인물도 이러한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샌더스의 왜곡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공격하는 의제와 유사하게, 힐러리 클린턴의 경제 공약에도 중산층 재건과 소득 불평등 해소 정책이 주요 경제 현안으로 들어 있다. 그러나 두 후보가 현재까지 제안한 내용은 전통적인 민주당 공약 수준이라는 평가도 있다. 조세와 이윤배분, 월스트리트 개혁과 부자증세 등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이 않아 심도 있는 논의와 실행 프로그램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있다(관련 기사 : 미국의 불평등, 샌더스가 답이다!).

"각자의 표가 다 중요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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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러씨의 여자 친구인 나탈리 알라드(24)도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줬다. 이후 기자가 보충 질문을 이메일로 보냈더니, 다음과 같은 긴 답장을 보내왔다. 이들은 정치에 무관심했던 청년들이었으나, 소득 불평등 문제 등 사회이슈에 대한 버니의 입장과 그의 수십 년에 걸친 일관성과 진정성에 감동을 한 듯 보였다. 자원봉사자로 나서게 된 청년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내 이름은 나탈리 알라드다. 24살이고 조지아 주립대 심리학과를 2년 전에 졸업했다. 지금껏 나는 어떤 정치에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늘 '이미 체제는 너무 부패해 있어서 내가 변화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느껴왔다. 그래서 난 내 시간을 (정치를) 걱정하는 데 쓸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버니가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미국인들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는 그가 가진 힘으로 미국인들을 위해 무엇이든지 할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버니의 운동 일부가 되기를 원하게 되었다. 버니가 말했듯이, 이 운동은 버니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인식을 깨우치고 그 문제를 함께 극복하자는 운동이다.

내가 버니를 지지하는 이유는 아주 많다. 첫째, 버니는 항상 시민의 권리를 위해 싸워왔고 결코 자신의 견해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1963년 워싱턴 행진에도 참여했으며 그때부터 쭉 오랫동안 미국에서 인종주의를 끝내기 위해 싸워왔다. 그는 소수자 인권을 지켜왔다. 동성결혼을 반대하는 1996년 연방결혼법(Defense of Marriage Act)에 반대한 몇 안 되는 국회의원 중의 한 사람이었다. 버니는 이민법개혁을 지지하며, 불법체류 이민자들에 공정한 경로로 시민권을 주려고 했다.

버니는 현재 한 시간에 7.25달러인 최저임금을 인상하기를 원한다. 그는 우리의 환경을 보호하는 데 앞장서왔고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의 지구를 보호하도록 기후변화 이슈를 제기해왔다. 그는 나라를 위해 싸워 온 퇴역군인들을 보살피길 원했다. 월가로부터 세금을 거둬 등록금이 없는 공공대학을 만들고 싶어한다.

만일 무상으로 대학을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많은 미국인의 삶이 질이 좋아질 것이며, 대학등록금 때문에 빚지는 학생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버니는 모든 시민이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국가건강보험체계를 원한다. 나는 이러한 것들이 도덕적인 이슈들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이를 위해 싸울 것이며 버니는 해낼 것이다.

왜 버니인가에 대한 이유를 계속해서 말할 수 있지만 요약하자면, 버니는 미국 시민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곳으로 만들기를 원하며 그는 이 일을 해내기 위한 광범위한 계획을 갖고 있다.

나는 버니를 알리기 위해 뷰포드 하이웨이 자원봉사자 행사를 조직한 타일러 오프라수스의 여자친구라서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는 뷰포드 하이웨이 근처에 살며, 이 지역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곳이 버니에 대해 알리기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주목적은 버니의 대의를 알려 나가고 사람들이 투표하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우리는 유인물들을 지역 버스정류장, 식당, 상가, 공원 등에 나눠 주었고, 집집이 방문해서 버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 이 지역에서 많은 사람에게 버니를 알리는 일은 성공적이었고 다음 행사는 더 크게 해서 모든 지역을 방문하고 싶다.

버니 캠페인은 풀뿌리 운동이다. 버니는 정치로부터 큰 손들을 제거하고 시민들에게 권력을 되돌려 주려고 한다. 다른 대통령후보자들과는 달리, 버니는 거대기업의 기부자로부터 자금을 받지 않을 것이고, 우리 같은 자원봉사자들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는 아시안 지역사회에 사는 친구와 가족들에게 버니에 대해 알릴 것이고 이슈를 찾아 나갈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슈들에 대해 정보를 알게 된 시민들이 나와 투표를 하는 것이다. 각자의 표가 다 중요하다."

놈 촘스키 "샌더스의 캠페인은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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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뉴욕 뉴스쿨에서, 놈 촘스키 교수는 미국의 권력, 이데올로기, 외교정책에 대해 강연 후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질문을 받았다.

"버니 샌더스가 2016년 미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상상해보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으로 생각하는가? 샌더스가 자본주의 체계의 권력 구조 내에서 변혁을 가져올 수 있을까?"

촘스키 교수는 버니 샌더스 운동의 가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금권선거 하에서 거의 일어나지 않겠지만, 샌더스가 이긴다고 해보자. 그는 혼자일 것이다. 그는 의회 대표자들도, 주지사도, 관료체계 내 지지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가 많은 일을 할 수는 없다. 진정한 정치적 대안은 백악관의 한 인물이 아니라, 전면적인 폭넓은 정치적 운동이어야 한다. 사실 샌더스 캠페인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캠페인은 이슈를 제기하고, 주류나 민주당이 진보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압력을 가하고, 대중의 힘을 동원한다. 만일 대선 후에도 그들이 남아있다면 가장 긍정적 결과가 될 것이다. 4년씩 선거 때마다 나오는 헛소리라 치고 집으로 돌아간다면 심각한 실수가 될 것이다. 변화는 그런 식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동원력은 장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중적 조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민의 조직된 저항과 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하는 촘스키 교수의 진단은 의미심장하다. 월가점령운동(Occupy Wall Street), 아랍의 봄 등으로 퍼져나갔던 풀뿌리 운동의 기억을 현실을 바꾸는 동력으로 쓰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전희경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

 

 

 

 

 
 
 

지구촌

U2 2016. 1. 22. 18:13

 

 

 

 

시민정치 참여, 마드리드에서 배워라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 도래했다. 연일 정치권에 대한 기사들로 넘쳐나고 있다. 기존 정치인들의 이동 소식과 새로이 정치권에 합류하는 사람들의 이모저모가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정치에 대한 이런 관심은 사실 당연한 것이다. 자연환경을 제외하고 우리의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콜린 크라우치(Colin Crouch)가 쓴 <포스트 민주주의>란 책을 읽고 있다. 크라우치가 ‘포스트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민주주의가 확대되다가 그 정점을 지나 퇴조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렇다. 민주주의의 퇴조를 초래하는 것으로는 규제를 거부하고, 이를 위해 정치세력에 대해 막대한 자금을 동원해 로비하는 거대 기업, 통제를 받고 싶어하지 않고 대중의 정치적 이해를 조작하는 방법을 배운 정치세력들을 들고 있다.

 

민주주의가 퇴조되면 정치와 사회 혹은 시민 사이의 거리는 점차 멀어지고, 민주주의가 선거제도라는 절차적 제도와 동일하게 될 정도로 위축된다. 따라서 ‘적극적 시민권’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며, 실제로 참여할 경로와 방법도 불분명한 상황이 된다. 그래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어서 ‘포스트 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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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 민주주의하에서는 정당 역시 포스트 민주주의적으로 바뀐다. 포스트 민주주의적 정당은 유권자들이 아예 관심을 잃거나 아무런 정치자금도 기부하지 않는 사태를 두려워하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통제하는 것 역시 바라지 않는다. 따라서 당원 확대를 위해 마케팅은 하지만 당원이 되었을 때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포스트 민주주의가 만연하여 정치와 사회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고, 정치세력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부패가 만연하고 서민과 동떨어진 정책들만 생성되게 될 것이다.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적 결과를 얻는 데 흥미를 잃었다는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민주주의가 바닥을 칠 때까지 더욱더 강화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서구와 같이 ‘포스트’ 민주주의를 걱정해야 할 것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보수적 정권이 들어서고 1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시점에 <포스트 민주주의>에서 크라우치가 지적했던 민주주의 퇴조현상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정치와 사회가 괴리되어 가는 현상을 타개하고 다시 민주주의가 확장되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얼마 전 국내 언론에 의해 소개된 ‘아호라 마드리드’의 사례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스페인 마드리드시의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풀뿌리 모임과 온라인 기반 신생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가 느슨하게 결합한 ‘아호라 마드리드’가 만들어졌다.

 

2011년 5월15일 있었던 지방선거를 앞두고 스페인 젊은이들이 ‘진짜 민주주의를 돌려달라’는 구호를 들고 광장으로 몰려들었고 이날부터 확산된 운동을 사람들은 5월(May)15일을 뜻하는 ‘15M 운동’이라 불렀다.

 

15M 운동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여 강제퇴거를 막거나, 공교육에 대한 지출 삭감을 반대하고, 의료민영화를 반대하는 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런 운동에 정치권은 철저히 무관심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시민운동이 정당과 연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아호라 마드리드’는 인터넷에 플랫폼을 구축하고 이 플랫폼을 활용해 선거 후보자와 주장할 정책을 결정하는 작업을 했다. 이러한 실험은 큰 반향을 일으켜 지방선거에서 시장을 배출하고, 57석의 시의원 중 20석을 차지했다. 이후 ‘아호라 마드리드’의 마드리드 정부는 시민참여 웹사이트 ‘마드리드 디사이드’(decide.madrid.es)를 열어 16살 이상의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정책을 제안하고, 시장 등에게 질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도 이런 정치를 해봤으면 한다.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그 방법을 분명하게 밝혀주었으면 한다. 당장 안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단초들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민주주의가 확장되고 정치와 시민 사이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은 부패를 막고, 서민들도 살 만한 사회를 만드는 기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박주민

 

 

ⓒ 경향칼럼 ( http://www.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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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가 하는 진짜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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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플랫폼 설계자 미겔 아라나 카타니아 인터뷰…스페인 마드리드 시민 연대 모임 ‘아호라 마드리드’는 어떻게 권력을 바꿨나

 

16살 이상의 스페인 마드리드 시민은 올해 9월부터 마드리드 시의원이나 시장에게 직접 질의하고, 정책에 대해 토론하고, 법안이나 정책 제안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됐다.

 

지금까지는 선거에 당선된 1%의 정치인들만 행했던 일이다. 그 권한이 99%의 시민들에게 나눠졌다. 마드리드 정부가 시민참여 웹사이트 ‘마드리드 디사이드 (decide.madrid.es)를 열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가입 절차를 거치고 나면 누구나 정책 및 입법 제안(proposals) 페이지에서 정책과 입법을 제안할 수 있다. 마드리드 유권자의 2%에 해당하는 5만3726명의 동의를 얻은 제안은 국민투표에 부쳐지고, 과반의 동의를 얻으면 실제 정책이나 입법으로 이어진다.

 

시민에게 권력을 내준 ‘참여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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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debates) 페이지에서는 시민들이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제안하고 토론이 벌어진다. 지금 가장 활발하게 토론이 벌어지는 주제는 ‘국민투표에 부치는 최소 요건인 유권자 2%라는 동의 기준이 적절하냐’이다.

 

‘마드리드 디사이드’에 가입한 사람은 현재 6만여 명이다. 따라서 가입자의 90% 이상이 동의해야 ‘마드리드 디사이드’에서 제안된 정책이나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마드리드시는 이 토론에서 오간 의견을 바탕으로 ‘6개월에 한 차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제안에 대해서는 무조건 국민투표에 부치는 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내년 1월에는 ‘시민참여예산’ 페이지도 열린다. 마드리드시 예산 1억유로에 대한 예산안 사용처를 시민들이 직접 결정하도록 할 셈이다. 마드리드시 전체 예산 규모는 45억유로다.

 

흔히 빈말이 되기 쉬운 ‘참여’와 ‘소통’이 마드리드에서는 빈말이 아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건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다. 전세계가 공히 보유하는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마드리드에서는 직접민주주의라는 이상을 실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마드리드에서는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진 걸까. 그 답을 얻기 위해 마드리드 시의회 시민참여 디렉터 미겔 아라나 카타니아(33)를 12월9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났다. 미겔은 ‘마드리드 디사이드’ 웹사이트 설계와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와글(온라인 기반 풀뿌리 정치 연구 벤처·대표 이진순)이 12월7일 연 ‘시빅테크(Civic-tech)로 혁신하다: 99% 민주주의’ 포럼에서 강연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

 

마드리드 ‘99% 민주주의’ 실험의 시작은 권력 교체였다. 지난 5월24일 열린 스페인 지방선거에서 마드리드 시장에 당선된 마누엘라 카르메나는 신생 정당 아호라 마드리드(Ahora Madrid·지금 마드리드)가 내놓은 후보였다. ‘아호라 마드리드’는 2015년 3월6일,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두고 꾸려진 시민-정당 연대체다.

 

퇴임 여성 판사인 마누엘라 카르메나는 인물 자체의 인지도가 높은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아호라 마드리드’의 온라인 예비선거에서 1등으로 뽑힌 후보라는 배경 하나만으로 전체 선거에서 20년간 마드리드 시장직을 맡아온 보수 국민당 후보를 제쳤다.

 

광장의 힘이 정권 교체로 이어진 배경

 

이 권력 교체는 어떻게 이뤄졌을까. ‘아호라 마드리드’라는 시민-정당 연대체의 실체는 무엇일까.

연원은 4년 전인 2011년 5월15일에 열린 ‘15M 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실업률을 기록했다. 청년 실업률은 43.5%에 달했다. 1년 전 스페인 정부가 실업률을 낮추고 경제를 활성화하겠다고 실시한 고용정책은 오히려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했고 일자리의 질을 낮췄다.

 

5월15일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스페인 젊은이들이 ‘진짜 민주주의를 돌려달라’(Real Democracy Now)라는 구호를 들고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날부터 확산된 운동을 사람들은 5월(May) 15일을 뜻하는 ‘15M 운동’이라 불렀다.

 

운동 초창기부터 적극 참여한 미겔의 설명에 따르면, 15M 운동은 특별했다. 이들의 구호는 구체적이지 않았다. 추상적이기 그지없었다. ‘진짜 민주주의를 돌려달라’니. 급진적이기도 했다. “기성 정당 어느 곳도, 기성 정치인 누구도 우리를 대변할 수 없다”는 주장은 현재의 시스템을 완벽하게 거부하는 것이었다.

 

추상적이었지만 완벽하게 열려 있었다. 광장 여기저기서 ‘총회’(assembly)가 열렸다. ‘환경 총회’ ‘국제 연대 총회’ 등 주제도 다양했다. 누구나 광장으로 걸어 들어와 원하는 무리에 앉으면 참여할 수 있었다. 기자들은 물었다. ‘누가 리더야?’ ‘누가 조직한 거야?’ ‘원하는 게 뭐야?’ 미겔은 말했다. “정말로, 진실로, 아무도 조직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가 들고나온 진짜 민주주의를 돌려달라는 구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어요.” 이 설명은 기존 프레임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었다. 5월15일 하루에만 스페인 58개 도시에서 벌어진 젊은이들의 시위에 대해 스페인의 기성 언론은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개의치 않았다. 15M 운동이 시작된 지 3일 만에 스스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채널인 웹사이트(http://tomalaplaza.net)를 만들었다. 이 웹사이트는 15M 운동이 벌어지는 동안 열린 총회에서 나눈 이야기를 그대로 올렸다.

 

15M 운동의 대변인이 따로 있기는 했지만 ‘순환보직’이었다. “한 명이 이야기할 경우 그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 있어요. 또 그 사람의 ‘의견’과 운동의 실체가 섞일 수밖에 없어요.” 이 때문에 돌아가면서 대변인을 맡았고, 대변인은 ‘전체 의사를 전달하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권력을 집중시키지 않고 ‘시민 모두가 참여하는 진짜 민주주의’라는 15M 운동의 구호는 그대로 ‘아호라 마드리드’라는 시민-정당 연대체로 계승됐다.

 

15M 운동은 하나의 디딤돌과 하나의 벽에 마주치며 ‘아호라 마드리드’라는 연대체로 이어진다. 디딤돌은 강제퇴거 저지 운동 등과 결합하며 얻은 크고 작은 ‘승리의 경험’이다. 2011년 스페인 전역에서는 경기 악화, 잦은 실업 등으로 하루에 300가구가 살던 집에서 내몰리는 강제퇴거를 겪고 있었다. 15M 운동은 물밑에서 벌어졌던 이 ‘강제퇴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이미 있던 주거권 운동단체인 파(PAH)와 광장에 참여한 사람들이 ‘강제퇴거 저지 활동’에 함께할 수 있게 했다.

 

이를 위해 ‘우사히디’(USAHIDI)라는 인터랙티브 지도를 제공하는 무료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했다. 앱을 설치하면 강제퇴거가 일어나는 지역을 알려준다. 앱을 통해 강제퇴거 지역을 확인한 사람들은 그곳으로 달려가 도울 수 있다.

 

강제퇴거 저지에 참여한 뒤 인증샷을 찍어 올릴 정도로 강제퇴거 저지 연대는 유행처럼 번졌다. 이는 “작지만 ‘우리가 바꿀 수 있다’라는 믿음을 일깨워준 승리하는 경험”이 됐다.

 

 

‘디지털 온리’를 넘어

 

그러나 15M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크고 작은 활동에 정치권은 무관심했다. 15M 운동이 부딪힌 벽이다. “정말 존경심이 생길 정도로 아무 말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 2015년 지방선거가 가까워졌다.

 

광장을 겪은 사람들은 ‘정치운동’을 하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3년 동안 여러 운동을 펼쳤지만 정치권은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직접 정치를 해보자’라는 생각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다만 ‘정당’이나 ‘권력’이 목적이 아니었다.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위해 ‘권력’을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에서 지역의 여러 풀뿌리 모임들과 온라인 기반 신생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가 느슨하게 결합한 ‘아호라 마드리드’가 만들어졌다. 지방선거를 두 달여 앞둔 2015년 3월6일이었다. 그리고 ‘아호라 마드리드’가 내놓은 후보가 시장에 당선됐다. 시의회 선거에서도 ‘아호라 마드리드’가 31.85%를 얻어 의석 57석 가운데 20석을 차지했다.

 

‘아호라 마드리드’를 이끈 3대 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좌우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다. 우리는 좌파에서, 우파에서 온 것도 아니다. 우리는 아래(bottom)에서 왔다. 맨 위에 있는 사람에게 대항하는 맨 아래의 사람들이 뭉쳤다.

 

2. 우리가 하는 게 진짜 정치다. 정치인, 의회가 그동안 해온 방식은 진짜 정치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모여 세상에 대해서 토론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듣는 게 정치다.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정치를 하겠다.

 

3. 이해하기 쉬운 말을 쓴다. 언어가 참여하는 데 진입장벽이 되지 않도록 전문가들이 쓰는 어려운 단어는 최대한 배제한다.

 

‘아호라 마드리드’는 이 3대 원칙에 따라 아래에 있는 99%의 의사를 충실히 반영하기 위한 온라인 투표 플랫폼을 만들었다. 이 투표 플랫폼에서 1만5천 명이 참여해 시장 후보는 물론 시의원 후보자의 비례대표 번호도 결정했다. 선거 공약 역시 여기서 논의해 결정했다.

 

‘아호라 마드리드’ 플랫폼에는 ‘더 나은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알고리즘이 적용됐다. 예를 들어 공약을 결정할 때 단순히 투표 시스템만 적용하지 않았다. ‘좋은 의견을 고르는 일’과 ‘모든 사람의 의견을 듣는 일’을 결합하기 위해, 제안된 의견을 ‘합의 정도’ ‘논쟁 정도’ 등으로 나눠 순위를 매겼다. 그에 의거해 1~200번 공약을 순서대로 매긴 뒤 오프라인 ‘워킹그룹’을 만들어 해당 주제에 대한 세부 정책을 만들었다. 그 뒤 최종적으로 투표 시스템을 가동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결합해 ‘더 나은 민주주의’를 구현한 것이다.

 

만약 스페인의 이런 시스템을 한국에 적용한다면 얼마나 참여할까. 미겔은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플랫폼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참여자 수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1:9:90의 원칙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아호라 마드리드’에서 공약을 결정하고 후보자를 뽑는 예비선거에 참여한 사람은 1만5천 명이다. 마드리드 인구(320만 명)의 0.5%에 불과하다. 미겔은 1:9:90 원칙을 말했다. “1%가 아주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만든다. 9%는 소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90%는 수수방관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1%의 사람과 소극적으로나마 참여하는 9%가 합해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미겔은 인터뷰를 마치면서 강조했다. “스페인에서 일어난 변화는,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와 사라고사의 시민들이 특별히 용감해서, 특별히 정치의식이 탁월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는 로마의 흥망성쇠 다큐멘터리를 보듯 타자화하면서, 스페인의 사례를 보지 말아달라고 했다. “이것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 한국의 시민들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말하고 싶다.”

 

-박수진

 

 

ⓒ 한겨레21 (http://h21.hani.co.kr/)

 

 

 

 

 

 

 

비밀댓글입니다

 
 
 

지구촌

U2 2016. 1. 20. 10:15

 

 

 

 

 

한국 진보를 일깨우는 대만 총통 선거

 

 

 

 

 

 

 

 

어제(16일) 치러진 대만 총통 선거를 보니 부럽다 못해 자괴감까지 듭니다. 전임 마잉주 총통의 중국과 관계개선의 업적이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사회 양극화와 청년 실업을 확대하는 부작용을 낳자 대만은 중도좌파인 민진당의 차이잉원으로 정권을 교체했습니다.

 

저는 마잉주 총통 첫 임기 때인 2008년부터 ‘서울-타이페이 클럽’의 이사 자격으로 매년 대만을 방문하여 총통부와 주요 정부관리,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했습니다. 중국과의 경제협력협정(ECFA) 체결로 당시 기지개를 펴던 대만이지만 정부 관리들은 “대만에는 한국의 삼성, LG와 같이 국가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없다, 대규모 시스템과 설비가 필요한 산업은 대기업 아니면 경쟁력이 없다”며 우리를 몹시 부러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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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생각한 제가 “그렇게 부러우면 만들면 될 것 아니냐”고 하자 경제부 차관의 답변은 이러했습니다. “대만에는 절대 대기업을 만들 ...수 없다, 그렇게 하다가 경제가 양극화라도 되면 큰 일 아니냐, 대만 사회는 용납 못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중국을 가면 자본주의 같은 사회주의고, 대만을 가면 사회주의 같은 자본주의입니다. 그렇게 경제의 양극화를 걱정하던 국민당 정부도 우리 기준으로 보면 대만의 풀뿌리 중소기업을 기반으로 하는 중도 좌파 정부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국민당 정부가 경제를 중국화하여 고속 성장을 했지만 그 결과는 부의 양극화와 청년실업, 임금 정체 등 신자유주의의 폐단이었습니다.

 

집권 중반기까지 10%에 달하던 아시아 최고의 성장과 발전의 표상이던 대만의 마잉주 총통은 “황금의 시대를 열자”며 재선에도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경제 양극화의 결과는 마잉주 집권 말기에는 성장률 자체도 1%대로 저성장으로 돌아서고 청년 실업률이 12%에 달했습니다.

 

결국 대기업이 주도하는 양극화 경제와 동일한 결과를 만든 것이지요.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바로 그런 문제가 대두되자 대만 시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56%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곧바로 정권을 교체했습니다. 이렇게 자유로운 선택이 가능한 나라, 잘못이 발견되면 국가전략을 시민이 바꾸는 그들이 무척 부럽습니다.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있다고 하지만 분명히 대만은 한국을 추월할 것입니다.

 

이런 사례는 대만뿐이 아닙니다. 작년에 제가 스웨덴을 갔을 때도 사회당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사회의 양극화 조짐 때문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호주, 캐나다 등 세계 여러 나라가 신자유주의의 감옥으로부터 조화롭고 균등한 사회를 위한 새로운 도전의 일환으로 정권교체를 단행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영국에서도 진보세력은 집권을 향한 새로운 교두보를 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적 고통을 고스란히 감수하면서도 진보가 거의 질식할 상황으로 추락하는 것인지, 그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최근 새로 창당하는 신당 등 야당조차 예전보다 더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고, 여기에다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지지율이 감소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성장주의와 근본주의적 우익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박근혜 정부는 외국 같았으면 탄생하지도 못했고, 진즉에 응징되어야 할 정권입니다. 한국 사회의 정치권력-대기업-언론-지역주의 세력이 유착된 기득권 동맹이 강화되는 걸 속수무책으로 보아야 하는 한국의 정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왜 한국 사회엔 이토록 이데올로기가 강한 것일까요?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한국의 진보가 분발해야 할 때입니다.

 

 

-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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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 가치 역설한 대만 여성 총통 등장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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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국민들이 제1야당 민주진보당(민진당)에 표를 몰아준 것은 경제정책에 실패한 여당을 심판한 셈이다. 민진당은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으로 차이잉원(蔡英文)을 당선시켰고, 입법위원(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국민당에 68석 대 35석으로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8년째 이끌고 있는 현 정부와 국민당은 경제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과의 경제교류를 확대한 결과 일부 대기업과 부유층의 배만 불렸을 뿐 일반 국민의 살림살이는 더 궁핍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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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전 5%를 넘던 대만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지난 8년간 2%대로 떨어졌고, 지난해는 1% 밑으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집권하면서 마잉주가 내세웠던 ‘633 프로젝트(성장률 6%·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실업률 3% 이하)’ 공약이 무색해졌다.

 

대만이 8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데는 청년 유권자의 역할이 컸다. 마잉주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로 청년 실업이 급증하고, 임금 인상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어렵게 취업해도 ‘22K(2만2000대만달러·약 79만6000원) 세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원룸 월세만 50만원에 육박한다. 대만은 소득 대비 집값 비율(PIR)이 16배에 이를 만큼 집값이 비싸기로 악명이 높다. 서울은 8.8배이다.

 

현실에 분노한 젊은이들은 2014년 3월 대만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 점거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대학생들이 희망을 상징하는 해바라기를 들고 시위에 나섰다고 해서 ‘해바라기 운동’으로 불렸다. 이 운동에서 태동한 정당 ‘시대역량(時代力量)’은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5석을 차지해 제3당으로 도약했다.

 

오는 5월 취임하는 차이잉원 당선자의 공약은 젊은층 사회임대·공공주택 건설, 식품안전, 노인 지역돌봄시스템 강화, 연금 개혁, 치안시스템 개선 등 이른바 ‘5대 사회안정 계획’으로 요약된다. 무너져가는 대만 경제를 일으키려면 공정한 분배의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한국의 경제상황도 청년 실업과 전·월셋값 급등 등 대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때 복지 확충 등 분배의 가치를 역설했지만, 이행은 지지부진하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한국 젊은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한편 차이잉원 정권에서는 양안관계에 다소 변화가 예상된다. “어떤 억압도 양안관계를 해칠 것”이라는 그의 당선 회견 발언이 그 같은 가능성을 시사한다.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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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경제실정’에 분노…대만 국민들, 국민당에 등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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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대만 총통선거에서 8년 만의 정권교체가 확실시되는 것은 집권 국민당의 ‘3대 경제실정’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부동산 가격 폭등과 분배 악화, 용두사미가 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경제교류 때문이다.

 

대만 부유층은 2%대 저금리를 이용해 부동산을 산 뒤 빈집으로 놔두는 경우가 있다. 세입자가 들어와 살면 집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지만, 워낙 저금리라 굳이 임대수익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 타이베이(臺北)에 거주 중인 한국 주재원은 15일 “아파트를 빈 채로 놔두려는 집주인을 설득해 세를 얻느라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타이베이 호화 아파트 단지인 디바오(帝寶) 앞에서는 2014년 10월 청년들 주택 가격 폭등에 항의하며 거주권을 보장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디바오에는 한화 100억원대 아파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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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집권한 마잉주(馬英九) 정부는 이듬해 해외진출 기업의 대만 내 투자를 독려하기 위해 재산세와 증여세를 50~55%에서 10%로 낮췄다. 하지만 대만으로 유턴한 자본은 산업투자로 흘러들지 않고 부동산 시장으로 쏠렸다.

 
류멍쥔(劉孟俊) 중화경제연구원 제1연구소장은 이날 코트라 타이베이 무역관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이들 자금이 산업투자로 연결됐으면 청년고용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만 청년층의 박탈감은 부동산 가격 급등과 임금 인상률 저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류 소장은 타이베이 국립대만대 인근 27평대 아파트 가격이 3000만∼4000만 대만 달러(10억8000만∼14억5000만원)에 달해 평생 벌어 집 사기 힘든 가구가 많다고 소개했다. 지난해 타이베이 소득 대비 집값은 서울의 2배에 육박했다.

 

빈부격차는 갈수록 확대돼 왔다. 선거 전문가 훙야오난(洪耀南) 국립정치대학 시장예측연구중심 집행장은 “소득 상위 5%와 하위 5% 소득격차는 2007년 66배에서 2013년 기준 99배로 확대됐으며 최근 통계는 마잉주 정부가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계소득은 2008년부터 2014년 사이 연간 평균 0.63% 증가에 그쳤다. 임금이 10년째 제자리 수준이다.대만 젊은이들도 ‘88만원 세대’에 머물고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고 일자리를 찾아도 평균 임금은 ‘22K’ 정도다. 이는 2만2000 대만 달러로, 한화 80만원 정도다.

 

마잉주 정부는 집권 후 이른바 대중 접근 정책인 ‘서진 정책’을 폈다. 중국과 밀월로 평화 분위기는 조성했으나 경제적으로는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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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9월12일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발효됐다. 하지만 후속 협정인 양안서비스협정은 일자리 상실을 우려하는 젊은층이 입법원(국회) 점거 시위를 벌이며 반발해 국회 비준을 받지 못했다. 양안상품무역협정은 중국산 농산물 개방 여부가 쟁점으로 부상해 난항을 겪고 있다.

 

대만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5% 이상을 유지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후 2011년부터 3~4%로 감소했고, 2015년에는 내수 및 수출부진으로 1% 미만일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대만 투자가 주로 도소매업에 집중된 것은 대만이 반도체 등 핵심 산업에 대한 인수·합병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만으로서는 핵심 기술력 유출을 우려해 중국 자본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그런데도 고급인력이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대만 D램 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가오치취안(高啓全)이 지난해 10월 중국 반도체 굴기를 선도하는 중국 칭화유니그룹 글로벌 담당 부총재로 자리를 옮긴 것이 대표적이다.

 

중소기업 위주의 대만 경제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활력을 잃고 있으며 기업가 정신도 갈수록 부족해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타이베이 | 오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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