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이론

U2 2013. 10. 11. 15:16

 

 

4대강 복원 위한 특별법 제정을 기대한다

 

 

 

 

 

 

 

 

 

민주당 홍영표·장하나 의원, 진보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10일 각각 4대강 복원을 위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보와 둑을 허물어 4대강을 다시 자연의 품으로 돌려주자는 취지다.

 

4대강 사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복원 말고는 답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지속적으로 들어갈 인공구조물 유지 및 보수 비용, 보 안쪽에 쌓이는 오니 제거 비용, 지하수의 수질과 수위 교란 등의 후유증을 처리하는 추가 비용 등을 따져봤을 때 복원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이 훨씬 적게 먹히기 때문이다.

 

 

 <한겨레>가 최근 연재한 ‘신음하는 4대강 복원이 답이다’ 2부 기획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럽에서는 자연형 하천으로의 보전과 복원에 오랫동안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높이 15m 이상의 대형 댐만 9265개나 있는 ‘댐의 나라’ 미국에서도 1912년 이후 지난해까지 100년 동안 철거된 댐은 모두 1100여개에 이르고, 이 가운데 800개 가까운 댐의 철거가 지난 20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4대강 복원을 위해서 시급한 건 강 주변 개발을 막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하천 복원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이미 사유지로 바뀌었고 개발이 진행된 강변 땅을 다시 사들이는 것이었다. 우리도 친수구역특별법이 제정돼서 4대강의 양쪽 2㎞ 이내 지역을 개발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복원하는 데 더 이상 장애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국민적 동의다.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불과 4개월 만에 계획을 수립하고, 3개월 동안 환경영향평가를 마쳤으며, 3년 만에 엄청난 속도로 공사를 끝냈다. 졸속 추진, 부실공사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한 문제점과 예상되는 피해, 환경과 인간에 대한 영향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조사하여 국민들이 정확하게 알고 판단하게 해야 한다.

 

보와 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생태계에 미칠 영향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화약을 이용한 폭파 등의 방식은 댐 주변 생물들의 생명을 직접 위협할 뿐 아니라, 댐 상류의 수위를 갑자기 낮춰 강 주변 생물의 서식환경에 또 한 번 충격을 줄 수 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재평가는 박근혜 정부가 출범 초 상당한 의지를 보이는 듯했으나 이내 흐지부지됐다. 국무총리실 산하의 4대강사업 조사평가위원회도 중립성 시비로 위원장이 사퇴하는 등 사실상 활동이 멈추고 말았다. 야당 의원들이 주도적으로 발의한 이 법안들이 4대강 복원을 위한 국민적 대토론을 시작하는 기폭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4대강 복원 특별법 3건 야당 동시발의

 

 

 

 

신음하는 4대강 복원이 답이다  회차원 ‘재자연화’ 논의 예고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된 자연의 복원을 목표로 하는 특별법안 3개가 야당 의원들에 의해 동시에 발의됐다. 시민·환경단체에서 주로 이뤄지던 4대강 복원 논의가 국회로 옮아가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10일 같은 당 의원 8명, 정의당 의원 2명과 함께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보 등 인공구조물의 해체를 포함한 재자연화를 총괄하는 ‘4대강 재자연화위원회’를 대통령 소속 기관으로 두는 게 핵심이다. 재자연화위원회 산하에는 4대강 사업 실태를 조사하는 ‘사실조사실무위원회’와 ‘4대강 재자연화 기획단’을 설치해 재자연화 실무를 맡도록 했다.

 

이 법안은 6개월 이상의 조사를 바탕으로 전문가와 정부 부처, 지방자치단체, 주민 의견을 수렴해 법정계획인 재자연화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4대강 사실조사실무위원회의 조사 보고서가 채택되기 전까지 4대강 후속·연계사업을 중단하도록 해, 현재 경북 영주시 내성천에서 진행중인 영주댐 공사와 담수(물채우기)를 중단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이 법안은 장하나 의원실과 전문가·시민단체로 구성된 4대강조사위원회, 대한하천학회,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 등이 지난해 말부터 토론을 거쳐 마련했다.

 

홍영표 민주당 의원도 이날 같은 당 의원 10명의 서명을 받아 ‘4대강 사업 검증(조사·평가) 및 인공구조물 해체와 재자연화를 위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은 ‘4대강 사업 검증 및 재자연화 위원회’를 설치해 4대강 사업의 진상을 규명하고, 친환경적 유지·관리나 재자연화 방안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두 법안은 대체로 내용이 유사하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이날 발의한 ‘4대강 및 문화재 복원을 위한 특별법안’은 4대강 사업 이전에 이미 설치된 하굿둑 등 하천 시설물과 문화재까지 복원 검토 대상에 넣는 등 복원 범위를 넓게 잡은 게 특징이다. 이 법안은 대통령 직속으로 ‘4대강 복원 위원회’를 설치하고, 특별법 통과로부터 1년 이내에 ‘4대강 인공구조물 해체와 하천 생태계 및 문화재 복원 등에 따른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다.

 

심 의원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망쳐놓은 4대강을 복원해내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현세대의 책무”라며 “괴물이 돼버린 대운하 사업에 대해 단호하고 신속하게 현명한 복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정수

 

 

 

 

 

독일·스위스 등 하천 복원, 시간 흐를수록 어려워졌다

 

 

 

 

직선화 인공물 해체하고 강 주변 범람지 조성해야
땅 소유주들 반발 경관 변화 거부반응까지
시간 오래 지나면 잘못된 하천공사에 길들여져

 

한국과 지형이 비슷한 스위스에서도 현재 하천 복원이 한창이다. 2011년 제정된 ‘하천보호법’에 따라 향후 수십년간 총 4000㎞의 하천을 자연상태로 복원할 예정이다. 이미 복원된 하천 구간도 400㎞나 되는데 가장 돋보이는 프로젝트는 ‘투르 복원’이다. 투르 강은 취리히, 상트갈렌 등 스위스 주요 도시를 거쳐 라인 강으로 유입되는 길이 125㎞의 중형 하천이다.

  

 

                              

스위스 투르강 셰포일리 지역의 복원 전(왼쪽)과 복원 뒤의 모습. 일정한 폭과 수심의 물길이 곳에 따라 다양하게 변했고, 강 곳곳에 생태적 가치가 높은 하천 지형인 여울과 모래톱들이 만들어져 있다.

 

 1874~1893년 투르 강 직강화 공사 이후 갑자기 토사가 많이 쓸려내려와 쌓이자 강물이 넘쳐나며 홍수가 증가했다. 이후 제방강화 공사와 홍수의 힘겨루기 역사가 시작됐다.

 

1977년과 1978년 대홍수가 연달아 일어나 곳곳에서 제방이 무너져내리자 스위스 정부와 국민은 하천정책을 바꿀 필요성을 절감했다. 투르 강 복원사업은 1983년부터 2020년까지 30여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며, 이미 완공된 구간들은 성공적이란 찬사를 받고 있다.

 

투르 복원은 독일 뮌헨의 ‘이자르 플랜’과 마찬가지로 강이 자유롭게 흐를 공간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강을 좁게 가두었던 직선형 인공 호안을 철거해서 강기슭의 자연스러운 침식을 유도했다. 그러자 강은 넓게 펼쳐져 구불구불 흐르며 여울과 소 등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 냈다. 강 폭이 넓어진 결과 비가 많이 와도 유속이 빨라지지 않아 홍수방지 효과는 월등했다. 강변 생태계도 회복됐다. 150년 전 멸종된 것으로 보고된 조류가 되돌아왔다. 복원된 투르 강은 시민들의 생태체험공간이자 휴식공간이 됐다.

 

투르 복원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였다. 강물이 범람하며 흐를 수 있게 하려면 강변 땅을 확보해야 하는데, 강변에는 이미 사유지가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국가에 빼앗긴다고 느낀 땅주인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이런 문제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곳은 독일의 라인 강이다. 1239㎞에 이르는 서유럽 최대 하천인 라인 강은 과거 여러 갈래로 자류롭게 굽이치던 강이었으나, 1817년 하천공사 이후 좁고 깊은 통로에 갇혀서 직선으로 흐르게 됐다. 직선화로 강 길이가 짧아지며 상류 강물이 중류까지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아졌다. 예전에는 홍수가 나면 샛강에서 불어난 물이 한바탕 먼저 내려간 후에 라인 강 본류의 상류에서 불어난 물이 뒤따랐는데, 이제는 샛강과 본류의 홍수가 겹쳐졌다.

 

보와 제방 건설로 강변 범람원이 사라진 것도 홍수 증가에 한몫했다. 예전에는 물이 불어나면 상류부터 범람하며 물살이 기운을 잃었는데, 이제는 수로에 갇혀 곧바로 흐르는 물에 가속이 붙어 중하류에서 제방을 넘거나 파괴했다. 라인 강 홍수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급증했다. 상류에 줄줄이 10개 보를 건설한 이후 100년 만에 한번씩 오는 정도 규모의 홍수가 최근에는 몇 년 간격으로 발생하고 있다.

 

라인 강에 면한 국가들은 1982년 라인 강변에 되도록 많은 범람지를 조성하는 국제협약인 ‘통합 라인 강 계획’(IRP)을 맺었다. 90%나 사라진 자연 범람원 대신 강 상류에 인공범람지를 조성해서 중하류 홍수를 막는 것이 핵심이다. 총 공사비 7억7500만유로가 드는 대형사업으로 독일 쪽 강변에 23개, 프랑스 쪽 강변에 2개의 인공범람지가 계획됐다. 그러나 독일 역시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강변 사유지 처리 문제에 부딪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겨우 8개를 완공했을 뿐이다.

유럽의 모든 하천 복원사업에서 공통된 가장 큰 어려움은 강변 사유지를 취득하는 문제다. 19세기 중반 직강화 이후 상류 쪽 강변에 살아온 사람들은 중하류 쪽의 다른 주, 다른 지역 사람들을 위해 자기 땅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며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땅 소유주가 아닌 주민들도 인공범람지가 자기 지역에 들어서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인공범람지는 자연범람원과 같은 조건을 동식물에 적응시키기 위해 1년에 모두 25일간 물에 잠기도록 유도한다. 이 주기적 범람의 피해를 걱정하는 것이다. 지역의 지하수가 상승해 건물에 곰팡이가 피거나 농사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부동산 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류에서 날 홍수를 상류에 불러들이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 지역감정과 도시인-농민의 위화감, 경관 변화에 대한 정서적 거부반응까지 겹쳐서 문제를 풀기는 매우 어렵다. 독일 연방정부의 환경부 장관이 나서서 상류지역 주민들에게 호소하고 2015년 완공 계획을 2028년으로 늦췄지만, 계획대로 진행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 안녕과 국가 재정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잘못된 하천공사를 했다면 이를 되돌려야 한다. 복원은 돈과 기술이 있으면 가능하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흘러 잘못된 상황에 사람들이 길들여지면, 스위스와 독일 사례에서 보듯 복원이 쉽지 않다. 2010년 한국 정부는 ‘친수구역특별법’ 을 제정해서 4대강의 양 쪽 각 2㎞ 이내 지역을 개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4대강 복원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시민·정부 뜻모아 ‘열린계획’ 추진…뮌헨 젖줄 ‘소통의 복원’

 

 

 

 

유럽에서 살기 좋고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독일 뮌헨에서 주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의 하나는 도심을 관통하는 이자르 강변이다. 알프스의 눈 녹은 물이 스며 이자르강은 평소 부드러운 옥색을 띤다. 강가엔 강물이 끌어내려오다가 버리고 간 동글동글한 자갈들이 하얗게 쌓여 있고, 발을 거의 물에 담근 은버드나무들이 무리 지어 설렁거린다. 투명한 물속엔 물고기가 왔다갔다 바쁘고, 오리 떼는 먹이를 찾느라 고개를 물속에 처박고 엉덩이를 하늘로 흔든다.

 

 

 

(자연 형태로 복원된 독일 뮌헨 플라우허 지역 이자르 강변에서 시민들이 휴식을 즐기고 있다)

 

 

 

강변 기슭은 완만해서 사람과 동물이 물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여기저기 제멋대로 생겨난 모래톱과 물웅덩이는 어른들의 휴식터가 되고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차가운 물에 몸을 식힌 뒤 뜨거운 자갈밭에 누워서 일광욕하는 젊은 연인들, 개와 함께 수영하는 노인, 모닥불 피우고 소시지 구워 먹는 가족, 강가에서 온종일 노는 숲유치원 꼬마들, 생맥주를 통째로 차가운 물에 박아놓고 둘러앉은 10대들….

 

이런 강변 풍광은 얼핏 보면 천혜의 자연인 듯싶지만 사실은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복원한 인공의 산물이다. 뮌헨은 2000년부터 11년간 진행한 재자연화 공사를 통해 125년 전 이자르강에서 사라졌던 여울과 자갈밭을 되살렸다. ‘이자르 플랜’이라 불리는 뮌헨의 이 재자연화 공사는 세계적 성공 사례로 꼽혀, 외국에서 찾아오는 답사단이 끊이지 않는다. 어쩌다 뮌헨은 이자르강의 본모습을 잃었고, 또 어떤 연유로 다시 복원해야 했을까?

 

이자르강은 오스트리아에서 발원해 850m의 표고차를 두고 295㎞를 흘러 다뉴브(도나우)강에 합류한 뒤 흑해로 흘러든다. 곁가지가 많이 퍼져 넓고 얕게 흐르다 보니 한번 홍수가 지나면 물길이 달라져 있기 일쑤였다. 옛날에는 철 따라 불어나는 강물을 위해 강 주변을 넓게 비워두었기 때문에 인간에게 미치는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은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강을 지배하려 했다. 1888년부터 이자르강 바닥을 파서 물길을 직선으로 정리했다. 강기슭을 돌벽으로 강화하고 높여 강물을 가두었다. 이리저리 굽이치며 강변을 변형시키는 데 에너지를 소진하던 강물이 단단하고 좁은 통로에 갇히니 강타할 곳은 바닥밖에 없었다. 강바닥이 패었고 강변 지하수위도 내려가기 시작했다.

 

강바닥과 지하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계속 내려앉아 20년 뒤에는 강바닥이 공사 이전에 비해 8~10m나 낮아졌다. 나무가 뿌리를 내려도 지하수에 도달할 수 없었다. 숲은 메말랐고 농사는 망쳐졌고 우물을 파도 물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1910~1920년 이자르강에서 다시 대대적인 하천공사를 벌였다. 지난 공사의 후유증인 지하수 하강을 막아보려는 시도였다. 강바닥에 200m 간격으로 50~60㎝ 높이의 콘크리트 단(낙차공)을 만들어 강바닥을 강타하던 물살의 힘을 받아내도록 했다. 그렇게 해 강바닥이 계속 파이는 현상과 그에 따른 지하수 하강은 일단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욱 강력한 인공구조물로 피해를 막아나가는 사이 강은 본연의 모습을 점점 더 잃어버렸다. 홍수도 되레 잦아졌다. 예전엔 강변으로 자연스럽게 들고 나며 땅으로 스며들던 강물이 이제 예기치 않게 도시로 넘쳐나 인명과 재산을 위협했다. 독일인들은 더 발전한 기술의 힘을 빌려 더 강력한 둑과 보를 쌓아 올리며 이에 맞섰다.

 

(독일 뮌헨 이자르강 브루더뮐

지역의 복원 전 모습.

4대강 사업 지역과 비슷) 

 

1980년대, 마침내 그들은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홍수의 증가는 바로 선조들이 하천을 개발했기 때문이었다. 어떤 기술로 어떤 둑과 보를 쌓아도 홍수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수학적으로 계산되고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이 사실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 알려졌다.

 

직선화 뒤 홍수 잦아져 민관 재자연화 10년 준비
각종단체 ‘이자르 동맹’은 홍보나서 8km 복원에 11년 공사

 

 

2000년 유럽연합(EU)은 ‘홍수가 증가한 주원인은 강의 직선화, 강기슭의 강화, 강바닥의 준설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히며 2015년까지 유럽의 모든 강을 자연 상태 또는 자연에 가장 가까운 상태로 되돌리는 ‘유럽연합 수자원관리 기본지침’을 발표했다. “물은 함께 지키고 가꾸어야 할 공동의 유산”이라고 못박고 고액의 범칙금 제도를 만들어 회원국들을 단속하고 있다. 유럽의 큰 강들은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흐르기 때문에, 강 상류의 회원국이 잘못해서 환경을 파괴하면 그 피해는 강 하류의 회원국한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보다 12년이나 앞서 1988년 독일 뮌헨의 시의회는 이자르강의 재자연화를 결정했다. 기존의 제방으론 점점 늘어나는 홍수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과 도심 휴식공간에 대한 시민의 요구가 맞물려 새로운 홍수 대비책을 모색한 것이다. 1995년 ‘이자르 플랜 준비위원회’가 탄생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당시 다양한 시민·환경·정치단체들이 정부 담당 부서와 함께 재자연화 공사를 준비하는 ‘열린 계획’ 방식을 시도한 것이다. 이자르 강변에 거주하거나 강에서 낚시·카누 등 취미활동을 하는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자르강 복원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은 바로 이 ‘열린 계획’을 통해 강과 직접 관계를 가지며 사는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을 충분히 활용한 데 있다.

 

당시 시민들이 가만히 있다가 ‘열린 계획’에 초대받은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이자르강은 수많은 수력발전소에 물을 대느라고 대부분의 물을 빼앗겨 물줄기가 앙상했다. 환경이 열악하니 이해관계가 다른 조류보호연합과 낚시협회 사이에 아웅다웅 갈등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대부분의 수력발전소와 바이에른 주정부 사이에 하천 사용 계약이 만료돼 신규 계약을 체결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조류보호연합의 니코 되링 박사는 다른 단체들에 서로 다투지 말고 대의를 위해 뭉치자고 제안했고, 낚시협회와 카누동호회 등 이자르강에서 활동하는 12개 단체가 이를 받아들였다. 1993년 ‘이자르 동맹’이 발족했다. 이 동맹은 시민과 정치권을 상대로 학술 연구에 근거한 활발한 홍보활동을 펼치면서 수력발전소의 강력한 로비에 대항했다.

 

이자르 플랜 준비위원회는 ‘이자르강에 새 생명을!’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점점 커지는 홍수 위험으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시민의 휴식을 위한 친수공간을 확장하며 강의 생태 환경을 개선하는 것을 복원공사의 목표로 정했다.

 

공사 구간에 따라 5~10년에 걸친 치밀한 준비 작업이 앞섰다. 2000년부터 뮌헨 시내를 흐르는 이자르강 8㎞ 구간의 복원공사가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공사는 계획보다 2년 늦어진 2011년에야 마무리됐다. 총 공사비도 애초에 계획한 2800만유로(400억여원)를 훌쩍 넘긴 3500만유로(500억여원)가 들었다.

 

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고작 8㎞ 길이의 중형 하천을 복원하는 데 최고 10년이나 준비해 11년 동안 공사를 해야 했을까? 마지막 공사 구간인 독일박물관 인접 강변에서는 공사가 2년이나 지연되는 난항을 겪었다. 이곳은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강변이어서 시민들의 이용 빈도가 높았다. 주정부가 주최한 설계 공모전의 1등과 2등 수상작을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갈렸다. 1등 수상작이 이곳에 남아 있는 인공구조물을 많이 보존한 채 시민을 위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 반면, 2등 수상작은 인공구조물을 다 없애고 강변을 자연 상태로 되돌리는 데 주력했다. 공사비도 더 저렴했다.

 

 

 

(독일 뮌헨공대 오버나흐 수리모형실험연구소에 설치됐던 이자르강 축소 모형.

이자르강 복원 사업은 1 대 20 모형을 이용한 반복적인 수리실험을 통해

사업의 영향을 철저히 검토하며 진행됐다)
 

 

 

복원 설계 시민공모전 열고 민관이 함께 검증
전문가들 모형실험도 거쳐 완공 뒤에도 ‘강 지키기’ 봉사

 

이자르 동맹을 비롯한 뮌헨 시민들은 주민의견 수렴회에서 2등 안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공모전 결과를 번복할 경우 1등 수상자에게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 주정부는 2등 안으로 갈 경우 교각과 독일박물관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하천 복원을 장려하는 유럽연합 보조금마저 취소됐다. 복원공사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이자르 동맹은 주정부가 제시한 1등 작품의 수정안을 수용했다.

 

공사 기간을 지연시키고 공사비를 초과시킨 또다른 원인은 강변 땅속에 묻힌 폐기물이었다. 2차대전 뒤 도심의 건축폐기물 등 갖가지 쓰레기가 이자르 강변에 모두 묻혀 있었다. 이들을 파내어 일일이 분류해 특수폐기물 처리를 해야 했다. 2차대전 막바지에 투하된 대형 폭탄 등 크고 작은 불발탄까지 종종 나왔기 때문에 굴착기 작업은 늘 조심스럽고 느리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공사 기간이 늘어난 또다른 이유는 사시사철 작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물이 불어나는 봄과 여름에는 공사를 쉬었다. 설계할 때 시민에게 결정권을 주었듯이 강한테도 결정권을 주기 위해서였다. 홍수철에는 강물이 마음대로 넘치도록 했고, 홍수가 빠진 뒤에는 물이 어떻게 제 갈 길을 만들어 놓았는지, 어느 기슭을 침식시키고 어느 곳에 퇴적토와 자갈을 쌓아두었는지 면밀하게 관찰했다. 그리고 강의 의지를 복원사업에 반영했다.

 

복원공사의 핵심은 강물이 흘러넘칠 여유 공간과 자유를 주는 것에 맞춰졌다. 다행스럽게도 강변을 따라 꽤 넓게 공원이 조성돼 있어서 강에 다시 내줄 장소는 넉넉했다. 강물을 가두었던 일직선의 돌벽 인공호안을 철거해서 강물이 마음대로 강변으로 넘나들도록 했다. 물길을 빙 둘러 파서 인공섬을 만들었고, 얕은 여울과 못도 자연스럽게 생겨나게 했다. 강줄기 옆에 작은 도랑을 더 만들기도 하고 강 너비도 넓혔다. 강폭이 넓어지면 자연히 유속이 줄고 홍수위도 낮아진다.

 

강기슭도 완만하게 만들어서 사람과 동물이 물까지 편안히 오갈 수 있게 했다. 강물이 굽이치며 흐를 수 있도록 해서 강바닥을 파헤치던 물살을 약화시켰다. 그 결과 강바닥에 박아놨던 낙차공을 철거하거나 자연석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강이 주어진 공간 안에서 마음대로 흐를 수 있도록 하는 대신 도시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처도 단단히 했다. 제방을 1m 높이고 너비도 두껍게 보강했다.

 

토목·수리·조경·보건·환경 분야 전문가들뿐 아니라 주민과 강이 함께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철저한 과학적 검증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뮌헨공대 오버나흐 수리모형실험연구소는 공사기간 내내 1 대 20 축소모형을 만들어놓고 사업의 영향을 세심하게 검토했다.

 

“이자르강은 누구의 것인가?”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뮌헨 시민은 “내 것!”이라 대답한다고 한다. ‘열린 계획’을 통해 어도 설계를 자문했던 낚시협회 회원들은 복원사업이 끝난 뒤에도 매일 강변의 쓰레기통을 비우는 자원봉사를 한다. 이런 주인의식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민 참여의 길을 활짝 열어둔 ‘열린 계획’에서 나왔다. 마지막 공사 구간 공모전의 갈등을 종식시킨 이자르 동맹의 통 큰 양보도 주인의식 덕분에 가능했다.

 

2011년 9월15일 독일 지역 공영방송 <바이에른 3티브이>의 이자르강 복원 성공을 알리는 프로그램은 이런 말로 마무리됐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에 담을 쌓아 막고 아스팔트를 깔고 시멘트를 치면 자연을 길들일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오판이었죠. 겨우 8㎞ 강 구간을 재자연화하는 데 3500만유로가 들었고 꼬박 11년이 걸렸습니다. 이런 선례는 모든 이에게 경고가 돼야 합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그런 파괴가 자행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걸 다시 복구해야 할 숙제를 후손에게 떠넘기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 뮌헨/임혜지 건축사학자

 

 

 

 

 

 

댐 허무는 ‘미 북동부의 낙동강’  주민·환경단체 수년 노력 결실

 

 

 

 

 

 

연어들의 고향 페노브스콧강, 비지댐 장벽탓 회귀 매년 급감
전력회사와 합의, 철거 들어가

 

지난 8월30일 오전 미국 북동부 메인주 페노브스콧강 하류. 에딩턴과 비지 사이 너비 300여m의 강에 가로놓인 비지댐의 헐려나간 한 귀퉁이로 강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55㎞만 더 내려가면 대서양 메인만이다. 페노브스콧강 강물이 중하류 구간에서 어떤 인공 구조물에도 방해받지 않고 대서양과 만날 수 있게 물꼬가 터진 것은 지난 7월22일, 근 2세기 만의 일이다.

 

메인주 중북부 호수 지대에서 발원하는 페노브스콧강은 메인주에서는 가장 큰 강이다. 미국에서 대서양연어가 가장 많이 올라오는 강이기도 하다. 한국의 4대강과 비교하면, 본류 길이는 금강과 영산강의 중간 정도인 175㎞이지만 유역면적은 2만2300㎢로 낙동강과 맞먹는다.

 

이 강은 1820년대 초반까지 한 해에 5만~7만마리씩 찾아오던 대서양연어의 고향이자, 수천년 동안 이들을 잡으며 살아온 페노브스콧 인디언의 고향이다. 대서양연어들은 매년 봄 알 낳을 곳을 찾아 페노브스콧강 상류의 맑고 차가운 여울로 거슬러 오르곤 했다. 이들 앞에 1820년대 중반부터 장애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 중하류의 제재소, 가죽공장 등에 물과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댐들이었다.

 

지난 7월22일부터 철거되고 있는 비지댐은 1830년대에 돌과 나무로 강을 비스듬하게 막은 옛 비지댐 바로 아래에 1912년 완공된 콘크리트댐이다.

 

댐 한귀퉁이만 허물어도…강의 표정이 다채로워졌다

 

 

 

(조개들아 이사가자:페노브스콧강 복원 트러스트 자원봉사자들이 지난해 8월 철거가 진행중인 그레이트워크스댐 상류에서 급격한 수위 저하로 물 밖에 드러날 위험에 놓인 조개류 등 이동성이 떨어지는 생물들을 구조해 물 안쪽으로 옮겨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 페노브스콧강 복원 )

 

 

길이 327m, 높이 6m 규모로, 길이로는 낙동강의 합천창녕보(323m)와 비슷하고 높이로는 한강의 이포보와 같다. 발전용량 8.4㎿의 이 수력발전댐은 1998년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로부터 30~50년 기한의 발전면허를 갱신받았다. 구조물의 안전 문제가 철거 이유는 아니란 이야기다.

 

비지댐은 메인만에서 올라오는 연어들이 만나는 첫번째 장벽이다. 이 댐에 상류로 올라가려는 물고기들을 위한 어도는 있다. 하지만 먼 귀향길에 지친 물고기들에게는 좁은 어도도 쉽지 않은 장애물이다. 어도를 통과한 연어들 앞에는 또다른 난관이 기다렸다. 연어가 성공적인 수정을 마치기 위해선 댐 때문에 갑자기 높아진 수온, 악화된 수질, 급류로 치달리는 본능에 어색한 정체된 물 흐름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물에 잠겨 사라진 옛 산란지를 대신할 곳을 찾아내야 했다.

 

올해 비지댐까지 올라온 것으로 확인된 연어는 372마리다. 2011년에는 3000여마리, 지난해는 600마리로 해마다 줄고 있다. 그럼에도 페노브스콧강이 미국 최대의 대서양연어 회귀 하천일 수 있는 것은 증식사업의 효과다. 비지댐에서 만난 메인주 해양자원부의 연어증식 프로그램 담당 과학자 올리버 콕스는 “매년 비지댐까지 올라오는 연어의 90~95%는 우리가 방류한 연어들”이라고 말했다. 강과 바다를 오가는 소하성 어종 가운데 에일와이프나 블루백헤링과 같은 청어류, 장어류, 철갑상어류 등은 그런 연어를 부러워해야 할 처지다. 댐에 설치된 어도는 대부분 인기 어종인 연어에 맞춰 설계돼, 도약 능력이 떨어지는 다른 물고기들에게는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대형 바닷물고기들의 주요 먹잇감인 에일와이프가 산란지인 지천의 호수들로 올라갈 수 없게 된 것은 메인주의 수산업에 심각한 타격이 됐다. 메인주 자연자원협의회의 선임 과학자인 닉 베넷은 “댐으로 강과 바다의 연결을 차단해버린 것이 남획과 함께 바다 수자원 고갈의 주요 원인이다. 사람들은 강으로 올라오는 물고기가 사라지는 것을 알았다. 바다에서 물고기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이 둘을 연결해 볼 생각은 오랫동안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두 세기 가까이 사실상 끊어져 있던 페노브스콧강과 대서양을 다시 연결하는 ‘페노브스콧강 복원 프로젝트’의 핵심 사업이 비지댐 철거다. 환경단체들이 중심이 된 ‘페노브스콧강 복원 트러스트’는 비지댐에서 14㎞ 상류에 있던 그레이트워크스댐은 지난해 이미 철거했다. 비지댐만 사라지면 소하성 어류들은 강어귀에서 그레이트워크스댐 위의 밀퍼드댐까지 73㎞ 구간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8월30일 페노브스콧강 복원 트러스트의 로라 로즈 데이 집행이사의 안내로 찾아간 비지댐은 수력발전 터빈이 설치돼 있던 측면 구조물 위쪽과 물고기 이동통로 일부만 헐린 상태였다. 철거가 시작된 지 한 달 이상 지난 것치고는 작업 진척이 의외로 늦어 보인 이유는 현장이 말해주고 있었다. 현장에서 움직이는 중장비는 불도저 한 대와 굴착기 두 대, 가끔 오가는 트럭들이 전부였다. 이들은 댐 바로 위에 커다란 돌들을 쏟아부어 임시물막이(가물막이)를 만들고 있었다. 가물막이로 댐의 물을 밀어낸 뒤, 댐 아래쪽 임시 작업도로로 굴착기를 들여보내 댐을 조금씩 깨내려는 것이다.

 

“올해 말까지 철거 작업을 끝낼 예정”이라는 데이 집행이사에게 ‘폭파 방식을 병행하면 더 일찍 끝낼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을 던졌다. “생태계에 대한 악영향 때문에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폭파 방식은 댐 주변 생물들의 생명을 직접 위협할 뿐 아니라, 댐 상류의 수위를 갑자기 낮춰 조개와 같이 이동성이 떨어지는 생물들이 물 밖에 노출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철거는 자원봉사자들이 댐 상류지역 강변을 돌아다니며 물 밖에 노출될 처지인 조개류를 안전한 곳에 옮겨주는 구조 활동과 함께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에 철거가 댐 주변 생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한 소음 측정과 물속 음파 측정 같은 조사까지 병행되다 보니 작업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다. 댐 철거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프로젝트 시행 전후의 변화를 추적하기 위한 모니터링은 이미 2009년부터 시작됐다.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 기관 등의 연구진들은 페노브스콧강의 물고기, 곤충, 새, 포유동물은 물론 수질과 지형, 강과 바다 사이의 영양물질 전달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페노브스콧강 복원 프로젝트는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유지하며 살 권리를 되찾으려는 페노브스콧 인디언들의 법적 투쟁에서 출발했다. 페노브스콧강 가운데의 인디언섬을 비롯한 220여개의 크고 작은 하중도 보호구역에 사는 이들에게 강 연어잡이는 전통문화이자 연방법에 보장된 권리다. 이런 권리는 댐들 때문에 충족될 수 없었다. 인디언 부족은 환경보전 단체들의 지원을 받아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에 자신들의 권리를 적극 주장했다. 환경단체가 함께한 것은 인디언 부족의 권리를 찾아주는 것이 페노브스콧강을 바다를 향해 열린 강으로 복원하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인디언들의 권리 회복에서 출발한 논의가 페노브스콧강 중하류 전 유역을 통합한 강 복원 프로젝트로 발전한 것은 1999~2000년 사이 페노브스콧강 중하류 모든 댐들의 소유권이 피피엘이라는 전력회사에 집중된 것이 계기가 됐다. 댐별로 발전량과 발전 위치를 조정할 여유를 갖게 된 피피엘은 페노브스콧 인디언 부족 및 환경단체들과 4년간의 긴 논의 끝에 2004년 6월 페노브스콧강 복원을 위해 서로 조금씩 양보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비지댐 철거 전 지난 7월22일 철거 공사에 들어가기 전의 미국 메인주 페노브스콧강 하류 비지댐과 주변의 모습.

철거중인 비지댐 지난 8월30일 오전 미국 메인주 페노브스콧강 하류 비지댐에서 굴착기, 불도저 등이 댐 철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가운데 보이는 부서진 상자 모양 구조물은 물고기길이다.)

 

 

폭파 않고 조금씩 깨내기 조개류 안전한 곳에 옮겨주고
물고기 이동 ‘최신형 승강기’ 예정 모래톱·여울·소 등 다시 생겨
복원으로 생태관광 활성화 기대

 

케네벡강 댐 철거가 교훈 생물 다양성·수질 개선 큰 효과
‘미국의 상징’ 흰머리수리 다시 불러오는데 한몫

 

합의문에서 피피엘은 페노브스콧 인디언 조직인 페노브스콧네이션과 아메리칸리버스 등 6개 환경단체로 구성된 페노브스콧강 복원 트러스트에 비지댐과 그레이트워크스댐, 하울런드댐 등 3개 수력발전댐을 구매해 철거하거나 발전시설을 폐쇄할 수 있는 선택권을 줬다. 환경단체들은 대신 피피엘이 댐 철거로 줄어드는 발전량을 다른 6개 댐에서 발전시설을 증설해 벌충하는 것을 양해하기로 했다. 또 피피엘은 그레이트워크스댐이 철거될 경우 강 하구에서 첫번째 댐이 되는 밀퍼드댐에는 물고기들을 위한 승강기형 어도까지 설치하기로 약속했다.

 

트러스트는 2004년부터 댐 구입비와 철거비를 포함한 프로젝트 사업비 6200만달러를 확보하기 위한 기금 모금에 들어가 현재까지 6000만달러를 확보해놓은 상태다. 기금은 국립해양대기국(NOAA), 어류야생동물청(FWS) 등 공공기관의 자금 지원과 민간 재단, 개인 등의 기부를 통해 절반씩 마련됐다. 이 기금 중 2400만달러로 2010년 12월 피피엘로부터 비지댐을 포함한 3개 댐을 사들이고, 2012년 6월 마침내 그레이트워크스댐에서 첫 댐 철거작업을 시작했다.

 

로라 로즈 데이 집행이사는 “비지댐이 철거되고 지류들의 어도 개량까지 모두 끝나면 대서양연어의 서식지가 거의 1000마일(1600㎞) 길이까지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인주 해양자원부의 올리버 콕스는 “바다에서의 여건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페노브스콧강 복원 프로젝트에 의한 강 환경의 개선만으로도 페노브스콧강으로 올라오는 대서양연어는 1만2000~1만3000마리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댐들을 철거하는 것은 강물을 막힘없이 흐르게 하는 공사만이 아니다. 호수처럼 변화 없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표정한 강을 여울과 모래톱을 갖추고 하얀 거품 부서지는 소리 들리는 변화무쌍한 강으로 만드는 일이다. 이 사실을 그레이트워크스 댐이 있던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갇힌 물로 호수처럼 잔잔하기만 했을 옛 댐 자리 바로 위에서 강물은 새롭게 나타난 바위와 돌들에 부딪히며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오염된 퇴적물로 덮여 있었을 강바닥과 강변에는 자갈밭과 모래톱들이 자리를 잡았다. 지난해 말까지 길이 435m, 높이 6m의 수력발전댐이 버티고 서 있던 곳이라고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강의 표정이 다채로워질수록 강은 더 많은 종류의 생명들을 부양할 수 있다. 물속에서 드러난 바위들과 새로 만들어지는 여울, 소, 모래톱 등은 제 특성대로 물고기는 물론 다양한 곤충들의 서식을 돕는다. 늘어난 곤충과 물고기들은 이들을 먹이로 삼는 물총새와 물수리 등의 새들과 수달 등의 포유류를 불러모은다. 이런 과정이 페노브스콧강과 연결된 메인만 바다 생태계 전반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게 현지에서 만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설명이었다.

 

국제 환경단체인 네이처 컨서번시의 메인 지역 보전기획자인 조슈아 로이트는 “비지댐이 철거되면 페노브스콧강과 메인만에는 에일와이프와 같은 소하성 물고기가 엄청나게 증가할 것”이라며 “그들을 통해 바다와 강 사이에 운반되는 영양물질들은 메인만 생태계 전체와 인간에게까지 큰 이익을 안겨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페노브스콧강 복원 프로젝트는 강의 수질 개선뿐 아니라 강 주변에 미국의 상징인 흰머리수리들을 불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현지 환경단체 사람들의 이런 기대는 페노브스콧강 서쪽의 케네벡강 복원을 통해서 얻은 경험에 근거한다. 케네벡강에서는 1999년 하구에서 64㎞ 상류에 있던 에드워즈댐이 철거됐다.

 

철거가 가져온 변화는 놀라웠다. 에일와이프와 같은 소하성 물고기가 급증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에는 보기 어려웠던 흰머리수리가 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모습도 흔히 구경할 수 있게 됐다. 바다에 사는 잔점박이물범들이 먹잇감인 물고기들을 따라 강 중류까지 올라온 경우까지 관찰됐다.

 

메인주 자연자원협의회의 닉 베넷은 “에드워즈댐 철거로 강의 생물량과 다양성은 극적으로 변화했고, 철거 1년도 안 돼 케네벡강의 수질이 C등급에서 B등급으로 올라갔다”고 소개했다. 메인주 자연보호회의 샐리 스톡웰 보전이사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물고기에는 강이나 호수에만 사는 물고기에 비해 흰머리수리 감소의 주요인이었던 디디티(DDT)나 피시비(PCB) 같은 환경호르몬이 덜 함유돼 있다. 케네벡강 복원이 메인주의 흰머리수리 서식 여건을 개선시킨 것과 같은 효과가 페노브스콧강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페노브스콧강 복원에 가장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대서양연어를 보호하기 위해 1985년 이후로 부족의 전통 의식에 쓰기 위한 연어 잡이까지 포기한 페노브스콧 인디언들이다. 이들은 페노브스콧강 복원이 끊어진 전통을 다시 이어줄 뿐 아니라, 생태와 문화 관광 수요를 늘려 새로운 경제적 기회도 열어줄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다.

 

지난 7월 철거 시작 이후 이날로 두번째 철거 현장을 둘러본다는 페노브스콧 인디언 추장 커크 프랜시스는 부서진 댐 귀퉁이로 쏟아져 내리는 강물을 보며 “우리 부족에게 페노브스콧강 복원은 강을 신성한 장소로 되돌리는 의미가 있다. 그레이트워크스에 이어 비지댐까지 철거되기 시작하면서 곧 연어잡이를 다시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새로 창을 만드는 부족원들이 많다”고 말했다.

 

 

 

 

"한국정부가 4대강에 16개 댐 세우며 강 살리기라고 했다는 말 이해 안돼”

 

 

 

페노브스콧강 복원 트러스트의 로라 로즈 데이 집행이사는 지난 2004년 6개 환경단체와 1개 인디언 주민 단체로 구성된 트러스트 출범을 주도한 뒤, 집행이사를 맡아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그는 대학원에서 환경에너지법을 전공한 변호사로, 미국 환경청(EPA)과 강 복원 운동 단체인 아메리칸 리버스 등 정부·비정부 기구에서 모두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지난 8월29일 메인주 주도 오거스타에 있는 메인주 자연자원협의회 회의실에서 그를 만나 페노브스콧강 복원에 관해 들어봤다.

 

-다른 강 복원 프로젝트와 비교할 때 페노브스콧강 복원 프로젝트에 특별한 점이 있다면?

“댐 철거로 사라지는 전력을 다른 댐의 발전 능력을 끌어 올려 대체했다는 것이 톡특한 측면이다. 그렇게 발전능력의 손실이 없도록 했기 때문에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정치적 지지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또한 1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오직 복원사업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민간 조직이 댐 매입을 포함한 6000만달러짜리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있다는 점도 특별하다.”

 

-2004년 페노브스콧강 복원 계획이 확정되고 지난해 그레이트워크스댐이 처음 철거되기까지 8년이나 걸렸던 이유는?

“복원사업 추진을 위한 기금을 모으고, 매입한 댐을 철거하기 위한 허가를 받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철거에는 많은 연방정부 관련 기관으로부터 허가나 자문을 받아야 했다.”

 

-발전회사로부터 매입한 3개 댐 가운데 맨 위쪽에 있는 하우랜드댐은 철거하지 않기로 했는데?

“댐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댐을 존치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송을 통해서 철거를 강행할 수도 있지만 주민들과 갈등을 벌이지 않기 위해 유지하기로 했다. 대신 발전은 중단하고, (도약 능력이 떨어지는) 청어류와 같은 물고기들도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우회형 어도를 설치할 계획이다. 이 어도 설치에 댐 철거비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간다.”

 

-페노브스콧강 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해오면서 특히 어려웠던 것은?

“가장 큰 도전은 당연히 기금을 모으는 일이었다. 그 다음으로 이해관계가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이견을 모아내는 일이 특히 어려웠다. 1999년 토론을 시작해서 합의문 작성까지 4년이나 걸린 가장 큰 이유다.”

 

-당신의 경험으로 볼 때 댐 철거를 포함한 강 복원 논의는 어디서 출발하는 것이 좋은가?

“댐의 영향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다. 어떤 자원이 있었고 어떤 자원이 사라졌는지, 댐 때문에 잃어버린 것을 분명히 파악하고 정리해서 대중에게 알리는 것이 복원을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한국 정부가 4대강에 16개의 댐을 설치하면서 ‘강 살리기’라고 했다는 것은 이해가 안된다”며 한국이 4대강을 복원하는 데 자신들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거스타·뱅고어/김정수

 

 

 

 

 

 

“망가진 4대강 살릴 길은 복원뿐 준설 멈추고 ‘재자연화’ 시작해야”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의 한스 헬무트 베른하르트(72)교수는 독일에서 큰 홍수만 났다하면 앞다퉈 찾는 독일 최고의 하천ㆍ홍수 문제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4대강 사업 초기 한국을 방문해 4대강을 돌아보고 4대강 사업이 사실상 운하 사업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7월 감사원이 발표한 감사 결과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 것이다. 그에게 4대강 사업의 바람직한 처리 방안 등을 물어봤다. 인터뷰는 그의 빠쁜 일정 때문에 지난 4일 전화로 진행했다.

 

-지난 7월 한국 감사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사업이 운하 건설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었음을 확인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일찌감치 4대강 사업은 운하사업이라고 진단하셨는다는 점에서 이 감사 결과에 특별한 감회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사실 아무런 감회도 없습니다. 그 사업이 운하건 아니건 4대강이 파괴되었단 사실엔 변함이 없는데요, 뭘. 아이가 이미 우물에 빠져버렸는데 (끔찍한 일이 이미 일어나버렸다는 뜻) 내가 그 사실을 미리 알았다는 게 무슨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단지 망가진 4대강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제가 2년 전에 한국에 갔을 때 저는 이게 사실이란 걸 믿지 못할 정도로 쇼크가 컸습니다. 전 평생 그렇게 아름다운 강을 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복원할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강을 어떻게 복원한다는 것인지 자문할 수밖에 없었지요. 한국의 4대강사업이 운하사업이 아닌 다른 사업으로 여겨졌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죠. 그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 자세히 진단해 볼 필요조차 없었습니다. 홍보책자만 봐도 그렇고, 설계도면에도 배를 띄우는 데 필요한 수치의 하상단면이 확실히 나와 있습니다. 그렇게 깊은 수심은 배를 띄우기 위해서나 필요하지, 배가 다니지 않는 보를 만드는 데는 필요치 않습니다.”

 

-교수님이 단면도만 보고도 ‘운하’라고 하실 만큼 분명한데, 한국에서는 몰랐을까요?

“한국에서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제가 만난 교수들도 다 그렇게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은 2년 전 한국의 4대강사업 현장을 돌아보고 4대강사업에 생태적 배려가 전혀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면 때문에 그런 진단을 내리셨는지요?

“당시 공사현장에 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현재 모습과 공사 전 사진을 비교하면 알 수 있어요. 하천의 소중한 생태구조들이 준설로 모조리 파괴되었습니다. 당시 있었던 섬, 범람원, 강변 수목들에 대해 어떠한 배려도 하지 않았고, 게다가 해평습지처럼 1급 보호가치를 지닌 보호구역들까지 파헤쳐서 획일적인 운하형 하상단면을 가진 강으로 만들었습니다.”

 

-한국의 야당과 환경단체들은 200억 달러가 넘는 재원을 낭비하며 진행된 이 무모한 자연파괴 행위에 대해 책임규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유엔환경계획(UNEP)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사업을 긍적적으로 평가하며 지지하기도 했는데요. 교수님은 UNEP의 이러한 평가를 바로잡기 위한 시도를 하셨지요?

“이번 4대강사업과 관련된 UNEP의 행위는 유감 수준을 넘어서 현재 한국에서 일어난 일에 큰 몫의 공동책임이 있습니다. UNEP이 어떻게 4대강사업을 ‘녹색성장’이라 평가할 수 있었는지 저로서는 불가사의합니다. 특히 아힘 슈타이너(Achim Steiner) UNEP 사무총장이 4대강사업 이전에 청와대에 초대받아 가서 4대강사업을 칭찬한 사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2011년 4월 5일 슈타이너 사무총장에게 편지를 써서 4대강사업의 파괴성을 지적하며 이 사업과 사업의 후유증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로부터 어떤 반응도, 하물며 편지를 수신했다는 연락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16개 보가 가둬놓은 수억 톤의 강물은 특별한 용도를 찾지 못한 채 여름만 되면 남조류가 번성해서 식수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녹조현상은 물을 보로 막은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여름철 넓고 거대한 수로에서 물이 원활히 빠져나가지 못하고 거의 멈춘 것처럼 느리게 흐를 때 녹조현상이 생깁니다. 햇살이 강하고 수온이 오르면 필연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러나 햇살이 원인이 아니라, 보로 강물을 막아 흐름을 정체시킨 것이 원인입니다. 자유롭게 흐르는 강에서는 녹조가 생기지 않거든요.”

 

-수심 4~6m를 유지하기 위한 지속적인 준설 비용, 거대한 보를 유지관리하기 위한 비용 등을 고려할 때 4대강을 현 상태로 유지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시민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한국이 4대강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복원이 유일한 정답입니다. 지속적으로 들어갈 인공구조물 유지 및 보수 비용, 그리고 보 안쪽에 쌓이는 오니 제거 비용, 지하수의 수질과 수위 교란 등의 후유증을 처리하는 추가 비용, 그밖에도 다른 부작용들이 유발하는 비용은 장기적으로 볼 때 복원공사에 드는 비용보다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어마어마한 준설로 강바닥이 많이 내려가 있는 등 4대강의 하천형태는 이미 크게 바뀌었기 때문에 4대강 복원은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한국이 4대강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검토와 준비를 거쳐야 할까요?

“다각도로 신중하게 검토하며 재자연화의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 성공의 기본조건입니다. 그러나 몇 년에 걸쳐서 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2차원 수리모형을 이용해 수학적인 시뮬레이션을 해 보면 예상 토사운반량 같은 물흐름 조건을 아주 잘 검토할 수 있고 적합한 계획안을 신속히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복원작업의 첫 단계는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습니다. 즉, 강바닥 준설을 멈추고 보의 수위를 낮추며 수문을 열어 유속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강의 순기능도 다시 돌아옵니다. 보를 운영할 때는 가능한 한 이전 수위를 유지하는 선에서 수문을 조절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지하수위 역시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습니다.”

 

-이전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다고요?

“4대강사업의 공사과정에서 강바닥을 엄청난 규모로 파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이전과 같은 유속을 회복하리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 문제는 강에 다시 토사가 퇴적되어 하상단면이 축소되고 물흐름의 균형이 다시 잡힌 후에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강의 자연스러운 퇴적작용이 되도록 빨리 진행될 수 있게 강 옆에 여기저기 산처럼 쌓아놓은 준설토 모래를 강 속에 다시 쏟아부어야 합니다. 모래를 적절한 곳에 넣어주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강이 다 알아서 합니다.”

 

-현재 4대강이 많이 변형되었는데 재자연화를 진행하면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까요? 목표를 어떻게 세워야 할까요? 재자연화를 서둘러야 하나요?

“되도록 빨리 시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더 이상 피해가 확산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하수의 역동성이 무너지지 않아야 하는데요, 지하수질과 그 지역 생태계의 질을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현재 배수가 원활치 못해서 침수 면적이 늘어나는 문제도 아직은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침수가 오래 계속되서 고질적으로 되었을 때 생기는 문제에 비하면 아직은 쉽습니다. 바로 이 지하수의 역동성이 지닌 중요성을 간과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많죠.”

 

-16개 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부 제거되어야만 합니까?

“몇 개 보를 남겨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철거순서를 정하는 것은 결국 비용문제입니다. 강마다 별도로 진행할 수도 있고 모든 강에서 한꺼번에 시작할 수도 있겠지요. 저라면 시간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모든 강에서 한꺼번에 진행하겠습니다.”

 

-복원은 보를 해체하는 것으로 충분한가요? 지금 준설로 역행침식이 진행 중인데 보가 없어지면 이 문제가 어떻게 될까요?

“당장 보를 없애면 준설로 강바닥이 깊어진 까닭에 지류에서 역행침식이 심화되고 주변 지하수위가 심각할 정도로 내려갈 겁니다. 강의 수위가 내려갔기 때문에 주변의 지하수도 따라 내려갑니다. 평지에서는 강에서 몇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먼 지역에서도 지하수면이 하강한 것이 보고됩니다. 아무도 정확히 그것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지하수면이 떨어지면 뿌리에 물공급이 어려워져 농업과 입업에 치명적 타격이 생깁니다. 그래서 준설한 강바닥을 토사로 먼저 채워서 강의 자연스러운 유량조건을 조성한 후에 최종적으로 보를 제거해야 합니다. 또한 그때까지는 보에 물을 가둬두지 말고 사업 이전 강의 수위를 유지시켜야 합니다.”

 

-지금 준설로 4대강이 마치 수로처럼 매끈하게 정리된 상태라 보의 수문을 완전 개방하면 4대강이 홍수의 고속도로가 되어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 건 아닐까요? 복원과정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갑자기 모든 수문을 활짝 열어서 모든 물을 한꺼번에 흘려보내면 그런 일들이 생길 겁니다. 그래서 수문 개방은 공사 이전 수준으로 수위를 조절하는 일과 병행해야 합니다. 즉, 공사 이전 수준의 수위를 유지하도록 수문을 열어야 합니다. 홍수에 관해 예견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상황을 정밀하게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간단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준설한 낙동강 바닥을 자연스럽게 메우는 데는 내성천 바닥에 모래를 공급하는 것이 중요한데, 내성천 상류에서는 영주댐을 건설중입니다. 영주댐으로 인해 회룡포가 있는 내성천과 낙동강에 모래 공급이 끊기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요?

“상류에서 운반되는 자연 토사 없이는 침식작용이 계속 일어나고 강바닥이 점점 더 깊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라인강 이페츠하임 보 하류에서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나서 매일 많은 양의 토사를 강에 인위적으로 들이붓고 있습니다. 내성천의 경우 지금 아래쪽 낙동강의 준설로 역행침식 작용을 받아 모래를 빼앗기는 데다가 댐으로 상류에서 흘러오는 모래를 공급받지 못하는 두 상황이 겹쳐 두 배나 빠른 침식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름다운 회령포와 내성천 모래밭은 빠른 시일 내에 사라질 것입니다.”

 

-한국정부는 그 어떤 이득도 없고 이렇게 피해만 막중한 4대강살리기사업을 왜 했을까요?

“건설업체 일거리 만들어주기죠. 그것 아니고는 이유가 없습니다. (격앙되어) 한국의 4대강은 공사 이전에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자연 상태였습니다. 거기서 뭘 어떻게 더 살리겠다는 겁니까? 파괴만 했습니다.”

 

-독일 얘기를 좀 들려주시죠. 독일에선 어떻습니까? 만약 정부나 건설업체가 보를 불법으로 건설했다면 보상을 요구할 수 있습니까? 책임자를 처벌합니까? 그런 사례가 있나요?

“독일에서는 4대강사업 같은 진행은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례도 없어요.”

 

-독일에서 하천 재자연화 사업을 할 때 반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어떻게 설득을 하는지요?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유지 보상문제 같은 개인적 이유이고 하천 재자연화의 필요성 자체를 부인하는 국민은 없습니다. 자연상태의 강이 더 좋다는 것은 이젠 상식에 속하지요. 주민들은 아이디어를 내며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합니다. 독일에서는 하천사업을 계획할 때 그 취지를 알리고 주민 의견을 듣고 수렴합니다.”

 

-한국의 4대강 복원과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해 주실 말씀이 있습니까?

“한국 현장에서 보를 가동한 후 일어난 여러 상황을 상세히 관찰하지 못한 채 멀리 독일에 앉아서 판단하는 것은 외람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의 하천 재자연화 공사 경험에서 확인한 것이 있습니다. 주변 상황이 허락하고 사람이 자연에게 기회를 준다면 자연은 대단히 신속하게 좋아진다는 점입니다. 자연이 어떻게 변화해갈지는 미리 상세히 계획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걸 계획하는 것은 좋지도 않습니다.”

 

질문에 답하는 베른하르트 교수의 말투엔 때로는 무모한 자연파괴에 대한 분노와 격정이, 때로는 그 파괴를 막지 못한 사람의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가 보았던 한국의 강, 복원할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자연상태의 강을 서술할 때는 슬픔을 참고 있는 사람처럼 목소리가 떨렸다.

 

 

-뮌헨/글 임혜지 건축사학자

 

 
 
 

지식과 이론

U2 2012. 10. 26. 17:22

 

NLL의 정체, 1974년 'CIA 비밀문서' 보니…

 

 

 

 

NLL 부정이 영토주권 포기라고?

 

 

필자는 작년 3월 미 중앙정보국 (CIA)에서 1974년 1월 작성한 비밀문서를 공개한 바 있다.(☞칼럼 보기) 이 비밀문서는 북방한계선(NLL)이 1953년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에 의해 설정이 됐다는 통설이 근거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방한계선이 1960년 이전에 설정됐음을 보여주는 문서는 발견할 수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은 것이다.

 

                  

  이 문서는 북방한계선이 1965년 설정되었고, 당시 한국 해군 작전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던 유엔사령부 해군구성군 사령관이 선포한 것이라고 확인하고 있다. 더욱이 "북방한계선은 국제법상 법적인 근거를 갖지 않고 있으며, 일부분에서는 영해의 분리에 관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밝혔을 뿐만 아니라 "한국 해군사령관 (유엔사 해군구성군 사령관)의 지휘권 및 작전통제권 하에 있는 군사력에만 적용"되는 선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미 1974년에 작성된 보고서이고, 이를 필자가 공개한 지도 1년이 지났지만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인식과 논의는 역사적 사실과 괴리되어 있다. 17일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 총회 정면에 걸려 있던 "NLL 부정은 영토 주권의 포기"라는 구호가 그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NLL에 대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의를 위해 이번 기회에 미 중앙정보국 정보국장 명의로 1974년 1월 작성된 <서해연안 한국 도서>라는 제목의 비밀문서 전문을 번역하여 소개한다.(☞원문 보기)



 

중앙정보국
정보국장
1974년 1월

서해연안 한국 도서

1. 최근 여러 달 북한 (North Korea)은 인천항 북서쪽 연안해에서 한국 (South Korea)을 상대로 일련의 의도적 도발로 보이는 행위를 시작했다. 1973년 10월 말부터 북한 해군함은 한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한국 민간인과 군 요원이 거주하고 있는 5개 도서에 대한 접근을 위협하는 초계 양식을 보여 왔다.* 이러한 도발은 지금까지는 - 북한 초계선이 한국 함정을 향해 고속접근을 하거나 한국 도서의 3마일 경계를 침범하는 등 - 그 성격상 미미한 것이었다. 아직 어느 측도 상대방에 발포를 하지는 않았다.

* 이 도서는 북한 본토에서 2 내지 13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며, 그 중 하나는 북한 섬에서 1.3 마일 안에 있다 (지도 1). (모든 거리는 해리를 단위로 표시된다.) 이 섬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부록에 수록되어 있다.

2. 북한의 이러한 행위의 목적은 1973년 12월 1일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에서 드러났다. 이 회의에서 북한은 5개 도서 - 백령도, 대청도 서청도, 연평도 및 우도 - 각각을 둘러싼 수면이 북한 영해의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지도 1). 평양은 심지어 민간 선박도 이 수면을 항행하고 이 섬들에 정박하기 위해서는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유엔사령부는 영해에 관한 주장의 상대적 가치에 대해 어떤 입장도 취하지는 않았지만, 이 도서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권은 특정하여 견지했다.

3. 1953년 정전협정이 서명되었을 때 이 5개 도서는 유엔군이 점령하고 있었다. 이 섬들은 한국보다는 북한 영토에 훨씬 더 가까웠지만 정전협정의 규정에 따라 유엔 군사통제 하에 있게 됐다. 이 5개 도서에는 한국군이 여전히 주둔하고 있으며, 이중 4개에는 민간인이 살고 있다. [이하 삭제] 정전협정은 양측 군사력이 "비무장지대와 상대방의 군사통제 하에 있는 코리아의 육지에 인접한 수면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방한계선과 가상적 해상 관할권 (지도 1)

4. 현 분쟁에 있어서 큰 문제는 한국 해군사령관 (COMNAVFORKOREA)의 1965년 1월 14일자 명령으로 5개 도서와 북한의 통제 하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적대적 수면" 사이에 설정된 북방한계선이다.* 이 선의 명확한 전례는 같은 이름은 아니었지만 동 사령관이 1961년 설정한 바 있다. 북방한계선의 유일한 목적은 유엔사 해군 단위들이 특별허가 없이는 이 선의 이북으로 항해하는 것을 금지하여 사고를 회피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북방한계선은 적어도 두 곳에서 의심의 여지없이 (uncontested) 북한 주권 하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수면을 통과한다.

* 한국 해군사령관 (COMNAVFORKOREA)은 미국 장성으로 유엔사 해군구성군 사령관이며 대한민국 해군 작전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다. 1950년대말 한국 동해에서 한국 어선들이 압류된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 해군사령관이 북방한계선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5. 한국인들은 북방한계선이 비무장지대 (DMZ)의 해상 연장이자 남북한 간의 실질적 경계라고 간주하고 있다. 그러나 북방한계선은 국제법상 법적인 근거를 갖지 않고 있으며, 일부분에서는 영해의 분리에 관한 최소한의 조건조차 충족시키지 못한다. 북방한계선은 한국 해군사령관의 지휘권 및 작전통제권 하에 있는 군사력에만 적용된다.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북한이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북방한계선을 존중해왔다고 주장하나 북방한계선이 1960년 이전에 설정됐음을 보여주는 문서는 발견할 수 없다.

6. 정전협정에는 영해의 경계에 대한 조항이 없으나, 한강 어귀에서 바다 쪽으로 그어진 'A-B선'이 연안 도서의 군사 통제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됐다. 위에서 언급한 5개 도서를 제외하고는 'A-B선'의 북쪽과 서쪽에 있는 모든 도서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과 중국인민지원대 사령관의 군사 통제" 하에 놓였다. 이 선은 남쪽에 있는 모든 도서는 유엔사령부 사령관의 군사통제하에 있다.

7. 북방한계선과 'A-B선'이 당면한 중요성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각국의 영해 주장이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 상황은 북한과 한국이 각각 영해를 규정하는 방법이 모호하기 때문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지도 1은 해안선과 북한 통제 도서를 기선으로 하여 구성된 북한의 12마일 영해를 보여준다. 한국의 3마일 영해도 같은 방식으로 표시되어 있다.

8. 양측의 주장이 잠재적으로 상충하는 부분이 잠재적 분쟁지역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5개 도서 모두는 북한이 주장하는 영해 안에 있다. 양자합의가 없는 상태에서는 이 섬에 대한 법적 및 실질적 접근권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한국이 주장하는 3마일 경계는 약간 다른 형태의 중첩되는 주장들을 야기한다. 지도에 표시된 것과 같이 이 경계는 두 곳 - 서쪽 도서 그룹의 동북쪽과 동쪽 도서 그룹의 북쪽 -에서 북한의 가능한 내수면 (평양의 주권이 완전한) 안에 들어간다. 중첩되는 부위가 백령도 동북쪽 작은 곳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입장은 3마일 경계까지 자신의 권리를 집행한다는 것이다. 연평도 북쪽에서는 중첩되는 면적이 더 크다. 이 곳은 특히 민감한 지역인데, 북한이 확장되고 있는 해주항에 대한 제한 없는 접근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상적 중간선 (지도 2)

9. 분쟁 중인 서해 경계를 설정하는 가능한 한 방법은 중간선을 만드는 것이다. 지도 2는 실질적 주권에 근거하고 현존 국제법과 관습에 따라 그려진 북한 해안과 (도서를 포한)유엔 군사 통제 하 도서 사이의 등거리 중간선이다. 이 중간선을 공해까지 남쪽으로 연장한 선은 통상적으로 자원개발을 위한 대륙붕 지역 설정에만 사용될 것이다. 중간선을 이용한 영해분쟁의 해결은 5개 도서에 대한 한국은 접근권을 보존하고 공해에서 북한 해주항에 접근하는 것을 향상시킬 것이다.

 

 

 

/서재정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

 

 

프레시안 ( http://www.pressian.com/)

 

 

 

 

 

 
군에서 총한방 안쏜 MB “목숨걸고” 운운에 실소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 ‘어디선가 들었다’는 것인지, 혹은 ‘어디선가 봤다’는 것인지 기묘한 말투로 제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설”의 약발도 거의 떨어져 갈 무렵. 이명박 대통령이 연평도를 깜짝 방문해 “백배 천배 응징”을 외치며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드러냈다. 여기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마저 “남북정상회담 대화 내용을 밝히라”며 정쟁에 가세했다.

 

        

        

         (잘못된 사격자세로 구설수)

이에 북한이 임진각에서 탈북자 단체의 전단살포에 무력 응징을 천명하면서 남북한 군대는 포격전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닫는 최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 경기 북부 일원에 긴장이 고조되자 주민이 대피하고 임진각에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해역이 아닌 육지에서 조성된 남북의 군사적 긴장 중에 가장 강도가 높은 수준이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략적으로 제기된 NLL 논란이 위험한 이유는 한반도의 실제적인 위기를 조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번에 북한군은 단순히 말로 위협을 가한 것이 아니라 전방 포병 진지의 갱도가 열리고 사격준비태세로 돌입했다. 북한의 동향이 단순한 무력시위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교전의 조짐이었기 때문에 우리 군은 최고의 경계 및 전투준비태세로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이 반복적으로 전개된다면 북한은 손쉽게 우리 군의 대비 역량을 소진시키고, 군에 피로를 누적시킨다. 그런데 이런 소모적 군사적 긴장이 우리 안보에 있어 실제로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 선거를 앞 둔 보수안보세력의 정략의 산물이라는 점이 역설적이다. 즉 안보를 말하면 말할수록 안보가 어려워지는 것은 우리의 안보논리에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는 것, 더 나아가 장사꾼들이 확산시킨 가짜 안보 논리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정말로 국민의 안전을 걱정한다면 이런 식의 ‘북풍 몰이’ 또는 ‘종북 논란’이 판을 칠 이유가 없다.

 

북방한계선은 남북 간의 불가침 해상경계선이다. 이 경계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공동어로를 통해 평화적으로 수역을 관리하자는 것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기본 취지였다. 당시에 우리 내부에서조차 논란이 된 것은 해상경계선을 재조정하자는 문제가 아니라 공동어로구역을 정하느냐, 마느냐, 정한다면 남북 간에 어떤 원칙으로 정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자칭 보수안보세력은 이러한 논의 자체를 북방한계선을 포기하는 것으로 몰아붙이며 “북한 어선이 NLL에서 조업하면 우리가 영해 개념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그렇다면 개성공단과 금강산 개방은 북한이 영토개념을 포기한 것인가? 제한적으로 상대방에게 영토를 개방함으로써 얻는 실익이 더 많고 평화가 정착된다면 이보다 더 큰 안보란 없다.

 

북한이 우리 구역에 한 발자국만 들어와도 경계선이 무너지고 국가가 망할 것처럼 입에 거품을 무는 그들은 연평도와 백령도로 달려가 “목숨을 걸고 경계선을 지키자”고 말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라. 지난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 북방한계선을 경계선이라고 말한 지도자가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북방한계선이 이렇게 논란이 되도록 방치한 주범은 1977년에 영해법을 제정하면서 서북해역을 영해에서 빼버린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서북해역을 지킬 의사도 능력도 없었던 박 전 대통령은 영해법을 선포하고 나서 서북 도서의 안전이 걱정됐는지 북한 특수부대의 섬 상륙에 대비하여 기뢰를 설치하도록 한 것이 그가 한 조치의 전부였다. 최근 그 당시 설치한 기뢰 중 미수거 된 일부가 천안함 사건의 원인이 됐을지 모른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서북해역의 안전문제가 쟁점이 되면 우리는 그 문제의 뿌리를 찾기 위해 박 대통령 시절로 되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바로 그 시절이 우리나라 서북해역의 안전문제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시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서북도서에 해병대를 배치하면서 유사시 ‘옥쇄작전’, 즉 후방의 지원은 없는 것으로 설정했다. 이런 작전개념은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그들이 언제부터 북방한계선을 목숨으로 지켰다는 것인지도 어리둥절하지만, 정작 북방한계선을 방어한다는 개념이 최초로 성안되고 적용된 정권은 김대중 정부 시절이다. 1999년의 제1연평해전이 바로 그것이다.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자신감이 축적되자 서북해역을 군사적으로 방어한다는 최초의 인식과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그 바탕 위에서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서해 평화협력구상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새누리당을 비롯한 보수안보세력은 이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과거에 대한 편리한 기억상실증이다. 육지의 군사분계선(MDL)과 해상의 북방한계선(MDL)이 모두 뚫리고 사람이 죽고 주민이 대피하도록 상황을 악화시켜 놓고 그걸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는 유체이탈화법도 여전하다. 군에서 총 한방 쏜 적이 없는 국군통수권자가 “목숨 걸고” 운운하는 대목에서는 실소가 저절로 나온다.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NLL 공세? 남북합의서 체결 노태우 책임부터 물어야

 

 


[정상모의 흥망성쇠] 선거 때만 되면 나타나는 극우 보수세력의 ‘색깔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와 새누리당이 ‘서해북방한계선(NLL) 색깔론’ 총공세에 나선 모양새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18일 연평도를 전격 방문해 “NLL을 목숨 걸고 지켜야 한다”며 색깔론 공세를 폈다.

박 후보는 ‘NLL 포기’를 들먹이며 “이런 세력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겠느냐”고 공세의 기세를 올렸다. NLL 포기 세력이 정녕 존재하는가.

 

새누리당 쪽에서는 NLL이 영토선인지 입장을 분명히 밝히라고 야당 쪽 대선후보들을 압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무력화로 인해 연평도 포격 사태가 벌어졌다는 비난도 나온다.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의 통일부 국정감사 발언으로 촉발된 NLL 논란이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뜨거워지는 추세다.

 

논란의 핵심은 NLL이 영토선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있었는가의 문제다. 만약 NLL이 엄연한 우리의 영토선인데, 그럼에도 영토 주권을 포기하는 발언이나 세력이 있다면 이야말로 국기를 위태롭게 하는 엄청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논란의 실체적 진실은 과연 무엇인가.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군사분계선(휴전선)을 설정하면서 육상의 분계선은 휴전선을 경계로 확정했지만, 해상의 군사분계선은 명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전협정은 해상분계선과 관련해 “상대방의 군사통제 하에 있는 육지에 인접한 해상으로 한다”고 애매한 표현으로 규정함으로써 서해에서의 남북 간 논란과 충돌의 불씨를 남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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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은 1953년 8월 30일 서해 5개 도서로부터 북쪽으로 3해리가 되며, 동시에 서해 5개 도서 군과 북한 점령지의 사이를 서해 북방한계선(NLL)으로 일방적으로 설정했다. 우세한 해군력을 동원한 남한 쪽의 북진 공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남한 해군의 북진 한계를 내부적으로 규제하고, 남북 간 우발적 해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내부적 작전규칙의 일환으로 서해 북방한계선을 그은 것이다.

 

유엔군 사령부는 북방한계선 설정이 내부적 해군작전규칙이기 때문에 남한 해군에게만 전달하고 북한에게는 공식 통보하지 않았다. 1974년 1월 1일치 미국 중앙정보부(CIA) 문서에서도 NLL은 영토선도 해양경계선도 아니며,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한국군과 유엔군 군함들이 북쪽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그어놓은 한계선에 지나지 않는다고 못 박고 있다.

 

NLL은 유엔군 사령관의 작전통제권 지휘를 받는 한국군과 유엔군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선이라는 얘기다. 미국 국무부는 북방한계선 통과를 영해 침범으로는 보지 않는다. 이영호 국방장관도 1996년 7월 16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답변을 통해 “해상 북방한계선은 우리 어선이 조업 도중 잘못해 월북할 것을 우려해 우리가 임의로 설정한 북방한계선인만큼 북한에서 넘어와도 정전협정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처럼 NLL이 영토선도 해양경계선도 아니라고 하더라고 NLL 이남을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해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서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부속합의서 10조에서 “남과 북의 해상불가침 경계선은 앞으로 계속 협의한다. 해상불가침 구역을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하여온 구역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따라서 북한은 부속합의서대로 NLL을 존중하고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

 

NLL의 실체적 진실이 이러함에도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 쪽은 NLL이 우리의 영토선이라는 자신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반국가적 종북세력’ 따위로 몰아붙인다. 이렇게 터무니 없는 매도를 할 요량이라면 그들은 이에 앞서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한 노태우 대통령의 책임부터 묻고 따져야 마땅하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의 영토선인 NLL을 노대우 대통령이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북한과의 협의 대상으로 만들었으니 이야말로 영토 주권의 포기 아니겠는가. 영토 수호의 막중한 책임을 수행하는 이영호 국방장관의 발언도 마찬가지로 엄중한 문책 대상이 되어야 옳다.

 

노무현 정부가 NLL을 포기하거나 무력화하려고 했다는 새누리당 쪽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주장의 근거로 삼은 조성렬 박사의 ‘2차 정상회담 시 NLL 등 평화정착방안 보고’라는 문건을 보면, 오히려 ‘한반도평화협정 체결 시 NLL을 공식적인 경계선으로 만들자’는 정반대의 내용이 나온다.

 

NLL 논란을 촉발한 정문헌 의원이 주장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단독회담도, 비밀대화록도 존재하지 않는 허위 사실로 밝혀졌다. 정 의원은 녹취록을 북으로부터 받았다고 말했지만, 이 또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정문헌 의원의 주장들이 거짓으로 밝혀지자 새누리당 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담록 폐기 의혹을 제기하는 등 말을 바꿔가며 트집을 잡아 NLL 논란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다. NLL 논란 자체가 ‘색깔론’을 통한 보수세력의 결집을 노리는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의 대선전략이기 때문이다.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극우 보수세력의 ‘색깔론’ 공세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근거도 없는 주장과 거짓말 선동으로 야당 쪽 대선 후보와 지지 세력을 ‘우리의 영토선을 넘겨준 종북세력’ 따위로 매도하며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자극해 남남 갈등을 최대한 조장함으로써 보수세력의 표를 끌어모으자는 심산이다.

 

한국의 극우 보수세력은 도대체 언제까지 대북 적대감과 실체도 없는 ‘종북세력’ 따위의 ‘색깔론’으로 권력을 잡으려는가. 우리 민족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어떤 진정한 비전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채 시대착오적인 ‘색깔론’ 타령만 늘어놓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미국의 핵항공모함이 남중국해에 나타나고, 중국의 함대가 처음으로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 해역에 진입하는 등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갈수록 격화되는 추세다. 중국과 일본의 영토 분쟁도 양국 함정들이 서로 대치할 정도로 동북아 정세가 매우 악화됐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충돌지점인 한반도가 언제 두 세력의 갈등과 충돌에 휘말려 희생양이 될지 모를 판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도 없이 건듯하면 동족 간의 적대감이나 선동질하고 ‘색깔론’이나 일삼는 극우 보수세력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태롭게 할 망국세력이 아닌지 묻고 싶다.

이명박 정권이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간 끝에 터져버린 연평도 포격사태가 노무현 정권의 NLL 무력화 때문에 생겼다는 등 어쩌면 얼토당토않게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지 기가 막힌다. 얼마 전만 해도 극우 세력의 임진각 대북 전단 살포 문제로 중국이 자제를 요구하고 나설 정도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임계점에 이르러 또다시 남북 간 무력충돌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지 않았는가.  

 

 

 

-  정상모·평화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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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이론

U2 2011. 4. 12. 02:46

 

 

방사능물질 위험성, 진실은 무엇일까

 

 

 

 

 

 

후쿠시마 예측한 원전전문가이자 반핵운동가 히로세씨의 체르노빌 등 사례분석

 

지난 7일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비가 내리고, 전국의 날씨가 맑아진 뒤에도 연일 대기중에 방사성 요오드와 세슘이 검출되고 있다. 성인 한 사람의 방사능물질 연간 피폭선량 및 X-레이 1회 촬영시 받는 선량과 비교해 극미량에 불과하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지만 방사능에 대한 불안은 여전하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른 여러 나가들은 각각 피폭허용치(연간방사선노출한도)를 정해두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도 (리터당) 방사성물질의 노출양 한도를 권고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피폭허용량 또는 방사성물질의 양에 대한 적용과 해석이 각기 다르다는 점에 있다(4월8일자 미디어오늘 온라인판 <방사능 빗물 안전? “자식들에 먹일 수 있나”> 참조).

 

또한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폭 피해에 대한 국내외 사례연구나, 그 상관관계에 대한 조사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도 실제 위험성을 두고 불신과 이견을 낳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 3년 만인 지난 1989년 일본의 원전전문가이자 반핵운동가 히로세 다카시 씨가 펴내 국내에도 번역 소개된 ‘위험한 이야기’(‘원전을 멈춰라 - 체르노빌이 예언한 후쿠시마’로 재출간)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히로세 씨가 1950년대 핵실험과 1979년 스리마일 원전사고,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 공식적으로 발표되지 않은 방대한 피해사례를 수집 분석해 제시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그의 이런 피해사례 분석은 방사능 피해를 실제 이상으로 과장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또 엄격한 과학적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뢰성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수집 분석한 사례와 기록들이 대부분 언론 보도나 각종 보고서 등 나름대로 분명한 ‘출처’에 입각한 것들이라는 점에서 각국 정부와 언론이 말해주지 않는 방사능 피해의 실제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만하다. 그가 제시한 피해 사례를 요약 소개한다.<편집자 주>

 

히로세 다카시씨는 체르노빌 사고 당시 TV와 신문에서 거의 보도되지 않은 부분으로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식품 속에는 체르노빌 사고 때 확산된 방사능 물질(죽음의 재)이 대량 들어 있으며, 우리가 그것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당시) 소련이나 유럽은 예를 들어 쇠고기 등에 대해 계속해서 위험한 세슘(Cs)이 들어가서 이제 도망칠 수 없는 데까지 오염이 전파됐다”고 우려했다.

 

체르노빌 땐 어떤 물질들이 공포에 떨게 했을까. 히로세씨는 “당시 체르노빌에서 북서쪽으로 1200~1600km 떨어진 스웨덴에는 루테늄, 세륨, 넵투늄 등 비휘발성 방사능 물질의 함량이 놀랄 정도로 많았다”며 “모두 14종의 핵물질이 검출됐다”고 설명했다.

 

이 세가지 물질은 모두 끓는점이 섭씨 3000도 이상이다. 사고 당시 엄청난 고온이 발생해 이런 물질까지 대기 중으로 방출됐다는 것이다. 사고 시각이 1986년 4월 26일 밤 1시23분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한밤중에 이런 열기가 우크라이나 상공으로 치솟았다면 금세 냉각돼 물(비 또는 눈)이 돼 다시 지상으로 떨어졌을 것(낙진)으로 분석했다.

 

누출된 방사성 물질 등을 분석 유추해 원전 사고의 형태와 원자로 손상 정도, 피해 정도를 예측하는 기법은 이후 각국 원자력규제당국이 앞다퉈 개발한 ‘원전사고 예상 시뮬레이션’과 같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원전사고 예상 시뮬레이션’은 원전 관계자들에게는 이른바 ‘안전코드(Safety Codes)’로 알려진 것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해 미국이나 프랑스 등이 후쿠시마 원전 상태에 대해 일본이나 후쿠시마 원전을 운용하고 있는 도쿄전력 보다 더 ‘상세한 정보’를 제시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히로세씨는 이 가운데 ‘스트론튬(Sr90)’은 안전지대로 분류됐던 (당시) 일본에서도 검출됐으며 이는 몸 안에 들어가면 척추에 쌓여서 백혈병을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6년 권고한 기준치에 따르면 스트론튬90은 1리터당 10베크렐을 초과해선 안된다.

 

 

 

 방사성물질이 체내 어디로 유입되고 그 반감기. ⓒ히로세다카시 저서 '원전을멈춰라'에서

 

 

  1986년 말 유럽 전역을 공포로 몰아 넣은 ‘세슘 137’은 근육에 들어가면 육종(근육에 일어나는 종양)을 일으킨다. 세슘 137은 체르노빌 사고 직후 각국의 쇠고기 등 가축에서 다량 검출됐다. 갑상선에 암이나 종양을 일으키는 방사성 요오드 역시 유럽 전역에서 검출됐다. WHO의 권고기준은 두 물질 모두 1리터당 10베크렐을 초과해선 안된다.

 

히로세씨는 “이런 물질이 나오는 과정은 온도와 관계가 있는데, 스트론튬은 섭씨 1600도씨, 세슘 760도씨, 요오드 185도씨에서 가스가 된다”며 “방사성 요오드의 경우 거의 물의 끓는점(100도씨)과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원자로 내에서 처음부터 가스 상태인 방사성 물질도 있다. 크립톤(Kr), 제논(Xe)은 상온에서 가스 상태이며, 원자로 내에 대량 들어있었다. 이들은 모두 백혈병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이같은 방사성물질이 무서운 이유에 대해 히로세 씨는 “강력한 에너지를 방출해서 생물이나 우리 체세포에 ‘절대로 완전히 회복될 수 없는 무서운 영향’을 주고, 또 이로 인해 손상된 염색체가 유전자에 남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히로세 씨는 후쿠시마원전 사고로 가장 많이 유출된 방사성 요오드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우리 목에 있는 갑상선의 호르몬 생성과 분비에 필요한 요오드는 체내에 정량이 차게 되면 더 이상의 요오드를 흡수하지 않는다. 요오드는 바다에서 나는 해초에 많이 함유돼 있다. 다시마나 김, 미역, 파래, 멸치, 천일염 등을 많이 먹으면 방사성 요오드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신체에 조금이라도 요오드가 부족하게 되면 방사성 요오드의 구분 없이 신체가 바로 요오드를 흡수한다는 점이다. 특히 성장 호르몬 분비가 많은 어린이의 경우 요오드의 흡수력이 월등히 높아 방사성 요오드가 치명적일 수 있다.

 

히로세 씨는 요오드의 반감기가 8일 밖에 안돼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는 과학자들의 주장도 ‘맞지 않는 논리’라고 반박한다. 방사성 요오드의 반감기가 비록 8일 밖에 안되고 신체에 흡수되더라도 3개월이 지나면 대부분 안전한 것으로 변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주장이지만, “일단 갑상선에 흡수된 방사성 요오드는 유전자에 상처를 입히고, 이것이 어린이들의 몸 안에서 소리없이 성장해 (세월이 지난 다음) 커다란 암세포 덩어리가 됐을 때 비극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감기가 긴 방사성 물질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스트론튬90이나 세슘137은 반감기가 각각 28년과 30년으로 대충 잡아도 100년간은 위험하다. 플루토늄의 반감기는 2만4000년, 거의 반영구적이다.

 

스트론튬은 등뼈에 농축돼 근육종을 일으킨다. 플루토늄은 더 치명적이다. 여성의 난소에 들어가 태아에 영향을 주고, 남성의 정자에 영향을 준다. 폐에 들어가면 폐암을 일으키고, 골수에 들어가면 백혈구를 파괴해 백혈병을 일으킨다.

 

히로세 씨는 “플루토늄이 몸안에 들어갔을 때 폐의 전체에 고루 퍼지는 것이 아니라 극히 조그마한 부분에 착 달라붙어 주위에 있는 5~6개 세포를 완전히 파괴해버린다”며 “플루토늄이 방출하는 방사선은 멀리 (날아)가지는 않는 대신 가까이 있는 세포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 정상적 세포 기능을 완전히 파괴하고 거기에 암세포를 만든다”고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마치 정밀타격 미사일 같이 ‘집중적’으로 세포를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는 “문제는 (치사량을 넘지 않을 경우) 당장 폐암이 되는 게 아니라 몇 해 지나서 폐암이 돼 인과관계를 도저히 밝혀낼 수 없다는 점에 있다”며 “원전이 ‘안전하다’고 뇌까리는 학자들이나 박사님들의 가면을 벗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에게 그들이 정한 플루토늄을 마시게 해보는 것”이라며 과연 그들이 그럴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헐리우드 서부영화 주인공들과 스텝들의 암 사망률 조사를 통해 핵실험과의 연관성에 주목하기도 했다. 1950년대 미국이 네바다 사막에서 지상핵실험을 한 것과 관련해 그는 네바다 사막 인근에서 서부영화를 많이 찍었던 존 웨인 등 헐리우드 관계자의 암 사망률을 조사한 결과 1978년~83년까지 이들 영화 관계자 10명 중 평균 4.35명이 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당시 미국의 평균 암 사망률이 10명 중 2명 꼴 이었다는 점에서 이 역시 핵실험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는 추론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1954년 비키니섬 핵실험과 관련해서도 9년이 지난 다음 주변 지역주민들 가운데 방사성 요오드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갑상선 장애가 급증했으며, 핵실험 장소에서 180km나 떨어져 안전지대로 분류됐던 롱겔라프섬에서도 29년이 지난 1983년 자료에 따르면 섬 주민의 28%가 암이나 백혈병 등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질병으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제시했다.

 

히로세 다카시(68) 씨는 와세다 공대를 졸업해 대기업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의학기술서적 전문 번역가로 변신해 활발한 집필활동을 벌이면서 대기업들의 ‘기밀문서’를 다수 번역하는 과정에서 기업들의 ‘은폐된 진실’과 ‘핵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이후 줄곧 원전 등의 위험 등을 알리는 데 노력해왔다.

 

 

- 조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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