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개혁

U2 2013. 11. 23. 11:31

 

 

이상호 기자, MBC 상대 해고무효소송 1심 승소

 

 

 

 

 

SNS 격려글 쇄도.. 최승호 “진실은 이긴다”

 

MBC에서 해고된 이상호 기자가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승소했다.서울남부지방법원 제13민사부는 22일 이상호 전 MBC기자가 MBC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무효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MBC는 해고를 무효로 하고, 올해 1월 16일부터 복직일까지 원고에게 월 4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피고의 명예를 훼손해 징계사유가 되더라도 그 내용이 진실하다고 볼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으면 이를 이유로 근로자를 징계해고까지 하는 것은 재량권을 일탈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법원의 이 같은 판결에 이상호 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법원에 미안하다. 비겁한 사회가 자꾸 상식적인 일들을 법원에 떠넘긴다”며 “상식을 확인시켜 줘 감사하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는 이어 “자기 정부하 검찰이 심각한 선거부정을 밝혀냈는데도, 즉각적 사과와 사퇴를 거부하고 법원으로 공을 넘긴 그 분도 반성하시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국가기관의 부정선거 개입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이 기자는 또 “해고자 문제 꼭 붙잡아준 노조의 따뜻한 손 잊지 않겠다”면서 “다른 해고 동료들에 앞서 복직하게 되어 죄송한 마음”이라고 전한 뒤 “먼저 MBC에 돌아가게 되면 땅에 떨어진 공영방송 MBC를 바로 세우는 사업에 작은 밀알이 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안매체 고발뉴스는 지금껏 그래왔듯, 후배들이 잘할 수 있도록 열심히 돕겠다”면서 “척박한 땅에서 몸으로 진실을 쟁기질 해온 고발뉴스에도 지속적인 사랑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상호 기자의 승소 소식에 트위터 등 SNS에서는 언론인들의 축하 메시지가 잇따랐다.

 

최승호 전 MBC PD(현 뉴스타파 앵커)는 “이상호 기자 금방 해고무효 판결 났답니다. 진실은 이깁니다!!!”라고 전했고, 최경영 전 KBS 기자(현 뉴스타파 기자)는 “당연한 결과이지만 축하는 해야죠. 이명박 정부기간 해직된 모든 언론인들이 복직하고, 이들을 해직한 그들은 천벌을 받을 때까지. 파이팅!!”이라고 격려했다.

 

MBC 조능희 PD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더니 이상호 기자의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이 이제야 났군요. 김재철 일당의 폭압을 법원이 확인한 것인데, 주먹을 휘두른 자들은 호의호식하고 있고, 해고자와 그 가족들은 아직도 고통을 견디고 있습니다. 그 날이 언제 오려나..”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또, 언론노조KBS본부는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애초부터 1%도 말이 안 되는 부당해고”라고 지적했다.

 

법원 판결에 앞서 박대용 춘천 MBC 기자는 “잠시후 9:30 서울남부지법에서 MBC 이상호 기자 해고 취소 소송 1심 선고가 예정돼 있습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기원 드리고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라며 재판 소식을 알리는 동시 응원을 부탁했다.

 

이밖에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이재화 변호사는 “법원이 제대로 판단했다”며 “MBC는 이상호 기자를 즉각 복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대인 소장(선대인경제연구소)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승소를 예감하긴 했는데, 좋은 결과 나와 다행”이라면서 “사측이 항소할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결과가 바뀌진 않을 거라 믿는다”고 전했다.

 

선 소장은 그러면서 “이상호 기자가 그동안 과로한 탓에 건강이 안 좋다. 거의 1인 10역을 하며 매일 방송을 만들어왔으니 오죽하겠냐”면서 12월부터 다시 고발뉴스를 재가동하겠다는 이상호 기자의 말을 전하면서 “저도 매주 한 번 정도 ‘선대인의 3분경제’로 참여할 생각이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미디어스>에 따르면,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본부장 이성주, 이하 MBC노조)는 이상호 기자가 1심에서 승소한 만큼, 사측에 해고자 복직을 요구할 예정이다. MBC노조 오동운 사무처장은 “회사는 기존 단협에 복직조항이 나와 있다고 해도 현재 단협이 해지된 상황이기 때문에 따를 의무가 없다는 입장”이라며 “쉽게 복직이 이뤄질 거라고 보지는 않지만 노조 차원에서는 해고자 복직을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MBC 정책홍보부 관계자는 “판결문이 도착하면 내용을 검토한 뒤 회사 입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상호 기자는 지난해 대선 하루 전날 MBC의 ‘김정남 인터뷰 추진설’을 트위터에 폭로해 MBC로부터 지난 1월 15일 해고당했다. 당시 MBC는 인터뷰 추진은 시인하면서도 성사되지 못했다며 ‘악의적 유언비어’라고 주장했지만 MBC 특파원이 지난해 12월 19일 말레이시아에서 김정남을 만나 5분간 대화를 나눈 것으로 드러났다. 

 

 

MBC기자회 “이상호 기자 등 해직기자 즉각 복직시켜야”

 

 

“항소로 시간끌기? 김종국, MBC정상화 의지없다 간주할 것”

 

법원이 이상호 전 MBC기자가 사측을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무효를 판결한 것과 관련 MBC 기자회가 환영의 뜻을 밝히며 MBC에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상호 기자는 물론, 박성제, 박성호, 이용마 기자를 즉각 복귀시킬 것”을 촉구했다.

 

MBC 기자회는 22일 <해직 기자들의 즉각 복귀를 촉구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오늘 법원의 판결은 기자들이라면 누구나 당연하게 여길 상식”이라면서 ”오늘 판결은 ‘충성하면 중용하고 마음에 안 들면 무조건 찍어내는’ 이른바 ‘김재철식 묻지마 해고’에 대해 경종을 울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자회는 성명을 통해 “이상호 기자는 지난해 12월 대선을 앞두고 SNS를 통해 ‘회사가 김정남을 인터뷰해 대선 전날 보도하려 한다’고 알렸다. 회사는 이 사건과 개인 블로그 운영, 인터넷방송 출연 등을 빌미로 곧바로 이 기자를 해고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며 이상호 기자 해고와 관련, 일련의 과정을 설명했다.

 

이어 “오늘 재판부는 ‘그 내용이 진실하다고 볼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으며 이를 이유로 해고까지 하는 것은 재량권 일탈’이라고 판결했다. 또, 트위터 이용과 고발뉴스 출연이 해고할 정도로 중대한 징계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며 법원의 판결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MBC 기자들 가운데 이런 무차별적 해고의 희생자는 3명이 더 있다”며 “박성제, 박성호, 이용마 기자가 그들이다. 이들이 해고된 지 벌써 2년이 되어 간다”며 사측은 이상호 기자는 물론 이들 세 명을 즉각 복직시키라고 촉구했다. 

 

기자회는 아울러 “행여 항소로 시간을 끌면서 이 문제를 계속 방치한다면, 이는 MBC 정상화에 대해 김종국 사장의 의지가 없는 것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며 “깊어진 갈등의 해소와 일 중심의 건강한 조직을 기대한다면, 답은 분명하다. 해고자 복직이 그 출발점이다”고 강조했다. 

 

 

- 김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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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기록

U2 2013. 9. 24. 11:17

 

 

 

 

 

박정희 '은밀한 과거'는 어떻게 비밀이 됐나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주제는 친일파다. <편집자>

프레시안 : 1949년 이승만 정부가 반민특위를 힘으로 눌렀다. 그렇게 수면 아래에 묻히는 듯했던 친일 청산 문제를 되살린 인물이 임종국이다. 임종국이 쓴 <친일문학론>은 친일 문제 연구에서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꼽힌다.

                             

 서중석 : (그 책이) 1966년에 나왔다. 1967년에 내가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 무렵 그 책을 우연히 샀다. 그 시기에 친일파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쨌건) 이 책이 집에서 없어졌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이 책을 꼭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신 체제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였다. <친일문학론>에서 봤던 일제 말 친일파의 논리와 유신 체제의 논리에 흡사한 게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구해야겠다' 해서 청계천을 두 번 이상 이 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 책을 구하러 다닐 때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 <친일문학론>이 나왔을 때 그것(친일 행위)과 관련된 자들이 순식간에 책을 사버렸다. 그래서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또 이 책이 그다음에 못 나오게 돼 있다.' 사실 1980년대에도 이 책은 금서 목록에 들어 있었다. 그만큼 친일파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는 걸 친일파, 극우 반공 세력이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건 뭘 얘기하느냐면, (1949년) 반민법 파동 이후 한국인들의 머릿속에서 친일파 문제가 지워지도록, 친일파 문제를 다시는 거론하지 않도록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극히 일부 학계를 제외하고는, 극단적인 반공 체제가 그렇게 가도록 한 것이었다.

하여튼 언제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6월항쟁 이전에 <친일문학론>을 다시 구했다. 다시 한 번 세밀하게 정독하고 노트에 주요 내용을 옮겨놨던 게 기억난다.

프레시안 : 앞에서, 6월항쟁 때까지 친일 문제가 거의 거론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중석 : 친일파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친일문학론> 이외에도) 김대상이라는 분이 친일파 문제에 대해 상당히 좋은 글을 썼다. 반민법 파동에 대한 연구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몇몇 비판적인 학자들 사이에서 '이렇게까지 잘못된 독재 체제가 들어선 건 해방 후 친일파 처단이 안 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1979년에 (1권이) 나온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서도 친일파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졌다.

이것들 말고는, 친일파에 관한 연구가 6월항쟁 이전엔 별반 없었다. <친일문학론>이 나오기 전엔 (제대로 된 연구가) 없었다고 얘기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친일파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많은 국민에게 이 문제가 알려진 건 6월항쟁 이후다.

 

친일 청산 문제 되살린 임종국의 역작 <친일문학론>

프레시안 : 극우 반공 체제가 사실상 입을 틀어막은 셈이다.

서중석 : 그러다 보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일어나고 그랬다. 예컨대 18년, 그것도 우리 현대사에서 제일 가운데 토막이라고 볼 수 있는 시기를 지배한 박정희 같은 분(과 관련해서)도 그랬다. (생전에) 박정희의 전력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1963년 대통령 선거 때 윤보선 후보가 '(박정희 후보의) 사상의 전력이 의심스럽다'고 한 거다. '박정희 후보가 (1948년에 발생한) 여순사건과 관련이 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당시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러나 사실 그때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왜냐면 <동아일보>가 (박정희와) 여순사건 관련 기사를 호외로 냈는데, 그 호외가 거의 돌지 못했다. 특수 기관에서 (대부분) 압수했다고 그런다.

박정희는 해방 후 군 내부의 남로당 프락치였고 그중에서도 핵심 위치에 있었다. 그 점이 중요했던 건데, 내가 여기서 문제 삼는 건 윤보선 후보 쪽에서 그 중요한 대선에서조차 그런 정보를 몰랐다는 것이다. 다만 (박정희가) 여순사건 직후에 재판을 받았다고 하니까 여순사건과 관련된 것 아니냐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순사건에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라, 여순사건 후 진행된 숙군 과정에서 남로당 프락치라는 사실이 드러나 예편을 당했다. <편집자>)

작년 대선 때 '박정희가 일본 군인이던 시절 쓴 이름이 다카키 마사오였다'는 얘기가 TV 토론에서 나왔다. (박정희의 친일 전력이 거론된 지 적잖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때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듣고 놀랐다'는 사람도 꽤 있었다고 하더라. 친일파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쉬쉬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박정희처럼 중요한 인물이 일제 때 무슨 일을 했는지, 그 사람이 어떻게 창씨개명을 했는지 잘 모른다는 건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프레시안 : 친일 행적을 입증할 자료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 것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서중석 : 그렇다. 친일파 관련 자료 문제가 얼마나 풀기 어려운가 하는 건, 1950∼1970년대 연구와 관련해 얘기할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하나 들면) <친일인명사전>이 나올 무렵이었다. 그때 박정희 문제와 관련해 민족문제연구소가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 시기에 특별한 문서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 재판이 어떻게 됐을까'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얘기냐면, 그 재판이 진행되던 중 박정희가 만주국 군관으로 받아달라며 혈서를 썼다는 '혈서 군관 지원'이란 제목의 <만주신문>(1939년 3월 31일 자) 기사가 공개됐다. 박정희가 '천황한테 진충보국하겠다'며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허락해달라고 하지만, 처음엔 허가가 안 났다. 그래서 다시 지원하면서 혈서를 쓴 것이다.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하겠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 자료가 공개되면서 민족문제연구소에 유리해졌다. <친일인명사전>이 (무사히) 나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는 <친일인명사전>에 부친의 이름을 싣는 것과 사전을 배포하는 것을 금지해달라며 가처분신청을 냈다. 그 후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는 <만주신문> 자료가 공개됐다. 법원은 그해 11월 박 씨의 신청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편집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2005.5.31.∼2009.11.30.)가 (활발히) 활동하던 때에도 박정희 관련 문서를 찾으려고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연변을 포함한 만주 쪽으로 많이 수소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당시엔 이 <만주신문> 자료를 끝내 못 찾았었다.

하여튼 친일파에 관한 자료가 1980년대까지도 참 적었다. 친일파에 대해 연구하거나 친일파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 요소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친일파 연구의 어려움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친일문학론>의 우여곡절이다.

 

친일 문제 틀어막은 사회, 비밀 아닌 비밀이 된 박정희의 은밀한 과거

프레시안 : 지금까지 이야기한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은밀한 과거'는 오랫동안 비밀 아닌 비밀로 유지됐다. 다른 문제를 짚어봤으면 한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 좌절을 나치 협력자를 단호히 처단한 프랑스와 대조하는 경우가 적잖다.

서중석 : 나치 협력으로 단죄나 비판의 대상이 된 프랑스 사람이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나치 협력자 숙정 조치에 관련된 프랑스인은 150만∼200만 명에 달한다. 주섭일,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대숙청, <역사비평> 1995년 봄호. <편집자>) 15만 명 이상이 정식 재판소에서 사형이나 각종 징역형을 받았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도 나치 협력 문제로 각각 5만 건 이상의 징역형 판결이 내려졌다. 덴마크에서도 징역형을 받은 사람이 1만 명이 넘는다. 

 

이처럼 유럽에선 나치 협력자에 대한 처단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중요한 역사적 과제였다. 거기에 비해 한국은 제대로 안된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도 잘못된 방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게 큰 문제다.

프레시안 : 이와 관련, 35년간 식민 지배를 당한 한국에선 독일에 점령된 기간이 4년밖에 안 되는 프랑스처럼 하기 어려웠다는 주장도 있다.

 

           

서중석 : 그렇지 않다. 두 가지를 얘기할 수 있다. 일제 지배 기간이 길었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친일파가 언제 대거 생겨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말 매국 행위자들은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1930대 전반기까지 독립 운동을 탄압하고 민중을 감시하는 악질적 행위를 했다고 판단되는 자들도 그렇게 많지 않다.

 

친일파가 언제 대량으로 생겨나는가 하면,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시 체제가 강화되고 일제의 군국주의 침략 전쟁이 아주 거세지면서다. 태평양전쟁에 돌입하면서 친일파 문제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문제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이 문제가) 특히 심각했던 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이 나치에게 당했던 것과 거의 같은 시기다. 이 점을 우선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자 서중석의 진단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 "<조선> 말대로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빨갱이"




친일파, 전범 뒤에 숨어 책임 회피할 처지 아니다

프레시안 :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서중석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 협력자들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일본 전범들은 도쿄 재판을 받게 된다. 그에 더해 유럽 각국과 중국 등에서 전쟁 협력자에 대한 재판과 처형이 이뤄진다.

뉘른베르크 재판이나 도쿄 재판 같은 건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그전엔 전쟁에 진 나라가 배상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전범 재판에서) 인도(人道)에 반하는 죄를 처단해야 한다고 한 건 새로운 개념이었다. 그만큼 인류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자들처럼 비인도적 행위를 저지른 세력이 다시는 발호하지 않도록 처단해야 한다는 것이 인류사의 방향이었다.

일제 말 친일파에게도 그런 면이 있었다. 공출, 징용, 학병 같은 것에 한국인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한다고 (친일파가) 한 것 자체가 전쟁에 적극 협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제의 침략 전쟁을 적극 옹호하는 글을 쓴 것 등도 나치 전범이나 일본 군국주의 전범과 마찬가지(로 인도에 반하는) 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전범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할 처지가 아니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서중석 : 그렇다. 그에 더해 일제 말 친일파는 도저히 씻으려야 씻을 수 없는 악질적인 행위를 했다. '민족의식을 말살해야 한다. 한국인은 영원히 일본인이 돼야 한다'며 황국 신민화 운동을 여러 형태로 펼치지 않았나. 한국인 상당수가 거기에 가세했다. 이건 그 이전 친일 행위하고도 다르다. 예컨대 1910~1920년에는 '민족의식을 완전히 말살해 일본인이 돼야 한다'는 주장까지는 안 했다. 그런데 일제 말엔 그렇지 않았다. 이걸 중시해야 한다.

그래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일제 말 황국 신민화 운동을 한 자, 군국주의 침략 전쟁 찬양 활동에 가담한 자들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던 거다. 그 수가 굉장히 많다. 중일전쟁 이전 시기의 것을 근거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숫자에 못지않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한국전쟁, 첫 번째 마당] "공산군 물리친 이승만의 공? 잘한 게 없다"

[한국전쟁, 두 번째 마당] "북한, 전면전은 못할 것…한국전쟁 공포 때문"
[한국전쟁, 세 번째 마당] 박정희 살린 6.25? "전쟁 덕 톡톡히 봤다"
[친일파, 첫 번째 마당] "뉴라이트·이승만, '용서받지 못할 자' 비호"


 

/김덕련, 최하얀  

 

 

 

프레시안 ( http://www.pressian.com/)


 

 
 
 

언론개혁

U2 2013. 6. 9. 14:07

 

 

MBC, 성추행 가해자를 런던특파원 내정 파문

 

 


 

 

지난해 비정규직 여사원들 상대로 성추행…“상식도 원칙도 없는 인사 조치 당장 철회하라” 

 

MBC가 지난해 비정규직 여사원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저지른 기자를 런던특파원으로 내정해 내부 구성원들이 인사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런던특파원으로 내정된 김아무개 기자는 지난해 1월 31일 같은 부서의 비정규직 여사원 4명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음담패설과 강제로 껴안는 등 신체접촉을 이유로 내부 인사위원회에서 정직 2개월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MBC가 이번에 김아무개 기자를 런던특파원으로 내정하자 반발이 나온 것이다. 방송사에서 특파원은 ‘승진’의 의미가 강하다. 

               

                         

 

MBC 여기자회는 5일 성명을 내고 “이런 기자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자를 특파원으로 내보내겠다는 회사의 결정은 ‘비상식’을 넘어 누가 봐도 기가 찰 노릇”이라고 비판했다. 
 
여기자회는 김 기자에 대해 내려진 징계 수위와 이후 조치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여기자회는 “비정규직 신분의 어린 여사원이라는 약한 고리를 골라 성추행을 반복적으로 저지른 악질적인 범죄였다. 그런데도 파업 불참자에 대한 선심성 시혜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고작 정직 2개월이라는 경징계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당시 MBC 기자회의 제작거부에 참여하지 않았고, 제작거부가 이뤄지던 시기에 성추행을 저질렀다. 
 
이어 “피해자들 중 일부는 여전히 여의도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건 당시 피해자들의 유일한 요구 사항은 ‘마주치지 않게만 해 달라’는 것이었다”면서 “그런데 회사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수차례’ 무시해온 반면, 가해자인 김아무개에 대해서는 ‘선처’에 이어 특파원 발령이라는 ‘우대’까지 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MBC는 김 기자를 최근 여의도 본사로 복귀시켰다. 
 
여기자회는 김 기자에 대한 인사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자회는 “본인도 양심이 있다면 스스로 기자라는 직종을 감당할 수 있는지부터 돌아보고 즉각 특파원 신청을 자진해서 철회해야 할 것”이라며 “상식도 원칙도 없는 인사 조치를 당장 철회하라”고 강조했다. 
 
한 MBC 여기자는 이번 인사에 대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 MBC라는 방송사에 대한 시청자들의 신뢰가 떨어지고 있는데 어디까지 신뢰를 잃으려고 말도 안 되는 인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런던특파원으로 내정된 김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일이 있어서 본사로 올 때면 당사자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해 다녔고 나도 힘들었다. (당사자가)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고 멀리 나가 만날 가능성을 줄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고 해명했다. 
 
김 기자는 ‘피해자의 입장에선 가해자의 승진이 문제가 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런 생각을 한다면 만나서 자초지종을 말하고 싶다. 마음 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사죄드리겠다”고 말했다. 
 
김장겸 보도국장에게 내부 비판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한편 MBC 내부에서는 김 기자의 런던특파원 내정뿐만 아니라 김대환 보도국 부국장에 대해서도 ‘원칙 없는 인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김대환 부국장은 MBC가 문재인 의원의 실루엣 사진을 범죄자 보도에 사용해 물의를 일으켰던 올해 초 본사 네트워크부장을 맡고 있었다. 당시 보도는 당시 여수MBC보도팀장이 해임될 만큼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안이었다.
 
 
 
 
 
김장겸 MBC 보도국장, ‘MBC 파업’ 유발한 장본인
 
 
 

대선 시기 기자회로부터 사퇴요구 받아…“MBC 파업 원인 제공, 진영논리에 갇혀 있다”
 
 
지난해 MBC 대선 보도는 역대 '최악'이란 평가를 받았다. 여권에 불리한 보도는 누락 혹은 축소하고, 야권에 타격을 입힐 만한 보도는 팩트 검증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평가였다. MBC내부에서는 이같은 평가를 받은 대선보도의 실무 지휘자로 지난 22일 보도국장으로 승진한 김장겸 당시 정치부장를 지목하고 있다. 
 
김 보도국장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건 2011년 2월 정치부장이 되면서다. 이 시기는 김재철 체제의 편파보도에 MBC 기자들의 반발이 고조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정치 기사의 공정성은 평소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 선거기간 판가름난다. 김 국장이 정치부장이었던 2011년 10·26 재보선 선거 당시 MBC는 나경원 전 한나라당 후보를 노골적으로 편들었다는 내부 질타에 직면했다.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가 발간한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보고서를 살펴보면, 나 전 후보 의혹 보도 분량은 65초였지만 박원순 후보 의혹 보도 분량은 한 달여간 375초로 5~6배 달했다.           ( 박근혜 맞이하는 김장겸) 
 
이 기간 터진 ‘MB 내곡동 사저 의혹’에 대해서도 MBC 뉴스는 의혹 제기가 아닌 청와대 해명 위주나 여야 단순 공방 등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거주 내곡동 사저 부지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기로 했다고 밝히자 돌연 이를 톱뉴스로 보도했다. MBC가 사저 의혹을 축소한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MBC 본부에 따르면 김재철 전 사장은 MBC 공정방송협의회에서 △10·26 선거시 박원순에 치우친 의혹중계 보도 △민주당의 공식적 문제제기 누락 △소극적 MB 사저 보도 등에서 심각한 편파불공정 보도를 했다는 MBC본부의 지적에 대해 “문제 있는 부분 일부 인정한다”고 말했다. MBC 정치뉴스의 편파성을김 전 사장조차도 ‘모르쇠’로 일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김 국장은 MBC 170일 파업의 도화선이 된 MBC 기자회 제작거부의 ‘주범’이기도 하다. 당시 기자회는 당시 전영배 보도본부장과 문철호 보도국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 돌입을 선언하며, 동시에 두 보도책임자가 뉴스 파행의 책임을 지고 사퇴할 것을 요구했다. 
 
당시 정치부장이었던 그가 직접적으로 사퇴 요구를 받은 건 아니다. 하지만 기자회가 편파보도로 꼽은 ‘4.27 재보궐 선거 편파, 장관 인사청문회 의혹 축소, KBS 도청 의혹 보도통제, <PD수첩> 대법원 판결 왜곡, 내곡동 사저 편파, 10.26 재보선 불공정, 한미 FTA 반대 집회 누락과 편파, 미국 법원의 BBK 판결문 특종 홀대, 김문수 경기지사의 119 논란 외면’으로 대부분이 정치 뉴스다.  
 
MBC본부 역시 성명에서 "170일 파업을 야기한 장본인이지만 편파보도의 공로를 인정받아 김재철 체제 하에서 정치부장만 벌써 2년 가까이 하고 있다"며 "그 사이 MBC의 명예는 끝을 모르고 추락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MBC본부가 ‘낙하산 사장 반대, 공정방송 회복’을 위한 170일 파업을 끝나고 업무에 복귀할 때도 그는 파업 참가 기자들은 대선 취재에서 배제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보도를 위해 파업에 동참한 기자들이 배제된 지난해 대선 기간, MBC 정치 뉴스의 편파성 논란은 최고조에 달했다.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박사논문 표절 의혹을 검증 없이 보도하면서도 안 전 후보 측의 반론은 반영하지 않고, 안 전 후보 사찰 의혹 국면에서 그 핵심증거인 경찰교육원장의 발언 녹취 내용을 누락한 채 보도하자 MBC 뉴스에 대한 비난과 냉소가 일었다.
 
MBC 기자회는 “그가 지난해 장관 인사청문회와 내곡동 사저 의혹 보도를 누락할 때와 똑같은 논리로 ‘내가 보니 의혹 될 만한 게 없더라’는 자의적 기사 판단을 고집하는 것을 우려하며, 그 명석하지도 우수하지도 않은 판단력으로 50년 된 방송사를 망치는 행위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심지어 박근혜 새누리당 전 대선후보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여론조사 기관을 교체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MBC 기자회는 “양자대결에서 안 후보가 처음으로 1등을 한 직후 여론조사 기관이 코리아리서치에서 한국리서치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MBC는 ‘안철수 후보 편법 증여의혹’,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 ‘국정원 직원 댓글 의혹’ 등 언론노조 대선공정보도실천위원회가 네티즌을 상대로 뽑은 ‘최악의 대선보도’에 7차례에 걸쳐 선정됐다.
 
김 국장은 박근혜 정부의 인사 검증 보도에서도 논란에 휩싸였다. 정홍원 총리 후보의 위장전입 의혹을 누락한 것에 대해 그는 “위장 전입이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나의 판단”이라는 해명했다. MBC는 최근 윤창중 성추행 의혹,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굵직한 이슈에서도 핵심적인 의혹제기는 피하거나 다른 언론보다 며칠 늦게 보도해 의혹을 뭉개고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MBC 보도국의 한 기자는 “MBC 파업은 사실상 김장겸 국장 때문에 시작된 것이나 다름 아니다”며 “성향이 보수적인 문제를 떠나서 진영 논리에 갇혀서 기사 판단을 하다 보니 뉴스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경민 “김장겸이 나보고 앵커 물러나라 했다”
 
 
김종국 MBC 사장이 임명한 김장겸 MBC 신임 보도국장이 이명박 정부 초 정권에 불편한 쓴소리 ‘클로징 멘트’를 했던 신경민 당시 <뉴스데스크> 앵커(현 민주당 의원)에 대해 편집회의 공개석상에서 물러날 것을 종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김장겸 보도국장은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 하차하실 생각은 없느냐’고 말한 적 은 있다고 답했다.

신 의원에 따르면, 자신과 김 국장은 지난 2003년 각각 국제부장과 국제부 차장으로 친밀한 선후배관계로 지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클로징 멘트’로 앵커하차 압박을 받고 있을 때 김 국장이 물러나달라고 하면서 관계가 단절됐다. 이런 악연은 지난해 대선 당시 김국장이 정치부장 시절 이른바 ‘신 의원의 막말 논란’ 리포트를 여러차례 내보낸데 관여하면서 이어졌다. 현재 신 의원이 MBC 사장을 비롯해 권재홍 보도본부장, 황용구 당시 보도국장, 김장겸 당시 정치부장을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청구소송(1억원)을 제기해 재판이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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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사람들’, MBC 보도국 요직 차지
 
 

박용찬·박승진, 취재센터장·정치부장으로… “김재철 체제보다 편파보도 기조 굳어질 것”
 
 
MBC가 이틀에 거쳐 보도국 인사를 단행했다. '김재철 체제'에서 편파보도 및 부적절 발언 논란을 일으킨 보도국 인사들이 요직을 차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MBC 편파 보도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보도국 정치부장 및 기자들이 이번 인사에서도 요직을 차지했다. MBC는 23일 박승진 청와대 출입기자(1진)를 정치부장으로 발령냈다.

박 정치부장은 김재철 전 사장이 해임된 후 허태열 비서실장과의 오찬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바 있다. 허 비서실장이 ‘후임 사장이 누가 됐으면 하느냐’고 묻자, 박 기자는 “정치색 있는 노조와 무관한 사람이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논란 당시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허 실장이 의도를 갖고 물어본 것도 아닐 테고, (현재 MBC) 사장이 공석이니 그렇게 물어봤을 것이고, 나 역시 원론적 입장에서 말한 것”이라며 “사장이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화제를 삼을 수 있는 내용이어서 개인적으로 해준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김재철 전 사장이 해임된 뒤 MBC 정상화를 위해 공정한 인사가 차기 사장으로 선임돼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던 민감한 시기에 청와대 출입기자가 노조의 정치색을 거론하며 차기 사장 기준을 밝힌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배선영 경제부장 역시 정치부 기자 시절 김 당시 정치부장과 함께 편파 보도 논란의 한가운데 있었던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MBC는 하루 전인 22일 '김장겸 보도국장' 인사를 단행했다. 김 보도국장은 정치부장 시절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의 박사논문 표절 의혹 및 사찰 의혹을 편파적으로 보도했다는 내부 비판에 직면, MBC 기자회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았다.

MBC 기자회는 당시 “그가 지난해 장관 인사청문회와 내곡동 사저 의혹 보도를 누락할 때와 똑같은 논리로 ‘내가 보니 의혹 될 만한 게 없더라’는 자의적 기사 판단을 고집하는 것을 우려하며, 그 명석하지도 우수하지도 않은 판단력으로 50년 된 방송사를 망치는 행위에 분노한다”고 밝혔다.
 
MBC는 또한 23일 보도국 부국장에 김대환, 특임국장에 박승규, 취재센터장에 박용찬, 사회1부장에 권순표, 네트워크부장에 박상후, 스포츠취재부장에 김대근, 인터넷뉴스부장으로 한정우를 발령냈다. 
 
박용찬 취재센터장도 편파보도의 책임자로 분류된다. 사회1부장 시절 ‘김문수 경기도지사 119 논란’을 보도에서 누락시켜 김 국장과 함께 지난해 기자회 제작거부를 촉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MBC 내부에서는 김재철 체제의 보도 논란이 계속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김효엽 기자회장은 24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김재철 체제에서의 편파보도 책임자들이 오히려 더 책임 있는 자리로 갔다. 편파보도 기조가 더 굳어질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회장은 이어 “김종국 사장은 ‘직을 걸고 공정방송을 실현하겠다’고 말하면서 김장겸 정치부장을 보도국장으로 앉히는 건 앞뒤가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 조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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