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광장

U2 2016. 4. 18. 14:10

 

 

 

 

세월호 진상규명 될 때까지 우리는 416학번"

 세월호 참사 2주기 전국 대학생 공동행동, 광화문서 '기억·약속·행동 문화제'도

 

"어느덧 730여 일,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무고한 희생자들이 곁을 떠난 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월호 안에서 '살고 싶다'고 외치던 친구들 목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날, 살아 돌아왔다면 함께 따뜻한 봄날 캠퍼스를 누볐을 친구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힐 때까지, 우리는 416학번입니다."

노란색과 하얀색 우비를 입은 16학번 대학생 새내기들 얼굴 위로 빗물이 흘러내렸다. 세차게 내리는 비로 앰프가 젖어 마이크는 지직거리는 잡음을 냈다. 세월호 2주기를 맞은 16일 오후 6시께, 추모문화제가 열리는 서울 광화문광장 옆 세종문화예술회관 앞에 모인 100여 명의 '416학번' 학생들의 모습이었다.

세월호 희생자 304명(미수습자 9명 포함) 중 250명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경기도 안산 단원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었다. 이들과 동갑인 서울여대 16학번 새내기 고은빛씨의 제안으로 진행된 '16학번 새내기 선언'에는 건국대, 국민대, 성균관대, 홍익대 등 전국 34개 대학 300여 명 16학번이 연명했다.

                   

 

학생들은 선언문을 통해 "친구들이 떠난 그해 4월, 세월호 참사 소식에도 대입 준비에 시달리느라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했다"며 "당시 해경은 적극적으로 구조하지 않았고 박 대통령은 세월호 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드는 등 진상규명을 방해했다, 앞으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될 때까지 우리는 416학번으로서 계속 행동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오후 3시께에도 서울 종로구 혜화 마로니에 공원에서 대학생 주최 대규모 추모행사인 '4.16 세월호 참사 2주기 전국 대학생 대회'가 펼쳐졌다. 여기에는 단원고 희생자인 고 이영만(2학년 6반)군의 친구이자 16학번 새내기인 학생, 또 희생자 가족인 박가을(단원고 2-1 박성빈 양 언니)씨 등이 참석해 "세월호를 피하지 말고 함께 행동해 달라"고 말했다.

16개월 젖먹이 품에 안고 온 30대 주부 "세월호 인양해 진실 밝혀달라"

주최 측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 참석한 대학생들은 약 800명. 이들은 "단원고 친구들이 살아있었다면 나랑 같이 학교에 다녔을 것"이라며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직접 쓴 팻말을 들고 혜화역부터 종로 1가를 거쳐 서울 광화문 광장까지 걸어서 행진해 왔다.

희생자들의 추모 분향소가 놓인 서울 광화문광장은 이날 오후부터 분향을 위해 전국에서 온 추모객들이 줄을 길게 서는 등 인산인해를 이뤘다.

16개월 된 딸 김새벽 양을 품에 안고 추모하러 온 주부 박이나(36, 서울 서초구 방배동)씨는 "무엇보다도 '시체라도 찾고 싶다'는 미수습자 가족 분들이 눈에 밟힌다"며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정확히 알기 위해, 또 미수습자 가족들을 위해, 세월호 선체를 인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함께 온 아들 김영원(방배초 5학년)군은 "내리는 비가 희생된 형과 누나들 눈물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전 전국 각지에서 열린 추모행사에 이어,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참사 2년 기억·약속·행동 문화제'가 416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주최로 열렸다.

 

세월호 2주기 문화제, 김제동 “아이들이 국가다”


궂은 날씨 속 수만 인파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 요구…박주민 "새누리당 무너뜨린 힘, 보여달라

 

4.13 총선이 야당의 압승으로 끝나면서 세월호 진상규명과 선체 인양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열망이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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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가 16일 오후 7시 광화문 광장에서 주최한 ‘세월호 참사 2년 기억·약속·행동 문화제’에는 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수만의 인파가 몰렸다.

 

이날 행사의 시작을 알린 인사는 연예인 김제동씨였다. 마이크를 쥔 김씨는 광장 무대에 올라 발언을 이어갔다. 연예인으로 데뷔하기 전 행사 사전 진행자의 솜씨를 뽐낸 것이다.

김씨는 “여기에 (국회의원) 당선자 분들이 많이 오셨다”며 “그런데 국회의원은 300명인데 세월호 희생자는 304명이다. 국회의원과 원수를 지더라도 (세월호 진상규명에 힘을 쏟는지)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배지를 지키는 열정만큼 우리 사회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나라를 지키러 간 것도 아닌데 왜 잊지 말라는지 모르겠다'는 이들이 있다. 제가 그랬습니다. 아이들이 국가다. X새끼들아”라고 외쳐 시민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세월호 유가족 유경근 4ㆍ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새롭게 20대 국회에 들어간 분들 가운데 모두 111분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유 위원장은 "약속을 지키는 지 확인해야 한다”며 “여러분들이 지금부터 전화하고 문자하고 카톡하고 텔레그램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쫓아가셔서 ‘왜 약속 안 지키느냐’고 채근하고 재촉해달라”고 호소했다.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는 “세월호 참사는 사람의 생명이나 안전보다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문화,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던 국가, 그리고 기레기라고 불린 언론이 만든 참사”라고 비판했다.

박 당선자는 “다시 말해 세월호 참사는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그 누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세월호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선자 120명이 하리라 믿지만 그들만의 힘으로 힘들다”면서 "여러분이 보여주셨던 힘, 한방에 오만한 새누리당을 거꾸러뜨린 여러분의 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유성애 김도연  

 

 

ⓒ 오마이뉴스  ⓒ 미디어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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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리포트

U2 2015. 3. 11. 15:52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어떻게 해결됐나요"

 

 

 

 

 

 


로마 교황청 찾은 주교단 만나자마자 첫 질문으로 '세월호' 언급

 

지난해 방한 때 세월호 유족들을 만나 위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로마 교황청을 찾은 한국 천주교 주교단에 재차 세월호 문제를 물으며 관심을 드러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9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교황청 클레멘스 8세홀에서 사도좌(교황청) 정기방문 중인 한국 주교단을 만났다고 10일 천주교 주교회의가 밝혔다.

이날 만남은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좌담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주교회의 측에 따르면, 한국어를 거의 잊어버려 통역이 필요하게 됐다는 농담으로 대화를 시작한 교황은 모임에서 첫 질문으로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됐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주교회의 관계자는 10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교황님께서 한국을 다녀가신 후에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마무리 됐는지, 잘 해결됐는지에 대해 주교님들에게 물으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면담에서, 지난해 방한 이후 한국에서 천주교 입교자가 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느님께 감사한 일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교황은 지난해 8월 방한 당시 왼쪽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4박 5일간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네 차례에 걸쳐 세월호 유족을 직접 만나 위로하는 등 세월호 문제 해결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관련기사: '노란 리본' 단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들 성모님께 의탁한다").

그는 지난해 방한 첫 날, 공항에 나온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 손을 잡으며 "희생자들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다,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가 하면, 38일간 십자가를 지고 도보순례를 한 이호진(56, 단원고 2학년 고 이승현군 아버지)씨에게 직접 세례를 주기도 했다.

한편 이날 면담에는 김희중 대주교와 염수정 추기경(서울대교구장) 등 한국 주교 14명이 참석했다. 이번에 방문한 주교 25명 중 나머지 11명은 오는 12일 교황을 면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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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리본' 단 프란치스코 교황  "세월호 희생자들 성모님께 의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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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08.15

교황 보기 위해 모인 5만여 명의 사람들

"비바 파파(Viva Papa), 교황님 만세!"

대전월드컵경기장 관중석에 앉은 5만여 명의 신자들이 일제히 손수건을 흔들며 외쳤다. 모두들 들뜨고 환한 표정이었다. 전국 13개 지역 천주교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기 위해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기쁨으로 그를 맞이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둘째 날인 15일은 가톨릭의 성모 승천 대축일로, 이날 오전 10시 30분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는 교황이 신자들과 함께 하는 첫 공식 미사가 집전됐다. 대축일은 예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가 일생을 마친 뒤 승천한 것을 축하하는 날로, 이번 미사에는 특별히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 등 38명도 초대됐다.

                   


 

 

오전 10시 10분께, 교황이 대전 월드컵경기장에 도착하자 신자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지르며 환영했다. 교황은 오픈카에 탄 채 신자들을 향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고, 가끔씩 멈춰 서서 어린 아기들을 받아 품에 안거나 머리를 쓰다듬기도 했다. 교황이 도착해 경기장 안을 한 바퀴 돌며 인사하는 동안, 신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파도타기를 하는 등 환영의 뜻을 표했다.  

교황은 미사 직전 제의실에서 유족 10명과 만나 이들을 위로했다. 이들 가운데는 십자가를 지고 도보순례를 한 이호진(56, 고 이승현 군 아버지), 김학일(52, 고 김웅기 군 아버지)씨도 포함됐다. 교황은 전날인 14일에도 세월호 유족 네 명과 만나 "가슴이 아프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미사를 드리는 내내, 교황이 입은 백색 제의 왼쪽 가슴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추모를 표하는 노란색 배지가 달려 있었다.  

설레는 신자들 "교황 뵙는 건 평생에 처음... 세월호 유족 아픔 덜어졌으면" 

 

이날 오전 4시부터 경기장에 모여든 신자들은 모두 교황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다. 충남 계룡시에서 두 살배기 아들 이로희(15개월) 군을 안고 미사에 참석한 이상언(32), 서나영(32) 부부는 "아직도 제대로 실감이 안 난다"라면서 "굉장히 설렌다,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말했다.

아들과 함께 온 김순희(57)씨도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천주교의 영적 지도자와도 같은 교황님을 만나는 자리는 제 평생 처음"이라며 "오늘 세월호 유족들과 만나신다고 들었는데 이들과 함께 하셔서 유족들의 아픔이 덜어지고 문제가 빨리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들은 오전 8시께부터 가수 인순이(체칠리아)와 성악가 조수미(소화 데레사) 등이 함께하는 문화행사를 보며 교황을 기다렸다. <넬라 판타지아> 등을 부른 조수미는 "심장이 너무 떨리고 어느 무대보다도 긴장이 돼서 3일 동안 잠을 못 잤다"라면서 "여러분 도와주세요"라고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대축일 미사에는 경찰과 군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석했다. 천주교 특별교구인 군종교구에서도 병사와 장교·부사관 등 30여 명이 군복과 베레모를 갖춰 입고 교황을 맞이했다. 이들과 함께 온 서아무개씨는 "전국에서 신청을 받아 모인 군인들"이라며 "교황을 만나는 건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로마로 직접 교황을 뵈러 가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세월호 유족들, 교황에게 편지... "진실만이 아픔 더는 유일한 방법"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보도자료를 통해 "교황께 마음을 담아 전달하려 한다"라며 노란 리본 배지 등이 담긴 선물상자와 세월호 희생자들 사진이 실린 앨범, 'We want the truth'(우리는 진실을 원한다)라 쓰인 티셔츠 등을 건넨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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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또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황님. 저희의 이 글을 꼭 읽어주십시오"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교황방한준비위원회를 통해 교황에게 전했다. 유족들은 여기서 "세월호 이후 멈춘 시간 속에서 하루하루 뼈가 아프고 심장이 녹는다"며 최근 정부의 대응에 대해 강하게 규탄했다.

유족들은 "우리 요구는 단순하다, 가족들이 죽어간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이라며 "수 백 명 신부와 수녀들이 함께 단식 농성을 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와 수사기관·사법기관과 국회, 심지어 언론은 가족들 요구에 대해 아는 척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우리 가족들이 죽어가던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은 행적이 불분명했다는데 청와대와 여당은 그조차 알려 하지 말라 한다"라면서 "온통 거짓말과 기만으로 일관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가족들은 참사와 진상규명을 위해 기소권·수사권이 있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라고 썼다.

이어 "진실만이 멈춘 시간을 흐르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죽어간 아이들이 좋은 곳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도록, 가족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냉담한 이 현실 속에서 싸워갈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라고 청했다.

오전 11시 40분 현재,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집전하며 신자들에게 성모 마리아를 통한 하느님의 축복과 천주교인의 역할과 의무 등에 대해 강론 후 함께 기도를 하고 있다. 주최 측에 따르면 미사는 낮 12시 30분에서 낮 1시 사이 끝날 예정이다.

교황, 삼종기도 통해 세월호 유가족 위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는 이날 낮 12시 30분께 끝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를 마치기 전 삼종기도 말씀을 통해 특별히 세월호 유가족들의 고통을 언급하며 그들을 위로했다. 그는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해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국가 대재난으로 고통 받고 있는 모든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라면서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길 기도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교황은 "(세월호 침몰이라는) 비극적 사고를 통해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됐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길 바란다"라면서 "대한민국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을 맞아 이 고상한 나라를 지켜주시길 성모 마리아께 부탁한다"라고 기도했다.

또한 교황은 이날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을 통해 "성모 마리아께서 하느님의 계획대로 세상을 변모시키려는 우리의 노력을 이끌어 주시도록 간청한다"라면서 "한국 천주교인인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 힘없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강론 후에는 영성체 예식[신자들이 예수님의 몸(밀떡)을 영하며 기도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영성체 예식이 끝난 후 대전교구장인 유흥식 주교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는 등 이토록 힘든 시기에 교황님의 방한이 이뤄져 감사하다"라고 환영사를 하자, 교황은 웃으며 유 주교의 양 볼에 입을 맞추며 화답했다.

다음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삼종기도 전문이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거룩한 미사를 마치며,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늘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를 바라봅니다. 성모님께 우리의 모든 기쁨과 고통 그리고 희망들을 봉헌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고로 인하여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고를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또한 성모님께서, 우리 중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 특별히 병든 이들과 가난한 이들, 존엄한 인간에 어울리는 일자리를 갖지 못한 이들을 자비로이 굽어보시도록 간청합니다.

끝으로, 대한민국의 해방을 기념하는 광복절을 맞아, 우리는 이 고상한 나라와 그 국민을 지켜 주시도록 성모 마리아께 간구합니다. 또한 아시아 전역에서 이곳 대전교구에 모여온 모든 젊은이들을 성모님의 손길에 맡깁니다. 그들이 하느님의 복된 계획에 따라 평화로운 세상의 새벽을 알리는, 기쁨에 넘친 전령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유성애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

 

 

 

 

 

 
 
 

시사보고서

U2 2014. 10. 1. 13:20

 

 

도 넘은 극우의 준동,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이른바 ‘서북청년단’의 재건을 표방하는 세력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훼손하려 했다고 한다.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원회’ 회원들은 그제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유가족 눈치를 보고 있는 서울시장과 정부를 대신해 결행한다”며 추모 리본을 떼어내려다 경찰에 저지당했다. 이들은 “실종자 수색작업을 중단하고 세월호 인양을 마무리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극소수가 벌인 일이라고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서북청년단이 어떤 단체인가. 해방공간에서 정치테러를 일삼고, 제주 4·3 항쟁 당시 양민 학살에 가담한 극우단체 아닌가. 이런 조직의 재건을 말하는 것은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이다. 분노하고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지적했듯이 서북청년단은 “광기가 지배하던 시대의 표상”이며, 이를 재건하려는 시도는 “한국 사회가 이념적 광기와 사적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로 퇴행하고 있다는 징표”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서북청년단의 재건을 외치는 것은 독일 베를린 도심에서 나치 친위대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상상하기도, 용납하기도 힘든 일이 중인환시리에 벌어진 것은 박근혜 정권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여권은 “순수 유가족” “배후조종세력” 등의 언설로 세월호 가족을 시민에게서 고립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실제 새누리당은 세월호 가족의 단식농성을 조롱하는 ‘폭식투쟁’을 지원했던 정성산씨를 당 기획위원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에게 이유 없는 증오심을 갖고 공격하는 행위를 ‘혐오범죄’라 한다. 세월호 가족은 공동체가 제공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약자이다. 이들을 부축하지는 못할망정 추모의 상징물을 철거하려 한 것은 혐오범죄의 범주에 들 수 있다. 극우세력의 행태를 방치했다가는 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우선 공론장에서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토론을 통해 패륜적 행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특히 ‘진짜 보수’를 자임하는 세력의 향배가 중요하다. 참된 보수라면 극우세력의 무분별한 행태에 편승하거나 방관해선 안된다. 분명히 선을 긋고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마땅하다. 공론장의 논의를 통한 사회적 제재로도 충분치 않다면, 차별금지법의 연장선상에서 혐오범죄를 규제하는 입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입법화할 경우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성요건을 엄격히 해야 할 것이다.

 

 

 

 

 

자유총연맹이 이동통신사업을 하겠다니

 

 

 

 

 

보수 관변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이 제4 이동통신사업 추진계획을 밝혔다. 연맹 회원 150만명과 회원 기업들이 주축이 돼 컨소시엄을 만든 뒤 정부로부터 허가권을 따내겠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이념운동 단체로 표현하는 자유총연맹의 뜬금없는 이통사업 진출 선언에 어리둥절할 뿐이다. 추진 목적도 ‘반값 요금’ 등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실현을 위한 것이라니 정치를 하겠다는 건지, 관제 사업을 하겠다는 건지 당최 알 수 없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3사가 장악하고 있는 이통시장에 새 사업자가 등장하는 것 자체를 반대할 까닭은 없다. 오히려 신규 사업자 가세로 50 대 30 대 20 구조로 고착돼 있는 시장에 경쟁이 붙으면 산업 경쟁력 제고는 물론 가계의 통신비 절감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유총연맹이 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은 볼썽사납다.

                   

 

 특정 정치집단의 이해를 추종하고 때로는 직접 행동도 불사하는 관변단체가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공익적 성격을 띠는 이통사업자가 되려는 것을 납득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연맹은 매년 수십억원의 국가 지원금을 받으면서 전용, 횡령은 물론 인사청탁 등 비리 의혹도 끊이지 않고 있다. 내부 자정이 우선인 상황에서 신규 사업이라니 어이가 없다.

사업 능력도 의문이다. 연맹은 산하에 한전산업개발을 운영하는 등 사업 경험이 풍부하다고 얘기하고 싶겠지만, 경쟁이 없는 전기검침 업무로 이득을 보는 한전산업개발과 정글의 싸움으로 비유되는 이통사 운영은 차원이 다르다.

 

실제 이들이 낸 사업 추진계획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연맹 측은 회원 기업 수백곳과 소상공인 3만여명이 주주로 참여한다면서 최초 자본금 1조원 조달에 이어 사업권을 획득한 뒤 공모를 통해 자본금을 늘리겠다는 막연한 계획서를 내놨다. 기술력에 대해서도 “훗날 밝히겠다”며 얼버무렸다. 이통사업을 위해서는 기술력은 물론이고, 안정적 서비스 제공 능력을 갖추는 게 필수적이다. 여기에 신규 주파수 확보에 필요한 재원과 막대한 설비투자 자금 등 재정적 능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모바일인터넷이 6차례 도전에도 번번이 탈락한 것은 이런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업계에서는 자유총연맹이 이명박 정부 때 보수 언론의 종편 허가와 같은 특혜를 기대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도는 모양이나 정치와 사업이 뒤섞이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명약관화하다. 연맹은 추진계획을 접는 게 마땅하다.

 

 

ⓒ 경향사설 ( http://www.khan.co.kr/)

 

 

 

 

 

 

*제4이통 진출 선언 자유총연맹, 기여자 1인당 약 20억원 지분 무상 배정

 

 

보수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이 한국자유통신(KFT)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이동통신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한국자유통신컨소시엄은 발기인 등 기여자 40∼50명에게 1인당 약 20억원이 돌아가는 약 1000억원 상당의 지분을 무상배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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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자유통신컨소시엄이 이날 공개한 지분 계획에 따르면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연기금 등이 각 5∼15%씩 도합 70%의 지분 투자를 하게 되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공모해 20%의 지분을 구성한다.

이 컨소시엄은 또 기술개발단·법무단·평가단·발기인 등 기여자 40∼50명에게 도합 10%의 지분(1000억원 상당)을 무상배정하기로 했다. 기여자 수를 50명으로 잡으면 1인당 20억원꼴이다.

박건홍 한국자유통신 조직·경영·정책 부회장(국민에너지관리사업단 대표)은 이들에게 지분을 무상배정하는 이유를 묻자 “벤처기업에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헌신적으로 일을 해온 데 대한 보상 차원”이라고 답했다.

앞서 KMI는 2010년부터 제4 이동통신 사업계획 서를 여섯 차례 냈으나 기술적 능력에서 상대적으론 높은 점수를 받고도 재정적 능력에서 기준점 이하를 얻어 번번이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자유총연맹의 제4이동통신 진출 추진에 대해서는 그러나 이 단체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고, 정보통신 분야에 대한 전문성도 부족하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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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n.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409251520141&code=920100&med=khan

서울광장에 나타난 서북청년단…“세월호 유족 폭력 유발자”(?)


서북청년단 재건위 노란리본 철거 계획 밝혀…과거 테러단체 ‘섬뜩’, 도 넘었다 지적

​일간베스트 회원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 요구 단식 농성장에서 폭식투쟁을 벌인 데 이어 세월호 참사의 상징인 노란 리본을 철거하자는 단체가 등장했다.

서북청년단재건 준비위원회는 28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제 더 이상 국론분열의 중심에 서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외면해서는 아니 되겠기에, 구국을 위해 재건을 준비하고 있는 ‘서북청년단’이 단원고 일부 유가족과 불순한 반정부 선동세력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서울시와 정부를 대신해서 이 일을 결행하고자 한다"며 노란 리본을 철거하겠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여 논란이 됐던 '엄마부대 봉사단' 주옥순 대표를 포함한 극우 보수 단체 회원들이다.

이들은 기자회견에 앞서 발표한 발언문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세월호특별법 제정과정에서 이미 냉정을 잃고 분노에 사무친 일부 유가족들에게 이 참사의 원인규명을 맡길 수 없음은 자명함으로 전원 배제하고, 특검추천권은 여야동수로 구성하여 유병언 일당의 뇌물공여와 관계된 지위고하를 막론한 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포함한 특검수사 결과에 정치권 모두가 같은 중량감으로 책임을 나누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노란 리본 철거에 대해 "단원고 유가족 대표단과 불순한 선동세력들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도, 서울시도 마땅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시점"이라며 "서울시는 온 국민의 애도가 담긴 노란 리본을 영구 보존하여 후세에 다시는 이 같은 망국적 인재가 재현되지 않도록 국민적 경각심을 이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 추모 노란리본 보관함'을 가져와 세월호 추모 리본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경찰과 서울시 관계자들에 막혀 저지 당했다. 이들은 하지만 향후 산발적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노란 리본을 철거할 것이라고 밝혀 충돌을 예고했다.

노란리본 철거에 나선 단체 이름을 들은 누리꾼들은 섬뜩하다며 수구 세력의 행동이 도를 넘었다고 비판했다.

서북청년단은 제주 4. 3 항쟁 당시 제주도민에 대한 무차별 테러와 공격을 감행한 극우반공단체로 악명이 높았다.

한 누리꾼은 "국군과 경찰, 서북청년단에 의해 학살된 민간인 희생자는 수십만명. 영문도 모른 채 야산이나 골짜기 등으로 끌려가 잔혹하게 학살된 것이 대부분. 이승만 주도 후에 박정희가 모든 자료 소각, 지금 서북청년단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한탄했다.

폭식투쟁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노란 리본을 철거하면서 폭력을 유도해 세월호 특별법 제정 여론을 악화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서북청년단이라는 이름을 괜히 차용한 게 아니라 이제는 거리에서 자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폭력행위도 서슴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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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진

ⓒ 미디어오늘 (http://www.mediatoday.co.kr)

​‘서북청년단 재건’ 파문…도대체 어떤 단체였길래

당신이 서북청년회에 대해 알아야 할 5가지


김구 암살한 안두희가 간부…제주 4·3 때 ‘주민 학살’
KKK·네오나찌·재특회 등과 맥락 같이 하는 극우단체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원회’를 자처하는 극우단체들이 서울광장에 설치된 ‘노란 리본’을 철거하려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들이 재건하려는 ‘서북청년회’(약칭 서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서북청년회는 어떤 조직이고, 이 같은 극우단체를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서북청년회는 언제, 왜 결성됐나?

 

서북청년회는 해방 뒤 월남한 서북 지방 청년들을 중심으로 1946년 11월30일 서울에서 결성된 극우반공단체다. 이들은 주로 지주, 기독교계 인사, 민족주의자나 일부 친일파 등 북한의 탄압을 피해 도망온 젊은이들이었다. 이들은 강령으로 조국의 완전자주독립의 전취(戰取), 균등사회의 건설, 세계평화에 공헌 등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들이 주로 한 일은 좌익세력에 대한 ‘백색 테러’였다.

 

이들은 1947년 삼일절 기념식을 따로 가진 좌·우익이 시가 행진을 하다 남대문에서 충돌한 사건을 비롯해 부산 극장사건,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 사무실 점령사건, 정수복 검사 암살사건 등에 관여했다.

 

 

 

 

 

 

후지이 다케시 성균관대 동아시아연구원 연구실장은 <한국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서북청년회가 정식 명칭인데 서북청년단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을 보면 조직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대공 투쟁이라는 막연한 이미지만 있는 듯하다”며 “세월호 유가족들을 때려잡아야 할 빨갱이로 규정하고 반공 프레임을 노골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간부였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올해 6월26일 백범 암살 65주기에 맞춰 <안두희, 그 죄를 어찌할까>(책보세 펴냄)를 펴냈다. 김 전 관장은 안두희의 삶과 행적을 추적하면서 백범 김구 암살의 진실을 추적했는데, 그 책에 따르면 안두희는 서북청년회 간부였다.

[[제주 4·3 항쟁의 발발과 전개과정에서 서북청년회 또는 서북청년단(서청)은 ‘인간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1949년 초 당시 국방부 장관 신성모는 어느 한 자리에서 “서북청년회원 등 육지의 사람들이 경찰·상인·관리 등이 되어 도민을 괴롭혔기 때문에 4·3 폭동이 난 줄 안다”고 말했다.

 

서청은 “우리는 이북에서 공산당에게 쫓겨왔다. 빨갱이들은 모두 씨를 말려야 한다”면서 제주도에 들어왔다. 미군정·이승만 등 집권세력은 ‘제주도 학살’의 최선봉에 서청을 세웠다. 그들은 소련 군정에 의해 박해를 받아 월남한 지주세력으로, 그 트라우마에 의해 반공주의자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정부 대신 손에 피를 묻혀주는 우파 민병대였다. 군과 정부 고위직을 장악하였고 대구노동자파업, 보도연맹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제주4.3사건에 개입하여 20만~40만명 이상의 좌파로 의심되는 민간인과 비기독교인들을 학살하였다.

 

-<제주의 소리> 2014년 05월 14일 (▶ 바로 가기 : ‘김관후의 4·3칼럼- (23) 서북청년단, 제주도 학살 최선봉에 서다’ ) ]]

 

■ 다른 나라에서의 ‘백색 테러’는?

 

서북청년회의 일련의 테러는 ‘백색 테러’(white terror)로 일컬어진다. 백색테러는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암살·파괴 등을 수단으로 하는 것으로, 좌파에 의한 적색 테러(Red Terror)와 대척점에 있다.

 

‘백색’을 사용하는 것은, 프랑스혁명 중 1795년 왕당파가 혁명파에게 보복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백색은 프랑스 왕국의 상징이었던 백합의 색에서 나왔다. 프랑스에서 백색이란 왕권이나 왕당파를 의미하는 색으로 통했다.

 

현대에서도 백색테러는 그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악명 높은 인종차별 테러단체인 KKK단이 현대의 대표적인 백색 테러 단체다. 유색인들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독일의 네오나찌 등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도 백색 테러 단체로 손꼽힌다. 재특회의 혐오 집회로 최근 일본 도쿄 내 ‘한류의 거리’라 불렸던 신오쿠보의 대표적인 한식당인 ‘대사관’이 지난달 15일을 끝으로 영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대사관이 문을 닫은 원인은 지난 2010년께부터 본격화된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 등의 반한 집회(헤이트 스피치) 때문이다. 재특회 등은 도쿄의 한류 거리라 불리는 신오쿠보나 아키하바라 등을 중심으로 2012년 여름께부터 반한 집회를 시작했다. 그러나 업소에 더 큰 피해를 준 것은 집회가 끝난 뒤 이뤄진 이른바 ‘산보’였다. 재특회 회원들이 집회 뒤 ‘산보’라는 명목으로 한류 업소를 돌아다니며 욕설을 하고 간판 등을 발로 차는 등 난동을 부렸기 때문이다.

 

-<한겨레> 2014년 9월18일(▶ 바로 가기 :‘재특회’ 혐오집회에 스러지는 도쿄의 ‘한류 거리’]]   

 

■ 그들의 광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우리나라의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는 일본 재특회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그동안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던 그들이 최근 오프라인으로까지 나오고 있다.

일베를 비롯한 극우단체들이 백색 테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강자와 권위주의에 대한 맹목적 복종과 약자에 대한 폭력성이라는 측면에서 일베 현상은 파시즘과 상당히 유사하다”며 “ ‘인정받고 싶은 욕구’ ‘소속감 및 친밀감에 대한 강한 갈구’가 일베의 주요 동기”라고 진단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광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증오를 녹이는 데 마법 같은 치료제는 없다. 대신 전문가들은 증오의 원인과 결과를 먼저 직시하라고 한다.

[[증오를 녹이는 데 마법 같은 치료제는 없다. 증오의 원인과 결과를 직시하는 것이 먼저라는 건 공통된 의견이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증오, 증오의 대상인 가해자, 그리고 증오의 결과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증오의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는 증오에 맞서 그것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어쩌다 적이 되었을까>의 저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이렇게 적었다. 박해광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일베와 같은 젊은 세대들은 특히 5·18을 다른 인종, 다른 영토의 사건처럼 받아들입니다.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영토 안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걸 환기할 수 있는 사회적 반성이 반드시 있어야겠고요. 역사 교육만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사회가 젊은 세대에 정의로움을 교육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결국 증오라는 원시적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정의와 합리라는 고등 신경계의 사고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인간은 그러기 위해 진화한 것 아닐까. 

-<한겨레21> 2013년 3월10일(▶ 바로 가기 : 혐오에 찬 너의 말, 그게 인종주의다 ]]

​[[그렇다면 왜 이들은 일베를 하는가? 결국 상처 때문일 것이다. 강자와 권위주의에 대한 맹목적 복종과 약자에 대한 폭력성이라는 측면에서 일베 현상은 파시즘과 상당히 유사하다. 에리히 프롬은 파시즘에 대해 고독과 무력감을 견디지 못한 개인들이 강자에게 도피하는 것으로, 빌헬름 라이히는 약자에게는 군림하려 하고 강자에게는 굴종하려는 대중의 권위주의적 성격 구조로 설명한 바 있다.

20세기 초반 자본주의의 독점화 과정에서 독일의 중간계급 대중은 몰락해갔고, 그들은 상처받은 자존심을 강자에 대한 무한한 복종과 약자에 대한 거친 폭력으로 보상받으려 했다. 약자에 대한 폭력은 상처받은 자존심을 치유하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행동이었던 것이다. 범죄심리학자 표창원 박사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 ‘소속감 및 친밀감에 대한 강한 갈구’가 일베의 주요 동기라고 설명한 바 있다.

한국보다 넷우익 사정이 심각한 일본의 상황은 일베 현상을 이해하는 데 시사적이다. 일본의 르포작가 야스다 고이치가 쓴 <거리로 나온 넷우익>에 따르면,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특회) 등 일본 넷우익들의 존재 이유 역시 인정 욕망에 있다. “솔직히 우리는 부모에게도, 세상에서도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잖아요. 그런데 활동할 때 동지들은 반드시 저를 인정해주었어요”라는 재특회 회원의 말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역시 인정욕망이 중요한 것이다. 인간은 그저 생물학적·경제적 존재만은 아니다. 정말 돈만 있다고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는 자존감은 생존의 필수적 요소다.

-<한겨레21> 2013년 6월10일(▶ 바로가기 :일베, 상처받은 이들의 인정욕망 ]]

 

 

- 정혁준

 

 

 

 

 

 

허지웅 “서북청년단, 한국서 재현된 독일 나치친위대…부끄럽고 끔찍” 

 

 

 

 

 

 

이젠 ‘서북청년단’까지 등장…‘광기의 시대’ 오나
노란리본 철거 ‘서북청년단’ 정체 뭐길래… 비판 ‘봇물’
조국 “국민 빨갱이로 몰아 살해한 집단 재건 처벌되어야”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원회’를 자처하는 극우단체까지 등장해 우리 사회가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제 막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 회원들을 28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을 강제로 철거하려 했다. 이를 두고 SNS에선 ‘해방 직후 정치 테러를 일삼던 것처럼 우리 사회를 이념적 광기와 사적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로 퇴행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28일 트위터에 글을 올려 “서울시청 앞 노란리본을 철거하겠다는 망발을 부린 자들이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를 자처하고 나섰다”며 “서북청년단은 지존파보다 훨씬 많은 무고한 시민을 죽였다. 지존파 재건위가 마땅히 처벌되어야 하듯이, 서북청년단 재건위도 처벌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서북청년단은 이승만의 전위부대로 수많은 국민을 빨갱이로 몰아 살해한 집단이다. 김구 선생을 살해한 안두희도 조직원이었다”며 극우적 행태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서북청년회는 어떤 단체일까. 서북청년회는 해방 직후 월남한 서북지방 청년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우익 단체로, 반공을 명분으로 정치 테러를 서슴치 않았다. 이들은 제주도민 10%가량을 포함해 전국에서 30만명에 이르는 국민을 ‘좌경 분자 처단’이라는 미명 아래 탄압하거나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북청년회원이면서 이승만의 친위대 역할을 했던 안두희는 1949년 김구 선생을 살해했다.

 

영화평론가 허지웅씨도 이들의 행동을 개탄했다. 허씨는 “광복 이후 결성되었던 서북청년단은 한국에서 재현된 독일의 나치 친위대라 할 정도로 부끄럽고 끔찍하며 창피한 역사다”며 “한국이 국제사회의 구성 단위로 지속가능한 사회임을 스스로 증명하려면 저 단체를 심각한 혐오 범죄로 분류해 관리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허씨는 “서북청년단이 뭔데 재건을 하겠다는 거야 하고 대충 넘어가면 안된다”며 “저런 이름을 쓸 수 있게 허용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부끄러워하며 어른이 어른일 수 있는 마지노선을 지키자”고 호소했다.

 

역사학자인 전우용씨는 “서북청년단은 광기가 지배하던 시대의 표상이다. 서북청년단의 재건은 이 사회가 다시금 이념적 광기와 사적 폭력이 지배하는 시대로 퇴행하고 있다는 징표다”라고 진단했다.

앞서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는 28일 9·28 서울 수복 행사가 진행된 서울시청 광장에서 세월호 분향소 참배객들이 묶어둔 노란리본을 철거하려다 서울시청 직원들과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다.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에는 <사이버뉴스24> 발행인인 배성관씨를 비롯해 바른사회시민연대, 선전화시민행동, 엄마부대 등의 대표들이 참여하고 있다. 준비위의 대변인을 맡은 정함철씨는 노란리본을 철거하려는 이유에 대해 “세월호 유가족들을 더 이상 국론 분열의 중심에 서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금기어가 돼야 할 ‘서북청년단’

​지난 28일 오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시민들이 매단 세월호 참사 추모 노란 리본을 제거하겠다며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란 이름의 단체가 나타났다. 이 단체 회원 10여명은 “(서북청년단은) 해방 직후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용사들”이라며 “이런 정신을 계승해서 서북청년단 재건을 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체마저 의심스러운 이들이 사회적 주목을 끌기 위해 벌이는 일탈 행동은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서북청년단(서청) 재건 선언’이 나올 정도라면 문제가 다르다. 서청이 어떤 단체인가?

서청은 1945년 이후 해방 공간의 남한 사회에서 정치테러의 한복판에 있었다. 총리실 산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2003년 펴낸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에는 서청이 제주에서 저지른 잔혹한 행위의 여러 사례가 담겨 있다.

 

 

 

“서북청년단 출신 경찰의 학살극은 도저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날 지서에서는 소위 ‘도피자 가족’을 지서로 끌고 가 모진 고문을 했습니다. 그들이 총살터로 끌려갈 적엔 이미 기진맥진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지경이 됐지요.

그는 특공대원에게 그들을 찌르라고 강요하다가 스스로 칼을 꺼내더니 한 명씩 등을 찔렀습니다. 그들은 눈이 튀어나오며 꼬꾸라져 죽었습니다. 그때 약 80명이 희생됐는데 여자가 더 많았지요. 여자들 중에는 젖먹이 아기를 안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젖먹이가 죽은 엄마 앞에서 바둥거리자 칼로 아기를 찔러 위로 치켜들며 위세를 보였습니다. 그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271~272쪽)

4·3을 겪은 제주도 사람들에게 서청은 공포와 전율 그 자체였다. 서청이 4·3 당시 저지른 백색테러와 살상, 부녀자 겁탈 등 잔혹행위는 제주 사람들의 뼛속 깊이 박혀 있다. 4·3의 발생 원인 가운데 하나는 서청의 제주도민에 대한 테러행위였다. 심지어 제주도청 2인자인 국장이 서청에게 고문치사를 당해도 서청은 처벌받지 않았다. 서청 위원장이었던 문봉제조차도 훗날 “피비린내 나는 살육전이었으니까 제주도민의 억울한 희생도 많았다”고 자인할 만큼 서청의 폭력은 극단적이었다.

1946년 11월 서울에서 결성된 서청은 이북에서 월남한 청년들이 만든 극우청년단체다. 이승만의 후원을 업은 서청은 당시 주한미군도 “‘빨갱이 사냥’에 매달렸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서청의 정치테러는 제주에서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도 서청 회원이었다. 자신들이 좌파 성향이라고 간주한 기업가나 언론인, 노동자, 대학생들에게 무차별적인 테러를 자행했다. 이들은 ‘애국’과 ‘멸공’을 명분으로 전국 곳곳에서 태극기 강매와 이승만 사진 판매, 강제모금과 테러 등을 일삼았다.

세월호 추모 리본 제거에 나선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는 ‘유가족 눈치만 보는 서울시장과 정부를 대신해 이 일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단식중인 유가족 앞에서 ‘폭식투쟁’을 하던 일부 극우세력이 급기야 사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파시즘에 기운 주장까지 들고나온 것이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29일 트위터에서 “서북청년단은 지존파보다 훨씬 많은 무고한 시민을 죽였다. ‘지존파 재건위’가 (범죄단체 조직죄로) 마땅히 처벌되어야 하듯이, ‘서북청년단 재건위’도 처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4·3 연구자들은 “제주에서의 서청의 만행은 쉽게 잊혀질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광기의 시대에 나타난 광인들이었다”고 했다. 4·3 유족들은 “세월호 참사에 서청 운운하면서 나타난 그들이 서청의 잔혹성을 알면 서청이란 말을 쉽게 입에 담지 못할 것”이라고 분노했다.

​이들의 행위가 아무리 소수의 돌출 행동이라고 하더라도 서청을 재건하겠다고 나선다면 이는 잊혀져 가는 악몽을 되살리는 것이다. ‘서청’은 한국 사회에서 금기어가 돼야 한다.

-  허호준

 

​ⓒ 한겨레 ( http://www.hani.co.kr/)

 
 

 

 

 
 *서북청년당 재건위 "안두희의 김구 처단은 의거"

"안두희, 종북좌익정권때 맞아 죽어", YS도 종북좌익 매도

​서북청년단 재건위 위원장이 30일 "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원 안두희씨가 김구를 처단한 것은 의거"라며 안두희의 백범 김구선생 암살을 의거라고 주장,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배성관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장은 이날 일베에 올린 글을 통해 "김구는 김일성의 꼭두각시였고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안두희씨가 맞아 죽은 것은 종북좌익 정권시대"라며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통령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종북좌익'으로 매도하기도 했다. 안두희씨가 맞아 죽은 것은 1996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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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114485

 

 

 

 

 

 

결국 웃음거리로 끝날, 서북청년단 재건 움직임

 

​해방 이듬해인 1946년 북한 출신 청년단체들의 통합 기구로 출범하여, 친일 청산 및 통일정부 구성을 방해하며 가공할 테러를 자행한 서북청년단(서북청년회). 이들은 1948년에 발생한 제주 4·3항쟁은 물론이고 전국 곳곳의 새 시대 열망을 진압하는 데 앞장섰다. 또 백범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 같은 인물도 배출해냈다.

이 악명 높은 서북청년단을 재건하자고 외치는 극우파가 지난달 2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출현했다.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를 표방한 이들은 세월호 참배객들이 남긴 노란 리본을 수거하려다가 시청 직원 및 경찰들의 제지를 받고 물러났다.

이들의 시도에서 드러나는 것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표출되는 사회개혁 열망에 대한 극우세력의 불만을 이용해서 서북청년단의 영광을 재현해보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서북청년단이 어떤 단체였는지를 되돌아보면, 이런 단체를 재건하겠다며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를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직후 경북 영천에서는 미군정과 이승만에 대항하는 저항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경북 영천 빨치산 운동으로 기억된다. 반민주적·반인권적 공권력 행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화해위원회(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가 2009년 발표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서북청년단은 이곳 영천에서도 악질적인 학살 행위를 자행했다.

 

 

 

영천향교에 본부를 둔 이들은 사복을 입은 채 총을 들고 다니며 민간인들을 마음대로 살상했다. 즉결처분이란 명분으로 인명을 함부로 살상한 것이다. 이들은 가옥에 불을 지르고 민간인의 재산을 탈취했을 뿐만 아니라 혼란한 분위기를 틈타 성폭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서북청년단에는 미군 정보원이 많았다"

미군정과 이승만에 대한 저항이 가장 격렬했던 제주 4·3 항쟁 때도 서북청년단은 그 악명을 널리 떨쳤다. 제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그들은 '사람 백정'이었다. 이런 느낌은 학살 행위를 함께했던 경찰들에게도 전해졌다. 1997년에 발표된 제민일보 4·3 취재반의 보고에 따르면 "서북청년단은 토벌을 했다기보다는 힘없는 주민들을 괴롭히고 학살했다"는 당시 경찰의 증언도 있었다.

이런 서북청년단을 재건해서 세월호 사고로 가슴 아파 하는 국민적 분위기를 진압해보겠다는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통합이 얼마나 훼손되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런 점에서, 제2의 서북청년단은 절대로 부활해서는 안 되는 집단이다.

사실, 서북청년단은 부활해서도 안 되는 집단이지만, 부활하기도 힘든 집단이다. 왜냐하면, 해방 직후 그들의 광란을 가능케 했던 두 가지 핵심 조건을 재현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는, 강력한 정치적 후원이다. 독자적 무력이 없는데다가 38선 이북 출신인 서북청년단이 객지인 남한 땅에서 폭력을 자행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미군정의 든든한 지원 덕분이었다.

해방 직후에 주한미군은 친일 청산 및 통일을 추진하는 세력을 분쇄할 목적으로 친일파 및 서북청년단과 손을 잡았다. 미군은 특히 서북청년단을 도울 목적으로 월남민들의 남한 정착을 돕고 그들의 주거지를 각 도별로 배정하는 일에 간여했다. 또 서북청년단과 월남민들의 취업도 알선해주었다. 월남민들에게 주거와 직장을 마련해준 것은 좋은 일이지만, 미군정이 그렇게 한 것은 월남민 속에 포함된 서북청년단을 활용해서 미군에 대한 저항을 제압하고 한반도 점령정책을 완결하기 위해서였다.

이 점은 서북청년단의 4·3 항쟁 진압을 다룬 김평선의 논문 '서북청년단의 폭력 동기 분석'에 소개된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에 따르면, 미군정은 서북청년단원 박아무개가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사무소에 근무할 수 있도록 알선해주었다. 그런데 박씨가 면사무소에서 쫓겨나자, 미군정은 그를 미 육군 제24사단 첩보부대인 CIC의 성산포 사무소 직원으로 기용했다.

이것은 미군이 박씨를 제주도에 보낸 본래의 목적이 취업 알선이 아니라 첩보 활동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군정이 어떤 목적으로 월남민들과 서북청년단을 지원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박씨처럼 미군 스파이로 활동한 서북청년단원이 많았다는 점은 김구 암살범 안두희의 증언에서도 나타난다. 국내 언론에서 수차례 보도된 것처럼, 죽기 전에 안두희는 자신을 추적하는 고 권중희 등에게 "서북청년단에는 미군 정보원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미군정 비호 아래 온갖 폭력, 불법행위 자행"

미군정과 서북청년단의 유착 관계는 저명한 언론인인 고 리영희의 대담록 <대화>에서도 언급됐다. 이 대담록에서 리영희는 이렇게 말했다.

"(미군정의 도움으로) 남한에 잔존했던 악질적인 반역자들과 친일파들이 이북에서 도피해온 같은 부류의 악질분자들과 결탁하여 남한 사회를 장악해버렸던 겁니다. 이북에서 도피해온 그런 부류의 청년들이 서북청년단이란 것을 결성해 미군정과 경찰의 비호 하에 온갖 테러와 불법행위, 폭력을 자행하고 있었어요."

서북청년단의 미군의 위세를 빌려 사실상 정부기관의 위상을 확보했다. 그들은 마치 국가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미군의 위세를 빌려 호가호위했던 것이다. 해방 당시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제4권에도 이런 상황이 설명됐다.

"경찰이나 군인이 무색할 정도로 투철한 그들(서북청년단)의 반공의식은 국책 수행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지만, 그 도가 지나쳐서 판을 어지럽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처럼 해방 직후의 서북청년단을 가능케 했던 후원자는 미군정이었다. 미군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이북 출신인 그들이 남한 땅에서 그렇게 마음대로 폭력과 권세를 행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이런 조건을 갖추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주한미군이 해방 직후 때와 같은 의지와 열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또 그때의 주한미군을 대체할 만한 강력한 후원자를 찾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서북청년단 폭력 가능케 했던 당시의 국제정세

서북청년단의 폭력을 가능케 했던 또 다른 조건은 당시의 국제정세다. 서북청년단은 동북아시아 냉전 구도를 배경으로 등장했다. 한국·미국·일본·대만 대 북한·소련·중공의 대결 구도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친일파나 반(反)개혁파라는 이유로 북한에서 밀려난 그들이 남한 땅에서 그렇게 융숭한 대우를 받으며 정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또 그런 냉전 구도가 아니었다면 서북청년단의 테러에 대한 정권의 묵인도 없었을 것이다. 그들한테 무기와 자금이 몰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죽이고 방화를 일삼고 성폭력을 자행하고도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앞세워 냉전을 유지하려는 정치세력의 이해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 동북아 냉전 구도는 사실상 거의 소멸했다. 냉전의 한 축에 가담했던 대만은 1990년대에 남방정책을 통해 동남아·태평양으로 눈을 돌리면서 동북아 대결구도에서 이탈했다. 남아 있는 한국·미국·일본과 북한·러시아·중국 간에도 냉전은 거의 다 해소되었다. 현재 한국·미국·일본은 각각 러시아·중국과 수교한 상태다. 6개국의 관계 중에서, 북한과의 관계를 제외한 모든 양자관계는 이미 평화적인 관계로 전환됐다.

이렇게, 해방 직후 서북청년단의 전성기를 가능케 했던 조건들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서북청년단 같은 조직을 재건하는 것도 쉽지 않고 그들의 폭력을 재현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기 위한 시도는 웃음거리로 끝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무엇보다, 전 국민적 세월호 참사 추모 분위기를 잠재우려는 목적으로 과거의 잔학무도한 테러 조직을 재건해서 극우세력의 지지를 받아보겠다는 발상을 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서글프고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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