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토론

U2 2016. 2. 10. 21:50

 

 

 

 

 

북한의 로켓 발사와 사드를 통해 본 외교무능 박근혜

 

 

 

 

 

 

 

 

북한은 왜 하필이면 남한내의 총선을 앞둔 설날 연휴에 맞추어 광명성 4호의 로켓을 발사했을까? 남한의 사드 배치론을 불러들일 로켓발사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강행한 것은 사드 배치를 유도해 중국과 남한의 외교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노림수였는지, 사드 배치의 배경을 아는 것인지, 별로 두렵게 여기지않는 사드로 생각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새누리당 집권 이후로 남북관계가 연일 시끄럽다는 것이다. 왜 새누리 (한나라당)이 집권할 때면 남북의 사이가 이토록 일촉즉발의 불안감만 조장되는지 이제는 냉정하게 생각할 때라는 것이다.  

 

남한 승전보의 서해교전을 제외하곤 남북한의 이렇다할 사건 사고들이 많지 않았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비해 새누리 정권 들어서는 8년 동안 연평도 사건이나 천안함과 핵실험, 지뢰사고 등 수도 없이 터지고 있다. 천안함 침몰과 지뢰사고가 북한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맞다고 전제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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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사람들은 끊임없는 병역기피 의혹 구설수에도 불구 자신들이 집권할 때만이 북한의 핵을 막을 수 있고,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장담해 왔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새누리 집권 이후의 북한 도발과 남한의 피해는 배가 되었고 북의 핵 개발 기술도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  

 

고작해야 대북 제재 및 대북 확성기 확대 등으로 호들갑을 떨었지만 국내용의 선전 구호에 불과할 뿐 실제적인 억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낮은 단계의 핵개발 기술을 선보이는 북한만 보이고 있다.

 

대북 확성기로 인해 북한 당국이 굽히고 수그려 졌다는 '박비어천가'를 그렇게도 목놓아 부르짖었지만 북한의 핵개발 소식만 들려온다. 남북한의 정상회담 내용의 가치를 폄하하고 남북 대화의 창구를 차단하더니만 도대체 얻은게 무엇인지, 정치적 해결이 없는 대북 강경책은 도리어 북의 브레이크 없는 핵개발을 방치하게 된 결과만 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외교 무능의 칠푼이 박근혜는 보다 더 신경질적이었는지 모른다. 한반도의 극단 대결 구도를 낳게하다못해 한국을 향햔 중국발 경제 제재가 예상되는 사드 배치를 대안이라고 내놓는다. 

 

사드는 핵 미사일을 방어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심스러울 만큼 아직까지 그 성능이 검증 안된 무기이며, 오히려 사드 배치의 지역 주민들에게 부작용만 예상된다. 기술 이전의 약속 없이 받아들인 KFX 공군기 수입 사태의 2탄이라 할 수 있는 글로벌 호구의 박근혜임을 확인케 한다

 

물론 박근혜 정부도 또한 사드 배치가 핵 미사일을 억제시키는 무기가 아님을, 중국의 반발로 정치적 경제적으로 국익을 훼손하는 것임을, 성능 의문의 사드 배치가 국내적으로 부작용만 낳게 됨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총선을 앞두고 사드 배치 협약에 임하는 커밍아웃의 배경에는 남북대결 구도가 극심해야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이길 수 있다는 북풍 습관의 사고와 더불어 마치 북의 핵개발을 기다렸다는 듯이 무기 장사하려는 미국의 압박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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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다 오바마가 이란의 핵 개발에 대한 협상 태도와 달리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서는 인내전략으로 맞서고 있는 것과 연관된다. 북의 도발을 빌미로 한반도내의 군사 전력 증강을 강화하면서 중국의 패권을 견제하려는 목적의 선상에서 사드 배치를 요구한 것이다. 사드는 실제로 북의 도발은 핑계일 뿐, 거리상으로 볼때 중국이 목적이 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준비 당시 미국 당국은 알고 있었지만 핵실험 행로를 간파할 수 있다고 자랑했던 국정원이나 국방부는 전혀 몰랐다고 스스로 자인하는 사실에 의해 무능한 정부라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오히려 정부의 이러한 인정 발언은 미국의 인지 상황에 불구 사전에 경고하지 못한 미국 정부와 청와대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사드배치론을 펴기위해 기다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짙다. 그렇지 않다면 남북대화 차단으로 북한 관련 정보 기능을 수행할 수 없어 무능해질 수 밖에 없는 국정원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북한의 핵 미사일도 또한 만에 하나 남한을 향한 위험성도 있겠지만 미국을 향한 대미 협상용이며, 만에 하나 미국의 극단적 공격과 대북 강경 제재에 대비하는 방어용이라 할 수 있다. 만약에 남한을 향해 쏘려는 핵미사일 목적이라면 남북한 모두가 공멸하는 결과가 될 것임을 북한도 미국도 남한도 모르지 않으므로 그렇게만 단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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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박근혜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악화를 각오해서라도 미국의 압박과 전략에 'NO'라고 말하지 못한다. 중재자 위치의 역할보다는 미국과 일본의 청부업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태생적으로 박근혜 정부가 가지고 있는 약점에서 기인한다. 국정원 부정선거 그 이상의 부정선거 기밀 및 친일 본색과 더불어 그 보다 더한 치명적인 약점들이 태생적으로 중재자 역할을 할 수가 없는, 비단 그것이 박근혜 뿐만 아니라 새누리 정권 구성원들의 약점들과 연계되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현 정권이 위안부 할머니의 동의없이 일본의 아베에게서 치욕적인 굴욕협상을 선보인 것도, 자위대의 해외파견법이 통과되어도 아무 말도 못하는 비굴함의 외교를 보이는 것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정권의 약점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의 태생적 한계와 약점들을 철처하게 이용한 아베와 오바마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보게되면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을 향하여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할 말을 하면서 등거리 외교를 유지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외교의 가치가 새삼 다시 보게 된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개성공단 중단 조치로 개성공단 상주의 업자들을 어렵게 할 만큼의 어린아이식 단편적인 맞대응의 박근혜 정부를 보노라면 어른스러웠던 민주정권이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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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때의 약속에 따라 전시작전권을 한국에 넘겨주겠다는 미국인데도 남한 정부 스스로가 받지 않겠다며 도리어 손을 빌린 글로벌 호구의 박근혜 정부와 비교될 수 없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외교 능력이 만약 현 상황에 적용된다면 한반도 외교에 대한 무성의함과 문외한인 미국의 오바마를 직접 찾아가 설득하려 했을 것이다.

 

이러한 외교적 노력은 곧바로 북한에 대한 대화 압박으로 이어져 핵개발을 억제하는 효력이 발동되었을 것이다. 사드니 대북 확성기니 대북제재니 하는 이 따위의 방식으로는 북의 도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민주정권 때에도 북의 핵실험이 있었지만 부시의 강경자세로 인해 햇볕정책이 흔들린 결과이며, 긴 여정으로 볼 때 남북 대화를 통해 억제하려는 과정에서 조금 비틀어진 것일 뿐이다. 그 어느 정권이든 꾸준하게 유지된 햇볕정책이라면 소기의 성과가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 상황은 글로벌 무능 호구의 박근혜식 무개념의 대북정책 때문에, 자국의 이기주의 혈안에 맞서 중재자 역활을 해야할 지도자의 나라가 없는 관계로, 외교 경험 전무의 북한 수장 김정은은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주체할 수 없는 행보만을 보이고 있다.  그들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게하는 북한 주변의 상황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 동북아 내에는 중국 외에는 탁월한 개념의 지도력으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지도자의 국가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한 중국 또한 자국의 이익을 위한 것에 일념해서 믿을 수도 없다. 우리의 이익과 연결되는 동북아 안정을 위해 중재하는 한국이 되지 않는 한, 북한 도발의 한반도 위기 상황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적 방정식과 별개로 북한의 태도가 그 이전과 다른 수상스러운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북한이 왜 남한 총선을 앞둔 설날 연휴에 맞추어 로켓을 발사하였는가이다. 

 

설날 연휴 '민족 대이동' 기간을 노리어 관심을 끌려는 노림수만으로 보기에는 어딘가 석연치가 않다. 사드 배치 유도로 중국과 남한의 갈등을 조장하면서 미국을 향한 대미 협상용의 노림수 해석은 이미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는 바, 그렇지 않고는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그렇다면 북한은 왜 설날 연휴에 맞추어서 쏘았느냐는 의문만 남는다. 지난 총선과 대선 당시 즈음에서 미사일 발사를 공언하고 실행했던 것이 과연 모두가 우연의 일치였는지, 남북 대화를 성사시킨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의 행보는 야당에서도 경계하고 비난해야할 대상이 아닌가라는 시각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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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북한의 핵개발은 김정은이든 김정일이든 '반전반핵'의 진보의 가치를 위해서라도 규탄해야할 대상이다. 미국이나 자국의 핵개발을 용인하면서 북한은 안된다는 이중성의 보수세력과 달리 '반전반핵'의 일관된 진보적 가치로 본다면 북한 또한 규탄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더불어 민주당이 북한의 로켓발사를 규탄하면서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스탠스는 반전반핵의 가치면에서 매우 잘한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경우는 보다 더 차원이 다른 해석의 결론으로 바라봐야할 것 같다. 북한은 대선에서의 미사일 발사가 새누리당에게 유리하고 야권에게 불리한 것을 알면서도 감행했다. 어느 탈북자의 전언에 따르면 3대세습의 북한으로서는 세습체제의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북한이 명분상으로 낫다고 말하는 북한 당국자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도 또한 박근혜의 김정일 찬양 발언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당선으로 민주주의 척도에서 훨씬 비교되느니 박근혜가 대선에 당선되는 것이 북한으로서는 낫다고 보았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남한 북한의 대결구도를 낳게하는 새누리당이야말로 북한에겐 그들의 주민결집 면에서 낫다고 보았지 않았을까?

 

실제로 지난 3년간, 더구나 국정원 부정선거 파문이 일어난 그 시기. 김정은과 박근혜는 서로 짜고치는  '치고 박기' 쇼의 의심이 묻어나는 행동을 했다. 국내 문제를 덮기위해 벌이는 쇼가 아니냐는 의구심이었다.

 

이 과정에서 서로간에 주고 받는 뒷돈이나 묵인이 없었는지, 마치 김일성의 독재체제와 박정희의 군부독재 체제에 대해 쌍방이 서로 인정해주며 간섭하지 않는 협약의 7.4 남북 공동성명의 뿌리가 박근혜 김정은의 적대적 공생관계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시선의 의구심을 놓칠 수가 없다

 

북의 핵실험과 핵개발은 일본의 우경화를 더욱 공고히 하게 하고, 한반도내 미국의 군사전력 증강의 빌미를 주다못해 남한내의 강도 높은 보수화나 선거에서의 새누리당 '북풍' 유혹을 가져다 준 것임에도 북한이 강행하는 것은 북한은 더 이상 남한내의 어떤 정치세력에게도 도움이 안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북한에 대처하는 박근혜 정부의 불장난도 더욱 더 불안케 한다. 사드 배치와 개성공단 중단 등 철없는 어린아이식 해법만 난무한다. 이에 대한 비판의 대안으로 남북대화의 가치를 주장할라치면 통일에 대한 준비 비용을 '퍼주기'라는 말로 반박하는 부류들을 보면 더욱 암울하다. 퍼주기로 말할 것 같으면 김영삼 이명박 등의 한나라당도 못지 않았는데 이 같은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대답도 하지 않는다   

 

어찌했든 박근혜가 말하던 '통일대박'이나 '유라시아 철도 개발'이라는 호언은 말뿐인 허구로 드러나고 있다. 아무런 인내도 없이 이러한 구상이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준비없는 대통령의 망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지식 부족의 모습을 보나 사고의 협량함으로 보나, 국정원 부정선거라는 태생적 약점으로 보나, 친일 사관의 역사 의식으로 보나, 정책 이해도가 전무한 것으로 보나 이미 무너져야할 박근혜 정권이지만 그나마 방송장악으로 근거히 정권을 유지한 것을 보면, 동네 이장감도 안되는 박근혜에게는 참으로 대견스럽기만 하다. "저런 사람도 대통령도 하고 근거히 유지되는구나"라는 자괴감만 든다

 

 

*오마이뉴스 블로그 - 해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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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은 화풀이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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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보복 조치로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정부 성명을 통해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이용되는 것을 막고, 우리 기업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발표했다. 성명은 “기존의 대응 방식으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계획을 꺾을 수 없다”고 전면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정부의 우려는 충분히 공감한다. ‘기존 대응 방식’의 한계는 누구나 느끼는 바일 것이다.

그러나 대응 방법이 개성공단 가동의 전면 중단이 될 수는 없다. 개성공단은 12년간 남북 경제협력의 성공 모델로 자리 잡았다. 남과 북은 물론, 국제사회도 남북 상생을 위해 발전시켜 가야 할 모범적 사업으로 평가해왔다. 북측이 전방 군부대를 철수시킨 자리에 세운 공단이라는 점에서 남북 군사적 긴장 완화의 결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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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이 박근혜 정부 출범 즈음 5개월간 정상 가동을 못했을 때 정부가 공단 정상화를 촉구했던 것도 이런 공단의 가치와 필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2013년 4월3일 통일부는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을 정상화시키지 않는 것은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비난과 고립을 초래할 것”이라는 성명을 낸 바 있다.


정부는 2003년 4월26일 성명에서도 “우리 기업들은 심각한 피해와 고통을 겪고 있다”면서 기업을 크게 걱정한 바 있다. 그런데 정부가 비판하던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스스로 행함으로써 정부는 이제 기업에 피해와 고통을 주는 당사자로 전락했다. 그것도 2013년 개성공단 정상화에 관한 남북 합의를 깨면서 단행한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지속가능성이 성공의 열쇠라는 신념은 이렇게 무너졌다.

이번 중단 조치는 2003년 북한의 일시적 가동 중단보다 더 위험한 논리를 담고 있다. 정부 성명은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총 6160억원의 현금이 유입되었고, 정부와 민간에서 총 1조190억원의 투자가 이루어졌는데 결국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을 고도화하는 데 쓰여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그런 과격한 주장을 하려면 최소한의 근거라도 제시해야 한다. 만일 근거가 없다면, 북한으로 간 모든 현금과 투자가 핵개발용이라고 단정 짓는 그런 무모한 주장을 정부가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게다가 남북 교류와 협력의 오랜 역사와 정당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정책을 발표하는 마당이라면 더욱 그렇다.

 

남북 교류와 협력을 통해 화해하고 상생하며 북한의 변화를 촉진한다는 원칙은 특정 정권의 성향을 넘는 초당적 합의 사항이었다. 여러 번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어도 변함없이 이 원칙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단 전면 중단의 명분이 아무리 궁색하다고 해도 경협 자체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태도는 피해야 한다. 남북 간 교류와 경협이 결국 북핵 개발에 기여했다고 하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역시 교류·협력의 원칙에 입각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자기 부정이나 다름없는 주장이다. 그리고 아무리 공단 중단을 정당화할 길이 없다고 해도 경협 자체를 아예 부정하고, 개성공단을 사실상 문 닫는 결정을 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공단의 전면 중단은 대북 제재 효과라는 관점에서도 실효성이 없다. 북한이 대남 압박을 위해 스스로 폐쇄한 공단이 대북 제재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한 나라의 정부라면 이성을 잃은 조치를 막을 정책 결정 체계는 최소한 갖춰야 한다.

 

대북 보복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그런 식의 화풀이는 곤란하다. 통로를 모두 막아버리면 정부도 길을 잃을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정부가 할 일은 안정과 평화의 조성이다. 불안과 군사적 긴장 부추기기가 아니다. 정부는 이성을 되찾기 바란다.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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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도 일제히 "북 장거리 로켓 발사 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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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7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데 대해 야당은 일제히 “한반도 평화에 대한 도발”이라며 강력하게 규탄했다. 야당은 설 민심잡기 행보 등 잡혀있던 일정을 취소하고 긴급 회의를 여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정의당은 한창민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북한이 지난 4차 북핵 실험에 이어 또다시 무모한 군사적 행동을 감행했다”며 “우리 사회와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진행된 이번 미사일 발사를 강력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어떤 이유로도 국민의 안전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적 도발은 용인될 수 없다”며 “오늘 미사일 발사는 민족과 국제사회에 대한 엄중한 도전으로 북한은 섣부른 군사 행동에 대해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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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변인은 “오늘의 사태를 불러 온 박근혜 정부의 위기관리 실패 또한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정부 당국은 강경한 대북제재만으로는 남북의 평화와 안정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확성기 방송하듯 대북 경고와 제재에만 몰입하지 말고 구조적이고 항구적인 평화 정착 방안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날 오전 11시30분 국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관련 상임위 연석회의를 열고 북한을 규탄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것은 한반도 평화에 무한한 도발”이라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말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동북아 평화 안정을 지키는 대전제”라며 “북한이 남과 북의 약속을 저버리고 핵무장을 가속화하는 것은 연쇄적인 핵무기 경쟁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북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UN의 제재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북한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고 북한 당국이 전적으로 책임을 질 수 밖에 없다”면서 “정부도 국민이 불안에 떨지 않도록 만반의 안보 태세를 갖춰야 한다. 더민주도 정부의 대응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동북아 평화 문제에 적신호가 터졌다”면서 “무엇보다 UN 안보리의 제재력이 복원되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6자 회담이 실효성 있는 절차를 통해 복원되지 않는다면 한반도의 평화문제에 관한 불안은 대책이 없는 상황으로 놓여질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이 원내대표는 “지난달 6일 핵실험 때 국정원이 정보수집 활동을 게을리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지적됐다”면서 “이번에는 1만km 정도의 비행이 가능한 핵 IBCM급 로켓발사체의 이동이 국내 정보망을 빠져나갔다는 것 자체가 경악스럽다”고 국정원의 정보능력 부재를 질타했다.

 

국회 국방위 간사를 맡고 있는 윤후덕 의원은 “북한이 쏜 장거리 미사일의 궤도는 동창리에서 남쪽 궤도로 날아갔고, 우리의 백령도, 그리고 제주도의 서남방을 지나서 필리핀, 이어서 남쪽으로 날아가는 궤도를 그렸다”며 “지금까지 합참으로부터 보고받은 바에 의하면 이 미사일은 IBCM급이라고 볼 수 있다. 대략 5500km이상, 6000km ~ 10000km 가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표창원 비대위원은 “지금 북한에서는 권력층, 귀족들이 몰려 사는 평양을 제외하고는 전 국토에서 국민들이, 인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핵무기 개발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결코 북한이 해서는 안 될 망동”이라고 말했다.

 

표 위원은 “더민주는 정부의 대북제재와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에 적극 협조를 하고 있다”면서 “다만 새누리당 일각에서 우리도 NPT를 탈퇴하고 핵을 개발해야한다는 둥 위험하고 국제사회의 합의에 반하는 주장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표 위원은 “이번 북한의 준동을 계기로 남남 갈등을 부추기는 종북몰이도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면서 “이런 부분들은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될 것이며, 정부 여당에서도 이러한 잘못된 남남 갈등, 종북몰이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해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기다렸다는듯이 사드 배치 협의라니?"

"대중국 설득과 비용에 대한 분명한 입장 정리 선행돼야"

 

더불어민주당은 7일 "마치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기다렸다는 듯이 국방부가 오늘 사드 배치를 위한 협의를 시작한다고 발표한 것은 유감스럽다"며 정부를 질타했다.

김성수 더민주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국방부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에 대한 공식 협의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대변인은 이어 "우리 당은 그동안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대해 충분한 여론 수렴과 신중한 판단을 강력히 요구해 왔다"면서 "사드 배치는 동북아에 새로운 긴장을 조성하고, 특히 중국의 반발을 불러 대중국 외교에 심각한 균열을 초래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중국을 설득하지 못했을 때 우리가 감수해야 할 경제적 불이익과 외교·안보적 불안을 고려한다면 한미 양국 정부의 대 중국 설득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아울러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칫 막대한 군사비용만 부담할 수도 있다는 점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은 사드 배치는 대중국 설득과 비용 문제에 대한 분명한 입장 정리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며 정부여당의 사드 배치 밀어붙이기를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뷰스앤뉴스 기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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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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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중국의 사드 반발...주중 한국대사 초치, 환구시보는 ‘단견’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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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이 지난 7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후 미국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논의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히자 중국이 반발 강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사드 논의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신중한 처리를 촉구한데 이어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항의했다.

 

류전민(劉振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지난 7일 오후 김 대사를 긴급 소환해 한미가 사드 배치 논의를 시작한다고 선포한 데 대해 항의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그러면서 류 부부장이 중국의 원칙적인 입장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중국 외교부는 미국에도 외교채널을 통해 관련 입장을 표명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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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말 부임한 김 대사가 중국 외교부에 초치를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한미의 사드 논의 발표 당일 저녁 김 대사를 초치한 것은 중국이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김 대사가 정통 외교관이 아니라 군 출신 인사라는 점에서 중국의 우려는 더 깊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 대사는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안보실장을 지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그가 주중대사로 부임할 때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을 설득하는 임무가 부여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없지 않았다.

 

김 대사는 지난해 5월 홍콩 봉황망과 인터뷰에서 “사드는 기본적으로 북한외에는 우리나라를 지향하지 않는 미사일에 대해서는 쓸모가 없다”며 “중국이 우려할 사항은 아닌 것 같은데 모르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일각에서 꾸준하게 사드가 거론되는 근본 원인은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과 미사일 위협을 증대시키고 있기 때문”이라며 “북한의 역내 불안정 상황 조성이 한국은 물론 중국에도 전혀 안보적 차원이나 전략적 이익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한국과 미국이 사드 배치에 대해 논의한 것은 단견’ 이란 제목의 논평을 7일 내보냈다. 신문은 “군사전문가들은 사드가 배치되면 중국의 미사일이 감시대상에 포함되며 이는 중국의 국가안보를 위험하게 만들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 국방부는 사드 배치가 북한만을 대상으로 사용되며 중국의 안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이같은 설명은 무기력하고 헛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환구시보는 “한국내 사드 배치 논의는 10년이 넘었으며 중국 정부는 일관되게 반대하는 입장을 밝혀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그동안 사드를 배치하고 싶어한다는 지적도 받았으나 중국의 반대 등으로 뚜렷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번에 한국이 태도를 바꾼 것은 전략적 비전이 없는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중국이 사드배치를 막을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결과가 무엇이든 중국은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오관철

 

 

ⓒ 경향신문 ( http://www.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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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가 뿜는 초강력 전자파, 대구에 배치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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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주민 피해를 전제한 '사드'의 불편한 진실
7일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기점으로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관련 입지 선정을 두고 심각한 논란이 예상된다. 강력한 전자파 문제를 비롯해 개발 제한 등의 문제가 얽히면서 제 2의 밀양송전탑 문제가 터져 나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까지 사드 도입 논란은 도입을 하느냐, 마느냐 여부에서 갈렸을 뿐이었다. 북한의 도발, 중국 및 미국과의 관계 등 국제 정치 문제가 주된 쟁점이었다. 그러나 국방부가 7일 북한의 위성 추진체 발사를 계기로 "증대하는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동맹의 미사일 방어태세를 향상하는 조치로서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가능성에 대한 공식 협의의 시작을 한미 동맹차원에서 결정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두 갈래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즉, 한반도 지정학적 문제와 함께, 국내 정치 문제가 대두될 전망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날 긴급 최고위원회의에서 "북핵 미사일에 대한 방어 차원에서 사드 배치 협의는 우리 생존을 위해 당연한 일"이라며 "사드는 공격용 아닌 방어용이다. 우리 생사가 걸린 이 사안에 대비해서 국제적 이해 관계는 부차적 문제다. 누구의 눈치를 볼 사안이 아니다"라고 사드 배치를 적극 지지했다.  
그런데 김 대표가 '국내 문제'를 감당할 수 있을까? 나아가 박근혜 대통령도 이 문제를 감당할 수 있을까?  
 
사드, 엄청난 주민 희생 전제제대로 아는 국민 있을까?
 
한미 공식 협상이 공표된 이상, '사드를 배치하지 않는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사드는어느 곳에 배치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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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핵심 장비인 AN/TPY-2 레이더는 상상을 초월하는 강력한 전자파를 발생시킨다. 미 육군에서 만든 사드 운영교범과 전문가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레이더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가로 281미터(m), 세로 약 94.5미터 크기의 면적(축구장 4개 크기)이 필요하다. 레이더 정면을 기준으로 좌우 각각 65도 각도, 즉 전방 130도 각도 안의 3.6킬로미터(km)안(약 15만 평 크기)에는 사람이 살지 못하고, 5.5킬로미터(km)안에는 비행기, 선박 등 방해물이 없어야 한다.  
쉽게 말해 사드 부지 앞 5.5킬로미터를 깨끗이 비워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이 제한되는 것은 물론이고, 사드가 배치될 곳 인근의 민가는 전부 이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소 15만 평 안에는 사람이 아무도 거주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는 그런 곳이 사실상 없다고 한다.  
미국이 사드를 사막 한가운데 배치하거나, 해안에 배치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평택, 원주, 대구 등이 유력한 사드 부지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구 밀집 지역이자, 각종 군 비행장, 군 장비 등이 몰려 있는 평택은 사실상 사드 부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주 역시 마찬가지다. 이때문에 <세계일보>는 지난해 3월 주한미군 사정에 밝은 정부 관계자를 인용 "지난해 11월 괌을 비롯한 미 본토에서 10여명 내외의 실사팀이 사드 배치 후보지 조사를 위해 방한해 한달여 동안 적격지를 물색한 결과 대구를 선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대구 지역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대한 지지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그러나 만약 주한미군이 사드 배치 유력지로 대구를 거론한다면, 당장 부딪히게 될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강력한 전자파에 대한 우려 문제다. 이는 건강 문제, 환경 문제가 얽혀 있다. 둘째, 개발 제한 지역 선정에 따른 주민 반발 문제다. 최소 15만 평은 아무도 살지 못하게 된다. 셋째, 수 조원 대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운용비용 분담 문제다. 사드 도입은 미군이 하더라도, 우리 정부는 부지 비용을 대야 하고, 매년 천문학적 운용비를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모두 국민 세금이다.  
 
"머리 위 강력한 전자파 이고 살 주민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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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 21일 YTN에 출연했던 보수 성향의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언론이 제대로 다루지 않는 문제들을 자세하게 소개한 적이 있다.

 

그는 사드 배치 찬성 여론이 높게 나온 여론조사와, 실제 도입될 때 민심에는 괴리가 있을 것임을 지적했다. 핵발전소 문제나, 방폐장 문제와 비슷하다. 핵발전소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국민은 많다. 그러나 자신의 지역에 핵발전소가 들어온다고 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신 대표는 "이를테면 가장 최근에 조사했던 (여론조사에서) 사드의 찬성이 30%가 넘지 않았느냐. 그런데 그러면 우리 정부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목소리를 높일 수 없다고 본다. 왜, 우리 국민이 이러한 사실(사드 배치의 부작용 등)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한 여론조사였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사드 배치가 우리 국민의 큰 희생을 전제해야 한다는 부분을 강조했다. 관련해 그는 "우리 국민들이 '이 정도면 우리가 이해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정도와 (사드 배치를) 바꿔야지, 그냥 어물쩡 지금처럼 해 주고 거기다가 더해서 우리가 방위비 분담금까지 더 해 줘야 되는 거 아니냐, 이렇게 한다면 이것은 역사적으로 우리가 해서는 안 된다는 일이라고 생각을 한다"고 경고했다.  
사드와 관련된 신 대표의 설명이다. YTN 인터뷰 전문은 다음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다. (☞관련기사 : "평택 미군기지 내 '사드' 배치 땐 주민 위험")
"사드의 레이더,TPY2 레이더가 있는데, 레이더는 전파를 쏴서 뭔가를 보는 것이다. 그 전파, 전자파가 너무 강력한 것이다. 전방 130도 각도로 100m 내에는 어떤 사람도 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리고 3.6킬로미터 내에는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들어가서는 안 되고 들어갔다가도 빨리 나와야 된다. 지나가야 된다. 거기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테면) 우리가 비행기를 타면 이착륙할 때 휴대폰 끄라고 하지 않느냐? 전자파 때문에 기기에 이상이 생길까 봐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 레이더는 엄청난 전자파 아니겠나. 이 레이더의 5. 5km까지는 항공기, 선박 이런 게 들어가서는 안 된다.() 
다 살펴봐도 대한민국에 3.6킬로미터 이내에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없다. 그러면 누군가는 몇 십 세대, 몇 백 세대를 다 이주를 시켜야 되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그동안 미국이 자기네들 기지 내에 배치를 하면 되는 것을 자기네들이 굳이 배치하지 않고 한국 정부의 허락을 받아야 된다라고 주장을 해 왔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여론이 비록 사드 배치에 대해서 우호적이라고 하더라도 아무 대가 없이 해 줄 수가 있을까. 제주 해군기지 관련해서 우리 해군이 사용하는 제주해군기지가 대선 2번을 거치면서 핫이슈가 됐었다. (...) 제주해군기지가 15만평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데 3.6킬로미터 내에 사람들을 두지 않으려고 하면 이건 15만평 넘어야 된다. 그러면 이것은 엄청난 사회적 갈등. 그러니까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되는 것인데 이것을 우리 국민들이 알아야 될 것 같아서 제가 말씀드린 것이다."
전자파 문제에 대해서도 신 대표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놓았다. 
"이를테면 우리가 휴대폰을 귀에다 대고 한 20분을 통화하면 얼굴이 뜨겁지 않느냐. 그게 바로 전자파다. 우리가 계속 살면서 그런 엄청난 전자파를 계속 쬐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끔찍한 일이다. 저도 의학이나 물리학자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얘기할 수 없지만, 사드의 레이더가 일본에 두 대가 있는데 거기도 전자파 때문에 일본 교토대학에서 연구한 자료가 있다. 연구한 자료에 의하면 환경론자들이 반대하고 하니까 해 봤더니 철새는 영향을 주지 않더라. 왜 영향을 주지 않느냐. 철새는 날아서 지나가기 때문에 영향을 안 주더라. 이런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것을 뒤집어보면 철새가 지나가지 않고 거기에 있으면 영향을 준다는 것 아닌가. 이런 것을 우리가 심사숙고해야 한다. ()
미국은 사드를 사막지역에 배치를 한다. 괌에도 바닷가에 배치를 하고, 그리고 사드를 수입하려고 계약된 곳도 카타르, UAE인데 여기도 사막지역과 해안지역에 하려는 것은 이란 때문이다. 그래서 페르시아 연안 바닷가에 배치를 한다. 그리고 일본에도 사드 TPR종 2대가 있는데 전부 우리의 동해안, 일본은 서쪽해안이 된다. (우리의) 동해안 지역에 배치를 하기 때문에 민가가 없다. ()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인구 밀도가 워낙 높기 때문에 서해지역에 배치를 한다고 하더라도 서해는 많은 항공기들의 항로이기도 하다. 또 거기는 우리 어선들이 많이 또 조업을 하는 어장이기도 하고요. 또 우리의 해상 수송로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서해에는 우리는 배치할 수가 없다. () 
(사드 레이더 각도를 올리면 안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사드 레이더가 비추는 곳부터 5도 각도로 위로 올간다. 그래서 (전자파가) 밑으로는 가지 않을 수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을 과연 쉽게 수긍할 국민들이 얼마나 될 것이냐. 그러면 그 3.6킬로미터 내에 우리집이 있는데 산 위로 지나가니까 나는 안전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생활을 그대로 할 수 있는 우리 국민이, 과연 마음 편하게 생활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 박세열

 

 

프레시안 ( http://ww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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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과학자 “탄도미사일 실험 아니라 위성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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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물리학자 데이비드 라이트 ‘우려하는 과학자들의 모임’ 글로벌안보프로그램 팀장은 7일 북한이 발사한 로켓을 탄도미사일이 아니라 위성 발사 실험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미사일 개발 현황에 정통한 라이트 박사는 이날 경향신문과 e메일 인터뷰에서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로켓은 2012년 것과 로켓 추진체의 낙하 지점이나 발사각, 궤도 등이 거의 비슷하다는 점에서 북한이 2012년과 거의 비슷한 실험을 했을 것으로 분석하며 이같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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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박사는 은하 4호가 우주공간에 올라갈 때까지 그린 궤적은 2012년과 마찬가지로 발사의 의도가 탄도미사일 실험보다는 위성 발사에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북한이 쏘아올린 것이 2012년과 비슷한 것일 경우 사거리 1만2000㎞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해당하는데 로켓 엔진이 연소하는데 걸린 시간이 ICBM의 경우보다 두 배 가량 긴 600초 가량이라는 것이다. ICBM을 위한 것이라면 훨씬 일찍 속도를 높여야 하고 더 높이 날아올라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미국의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의 우주물체 추적 시스템에 따르면 8일 오전 8시(한국시간) 현재 광명성 4호는 극궤도를 따라 고도 498㎞ 상공을 초속 7.61㎞의 속도로 돌고 있다.

하지만 똑같은 로켓 발사를 굳이 많은 비용을 들여 되풀이 할 필요가 있을까.

 

이러한 의문에 그는 “북한이 2012년에 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었지만 그 위성은 이내 궤도를 이탈해버려 지상과 제대로 교신할 수 없었다”면서 “북한이 똑같은 실험을 되풀이하는 목적 중 하나는 지상과 교신할 수 있는 위성을 쏘아올림으로써 위성 작동에 대한 노하우를 얻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러 단계를 거치는 로켓은 매우 복잡한 기술 체계여서 모든 하부 시스템이 신뢰성 있게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여러 차례 발사를 해봐야 한다”며 “한번 성공했다고 해서 그 다음에 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직접 발사해보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북한이 2012년 발사한 것에 약간 변화라도 줘서 발사해 실패한다면 자신이 가진 원천기술에 결함이 있었는지 새로 도입한 기술에 문제가 있는지 알아내기 어렵다”며 “로켓 개발 초기 단계에는 똑같은 시스템 하에서 반복적으로 발사를 해봐야 도움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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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라이트 박사도 이번에 발사한 로켓에 사용된 기술이 탄도미사일에 이용된 기술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북한이 이번 위성 발사에서도 탄도미사일 제조에 필요한 기술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북한의 핵무기·미사일 능력이 얼마나 증대됐는지와 직결되는 문제는 이번에 은하 4호 로켓에 실은 광명성 4호 위성의 무게이다. 북한이 핵탄두의 중량을 얼마나 소형화했는지는 여전히 논쟁의 영역에 속해 있지만, 은하 로켓이 1000㎏ 정도 무게의 탄두를 실을 정도로 개조된다면 이는 알래스카나 하와이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북한이 핵탄두 중량을 500㎏까지 소형화했다면 지금 기술로도 미국 본토까지 보낼 수는 있다. 하지만 북한이 ICBM의 재진입 과정에서 공기와의 마찰로 탄두가 타버리는 것을 막아내는 기술을 실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는 당장 현실화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무엇보다 이번처럼 로켓 발사장에서 발사하는 체제로는 미사일 조립과 연료 주입 과정이 노출되어 선제 공격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실전용으로는 의미가 없다.

 

북한이 2012년에 쏜 광명성 3호 위성은 100㎏이라고 스스로 밝혔지만 이번 것은 무게, 길이 등 제원을 밝히지 않았다. 라이트 박사는 광명성 4호의 무게는 북한이 직접 밝히지 않는 한 알아낼 길이 없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은 북한의 발사 직후 소집된 국회 정보위원회 회의에서 정보 습득 경위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채 로켓에 실린 물체의 무게를 200㎏ 정도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정부는 북한의 이번 로켓 발사를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발사”, “미사일 발사”라는 표현을 혼용해서 쓰고 있다. 존 케리 국무장관은 규탄 성명에서 “미사일 발사”라고 했고,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발사”라고 했다. 미국 전략사령부는 로켓이 발사된 직후 궤도를 추적한 뒤 내놓은 성명에서 이번 발사를 “미사일 발사”라고 규정하면서도 “북미 지역에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라이트 박사는 “중요한 것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이용될 수도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점이고, 현 시점에 그것을 할 능력이 있거나 핵탄두를 충분히 소형화할 능력이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두 가지 영역에서 모두 진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라며 “제재에만 의존해온 미국의 대북 접근법은 이러한 진보를 막는데 효과적이지 않다. 이제 미·북 간의 직접 대화를 포함한 다른 접근법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 경향신문 -워싱턴|손제민

 

 

 

 

 

 

 
 
 

인물

U2 2015. 12. 18. 16:18

 

 

 

 

 

김영삼 전 대통령을 떠나 보내며 리더십을 생각한다

 

 

 

 

 

 

 

우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영원히 떠나 보냈다.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눈이 내리는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국가장으로 엄수됐다. 고인의 유해는 서울 상도동 사저와 김영삼대통령기념도서관 등을 거쳐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이제 김 전 대통령은 잠들었고, 유지(遺志)를 받드는 일은 남은 이들의 몫이 되었다.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며 고인의 안식을 기원한다.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았다. 수많은 시민들이 민주화에 헌신했던 투사,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준 지도자의 삶을 되새기며 애도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3만7400여명, 각 지방자치단체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17만명 가까운 조문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정치인들도 여야 정파를 초월해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유지를 받들겠다는 다짐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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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功)뿐 아니라 과(過)도 많았던 김 전 대통령의 정치역정을 생각하면 이례적으로 느껴지는 측면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지역주의 정치를 고착화하고, 재벌개혁을 놔둔 채 세계화의 구호에 매몰되는 바람에 경제위기를 야기했다.

 

외환위기 와중인 1998년 2월 쓸쓸하게 퇴임한 그는 ‘성공한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는 데 실패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한마음이 되어 그를 그리워하는 현상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는 현재 한국 정치와 리더십의 문제를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봐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일궈내고 시민의 자유와 인권 신장에 기여했다.

 

친일 잔재를 과감히 청산하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등 역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섰다. 2015년 한국의 현실과 선명히 대비된다. 박근혜 정권 들어 한국 민주주의는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다. 정당이 강제로 해산되고, 무자비한 색깔론이 판을 친다. 역사교과서는 유신체제 당시의 ‘국정’으로 돌아가고, 법을 집행하는 검찰총장조차 5·16을 쿠데타라고 말하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김영삼과 박근혜라는 두 지도자의 리더십 또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고인은 선이 굵고 소탈한 스타일이었다. 야당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참모의 직언을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민심을 경청하고 존중했다. 박 대통령은 어떤가. ‘불통’과 ‘독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야당을 향해선 소통 대신 폄훼로 일관하고, 장관과 수석비서관은 참모가 아니라 ‘받아쓰기’ 학생들로 전락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주권자에 대한 모독이다. 실정(失政)에 사과하지 않는 일이야 말할 것도 없고, 정부 정책에 반대해 거리로 나선 시민을 무자비한 테러리스트에 비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김 전 대통령이 추구했던 가치와 실천했던 리더십은 지금, 이 땅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김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근본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고인이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질식해가는 민주주의를 되살려내라, 분열과 갈등에서 벗어나 통합하고 화합하라. 애도의 기간은 지나가지만, 고인의 뜻을 계승하는 일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집권세력의 자성과 변화다. 박 대통령은 검경에 의존하는 공안통치에 한계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30%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아닌, 모든 시민을 향해 귀를 열어야 한다. 새누리당도 김 전 대통령의 ‘표’를 물려받을 생각 대신 ‘뜻’을 이어받겠다는 다짐을 할 때다. 말로만 ‘정치적 아들’ 운운한다고 고인의 계승자가 될 수는 없다.

작금의 민주주의 퇴행에는 새정치민주연합을 비롯한 야당의 책임도 작지 않다. 용기와 결단력이 부족하고, 경쟁할 때와 협력할 때를 구분 못하는 야당 지도자들은 박근혜 정권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거는 데 실패했다. 김

 

전 대통령은 서슬 퍼런 독재정권에서도 용기와 결단으로 민주화의 대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잠시 살기 위해 영원히 죽는 길을 택하기보다 잠시 죽지만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하겠다”는 결기를 보였다.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필요하면 손잡고 협력했다. 야당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애도를 넘어 그의 신념과 리더십을 되새기고 본받을 필요가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잠들어 있던 한국 사회를 죽음으로써 깨웠다. 역사와 민주주의의 퇴행을 방관하던 시민들에게 각성을 촉구했다. 살아남은 이들은 고인의 가치를 자신의 삶 속에서 부활시킬 책무가 있다. 추모의 열기를 승화시켜 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지역·세대·계층간 통합과 화합에 나서야 한다. 공동체 구성원 모두 이러한 책무에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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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국 정치에 남긴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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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이 88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정치를 이끌었던 ‘거산(巨山)’이 무너진 것이다. 한평생 반독재 민주화에 앞장서고 정치 개혁을 위해 분투한 ‘결단의 정치인’ 김 전 대통령의 영면에 애도를 표한다. 부인 손명순 여사 등 유족들에게도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보낸다.

정치인 김영삼에게 가장 빛나는 부분은 야당 지도자로서 유신·신군부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앞장선 것이다. 그의 결단은 자유당 소속으로 등원한 뒤 이승만 독재의 부당성에 항의해 탈당하고 5·16 쿠데타 세력에 맞선 것으로 시작됐다.

이후 40여년에 걸쳐 평생의 라이벌이자 동지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걸었던 길은 한국 민주화 투쟁의 역사 그 자체였다. 1979년 사상 초유의 의원직 제명과 신군부에 의한 가택연금, 23일간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 등을 겪으면서도 그는 굴하지 않았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며 반독재 대열의 선두에서 선명 야당의 길을 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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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10항쟁 후 군사정권을 종식시킬 수 있는 기회를 맞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군사정권을 5년 연장시키는 과오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성취할 수 있었던 데는 불굴의 정신으로 민주화 투쟁을 이끈 김 전 대통령의 지도력이 큰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1993년 14대 대통령으로 ‘문민정부’를 연 뒤 군 내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하고, 5·18 쿠데타 세력을 단죄한 것은 김 전 대통령 특유의 결단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금융실명제와 공직자 재산공개제도를 도입해 자본 흐름의 투명성을 높이고 공직자들의 도덕성을 제고한 것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김 전 대통령의 공로이다.

그러나 고인이 한국을 빛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90년 말 그가 선택한 3당 합당은 한국 정치를 퇴행시킨 충격적 사건이었다. 민주화를 이끈 지도자가 정권을 무력으로 찬탈한 신군부와 한 몸이 된 것은 현실정치적인 선택이라는 말로 미화될 수 없다.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가는 과정에서 연착륙이 필요했다고 하지만 최고 권력을 차지하려는 개인적인 욕망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평가가 온당하다. 3개 정당의 합당은 호남 고립화를 통해 지역주의 정치를 고착화시키고 정치적 균형을 깨는 행위였다. 한국정치가 여전히 지역주의에 발목 잡혀 있는 현실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개발국가의 한계를 살피지 못해 외환위기를 부른 것도 실책이다. 재벌 개혁은 놔둔 채 세계화라는 구호에 따라 ‘부자나라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성급하게 가입함으로써 한국 경제를 위기로 몰았다. 이로 인해 한국에는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가 득세하게 되었고,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개발독재 시대에 성장하여 민주화의 기반이 된 중산층의 붕괴도 부추겼다.

 

대북정책은 일관성이 없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이 정상회담 직전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 조문까지 거부해 남북관계를 악화시켰다. 당시 북한과 일관성 있게 대화를 시도했다면 오늘날 남북관계는 한 발짝 더 나아가 있을 것이다. 대통령 재임 당시 아들과 측근들의 국정농단과 독직을 막지 못한 것 역시 그의 정치역정의 어두운 그늘이다

 

 한국은 지금 민주주의의 위기를 맞고 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완성되었다고 믿었던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위기에 처해 있다. 민주주의가 이처럼 다시 위기를 맞은 데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비민주적인 국정운영 탓도 있지만, 대의 민주주의가 착근하지 못한 한국 정치구조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사회의 모든 세력이 대표를 국회로 보내 민의를 바탕으로 정치가 이뤄지는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한 결과이다. 또한 정치인들이 민의와 동떨어진 그들만의 이해에 따라 움직이고, 시민들은 정치를 외면·혐오한 결과이다. 여권을 견제하면서 대안세력이 되어야 할 야당도 지향점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발자취에서 통찰을 얻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것은 물론 시민의 삶과 직결된 정치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를 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 고인이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에 봉사한 것처럼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것이 정치권의 사명이다.

 

 

-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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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과가 교차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88년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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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새벽 서거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현대정치사의 영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한국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정치인에서 권위주의 세력과 손 잡는 변절, 그리고 소원하던 문민정부를 탄생시켰지만, 대통령으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몰락까지 드라마틱한 88년간의 삶이었다.

정치인으로서나 대통령으로서나 공과 과가 교차하고, 여권이든 야권이든 그의 삶에 대한 시선은 모두 착잡하다. 하지만 사실상 첫 문민대통령으로 군부 세력 청산, 금융실명제 등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와 사회의 중요한 포석들을 놓은 것은 향후 업적으로 평가받을 대목이다.

어린시절, 대통령을 꿈꾼 청소년

김 전 대통령은 1927년 경상남도 거제에서 아버지 김홍조와 어머니 박부련 사이에서 8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멸치잡이 어장을 소유한 부유한 집안이어서 가난하지는 않았다.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대통령 꿈을 키웠다. 1945년 부산 경남중학교 시절 자신의 장래 희망을 대통령으로 적어낼 만큼 당찼다. 책상에 ‘미래의 대통령 김영삼’이란 글씨를 써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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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다. 이승만·김구의 강연회를 찾아다니는 ‘정치학도’에 가까웠다. 대학 2학년 그의 인생을 바꿀 운명의 인물을 만난다. 김 전 대통령은 정부수립 웅변대회에 참가해 외무부 장관상을 받는데 당시 외무부 장관이 그를 정치 세계로 이끈 장택상 전 국무총리였다.

 

김 전 대통령은 2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한 장 전 총리 선거운동을 돕는다. 김 전 대통령은 6·25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학도의용대에 들어가 임시수도 부산에서 대북방송을 담당한다. 전쟁 후 장택상 국무총리 비서관을 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한다.

민주화 투사, 영원한 경쟁자 김대중

김 전 대통령은 1954년 3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고향인 거제로 돌아왔다. 자유당 공천을 받아 25세 나이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는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기록이다. 그러나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표를 던지고 자유당을 탈당하고 이후 1960년 신민당에 입당하면서 야당 인사의 길을 걸었다.

박정희 독재 정권 시절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존재였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민정 이양 번복 발표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됐다. 3선 개헌에 반대한 신민당 원내총무였던 1969년 상도동 자택 인근에서 괴한들에게 초산 테러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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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전 전 대통령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바람을 일으켰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고배를 마셨다.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씨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다”고 했지만 한국 정치사의 필생의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74년 신민당 당수 경선에 나서 “나는 결코 당수를 하기 위해 나선게 아니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출마했다”며 유신독재와 정면으로 맞섰다. 1979년 YH 여공들이 신민당사를 점거했다가 경찰에 끌려나가는 ‘YH 사건’으로 신민당 총재직을 박탈당했다. 당시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명언을 남겼다.

1980년 사실상 강제 정계은퇴를 선언한후 두차례 장기간 연금되면서 전두환 정권 시절 시련기를 겪었다. 1983년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1983년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했고, 1987년에는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1987년 6월 항쟁을 이끈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다. 둘은 영원한 동지처럼 보였다.

그러나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후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대선에서 패배했다. 통일민주당을 탈당해 평화민주당을 창당하면서 둘은 더욱 멀어졌다. 1988년 13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부산의 인권변호사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영입해 정치에 입문시켰다. 여기까지가 야당 정치인 김영삼, 민주화 투사 김영삼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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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절과 ‘문민’ 대통령

1990년 1월 3당 합당을 선언하면서 자신이 싸웠던 독재 세력의 품에 안겼다. 민주자유당 내부에서 ‘노태우의 황태자’ 박철언 전 의원과 내각제 개헌을 놓고 내부 투쟁을 벌여 승리했다. 1992년 민자당 후보로 14대 대선에 출마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다.

사실상의 첫 민간 대통령이었던 그는 ‘문민정부’임을 내걸고 개혁작업에 착수했다. 첫해 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했고,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했다. 자신과 가족 재산을 공개해 여론이 지지를 받았다. 북한에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권 초반 대통령 지지율이 90%에 육박했다.

자신감을 얻은 김 전 대통령은 1994년 김문수·이재오·안상수 등 재야운동권 출신 인사들을 영입했다. 또 정치범으로 수감되었던 박노해·김남주 등 언론인과 문인들을 대대적으로 석방했다. 문민 대통령 시대는 달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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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3년차인 1995년에도 지지율은 떨어졌지만 김 전 대통령의 힘은 건재했다. 그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시켰다. 특별지시로 지방자치제도를 확대해 특별시·광역시장, 도지사, 및 시장, 군수 등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게끔 제도를 개정했다.

1996년은 김 전 대통령에게 환희의 한 해이자 정권 몰락의 씨앗이 뿌려진 시기였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 기구(OECD)에 가입, 아시아에서 일본에서 이어 두번째로 가입했다. 1996년 한총련 사태로 대대적 검거에 나서면서 공안정국을 조성했다. 김 전 대통령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힘이 빠지면서 우경 본색을 드러냈다. 1996년말 안기부법, 노동법을 날치기 시도하면서 거대한 역풍을 맞았다.

정권 말기는 암울했다. 1997년 1월 한보 철강으로 시작된 도미노식 부도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12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는 1998년 2월 24일 라이벌이던 김대중 대통령에게 대통령직으로 물려주고 상도동으로 돌아갔다. 그는 퇴임식에서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고 말했다.

쓸쓸한 퇴임 후

퇴임 후 간혹 정치적 발언을 쏟아냈지만 아름다운 여생은 아니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쏟아냈다. 김대중 정부가 자신을 뒷조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김대중 뒷조사를 했다면 아마 (비리가) 많이 나왔을 겁니다. 김대중이 무서워서 영국으로 도망쳤지요. 그러고는 6개월 만에 돌아와서는 정계은퇴를 번복한 것인데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고 막말을 쏟아냈다.

자신이 정계에 입문시킨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비난 일색이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일방적 국정 운영의 결과”라며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2006년 “외교를 못하고 있다”, “일본이 ‘바보’로 본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그는 2007년 대선에 출마한 자유선진당 전 이회창 총재에 대해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고 했다. 아들 현철씨가 18대 총선 공천을 받지 못하자 이명박 전 대통령도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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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후에는 정치적 화해도 시도했다.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노무현대통령 장의위원회’ 고문으로 위촉됐고, 영결식에도 참석했다.

 

그해 8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을 방문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병문안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특수관계”라며 “우리가 6대(국회)부터 동지적인 관계에 있었고 오랜 동지관계도 있었지만 경쟁관계에 있었거든요. 애증이 교차하는 겁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희호 여사에게는 “세상에는 기적도 있다”며 위로했다. 민주화운동을 함께한 오랜 동지이자 경쟁자와 마지막 순간 화해한 것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상도동을 방문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박 전 위원장)사자가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 사자가 못 된다”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 경향신문 - 정환보·강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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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직 제명 사태 부른 YS의 <뉴욕타임스> 격정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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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신민당 총재 시절 상도동 자택서 인터뷰 

“미국은 독재정부와 한국민 중 누구를 택할 것인지 확실히 결정하라”
“카터 방한 생각하면 화를 참을 수 없어”…미국의 박정희 지지 성토
‘팔레비 왕조 몰락 뒤 반미 정권’ 사례 들며 “똑같은 실수 말라” 경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야당인 신민당 총재 시절인 1979년 10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가 발단이 돼 국회의원직 제명 처분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전 대통령 인터뷰는 <뉴욕타임스>(9월16일치) 17면(국제면)에 ‘한국의 야당 당수(foe)가 미국에 요구한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비록 1단 기사였으나, 신문 위쪽부터 아래쪽까지 기사가 이어져 적지 않은 분량이었다. 김 전 대통령 서거를 맞아 당시 인터뷰 기사 내용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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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는 “정부에 대한 거침없는 공격으로 체포 위기에 몰린 한국의 야당 지도자 김영삼은 카터 행정부에 대해 ‘소수 독재정권’(minority dictatorial regime)에 대한 지지를 끝낼 것을 요구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이뤄진 이 인터뷰에서 김 전 대통령은 “국민들로부터 점점 유리되고 있는 (소수의, minority) 독재 정부냐,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대다수(majority) 국민, 둘 가운데 (미국 정부가) 누구를 택할 것인지 확실하게 결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그해 6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서울을 방문한 것을 지적하며 “카터는 박정희에게 큰 선물을 줬다. (카터의 방문은) 박정희로 하여금 (미국의 지지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줘 자신의 반대자들을 쓸어버리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카터의 한국 방문을 반대했었는데, 그 우려는 지금 현실로 나타나 박정희의 폭압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전 대통령은 “카터의 한국 방문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화를 참지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나를 체포한다 하더라도 나는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 정권은 지금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미 행정부와 주한미대사관 쪽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이란 팔레비 왕조의 몰락을 예로 들었다. 팔레비 왕조의 독재 체제를 미국이 방치하면서 이란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고 반미 정권이 들어섰다고 주장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나는 미국 관리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한다.
 
‘미국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기 바란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 행정부의 ‘공식적이고 직접적인 압력’만이 그를 제어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그러면 미국 관리들은 늘상 ‘한국 국내정치에 간여할 수 없다’고 한다. 이건 허위다. 그렇다면 미국이 지상군 3만명을 한국에 주둔시키는 건 뭔가? 나는 단언컨대, 남한이 북한과 겨뤄 이기는 최선의 방법은 집회언론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국민들이 자유선거에 의해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결국 한국의 민주화가 (공산주의 확대를 방어하려는) 미국의 세계전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결론을 지었다.
 
<뉴욕타임스>는 이 기사에서 “한국의 국회 의석은 모두 231석이며, 이중 김영삼이 이끄는 신민당 의석은 67석이다. 지난 1978년 총선에서 신민당은 여당인 공화당보다 더 많은 득표를 했다. 그러나 1972년 유신헌법은 대통령이 국회의원의 1/3을 지명하도록 되어있다”고 부연설명했다.
 
이 인터뷰 이후, 국내 사안을 외국에 알려 긴급조치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공화당은 10월4일 김영삼 총재에 대한 의원직 제명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당시 김영삼 총재는 의원직 제명에 대해 “나는 오늘 죽어도 영원히 살 것이다. 25살에 국회의원이 돼 7선의 최다선 의원인 나는 의회민주주의의 신봉자이며 국민과 더불어 떳떳이 가게 됐으니 여한이 없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을 남겼다.
 
김영삼 총재에 대한 의원직 제명은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켜 이어 부마항쟁, 10·26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의원직 제명 직후, 미국은 이에 항의해 주한미국대사를 소환하기도 했다.

​-권태호

​ⓒ 한겨레 ( 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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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와 박근혜 대통령, 대를 이은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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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에 기록된 야당 탄압... 2014년에는 역사 교과서 왜곡 논란

한일 양국이 보여주고 있는 교과서를 고치려는 위험한 시도는 역사의 교훈을 부인하려는 위협이다.

지난 13일 <뉴욕타임스>가 게재한 사설 '정치인과 교과서(Politicians and Textbooks)' 후폭풍이 크다. 정부, 여당, 언론이 나서서 대대적으로 이 신문을 공격하며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신문의 관심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미국의 산적한 현안을 쓰기에도 부족한 지면을 통해 이 신문이 강조한 대목은 맨 마지막 문장, '역사 교과서를 고치려는 위험한 시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돌아보면 박근혜 정부 집권 후 '역사 교과서'는 안녕하지 못했다. 역사 교과서에 이토록 집착했던 정권이 또 있었던가.

결국 교학사 역사 교과서 문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8개 역사 교과서 중 하나로 교육부 검정을 통과했지만 1794개 고등학교 중에서 이 교과서를 채택한 곳은 '0'곳이다. <조선일보>는 칼럼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 전쟁'을 통해 '(교학사 교과서는) 대한민국의 과거를 긍정적으로 기술한 교과서'라고 평하면서 채택 거부를 좌파들의 공세로 비판했다.

언어의 마술사들인가. 과거를 긍정적으로 기술했다는 표현이 갖는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 '과거'에는 일제 식민지 시대와 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박정희 시대도 포함돼 있다. 교학사 교과서의 채택이 거부된 까닭은 신뢰도에서 찾아야 한다. 오류로 수정한 건이 1400여 건이고 최종 승인을 받은 교과서에서도 수백여 개의 오류가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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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학사 교과서를 구하지 못한 교육부에서는 뜬금없이 '국정교과서' 신공을 발휘했다. 교학사 교과서의 참패를 확인한 후 교육부가 지난 13일 새누리당과 당정협의를 하면서 올해 상반기까지 교과서 발행체계 개선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양대 원칙을 제시했는데 '사실에 기초한 기술', '균형 잡힌 역사인식 담보' 등이 그것이다.

이들의 역사 교과서에 대한 집념은 집요함을 넘어선다. 여전히 교육부는 '사실'과 '균형'을 언급하고 있다. 자신들이 검정해서 시장에 배포한 교과서가 버젓이 있는데 지속적으로 사실과 균형 잡힌 역사관을 언급한다면? 검정 교과서 집필자들부터 무형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보도, 대대적 반격에 나선 박근혜 정부 왜?

교육부가 '한국사 구하기'에 올인하던 무렵인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가 '정치인과 교과서'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한일 양국의 정상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반영해 역사 교과서를 다시 집필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은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일제 식민시대와 그 이후의 한국 군사독재 부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서 신문은 "아베 총리와 박 대통령은 공통적으로 세계 2차대전과 친일 협조에 민감한 집안 내력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거를 정면으로 언급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는 한국이 식민지배를 당하던 시절 일본 제국군대의 장교였으며, 1962년에서 1979년까지 한국의 군사 독재자였다"고 언급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교육부는 14일 "박 대통령의 정치적 견해가 반영된 교과서를 재집필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외교부 역시 14일 "뉴욕타임즈 측에 잘못된 사설과 관련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외교부가 미국 언론 사설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UN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라도 있다는 말인가.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이 가세했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사실관계가 틀린 황당한 사설을 게재한 것은 굉장히 잘못된 일"이라며 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주문했다. 윤 의원은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 참석해서 "(<뉴욕타임스> 사설은)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국제사회에 그릇된 편견을 조장할 것"이라고 지적한 후 "우리는 <뉴욕타임스>가 공식 사과보도를 게재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도 외국 언론 사설에 대해 이례적으로 맞대응을 했다. 이 신문은 16일자 사설 '한국사 교과서를 日 역사 왜곡과 같이 본 NYT는 사과하라'에서 "이 사설은 기본적인 사실부터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면서 "박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 등) 이들 교과서에 대해 특정 관점으로 재집필을 요구한 발언은 지금까지 없었다"고 주장하며 <뉴욕타임스>의 사과를 공식으로 요구했다.

<뉴욕타임스>가 세계적인 권위지로 인정받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들은 '처절한 자기반성'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2003년 3월 11일 이 신문은 1면에 자사 기자인 제이슨 블레어를 해고하며 그가 그동안 수십 건의 기사를 날조했음을 독자들에게 고백했다. 신문은 여러 개 지면을 통해서 "블레어의 기사는 본사 152년 전통에 대한 심각한 배신이라는 점에서 사과드린다"며 처절한 반성을 했다. 편집인과 편집국장도 사퇴했다.

한국 정부가 공개적으로 한 말처럼 '사과요구'를 한다면 <뉴욕타임스>의 대응은 어떠할까? 사과 요구 자체를 언론에 대한 압력으로 규정해 오히려 그것에 주목한 후속 보도를 할 것인지, 공은 <뉴욕타임스>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박정희 군사 독재를 무너뜨린 1979년 <뉴욕타임스> 인터뷰

시계를 35년 전으로 돌려보면 한국 정치사 중심에 또 다시 <뉴욕타임스>가 등장한다. 1979년 9월 16일자 지면에 한국 야당의 간판인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가 등장한다. 유신정권은 국내 언론은 통제하고 있었지만 외신까지 장악할 수는 없었다. 이 틈을 비집고 미국 언론이 김영삼 총재의 집에서 회견을 갖고 이를 가감 없이 보도했다. 김 총재는 이 자리에서 '미국은 독재정권인 박정희를 택할 것인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다수를 택할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직접적으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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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총재는 "(1979년 6월) 카터 대통령의 방한이 박정희 대통령 위신을 크게 높여주었다"며 "박 대통령이 반대세력을 말살시키도록 힘을 실어주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내가 미국 관리들에게 '미국이 박 대통령에게 공개적이고 직접적으로 압력을 가해야 그를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그들은 '한국 국내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비판했다.

김 총재는 "나는 지금도 북한과 대응하는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은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자유선거를 통해 우리 정부를 선택할 자유라고 확신한다"며 "궁극적으로는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이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이해에 부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에 김 총재의 인터뷰가 게재된 직후 국회에서는 그에 대한 제명처리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그 시절에는 야당 총재가 외신과의 회견에서 현 정권을 비판하면 제명처리가 되었다. 제명의 후폭풍은 컸다. 야당이었던 신민당 의원들이 집단으로 의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실행에 옮겼다. 정치는 아노미 상태로 접어들었다. 이 때 김 총재의 정치적 고향인 부산, 마산에는 '계엄령'이 선포됐다. 그리고는 궁정동에서 총탄 소리가 들렸다. 서울에는 봄이 찾아왔다.

<뉴욕타임스> 회견에서 김 총재는 "(독재정권이) 나를 체포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다. 당시는 유신정권이 야당 당사에 경찰을 진입시킬 정도로 이미 극한의 대립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김 총재는 이 신문과의 회견으로 정치인에서 제명됐고, 박정희 정권은 몰락했다.

그로부터 35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 결의가 대단했던 야당 투사 김영삼 총재는 투병 중이다. 독재정권으로 비판받았던 박정희의 딸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지 1년이 지났다. 그런데 또 다시 <뉴욕타임스>가 새해 벽두부터 한국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신문은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 교과서를 고치려 한다면서 비판하고 있다. 35년간 한국의 민주주의는 정체돼 있었던 것인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35년 전과 달리 보도 내용을 가지고 한국 정부에서 공식으로 항의했고, 이 신문에 대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대목이다. 더 나아가 여당 고위관계자는 공개적으로 이 신문의 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35년 전과 다른 대목이다.

​- 지용민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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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당신에게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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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세대가 기억하는 ‘김영삼 세상’

대통령은 평범한 시민들에겐 하나의 세상이다. 대통령의 죽음은 한세상이 저물었다는 것을 뜻한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리에게 어떤 세상이었을까. 그 세상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금, 우리에겐 무엇이 남아 있을까. 각 세대가 기억하는 ‘김영삼 세상’ 속으로 들어가 봤다.

■20대 : 교과서로 만난 대통령 - 현대사에 큰 획 그은 분이라 배웠죠

20대에게 김 전 대통령은 그저 훗날의 역사다. 직접 겪은 대통령이 아니다. 할아버지, 큰 산, 서사시로 인식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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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정(24·대학생) = 1991년생인 내게 김 전 대통령은 구체적인 기억은 없다. 다만 민주화 이후 첫 대통령이라 현대사적으로 의미가 큰 사람이라는 걸 학교에서 배웠다.

 

아쉬운 건 죽음 이후에야 업적이나 정신이 부각되는 느낌이다.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밀고 나갔던 걸 보면 멋있다. 김 전 대통령은 내가 추구하는 사상과 가치의 ‘터’를 만들어준 할아버지 같은 존재다.

김은산(24·한의대생) = 한 블로그에서 김 전 대통령을 ‘역사상 가장 무식한 대통령’이라고 표현한 글을 봤다. 그는 어쩌면 ‘무식’ 덕분에 정치적 업적을 쌓을 수 있었다. 하나회 청산, 금융실명제 도입 등은 생각이 복잡하거나 선이 가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3당 합당은 한국 정치에 엄청난 해악을 안겼다. ‘공(이) 3 과(가) 7’ 정도 되는 것 같다.

이은지(28·직장인) = 벌써 전직 대통령 3명의 죽음을 직접 겪은 건데 시대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이제 더는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30대 : ‘문민키즈’ 그리고 ‘IMF키즈’- 열린 민주주의 속 우울한 ‘회색 시대’

30대는 복잡했다. 김영삼 정권 당시 초·중등생이던 30대 초반에게 김 전 대통령은 ‘첫 대통령’이었다. 임기 초반 문민시대의 탈권위적 분위기는 성장기 청소년이었던 이들에게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자각하게 했다.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대통령처럼 농담도, 사투리도 쓰는 대통령은 탈권위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반면 청년기를 보냈던 현재 30대 후반 세대에게 김 전 대통령은 ‘분노’의 대상이었다. 1995년 연세대 학생 노수석씨가 등록금 인상 반대를 외치다 목숨을 잃었고, 깃발만 봐도 가슴이 울컥했던 한총련은 이적단체로 찍혔다.

박민수(32·직장인) = 국민학교에 입학, 초등학교 졸업. 김 전 대통령과 나는 이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영남 출신으로 보수적인 부모님은 5·18을 ‘광주사태’라고 불렀는데 5학년 때쯤 학교에선 민주화운동이라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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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도 책 <YS는 못말려>가 있었다. 대통령을 유머의 소재로 삼고 깔깔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9살 때 알았다. 전(두환)·노(태우) 구속을 당시 대학생들은 형식적인 쇼라고 했지만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시대 분위기와 각종 개혁조치로 나는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기는 시민으로 자랄 수 있었다.

어청식(32·직장인) = 중학교 과학수업 때 일이다. 목소리 큰 애가 이것저것 하라며 명령조로 말을 했다. 난 “야 그걸 왜 하라 마라야. 문민시대에 말이야”라고 말했다. 교실에선 웃음이 터졌다. 나는 ‘문민정부’라는 말을 ‘강요와 명령이 무조건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IMF 구제금융 사태 때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중국집 배달을 하면서 월 60만원을 받았다. IMF 전에는 월 80만원을 줬다고 한다. 이미 사회에 진출했던 사람들은 타격이 컸겠지만 나는 처음 출발해서 그런지 큰 타격으로 느끼지 않았다. 그의 핵심은 민주주의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초산테러를 당하면서도 민주화를 외쳤던 그의 부재가 안타깝다.

김영신(39·대학원생) =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 휴대전화 번호 뒷자리를 ‘0318’로 정해서 지금까지 쓰고 있다. 개인적으론 이 번호가 김 전 대통령과 나의 관계를 말해주는 전부다. 다만 회색의 시대를 열었던 상징이라는 의미도 있다. 흔히 김 전 대통령이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라고 하는데 그가 민주화세력을 대표했나? 5·16세력, 신군부와 손잡고 집권했다. 그뿐인가. 한총련, 범민련 등을 이적단체로 만들어 스스로 지하세력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다만 그에 대한 추모 분위기는 회색만도 못한 오늘을 사는 시민들의 조용한 항거 같다.

최혜경(38·연구원) = 1997년 대학에 입학한 내게 김 전 대통령은 이중적인 의미다. 강력한 개혁정책을 추진했고 그 바탕 위에서 민주정부가 탄생했다. 자유롭고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20대를 보낼 수 있었다. 한편으론 실패한 정책의 직격탄을 맞은 세대이기도 하다. 한 가지만 잘하면 누구나 대학 갈 수 있는 시대를 열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게다가 IMF 사태로 경제도 나빠져서 졸업할 즈음엔 취업이 어려웠다. 그의 죽음에 많은 추모와 비판이 쏟아지지만 난 잘라서 말하기가 참 어렵다.

■40대 : 혼란의 시대 ‘부재했던’ 대통령 - 신자유주의에 빼앗긴 내 청춘 돌려줘

대부분의 40대에게 김영삼 정권 시절은 방황과 혼란의 시기였다. 한때 민주화 투사였던 그를 대통령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질감은 오랜 방황으로 이어졌다. 동지라 믿었던 선배들이 군사독재 후예정당으로 입당하는 걸 지켜볼 땐 항의편지라도 쓰고 싶었다. 권력의 방향과 개인의 방향도 엇갈렸다. 결국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삶이 속출하면서 제각각 낯선 길을 떠난 시기였다. 대통령이 누구인지 신경 쓸 여력이 없던 때였다.

장은석(41·직장인) = 김 전 대통령 집권 당시 광주지역 대학에 93학번으로 입학했다. 집회에 나가면 광주시민들은 “김대중 선생은 비록 대통령에 떨어졌지만 그래도 이제는 문민정부다. 니들이 그러면 안된다”며 혼냈다. 하지만 1993년 말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으로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했다. 광주에서도 그제서야 ‘YS가 저러면 안되지’라며 학생들을 지지했다. 당시 그를 비하한 ‘영삼이의 일기’라는 노래가 나올 정도였다.

문지효(48·사업) = 김 전 대통령은 세상을 두 번 바꿨다. 하나는 군부세력 종식, 또 하나는 IMF. 후자는 모든 사람들이 신자유주의의 뜨거운 맛을 처음 느끼게 한 계기였다. 아버지는 돈 벌어오고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하던 시대에서 엄마 아빠 안 가리고 돈을 벌어야 했던 시대로. 돈이 세상에서 제일인 시대로 바뀐 게 그즈음이다. 모든 게 다 자본주의에 말살된 계기였다. 그의 화법으로 하면 “내 청춘 돌리도”라 하고 싶다.

이상원(47·교수) = 1995년에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앞서 1992~1993년을 권력재편기로 보면서 어떤 사회, 어떤 권력을 만들어야 할지 논쟁이 치열했다. 1992년 대선에서 민중진영이 패배한 뒤 원내정당운동, 전위운동, 신사회운동, 유학 등 우린 낯선 길로 향했다. 김영삼시대는 대통령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누구여야 하고, 누굴 미워하고 용서하며 살아야 할지 고심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터진 1995년 연세대 사태, 1996년 한양대 사태는 큰 충격이었다. 혼란의 연속이었다. 사회주의 붕괴를 우리의 위기로 과도하게 결합시켰다는 자성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그는 ‘민자당 대통령’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50대 : ‘정치인’과 ‘대통령’ 김영삼의 괴리 - 반독재 아이콘의 3당 합당에 당혹

50대에게 김 전 대통령은 야당 정치인이자 3당 합당 주역이라는 충격파로 받아들여졌다. 괴리감이 컸다. 김영삼이란 아이콘은 숨죽여 민주화라는 열망을 품게 했던 야당 지도자였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는 과정은 당혹감 그 자체였다. 지금 그의 죽음에 감정이입이 쉽지 않은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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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준(53·자유기고가) = 중학교 때 시골에서 꽤 많은 토종닭을 키웠다. 지금 돌아보니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은 그때쯤에 나온 것 같다. 단식하고 닭장차에 실려가던 정치인들 모습은 독재시대를 수놓은 풍경이다. 머뭇거리다 아무것도 못했던 정치인들과 달리 그는 분명한 행동가적 면모를 보였다.

박혜영(58·문화예술인) = 김 전 대통령의 죽음이 시민들에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 감정적 동요를 야기하는 죽음은 아니라는 거다. 역사적 평가에 맡겨진 대통령이랄까. 그가 YH 여공들과 함께 운명을 걸었던 것엔 지금도 한없는 고마움을 느낀다. 비록 대통령으론 한계가 많았지만 정치인 김영삼에겐 우리 모두가 빚졌다고 생각한다. 반독재투쟁 당시 그가 보여준 영웅적 기상이 그립다. 퇴행하는 이 시절, 누가 그처럼 목숨을 걸고 싸워줄까.

심지훈(55·언론인) =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민주화 대장정의 디딤돌 하나, 권력에 경도된 왜곡된 정치의 상징, 개발연대의 악성 정치를 계승한 흉악한 정치인 정도다. 왜 지금 그를 이렇게 미화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와 대통령 직선제 투쟁을 같이했다. 1986~1987년쯤 직선제 쟁취 마산대회를 앞두고 실무 준비를 하던 중 보안대에 잡혀가 무지하게 맞았다.

 

당일 대회 후에 풀려나 무전 택시를 타고 시내 한 일식집에 갔더니 그가 “심 동지, 고생 많았소. 술 한잔 받으소” 해서 술도 마셨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운동의 상징성이 컸다. 그러나 3당 합당을 보며 가슴 아팠다. 그 뒤로 그는 ‘더는 기대하지 않았으니 더는 실망할 것도 없는’ 사람이 됐다.

■60대 : ‘열망과 실망’의 반복 - 민주화 함께 외친 아스팔트 위 동지

60대는 김 전 대통령에게 동질감을 갖는 세대다. 아스팔트 위에서 민주화를 함께 외친 주역이었다는 동질감. 그러나 IMF 사태로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열망에서 실망의 사이클’을 가장 선두에서 겪었던 세대다.

최순영(62·부천 친환경의무급식운영위원장) = YH무역 사건 때 우리가 신민당사를 찾아간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당내 계파 갈등 속에서도 정당 민주화를 주장, 괜찮은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기대했던 대로 그는 흔쾌히 돕겠다고 했다. 매번 186인분 식사를 시켜줬다. 내가 아이를 출산했을 때는 손명순 여사가 쌀과 미역을 직접 가져왔다. YH 사건 10주년 때는 모란공원에 김경숙 열사 묘와 묘비를 만들었다. 이때도 김 전 대통령은 흔쾌히 100만원을 지원해줬다. 내게 그는 역사발전의 계기를 열어준 대통령이었다. IMF 사태도 시대 흐름이 그랬던 것 아닌가.
 

​- 구혜영 박은하

 
ⓒ 경향신문 ( http://www.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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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는 박 대통령의 영결식 결례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장으로 엄수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불참했다. 대신 박 대통령은 운구차가 출발하기 전 빈소를 방문, 고인을 배웅했다. ‘고열 등 감기 증상이 있는 상황에서 추운 날씨에 오랫동안 야외에 있으면 곧 있을 해외순방 등에 차질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서 장시간 외부 공기 노출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주치의의 판단을 의심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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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날 박 대통령의 빈자리는 쌀쌀한 날씨만큼 보는 이들의 마음을 시리게 했다. 80세가 넘은 원로들도, 휠체어에 앉은 손명순 여사도 영결식장을 끝까지 지켰다.

박 대통령은 두 차례 고인의 빈소를 찾은 것으로 예의를 갖췄다고 생각한 것 같다. 김 전 대통령이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상대로 벌인 반독재 투쟁을 기리는 영상물을 지켜보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자신을 향해 날린 고인의 독설도 떠올리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가 주관하는 전직 대통령의 장례식에 현직 대통령이 나오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영결식 불참을 놓고 대통령의 협량이 운위되는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다. 국민 통합과 소통이 고인의 유지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의 영결식 불참은 더욱 유감스럽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511262030505&code=990101

 
 
김영삼 대통령 영결식 '어린이 합창단 인권침해' 여부 인권위 진정

 

 

지난 26일 엄수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당시 모 초등학교 어린이 합창단이 아무런 방한 조치 없이 야외에 장시간 노출된 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가 국가인권위에 접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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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인 오영중 변호사(47·사법연수원 39기)는 30일 행안부 등 고 김 전 대통령 국가장 장례 주관 기관 및 담당자를 상대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개인자격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
 

오 변호사는 진정서에서 "최근 고 김 전 대통령 서거 국가장에 동원된 모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어린이 합창단이 추위에 떨면서 아무런 방한보호조치 없이 눈바람에 약 1시간30분 이상 노출됐다"며 "이는 아동에 대한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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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행정자치부가 최근 SNS를 통해 사과의 뜻을 밝혔고, 이에 앞서 고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도 영결식 다음 날 자신의 SNS에 "세심한 배려가 부족한 결과가 어린 학생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는 글을 올리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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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604489

 

 
 “김무성 아닌 정의화가 진짜 YS의 '정치적 적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6일 정의화 국회의장의 쟁점법안 직권상정 거부에 대해 “김무성이 아니라 이런 분이 진짜 ‘YS의 정치적 적자’”라고 극찬했다.

조국 교수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청와대와 여당의 국회의장 공개 겁박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여 당당하게 대응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도 트위터에 “나는 세계관이 다르고 정치적 입장도 다르지만 입법부의 일원으로서 잠시라도 정의화 의장의 호위무사가 될 것”이라며 “정 의장께서는 지금 대한민국 헌정사에 기록될 투쟁을 하고 있다. 힘내시라!”고 격려했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은 “지금 3부 요인 중 고뇌와 성찰을 하며 중립과 공정직무 수행을 위해 노력하는 유일한 사람이 국회의장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정 의장을 높게 평가했다.

전우용 역사학자는 트위터를 통해 “청와대가 국회의장을 압박하는 건 삼권분립 위반인 줄 알면서도 ‘잘한다’는 자들 많다”며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위반해도 ‘잘한다’는 자들이 도로교통법을 위반한 사람보고는 ‘폭도’라고 한다. 민주국가를 파괴하는 진짜 폭도는 이런 자들이다”라며 정 의장을 비난하는 여당 지지자들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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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보고서

U2 2015. 12. 13. 09:12

 

 

 

 

학교에 쫙 깔린 사복경찰…“지금이 유신시대인가요”

 

 

 

 

 

 

 

 

 박 대통령, 학생들 항의 시위에 이대 후문으로 입·퇴장

이화여대 학생들이 29일 학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반대하는 항의 시위를 벌이다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충돌이 벌어졌다. 학생들의 시위로 박 대통령은 후문을 통해 학교에 들어왔다가 역시 후문으로 학교를 떠났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쯤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주최하는 제50회 전국여성대회 축사를 위해 이화여대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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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이대 총학생회와 학생 100여명은 오후 1시부터 파빌리온 앞 공터에서 ‘국민의 뜻 거스르는 박근혜 대통령 환영할 수 없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방문 거부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박 대통령의 방문이 임박하자 오후 2시부터 행사가 열리는 대강당 앞으로 집결해 시위를 이어갔지만 사복경찰들이 겹겹이 둘러싸며 행사장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손솔 총학생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대학가에서 커지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들은 적이 있느냐”며 “유신시대로 되돌리려는 박 대통령의 방문은 필요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사장 앞 경찰들과의 대치가 길어지면서 학생들은 250여명으로 불어났다. 학생들은 “길을 막는다면 돌아서라도 가겠다”며 샛길을 통해 대강당에 진입하려 했지만 가는 길목마다 사복경찰에게 막혔다. 이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져 학생들이 들고 있던 손팻말이 조각나고 여러명이 넘어지기도 했다. “여성 대통령이 이화여대를 방문했다는데 왜 이대생이 행사장에 가지 못하느냐”며 눈물을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사복경찰은 오후 3시30분쯤 박 대통령이 캠퍼스를 떠나자 교정에서 나갔다. 국제학부 최원정씨(25)는 “학교에 경찰이 쫙 깔려 유신시대로 돌아간 줄 알았다”면서 “(여당 대표가) 역사교과서가 패배적인 역사를 가르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헬조선’을 외친다고 하는데, 박 대통령이 만든 대한민국이 ‘헬조선’ ”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시위한 것을 뭐라고 말하겠느냐”고만 했다.

 

이화여대 ‘박 대통령 방문 반대’ 시위…학내 곳곳서 경찰과 충돌

 

 

이화여대 학생들이 29일 학내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반대하는 항의 시위를 벌이다 이를 제지하는 경찰과 충돌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쯤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주최하는 제50회 전국여성대회 축사를 위해 이화여대를 방문했다.

이에 앞서 이대 총학생회와 학생 100여명은 오후 1시부터 파빌리온 앞 공터에서 ‘국민의 뜻 거스르는 박근혜 대통령 환영할 수 없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방문 거부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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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박 대통령의 방문이 임박하자 오후 2시부터 행사가 열리는 대강당 앞으로 집결해 시위를 이어갔지만, 사복경찰들이 겹겹이 둘러싸며 행사장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손솔 총학생회장은 “박 대통령은 대학가에서 커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은 적이 있느냐”며 “유신시대로 되돌리려는 박 대통령의 방문은 필요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행사장 앞 경찰과의 대치가 길어지면서 학생들의 숫자는 250여명으로 불어났다. 학생들은 “길을 막는다면 돌아서라도 가겠다”며 샛길을 통해 대강당에 진입하려 했지만, 가는 길목마다 사복경찰에게 가로막혔다. 이 과정에서 충돌이 벌어져 학생들이 들고 있던 피켓이 산산조각 나고 학생 여러명이 넘어지기도 했다. “여성 대통령이 이화여대를 방문했다는데 왜 이대 소속 학생이 행사장에 가지 못하느냐”며 눈물을 보이는 학생도 여럿 있었다.

학생들의 길목을 막던 사복경찰들은 오후3시30분쯤 박 대통령이 캠퍼스를 빠져나가자 대치를 풀고 교정에서 나갔다. 국제학부 최원정씨(25)는 “학교에 경찰이 쫙 깔려 유신시대로 돌아간 줄 알았다”면서 “(여당 대표가) 역사교과서가 패배적인 역사를 가르치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헬조선’을 외친다고 하는데, 박 대통령이 만든 대한민국이 ‘헬조선’”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 대통령은 여성단체 관계자 3500여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축사를 통해 “여성의 발전이 곧 우리 사회의 발전”이라며 “여성의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시대이며 여성들이 사회 곳곳에서 제 몫을 다해낼 때 경제도 성장하고 사회도 투명해지며 국민통합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 선명수 이용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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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여성대회 라면알바 논란이 남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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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두 봉지라고 쓰면 안 되겠습니까.” 풀무원 홍보팀 관계자는 한 봉지에 4개씩 들어 있으니 도합 8개가 들은 것은 맞지만 그렇게 쓰면 많이 배포한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런 사건에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부담되는 일입니다.” 사건? 10월 29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전국여성대회에서 벌어진 ‘일’을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행사에 참석해 연설했고, 이화여대 학생들은 ‘국정화 교과서 추진 철회’를 외치며 방문 반대시위를 했다. 한편에서 이날 여성대회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회원들의 손에 들려 있는 비닐봉지가 관심을 끌었다. 남은 현장 사진만으로는 박스나 비닐봉지에 적힌 글씨가 무엇인지 판독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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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3일 뒤, 한 커뮤니티에 ‘엄마가 이대 가서 깽판쳤는지 확인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의 게시글과 사진이 올라왔다(원본이 올라온 곳이 우파사이트 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주장이 있으나 확인되지 않는다). 사진 속 비닐봉지에는 선명하게 이름이 적혀 있었다. 풀무원이다. 확인해 보니 3일 전 사진 속 비닐봉지가 맞다. 라면은 ‘가쓰오 메밀 냉소바’였고, 생수도 풀무원이 제공한 것이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쪽 협찬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풀무원 홍보팀 관계자는 덧붙였다. 단체 측으로부터 행사 협찬 요청을 받은 것은 지난 9월 중순이었다. 청와대로부터 협찬 요청을 받은 것은 아니다. 배포한 라면의 전체 물량은? “참가자가 4000여명이라고 협찬 요청 공문에 밝혀 그만큼 규모의 물량을 제공했다.”

‘가쓰오 메밀 소바’가 계절상품이라 재고처리용으로 뿌렸다는 지적도 있는데? “사업팀의 결정인데, 거기까지는…. 사실 풀무원이 여성 친화적 정책을 많이 펼치고 있어요. 여성이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선정된 일도 했고….” 그런데 좀 더 따지고 보면 여성단체협의회가 모든 여성단체를 망라한 조직은 아니다.

홈페이지의 참가단체를 보면 대한간호협회, 재향군인여성회, 원자력을 이해하는 여성모임 등 직능단체거나 보수단체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의 전화나 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등의 여성단체가 참여한 ‘여성단체연합’은 이번 행사의 주최가 아니다. 간단히 말해 보수성향 여성단체들의 ‘잔치’에 풀무원이 협찬한 것이다.

그런데 국정 교과서 논란에 정부가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두고 풀무원이 진행해온 ‘바른 먹거리’ 캠페인까지 연결시키는 것은 조금 오버로 보인다. 풀무원의 ‘바른 먹거리’ 캠페인이 시작된 것은 이번 교과서 논란 훨씬 전인 2010년 10월의 일이니 말이다. “우리 제품 중에 ‘올바른 핫도그’라는 제품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 전후로 그 제품명을 두고 연관시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희도 힘드네요.” 경영학이나 광고학에서 협찬이 역효과를 낸 사례로 기록될 듯하다.


-정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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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학생들, 朴대통령 방문 뒤 남은 쓰레기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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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화여대에 방문한 뒤 남은 쓰레기를 이 대학 학생들이 치운 것으로 확인됐다고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주최로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50회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등의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 방문을 저지하기 위한 학생들과 경찰 사이에 마찰이 빚어지면서 일부 학생이 다치기도 했다.

행사 참가자들이 주최 측에서 나눠준 라면을 받아간 뒤 라면 상자를 비롯한 쓰레기가 대강당 앞에 방치됐다. 쓰레기를 본 한 학생이 이 대학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강당 앞이 너무 더럽다. 함께하면 금방 치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글을 올렸고 이 글을 본 학생 11명이 힘을 모아 50여분 만에 청소를 마쳤다.

이 대학 학생인 ㄱ씨는 “여성을 위한 행사에 이게 무슨 일인가요? 나라 행사를 위해 학교에 사복 경찰까지 동원하셨으면서 최소한 뒤처리는 제대로 하고 가셨어야죠. 이대생들을 짓밟으시면서까지 행사 진행하시고, 그 뒤처리 또한 저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비판했다.

학생 ㄴ씨도 “여성을 위한 행사라고 참가자들에겐 두 손 가득 선물을 주었지만 그들이 떠나고 남겨진 건 사회 최약계층인 미화원 어머니들께 남겨둔 선물인가요? 과연 이것이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요?”라고 지적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는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어제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던 여성대회가 끝난 후 대강당의 모습”이라며 전날 사진을 공개했다. 또 “사복경찰로 평화적인 피케팅을 하려는 학생들을 탄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쓰레기까지. 미화노동자 분들이 고생하실까봐 이화인 11분이 모여서 치우셨다고 한다. 정말 고생 많으셨다”며 “전국여성대회는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치우는 기본을 갖추셨으면 한다”고 했다.
 

 

ⓒ 경향신문 ( http://www.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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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학생들, 낮엔 대통령 막고 밤엔 쓰레기 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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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여성대회 행사장 쓰레기장으로 변해
학생들 나서 청소 “미화원한테 둔 선물인가”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했던 ‘전국여성대회’가 마무리된 뒤, 행사가 치러졌던 이화여대 대강당 앞에는 쓰레기가 가득했다. 주최측이 치우지 않고 간 쓰레기였다. 쓰레기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며 박 대통령의 학교 방문을 반대했던 이대생들이 나서서 치웠다.

 
30일 이화여대 총학생회와 학생들의 말을 종합하면, 2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주최로 열린 제50회 전국여성대회가 끝난 뒤, 대강당 앞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있는 100여개의 박스와 쓰레기들로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박스 안에는 먹다 남은 생수병과 주스병 등이 들어 있었다. 박스는 비에 젖어 습기를 흠뻑 머금고 있어 치우기도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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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쓰레기들를 본 한 재학생이 이대생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대강당 앞이 너무 더럽다. 함께 하면 금방 치울 수 있을 것 같다”며 청소를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을 본 학생들 11명이 금세 대강당 앞으로 모였다. 이들은 박스 안에 담긴 쓰레기와 주변에 널린 쓰레기들을 봉지에 담았다.
 
비에 젖은 박스는 위아래를 터서 납작하게 접어 한켠에 차곡차곡 쌓는 등, 50여분 만에 청소는 마무리됐다. 청소에 직접 참여한 김남영(25)씨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커뮤니티의 글을 보고 몇 개만 치우면 되겠지하고 왔는데 평소에 보던 대강당 앞인지 쓰레기장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너무 심하게 더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행사를 주관한 쪽에서 뒤처리를 깨끗하게 해야지 왜 학생들이 청소하게 만드냐”고 비판했다.
 
이 대학 학생인 이아무개씨도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여성을 위한 행사라며 참가자들에게 선물(을) 바리바리 챙겨주더니, 이건 이화의 미화원 어머니들께 남겨둔 선물일까?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학생들이 모여 다 치웠다고 한다. 대체 누구를 위한 행사인가요”라고 꼬집었다. 이대 총학생회도 페이스북에 쓰레기 더미가 쌓인 대강당 앞 사진을 올리고 “사복경찰로 평화적인 피케팅을 하려는 학생들을 탄압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쓰레기까지. 미화노동자 분들이 고생하실까 어젯밤 이화인 11분이 모이셔서 치우셨다고 합니다. ‘전국여성대회’는 자기 쓰레기는 자기가 치우는 기본을 갖추셨으면 합니다”라고 썼다.
 
이런 비판에 대한 한국여성단체협의회의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회의중이라 해명할 사람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 김규남

 

 

ⓒ 한겨레 ( http://www.hani.co.kr/)

 

 

 

 

- 댓글

 

행인투: 자기가 한 말도 못지키고 자기가 싼 똥도 치우지 못하는 무리들이
쓰레기를 치웠을리가 없지 않은가? 뻘짓만 하고 다니기도 바쁘고 그걸 조작과 거짓으로 무마하기는 더 바쁜데 말이지.

 

Gnedak: 쓰레기가 다녀갔으니 쓰레기 흔적을 남겼고만. 그나 저나 이대학생들 참 예쁜 짓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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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맞아?” 여대 방문한 노무현 ‘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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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에 둘러싸인 정치인… 지금과는 사뭇 다른 모습에 ‘눈길’

정치인이 대학에 갔는데 저렇게 평화로울 수 있습니까?”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학 방문 당시 영상이 다시금 화제입니다. 노 전 대통령이 무려 13년 전, 유세 기간 동안 한양여대를 방문할 때의 모습인데요. 비록 대통령 선거 이전이지만, 정치인의 바로 옆으로 붙어선 여학생들이 웃고 소리 지르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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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무려 13년 전인 2002년 11월 26일, 노 전 대통령이 한양여대를 방문합니다. 지난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50회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했을 때처럼 수많은 여대생들이 그를 둘러쌌는데요.

 

하지만, 사뭇 다른 모습이 있습니다. 영상에선 사복 입은 경찰들, 울면서 쓰러진 여대생들의 모습은 없었죠. ‘뒤집어질 정도’로 많은 여대생들이 당시 대통령 후보자의 곁을 둘러싼 채 함께 급식도 먹고 기념 사진촬영도 했습니다.

 

한국사회와 대학은 급격히 민주화가 되고 있습니다. 13년 전에도 여전히 정치인과 함께 어울리는 대학생들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학생들은 인터뷰에서 “내세운 공략들도 마음에 와닿습니다” “너무 좋은 걸 어떻게 해요”라며 웃으며 말했죠. 대통령 곁을 둘러싼 보좌진들도 여대생들의 모습이 즐거웠는지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학생들과 급식을 먹으며 “몇년제 대학을 나왔다는 것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학생들에게 공약합니다. 그런 정치인을 향해 학생들이 악수를 청하며 몰려들었는데요. 밥을 먹던 일도 그치고 일일이 악수를 이어갔습니다. 

 

 

*국민일보 - 김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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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대비되는 박근혜의 이화여대 방문 토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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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강의를 위해 방문한 박근혜라면 누구를 상대로 강의해야 했는가. 이대생이 아니었는가.  그러나 이화여대 강의실에는 이대생들은 없었거나 소수였고 '라면알바' 아줌마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고 한다. 물론 여성대회를 위한 행사라지만 순수성과 동떨어지는 '라면알바' 아줌마들을 이화여대 강당에 동원했다는 소식을 들을때 우습지 않을 수 없다.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 돌아갔을텐데 라면알바 아줌마들을 그 자리에 채우고 강의를 했다고 하니.. 이를 보도한 KBS는 부끄럽지도 않는가보다. KBS 뉴스는 이대생 200명 이상의 '박근혜 방문 반대' 항의와 라면알바 아줌마들로 채워진 강의실 광경을 비추어 주지 않고 박근혜의 강의 내용만을 보도했다고 한다.  땡전뉴스의 추억이 되살아난 광경이다

 

땡전뉴스 전두환의 추억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이 사복으로 위장해 이대생의 항의를 막는 장면에서는 전두환 정권 당시의 학원사찰이라는 용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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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김영삼 전 대통령이 고려대 정문에서 고대생과 대치했던 장면이 더 떳떳한 것이었나보다. 무엇이 그렇게 두려워 박근혜는 뒷문으로 도망쳐야 했는지, 게다가 국가세금으로 라면알바 아줌마까지 동원해 그 자리를 채웠으니 참으로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 세계가 이를 안다면 해외토픽감이 될 망신이 아닐 수 없다.

 

고대생과의 대치 고집으로 승용차 안에서 PT 통에 오줌을 쌌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도 우스꽝스러운 일화였지만 '라면 알바' 아줌마를 동원해 그 자리를 채웠다는 박근혜 뉴스는 김영삼의 고려대 방문을 능가하는.. 잊지 못할 우스운 장면이기도 하다

 

고려대와 이화여대생의 '전현직 대통령의 학교 방문 반대' 항의 행위는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성의 순수한 뜻에서 나온 것이다.  시국 행사장에서의 행패를 위해 기획적으로 동원되는 어버이 연합 등의 보수단체와 다른 것이다

 

김영삼은 IMF 외한위기의 책임자로서 분개를 일으켰고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무책임과 국정화 교과서 문제로 분노를 일으키게 했다, 그러한 순수함의 학생들로부터 저항을 받는 전현직 대통령이라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얼마나 잘못 했길래 학생들이 분노하는가"라는 자성이 되어야 한다. 

 

요즈음 20대 대학생들이 학문의 순수함보다 취업 문제에 비중이 큰 나머지 8.90년대 초의 학생들보다 사회적 참여의식이 모자라다라는 비판이 있었는데, 그러나 따지고 보면 2000년 대 초반 진보언론들의 이와 같은 비판들은 민주노동당 지지 수준의 진보가 아니거나 한총련 투쟁의 강경함보다 못하다는 뜻에서의 비판이었지  실상 당시의 학생 지도부들은 민주화와 경제적 문화적 변화에 맞게 변화해가는, 구체적으로 '노무현 유시민' 등으로 상징되는 참여정부, 노사모, 개혁당의 범주와 비슷한 특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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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범주는 유쾌한 반란식의 방법에 익숙한 중도 진보의 스탠스로서 80년대의 대학가보다 떨어진 투쟁력이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범주의 학생들이 있었기에 촛불시위로 이어지고 대자보 문화가 보다 더 창의적이고 세련되어지는 등, 그 명맥이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명맥은 또한 이명박 시절의 민주주의 역행이 불러온 현상이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시위에 대한 탄압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나마 정권의 권력층들이 정권에 항의하는 시위 문화를 이해하고 배려하기도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박근혜의 유신회귀적 행태들이 대학가의 보다 높은 시위 문화를 일으키게 진행 중이다.  적어도 대자보 파장 때까지는 약과였는데 박근혜의 보다 강화된 탄압적 강경드라이브 때문에 박근혜 세력들 스스로가 투쟁 강도가 약한 촛불 시위 문화를 죽이고 있고. 보다 더 강경한 대처의 시위문화를 야기시키게 만들고 있거나 가능하게하는  걱정으로 가게 한다

 

어째튼 20대 대학생들의 사회적 참여가 여전히 죽지 않았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한 때는 제도권의 보수적 정치권에 순응하는 학생 지도부도 있긴 했지만 그때는 인터넷 문화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90년 대 중후반의 현상이었다.  분명한 것은 어느 시대이건 20대 학생들의 순수한 저항 의식들이 어떠한 형태이든  생성된다는 이치이고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소통을 하는 대통령이라면 예를 들어 이화여대생들의 박근혜 방문 반대의 항의에 정면으로 맞서 대화해야하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시위자의 목소리를 들을 줄을 알아야 한다.그리고 자신에게 무엇이 잘못인지 깨닫고 고쳐간다면 존경 받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듣는 척을 하거나 모종의 유발사태를 일으키려는 정치공작적 행태의 쇼가 아니라 누가봐도 진정성을 느끼게 하는 소통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문고리 3인방 등의 십상시에 둘러쌓이거나 유신시대의 사고에 틀어박힌 박근혜에겐 이러한 상상력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이 나라의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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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농민시위 현장에서 공권력에 의해 한 농민이 죽게되자 고개숙여 사과했다.  장애인 협회와의 대화에서 한 장애인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의 피켓을 들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위자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이후 정책에 반영하려 노력했다. 소통이라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대학생들의 분노를 일으키게할 만한 거대한 잘못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환영을 받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학 강의였고, 그에 비해 박근혜와 이명박은 대학생들의 분개를 사는 거대한 잘못의 집권자였다. 하지만 그럴때일수록 시위 현장에 가서 듣고 자신을 고쳐야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에겐 그것이 어려운가보다.  

 

오히려 80년대의 대학가 광경을 다시 보는 듯한, 학원사찰을 연상케하는 대학가내의 사복 경찰 행태가 점점 강화되고 있으니, 유신회귀의 국정화 교과서 사태와 겹쳐 후진국으로 돌아가려는 한국을 보는 듯하다.

 

지난 대선 당시에 박근혜 후보가 대학총장으로 하여금 학생들을 억지로 동원시켜 물의를 일으킨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어디가지 않는가 보다 .

 

국정화 교과서 반대의 역사학자 모임에 어버이 연합을 동원시켜 폭력을 행사케하는 정권의 모습을 봐도 알 수 있다. 국회연설에서 어버이연합 회원을 국회에 불려 들어 동원시킨 것도 황당한 그것이었다.

 

어버이 연합 뒤에 누가 그 노인들에게 자금을 뿌리고 지원하고 있는지, 그 배후가 누구인지 이제는 밝혀져야할 때다

 

 

 *아고라 -유스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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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여성 역량 발휘", 밖에선 이대생-경찰 몸싸움 

경찰·학생 대치, 박 대통령 '여성자부심' 축사 후 떠나

박근혜 대통령은 이화여대 후문을 통해 오후 3시께 행사장으로 들어갔지만, 바깥에 선 학생들과 사복 경찰의 대치는 이어졌다. 150여 명 학생은 행사장과 약 200m 떨어진 곳에서 박 대통령을 향해 "대체 무엇이 부끄러운 거냐", "이대 학생들은 자격 없는 대통령의 방문을 거부한다"고 크게 외쳤다.

대치가 이어지자 학생들은 다른 길을 통해 행사장 진입을 시도하려 했지만, 스크럼을 짜고 막아서는 경찰 수십 명에 막혀 실패했다. 경사가 있는 비탈길에서 서로 밀고 밀리며 대치하다 한쪽으로 다 같이 쓰러질 뻔한 위험한 상황도 연출됐다. 일부 학생들은 울면서 경찰에게 항의했다.

같은 시각 행사장 안에서는 박 대통령이 7~8분간 짧은 축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원·원주 한국 여성단체협의회(여협)에서 왔다는 50대 정아무개씨는 "박 대통령이 축사에서 '여성의 경력 단절은 안 된다'는 등 여성으로서 자부심 가질 수 있는, 소중한 말씀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박 대통령이) 통일은 꼭 필요하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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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여성의 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으로 직결되는 시대"라며 "당당하게 꿈을 펼치는 여성이 희망인 시대를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여성의 발전의 곧 우리 사회의 발전"이라며 "여성이 잠재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사회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날 행사는 '여성, 사회변혁을 이끌다- 한반도 평화통일, 여성의 힘으로'라는 표어 아래 여협 65개 회원단체 회원 및 전국 여성지도자들이 참여했다. 내용은 개회선언과 축사, 시상식 등으로 구성됐다. 여협 초대 회장인 고 김활란 박사의 이름을 딴 '김활란 여성지도자상(제15회)'은 유중근 경원문화재단 이사장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행사장 입구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윤상현 의원 등이 보낸 화환이 놓여 있었다. 사전등록을 해야 입장 가능한 2828석의 내부 좌석도 여성중앙회·대한민국재향군인회여성회 등 단체 관계자들로 가득 찼다. 참가자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국정 교과서'나 반대 시위를 한 학생들은 언급하지 않았고, 짧은 축사 후 3시 30분께 이화여대를 떠났다.

경찰에 막힐 때마다 장소를 바꿔 가며 게릴라식으로 시위하던 이대 학생들은 오후 4시께에야 집회를 마무리했다. 한 학생은 "오늘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저는 박 대통령이 겁쟁이라는 확신이 생겼다"며 "20대 초반 여학생들, 피켓을 든 학생들뿐이었는데 수백 명 경찰을 배치한 건 두렵다는 뜻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날 박 대통령의 이대 방문 거부 기자회견을 주도한 이대 총학생회 등 집행부는 "끝까지 함께 해줘 감사하다"며 "오는 31일 진행되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전국 대학생 공동 행동에도 함께 해달라"고 말했다. 건국대 총학생회 등 30여 개 대학 총학생회는 31일 오후 2시 서울 마로니에 공원·이대 대현 문화공원 등에서 모인 뒤 4시 청계광장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집회'를 열 계획이다.

 

박 대통령 후문으로 도착, 이대생들 "그렇게 부끄럽나?"

청와대를 출발한 박근혜 대통령이 오후 3시경 금화터널을 넘어 이화여대 후문을 이용해 대강당에 도착,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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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학교 방문을 반대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숫자는 더 늘어났고, 목소리도 커졌다. 박 대통령은 이미 행사장으로 들어갔지만, 150여 명으로 늘어난 학생들은 대강당 앞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비판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경찰과 몸싸움을 하던 일부 학생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 학교에 볼 일을 보러왔다는 한 고등학생은 "제가 고등학생이라 이렇게밖에 말 못하는데, 언니들 대단하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 얼굴 한 번 보고 싶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다음은 이화여대 학생들의 발언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화여대 방문 거부한다. 평화로운 피켓팅을 원한다. 왜 경찰들을 더 많이 동원하나. 박 대통령이 후문으로 온다는 소리도 있다. 그렇게 부끄럽게 와야 하나.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거부한다. (어~어~) 학생들 밀지 마세요! 다칩니다! 이화여대는 당연히 학생들의 장소입니다."

"대통령은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으시라. 대강당은 원래 이화여대 학생 수천명이 평화롭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경찰들이 일렬 중대로 막고 있다. 폭력을 만들고 있는 경찰을 규탄한다."

"박 대통령의 이화여대 방문을 거부한다, 여기는 이화여대다, 사복경찰 비켜라."

"대통령님, 저희 대학생들 대강당 앞에 모여있습니다. 어째서 학생들 여기 있는 거 아시면서 왜 뒤로 몰래 돌아가십니까? 무엇이 부끄러워서 학생들 못 보고 가십니까. 우리 학생들 목소리 전달하고 싶습니다. 지금 (역사교과서) 국정화 마음대로 추진하시는 거 절대 안 됩니다.

지금 이렇게 노동개악하면서 우리 청년들 일자리 계속 불안정하게 만드시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자발적으로 따라갔다고 하는 그런 식의 역사관을 가지고 역사책 만드는 사람들 데려가면서 어떻게 이렇게 여성대회 오실 생각 하셨습니까?

양심이 있다면 여기서 학생들 목소리 듣고 다시 돌아가십시오. 우리 학생들은 대통령 이화여대 방문 거부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여기 서계시는 사복 경찰들, 학생들 위하는 척 하면서 학생들 해산시키려고 하시지 마십시오. 아까부터 경찰들 때문에 우리 학생들 원래 다닐 수 있는 길목에서 몇번이나 굴러떨어질뻔 했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경찰이 대학에 들어와서 우리 길목을 막습니까? 우리 학생들 대통령에게 말 한마디 할 권리도, 생각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생들의 목소리, 대통령께 직접 전달하겠습니다. 지금 이 길을 비키시고 대통령은 이 길을 지나십시오. 우리 대학생들의 목소리, 이화의 주인들의 목소리, 듣고 가십시오. 우리 학생들, 대통령 방문 거부합니다."
"지금 박 대통령 탄 자동차가 후문을 지나갔다고 합니다. 박 대통령은 이화여대 올 자격이 없습니다. 누구 마음대로 이화의 교정을 밟고 대강당에서 여성을 이야기 합니까? 여성 대통령으로써 자격 있으십니까? 우리 이화에서는 그런 대통령 서실 자격 없습니다.

우리 이화여대 발걸음을 돌리십시요. 우리 이대 학생들은 자격없는 대통령 거부합니다. 국민들의 뜻에 따르고 이화여대 목소리 듣고 가십시오. 양심이 있다면 여기 서있는 학생들 목소리 듣고 가십시오."

"뭐가 부끄러워서 후문으로 몰래 들어가십니까? 박근혜 대통령은 여성의 목소리를 대표해 말할 자격이 없으신 분입니다. 이화여대 교정, 함부로 이렇게 가로막고 이화인들의 목소리 짓밟으시면 안 됩니다. 민주사회 대통령이라는 분께서 어떻게 사복경찰을 학교 안에 깔아놓고 학생들을 밀어내십니까?

학생들은 사복입은 남자경찰들 때문에 길도 마음대로 못 가고 있습니다. 여기는 우리 학생들의 길입니다. 누구 마음대로 길을 막고 마음대로 채증하고 불법을 자행하십니까? 경찰관이고 대통령이면 마음대로 불법적으로 민주시민들 짓밟아도 됩니까?"

 

 

이대 학생들, 박 대통령 방문 반대 시위... 현재 대치중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100여 명이 29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반대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 추정 인사들에 의해 제지를 당했다. 학생들은 이날 오후 2시 20분 현재 행사장 약 150m 앞에서 사복 경찰로 추정되는 남성 100여 명과 30분째 대치 중이다.

이화여대 총학생회, 이대 학생행진, 청년하다, 노동자연대 이대 모임 등 학생 100여 명은 이날 오후 1시부터 이대 대강당 앞에서 '국민의 뜻 거스르는 박근혜 대통령 환영할 수 없습니다'는 현수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정교과서 강행, 노동개악, 반여성 정책을 추진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을 거부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날 오후 2시 이화여대 대강당에서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여협) 주최, 여성가족부 후원으로 제50회 전국여성대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이에 대해 학생들은 "오늘 박 대통령이 축사를 하기 위해 온다고 한다"며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 박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사실에 이대인들은 부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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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를 잡은 손솔 이대 총학생회장은 "박 대통령은 대학가에서 커져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의 목소리를 한 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나"라며 "'위안부는 동지적 관계' 운운하는 교과서를 추진하는 대통령의 방문은 필요 없다"고 말해 학생들의 박수를 받았다.

김세영 총학 부총학생회장도 "청년 실업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노동 개악,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등 정부 정책은 실망스럽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여기 방문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행사' 비표를 옷에 단 일부 여성대회 참가자들은 이 학생들을 보고 혀를 차거나 눈을 흘기며 지나갔다. 심지어 학생들의 기자회견을 방해한 참가자도 있었다. 강원지부 전 여협 회장이라는 홍종임(74)씨는 "여자 대통령이 나왔는데 도와줘야지 이게 뭐냐"며 "너희가 잘 몰라서 그런다, 공부나 하지 이게 무슨 짓이냐"라고 삿대질을 했다.

홍씨는 학생들의 항의에도 계속 기자회견을 방해하다가 10여 분 뒤 바깥 쪽으로 밀려나왔다. 그는 "지금 (교과서에) 수록된 게 잘못됐으니까 고친다는 거 아니냐"며 "너희가 6.25를 알아 뭘 알아"라고 외쳤다. 홍씨는 그러나 '교과서 어떤 부분이 잘못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그 교과서를 안 가져왔다"며 "김일성 찬양 문구도 나온다더라"고 답변했다. 

또 다른 50대 여성도 "잘못된 건 학생들이다, 너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거야"라며 "기존 역사책이 좌익 세력을 옹호하는 내용을 썼으니까 바꾸자는 건데 이걸 제대로 알고 있긴 한거냐"며 기자회견을 방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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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이날 직접 손으로 쓴 대자보를 손에 들고 나왔다. 이들은 박 대통령의 발언을 빗대어 '전체 정책을 보면 여성을 착취할 그런 기운이 온다'고 꼬집는가 하면, '친일파 김활란상 수여? 이화여대가 부끄럽다', '위안부 문제를 외면하는 국정교과서, 과연 박근혜 대통령을 여성지도자라 할 수 있나' 등의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박 대통령을 비판했다.

학생들은 약 1시간 가량 기자회견을 한 뒤 행사장 바로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겠다며 대강당 진입을 시도했으나 건장한 남성 100여 명에 의해 막혔다. 무전기를 들고 인이어를 귀에 꽂은 이들은 서로 팔짱을 낀 채 학생들을 막아섰다. 이들은 '경찰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중 한 명이 "폭력 있는 곳을 집중적으로 찍어", "(소란스러운) 안쪽에 가서 촬영해"라고 지시하는 등 채증 활동을 집중적으로 벌였다. 

학생들은 박 대통령이 방문할 것으로 알려진 오후 3시까지 자유 발언을 이어가며 대치하겠다는 입장이다. 학생들은 "폭력경찰 물러나라, 사복경찰 규탄한다", "사복차림을 하고 불법 채증을 하고 있는 경찰은 물러가라"며 항의했다. 학생들은 행사장 앞에서 막혀 들어가지 못했지만, 40~50대 추정 여성대회 참가자들은 옆길로 돌아가 행사장으로 들어갔다.

 

 

이대생들, 프랑스 대통령 향해 "박근혜 독재자"

 


올랑드 대통령 이대 방문 팻말 시위... 박 대통령은 동행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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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지 마세요.""팻말 안 보이잖아요. 나오세요."

4일 오전 10시 서울 이화여대 헬렌관 앞.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의 이화여대 방문을 앞두고 이 학교 학생 10여 명이 '프랑스는 자유발행제 한국은 국정화?' '우리나라의 자유 평등 우애는 어디에?', '(박근혜 대통령은) TIME(시간)을 교과서로 지배하는 독재자' 등이 쓰인 팻말을 들었다.

 

학생들 앞으로 경찰과 이화여대 학교지원팀 관계자 등 경호 인력이 대열을 갖춰 차례로 섰다. 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이화여대를 방문했을 때 학생들과 경찰 사이에 거센 몸싸움이 벌어진 탓인지, 앞서 30여 명의 경호 인력이 헬렌관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경찰 기동대 관계자와 이화여대 학교지원팀 관계자는 학생들에게 "큰 충돌만 일으키지 않으면 안 막습니다", "말씀드린 것 유념하셔서 하시면 됩니다"라고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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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경찰과 이화여대 학교지원팀 관계자들에게 팻말을 가린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오전 10시 15분께 올랑드 대통령 등 내빈이 탄 것으로 보이는 차량들이 지나가자, 학생들은 들고 있던 팻말을 높이 들며 "봉주르", "웰컴"을 외쳤다.

 

올랑드 대통령의 한국 방문 취재를 위해 모인 외신 기자들은 학생들의 팻말을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등 관심을 보였다.

이날 긴급 팻말 시위는 이화여대 총학생회, 학생행진, 청년하다, 노동자연대 이대모임,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 이대분회, 이화여성위원회 소속 학생들이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을 알리기 위해 벌인 것이다.

시위를 기획한 이 학교 사회과교육과 13학번 허성실씨는 "함께 행동을 추진하는 커뮤니티에서 프랑스 대통령이 방문하니 박 대통령도 동행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와 긴급 팻말 시위를 기획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동행하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가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인데, 프랑스 대통령에게 우리나라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손솔 이화여대 총학생회장은 "전날(3일) 국정화 반대 검은 옷 입기 행동을 진행했다. 앞으로 국정교과서 반대 운동을 어떻게 진행할지 논의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  유성애 이희훈 조혜지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

 

 

 

 

디디디: 여대생 100여명이 사복 경찰로 추정되는 남성 100여 명과 30분째 대치 중ㅋㅋ 전세계가 비웃겠다. 이대 학생이 사복경찰에 막혀 이대 계단을 못올라가는 상황이 우습지 아니한가.

 

gogochl: 예전 나 대학다닐때도 전경이 학교에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가끔 최루탄쏘며 진입은 했어도 금방 학생들이 몰아냈었는데,,,,,성스런 학교에 경찰이 맘대로 들어오는 현실이 어째 20년 전에 우리 대학때보다 더 나빠진거 같아서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