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U2 2016. 2. 4. 21:12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 아시아 첫 金

 

 

 

 

 

 

 

 

한국 봅슬레이의 간판으로 성장한 원윤종(31·강원도청)-서영우(25·경기도BS경기연맹)가 월드컵 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다.


원윤종-서영우는 이번 금메달 획득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오르며 한국 봅슬레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썼다.

                   

 

원윤종-서영우는 23일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2015~2016시즌 월드컵 5차 대회에서 1·2차 시기 합계 1분43초41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스위스의 리코 페테르-토마스 아므르하인과 똑같이 1·2차 합계 1분43초41을 기록해 공동 우승을 차지했다. 러시아의 알렉산더 카쟈노프-알렉세이 푸쉬카레프가 한국·스위스 팀에 0.01초 뒤진 1분43초42를 기록했다.


한국은 물론 아시아 출신이 봅슬레이 월드컵에서 금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윤종-서영우는 올시즌 월드컵 1·2·4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고, 이번 5차 대회에서는 금메달을 따내는 등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썰매종목 불모지였던 한국이 이제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노릴 수 있는 희망의 싹을 발견하게 됐다.

 

 

- 이용균

 

ⓒ 경향신문 ( http://www.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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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은 이루어진다" 봅슬레이 한국대표팀에 이어지는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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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감동적인 순간이 있을까?


지난 2009년 방송된 MBC '무한도전-봅슬레이 도전기' 편에서였다. 당시 출연진들이 뜨거운 눈물을 흘려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당시 무한도전에서는 한국 봅슬레이 팀의 열악한 환경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대중의 관심은 커녕 연습할 장소조차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무한도전 출연진은 일본 나가노에까지 가서 연습했다.


번듯한 장비도 없었다. 당시 방송에서 봅슬레이 국가 대표팀 조인호 코치는 "2, 4인승 1대씩 강원도에서 지원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이웃 나라인 일본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빌려 쓴 봅슬레이 썰매를 반납하면서 팀마다 따로 보관돼 있는 일본 봅슬레이 창고를 부러워했다.

 

이런 여건 속에서도 우리나라 선수들은 기적같은 활약을 보여줬다. 대한민국 봅슬레이 선수들은 2008년 아메리칸 컵 봅슬레이 2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했었다.


그로부터 7년이 흘렀다. 지난1월 23일(한국 시각) 캐나다 휘슬러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월드컵 5차 대회에서 정말로 기적이 일어났다. 원윤종(31·강원도청)·서영우(25·경기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선수가 세계대회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것.


꿈 같은 일이었다. 봅슬레이 경기장조차 없는 대한민국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의 썰매를 빌려 연습하면서 이뤄낸 기적이었다.


"꿈은 이루어 진다구요!"

기적 같은 일은 이들에게 또 일어났다. 한국 봅슬레이 국가 대표팀을 위한 '맞춤형 썰매'를 갖게 된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이후 한국 대표팀 선수만을 위한 썰매 개발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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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성적보다도 국내 기술로 만든 봅슬레이 성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이용 대표팀 감독은 "가속력이나 조종이 매우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현대자동차는 "여러 차례 실전 경기에서 모델을 개선할 계획"이라며 "최종 목표인 2018년 평창 올림픽 때 국가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할 수 있도록 봅슬레이 제작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봅슬레이를 만들고 있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측에 따르면 현대자동차 봅슬레이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공기저항을 최소화한 가벼운 동체, 안정된 활주를 위한 트랙에 최적화된 샤시, 선수 개개인의 체형에 맞춘 맞춤형 썰매라는 점 등이다.

 

봅슬레이는 최고 속도가 135km/h 이상(체감 속도 200Km/h)에 이르기 때문에 공기 저항이 매우 중요한 요소다. 공기 저항을 최소화시킨 동체 디자인이 중요하다. 썰매 동체는 탄소섬유로 제작해 경량화했다. 또한 특수 공법으로 가벼우면서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봅슬레이 샤시는 차량의 타이어 같은 역할을 한다. 트랙에서 최고의 활주 성능을 낼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 기술을 활용해 예측하고 이를 실제 트랙에서 검증한다.

이와함께 선수 개개인 체형에 최적화된 맞춤형 봅슬레이로 제작했다. 기존 외국산 봅슬레이 썰매로는 외국인과 체형이 다른 우리나라 선수들이 최적의 성과를 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와 관련 현대자동차는 "우리나라 선수들 체형을 3D로 스캔한 인체모형을 활용해 선수들이 가장 높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맞춤형 봅슬레이로 제작하고 있다"고 전했다.

 

 

- 신희근

 

©위키트리 ( http://www.wikitree.co.kr)

 

 

 

 

 

 

 
 
 

시사보고서

U2 2016. 1. 2. 00:10

 

 

 

 

'메르스 사태 경질' 문형표, 넉달만에 국민연금이사장 컴백

 

 

 

 

 

 

 

비난여론에도 '진실한 사람'으로 분류돼 금의환향

메르스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이 30일 결국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사실상 내정됐다. 메르스 사태 부실 대응의 책임을 지고 지난 8월 물러난지 넉달 만의 일이다.

복지부는 이날 문 전 장관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임명해달라고 청와대에 제청했다고 밝혔다.

이사장의 임기는 3년이며 경영실적에 따라 1년 단위로 연임할 수 있다. 최소한 박근혜 정부 임기내에는 500조원의 기금을 운용하는 금융시장의 '큰 손' 자리를 확보한 셈. 워낙 큰 돈을 운영하기에 국민연금 이사장은 국제사회에서 대통령급 대접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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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은 기금운용본부 공사화를 추진하기 위한 낙하산 이사장 선임을 강력하게 반대했고, 국민연금 노조도 내정설에 강력 반발해왔다. 하지만 문 전 장관은 권력에서 '진실한 사람'으로 분류되면서 결국 노른자위 자리를 차지하게 된 모양새다.

"국민 38명 죽게 만든 문형표가 국민연금이사장이라니"

더불어민주당은 31일 박근혜 대통령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 임명한 것과 관련, "후안무치한 인사의 극치"라고 질타했다.

유은혜 더민주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비난하며 "문 전 장관의 정책 실패로 38명의 국민이 생명을 잃었고, 10조원에 달하는 국민경제의 손실이 발생했다. 처벌을 해도 시원치 않을 인사에게 500조원의 기금을 관리하는 무거운 책임을 맡기겠다니 ‘혼용무도(昏庸無道)’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문 전 장관이 연금 전문가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라며 "문 전 장관은 보건복지부장관 재직 시절 국민연금을‘노후세대가 젊은 세대를 등쳐먹는 제도’로 규정하며 국민연금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더욱이 문 전 장관에게 국민연금공단을 맡긴 것이 ‘국민연금 기금운용공사’ 설립을 위한 것이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면서 "국민연금 기금운용공사 설립은 국민연금기금을 투기자본화하는 정책으로 안정적으로 관리되어야 할 국민노후자금을 허물어 금융재벌에게 갖다 바치겠다는 정책"이라고 거듭 비난했다.

 

 

​- 나혜윤 이영섭

ⓒ 뷰스앤뉴스  ( http://www.views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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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경질’ 문형표, 연금공단 이사장 취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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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등 부적절 인사 비판.. 기금운용공사 별도 설립 우려
 
문형표(59)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메르스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경질된 문 전 장관을 공단 이사장에 임명한 것은 부적절하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31일 “지난 11월3일 이래 약 두달간 후보자 공모 및 추천과 보건복지부 장관의 임명제청 등의 절차를 거쳐, 박근혜 대통령이 31일자로 문 전 장관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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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신임 이사장은 이날 오후 곧바로 취임식을 열고 임기 3년의 업무를 시작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문 전 장관을 이사장에 임명한 것은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와 지속가능성 제고 등 시급한 제도 개선과 기금운용 선진화의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문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기초연금 공약 파기 논란’의 구원투수로 2013년 12월 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됐다가 지난해 5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초동대응 부실 등을 이유로 전격 경질됐지만, 불과 4개월 만에 복지부의 핵심 기관장으로 복귀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은 최근 보도자료를 내어 “메르스 사태 장본인인 문 전 장관이 국민 노후를 책임지는 자리로 옮긴다는 건 무책임한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더욱이 현재 메르스 방역 현장을 책임졌던 공무원 10여명이 감사원 감사에 따른 중징계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노동단체 등에서는 문 이사장이 국민연금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 이사장은 장관 재임 시절 기금운용의 전문성과 수익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국민연금공단에서 기금운용본부를 떼어내 독립적인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추진한 바 있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관계자는 “그동안 자신이 사적연금주의자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국민연금 부과 방식이 세대간 도적질이라는 허황된 주장을 했던 문 전 장관이 공단의 수장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문 이사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기금운용본부의 조직 역량을 강화하고 기금운용의 전문성, 중립성 및 투명성을 제고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공사 설립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 이창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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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의 풍자도 즐기지 못하게 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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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정부의 부실한 메르스 대응을 풍자한 예능 프로그램을 잇달아 징계하면서 논란을 빚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는 문제가 그러잖아도 심각했다. 권력을 풍자하는 내용으로 유인물을 돌린 시민이 체포되거나 화백의 전시회 참여가 가로막히는 등의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이제는 가볍게 웃고 즐길 예능 프로그램마저 자유로이 만들 수 없게 된다는 건지, 정말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6월13일 <문화방송> ‘무한도전’에서 진행자 유재석은 “메르스 예방법으로는 낙타, 염소, 박쥐와 같은 동물 접촉을 피하고 낙타고기나 생낙타유를 먹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질병관리본부가 제시한 대책 가운데 한 구절을 읊었다. 이에 방심위는 유재석이 ‘중동 지역’ 낙타임을 고지하지 않았다며 정보 제공이 부정확함을 징계 사유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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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프로그램을 보면 박명수가 “낙타를 어디서 봐?”라고 곧바로 맞받았다. 낙타를 조심하고 싶어도 우리 주변에 낙타가 없다는 말로, 삼척동자도 정부의 예방대책이 비현실적임을 풍자한 것임을 알 수 있는 수준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심의하면서 ‘중요 정보를 누락시켰다’고 뉴스 기사를 심의하는 기준을 들이대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얼마 전 <한국방송>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에 대한 징계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의 허술한 메르스 대책을 풍자한 것을 두고 방심위는 “시청자에 따라 불쾌감을 느낄 소지가 있으며” “특정인의 인격권 등을 침해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라고 징계 사유를 들었다.

 

청와대나 유관 정부기관의 소수를 제외하고, 도대체 민상토론을 보고 불쾌감을 느낄 시청자가 누가 있을까. 청와대 등의 불쾌감을 시청자의 불만으로 둔갑시킨 건 해도 너무했다. 이 프로그램에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의 ‘문’ 자도 안 나왔다. 특정되지도 않은 특정인을 두고, 인격권 침해를 들먹이는 것도 우습기 짝이 없다.

 

방심위의 이런 조처로 코미디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재가 제약된다면, 권위주의 정권 때처럼 질 낮은 몸 개그나 단순한 말장난이 판을 치게 될 게 뻔하다. 더욱 걱정스러운 점은 방심위의 제재가 국민이 가볍게 웃고 즐길 작은 행복을 박탈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를 훼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풍자도 용납하지 않는 세상을 보면서, “나를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도 좋다”던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이 더 좋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결코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 사설

 

ⓒ 한겨레 ( http://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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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풍자한다고 제재, 지금이 유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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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미방위, 민상토론·무한도전 제재한 방통심의위 질타…민상토론 외압논란 풍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정부를 풍자하는 내용의 TV프로그램을 잇따라 제재하자 야당 의원들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지난 5일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은 방통심의위의 제재를 풍자하는 내용을 내보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6일 전체회의에서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과 MBC <무한도전>에 대한 방통심의위의 제재에 대해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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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방통심의위는 지난달 29일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을 풍자하는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이 특정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등 품위유지를 위반했다며 의견제시를 의결했다.

 

방통심의위는 지난 1일 MBC <무한도전>에 대해 “메르스 예방법으로 낙타, 염소, 박쥐와 같은 동물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유재석의 발언이 객관성을 위반했다며 의견제시를 의결했다. 낙타와 염소 등을 언급하며 ‘중동지역’이라고 특정하지 않아 사실과 다른 정보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유승희 새정치연합 의원은 “지난 1일 미방위 전체회의에서 개그콘서트 제재가 부적절하다고 분명히 방통심의위원장에게 말했는데, 방통심의위는 그날 <무한도전>을 제재했다. 보건복지부 지침의 비현실성에 대한 지적인데 ‘중동’ 단어가 빠졌다는 이유로 객관성을 위반했다고 보는 게 코미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승희 의원은 “이런 식으로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는 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우상호 새정치연합 의원은 “과거 전두환 정부 때 특정 배우를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게 하고 금지곡을 지정했다. 지금 방통심의위의 징계도 이처럼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병호 새정치연합 의원은 “방통심의위가 정부 비호를 자처하는 건 사실상 유신시대로 돌아가는거다. 이 문제는 국회차원에서 좀 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효종 방통심의위원장은 명백한 제재인 행정지도(의견제시)를 제재가 아니라고 밝혀 질타를 받기도 했다. 박효종 위원장은 “의견제시는 엄밀한 의미에서 제재가 아니다. 방송평가에서 패널티가 없다. 경미한 잘못에 대해 앞으로 좀 더 신중하게 방송하라는 메시지를 주는 정도”라고 말했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이 ‘민상토론’ 제재가 적절하다고 발언해 여야 간 설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박민식 의원은 “‘민상토론’을 보면 박원순 서울시장은 메르스 대처를 잘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대처를 잘못했다는 식의 내용이다. 균형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민식 의원은 “박원순 시장이 특정 의사를 가리켜 메르스를 대거 전파했다고 공개망신을 줘 그 의사가 아직도 못 일어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기자회견 이후 메르스 최전선의 의사들과 그 가족들까지 왕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우상호 의원은 “사실관계와 다르다. 의사가 회복하지 못하는 게 박원순 시장의 발언과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 입증할 수 있나. 공인이 그런식으로 발언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최민희 의원은 “‘민상토론’을 제재할 때 쟁점이 된 건 문형표 장관에 대한 인격권 침해다. 박민식 의원이 말하는 내용은 쟁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 5일 방영된 KBS <개그콘서트> ‘민상토론’에서 출연자들은 외압논란과 심의 제재를 풍자했다. 유민상이 “우리 이제 이런거 안 하면 안 되냐”라고 말하자 박영진은 “누가 하지 말라고 합니까”라고 말해 외압논란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이어 유민상이 국회의원에 대한 발언을 하자 김대성은 “형(유민상)은 지금 국회의원들로 하여금 불쾌감을 조성하는 발언을 했어. 좀 품위를 지켰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품위유지 위반이라는 제재 사유를 언급한 것이다.

 

 

- 금준경

 

 

ⓒ 미디어오늘 (http://www.mediatoday.co.kr)

 

 

 

 

 

 
 
 

시사리포트

U2 2015. 12. 7. 22:30

 

 

우토로 마을’이 유재석과 무한도전에 보내온 ‘감사 편지’

 

 

 

 

 

 

 

 

 

조선인 강제징용촌’ 찾아가 고향 사진 등 선물 배달한 ‘무도’
강경남 할머니 등 마을의 아픈 역사 재조명하며 진한 ‘울림’
우토로 주민들 “진심 담긴 선물 감사…앞으로도 관심 부탁”

 

“무한도전팀이 우토로 마을을 방문하여 지구촌동포연대(KIN) 여러분들의 진심이 담긴 선물을 받아, 이 놀라움과 기쁨을 어떻게 표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문화방송(MBC)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지난 5일 광복 70년 특집 ‘배달의 무도’ 세번째 이야기에서 일본 우토로 마을을 찾아 마지막 1세대인 강경남 할머니에게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 내용이 누리꾼들의 눈가를 촉촉하게 적신 가운데, 우토로 마을 주민회가 한국에 감사의 편지를 보내왔다.

                   

 

 

 

 

 

재외동포 도움 단체인 ‘지구촌 동포 연대’는 8일 페이스북( ▶ 바로 가기 )에서 김교일 우토로 주민회 회장이 보낸 편지를 소개했다. 우토로 마을은 일본에 남은 마지막 조선인 강제징용촌으로 1941년 교토비행장 건설 현장의 노동자 합숙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어로 적힌 편지를 보면 “(우토로 마을 주민회에서) 늘 근황을 전해드렸어야 하는데, 이번에 큰 은혜를 주셔서 감사와 함께 안부 인사를 드리게 됐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편지에는 “MBC 무한도전 취재팀이 우토로 마을을 방문해 지구촌동포연대 여러분들의 진심이 담긴 선물을 받아, 이 놀라움과 기쁨을 어떻게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그리웠던 고향의 음식과 따뜻한 선물을 잘 받았고, 주민들 모두 매우 기뻐하고 정말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이어 “강경남 어머니께서 받으신 고향의 사진을 보면서 어머니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에 그 자리를 함께한 우토로 마을 주민들 모두가 감동했다”고 밝혔다.

 

앞서 무한도전 출연자인 하하와 유재석은 방송에서 우토로 마을 1세대 중 유일한 생존자인 강경남 할머니에게 고향인 경상남도 사천군 지역을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전했다. 강 할머니는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아버지와 오빠를 찾기 위해 아홉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한평생을 살았다. 출연자들에게 고향의 모습이 담긴 앨범을 선물 받은 할머니는 “어렸을 때 왔어도 고향은 지금까지도 눈에 아른거린다”며 “이렇게 보여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편지에는 “새로운 마을 건설에 대한 기대는 물론 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우토로 마을이 없어지는 것은 매우 섭섭하다”며 “지원해주신 여러분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우토로의 역사를 제대로 남기고, 사업도 더 열심히 해나가겠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앞으로도 우토로 주민들을 위해, 우토로의 미래를 위해, 따뜻한 관심을 진심으로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번 방송을 계기로 지난해 <한겨레21>에 실린 ‘우토로를 잊지 마세요’ 보도( ▶ 바로 가기 )도 재조명되고 있다.

 

보도 내용을 보면, 우토로 마을에는 현재 200여명의 재일동포들이 살고 있다. 우토로 마을의 역사를 보면, 1987년 닛산은 우토로 땅을 제3자에게 매각했고, 소유권은 서일본식산으로 넘어갔다. 1989년 서일본식산은 주민들에게 퇴거를 요구하며 ‘토지 명도 소송’을 제기했다. 2000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퇴거 명령 확정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우토로 주민들을 외면한 건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사회에 우토로 주민들의 사연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2004년 9월부터였다. 일본 시민단체인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 회원 및 주민들이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한·중·일 거주문제 국제회의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우토로를 지켜달라’는 애끓는 호소가 지구촌동포연대 등 여러 단체를 움직였다.

 

 

-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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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 기부’ 그해 여름, 박원순·문재인이 한 일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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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우토로 마을 땅 구입을 제안하고 모금한 <한겨레21> 캠페인 결실
1세대 노인으로는 두 분만 남은 마을은 공영주택 짓기 위해 9월 철거 시작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쌓여 역사를 이룬다. 텔레비전은 역사의 지층을 곧잘 생략하고 현재의 단면만 조명하지만, 사회에서 배제돼 살아온 소수자들은 그것만으로도 고맙다.
 
지난 9월5일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재일조선인 우토로 마을 사람들의 애잔한 해피엔딩을 보여주었다. 수십 년의 힘겨운 싸움 끝에 강제퇴거 위기를 극복하고 반듯한 아파트를 기다리는 재일조선인들. 한편으로 정든 마을 건물을 떠나보내는 애잔함과 쓸쓸함.  

                   

                  

 

 

 

 

지난 8월23~24일 하하와 유재석이 경상도·전라도 음식을 싸들고 찾아가 강제퇴거 싸움을 마친 할아버지·할머니를 위로했다. 일본 교토부 우지시 이세다초 우토로 51번지.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용비행장을 짓기 위해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들이 살던 함바집이 우토로 마을의 기원이다.
 
해방 뒤 우토로 마을의 땅 주인은 군수기업인 닛산차체에서 여러 번 바뀌었고 서일본식산이 부동산 개발 계획을 세우면서 주민들은 강제퇴거 위기에 몰렸다.
 
2010년 한-일 시민사회 모금액으로 설립된 ‘우토로 민간기금재단’과 이듬해 한국 정부 지원금을 관리하는 ‘우토로 재단법인’이 우토로 땅을 구입했다.
 
두 재단이 소유한 땅은 전체 우토로 땅의 3분의 1이다. 강제퇴거 위기는 사라졌고 9월 안에 우토로 주민들이 들어가 살 공영주택 설립 공사가 시작된다. 1944년 마을에 들어온 1세대 강경남 할머니를 비롯한 재일조선인들을 보면서 유재석과 하하는 물론 텔레비전 앞에 앉은 국민들이 눈물을 훔쳤다.
 
인터뷰하다가 “날 좀 보소” 하던 할머니
 
10년 전인 2005년 5월, <한겨레21> 취재진은 우토로에 서 있었다. <무한도전>에 나온 아흔한 살 강경남 할머니는 그때에도 민요가락을 곧잘 흥얼거리는 꼬부랑 할머니였다. 밥을 먹다가도 인터뷰를 하다가도 할머니는 갑자기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하고 노래를 불렀다. 비가 오면 넘치는 하수도, 천장이 내려앉은 함바집, 방문자를 맞는 마을 앞 입간판도 10년 전과 똑같았다.
 
“우토로를 없애는 건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없애는 것이다.”

 

“우토로를 없애는 건 일본의 양심을 없애는 것이다.”

 

“우토로를 없애는 건 일본의 과거사 반성이 없는 것이다.”
 
풍경의 시간이 멈춘 사이 노인들은 세상을 떴다. 2005년 취재 당시 마을 인구 200여 명 가운데 40명이 일제시대 우토로에 들어온 1세대 노인들이었다. 지금은 강경남 할머니 등 2명만 남았다.
 
취재 직후 <한겨레21>은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을 전개했다. 땅 소유주인 이노우에 마사미를 처음으로 인터뷰했고, 그는 5억5천만엔(당시 약 55억원)에 우토로 땅을 사라고 한국 정부에 제안했다. 전문가들은 상상하지 않았던, ‘옆구리를 찌르는’ 제안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강제징용의 역사적 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사라니?
 
그러나 역발상을 해봤다. 그까이 거 사면 어때? 따져보면 한국 정부도 1965년 한-일 협정 때 강제징용된 재일조선인의 권리 구제를 소홀히 한 역사적 책임을 비켜갈 수 없었다. 이렇게 <한겨레21> 등이 제안한 모금 캠페인은 선풍을 일으켰다. 젊은 활동가들이 모인 시민단체 ‘지구촌동포연대’(KIN)는 2005년 초 우토로국제대책회의의 사무국을 맡아 주도했다. 배덕호 지구촌동포연대 대표는 지난 9월8일 “당시 모금 캠페인이 우토로 문제의 해결을 푸는 열쇠 역할을 했다”고 회상했다.

                   

 

 

 

우토로 문제가 공론화되고 해결되는 데는 숨은 공로자들이 있다. 맨 처음 우토로를 알린 건 1989년부터 활동한 일본 시민단체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과 1991년 우토로 문제를 주거권 차별 차원에서 접근해 기사를 쓴 <아시히신문>의 기자들이었다. 한국의 시민단체는 2005년 2월 지구촌동포연대가 현지 조사를 벌이면서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5년 6월 시작된 ‘우토로 살리기’ 모금 캠페인은 예상외의 호응을 불렀다. 한 주부는 남편 몰래 500만원을 쾌척했다. 남편에게 들킬까봐 익명으로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경기도 성남 돌마고 3학년10반 학생들은 지각생에게 1천원씩 벌금을 걷었다. 78번의 지각으로 7만8천원을 모았다. 당시 인터넷 쇼핑 시장에 진출한 지마켓은 결제창에 우토로 기부 코너를 만들었다. 박원순 당시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영화배우 김혜수·안성기 등 ‘우토로 희망대표 33인’이 모금 참여를 권유하는 릴레이 파도타기를 시작했다.
 
그해 8월에는 1천만원의 성금이 들어왔다. 익명을 요청한 성금의 주인공은 10년 뒤 <무한도전>의 멤버로 우토로를 방문한 유재석씨였다. 당시 <한겨레21>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유재석씨는 고사했다. 지난 9월9일 다시 한번 인터뷰를 요청하자 그는 소속사 관계자를 통해 “많은 분들이 기부를 하셨고, 제 기부가 특별히 큰 도움을 준 건 아니었을 것”이라며 정중히 사양했다. 유재석의 1천만원이 채워져 그해 8월5일 현재 모금액은 1억4838만3657원까지 치솟고 있었다(그는 지난 8월 방송차 우토로에 방문했을 때도 50만엔을 조용히 내놓고 갔다).
 
결국 문재인 비서실장의 확답
 
청와대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월급 한 달치를 보태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과의 외교 문제를 의식한 외교안보 라인에서 반대했다. 대통령의 모금 참여는 좌절됐지만, 이런 청와대의 뜻은 우토로 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던 외교통상부를 바꾸기 시작했다.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은 그해 10월25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답변에서 “일차적으로 재외동포재단 기금을 통해 지원하고, 추가 지원이 필요할 경우 예비비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교통상부 직원들은 그해 말 월급에서 갹출해 1200만원을 모아 전달했다.
 
우토로 운동은 2007년 고비를 맞았다. 외교통상부가 그해 5월 우토로 주민회에게 전화를 걸어 “토지 매입에 정부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하며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우토로 주민들은 놀랐다. 주변에서는 노무현 정부 말기가 되자, 외교통상부가 원래 입장으로 돌아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지난 9월9일 배덕호 대표가 말했다. “그 뒤 주민회가 방문해 국회에 꽃다발을 전달하며 나섰고 사회의 어른들이 움직여줬어요. 우토로긴급연석회의 형태로 박연철 변호사, 함세웅 신부, 수경 스님 등이 거의 매주 조찬모임을 하면서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인터넷 블로거들이 열심히 활동했고요. 결국 청와대 문재인 비서실장을 만나서 확답을 받아냈지요.”
 
한-일 시민사회 모금액 1억3천만엔으로 2010년 우토로 땅 2750.52㎡(약 833평)를 샀고, 이듬해에는 정부 지원금 1억7천만엔으로 3808.4㎡(약 1154평)를 추가 매입했다. 땅 매입이 완료되면서 우토로 살리기 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린다. 이듬해 우토로국제대책회의는 해산한다. 우토로 주민회는 문재인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일본의 소수자 ‘조선인’으로서 투쟁
 
그러나 여기까지는 막판의 등장인물들이다. 주인공은 처음부터 싸운 우토로에 사는 ‘재일조선인’들과 옆에서 묵묵히 함께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다. 운동의 중심에는 우토로 주민회가 있었다. 우토로 민족학교 폐쇄, 토지 및 거주권 문제, 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 미비 등과 관련해 해방 직후부터 주민들은 일본 정부와 투쟁을 벌여왔다.
 
<무한도전>은 우토로 주민들을 ‘한국인’이라고 지칭했지만, 그것은 한국인으로서 싸움은 아니었다. 1948년 남한 정부 수립 뒤 생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우토로 주민들의 정체성을 온전히 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에 건너왔다. 해방이 되고 돌아가지 못했다. 1947년 재일조선인을 외국인으로 간주하는 ‘외국인등록령’이 선포된다. 일본 국적이 박탈되고 하루아침에 외국인이 돼버린 재일조선인들은 자신의 국적란에 ‘조선’이라고 적었다.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도 창건되지 않은 때였다. 이듬해 한반도는 분단됐다. 한-일 수교가 이뤄지면서 어떤 이들은 한국 국적을 택했다. 일본 국적을 택하고 귀화한 이도 있었다. 반면 조선적을 지금까지 고수하는 이도 있다. 북한의 국민으로 생각하는 사람, 분단 조국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 재일조선인으로서 정체성을 지키려는 사람이 혼재돼 있다.
 
이를테면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는 스스로를 ‘조선인’이라고 부른다. 그는 일본어를 쓴다. 국적은 한국적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 문화적으로 ‘일본인’이지만, 소수자 ‘조선인’으로서의 삶도 겪었다. 그는 재일조선인을 “근대 국민국가의 틀로부터 내던져진 디아스포라”라고 하면서 이렇게 일갈한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말을 민족의 총칭으로 삼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이라는 호칭은 국민적 귀속을 나타내는 한정적 의미로 사용되어야 한다.”(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우토로 주민들의 투쟁은 일제시대 이후 일본에서 소수자로서 살아간 ‘조선인’으로서의 투쟁이었지, 남한의 근대공화국을 동경하는 ‘한국인’으로서의 투쟁은 아니었다. 우토로 주민들을 줄곧 옆에서 지킨 단체는 총련이었다. 2002년 총련이 주도해 고령자 복지시설인 ‘에루화’를 지었다. 미나미야마시로 동포생활센터도 우토로의 일상사를 챙겨왔다.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이 벌어지기 전 이미 총련은 100만엔의 지원금을 전달했고 그 뒤 1500만엔을 추가 지원했다. 2013년 우토로에 물난리가 났을 때 총련은 국적에 상관없이 위문금을 전달했다. 우리는 한국인을 강조하려 하지만, 우토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국적보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삶의 정체성이다. 그런 측면에서 총련이 조용히 우토로를 지켜온 점이 이해가 된다. 재일동포 사회의 한 관계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의 혐한 정서와 남한의 종북 논란이 있지 않습니까? 우토로 문제에 총련이 나오면 오히려 절호의 시빗거리를 줄 수 있으니까요. 우토로 주민들도 그런 점을 이해하고 있고요.”
 
역사기념관 건립 자금은 빠듯한데
 
우토로 주민들은 한국을 고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신들을 국민국가에 포섭하거나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는 불편해한다. 게다가 이런 시선은 일본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조선인들에게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의 사이토 마사키는 지난해 8월 열린 지구촌동포연대 포럼에서 “(일부 한국 대중매체 프로그램에서) 피해자성이 강조되면서 일본 사회에서 생활하는 소수자의 미묘한 현장에서의 문제가 고려되지 않고 있다”며 “오히려 그것은 재일한국인을 위해 일본의 세금을 쓰지 말라며 우토로 주변에서 혐오발언을 하며 어슬렁거리는 우익의 재료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우토로 마을에는 60가구 200여 명이 산다. 재일조선인 사회의 최근 추세에 따라 한국적·일본적으로 바꾼 사람이 늘었다. 현재 조선적과 일본적이 각각 10여 가구, 나머지는 한국적이다.

 

 

9월 안에 우토로 마을의 철거가 시작된다. 두 재단이 매입한 땅에 우지시가 공영주택을 짓는다. 불량주택 개선사업의 일환인 ‘마치즈쿠리(마을 만들기) 사업’이다.

 
우토로 마을에서 재일조선인을 지원하는 동포생활지원센터의 김수환 대표는 지난 9월9일 전화 통화에서 “한 동을 먼저 짓고 나중에 한 동을 짓는다. 9월 건설장비 진입을 위한 도로 확장공사에 들어가 5년 안에 완료되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자신이 들어갈 공영주택의 공사가 이뤄지는 동안 주민들은 임시 거주지로 이주한다. 

 

우토로의 옛 건물이 헐리면 기억의 장소도 사라진다. 이를 위해 우토로 주민회와 우토로국제대책회의는 모금 초기부터 ‘우토로 역사기념관’ 건립을 사업계획에 포함시켰다. 이를 위해 2012년 민간모금 잔여분 2천만엔이 우토로에 전달됐다. 소박한 단층 건물은 지을 수 있지만, 내장 공사를 하고 전시 자료를 채워넣기에는 빠듯한 액수다.

 

우토로 주민회는 ‘마치즈쿠리 사업’에 역사기념관 건립을 포함시켜달라고 우지시에 요청했다. 배덕호 대표는 “일본 정부 예산을 받으면 온전한 내용을 넣기 힘들 테고, 일본 정부 또한 혐한 정서 때문에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재일조선인과 관련한 역사관은 도쿄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건물에 있는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이 유일하다 

 
 
유재석은 10년 전부터 우토로에 기부했대요
 
 
지난 주말, 휴가차 일본 오사카에 있었어요. 회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이럴 경우에는 십중팔구, 아시죠? 기사 쓰라는 겁니다. 문화방송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우토로가 나왔다는 거예요. 하하와 유재석이 우토로 어르신들에게 고향 음식 가져가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 여행을 마치고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죠. “그럼, 우토로로 돌아갈까요?”

 

선배는 차마 가라 못했고 저는 모른 척 한국에 왔습니다만, <무한도전>을 안 본 분들을 위해 우토로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일제시대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강제징용되어 갑니다. 대다수가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군수공장에서 일했어요.
 
교토부 군용비행장 건설지역에도 조선인 노동자들이 집단 거주하며 일했지요. 조선인들은 함바집 마을에 머물렀고, 1945년 해방 이후 귀국하지 않은 사람들이 남아 자연스레 조선인 마을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우토로입니다.
 
문제는 우토로의 땅주인이 ‘닛산차체’라는 일본 기업이었다는 점이에요. 반세기 이상 조선인은 불법거주자 취급을 받았고, 소유권이 여러차례 바뀌며 재개발이 시도되면서 강제퇴거 위기에 몰렸어요. 이런 사연을 취재하러 간 게 10년 전입니다. 2005년 5월 “당장 출장 가라”는 <한겨레21> 편집장의 지시에, 들어본 일본말이라곤 ‘토토로’밖에 없는 제가 ‘비루 구다사이’(맥주 주세요)라는 말 하나 외우고 이튿날 오사카행 비행기를 탔지요.
 
야쿠자! 저를 맞이한 건 우토로의 땅주인 이노우에 마사미였어요. 꽤 힘있는 조직에 계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어렵사리 만든 인터뷰 자리에서 그분이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나, 야쿠자 아니야. 어쨌든 한국 정부가 5억5000만엔에 우토로 땅 사라.” 그까이 거 사면 어때? 역발상을 해봤어요. 시민들이 솔선수범해 모금에 나서면,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책임있게 움직일 거라고 본 거죠.
 
<한겨레21>은 6월부터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아름다운재단과 함께 ‘우토로 살리기’ 캠페인을 벌여요. 예상을 뛰어넘어 모금운동은 불타올랐습니다. 매주 금요일 마감날이면, 저는 모금액수가 담긴 엑셀 파일을 기사로 정리했지요. 그때 기사로 못 썼던 이야기가 많아요.

                   

 

 

 

지금 와서 말씀드리면, 사실 그해 8월 유재석이 1천만원을 우토로 살리기에 써달라며 기부했습니다. 거의 처음 들어온 거액이었기 때문에 흥분하고 감동하고 고마워서 인터뷰하자고 그랬지요. 유재석은 꼭 익명으로 하고 싶다며 정중히 사양했어요.

 

10년이 지났으니 인터뷰를 수락하지 않을까 싶어 지난 9일 다시 연락했는데, 소속사 관계자를 통해 “많은 분들이 참여하셨고, 제 기부가 특별히 큰 도움을 준 건 아니”라며 고사하더군요.

 

우토로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지난달 23~24일 <무한도전> 촬영 때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방송에 나오진 않았지만 유재석과 하하는 저녁 대접이 끝난 뒤에도 밤늦도록 설거지를 하고 마을회관의 카펫을 직접 갈아주는 등 예의 바르게 행동하고 갔다며 칭찬이 자자하더군요. 한 분은 저에게 귀띔을 해주셨습니다. “촬영 때엔 한마디도 없더니, 나중에 보니 개인적으로 큰돈을 남기고 갔어요.” 유재석이 또 50만엔을 조용히 기부하고 갔다나 봐요.

 
한-일 시민사회의 주도로 우토로 운동은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고 있어요. 15만명이 참가한 모금운동으로 우토로 살리기 여론이 확산되자, 2007년 한국 정부는 우토로 주민들이 땅을 매입하도록 예산 지원을 최종 결정했습니다. 2010년에 한-일 시민사회 모금액 1억3000만엔과 정부 지원금 1억7000만엔으로 2011년까지 우토로 땅 약 3분의 1을 샀습니다. 주민들은 강제퇴거 위기에서 벗어나게 됐고, 공영주택 건설공사가 이달 안에 시작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주민들이 최신 공영주택에 들어가 사는 건 좋지만, 재일조선인의 역사가 서린 역사적 공간이 사라진다는 점이에요. <무한도전>이 주민들과 마을 사진을 차곡차곡 기록해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우토로 주민회는 ‘우토로 역사관’을 짓기로 계획을 세웠는데, 2012년 추가로 전달된 시민사회 잔여모금분 3000만엔으로는 빠듯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지금 우토로에는 텔레비전을 보고 한국인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합니다. 주민들이 반갑게 맞아주고 있지만, 앞으로 계속 견학생들을 데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우토로 마을 쪽에서는 한국 시민단체인 ‘지구촌동포연대’(http://www.kin.or.kr/)를 통해 방문계획을 미리 알려주면 더욱 고맙겠다고 하네요.
 
 

-남종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