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보고서

U2 2013. 12. 7. 10:00

 

 

김석기 공항공사 사장이 일왕 생일 축하하러 간 이유는?

 

 

 

 

 

 낙하산 논란을 빚고 있는 김석기 한국공항공사 사장이 일왕 생일 축하연에 참석했다.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으로 한일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 '천황(天皇, 일왕) 탄생일 축하 소연'이라는 이름의 행사에 참석한 이유가 주목된다.

주한일본대사관은 5일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2층 크리스탈 볼룸에서 일왕 생일 축하연을 성대히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서울 주재 외교관들을 비롯해 한국 외교부 직원, 정부·공공기관 인사들도 참석했다.

 

김석기 사장 "일본에 8년간 살아서 인연 있다"

             

            

            

 

김석기 사장은 오후 7시 넘어서 연회장에 도착했다. 한국공항공사의 알파벳 약자(KAC)가 새겨진 배지를 단 그는 일본 대사관 직원 안내에 따라 벳쇼 고로(別所浩郞) 주한 일본대사 부부와 인사를 나눴다, 다른 일본인 인사들과도 일본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축하드립니다(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라고 고개 숙여 인사할 때도 있었다.

김 사장은 "일본에 8년간 살아서 인연이 있다"고 참석 이유를 설명했다. "일왕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를 바라보는 국민감정은 나쁘지 않을까"라고 묻자, "다른 건 묻지 말아 달라"며 미소 지었다. 그는 경찰청 도쿄주재관, 주오사카 총영사를 지낸 바 있다.

이명박 정부 때 경찰 요직을 두루 거쳐 'MB맨'으로 분류되는 김 사장은 '용산참사' 때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서 철거민 강경진압을 진두지휘해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를 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한 것을 두고 거센 반발이 일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공항공사와 관련해 실무적 전문성도 전혀 없는 인물이 사장으로 뽑히자 '낙하산'이라는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다.

매년 12월 열리는 일왕 생일 축하연은 몇 년 전 정치인들의 참석으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 2010년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이 참석한 데 이어 대기업들이 축하 화환을 보내 물의를 빚었다.

과거 논란 때문일까. 아키히토(明仁)의 79세 생일을 축하하는 이날 축하연에는 현직 정치인들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기업들이 보낸 축하화환도 없었다.

국내 인사들도 축하연 참석... "송년회같은 행사일 뿐"

보안도 삼엄했다. 경호원 10여 명이 수시로 로비를 돌아다니며 주변을 살폈다. 크리스탈 볼룸에서 무슨 행사가 열리는지를 소개하는 '안내문'조차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에 도착한 참석자들은 저마다 흰색 초대장을 들고 자연스레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간혹 이리저리 살피는 사람이 있으면 경호원이 다가가 "크리스탈 볼룸에 오셨어요?", "일본 대사관 행사에 오셨어요?"라고 물었다. 행사의 공식 명칭인 '천황탄생일 축하소연'이란 표현은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참석자들은 커다란 가방과 외투를 호텔 보관소에 맡기고 개인 검색대를 통과한 뒤에야 연회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주최 쪽은 초대장을 제출한 참석자들 가슴에 붉은 장미꽃 또는 하얀 장미꽃을 달아줬다.

참석자들은 벳쇼 대사 부부와 인사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연회장 입구에는 일장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렸다. 중앙에는 후지산이 그려진 대형 걸개그림이 자리했다. 단상 양 옆으로는 뷔페 음식이 마련됐다. 호텔 직원들은 호텔 곳곳을 돌아다니며 와인과 오렌지주스를 건넸다.

축하연 시작 시간인 오후 6시가 되자, 연회장은 정장 차림으로 참석한 500여 명으로 북적였다. 참석자들이 모인 곳곳에서는 일본어가 빈번히 들려왔다. 기모노 차림의 일본 여성, '육군사관학교' 생도복 차림의 젊은 일본인 남성, 정복·예복을 입고 참석한 일본 대사관 무관들도 눈에 띄었다.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는 한 일본 남성은 "확실히 역사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한국인 참석 비율이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일왕 생일 축하연에 참석한 국내 인사들도 있었다. 한덕수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태영 전 국방부 장관을 비롯해 박보균 < 중앙일보 > 대기자 등 언론계·기업 인사들이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오후 7시30분께 잠깐 들려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눴다.

수 년째 축하연에 초대를 받아 참석해왔다는 한 시민·사회단체 인사는 "일본 사람들에게는 일왕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일지 몰라도, 한국인들에게는 단순히 송년회 같은 행사"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일왕 생일을 축하한다는 게 껄끄럽지 않냐"고 묻자 "그렇다고 초대받았는데 안 올 순 없지 않냐"면서 "한일관계가 나빠지지 않으려면 '천황(일왕)'이란 부분을 예민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답했다.

벳쇼 대사는 이날 축사를 통해 "아베 총리는 한국이 일본과 기본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나라라고 말했다"며 "일한(한일)관계가 어려운 면도 있지만 대화를 거듭해 우호관계를 이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 이주영,권우성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

 

 

 

 

 댓글

 

 

jong ku p: `생일을 축하하는 축하연`과 송년회도 구분 못하는 골빈 칠푼이들. 명단 공개하고 `종일` 딱지 붙여 일본에 수출하라....

 

디알: 박근혜가 가면 욕먹으니까대신 보낸거지 뭐. 아버지에 이어 대대로 일왕에 충성하고픈데 눈치는 보이고....

 

난몰라: 나경원 생각나네...송영선이하고 나경원 자위대 기념식 갔다가 사진 찍히고 변명하고 했던기억이 남.....훗날 김석기도 한일우호 어쩌구 변명 늘어놓겠지 뭐....

 

 서민생활: 815해방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은 일본에 충성을 바친 매국노들을 기용해서 대한민국을 세웠고,항일 광복 민족세력은 빨갱이로 몰아서 숙청했지.
이승만 정부의 주축은 일본 강점탄압의 앞잽이들, 박정희 정권의 핵심 군바리들은 일본군 출신들,
박정희의 공화당이 변신한 것이 민정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그리고 오늘의 새누리당.
일본천황에게 인사드리는 것은 황홀한 영광이겠지.

 

 

 

 

 

김석기, 최하위 점수 받고 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

 

 

 

 

네티즌 “꼴찌에게 희망을, 꼴찌도 행복한 세상.. 역시 창조정부”

 

용산참사’의 진압작전을 주도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이 공사 임원추천위원회의 서류와 면접 평가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고도 한국공항공사 사장에 임명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주당 민홍철 의원이 10일 공항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사 임원추천위에서 최종 추천한 3명의 후보 중 김 전 청장은 서류심사와 면접심사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비상임이사와 외부 전문위원 7인으로 구성된 공항공사 임원추천위는 지난달 9일 서류심사에서 김 전 청장에게 5점을 준 반면, 다른 두 후보에게는 각각 6점을 매겼다.

                   

 이후 면접심사에서는 김 전 청장이 총 652점을 받은 반면, 오모 후보는 654점, 유모 후보는 658점을 받아 김 전 청장은 1‧2차 심사에서 모두 꼴찌를 받았다.

 

특히 공항공사 사장 평가의 주요 항목인 공항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비전 분야에서는 김 전 청장이 140점 만점에서 116점을 받아 2위인 오 후보(128점), 1위인 유 후보(136점)보다 많게는 20점 이상이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김 전 청장은 지난달 25일 열린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운영위원회 회의에서 최종 2인에 포함됐다. 이어 지난 4일 간단한 서면으로 진행된 국토교통부와 기재부의 주주총회에서 최종 낙점돼 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공공기관운영위는 민 의원실과의 통화에서 “임원추천위 평가 점수를 따로 참고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평가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 의원은 이와 관련 “김 전 청장은 재임 당시 용산참사 책임자로 무리한 강제진압 명령을 내려 민간인 5명과 경찰 1명을 희생시킨 장본인”이라며 “용산참사 유가족의 아픔을 폭력집단에 비유하며 자신을 정당화한 김 전 청장은 공인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전문성뿐 아니라 도덕성까지 결여된 인사를 공항공사 사장에 임명하는 것은 정실 인사 낙하산 인사”라며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김 전 청장의 사장 임용을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 측은 “서울경찰청장 출신이 사장으로 오는 게 3번째”라며 “용산참사로 국민적 신뢰가 없는 사람을 공사 사장에 굳이 앉히려는 데 전 조직원이 분노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는 출근저지 투쟁에 돌입하기로 했다.

 

민주당 김관영 대변인은 “전문성은 안중에도 없는 낙하산 인사”라며 김 전 청장이 영남대를 졸업하고 영남대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라는 점에서 영남대 전 이사장인 박근혜 대통령과의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고 밝혔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도 긴급성명을 내고 “사법적으로도 책임을 져야 할 인물을 공기업 사장으로 임명한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19일 서울시 용산 재개발 보상 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다 화재로 6명이 숨지고 20여명이 다친 사건이다. 당시 김 전 청장은 경찰의 무리한 진압에 따른 사고라는 비판이 일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참사 한 달여 만에 자진 사퇴했다.

 

한편, 김 전 청장은 공항공사에 제출한 자기소개서에 ‘용산참사’와 관련 “용산사고의 본질은 불법 폭력이다. 진압작전은 정당한 법 집행이었다. 경찰 총수에서 물러난 것은 국정의 안정적 수행과 부하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부정과 타협하지 않겠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네티즌들은 “일하는 능력보다 말 잘 듣는 충견이 대접받는 세상이네”(수상**), “평가에서 꼴찌인 김석기가 사장으로 내정되는 배후를 밝혀야한다”(hik*****), “서류심사에서 꼴찌한 김석기를 앉힌 이유가 뭐냐! 혹시 국정원 선거개입 관련 범죄자들 몰래 출국시켜줄려고?????”(OhJa******), “<꼴찌에게 희망을, 꼴찌도 행복한 세상>을 요딴식으로 구현하다니.. 창조정부는 역시 창조적이다”(dda*******)라는 등의 비난이 잇따랐다.  

 

 

- 김미란

 

 

© go발뉴스닷컴 ( http://www.gobalnews.com/) 

 

 

 

 

 

 

일제, ‘침략’이냐 ‘진출’이냐?… 즉답 못한 정 총리

 

 

 

 

교학사 교과서 ‘왜곡’ 질문에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문제”
대정부질문 야당 의원들 항의 집단퇴장… 뒤늦게 정정 답변

정홍원 국무총리가 25일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정체성이나 역사의 진실 문제는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정 총리의 발언은 일제 ‘침략’을 ‘진출’로 기술한 교학사 교과서의 역사 왜곡에 대한 견해를 묻는 과정에서 나왔다.

국정을 통할하는 총리로서 명쾌하게 밝힐 수 있는 기본적 사관(史觀)조차 답변을 회피한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향해 “전 국민 이름으로 지탄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과는 대비된다. 

 

                   

정 총리는 이날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민주당 도종환 의원의 “일제강점기 때 ‘쌀 수탈’이 맞느냐, ‘쌀 수출’이 맞느냐”는 질문에도 “용어의 부적정한 부분이 있으면 그건 앞으로 교육부에서 충분히 검토할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총리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본 입장에서 기술된 문제에도 답을 하지 않았다. 도 의원은 명성황후 시해범인 고바야카와 히데오의 회고록 <민후조락사건>이 <민비조락사건>으로 격하돼 교과서에 수록돼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 ‘당시 시행된 정책은 전부 민비의 계책이었다. 근본적으로 화근을 제거하고자 (암살을) 도모한 것’이란 (시해범 입장에서 서술한) 내용이 있다”며 “이게 제대로 된 역사교육인가”라고 물었다. 정 총리는 “역사교과서에 오류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교육부에서 시정을 시키는 절차를 밟고 있다. 8종 교과서 모두에 오류가 다 있고 전반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총리의 이 같은 발언에 야당 의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대한민국 총리가 아니다” “친일 총리 물러나라”는 야유까지 나왔다. 정 총리는 “질문 내용을 사전에 원고를 주지 않아서 충분히 비교·검토를 못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총리 태도에 항의한 뒤 집단퇴장하면서 본회의가 정회하는 등 파행을 빚었다.

오후 들어 강창희 국회의장이 “국무총리는 정부를 대표해 답변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는 만큼 의원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해주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회의는 속개됐다.

정 총리는 “질문 원고를 미리 받지 못해서 답변을 못 드렸다”며 “충실한 답변을 못 드린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제 침략, 명성황후 시해 등의 평가를 원고를 사전에 받지 못해 답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 총리는 유감표명 후 이어진 민주당 최민희 의원 질의에는 명쾌하게 답변했다. “(일제의) 침략이냐, 진출이냐”는 질문에 곧바로 “침략이다”라고 답했다. “(일제의) 학살이냐, 소탕이냐”는 물음에도 “학살한 것”이라고 했다. 또 “명성황후 시해가 만행인가 아닌가”라고 묻자 “만행이다”라고 말했다

 

 

- 정환보 구교형

 

 

ⓒ 경향신문 ( http://www.khan.co.kr/)

 

 

 

 

 

 

"朴대통령, 교학사 교과서로 유신 명예회복 시도?"

 

 

 

 

"5.16과 유신 불가피성 가르치려는 정치적 선택"    보도일자 : 2013.10.12

 

 유은혜 민주당 의원은 10일 교학서 역사교과서 파동과 관련, "박정희 전 대통령의 끊이지 않는 친일 논란과 유신독재의 명예회복을 시도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유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끌고 가는 중심에 대통령의 뜻이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내용 편향은 차치하고 사실 관계 오류만 수백가지인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 공정하고 객관적인 검정 절차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비판 여론이 커지자 교육부는 규정까지 어겨가며 수정할 기회를 줬다"며 "친일행위를 미화하고 5.16과 유신 독재는 불가피했다는 것을 학교에서 가르치려는 집요한 시도에 날개를 달아주려는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다"고 거듭 박 대통령을 압박했다.

그는 이어 "국회에서조차 검정 과정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인할 기회를 원천 봉쇄했다. 교육부는 일체의 자료요청 요구에 응하지 않고, 검정기준에 따라 심의한 채점표도, 누가 어떻게 수정 보완하고 잇는지도 비밀에 부쳐졌다. 새누리당은 막무가내로 국감증인 채택을 거부한다"며 "이 모든 일이 자격미달 불량품 교학사 교과서를 구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아니면 무엇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한 "박근혜 대통령은 유영익 국사편찬위장 임명을 강행했다"며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보다 교육적 중립성이 강력히 요구되는 기관장에 학계의 보편상식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인사를 낙점한 것은 임명권자 특별한 의지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질타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작금의 사태가 친일 독재에서 자유롭지 못한 특정 정치 세력이 역사적 정통성과 도덕성, 정당성 강화 수순이라면 결코 용서받지 못할 범죄"라며 "3일후가 국감인데 증인채택도 못한채 어떻게 국감을 하자는 건가"라며 교학사 필진 증인채택 등을 막고 있는 새누리당을 질타했다.

 

 

- 박정엽

 

 

ⓒ 뷰스앤뉴스  ( http://www.viewsnnews.com/)

 

 

 

 

 

 

박정희 '은밀한 과거'는 어떻게 비밀이 됐나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주제는 친일파다. <편집자>

프레시안 : 1949년 이승만 정부가 반민특위를 힘으로 눌렀다. 그렇게 수면 아래에 묻히는 듯했던 친일 청산 문제를 되살린 인물이 임종국이다. 임종국이 쓴 <친일문학론>은 친일 문제 연구에서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꼽힌다.

                             

 서중석 : (그 책이) 1966년에 나왔다. 1967년에 내가 대학에 들어갔는데, 그 무렵 그 책을 우연히 샀다. 그 시기에 친일파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쨌건) 이 책이 집에서 없어졌다.

 

그런데 1970년대 들어 이 책을 꼭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신 체제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였다. <친일문학론>에서 봤던 일제 말 친일파의 논리와 유신 체제의 논리에 흡사한 게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구해야겠다' 해서 청계천을 두 번 이상 이 잡듯이 뒤졌다. 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그 책을 구하러 다닐 때 얘기를 들었다. '처음에 <친일문학론>이 나왔을 때 그것(친일 행위)과 관련된 자들이 순식간에 책을 사버렸다. 그래서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 또 이 책이 그다음에 못 나오게 돼 있다.' 사실 1980년대에도 이 책은 금서 목록에 들어 있었다. 그만큼 친일파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는 걸 친일파, 극우 반공 세력이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건 뭘 얘기하느냐면, (1949년) 반민법 파동 이후 한국인들의 머릿속에서 친일파 문제가 지워지도록, 친일파 문제를 다시는 거론하지 않도록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극히 일부 학계를 제외하고는, 극단적인 반공 체제가 그렇게 가도록 한 것이었다.

하여튼 언제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6월항쟁 이전에 <친일문학론>을 다시 구했다. 다시 한 번 세밀하게 정독하고 노트에 주요 내용을 옮겨놨던 게 기억난다.

프레시안 : 앞에서, 6월항쟁 때까지 친일 문제가 거의 거론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서중석 : 친일파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친일문학론> 이외에도) 김대상이라는 분이 친일파 문제에 대해 상당히 좋은 글을 썼다. 반민법 파동에 대한 연구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70년대부터 몇몇 비판적인 학자들 사이에서 '이렇게까지 잘못된 독재 체제가 들어선 건 해방 후 친일파 처단이 안 됐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1979년에 (1권이) 나온 <해방 전후사의 인식>에서도 친일파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졌다.

이것들 말고는, 친일파에 관한 연구가 6월항쟁 이전엔 별반 없었다. <친일문학론>이 나오기 전엔 (제대로 된 연구가) 없었다고 얘기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친일파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많은 국민에게 이 문제가 알려진 건 6월항쟁 이후다.

 

친일 청산 문제 되살린 임종국의 역작 <친일문학론>

프레시안 : 극우 반공 체제가 사실상 입을 틀어막은 셈이다.

서중석 : 그러다 보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일어나고 그랬다. 예컨대 18년, 그것도 우리 현대사에서 제일 가운데 토막이라고 볼 수 있는 시기를 지배한 박정희 같은 분(과 관련해서)도 그랬다. (생전에) 박정희의 전력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1963년 대통령 선거 때 윤보선 후보가 '(박정희 후보의) 사상의 전력이 의심스럽다'고 한 거다. '박정희 후보가 (1948년에 발생한) 여순사건과 관련이 있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고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당시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그러나 사실 그때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다. 왜냐면 <동아일보>가 (박정희와) 여순사건 관련 기사를 호외로 냈는데, 그 호외가 거의 돌지 못했다. 특수 기관에서 (대부분) 압수했다고 그런다.

박정희는 해방 후 군 내부의 남로당 프락치였고 그중에서도 핵심 위치에 있었다. 그 점이 중요했던 건데, 내가 여기서 문제 삼는 건 윤보선 후보 쪽에서 그 중요한 대선에서조차 그런 정보를 몰랐다는 것이다. 다만 (박정희가) 여순사건 직후에 재판을 받았다고 하니까 여순사건과 관련된 것 아니냐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여순사건에 직접 관련된 것이 아니라, 여순사건 후 진행된 숙군 과정에서 남로당 프락치라는 사실이 드러나 예편을 당했다. <편집자>)

작년 대선 때 '박정희가 일본 군인이던 시절 쓴 이름이 다카키 마사오였다'는 얘기가 TV 토론에서 나왔다. (박정희의 친일 전력이 거론된 지 적잖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때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듣고 놀랐다'는 사람도 꽤 있었다고 하더라. 친일파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쉬쉬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박정희처럼 중요한 인물이 일제 때 무슨 일을 했는지, 그 사람이 어떻게 창씨개명을 했는지 잘 모른다는 건 참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프레시안 : 친일 행적을 입증할 자료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 것과도 관련 있어 보인다.

서중석 : 그렇다. 친일파 관련 자료 문제가 얼마나 풀기 어려운가 하는 건, 1950∼1970년대 연구와 관련해 얘기할 것들이 많이 있다. (예를 하나 들면) <친일인명사전>이 나올 무렵이었다. 그때 박정희 문제와 관련해 민족문제연구소가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 시기에 특별한 문서가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 재판이 어떻게 됐을까'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얘기냐면, 그 재판이 진행되던 중 박정희가 만주국 군관으로 받아달라며 혈서를 썼다는 '혈서 군관 지원'이란 제목의 <만주신문>(1939년 3월 31일 자) 기사가 공개됐다. 박정희가 '천황한테 진충보국하겠다'며 만주군관학교 입학을 허락해달라고 하지만, 처음엔 허가가 안 났다. 그래서 다시 지원하면서 혈서를 쓴 것이다.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하겠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라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 자료가 공개되면서 민족문제연구소에 유리해졌다. <친일인명사전>이 (무사히) 나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9년 <친일인명사전> 발간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는 <친일인명사전>에 부친의 이름을 싣는 것과 사전을 배포하는 것을 금지해달라며 가처분신청을 냈다. 그 후 박 전 대통령의 친일 행적을 더욱 명확하게 보여주는 <만주신문> 자료가 공개됐다. 법원은 그해 11월 박 씨의 신청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편집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2005.5.31.∼2009.11.30.)가 (활발히) 활동하던 때에도 박정희 관련 문서를 찾으려고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연변을 포함한 만주 쪽으로 많이 수소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당시엔 이 <만주신문> 자료를 끝내 못 찾았었다.

하여튼 친일파에 관한 자료가 1980년대까지도 참 적었다. 친일파에 대해 연구하거나 친일파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 요소 중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친일파 연구의 어려움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친일문학론>의 우여곡절이다.

 

친일 문제 틀어막은 사회, 비밀 아닌 비밀이 된 박정희의 은밀한 과거

프레시안 : 지금까지 이야기한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은밀한 과거'는 오랫동안 비밀 아닌 비밀로 유지됐다. 다른 문제를 짚어봤으면 한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 좌절을 나치 협력자를 단호히 처단한 프랑스와 대조하는 경우가 적잖다.

서중석 : 나치 협력으로 단죄나 비판의 대상이 된 프랑스 사람이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나치 협력자 숙정 조치에 관련된 프랑스인은 150만∼200만 명에 달한다. 주섭일, 프랑스의 나치 협력자 대숙청, <역사비평> 1995년 봄호. <편집자>) 15만 명 이상이 정식 재판소에서 사형이나 각종 징역형을 받았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도 나치 협력 문제로 각각 5만 건 이상의 징역형 판결이 내려졌다. 덴마크에서도 징역형을 받은 사람이 1만 명이 넘는다. 

 

이처럼 유럽에선 나치 협력자에 대한 처단이 제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중요한 역사적 과제였다. 거기에 비해 한국은 제대로 안된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도 잘못된 방식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게 큰 문제다.

프레시안 : 이와 관련, 35년간 식민 지배를 당한 한국에선 독일에 점령된 기간이 4년밖에 안 되는 프랑스처럼 하기 어려웠다는 주장도 있다.

 

           

서중석 : 그렇지 않다. 두 가지를 얘기할 수 있다. 일제 지배 기간이 길었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친일파가 언제 대거 생겨나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말 매국 행위자들은 숫자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1930대 전반기까지 독립 운동을 탄압하고 민중을 감시하는 악질적 행위를 했다고 판단되는 자들도 그렇게 많지 않다.

 

친일파가 언제 대량으로 생겨나는가 하면,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시 체제가 강화되고 일제의 군국주의 침략 전쟁이 아주 거세지면서다. 태평양전쟁에 돌입하면서 친일파 문제가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문제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이 문제가) 특히 심각했던 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이 나치에게 당했던 것과 거의 같은 시기다. 이 점을 우선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자 서중석의 진단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 "<조선> 말대로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빨갱이"




친일파, 전범 뒤에 숨어 책임 회피할 처지 아니다

프레시안 : 다른 하나는 무엇인가.

서중석 :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나치 협력자들은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일본 전범들은 도쿄 재판을 받게 된다. 그에 더해 유럽 각국과 중국 등에서 전쟁 협력자에 대한 재판과 처형이 이뤄진다.

뉘른베르크 재판이나 도쿄 재판 같은 건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그전엔 전쟁에 진 나라가 배상해야 한다는 식이었다. (전범 재판에서) 인도(人道)에 반하는 죄를 처단해야 한다고 한 건 새로운 개념이었다. 그만큼 인류가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자들처럼 비인도적 행위를 저지른 세력이 다시는 발호하지 않도록 처단해야 한다는 것이 인류사의 방향이었다.

일제 말 친일파에게도 그런 면이 있었다. 공출, 징용, 학병 같은 것에 한국인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해야 한다고 (친일파가) 한 것 자체가 전쟁에 적극 협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제의 침략 전쟁을 적극 옹호하는 글을 쓴 것 등도 나치 전범이나 일본 군국주의 전범과 마찬가지(로 인도에 반하는) 행위를 저지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전범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할 처지가 아니라는 이야기로 들린다.

서중석 : 그렇다. 그에 더해 일제 말 친일파는 도저히 씻으려야 씻을 수 없는 악질적인 행위를 했다. '민족의식을 말살해야 한다. 한국인은 영원히 일본인이 돼야 한다'며 황국 신민화 운동을 여러 형태로 펼치지 않았나. 한국인 상당수가 거기에 가세했다. 이건 그 이전 친일 행위하고도 다르다. 예컨대 1910~1920년에는 '민족의식을 완전히 말살해 일본인이 돼야 한다'는 주장까지는 안 했다. 그런데 일제 말엔 그렇지 않았다. 이걸 중시해야 한다.

그래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일제 말 황국 신민화 운동을 한 자, 군국주의 침략 전쟁 찬양 활동에 가담한 자들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던 거다. 그 수가 굉장히 많다. 중일전쟁 이전 시기의 것을 근거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숫자에 못지않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한국전쟁, 첫 번째 마당] "공산군 물리친 이승만의 공? 잘한 게 없다"

[한국전쟁, 두 번째 마당] "북한, 전면전은 못할 것…한국전쟁 공포 때문"
[한국전쟁, 세 번째 마당] 박정희 살린 6.25? "전쟁 덕 톡톡히 봤다"
[친일파, 첫 번째 마당] "뉴라이트·이승만, '용서받지 못할 자' 비호"


 

 

/김덕련, 최하얀  

 

 

프레시안 ( http://www.pressian.com/)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전쟁’ 역사왜곡?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역사전쟁'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선 기간 새누리당은 외신 기자들에게 '독재자의 딸'이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 달라는 문서를 전달했다. 한국의 많은 외신 기자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재자인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반발했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논란은 되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15일자 5면에 <원로들이 우려한 좌파의 인터넷 다큐 '백년전쟁'>이라는 기사를 냈다. 친일파 청산운동을 하는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를 '좌파'라고 규정하고, 이들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백년전쟁'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백년전쟁'은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다큐멘터리로 현재 유튜브 조회 수가 200만건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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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에 따르면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국가 원로급 인사 12명과 오찬을 함께 했다. 박 대통령의 오른쪽에 앉았던 이인호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전 러시아 대사)은 박 대통령에게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일을 많이 왜곡해서 다루고 있다"며 "이런 역사 왜곡도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그런 일이 있었나요?'라고 일일이 메모하며 경청한 뒤 '잘 살펴보겠다'고 답했다고 한다"고 보도했다. 이어 조선일보는 "'백년전쟁'은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을 주관해 작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공개한 좌파의 영상물"이라며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동아일보의 자매지인 신동아 3월호도 <역사 다큐 '백년전쟁'의 이승만 죽이기>라는 기사에서 "역사를 왜곡해 친일파로 몰고, 사진을 합성해 '플레이보이'로 비하했다"고 보도했다. 신동아는 "그들은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세력을 친일파로 규정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사건을 만들어냈다"면서 "친일이라는 좁은 시각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어떻게 한국 근현대사를 왜곡했는지 추적했다"고 전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청산운동을 하는 단체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이를 연구하는 연구소가 아니기 때문에 '좌파'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조선일보, 신동아, 이인호 이사장이 민족문제연구소의 활동이 불편한 이유가 뭘까.
 
만약 이들의 불편함의 배경에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백년전쟁 포스터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뒤에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의 얼굴이 있다. 널리 알려지다시피 정부 산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2009년 방 전 사장과 김성수 전 동아일보 사장을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결정한 바 있다. 
 
또한 박 대통령에게 고언(?)을 한 이인호 이사장의 친할아버지(이명세)도 1000여 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에 속해 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 따르면 이명세씨는 일제 식민지 시절 조선유도연합회 상임이사의 자격으로 지방을 돌아다니며 일제의 침략전쟁에 부응하는 시국강연을 했다. 그리고 그는 조선유도연합회의 기관지 '유도(儒道)'에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유교를 통한 황국신민의 본분을 다하자는 것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동아공영을 만들자는 내용의 논설과 한시를 게재했다. 
 
방응모, 김성수, 이명세, 이 세 사람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가 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의 '백년전쟁' 비판이 조상의 친일행적을 무의식적으로 변명하기 위해 친일청산운동단체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이 이사장은 2004년 조선일보에 실린 대담에서 '친일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야 할까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잘못된 과거를 분명히 알려줄 필요는 있지 않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물론이지요. 역사학자들이 친일청산 문제를 연구해 오고 있는데, 학자들에게 맡겨둬야 합니다."
 
친일 문제청산은 물론이고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바라보는 관점과 평가가 학술적으로 논쟁거리가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학자들에게 맡겨두자던 이 이사장이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국가 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 같다"며 정부차원의 대책을 요청한 저의는 무엇인가.
 
오히려 이명박 정부 시절 일어났던 역사왜곡 논란처럼 이승만, 박정희 등 군사독재시절에 대한 재평가를 하자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인호 이사장은 이명박 정부 초기 '광복절을 건국일로 제정하자'는 운동을 펼친 '건국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이 이사장은 당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백범 김구의 얼굴을 고액권 화폐에 새기는 것에 대해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끝나야할 분이다. 살아 생전 대한민국 체제에 대해 반대한 사람을 어떻게 대한민국과 결부시킬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연좌제 차원으로 이들의 주장을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똑같이 할아버지가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홍영표 민주통합당 의원의 활동을 보자. 홍 의원은 최근 "총선 과정에서 가족사를 알게 됐다"며 "조부님에 대해서는 항상 역사와 국민 앞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어 홍 의원은 독립유공자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고, 공청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할아버지의 활동을 사죄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조선일보 보도에 이어 뉴데일리는 15일 대통령과 이 이사장의 대화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을 전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예민한 문제다. 대통령도 '잘 살펴보겠다'고 대답했고 대통합을 새 정부의 최대 과제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도 어떠한 지침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보수 인사가 불을 지피면, 언론이 부채질을 하고, 이에 호응하듯 정부가 "역사 왜곡을 엄벌하겠다"며 친일과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주장을 사전에 차단하고, 역사 교과서를 수정하는 그림이 연상되는 것은 과도한 상상력 때문일까. 
 
부디 이 시나리오가 기자의 엉뚱한 상상으로만 남길 바라며 지난 2011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할아버지의 친일행위를 공개적으로 사죄한 윤석윤씨의 글을 박 대통령과 조선일보, 신동아 그리고 이 이사장에게 보여주고 싶다. 국민들은 아직 '다카키 마사오'와 친일파와 군사독재를 기억하고 있다. 
 
"해방 후에 반민특위를 통해서 친일파들을 청산하지 않은 것이 역사의 치명적 약점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많은 친일인사들이 해방된 새로운 정부의 공직에 일하면서 과거 친일행위에 대한 사죄와 반성도 하지 않고 그것은 과거의 이야기이고 자꾸 그런 것을 들춰내어 왜 갈등을 조장하느냐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그들을 보면서, 그것이 지금의 남남갈등의 뿌리라고 생각하는 나, 친일파와 그의 자손들은 치부한 재산으로 호의호식하고, 공부하고, 성공하고 해방 후 사업가, 정치가, 공직자로서 활동하였는데, 독립운동을 하셨던 당사자들이나 후손들은 춥고 배고프고, 공부도 못하고 어렵게 살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마다 ‘이런 개같은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분개했던 나였는데 오늘 내가 친일파의 후손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시느라 수고하신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국민과 역사 앞에 그리고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혹은 고생하신 많은 분들과 그들의 자녀분들에게 친일파였던 할아버지를 대신해 한 친일파의 손자가 가슴깊이 사죄드린다!"
 
 
- 김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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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기록

U2 2010. 1. 13. 17:18

국치 100년 망각 100년

 

 

 

 

 

중국 당나라 때 귀주 땅에는 당나귀가 없었다. 어떤 사람이 당나귀 한 마리를 구입해 산기슭에서 풀을 뜯게 했더니 호랑이도 감히 범접을 못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당나귀의 재주라고는 큰 울음과 뒷발 차기뿐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호랑이는 번개 같이 달려들어 당나귀를 잡아먹어 버렸다.

 

             

                        

 

임강의 한 사람이 사냥을 나가 사슴 새끼를 잡아왔다. 새끼 사슴에 달려드는 개들에게 겁을 주고 함께 놀게 하니 이내 친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밖으로 나간 사슴은 이웃집 개들에게 장난을 걸다 먹잇감이 되고 말았다. 사슴은 죽을 때까지 왜 이런 사단이 났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영주 땅에 사는 어떤 이는 쥐를 해의 신이라 여겨 사랑했다. 고양이와 개를 기르지 않고 종들에게 쥐를 잡지 못하게 하니 창고와 부엌은 쥐들의 세상이 됐다. 동네 쥐들까지 몰려들어 밤이건 낮이건 방자하게 행동했다. 그러던 중 새로 이사온 사람이 문을 닫은 채 쥐구멍에 물을 부어 쥐잡기에 나서니 죽은 쥐가 언덕을 이뤘다.

 

귀주의 당나귀, 임강의 사슴, 영주의 쥐라는 이름의 이른바 삼계(三戒)의 우화이다. 당송 산문8대가 중 한 사람인 유종원이 졸렬한 기량을 함부로 드러내거나 본분을 망각한 행동들을 경계하기 위해 만든 이야기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국치 100년을 맞은 한국의 상황과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불과 100년 전에 노예국으로 전락했던 치욕을 까맣게 잊고 있기 때문이다. 일왕의 방한을 추진하는 정부의 처사는 망각의 극치를 달린다. 오죽했으면 국가보훈처장이 안중근 의사 유해문제를 빌미로 일왕 방한을 반대한다고 정면 반박했겠는가. 국치 100년이 망각의 100년이 되어선 곤란한 일이다.

 

불과 얼마 전에 강제징용 노동자의 연금으로 99엔을 지불키로 했던 일본이다. 그들의 오만과 안하무인은 우리의 망각 습성과 무관치 않다. 위안부 강제동원과 관련해 모레 한국과 일본에서 900회째 집회가 열린다. 역사의 질곡은 아직도 진행형인데 진정한 과거사 청산도 없이 화해하자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반복되는 역사의 흐름에서 망각의 죄는 적지 않다. 적어도 임강의 사슴꼴은 되지 말아야 한다.

 


- 박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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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기록

U2 2009. 10. 27. 14:55

경술국치 100년의 과제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이다. 안 의사가 순국한 중국 뤼순을 비롯해 의거 장소인 하얼빈, 그리고 국내에서도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특히 올해에는 다른 해와 달리 의거뿐 아니라 사상으로 범위가 확대되면서 비로소 안 의사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안 의사가 목숨을 바쳐 막으려 했던 것이 무엇인가. 바로 ‘국치’(國恥)다. 안 의사가 지켜려 했던 조국은 의거 이듬해인 1910년 8월29일 일제에 의해 국권을 강탈당했다.

 

안 의사의 뜻을 오늘날 온전히 되살리려 한다면 마땅히 경술년 국치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도 국치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소홀하다. 내년으로 경술국치 100년을 맞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기껏해야 일부 역사학자들과 언론이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청와대가 내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것을 ‘한일합방 후 100년래 쾌거’라고 평가하고, 일본 왕의 방한을 초청한 것이 우리 사회의 경술국치에 대한 무의식과 무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G20 회의 유치가 아무리 의미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 역사의 단절을 가져오고 민족의 자존심을 뿌리째 뽑아버렸던 경술국치를 거론하면서 ‘쾌거’라고 할 수 있는가.

일왕 초청, 과거사 매듭 뒤에나

천박하고 경망스럽기 그지없다. 일왕 초청도 마찬가지다. 일왕 방한은 일본이 진정으로 과거사를 매듭짓겠다고 결심한 뒤 스스로 추진해야 한다. 일본의 ‘신중 검토’ 방침으로 이대통령은 망신을 당한 꼴이다.

우리가 그동안 경술국치를 역사의 서랍 속에 넣어 두고 푸대접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치욕스러운 날을 누가 입에 올리고 싶겠는가. 그러나 경술국치는 우리에게 너무 중요한 사건이다. 경술국치로 인해 우리 역사가 단절되고 민족은 타민족의 노예가 됐다. 또 오늘날 남북 분단의 뿌리도 결국 경술국치에 있지 않은가. 경술국치 극복을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답을 얻을 수 있다.

경술국치 극복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한·일관계다. 우리는 지금까지 역사적 진실 규명과 사죄에 초점을 맞추어 왔다. 반면 일본은 매듭과 새 출발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양국 사이의 시각 차이가 분명하다. 한·일 양국의 전문가들이 내년 경술국치 100년에 공동성명 채택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현격한 시각차 때문에 효과 있는 내용이 담기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우리 내부의 문제다. 광복 60년을 넘었지만 우리는 지금껏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일제의 잔재를 느낀다. 여전히 친일인사 문제가 거론되는 것은 일제강점이 남긴 상처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준다. 또 일본의 침략에 굴복했던 100년 전 우리의 모습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경술국치를 극복하는 길은 물론 쉽지 않다. 공동성명 발표와 같은 어쭙잖은 일회성 행사로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미봉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봉과 눈속임으로 일관하다가는 미로를 헤맬 뿐이다. 우리가 경술국치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정면으로 맞서는 것밖에 없다. 그래야 진정한 용서와 화해가 가능하다.

국치 극복은 역사 되찾는 일

몽양 여운형의 동생 여운홍이 중학교 3학년에 겪었던 경술국치일을 회상하며 1950년대 쓴 글의 일부분이다.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구슬피 내리는 가을비는 우리들의 눈물처럼 삼천리 강산을 적셨다. 조간신문에 합방조칙이 발표되고 거리에는 그 망국의 치욕문이 붙었다. 아침밥도 못 먹고 학생들이 많이 기숙하던 대동기숙사(당시 서울 안국동 로터리 소재)를 찾아갔다. 우리들은 서로 붙들고 종일 통곡했다. 눈이 붓고 목이 쉬도록 울었다.’

당시 여운홍과 같은 학생뿐 아니라 민족, 그리고 지하의 안 의사마저 울었을 터이다. 이제라도 경술국치를 역사의 서랍 속에서 꺼내어 본격적으로 담금질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안 의사 재조명 열기가 경술국치 극복으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 이승철 

 

 

 

 경향칼럼 ( http://www.kha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