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들/단편·장편 소설

Genie 2013. 6. 26. 18:51

 

그녀와 함께 있으면 전혀 다른 새로운 형상의 인간이 되어 한껏 부풀고 들뜬 설렘을 주체하지 못해 마냥 수줍고 흥분된 사춘기 소년처럼 하지만 솔직히 그런 아름다운 추억은 전혀 부재했다. 단지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로맨틱한 장면들이 무척이나 부러워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으면 하는 간절했던 바람들이 언제부턴가 마치 실제로 내게 있었던 추억처럼 각인되어 이제는 자연스러운 과거의 한 부분마냥 자리잡고 있었다. – 행복한 황홀감으로 떨려왔다.

 

오직 그녀에게만 푹 빠져 있다 보니 평소와는 달리 논리적 사고는 홀연히 사라지고 애틋한 감성만 살아 움직여 주의가 산만해지면서 덤벙거렸고 결국 두 가지 주요한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매일 다니던 길도 다음날이면 헷갈려 엉뚱한 길로 잘못 들어서서 헤매기 일쑤인 지독한 길치라는 사실과 낯선 이방인들이 사는 한적한 시골동네인 오와즈(Oise) 강을 따라 3Km를 걸어 호텔을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낭만과 현실 사이엔 늘상 어느 정도의 괴리감이 존재해서 처음 얼마간은 간간이 마주치는 근사한 말을 타고 유유히 돌아다니는 현지인들과 가벼이 인사를 나누며 초록의 울창한 나무들이 무성하게 늘어선 오아즈 강가의 정취에 심취해서 중간중간 고흐를 불러내 낭만적인 즉흥시도 읊어주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수풀에서는 진한 애무도 서슴지 않으며 달콤하고 신나는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들어선 건지, 우리가 예상했던 3Km는 더 이상 로맨틱한 짤막한 거리가 아니었고 서서히 지쳐가는 그녀 표정을 관찰하며 길을 물어볼 누군가를 애타게 찾아 두리번거리면서 정말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시골길을 터벅터벅 거니는 신세에 이르게 되었다. 혼자하는 여행이라면 그냥 수풀이나 한적한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워도 무관했지만 아야꼬가 곁에 있는데 절대로 그럴 수는 없었다.

 

당황을 하면 순간적으로 심장박동이 가파르게 빨라지면서 용암같이 뜨거운 열기가 뇌를 점령해 후물거리는 혼미한 정신으로 몽롱한 상태로 빠져들었다. 행여 내 안에 혼재된 다른 정체성이 튀어나오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이 엄습했고 어떻게 해서든 정갈하게 정신을 차리고자 노력하며 애써 침착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다행히도 자동차가 대기중인 샛길이 눈에 들어왔다.

 

아야꼬 역시 내심 걱정이 되었던지 선뜻 , 저기로 들어가 볼까,” 하고 말을 꺼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샛길 안쪽으로 아담한 전원식 주택이 보였고 그녀를 모퉁이에 세워놓고 잰 걸음으로 정면으로 보이는 집을 향해 걸어갔다. 대문이 활짝 열려있는 정원에는 하얀 바탕에 검정색 털이 위풍당당하게 난 큼직한 시베리언 허스키(Siberian Husky)로 보이는 개 한 마리가 묶여있었고 낯선 이방인의 침입을 눈치챘는지 엄청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듣고는 중년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프랑스 아줌마가 밖으로 나왔다.

 

서투른 불어로 어줍게 인사말을 하고는 단도직입적으로 호텔로 가는 길을 물어보았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친절하게도 정원의자에 앉으라고 권하고는 시원한 음료수 한잔을 가져다 주었다. 아마도 동양의 젊은 사내가 길을 잃고 헤매는 모습이 무척 안되보였는지 모르겠다. 팜플렛의 지도와 호텔이름을 확인하더니 한참 길을 잘못 들었다고 하며 지금 우리가 있는 곳과 호텔이 있는 장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유창하진 않았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한 영어로 차분히 설명을 해주었다.

 

난감해하며 실망하는 표정이 역력하게 드러났는지 간혹 여행객들이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다 간다면서 괜찮다면 오늘밤 여기서 지내도 된다고 했다. 혹시 잘못 들은게 아닌가 싶어 조심스레 재차 확인을 했고 아줌마는 흔쾌히 내를 데리고 안채로 들어가더니 2층에 있는 빈 방 하나를 보여주었다. 아담한 사이즈의 침대와 TV 등 웬만한 가구들이 완비되어있었다. 원래 아들이 쓰던 방인데 다른 도시에 있는 대학에 입학함에 따라 평상시에는 비워둔다고 했고 감사하다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동행자가 있다는 설명을 드렸고 괜찮다는 승낙과 함께 내심 얼마를 드려야 할지 몰라 주춤하며 망설이고 있는데 고맙게도 먼저 금액을 제시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불안해하고 있을 아야꼬를 안심시키기 위해 급하게 집을 나서서 그녀가 있는 곳을 향해 거의 뛰다시피 달려갔다. 그녀 역시 무척 신기해하며 좋아했다. 프랑스 가정집에서 - 그것도 고흐가 말년을 보냈고 또 그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오베르 마을에서 - 하룻밤을 보낸다는 건 왠지 뜻하지 않은 행운처럼 느껴졌다.

 

우린 서둘러 짐을 내려놓고 오르베 마을로 가는 길을 정확하게 묻고는 아주 홀가분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고흐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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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생소한 길을 거닐수록

마음은 투명해져

사방으로 흩어지던 정서들이

정갈하게

그네 하나로 모아진다.

 

광적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권총으로 자살을 했다는 사실조차

 

우리네 사랑 앞에서는

로맨틱한 감성이 되어

 

별 하나에 시를 쓰던

어느 시인처럼

 

고흐를 불러내

아름다운 사랑노랠 불러댄다.

 

               - 오와즈(Oise)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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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une/26/2013 .....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