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진솔한 이야기/세상 모습들

Genie 2009. 11. 2. 15:19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3.30~1890.7.29)

그는 늘 내 삶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내가 어디를 가든 동행을 해주었다.

아마도 내가 수없이 프랑스를 간 것도 어쩌면 그의 내음을

조금이나마 가까이서 느끼고자 하는 본능적 바람이었는지 모른다.

그가 여생을 보냈던 자취를 찾아 나들이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감흥이 새롭게

내를 흔든다.

 

지난번 파리 풍경에 이어 아비뇽(Avignon)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파리에서 TGV 4시간 거리의 아비뇽은 론강 상류 방향으로 조금 북쪽에 있는 곳으로,

한때는 중세 역사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내가 밤을 지새웠던 론 강 왼편에 위치한 생베네제 다리(Pont Saint Benezet),

프랑스 민요인 "아비뇽의 다리 위에서"에 등장하는 바로 그 다리이다.

 

그 유명한 "아비뇽의 유수(Avignon Papacy)"가 있었던

아비뇽 교황청이다.

아비뇽 유수는 13세기로마 가톨릭황청의 자리가 로마에서 아비뇽으로 옮겨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머무른 시기를 말한다.

고대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교황의 바빌론 유수라고도 불렸다.

무엇보다도 교황권 약화의 상징인 '아비뇽 유수'로 유명한 곳이다.

아비뇽의 역사를 아는 것은 중세 유럽사의 한 축을 이해하는 것이다.

 

 

 

 

 

아를[ Arles ]

인구 약 5만 5000명(1990)이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의 하나로

론강 하류 좌안에 면해 있다. A. 도데의 희곡 《아를의 여인》, G. 비제의 가곡에 의해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시가지에는 고대의 성벽 자리를 나타내는 고리 모양의 도로가 나 있고,

주민은 지방색이 풍부한 의상·축제·투우 등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아비뇽에서 아를은 무척 근접한 위치에 있다.

낸 그의 자취를 따라 그냥 하여없이 거리를 걸어다녔다.

한적한 공원 벤치와 너무도 평화스럽게 공치기를 하는 사람들,

그리고 오랜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아를 묘지...

 

 

 

 

 

 

원형 경기장(L'Amphitheatre)

기원전 90년에 지어진 로마 시대의 투기장으로 60개의 아치로 이루어져 있다.

프로방스 지역의 원형 경기장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로마 시대에는

2만 명의 관객을 수용했다고 한다.

현재 이곳은 9월에 벌어지는 아를 축제 때 투우장으로 이용된다.

아를의 투우는 스페인의 그것과 달리 소를 죽이지 않고 소의 뿔 사이에 달아놓은 장식을 잡아채는 것으로

대신하는 것이 특징이다.

 

 

쌩 트로핌 교(L'Eglise St. Trophime et son cloitre),

1152년에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시청사 옆에 있다.

성당 이름은 3세기 무렵 기독교를 전파한 수호성인이자 주교인

쌩 트로핌(St. Trophime)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아를에서 유일하게 중세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성당이며 과거에는

수많은 순레자가 거쳐간 곳으로 유명하다.

섬세한 아치형 회랑과 사각형의 차분한 공간이 특징이다.

성당 입구에 새겨진 최후의 심판 장면이 볼 만하다.

 

 

 

 

 

 

 

 

 

 에스빠스 반 고흐(Espace Van Gogh),

 사각형의 정원에 각양각색의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은 100여년전 고호가 그린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원래는 고흐가 요양하던 병원이었으며 1989년 2월에 종합문화센터로 바뀌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고흐에 관한 자료는 복제화 1점이 고작이다.

현재 이곳은 도서관, 영상 자료실, 대학 센터, 전시화랑 등로 이용하고 있다.

 

 

 

 

 

  

 

 

반 고흐 다리(Le Pont de Van Gogh)원래의 이름은 랑글로아(Langlois) 다리,

고흐에게 혼신의 열정을 부여해준 가장 커다란 모티브 중의 하나인 도개교이다.

아를에서 부크에 이르는 운하에 놓여 있는 이 다리는

자신의 고향인 네덜란드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같다.  

 

 

 

아를에서 이틀을 보냈다. 밤이면 고흐의 카페에서 그와 함께 술을 마시면서

내 식어가는 열정을 다시 불태우곤 했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 Sur Oise)
오베르 쉬르 와즈마을은 고호가 잠들어 잇는 곳이다

어딜 가도 그의 숨결이 다가선다.

하루에 한폭의 그림을 그리면서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던 장소

정말 거짓말같이 아직도 그가 살던 그 풍경 그대로 보존되어있다

마치 금방이라도 그가 나와서 내 곁에 앉아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세월의 정지되어있는 장소이다.

좀 엇나간 이야기지만

낸 거기서 잘 곳을 구하지 못해서 밤새 하늘을 보아야 했다.

워낙 조그마한 마을이라

내가 처음 갔었을 때는 숙박시설이 거의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저녁 늦게까지 돌아다니다

결국 내는 그의 품에서, 자연의 품에서 한밤을 지새웠다 

 

 

 

 

 

 

 

 

고흐가 살아있을 듯한 정말로 세월의 흐름이

멈추어져 버린 것 같은 오베르 쉬르 와즈 마을

마을 곳곳에는 고흐의 그림으로 그곳의 안내판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더욱 어디를 가든 그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빈센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도르 고흐가 있는

그는 오히려 죽은 다음에야 비로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더욱 평화스럽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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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날 그리도 정갈하고픈 충동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알 수 없이 부서져가는 것도
그 작은 까닭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당장 몸에 두른 것하며
주위에 내비친 사물조차도 불결하게만 여겨졌다.

 

찾는다는 것은
그 이상 또 다른 것들을 잃는다는 것처럼
이지러진 생활에서 무어 그리 잃을 것이 있으랴 싶어
정신을 모두어 본다.

 

무엇이 죽고
또 무엇이 죽고
죽음의 연속

 

길따라 해마다 꽃이 피고 지고
하나 하나 의미도 주어지기전에
잠시 선보이다 사라진다.

 

순결한 사람,
되고프고, 갖고프고
부수어버리고 싶은 사람은
전혀 사상의 홍수속에 타락되가는
새로운 형상에 인간

 

태고의 순수함을 잊었던가,
타락에 너울을 쓴다.
그것이 세상이려나
술이 나를 부른다. 술이.

 

             고흐가 그리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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