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나폴레옹의 러시아원정 (11부) - 보로디노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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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나폴레옹전쟁

2018. 12. 12.



보로디노전투 부분은 오래 전에 정리해 둔 이야기를 다시 재활용하겠습니다. 



러시아군 사령부에서는 격론이 벌어졌다. 예르몰로프Yermolov장군은 셰바르디노는 바그라티온의 고집 때문에 불필요하게 전투가 벌어졌고 지킬 수도 지켜서도 안되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바클라이도 프랑스군이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서둘러서 방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동의했다.

밤늦게, 그것도 8,000명의 병력을 잃은 후에 철수하기로 했다. 여전히 좌익이 노출되었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쿠투조프는 충분히 좌익을 보호할 수 있고 투치코프Tuchkov3보병군단이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나폴레옹은 새벽에 이어 오후에도 보로디노 반대편의 고지에 올라 러시아군의 틈을 찾으려고 했다. 다부가 달ㄹ려와 15군단이 좌익으로 우회해서 러시아군 측면과 배후를 동시에 노리겠다고 제안했다. 평소라면 흔쾌히 동의했을 나폴레옹이 이번에는 대규모 기동이어서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반대했다



미하일 일라리오노비치 골레니쳅 쿠투초프는 러시아-투르크 전쟁(1787~1792)에서 오차코프(그림 참조), 오데사, 벤데르와 이스마일을 점령하며 명성을 높였습니다. 파벨Paul 1세의 큰 신임을 얻었다가 후계자 알렉산드르 1세에게서는 눈 밖에 밀려났습니다.

보로디노와 말로야로슬라베츠Maloyaroslavets전투에서 프랑스군에게 큰 피해를 입혔고 대대적인 반격으로 프랑스군을 궤멸시켜 러시아 역사상 최고의 지휘관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나폴레옹의 고민은 깊었다. 스몰렌스크와 같이 러시아군이 다시 달아날 수 있었고 반대로 많은 병력이 이동 중에 러시아군이 그 사이를 파고 들 수도 있었다. 그는 큰 피해가 필연적인 전면공격을 결정했다. 프랑스군의 피해가 막대하겠지만 러시아군 주력을 격파하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배후에 남겨둔 병력을 불러들여 모스크바로 진격하면 되었다.

무라는 러시아군이 후퇴하는 것 같다고 보고했다. 나폴레옹이 급히 전방으로 달려가 직접 확인했다. 러시아군은 거꾸로 전열을 갖추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그렇게 기다리던 대회전이 드디어 벌어지게 되었다.

니폴레옹은 포니아토프스키의 5군단을 러시아군 좌익인 구 스몰렌스크도로Old Smolensk Road로 우회시키지만 주력은 러시아군의 중앙을 노리기로 했다. 1군단, 1, 24예비기병군단의 85,000명을 투입하기로 했다. 구근위대Old Guard가 마지막 예비대였다


 

러시아군은 96일 하루동안 참호공사를 마무리하고 병력을 배치하며 보냈다. 쿠투조프는 스몰렌스크 성모마리아상Black Virgin of Smolensk을 앞세우고 부대를 순시하며 격려했다. 동방정교신부들이 성수를 뿌리고 향을 흔들며 병사들을 축복했다.

쿠투조프는 일선 지휘관에게 상당한 재량권을 허락했다. 최대한 예비전력을 간직하고 무분별한 포격과 사격을 금지시키라고 명령했다. 백병전으로 승부를 내라고 요구했다.

러시아포병은 고질적인 습관이 있었다. 적의 포격을 받으면 엄호해야 할 보병보다는 포를 우선해서 피신시켰다. 1 서부포병군의 코우타이소프Koutatissof는 부하들에게 절대로 물러서지 말고 전멸을 각오하라고 다그쳤다


실제로 그는 프랑스군의 공격을 마지막까지 막아내다가 전사했습니다. 


원래 전투 전날식사를 가장 잘 먹여야했지만 프랑스군은 보급상황이 심각했고 겨우 동물지방으로 만든 초를 녹인 빵 스프 정도만 간신히 먹었다. 러시아군도 프랑스군 만큼이나 사기가 높았고 보급상태는 훨씬 좋았다. 

6, 일부 전선에서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정도로 가깝게 접근했는데도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러시아 11시단 포병은 전진배치하던 중에 프랑스 용기병Dragoon과 마주쳤다가 바로 물러났다. 

저녁이 되자 250,000명은 잠자리에 들었다. 나폴레옹은 목이 쉴 정도로 감기에 시달렸는데도 새벽 3시에 말을 타고 나가 러시아군이 달아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참모에게 명령을 내렸다.

 

외젠이 다부의 2개 사단지원을 받아 보로디노 부근의 러시아군과 대방벽Great Redoubt를 공격하고 네Ney와 주노Junot는 세멘놉스카야Semenovskaja 마을을 공격하고 다부는 플레쉐Fleches(화살표형 방어시설), 폴란드군의 포니아토프스키Poniatowski는 우티차Utitza와 우익 끝의 언덕을 공격하기로 했다.

기병은 보병의 공격을 지원하고 제국근위대는 예비군으로 남겨두었다. 



 

유제프 안토니 포니아토프스키Józef Antoni Poniatowski는 폴란드 왕족으로 처음에는 오스트리아군에서 복무하다가 폴란드군을 이끌었습니다. 러시아의 공격과 나약한 폴란드왕정에 맞서다가 추방당해 프랑스, 러시아, 프로이센과 폴란드를 떠돌다가 다시 폴란드군을 합류합니다. 

1806, 프랑스군이 바르샤바에 입성하자 프랑스군에 합류했고 많은 활약으로 26명의 원수 중 한 명으로, 그리고 가장 용맹스러운 원수로 자리잡습니다. 보로디노전투에서도 결정적인 활약을 했으며 그의 부대는 모스크바에 가장 먼저 입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나폴레옹에 대해 충성했고 나폴레옹도 그를 왕족대우를 해주었습니다. 1813, 라이프치히전투에서 후퇴하다가 아군의 황당한 실수로 익사했고 국민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7일 새벽이 밝자 전투가 시작되었다. 외젠의 보병이 가장 먼저 전진했고 프랑스군은 러시아 근위엽병Guard Jagers연대가 있는 보로디노로 쏟아져 들어갔다. 곧바로 엽병연대는 콜로츠챠Kolotscha로 물러났다.  

 

영화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전투신일 겁니다. 1967년작 러시아판 전쟁과 평화 중 보로디노 전투 장면입니다.


 


상세한 전황은 지도를 참조해야 이해하기 쉽습니다. 큰 그림으로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러시아 장교의 기록을 보자. “다리를 건너 후퇴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총탄이 심하게 쏟아진 적이 없었다. 한꺼번에 다리로 몰려들어서 하마터면 강에 빠질 뻔 했다. 겨우 10분 만에 장교 30명이 죽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다리를 폭파해서 프랑스군의 추격을 막을 수 있었다. 외젠이 대방벽Great Redoubt를 노리는 동안 훨씬 심각한 전투가 남쪽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다부와 네Ney원수는 플레쉐Fleches를 돌파해서 러시아 중앙으로 돌아 전선 전체를 붕괴시키려고 했다.


 

프랑스군이 바그라티온 플레쉐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프랑스군 야포가 급히 달려와 프랑스군의 공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의 절대적인 위기였지만 바그라티온은 제대로 방어를 했고 제2 연합척탄병사단과 네베롭스키의 27사단의 분투로 프랑스군의 전진을 허용하지 않았다. 

플레쉐를 둘러싼 양측의 전투는 나폴레옹 전쟁 중 몇 안되는 혈전이었다. 장애물 앞에는 시체가 쌓였고 간신히 점령하면 곧바로 반격이 이어져서 물러났다가 다시 점령하는 줄다리기 양상이 계속 되었다. 

“러시아 흉갑기병Cuirassier이 돌격해서 악마처럼 우리 보병을 덮쳤다가 30문의 포대로 향했다. 기병이 지나갈 때에 사격을 퍼부었지만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포도탄도 돌격을 막지 못했다. 재빨리 대포 밑에 숨지 못한 포병은 칼을 맞고 쓰러졌다. 

그렇지만 아군 기병이 새로 투입되면서 러시아 기병이 물러나면서 우리 곁을 다시 지나갔다. 우리는 다시 적에게 사격을 했고 총검으로 퇴로를 막아보려고 했다.“ 

 

방벽을 하나 점령했다고 해도 그 너머에서는 러시아군의 저격수와 포도탄이 기다리고 있었고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10여 명씩 쓰러졌다.

바그라티온은 프랑스군이 심각한 피해를 견뎌내며 침착하게 전진하는 것을 보고 브라보라고 찬사를 보내다가 다리에 파편을 맞고 쓰러졌다. 러시아군은 세메놉스카야 개울 너머로 후퇴했고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 

프랑스군도 6시간에 걸친 전투로 완전히 탈진한 상태인데다가 플레쉐에 들어섰다고 해도 러시아군쪽으로는 완전히 개방된 상태라 일방적으로 포탄에 두들겨 맞았다. 

“적이 그렇게 완강하게 버티던 방벽 하나를 마침내 차지했다. 겨우 휴식을 취했지만 달콤한 장미정원이 아니었다. 20문의 포가 우리를 향해 쉴새없이 포문을 열었다.”

  

다른 한편에 있던 포니아토프스키도 투치코프Tutchkov에게서 우티차를 빼앗으려고 했지만 전력이 이미 바닥난 상태라 초반의 성공을 이어가지 못하고 소모전에 붙잡혔다. 

프랑스군은 보로디노 마을을 확보한 후에 다음 목표인 대방벽을 노렸다. 네와 다부는 바그라티온과의 전투에 정신이 없었고, 외젠은 다부의 병력을 일부 받아서 대방벽을 향했다. 

대방벽은 러시아군 중심이었기 때문에 특히 공들여 구축했고 라제프스키Rajevsky가 방어를 맡고 있었다. 

“공병장교가 기병의 돌파를 막을 수 있게 너비 150m 정도의 구덩이를 파자고 했고 이제 적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면 되었다.”

  

러시아군은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오전 10 30, 강력한 포격을 등에 업은 프랑스군이 화려한 복장과 함께 대열을 갖추고 있었다. 초병을 밀어내고 방벽 앞의 구덩이에 들어가 잠시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 경사면을 올라왔다. 

라제프스키의 기록을 보자.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적이 사거리에 들어오자 포문을 열었고 포연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포격 직후에 참모 한 명이 내게 조심하라고 소리쳤다. 급히 주변을 둘러보니 프랑스 척탄병 몇 명이 방벽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이렇게 기록했다. “연대에 전진명령이 떨어졌다. 경사면 위로 올라서자 적의 포격이 시작되었고 포도탄이 전열을 거의 쓸어버렸다. 우리는 계속 뛰어 오르며 굴러오는 탄을 피했지만 소대전체가 사라지며 대열에 큰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적이 막 포를 쏘려는 순간에 방벽 안에 뛰어들었다. 포수는 지렛대와 꽂을대로 맞섰고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칼로 한 명을 죽였는데 러시아군처럼 집요한 적은 처음 만났다.”

  

방어선이 무너지자 라젭스키와 22살의 쿠타이소프Kutaisov장군이 바로 반격에 나섰다. “적을 양쪽에서 공격해 밀어냈고 부상당한 보나미Bonamy장군을 포로로 잡았다. 우리는 쿠타이솝이 죽었고 예르몰롭이 부상당했다. 다시 방벽을 되찾았지만 군단전체가 겨우 700명만 남았고 (낙오병과 경상자가 복귀한) 이튿날에도 1,500명이 넘지 못했다.” 

보나미는 15군데나 부상을 당했고 그의 부대는 완전히 궤멸했다. 프랑스군은 다시 집결해서 공격태세를 갖췄지만 우바로프Uvarov의 기병 5,000명이 보로디노 너머까지 돌격해 들어가 보병과 기병을 흩어놓았다가 다시 밀려났다. 우바롭이 적시에 공세를 펼친 덕분에 프랑스군 좌익이 흔들렸고 러시아군은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대방벽에서 혈전이 벌어지는 동안, 프랑스 우익은 플레쉐를 점령한 후에 세메놉스카야 마을을 공격해서 러시아 전선에 구멍을 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라는 나폴레옹에게 급히 제국근위대Imperial Guard를 투입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나폴레옹은 거절하고 여전히 제국근위대를 투입하지 않았다. 

그는 우바롭의 돌격이 당황스러웠고 보로디노 이후의 전투도 생각해야했다. 대신에 근위대 포병과 청년근위대Young Guard(그림 참조)의 폴란드 3개 연대를 지원했다

 

 

급히 세메놉스카야로 달려간 포대는 대열을 필사적으로 메우는 러시아군을 쓸어버렸다. 녹색제복의 러시아군은 마을 뒤의 경사면에 쓰러졌다. 

“오스테르만Ostermann의 부대가 적의 맹포격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군단은 궤멸되었다. 장군에게 말을 하고 있는 동안 우리 주변에 몇 발의 포탄이 떨어져서 말이 쓰러졌고 우리는 흙을 뒤집어썼다. 골리친Golitzn공이 중상을 입었고 바크메티에프Bakmetiev장군은 다리를 잃었고 오스테르만도 부상을 입었다.”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 지를 바로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러시아의 좌익을 맡은 바그라티온이 다리에 부상을 입고도 계속 지휘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장군 장 합Jean Rapp도 바그라티온 방벽공격을 이끌다가 엉덩이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양쪽에서 70명의 장군이 사상당할 정도였습니다.

  

반면에 러시아군 포대(그림 참조)는 여전히 기세를 잃지 않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보병전력이 심각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기병이 그 틈을 메우고 러시아군의 기병에 반격해야했다. 말을 타고 대기하는 기병은 러시아군의 더 없이 좋은 목표물이 되었다. 러시아군의 포격이 있을 때마다 기병대에는 피투성이의 통로가 생겼다.



 

흉갑기병 대위의 기록을 보자. “우리 연대는 하루 종일 제자리에서 포격만 받았다. 주변에는 죽어가는 동료가 가득했다. 중대를 돌며 상황을 점검했는데 여전히 사기가 높았다. 젊은 장교에게 말을 걸었더니 그저 물 한잔만 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순간에 포탄이 날아와 그를 찢어놓았다.” 

 

보로디노전투 7년 전에 있었던 전투로 전술을 바뀌지 않았으니 보병전술을 보기에 좋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왜 고급장교의 피해가 컸는 지도 알 수 있습니다.



함께 대기하던 제2 기병군단을 지휘하던 몽브헌Montbrun장군도 치명상을 입었고 프랑스군은 수 백 명의 귀중한 기병과 말을 잃었다. 드디어 프랑스와 연합군 기병이 움직일 차례가 되었다. 

콜랭쿠르Caulaincourt가 제5 흉갑기병대를 이끌고 방벽 뒤로 돌아들었다가 역시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고 기병대도 큰 피해를 입었다. 그 다음으로 로흐주Lorge장군이 독일과 폴란드 중기병을 이끌고 방벽에 돌격해 들어갔다. 외젠의 보병이 때마침 경사면을 기어 올라 러시아 보병에게 뛰어들었다. 

“오후에 외젠공의 병력이 우리 방벽에 최후의 공격을 시도했다. 대포와 소총이 일제히 불을 뿜어서 마치 화산과도 같았다. 석양을 받은 칼, 총검과 헬멧이 반짝였는데 끔찍하면서도 황홀한 광경이었다. 

우리 기병은 적 기병과 맞붙어서 사방에서 혈전이 벌어졌다. 프랑스군은 우리 방벽에 정면공격을 했고 결국 우리 포대는 침묵을 지켰다. 포대를 둘러싸고 양쪽이 백병전을 벌였다.“ 

 

 



몇 차례에 걸친 공방전 끝에 프랑스군이 대방벽을 차지했고 기병은 후퇴하는 러시아군을 분쇄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기병의 추격을 받은 러시아군이 궤멸하면서 보로디노전투가 끝날 것처럼 보였지만 러시아군은 예상과 달리 허둥지둥 달아나지 않고 새로운 거점에서 맹렬한 저항을 하며 프랑스군의 추격을 막아냈다. 

러시아군은 오히려 프랑스 기병을 궁지에 몰아 넣었고 바클라이Barclay도 그 덕분에 포로신세를 모면할 수 있었다.

“장군의 말이 권총을 맞고 펄쩍 뛰어 올랐다. 프랑스 창기병이 장군을 추격해 창으로 찌르려는 순간에 주변에 있던 몇 명의 참모가 막아냈다. 때마침 이조움 경기병Izoum Hussar대가 도착했다. 

이조움 경기병은 언덕 위에 올라 프랑스기병과 잠시 대치했다가 선봉대가 바로 돌격해 다른 부대가 전열을 갖출 시간을 벌어주었다. 맹렬한 돌격에 당황한 프랑스군은 서서히 물러났다. 적과 아군이 뒤엉켜 혼전이 벌어졌다. 기병 주변에는 아군 보병대가 급히 전열을 가다듬었는데 그 순간에 프랑스 기병여단 하나가 달려와 전열 중앙에 큰 구멍을 냈다. 적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프랑스 연합군의 작센장교도 대혼전의 기록을 남겼다. 

“러시아군이 1,100보 거리에서 포도탄을 퍼부었다. 우리 포도 응사했고 포연 때문에 포의 섬광만 간신히 보였다. 마치 지옥문이 우리에게 잠시 열렸다가 닫히는 것 같았다. 

갑자기 적의 포격이 멈췄다. 포연이 가시자 우리 기병이 방벽의 포대를 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에 우리도 러시아 용기병의 공격을 받고 개울 끝까지 몰렸다. 용기병이 사라지더니 엄청난 적 기병대가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주변에 포탄이 터지면서 흙먼지를 뒤집어 썼다. 최소한 25분 이상 그 자리를 지켰고 주변의 병사가 많이 줄어들었다. 병사들에게 아군이 올 때까지 조금만 버티자고 울부짖었다.“ 

“어느 틈엔가 들판이 프랑스 기병으로 가득 찼다. 제 자리를 지키면서 프랑스군이 적에게 돌격할 때에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포도탄 파편이 기병의 흉갑과 헬멧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적 기병에게 달려가 밀어냈지만 적 보병은 다시 강력한 거점을 만들고 저항했다. 적을 밀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전투가 백병전으로 번져 피아를 구분하기도 힘든데다가 포연과 굉음으로 명령을 제대로 내리기도 힘들어서 이제 중대가 알아서 움직여야 했다. 프랑스군은 보병에 이어 기병과 포병 심지어 셋을 모두 투입해도 러시아군을 완전히 밀어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나폴레옹은 여전히 제국근위대를 투입하지 않았다 (러시아 원정 당시, 나폴레옹은 이상하리만큼 답답한 판단을 했는데 독감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러시아군은 1,000보 이상을 물러섰다가 고르키Gorki 마을 부근에 새로운 방어선을 펼쳤다. 포병은 그 기세를 조금도 잃지 않고 포탄을 퍼부었고 간신히 대방벽의 잔해에 몸을 숨겼던 프랑스군은 이제 직격탄을 맞고 있었다. 사병은 땅에 엎드려 포격을 피해도 좋지만 장교는 그대로 서 있으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갑자기 그가 말을 멈췄는데 포탄에 머리가 날아갔다. 군복에 피와 뇌수가 묻었고 지워지지 않아서 원정내내 뭍힌 채로 다녔다.”

 

밤이 되자 탈진한 양쪽 모두 휴식을 취했다. 쿠투조프는 초반의 판세에 흥분한 나머지 성급한 승전보고를 차르에게 보냈지만 상세한 전황을 파악한 후에는 후퇴하기로 했다. 프랑스군은 러시아군의 집요한 저항에 크게 당황했고 나폴레옹은 보로디노전투를 두 거인의 전투라고 말했다.

무라가정말 힘든 전투였소. 이런 전투는 처음이오. 특히 포격말이오. 거리가 얼마나 가까웠던지 거의 포도탄만 터지더군요라고 말하자 네는아직 끝나지 않았소. 적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고 사기도 크게 떨어졌을테니까 추격해서 확실한 승리를 거둬야 합니다라고 응대했다. 

“그렇지만 적은 여전히 전열을 유지하고 있소.” “그런 공격을 받고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쿠투조프는 부상병부터 소개하고 포병과 보급품을 움직였다. 나머지 병력은 그대로 밤을 지샜고 프랑스군도 시체와 신음하는 부상병 사이에서 끔찍한 밤을 보냈다. 

하인리히 폰 브란트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물도 불도 없이 죽어가는 병사들 사이에서 밤을 보냈다. 죽은 적의 배낭에서 약간의 음식과 브랜디를 찾아냈다. 소총 개머리판과 부러진 나무조각으로 간신히 불을 붙여 말고기 요리를 했다. 수프를 끓이려고 물을 뜨러 갔었는데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경험이었다. 

흔들리는 화톳불 주변에 부상병이 모이더니 우리보다 훨씬 많은 수가 되었다. 그리고 불을 보고 기어오는 부상병이 마치 유령과도 같았다. 팔 다리를 잃었는데도 마지막 힘을 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죽어갔는데 여전히 눈은 불을 쳐다보고 있었다.” 


 

새벽에 코사크 기병의 소규모 기습이 있었지만 전투는 완전히 끝났고 양쪽은 12시간의 격전이 가져온 피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러시아군은 43,000명이 사상과 실종된 것으로 보고되었다가 20,000명의 실종자와 부상병이 다시 합류했다. (실제 기록으로는 43,000명을 잃은 것이 맞다고 합니다.)

쿠투조프는 단 하루 만에 전력의 33%를 잃었다. 23명의 장군이 죽거나 다쳤고 바그라티온은 7일 후에 부상악화로 죽었다. 1,300명 중 99명만 살아남은 연대도 있었다. 포로는 거의 없었다. 

나폴레옹의 피해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다. 40,000명을 잃고 49명의 장군이 사상당한 것으로 분석된다. 가장 앞에 투입되었던 연대는 대부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워낙 많은 장교를 잃었기 때문에 초급장교가 몇 계단 승진하는 일이 벌어졌다. 

 

대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았다고 해도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없다. 뒤에 기다리고 있는 겨울후퇴의 참상과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차라리 보로디노에서 눕겠다고 할 병사도 많았을 것이다. 

부상병은 전사자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보로디노 부근으로 옮겨진 부상병은 그대로 방치되어 죽어갔다. 

“러시아군은 황급히 후퇴했는데도 전사자를 제대로 처리했다. 후퇴 길에 부상병이 죽어도 매장했다. 열등한 민족이라고 우습게봤었는데 전사자와 부상자 처리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보다 훨씬 나았다. 

우리는 부상병을 그대로 방치해 죽였고 진로에 방해되는 시체만 매장했다. 수많은 부상병이 땅 위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갔다. 떠나는 우리를 보고 아무리 간청해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살아남은 우리도 냉소적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