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2차대전 대전차 보병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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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2020. 6. 12.

저는 자료도 많고 널리 알려진 2차대전보다는 겨우 몇 권의 원서가 전부인 고대나 소수민족의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은데 2차대전 이야기를 원하는 분이 많아서 한동안은 계속 될 것 같습니다. 

하긴 그렇게 널리 알려졌다고 오해(?)하는 2차대전도, 지난 폴란드전역 이야기처럼 왜곡과 오류가 아직도 뿌리깊게 남아 있죠. 

 

오늘은 2차대전당시 주요국의 대전차 보병전술입니다. 셔먼 그리고 대전차전술하면 퓨리부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을텐데, 영화를 다큐로 받아들이는 분들을 위해 2차대전 셔먼전차병의 영화 인터뷰(더 가디언)를 가져오겠습니다. 

 

빌 베츠Bill Betts(91세), 2차대전 당시 셔먼전차의 통신병. 

 

(중략)

 

퓨리Fury는 독일전차가 얼마나 우수한지를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셔먼은 방어력이 좋지만  타이거를 상대하면 그냥 관으로 변한다. 타이거의 88mm가 우리 포탑을 몇 인치 차이로 빗나간 적이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지 않기로 했다. 타이거를 상대로 야전에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었다. 그래서 퓨리처럼 한 발 앞서야 했다. 공군지원을 부르고 독일군보다 훨씬 많은 전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결국에는 승리했다...   

영화가 전차병의 험난한 삶을 정확하게 재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무장친위대SS대대를 상대로 버티는 마지막 장면은 말이 안된다too far fetched. 독일군을 소모품처럼 취급되었다.  
실제로는 전투경험이 많고 광신도 군대라 주저앉은 셔먼전차는 판처파우스트로 손쉽게 처리했을 것이다. 그리고 셔먼의 탄약과 연료가 무한대인 것처럼 나오는데 4리터로 8km가 고작이라 마지막 장면까지 가기도 전에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 보병으로 전차를 가장 많이 격파한 사람이 아닐가 합니다.

동부전선에서 보병의 대전차전은 다반사였고 전차를 격파하면 이렇게 커다란 휘장을 달았습니다. 사진 속의 주인공 군터Gunther중위는 무려 21대의 전차를 격파했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다시 강조하면 보병입니다. 포병이나 전차병이 아닙니다. 에이 무슨? 의심을 하는 분들은 이제 본문 이야기를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수 있겠네!로 바뀔겁니다. 

 

 

 

'보병의 지원을 받지 않는 전차는 결정적인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전차가 방어선을 돌파하면 보병이 남은 적을 몰아내고 그 지역을 장악해야 한다. 반대로 적전차가 전선을 돌파하면, 적전차는 아군포대에게 맡기고 아군보병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리를 고수하며 적보병의 접근을 막아야 한다. 대전차방어 전술에서는 적보병에 대한 방어를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  미육군 대전차방어전술 1918년 2월

1차대전 당시의 교리는 2차대전까지 이어졌다. 2차대전 초기, 대부분의 국가는 나름대로 괜찮은 대전차전 교리를 가지고 있었다. 곧바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전차가 대규모 독립부대로 투입될 경우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1940년, 독일 7개 전차사단은 아르덴느Ardennes숲을 통해 강력한 프랑스 방어선을 돌파했다. 프랑스는 여전히 전차를 보병지원화기로 생각했기 때문에 독일전차에 맞설 전력을 집중시키지 못했다. 
1940년 전격전Blitzkrieg는 다른 나라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심지어 보병부대는 전차에 무용지물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전차에만 집중하고 독일군의 제병협력Combined Arms교리는 외면했기 때문에 대전차방어전술도 제병협력전술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미군의 제병협력훈련 장면입니다. 

대전차전술과 무기는 전쟁내내 계속 진화했다. 전차모델, 장갑, 전차전술, 제병협력교리가 계속 발전하면서 대전차무기도 더 치명적이고 강력하고 장사정거리인 동시에 더 작고 가볍게 발전했다. 전쟁초기 대전차전 전술은 전차를 지원보병과 분리시킨 후에 대전차무기가 즐비한 살상지대Killing Zone으로 유도하고 전차가 모든 해치를 닫게 만들어서 지휘와 기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전차의 최대약점은 승무원의 눈과 귀가 거의 닫힌다는 것이다. 전차에게 불리하거나 지뢰를 매설한 지형에 대전차 화기를 집중시키고 연막으로 장님으로 만들었다. 
대구경 대전차포가 있으면 훨씬 효과적이지만 이번 이야기의 주제가 아니기 때문에 제외시키고 대대급 이하의 보병용 대전차무기만 설명하고 있다. 

1939년 당시, 대전차무기가 이미 있었고 전쟁기간 중 다른 어떤 무기보다 빠르고 다양한 발전을 보였다. 심지어 기괴한 대전차무기도 등장했다. 포속이 빠른 대전차포, 첨단 로켓발사기, 보병의 절박한 흡착폭탄, 무엇이던 간에 모든 대전차무기는 폭발력이나 투사물로 전차장갑을 관통하거나 작동불능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철갑탄
운동에너지가 단단한 물체를 관통하려면 포속이 그만큼 빨라야 한다. 운동에너지의 대전차무기 중 가장 단순한 형태는 철갑Armour Piercing(AP)탄이다. 끝이 뭉툭한 강철탄을, 화살모양으로 날렵한 촉으로 감싼 포탄인데 장갑에 맞으면 겉은 부서져 나간다. 
철갑탄은 속도와 경도에 따라 관통력이 달라진다. 1차대전에서는 모든 군이 대전차총을 무장했지만 2차대전에서는 점차 무용지물이 되었다. 90m 거리에서 90도 각도의 장갑 6~10mm를 관통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경전차나 경장갑차에만 효과가 있었다. 
대구경 철갑탄은 탄 아래부분에 작은 고폭탄(HE)이나 인화물질(I)과 발화장치를 넣었다. 철갑유탄AP-HE과 철갑소이탄AP-I은 장갑을 관통한 후에 폭발하거나 점화해서 내부에 파편이나 불을 뿌려 내폭을 일으켰다. 피모철갑탄APC(Capped)는 연철탄두를 씌워서 장갑과 부딪치면 90도 정도로 꺾인다. 또 다른 변형은 커다란 연철탄 안에 소형 탄자Penetrator를 넣고 연철외피가 벗겨지면서 탄자가 장갑을 관통하는 것이 있다. 
철갑탄은 장갑에 구멍을 뚫는 것 외에는 별다른 피해를 입히지 못한다. 대부분의 피해는 관통된 부분의 장갑과 탄의 파편이 내부를 휩쓸면서 발생한다. 만약 철갑탄이 전차를 완전히 관통해서 빠져나가는 경우에는 피해가 거의 없다. 

 

 

 


점착Squash Head탄
점착유탄HESH 또는 고폭플라스틱탄HEP는 탄 아래에 발화장치가 있는 플라스틱 폭탄이다. 전차에 부딪치면 폭약이 달라붙어 터진다. 점착탄에 맞으면 전차장갑 내부파편이 부서져 나온다. 얇은 장갑은 일그러지며 구멍이 생긴다.
비용이 싸고 경장갑차량에 특히 위력적이며 콘크리트나 석조건물에도 같은 효과를 내기 때문에 방어시설이나 건물공격에도 사용된다. 

성형작약Shaped Charge(Hollow Charge)탄
성형작약탄은 역 삼각형 모양의 폭약으로 몬로Monroe효과를 이용한 것이다. 탄의 빈 끝 부분이 장갑에 부딪치면 폭발력을 하나의 작은 점에 집중시켜서 구멍을 만든다. 초기의 성형작약탄은 얕은 공동(빈) 부분을 가지고 있었다. 1차세계대전 중 독일설계자가 공공부분에 얇은 금속을 붙이고 장갑 바로 위가 아니라 약간 떨어트려 폭발시키면 폭발력을 더 집중되는 것을 발견했다. 
1938년, 스위스공학자 두 명은 이 원리를 더 보강해서 탄약실험에서 실증했다. 영국병기창이 처음으로 대전차소총에 성형작약탄을 사용했고 다른 국가들도 성형작약탄을 채택했다. 독일, 미국과 영국은 적극적으로 성형작약탄을 사용한 반면, 소련, 일본과 이탈리아는 제한적으로 사용했다. 
성형작약탄은 포속이 빠르지 않아도, 탄이 크지 않아도 장갑을 관통할 수 있다. 약 450m 거리에서 철갑탄의 45m 거리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심지어 손으로 성형작약 수류탄을 던져도 같은 크기의 대전차포탄과 비슷한 위력을 발휘했다. 성형작약탄은 다른 탄에 비해 가볍고 저렴하다. 
(만화 설명 참조)
성형작약탄은 장갑판 외부에 약간의 간격을 두고 얇은 철판이나 그물망을 덧대어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성형작약탄은 외부 장애물을 만나 미리 터지면서 플라즈마 제트가 분산되어 관통력이 크게 떨어진다. 

 

 

 

 

https://bbs.ruliweb.com/hobby/board/300063/read/18989557 성형작약탄에 대해 아주 재미있고 쉽게 정리된 만화입니다. 이번 이야기를 즐긴 후에 링크의 만화를 꼭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연막탄
대전차전에는 다양한 화학탄도 사용되었다. 연막탄은 양날의 검이었다. 백린WP탄은 흰 연기를 낼 뿐만 아니라 작은 인화성 조각을 뿌려서 2,760도로 태우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이었다. 달라붙은 모든 것을 태운다. 
백린탄은 전차에 큰 피해를 주지 못하지만 대전차전에 연막을 자주 사용한다. 짙은 연기는 전차의 시야를 가려 대열을 흐트러트리고 방향을 잃게 한다. 그 사이에 보병이 접근할 수 있다. 

 

 

 

그림은 폭탄입니다만 연막탄도 이런 식으로 사용했습니다. 폭탄은 포신을 부숴서 무장을 해제시키는 목적이고, 연막탄 두 덩이는 포신에 걸어서 전차의 시야를 완전히 가리고 대전차지뢰나 수류탄을 6~7개 묶은 결속수류탄으로 전차를 공격했습니다. 

 

 

 

전차의 기동과 시야만 막는다면 전차를 격파할 방법은 다양했습니다. 


대전차포
아무래도 대전차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전쟁 초기, 대부분의 국가는 37mm 대전차포를 사용했다. 기동력을 높이기 위해 차량으로 견인하기도 했지만 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아서 짧은 거리는 보병이 직접 운반했다. 
1939년이 되자 이런 소구경 대전차포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특수탄으로 위력을 높였더라도 중전차의 장갑은 뚫지 못했다. 45~75mm 포가 대세가 되었는데 같은 구경이라고 해도 성능은 차이가 났다. 예를 들어 일본과 이탈리아의 47mm는 성능이 많이 부족했다. 중간 구경의 포는 보병부대가 많이 사용했다. 75mm 이상의 포는 사단급 이상의 대전차부대에서 사용하다가 일반 대전차부대에도 보급되었다. 
대전차포는 단점이 있었다. 경포라고 해도 무거워서 인력으로는 빠르게 이동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구경이 커질수록 위치를 숨기기 어려워져서 대전차포의 생존력이 떨어졌다. 참호를 파서 생존력을 높일 수 있지만 위험한 순간에 후퇴해서 다시 전개할 수 없었다. 
보병의 대전차포는 포병이나 대전차부대가 아니라 훈련을 받은 보병이 사용했다. 초기 보병대대는 37mm 3~6문의 소대가 있었고 보병연대/여단은 6~12문의 대전차중대가 있었다. 나중에는 대대의 대전차소대 대신에 중대에 대전차무기를 바로 지급했다. 

 

 

 

전차전술의 대가인 독일도 전차의 발전을 제대로 예상하지 못했고 초기에는 37mm 대전차포가 고작이었습니다. 프랑스전차 그리고 소련전차를 두드린다고 해서 '문두드리기'라는 치욕적인 별명을 얻었습니다. 

전쟁 말기에는 소형포도 구경이 훨씬 커져서 아래의 낙하산병이 사용하는 포는 8.8mm입니다. 

 

 

 


대전차총 
널리 사용되던 대전차총은 1939년에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독일은 1차대전부터 13.2mm 대전차총을 사용했고 다른 국가도 2차대전 초기에는 대전차총을 여전히 사용했다. 미군은 대전차총 대신에 50구경 중기관총을 사용했다.  
대전차총 구격은 7.92mm~20mm, 무게도 12kg~45kg까지 다양했다. 사용하기 매우 불편해서 총기와 탄약을 운반하는데 2~3명이 필요했다. 2m 안팎의 길이여서 양각대를 달았다. 더 긴 대전차총은 총신을 탈착할 수 있었다.  
약 200m의 거리에서 13mm 정도만 관통할 수 있었고 대구경은 그 보다는 나았지만 전차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1941년 말에 대부분 폐기되었고 소련적군만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소련은 종전까지 대전차총을 즐겨 사용했는데 전차의 중장갑에는 소용없었지만 전차의 관측창을 노려 전차병에게 부상을 입히고 시야를 가릴 수 있었고 경장갑 장갑차에는 위력적이었습니다. 

대전차로켓발사기 
1941년, 바주카Bazooka형의 대전차로켓발사기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어깨에 메고 발사하는 이 화기는 HEAT탄을 발사했다. 대부분은 재장전할 수 있었지만 혁명적인 독일의 판처파우스트는 한번 사용하고 버리는 무기였다. 가벼워서 보병이 전장에서 쉽게 가지고 다닐 수 있었고 워낙 저렴해서 대량생산되었다. HEAT탄은 방어시설을 공격하는데도 효과적이었다.  
어깨에 메고 발사하는 대전차로켓발사기는 보병이 가장 간절하게 바라던 무기였지만 초기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었다. 사거리가 200m가 안되었고 그나마도 절반 이하인 경우가 많았다. 로켓의 신뢰성이 낮아서 불발이 되기도 했다.  
로켓발사기는 눈에 띄게 연기와 먼지가 일어나서 위치를 바로 들켰는데 분출화염이 꽤 크기 때문에 건물의 방과 같이 폐쇄된 공간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연합군이 전차보다 더 무서워했다는 판처슈렉Panzerschreck과 판처파우스트Panzerfaust입니다. 판처파우스트는 무려 670만개가 생산되어 소총은 없어도 판처파우스트는 있을 정도였습니다. 연합군의 모든 전차를 격파할 수 있었지만 발사 후 후폭풍때문에 위치가 드러나서 적 보병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미군과 영국군도 다양한 로켓발사기를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소련은 아직까지 본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영국군의 대표적인 보병용 대전차무기 피아트PIAT(Projector, Infantry, Anti-Tank)입니다. 사람의 힘에 의존한 단순무식의 대표적인 예로 재장전하려면 상당한 힘이 필요했고 발사반동(후폭풍 등이 아닌)으로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독일전차의 6%가 이 무기에 당했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큰 효과를 거뒀고 그 주장이 맞다면 연합군의 지상폭격기보다 더 많은 전차를 격파한 것입니다. 

 

 

 

 

 

 

미, 영, 소, 독일은 모두 로켓발사기의 성형작약탄 위력을 반감시키기 위해 별의 별 방법을 다 사용했습니다. 그렇지만 성능이 워낙 좋고 한 발만 쏘는 것이 아니어서 주변에 보병이 없다면 막기 힘들었습니다. 

 

 

 

 

 

 

일본군은 보병화기가 다른 국가에 비해 크게 뒤졌는데 대전차무기 역시 소구경에 구형이었습니다.


 
총류탄 
유효사거리는 최대 100m였지만 경장갑에만 효과가 있었다. 소총 앞에 총류탄발사장치를 달고 전용탄약으로 발사했다. 대전차용, 대인용, 연막용, 신호용 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총류탄은 개머리판을 땅에 대고 각도를 주어 발사했다. 총류탄이 무겁고 반동이 매우 커서 여러 번 사용하면 소총이 부숴질 수도 있었다. 가벼운 탄은 어깨견착이나 겨드랑이 아래에 끼고 발사할 수 있었다.  

 

 

 

대전차 총류탄의 극단적인 예입니다. 

대전차수류탄 
대전차수류탄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고폭탄으로 장갑이 얇은 곳이나 트랙을 노렸다. 작은 크기로 위력은 크지 않았다. 트랙, 포탑 위, 엔진 데크에 효과가 있었다. 영국과 소련이 주로 생산했다. 미국은 개발하지 않았고 일본은 전쟁 말기에 별 효과가 없는 것들을 지급했다.  
효과를 높이기 위해 크기를 키우고 안전핀이나 낙하산을 달아서 장갑에 부딪치는 각도를 맞췄다. 유효투척거리는 20~30m가 고작이었다.   

 

 

 

 

 

 



투척지뢰  
대전차수류탄의 대형 버전이었다. 용감한 보병이 직접 전차에 붙이거나 아래에 던졌는데 실제로는 자살공격이었다. 지연신관을 사용해 전차에 붙이는 흡착지뢰는 보병이 몸을 던져 피할 시간 정도 밖에 안되었다. 투척지뢰는 무게와 크기때문에 최대 10m 거리 이내에서 사용했다. 전차의 시야가 제한된 험지에서 용감한 보병이 사용했다.   

 

 

 

독일보병이 많이 사용한 자석 흡착지뢰입니다. 

 

 

 

독일은 연합군도 자석지뢰를 사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전차에 지메리트Zimmerit 피막을 입혔는데 다른 국가에서는 사용하지 않았기때문에 괜한 헛수고였습니다. 덕분에 플라모델러에게만 좋은 소재가 되었습니다. 

사진은 전차전의 전설 그 자체 미하엘 비트만Michael Wittmann입니다. 전차 138대와 대전차포 132문을 격파했습니다. 

 


화학연막탄 
근접전에서 보병이 연막탄을 사용했다. 최루탄은 전차의 환기시스템에 최루가스를 넣어 전차병을 기절시키거나 나오게 만드는 목적이었다. 일본군은 독가스수류탄을 개발했다.  
실전에서 연막과 가스수류탄은 전차가 특정 지역으로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대전차지뢰
1차대전에서 포탄을 묻으면서 처음으로 지뢰가 사용되었다. 2차대전 내내 모든 전선에서 수백만개의 지뢰가 매설되었다. 북아프리카에서는 자연장애물이 적었기 때문에 양측에서 모두 사용했고 일본군은 태평양전쟁에서 밀리면서 지뢰사용량을 늘렸다. 
대전차지뢰는 압력으로 동작하며 대형지뢰는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일부러 대인지뢰를 함께 매설해 보병이나 공병이 전차통행로를 만들지 못하게 했다. 가짜 지뢰를 섞어 혼란을 주기도 했다. 대규모로 집중매설된 지뢰밭보다 넓은 범위에 몇 개만 매설한 지뢰밭이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 

 

 

 

기타 대전차화기
다양한 응급대전차화기가 발명되었다. 정말 최후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고도의 훈련된 병사도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 몰래 접근할 수 있는 장애물이 있거나 전차를 지원하는 보병이 없거나 운이 무척 좋아야했다. 1940년 영국육군매뉴얼은 마치 혼자서 호랑을 사냥하는 것과 같다고 비교했다. 그래도 대전차전 전술훈련은 계속 되었다. 
가방폭탄Satchel Charges는 간단한 지연신관을 연결한 배낭폭탄으로 엔진데크, 트랙, 포탑링에 던져 터트렸다. 장대폭탄도 있었다. 

 

 

 

 

소련군이 야심차게(?) 기획한 자살견입니다. 전차 밑에서 지내게 훈련시킨 후에 등에 접촉신관의 폭탄을 지고 독일전차에게 달려가게 했지만 독일군이 개만 보면 사살했고 거꾸로 아군전차 밑으로 기어들어가는 부작용이 발생해서 큰 전과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폭탄과 지뢰를 끈이나 막대로 연결해서 전차가 지나갈 때에 밀거나 끌어당겨 격파했습니다. 

 

 

 

이건 정말로 전차병이 다 기절했거나 졸거나 기타 등등의 불가사의한 경우겠죠. 일본군은 보병 열명이 죽으면 전차 한대를 격파할 수 있다고 훈련시켰지만 적 보병이 없어야겠죠. 그나마도 전차가 주저 앉았던지요. 

 

 

 

 

 

 

가장 일반적인 보병중대의 대전차전 전술입니다. 

소총중대는 거의 비슷한 형태로 대전차전에 대비했다. 2개 소대를 전방에 배치하고 다른 소대는 후방에서 지원했다. 
보안감초소(1)을 상당히 앞에 설치해서 적의 접근을 조기에 탐지하고 적의 정찰을 방해한다. 대부분의 대전차화기(2)는 전차에게 유리한 지역을 막고 기관총(3)은 전차에게 불리하고 적 보병이 접근할 지역을 방어한다. 여유가 있다면 대전차장애물(4)을 자연장애물(5)와 연결시켜 설치한다. 
교량(6)을 파괴하고 저지점에 지뢰를 매설하고 나무를 쓰러트려 도로장애물(8)을 설치한다. 대전차총이나 바주카와 같은 보병 대전차화기를 소대 당 하나이상 지급한다. 상황에 따라 특정 소대에 모두 지급할 수 있다. 
대대에서 지원받은 소규경 대전차포(9)가 있다면 전차에게 가장 유리한 지형에 배치한다. 전차의 예상 이동로를 곡사포나 박격포를 집중시켜 전화와 보병을 분리시킨다. 보병 대전화화기 중 일부는 지원소대에 지급해서 방어선을 보강하거나 전차의 우회에 대비한다. 
전차엽병Tank Hunter은 지원소대 근처에 배치하거나 아예 전방소대에 배치해서 방어선을 돌파한 전차를 상대한다. 대전차지뢰가 충분하다면 소대방어선 앞이나 우회로에 매설한다(11). 

 

 

 

 

 

 

모든 국가가 당연히 보병의 대전차방어 훈련에 집중했습니다. 

 

 

 

한가롭게 모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적전차 식별용 교육교재입니다. 아래는 소련군의 독일전차 교육자료입니다. 

화살표는 화염병, 조준경은 모든 화기, 십자에 포탄은 모든 포, 폭발뭉치는 투척수류탄 취약지점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오른쪽 모서리를 주목해야 합니다. 각국의 성형작약탄 대비책인데... 소련은 보병입니다. 

그런데 웃을 일도 아닌 것이, 실제로 보병을 태우고 보병의 지원을 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보병의 로켓공격에 워낙 큰 피해를 입어서 전차에 대보병 기관총을 도배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스탈린그라드에 독일보병의 대전차전전술이 긴박하게 재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