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믿거나 말거나 토막전사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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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타

2020. 12. 24.

 

 

전설이 될 수 있었던 제독

1788년, 예카테리나Catherine the Great여제는 러시아함대의 신임제독으로 아주 유능한 사람을 임명했다. 여제는 “흑해에 불독 한 마디를 더 데려왔다”고 말하면서 파벨 드존스Pavel Dzhones를 해군소장Rear Admiral에 임명해 흑해에서 투르크를 몰아내게 했다. 

 

1762~1796년 동안 러시아를 철권통치한 예카테리나여제입니다. 러시아를 다시 일으켜 여제라고 불리지만 온갖 추문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그녀 자신도 독일 프로이센 출신으로 외국인재를 많이 기용했습니다. 

표트르대제 일대기를 정리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한 번 정리하고픈 인물입니다.  

파벨제독은 드녜프르Dnieper강 하구에서 전함 12척으로 여제의 기대에 부응했다. 공격적인 전술로 훨씬 많은 투르크함대를 여러 차례 격파했고 심지어 기함을 투르크 갤리선 옆에 붙이고 백병전을 벌이기도 했다. 

제독은 당연히 영광과 명예를 기대하면서 여제에게 “아마도 명예에 너무 집착하는 지 모르겠습니다”라는 편지를 보냈지만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왔다. 러시아귀족이 그의 전과를 가로챘고 그는 해임된 후에 다시는 바다로 돌아가지 못했다. 

러시아에서는 정치파벌 때문에 몰려나 “나는 전투를 시작도 안 했다”라는 말만 기억되지만, 스코틀랜드 출신 미국인인 파벨제독은 이미 미국독립전쟁에서 놀라운 전과를 영웅이었다.
그의 진짜 이름은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였다. 

 


존스는 1779년에 최전성기였다. 영국해안에서 봉옴므 리처드Bonhomme Richard를 지휘하며 영국의 대형전함 세라피스Serapis와 3시간 동안 격전을 벌였다. 자신의 전함이 나중에 침몰할 정도로 심한 공격을 받고 항복권유를 받았지만 결국에는 대역전에 성공했다. 

 

존 폴 존스는 미국독립전쟁 당시에 거꾸로 영국을 습격할 정도로 역발상의 지휘관이었습니다. 

당연히(?)영국전함에 KO패 직전까지 몰리지만, 단 한 방으로 대역전을 거뒀습니다. 

미국의 첫번째 해전영웅이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캐리브해에서 상선선장으로 일하다가 1773년의 선상반란모의를 진압하다가 선원을 죽였다. 처벌을 피해 버지니아 식민지로 달아나 이름을 바꾸었다. 

영국전함의 항복권유에 “나는 전투를 시작도 안 했다”라는 말을 정말로 했는지는 의심스럽다. 본험 리처드에 승선했던 장교가 그런 말을 실제로 들었다고 했지만 46년 후의 주장이다. 전투 직후의 증언에 따르면 존스는 “침몰할 수도 있겠지만 항복하면 개자식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다른 주장에 따르면 “양키는 이 정도로는 항복을 안 해. 더 두들겨 맞아야지”라고 했는데, 실제로 한 말은 불분명해도 그가 항복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존 폴 존스의 활약에 대해서는 이미 아주 자세하게 설명해두었습니다. 

blog.daum.net/uesgi2003/404

 

현대 미국해군의 아버지, 존 폴 존스

갈수록 운전을 꺼리게 됩니다. 달리기 전용인 인피니티를 가지고 있으면서 운전을 꺼린다니, 이상하기는 합니다만 화를 안내고 운전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반쯤 차선을 걸치고 앞에서 알짱

blog.daum.net

 

 



프랑스가 연필을 발명한 이유

프랑스혁명 5년 후인 1794년, 프랑스는 영국, 스페인,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등 유럽전체와 전쟁 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사방으로 막힌 프랑스는 귀중한 전략자원을 수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펜이다. 

깃털 펜은 사용하기 번잡스러운데 군용, 특히 전투 중에는 더더욱 사용하기 힘들었다. 급히 전령을 보내거나 적의 배치를 그려야 할 경우에는 흑연 펜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렇지만 흑연은 영국과 프로이센이 대부분 공급했고 전쟁국가에게 수출할 리가 없었다. 흑연공급이 줄어들고 프랑스는 궁지에 몰렸다. 

프랑스 전쟁상은 니콜라스 자크 콩트Nicholas Jacques Conte라는 유명한 발명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콩트는 흑연을 아주 고운 가루로 갈아서 다른 것과 섞기로 했다. 그렇지만 이미 여러 발명가가 아교 심지어 고래기름까지 시도했다가 실패한 방법이었다. 

콩크는 8일간 쉬지 않고 시험했고 마침내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흑연을 점토와 섞고 형틀로 누른 후에 가마에서 구웠다. 약간의 흑연만으로 수십자루의 연필을 만들어냈다. 콩트의 시도는 엄청난 성공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연필을 만들고 있다.

 



1795년 1월, 콩트는 프랑스 특허 32번을 등록했고 그렇게 현대식 연필이 태어났다. 

콩트는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침공에서도 큰 역할을 했다. 프랑스군이 전투 후에 많은 군수품을 상실했는데, 콩트는 다양한 기계와 기구를 만들어내서 프랑스군이 계속 전투를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콩트는 점토를 더 사용해서 더 단단한 연필, 점토가 적어서 더 부드러운 연필 등 4 종류를 만들어냈다. 국민학교 시절에 사용하던 바로 그 연필이다. 




넬슨의 허세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넬슨제독. 넬슨경. 아마도 영국해전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인물일 것이다. 그는 1805년 트라팔가Trafalgar전투의 승전으로 유명하다. HMS빅토리Victory 갑판에서 함대에게 “영국은 모든 병사가 제 임무를 다할 것으로 기대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함대를 격파해서 영국을 구한 후에 부상이 악화되어 숨졌다. 

 


그는 4년 전의 다른 전투에서도 또 하나의 명언을 남겼다. 코펜하겐Copenhagen전투에서, 그는 하이드 파커Hyde Parker라는 나이 많은 제독을 모시고 있었다. 넬슨은 소함대를 이끌고 덴마크함대에게 달려들었다가 심한 반격을 받았다. 

 


파커제독은 아주 먼 거리의 기함에서 전황을 보고 있다가 넬슨의 함대가 전멸직전이고 패전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넬슨에게 퇴각 깃발신호를 보냈다. 넬슨은 덴마크함대에게 결정타를 날리고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기함의 명령에 신경쓰지 않았다. 장교 한 명이 명령을 전달하자 넬슨은 망원경으로 보고는 “신호가 안보이는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 전투를 벌였다. 

나중에 영국전체가 알게 되었듯이, 넬슨은 안보이는 눈에 망원경을 댔었다. 그래서 노골적인 명령불복종을 피하면서 자신의 판단대로 전투를 이끌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완승을 거뒀고 못 본 체하다Turn a blind eye라는 말이 태어났다. 
왜 못 본 척 해?라는 말을 들으면 넬슨을 먼저 떠올리길.

코펜하겐전투에서 덴마크함대는 사상자 6,000명으로 영국함대보다 10배의 손실을 입었다. 넬슨은 이 전투로 승진해서 자신의 함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전투 중 신호장교에게 한 말은 “눈이 하나라서, 가끔은 못 볼 권리가 있네”였다. 




전투보다 무서운 모기

나폴레옹은 북미에 가지고 있는 방대한 영토를 활용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1802년, 그는 사촌인 샤를 르끌레르Charles Leclerc에게 군대를 주어 뉴올리언스를 점령하고 개척민을 보내 프랑스 식민지를 세워서 신 프랑스를 만들 생각이었다. 

나폴레옹은 르끌레르에게 가던 길에 노예반란으로 완전히 무너진 아이티Haiti부터 재점령하라고 명령했다. 아이티반란군은 프랑스정규군의 상대가 안되었고 몇 주만에 섬을 완전히 내주게 되었다(아래 지도 참조). 그렇지만 훨씬 무서운 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모기였다. 

 


봄비는 모기떼를 몰고 왔고 황열병이 급속하게 퍼졌다. 지역원주민은 큰 상관이 없었지만 프랑스병사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수만명이 죽어갔다. 1802년 10월에는 르끌레르도 병사했다. 증원군이 도착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아이티 노예들은 쇠약해진 프랑스군을 상대로 치열한 게릴라전을 펼쳤고 막심한 피해를 입혔다. 

프랑스는 참패직전에 몰렸다. 질병과 게릴라 사이에서 약 50,000명이 죽은 것으로 추산된다. 그리고 나머지는 1803년에 항복했다. 나폴레옹은 사촌이 죽고 군대가 소멸하자 신세계에 대한 꿈을 접고 대신에 북미의 프랑스영토를 미국에 팔기로 했다. 

미국은 루이지애나를 구입해 영토를 2배로 늘렸는데 아이티 모기와 노예가 아니었다면 벌어지지 않을 거래였다. 

루이지애나 합병으로 미국은 1,500만 달러만 내고 2,150제곱킬로미터의 영토를 얻었다. 1,224평의 땅을 겨우 300백원에 구입한 셈이다. 

투생 루베르 튀르Toussaint L’Ouverture가 아이티노예반란을 지휘했는데 그도 노예출신으로 종신총독을 자칭했다. 프랑스가 침공하자 바로 휴전을 맺고 프랑스감옥으로 기꺼이 들어갔다. 아이티는 1803년에 완전독립했는데 그 이전에 죽었다. 

 



황열병은 거의 100년 후에 미군의관 월터 리드Wlater Reed가 모기가 매개체라고 밝혀냈다. 

 




유산탄의 충격

1800년대 초반, 유럽전장에는 신무기가 등장했다. 영국군장교가 30년 동안 완성시키느라 고생한 무기였다. 포탄의 빈 공간 안에 작은 소총탄을 가득 넣고 화약에 도화선을 연결한 후에 적보병 대열을 향해 쏘았다. 머리 위에서 터지면 그 일대에 소총탄이 마치 카페트처럼 퍼져서 덮쳤다. 

 



유산탄 발명자는 포탄개발과 완성에 평생을 바쳤다. 영국군은 1803년에 유산탄을 채택했고 나폴레옹전쟁에서 처음으로 투입했다. 밀집대형에 무시무시한 효과를 보였고 프랑스군은 영국군이 포탄에 독가스를 넣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공포에 질렸다. 

 


영국군포병사령관 조지 우드George Wood경은 워털루Waterloo전투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하는데 유산탄의 공이 매우 컸다고 인정했다. 그는 포탄발명가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투의 향방을 완전히 바꾸었고”라고 썼다. 

포병의 위력은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고 유산탄을 발명한 장교의 이름은 역사에 영원히 남았다.
헨리 슈랍넬Henry Sharpnel 

나폴레옹은 영국군의 불발 유산탄을 분해해 비밀을 캐려고 했지만 복제하는데 실패했다. 

슈랍넬은 파편을 의미하는 영어단어가 되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황당한 전투

1812년 전쟁은 미국과 프랑스의 교역을 영국이 봉쇄하면서 벌어졌다. 미국은 몇 년 동안 영국의회의 명령을 바꾸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미국은 1812년 6월 18일에 전쟁을 선포했다. 
그렇게 가장 황당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영국정부는 2주 전에 의회명령을 철회했기 때문에 양쪽이 전투를 벌일 이유가 전혀 없었다. 제임스 메디슨James Medison대통령은 영국의 결정을 알았다면 전쟁선포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렇지만 영국의 결정은 몇 개월 후에나 워싱턴에 도착했고…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태였다. 

영국과 미국은 2년 동안 전쟁을 벌였다. 그 중에서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이 영국군을 일방적으로 두들긴 뉴올리언스전투가 가장 유명하다. 1815년 1월 8일에 벌어진 이 전투로 잭슨은 미국의 영웅이 되었고 나중에 대통령까지 오르게 된다. 
왜 역사상 가장 황당한 전투냐고? 미국과 영국은 이미 종전에 합의했는데 정작 영국원정군과 미국수비대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1814년 12월 24일, 겐트Ghent조약으로 양국은 종전에 합의했는데 2주 후에 전투가 벌어졌다. 

뉴올리언스전투는 역사상 가장 일방적인 전투이기도 하다. 영국군은 미시시피강에 펼쳐진 미군방어선을 공격했다가 참담한 피해를 입었다. 영국군은 2,000명 이상을 잃었지만 미군피해는 겨우 70명이었다. 

 


겐트조약을 협의하는데 2.5년이 걸렸고 유럽에서 워싱턴으로 합의문을 보내는데 다시 5주가 걸렸다. 미국의회와 대통령은 하루만에 조약을 비준하고 종전했다. 

 

이 전투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정리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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