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믿거나 말거나 토막전사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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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타

2020. 12. 25.

 

2인군대 

1814년, 74문의 영국군 HMS 불워크Bulwark가 매사추세츠 시츄에이트Scituate를 습격해 항구에 있던 선박 6척을 불태웠다. 마을주민은 즉시 민병대를 조직해 등대 옆에 진영을 차리고 영국군을 기다렸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가고 별 일이 없자 그대로 해산했다. 

9월, 불워크가 다시 돌아왔다. 등대지기의 18살 딸인 레베카 베이츠Rebacca Bates는 영국전함을 발견했다. 병사를 가득 태운 보트가 다가오고 있었고 항구에는 상선 2척이 무방비로 정박해있었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웠고 마을로 달려가 경보를 울릴 여유가 없었다. 레베카는 민병대가 등대에 두고 간 파이프와 드럼이 생각났다.

민병대는 자매에게 몇 가지 군가를 가르쳐주었다. 레베카는 영국군을 속이기로 했다. 동생에게 “몸을 숨기자. 우리를 보면 비웃을거야”라고 말하고 언덕 뒤에 숨어 양키 두들Yankee Doodle을 연주했다. 

 


영국군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리듬에 놀랐다. 미군이 집결해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전함에서 깃발이 올라갔고 습격조는 물러났다. 시츄에이트는 레베카와 아비게일Abigail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고 마을은 2인조 미군An American Army of Two라고 불렸다. 

레베카 베이츠는 아주 오래 살았고 두 자매는 이야기에 거짓이 없다는 맹세를 남겼다. 

 

 

전설과 신화는 이렇게 미화되고 과장되기 마련입니다. 


미국 국가의 탄생

1812년 전쟁 중에, 영국군이 워싱턴에 불을 질러 큰 화재가 났다. 영국군은 잿더미를 뒤로 남기고 메릴랜드를 관통해 진군했다. 대부분의 병사가 빠져나간 후에 술에 취한 낙오병 2명이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웠다. 어퍼 말버로Upper Marlboro의 의사 윌리엄 빈스William Beanes는 너무 화가 나서 두 명의 영국군을 직접 감옥에 넣었다. 
한 명이 탈출해 동료를 데리고 돌아왔다. 윌리엄을 정박해 있던 영국군전함으로 끌고 가자 변호사친구가 윌리엄의 석방을 위해 나섰다. 마침 영국군은 맥켄리McHenry요새를 포격하던 중이어서 포격이 끝날 때까지 두 사람을 억류했다. 

 

이전 이야기에서 소개했던 유산탄을 쏘았다고 합니다. 

변호사 프란시스 스코트 키Francis Scott Key는 요새가 맹렬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국기를 높이 세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 장면을 보고 ‘성조기Star Spangled Banner’라는 시의 영감을 얻었다. 

키는 “천국의 아나크레온To Anacreon in Heaven”이라는 노래의 운율을 빌려서 노래를 만들었다. 천국의 아나크레온은 영국의 유명한 술자리 노래였다. 

 



키는 전투 다음 날에 볼티모어호텔에서 시를 썼고 일주일만에 출판했다. 
의회는 성조기 국가에 대해 법안과 결의를 40번이나 한 후, 1931년에야 국가로 인정했다. 

 

 



마약먹은 나폴레옹

1815년, 워털루. 나폴레옹은 전투준비를 마쳤다. 영국, 벨기에, 네덜란드와 독일군이 프랑스를 끝장내겠다고 몰려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나폴레옹은 당대 최고의 지휘관이었다. 단순히 대포와 기병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었다.
자연의 힘이 필요했다. 

 


막강한 황제도 자연의 힘 앞에는 무기력했다. 치질과 요로감염으로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전투 전날에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아편을 먹을 수 밖에 없었고 늦잠을 자서 연합군을 각개격파할 시간을 날려 보냈다. 

당일 아침에도 너무 고통이 심해서 말을 거의 타지 못했다. 직접 전장을 정찰하지 못했다. 아편을 더 먹었다는 증언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전황파악을 제대로 못했을 것이다. 

황제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고 최후로 치닫는 운명을 막지 못했다. 

 

위장병이 심해서 늘 저렇게 손을 넣었다느니, 별의 별 이야기가 다 있는데 저 당시로 가서 직접 물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죠. 그래서 믿거나 말거나.... 재미로만 보면 됩니다.

워털루전투의 승자가 누구였냐고? 영국은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하루 종일 나폴레옹을 상대했던 웰링턴Wellington공작이라고 하지만, 독일은 블뤼허Blucher원수라고 한다. 전장에 뒤늦게 도착했지만 전투의 향방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누가 승자였던 상관없이 나폴레옹이 패자인 것은 확실하다.

 

 

 

 



미치광이 샤카

창을 던져 맞추지 못하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에게 무기를 던져주는 셈이다. 1800년대 줄루Zulu전사는 그런 단점을 깨닫고 아프리카대륙의 역사를 바꾸는 결정을 내렸다. 

샤카Shaka라는 줄루족전사는 가벼운 창을 적의 대열에 던지는 전통전술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짧고 무거운 창에 훨씬 큰 날을 달아서 찌르는 창을 만들었고 적에게 접근해서 백병전을 벌였다. 

 

샤카 카센잔가코나입니다. 

이클와Ikawa라고 불렀는데 적을 찌른 후에 뽑을 때에 나는 소리와 비슷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샤카는 이 무기를 사용해서 아프리카 최고의 전사이자 지휘관으로 명성을 얻었다. 처음에는 몇 명 밖에 안되던 부하가 50,000명까지 불어났고 제국을 세웠다. 그는 단순히 창이 아니라 총력전개념까지 도입해 아프리카대륙의 전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는 부족을 점령하며 2백만명을 죽였고 남아프리카 일대의 초토화시켜 백인이 손쉽게 이주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었다. 

소년 시절의 샤카는 어머니와 함께 마을에서 추방당한 적이 있었는데 나중에 어머니가 죽자 줄루족 수천명을 죽여 유족이 자신처럼 슬퍼하게 만들었다. 미쳐 날뛰다가 농사를 전면금지하고 임산부를 모두 죽였다. 심지어 젖소까지 죽여서 새끼들까지 어미를 잃은 슬픔을 겪게 만들었다. 

샤카는 1816년~1828년 동안 줄루족을 통치했고 이복동생에게 살해당했다. 
줄루전사눈 전쟁춤을 추면서 이클와 창을 휘둘렀다. 샤카는 창술과 함께 방패술도 가르쳤는데, 방패 왼쪽 끝으로 적의 방패 뒤를 낚아채면서 적의 뒤로 돌아 무방비상태의 적의 등을 노렸다. 

 




크리스마스의 꽃 포인세티아

조엘 포인세트Joel Poinsett는 외교관과 의원을 거쳐 1837~1841년 동안 미국전쟁상을 역임했다. 그는 2가지 언어로 이름을 남긴 독특한 미국 정치인이었다. 

멕시코대사로 재직 중에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지는 정치음모에 깊게 관여했고 심지어 혁명군과 내통해서 멕시코정부를 전복시키려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멕시코정부는 너무 지나친 내정간섭에 분노했고 그의 무례하고 뻔뻔스러운 행동에 뽀인세티스모Poinsettismo라는 말을 붙였다. 
지나친 간섭을 뜻한다. 

그는 결국 멕시코를 떠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이전에 우리가 지금도 크리스마스를 기억하게 만드는 독특한 행동을 했다. 

포인세트는 열렬한 식물학자로 멕시코 남부에서만 자라던 꽃을 발견하고 매우 기뻐했다. 아즈텍인은 꾸에뜰락소치뜰Cuetlaxochitl이라고 불렀다. 그는 온실에 꽃을 키우다가 미국으로 몇 송이를 보냈다. 결국 겨울에 꽃을 피우는 이 식물은 크리스마스의 상징이 되었고 전쟁상의 이름을 붙여 평화의 계절을 기념하게 되었다.
포인세티아Poinsettia다. 

전쟁상 포인세트는 미군을 재건했고 웨스트포인트를 확장시켰다. 그는 스미소니언Smithonian박물관 건립을 주도했다. 그렇지만 그의 이름은 꽃으로 더 유명하다. 

폴 엑크Paul Ecke라는 캘리포니아 농장주가 1920년대에 포인세티아를 크리스마스 꽃으로 마케팅했다. 이후 40년 동안 계속 밀어붙인 끝에 세계가 크리스마스 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늘 죽어서 궁금했었는데 겨울 꽃이라고 추운데 놓으면 안되는군요. 역시 역사는 많은 것을 알려줍니다.

멕시코 출신이라 영상 10도 아래로 내려가면 얼어죽는다고 합니다. 

 

 




알라모 영웅의 추락

알라모Alamo전투에서 데이비 크로켓Davy Crockett이 마지막 순간까지 분전을 펼친 것으로 착각하는 미국인이 많다. 그의 죽음 직후의 자극적인 소문에 따르면, 그는 멕시코군 17명의 시체에 둘러 쌓여 있었는데 11명은 단검으로 죽였고 나머지는 소총과 권총 4정으로 죽였다고 한다. 

 

마치 대규모 공성전처럼 오해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작은 수도원 건물에서, 1836년 2월 23일~3월 6일까지 벌어진 전투입니다. 멕시코군은 행군 중에 오히려 더 많은 숫자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설은 그렇게 만들어져 이어졌다. 그런데 실제는?

알라모에서 항전한 텍사스인 189명이 모두 죽었고 멕시코병사들은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그들은 크로켓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상당히 다르게 묘사했다. 

멕시코장군 산타 안나Santa Anna는 병사들에게 알라모를 공격하면서 절대로 포로를 남기지 말라고 명령했고 이후 벌어진 백병전은 더 없이 치열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전투 끝에, 외진 방에 숨어 있는 크로켓과 6명을 발견했다. 크로켓은 알라모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멕시코국민으로 충성을 다할 테니 풀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들을 산타 안나 앞에 끌고 가자, 장군은 포로를 잡지 말라고 했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고 몹시 화를 내며 바로 포로를 죽이라고 명령했다. 한 멕시코장교는 “마치 호랑이가 먹이를 덮치듯이 손에 든 칼로 무기력한 포로를 내리쳤다”고 기록했다. 

알라모전투 후 몇 주 만에 진실이 밝혀졌고 많은 신문이 보도했다. 그렇지만 조작된 전설이 훨씬 흥미로웠고 지금도 그렇게 전해지고 있다. 

크로켓이 용감하게 싸운 것은 사실이었다. 알라모에서 나온 편지를 보면 멕시코군의 초반 포격을 설명하고 있다. “데이빗 크로켓은 사방을 돌아다니며 병사들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했다.” 그렇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전설처럼 싸웠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크로켓이 아주 용감하게 소총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원래 전설은 저렇게,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조작해 내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 이야기의 원서는 미국인이 미국에서 출판한 것이지 멕시코 원서가 아닙니다. 

멕시코장군 마누엘 페르난데 카스트리욘Manuel Fernande Castrillon은 유명한 개척민을 알아봤고 산타 안나에게 포로를 살려주자고 간청했다. 화가 난 산타 안나는 “포로를 어떻게 하라고 했었지? 왜 내게 데려왔나?”라며 거절했다. 그리고 처형명령을 내렸다. 

크로켓은 개척민 이미지를 잘 가꿔왔지만 정치인의 경력도 포기하지 않았다. 테네시의회에서 4년, 미국의회에서 6년을 지내다가 낙선했다. 그는 생활비를 벌고 정치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텍사스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