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드레드노트부터 항공모함까지 - 2차대전 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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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2021. 4. 21.

 

193991일 새벽, 구형 독일전함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wig-Holstein(그림 참조)이 단치히Danzig만을 막고 있는 폴란드 베스테르플라테Westerplatte요새를 포격하면서 2차대전이 시작되었다. 루프트바페가 폴란드해군을 무력화시키려고 비행했다. 기상악화로 시야가 좋지 않았지만 융커스 Ju87 슈투카 급강화폭격기가 오후 2시에 정박해 있던 폴란드 어뢰정 마주르Mazur를 격침시켰다.

 

 

폴란드해군 총사령관 운루그Unrug는 독일공군의 대대적인 공습을 예상하고 이미 함대에게 위험지역을 벗어나라고 명령해 두었다. 더구나 해군이 독일의 침공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830, 구축함 3척이 영국으로 향했다. 구축함 1척이 잠수함 5척 등과 함께 남았다. 93일 오전, 어뢰정이 비스와Vistula강 하구에서 독일 구축함들과 마주쳤다. 곧이어 벌어진 교전에서 해안포가 15cm 포를 맞춰 독일선원 4명을 죽였다.

독일군은 오후 늦게 보복에 나섰다. 아직 건조 중인 그라프 체펠린에 탑재할 예정인 슈투카 편대와 하인켈Heinkel He 115수상공격기가 공습에 나서 폴란드 구축함, 기뢰부설함, 건보트와 소형선박을 모두 격침시켰다.

93일 오후,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와 전쟁에 돌입했기 때문에 북해에 기뢰를 부설하고 구축함을 모두 기지로 돌려보냈다. 발트해는 이제 더 이상 주무대가 아니었다.

 

 

폴란드 구축함이 미리 바다를 비워 두었기 때문에 폴란드 잠수함이 마음껏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폴란드해군은 1920년대 초부터 방어전술의 중심이었고 프랑스에 노르망-페노Normand-Fenaux형 기뢰부설잠수함 3척을 주문했다.

해군이 잠수함 운용경험이 쌓이자 네덜란드에 대양용 대형잠수함 2척을 더 주문했다. 첫번째 오르젤Orzel은 예정대로 진수되어 19392월에 취역했지만 두번째 세프Sep(사진 참조)는 친독일 노동자의 태업으로 계속 지연되었다.

19393,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자 테러가 염려되었고 42일에 시험항해를 하던 중에 로테르담으로 돌아가지 않고 발트해로 향했다. 네덜란드 근로자가 승선한 상태였다. 160km를 항해하다가 연료가 다 떨어져서 그디니아Gdynia로 견인되었다.

 

 

94~5, 독일함선이 요새를 계속 포격하는 동안, 잠수함 3척이 비스와 강 부근에 기뢰 50개를 띄웠다. 세프가 잠항하다가 독일기뢰제거함과 충돌해 손상을 입었지만 기뢰 한 발이 독일기뢰제거함 1척을 격침시키고 24명을 죽였다. 5일 오후, 잠수함 5척은 모두 발트해 북부로 퇴각해서 수리를 받았다.

911, 폴란드군이 무너지고 독일이 맹진격하면서 잠수함도 영국이나 발트해 중립국으로 탈출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3척은 스웨덴으로 가서 억류되었고 오르젤은 해도도 없이 운좋게 영국으로 건너갔다.

 

독일해군참모부는 19398, 폴란드침공이 임박하자 전투함을 대서양에 보내 연합군 항로를 공격할 준비를 했다. 819, 유보트 14척이 출발했고 2일 후에는 13,000톤의 포켓전함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Admiral Graf Spee가 어둠을 틈타 조용히 대서양 남부로 향했다.

 

 

두번째 포켓전함 도이칠란트Deutschland가 그릴랜드 남부로 향했다. 바다에 있는 모든 독일상선에게 최대한 속도를 높여 귀국하거나 우호항구로 향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93, 영국과 프랑스가 참전했고 경순양함 HMS 아작스Ajax가 대서양남부에서 독일화물선 2척을 가로 막았다. 화물선은 노획을 피해 좌초를 선택했다. 같은 날, U-30이 영국여객선 아테니아Athenia를 격침시켰다.

구축함과 외국선박의 도움으로 1,300명이 구조되었지만 112명이 목숨을 잃었다. 독일은 잠수함이 무장상선으로 착각했다고 해명했지만 함장이 마음대로 여객선을 공격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은 독일이 무차별공격을 시작했다고 보고 상선에게도 호위함을 붙였다.

 

뉴욕에서 돌아오던 독일여객선 브레멘Bremen은 무르만스크Murmansk로 피항해 위기를 피했지만, 영국해군은 9월 한 달에만 상선 108척을 봉쇄하고 그 중 28척을 나포했다. 노르웨이와 독일 앞바다를 봉쇄하던 영국잠수함의 전과는 좋지 않았다.

910, 트리튼Triton이 아군 잠수함인 HMS 옥슬리Oxley를 격침시켰고 4일 후에는 HMS 소드피시WordfishHMS 스터전Sturgeon의 어뢰공격을 받고 침몰할 뻔 했다. 917, HMS 시호스Seahorse는 영국공군 해안방위대의 폭격을 가까스로 피했다.

 

영국본토함대Home Fleet는 독일의 공습에 대비해 기지를 스카파 플로우에서 로크 에웨Loch Ewe로 옮기고 북부경비를 계속했다. 이 당시만 해도 오크니Orkney기지 방어는 매우 허술했다. 항모 1척과 구축함 4척으로 구성된 유보트 탐색함대가 해협과 서쪽을 수색했다.

브리튼제도 서쪽은 제2 유보트함대의 잠수함 11척이, 67 유보트함대의 11척이 비스카이Biscay만 대서양 서쪽과 이베리아만 앞바다에서 활동하며 상선 7척을 격침시키고 2척을 나포했다.

914, 유보트는 대전과를 올릴 기회를 놓쳤다. U-39가 헤브리디스Hebrides 서쪽에서 항모 아크 로얄에게 어뢰를 발사했다. 자성기폭장치의 신형어뢰가 너무 빨리 터졌고 허위구축함이 U-39를 격침시키고 승무원을 포로로 잡았다.

17, 영국해협 서쪽에서 U-29가 항모 커레이져스Courageous를 격침시켰다. 22, 구축함이 U-27을 격침시켜 원수를 갚았다.

 

 

926, 북해에서 잠수함 스피어피시Spearfish를 구조하는 동안 독일공군이 공습에 나섰고 융커스 Ju 88의 폭탄 한 발이 전투순양함 후드Hood를 맞췄지만 튕겨나갔다. 하인켈 He 111 11대가 급파되었지만 함대를 찾지 못했다.

921, 영국해군정보부는 그라프 쉬페와 도이칠란트가 항해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해군성은 지중해에서도 일부 전투함을 빼내 대응에 나섰다. 107, 독일해군은 포켓전함에 대한 추격을 걱정하고 독일함대 일부에게 노르웨이 해안 남부로 지원을 명령했다.

전투순양함 샤른호스트, 경순양함 쾰른과 구축함 9척이 영국본토함대를 유보트 4척과 공군의 함정 안으로 유인할 생각이었다.

 

포브스Forbes제독은 적이 바다에 나온 것을 알자, 주력을 셰틀랜드Shetland제도(지도 참조) 북동쪽으로 보내 대서양으로 나가는 길목을 막았다. 넬슨Nelson, 로드니Rodney, 후드와 리펄스Repulse, 순양함 오로라Aurora, 쉐필드Sherffield, 뉴캐슬Newcastle, 퓨어리어스, 그리고 구축함 12척이 투입되었다.

동시에 경순양람 에딘버러, 글라스고우Glasgow와 사우스햄턴 등의 험버Humber함대가 독일전함을 수색했다.

양쪽에서 보낸 폭격기가 서로를 찾는데 실패했다. 109, 독일함대는 항로를 반전해 키엘로 기환했고 1011, 본토함대의 주력도 귀환했다.

 

 

포브스의 전함 중 로얄 오크는 주력에서 떨어져 나와 셰틀랜드와 오크니제도 사이의 페어 아일Fair Isle해협을 지키고 있다가 스카파 플로우로 귀환했다. 1013~14일 밤, 독일 U-47이 경계망을 뚫고 잠입해 어뢰 3발을 맞췄다. 로얄 오크는 833명과 함께 바다속으로 가라 앉았고 영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2일 후, Ju 88 폭격기가 퍼스Firth에 정박 중인 본토함대를 공습했는데 후드로 몰려들었다. 그렇지만 사우스햄프턴과 에딘버러, 구축함 모하크Mohawk에만 가벼운 피해를 입혔다. 대신에 폭격기 2대가 격추되었다.

다음 날, 스카파 플로우도 공습했지만 겨우 보급선 아이언 듀크Iron Duke에만 비간접적인 피해를 주었다.

 

 

독일의 자기기뢰는 선박이 근처를 지나기만 해도 폭발했기 때문에 영국의 항로에 큰 위협이 되었다. 19399~10월 두 달 동안에만 59,027톤의 선박을 잃었고 영국의 기뢰제거선은 접촉식 기뢰만 제거할 수 있어서 해결되지 않았다.

11월에도 유보트와 구축함의 기뢰부설이 계속되었고 1121, 순양함 벨파스트Belfast가 퍼스에서 피해를 입었고 124일에는 전함 넬슨이 U-31이 부설한 기뢰에 피해를 입었다.

 

 

1121, 샤른호스트와 그나이제나우가 대서양 북부로 나가 영국이 대서양 남부에서 노리는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에 대한 시선을 분산시키려 했다. 23, 무장상선순양함 라왈핀디Rawalpindi가 발견하고 용감하게 맞섰지만 일방적인 전투였고 미처 무선교신도 하기 전에 샤른호스트에게 격침당했다.

포브스는 본토함대 전체를 내보내 두 전투순양함을 잡기로 했다. 근처에서 항해하다가 생존자를 구조하던 뉴캐슬이 두 척을 발견했지만 악천후를 틈타 무사히 퇴각했다.

26, 두 척은 포브스가 노르웨이 앞바다에 펼쳐 놓은 순양함과 구축함의 경계망을 뚫고 기지로 귀환했다. 전함 6, 전투순양함 2, 순양함 20, 구축함 28, 잠수함 3, 항모 1척의 경계가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프랑스가 전함 3, 순양함 2, 구축함 8척을 보내 경계를 도와 양국이 긴밀한 협조를 하는 성과가 있었다.

 

930,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는 페르남부코Pernambuco 앞바다에서 상선을 격침시켰고 105~12일에는 4척을 더 격침시켰다. 1115일에는 모잠비크해협에서 소형 유조선을 격침시켰다. 122, 남아프리카에서 화물선 2척을 더 격침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해군은 순양함 슈롭셔Shropshire와 서섹스Sussex를 케이프타운과 세인트헬레나 사이로 급파했다. 전투순양함 리나운Renown, 항모 아크로얄과 순양함 넵튠Neptune도 프리타운Freetown부터 대서양 남부로 수색을 했다.

순양함 아킬레스Achilles, 아작스, 엑세터Exeter, 컴벌랜드Cumberland가 리버 플라테River Plate 앞바다에 모여 포클랜드Flakland제도를 방어했다. 이 일대는 상선운항이 무척 잦았기 때문에 포켓전함이 조만간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는 2척을 더 격침시킨 후에 플라타 강 하구로 직항했고 1213일에 발견되었다. 3척의 순양함이 서로 다른 방향에서 포문을 열었다.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는 처음에는 주포를 나누어 발사하다가 엑세터에 집중시켰고 27.9cm 포탄으로 큰 피해를 입혔다.

엑세터는 밤새 격전을 벌이다가 불길에 휩싸였고 포탑 하나만 움직였다. 의외로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는 연막을 뿌리고 퇴각했고 엑세터는 수리를 위해 남동쪽으로 퇴각했다. 61명이 죽고 23명이 부상당했다.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는 우루구아이Uruguay로 향하는 동안 아작스와 아킬레스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오전 725, 27.9cm 포탄이 아작스를 맞춰 후미 포탑 2개가 모두 동작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함장 랑스도르프Langsdorff는 압도적인 전력차이에도 불구하고 아작스를 마무리 짓지 않았다.

두 순양함은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를 추격해 강 하구 안으로 몰아넣는데 성공했다. 맞대결하기에는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대양으로 나오지 못하게 차단만 했다.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동안 70발을 맞아 36명이 죽고 60명이 부상을 당했다. 무엇보다 탄약이 부족했다. 랑스도르프는 중립항으로 피항한 후에 응급수리를 하고 북대서양으로 탈출해 귀국할 생각이었다.

1214일 밤, 몬테비데오Montevideo에 도착했고 최소한 2주 동안 수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지루한 외교협상을 벌였다. 합법적인 체류시간은 72시간에 불과했다.

그동안 영국은 대규모 함대가 라 플라타La Plata 하구에 집결했다는 기만전술을 벌였다. 아크 로얄과 리나운은 리오 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에 있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4,020km 밖에 있었고 HMS 컴버랜드 한 척만이 보강된 상태였다.

 

 

랑스도르프는 영국의 기만에 넘어갔다. 1216, 그는 베를린으로 아크 로얄과 리나운이 도착해 탈출로가 봉쇄되었다는 보고를 했다. 남은 탄약으로 아르헨티나로 탈출을 시도하고, 만약 탈출하지 못하면 라 플라타 하구에 좌초시키거나 몬테비데오에 억류되겠다고 했다.

베를린은 절대로 억류되지 말라는 지시를 보냈다. 체류기간을 연장하지 못하면 좌초시키라고 했다. 1217, 우루과이정부는 연장을 거부했다.

이튿날 아침 많은 인파를 뒤로 남기고 아드미랄 그라프 쉬페가 출발했다. 영국순양함전대는 전투를 준비했지만 정찰기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독일군이 스스로 전함을 폭파시켰다는 보고였다. 함장 랑스도르프는 자살했고 남은 승무원은 아르헨티나로 넘어가서 억류되었다.

19462월까지 머무르다가 황당하게도 HMS 아작스의 호위를 받으며 여객선 하이랜드 모나크Highland Monarch를 타고 귀국했다.

 

 

영국해군은 그라프 쉬페를 격침시키는 대전과에 이어 19391123, 진흙바닥에서 독일 자기기뢰 2개를 회수하는 행운을 얻었다. 뇌관을 해제하고 포츠머스로 옮겨 자세한 조사를 했다.

자기기뢰의 비밀을 해체하고 대응방법을 찾았다. 오래지 않아 연구조사팀은 반자기Degoussing 케이블(사진 참조)을 선체 옆에 붙여 자력을 없앴다. 그리고 빅커스 웰링턴Vickers Wellington에도 붙여서 수면 위로 저공비행하며 자기기뢰를 터트렸다.

이 방법을 찾기 전까지, 자기기뢰의 위험이 워낙 커서 템즈강으로 연결되는 항로가 하나만 열려 있었고 11월에만 27, 120,958톤을 잃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한동안 피해가 계속되었는데, 7개월 동안 128, 436,797톤을 잃었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훨씬 가벼운 피해였다.

 

 

 

 

 

독일군도 비슷한 자기기뢰 제거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193912, 영국공군해안사령부는 영국해군과 함께 독일해군과 상선의 대서양 북부와 북해 통행을 계속 압박했다. 잠수함 HMS 살몬Salmon은이 U-36을 격침시킨 후에 12일에는 귀국하던 여객선 브레멘Bremen을 나포하다가 도르니에Dornier Do 18 정찰기의 방해로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