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드레드노트부터 항공모함까지 - 나르비크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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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2021. 4. 26.

고유명사의 발음이 왔다 갔다... 그리고 현지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확성과 일관성을 지켜야 하지만, 여러분을 위해 정리하는 자료이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뭐, 오타는 그냥 그러려니 해주세요. 

 

 

이튿날 살몬은 기뢰를 부설하던 구축함 5척과 경순양함 3척을 발견했고 어뢰를 연이어 발사했다. 라이프치히Leipzig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뉘른베르크도 한 발을 맞았다. 그리고 HMS 우르술라Ursula가 보조함을 더 침몰시켰다. 
그렇지만 1940년 1월에 영국잠수함 3척이 연이어 격침되면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언다인Undine과 스타피시Starfish가 폭뢰를 못이기고 해상으로 올라가 좌침시켰고 시호수는 격침되었다. 이 손실로 본토함대의 잠수함작전이 중단되었다. 

1940년 초반, 발트해는 이상기온으로 오랫동안 얼음에 덮였고 독일군은 노르웨이 북부 나르비크Narvik항을 통해 스웨덴 철광석을 계속 수송했다. 영국해군성은 노르웨이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독일의 운송을 봉쇄하고 싶었지만 독일상선은 노르웨이 수역 안에서 이동했기 때문에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1940년 2월 14일, 그라프 쉬페의 보급선인 알트마르크Altmark는 그라프 쉬페가 격침시킨 상선의 승무원 300명을 태우고 노르웨이의 트론헤임Trondheim으로 피항했다. 랑스도로프는 포로를 중립항에 내려 놓으라고 명령했지만 말을 듣지 않고 베를린이 귀국하라는 명령을 받은 후에야 움직였다. 
덴마크해협을 통과해 노르웨이 수역에 들어서자 노르웨이 어뢰정이 진로를 가로막았지만 함장은 선내수색을 거부했다. 

2월 15일, 본토함대 사령관 포브스제독은 알트마르크가 베르겐Bergen 앞바다에 있다는 것을 알고 순양함 아레투사Arethusa와 구축함 5척에게 나포하라고 명령했다. 구축함이 나포하고 싶었지만 노르웨이 어뢰정이 바로 옆에서 함께 항해하고 있어서 실패했다. 
구축함 코사크Cossack함장 비안Vian은 노르웨이장교에게 알트마르크에 영국포로가 승선하고 있다고 알리고 수색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노르웨이 어뢰정은 요구를 거부하며 어뢰관을 구축함쪽으로 겨냥했다. 
비안은 물러나 해군성의 지시를 기다렸다. 윈스턴 처칠은 단호한 명령을 내렸다. 노르웨이 어뢰정이 수색을 허용하지 않고 공격하면 너무 과도하지 않은 범위에서 대응하라는 명령이었다. 
비안에게 이 정도 지침이면 충분했다. 노르웨이 어뢰정에게 물러나라고 설득하면서 코사크를 알트마르크 바로 옆에 붙이고 공격팀을 넘겨 보냈다. 독일경비병 6명이 죽고 6명이 부상당했고 알트마르크의 해치가 열렸다. 
안에 있던 포로는 모두 영국인이었다. 이후 외친 말은 영국해군의 전통이 되었다. ‘올라오시오. 해군이 기다리고 있소!’ 

1940년 4월 9일, 가짜전쟁Phony War이라고 부르는 기간이 끝나고 독일군이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침공했다. 독일해군사령관 에리히 레더Erich Raeder는 1929년에 발간된 대전의 해상전략Maritime Strategy of the Great War에서 교훈을 얻었다. 독일은 1914년에 노르웨이를 점령해서 대양함대가 노르웨이 항구를 사용해 영국의 북대서양 호송단을 차단했어야 했다는 주장이었다. 
1940년 봄, 독일이 노르웨이를 침공할 의도가 분명했다. 4월 초, 영국정부는 독일군의 발트해 항구 활동이 급증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는데 독일함대가 대서양으로 진출하려는 것으로 오판했다. 
4월 7일, 독일군은 이미 악천후를 뚫고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1 작전군은 나르비크를 목표로 1,600km를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전투순양함 샤른호스트와 그나이제나우뿐만 아니라 구축함 10척의 호위를 받았다. 
트론헤임으로 향하는 2 작전군은 중순양함 아드미랄 히퍼와 구축함 4척의 호위를 받았고 3 작전군은 순양함 쾰른과 쾨니스베르크, 어뢰정의 호위를 받으며 베르겐으로 향했다. 
4와 5 작전군은 크리스티안산Kristiansand과 오슬로Oslo가 목표였지만 나중에 출발했다. 5개 작전군이 거의 동시에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계획이었다. 

 


영국전쟁내각은 윈스턴 처칠의 압박을 받고 4월 8일에 기뢰부설작업에 돌입했다. 일부 가짜를 포함한 기뢰를 노르웨이 앞바다 3개 거점에 부설하기로 하고 4월 5일에 윌프레드Wilfred작전을 시작했다. 원래는 2개 전대가 투입될 예정이었지만 하나는 취소되고 다른 하나가 보도Bodo 앞바다에 많은 기뢰를 뿌렸다. 
호위함 중 하나인 전투순양함 리나운이 트론헤임으로 향하던 2 작전군을 발견했다. 구축함 글로우웜Glowworm이 독일구축함에게 2발을 발사했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맞추지 못했다. 몇 분 후에 두번째 구축함이 포착되었고 글로우웜은 추격하며 포격전을 벌였다. 
두 구축함의 거리가 좁혀졌고 글로우웜은 어뢰를 준비했다. 갑자기 안개 속에서 거대한 선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글로우웜은 아군인 리나운이라고 생각하고 환호성을 질렀지만, 거대한 포탄이 날아들어 선체에 불이 붙었다. 아드미랄 히퍼였다. 
글로우웜은 무선교신을 보낸 후에 갑자기 독일순양함에게 선수를 돌려 어뢰를 발사하려다가 불타는 선수로 곧바로 들이받았다. 히퍼 함장은 글로웜이 떨어져 나가 침몰할 때까지 포격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9시, 글로우웜이 침몰했다. 함장은 생존자를 수색했고 38명을 구조했다. 글로우웜 함장 루프Roope는 순양함 근처까지 갔다가 탈진해서 독일군이 던져준 밧줄을 잡지 못하고 익사했다. 그는 영국해군으로서는 2차대전 최초로 빅토리아훈장을 받았다. 

영국정부는 독일군이 노르웨이를 침공하는 것이 확실해지면 프랑스와 폴란드의 협조를 받아 영국, 프랑스, 폴란드군 18,000명을 노르웨이 수비대에게 보내기로 했다. 

 

노르웨이에서 전투 중인 폴란드군입니다.


4월 6일, 순양함 데본셔Devonshire, 버윅Berwick, 요크York, 글라스고우와 구축함 6척이 병력을 실었다. 포브스는 전함 로드니와 베일리언트Valiant, 전투순양함 리펄스Repulse, 순양함 페넬로페Peleope, 쉐필드Sheffield와 구축함 10척 그리고 프랑스순양함과 구축함을 동원할 수 있었다. 
4월 7일, 함대가 스카파 플로우를 떠나 북쪽으로 향했고 순양함 아레투사와 갈라테아Galatea는 구축함 8척과 함께 스타방에르Starvanger로 향했다. 베르겐으로 향하던 지상군 호위선단은 취소되었고 순양함 2척과 구축함 4척이 북쪽으로 향한 본토함대와 합류했다. 그리고 전력보강을 위해 잠수함 26척이 더 투입되었다. 

4월 8일, 글로우웜의 적포착 보고를 받고 포브스는 병력을 내려놓고 바다로 출항하라고 명령했다. 리펄스, 페넬로페, 구축함 4척도 리나운과 합류하라고 명령했다. 
그날 밤, 해군성은 독일해군의 대서양진출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고 판단하고 포브스에게 샤른호스트와 그나이제나우를 막으라고 명령했다. 오후에 영국공군 정찰기가 서쪽으로 향하는 전투순양함과 순양함 등을 발견하면서 더욱 확신이 들었다. 
실제로는 히퍼와 구축함이었고 2 작전군을 호위하던 중이었다. 4월 8일, 폴란드잠수함 오르젤이 노르웨이 남쪽 해안에서 병력수송선 리오 데 자네이로Rio de Janeiro를 격침시키면서 독일군의 계획이 드러났다. 
노르웨이 어부가 100명을 구조했고 노르웨이군의 심문으로 영국의 침공에서 노르웨이를 방어하기 위해 베르겐으로 가는 중이라는 답변을 받아냈다. 

노르웨이군은 즉시 얼마 안되는 전병력을 소집했고 노르웨이항구 부근에 기뢰를 뿌렸다. 그렇지만 파시스트 노르웨이정부는 나치독일을 자극시키지 않으려고 더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전투 중인 노르웨이 75mm 포병입니다. 


4월 8일 저녁 7시, 해군성은 침공이 사실이라고 판단하고 독일함선의 진로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HMS 트라이던트Trident는 오슬로 피요르드로 향하는 전함 뤼초우에게 어뢰를 발사했지만 명중시키지 못했다. 
HMS 리나운에게 나르비크로 향하는 독일군을 전력으로 막으라고 명령했지만 너무 늦은 상태였다. 독일군은 이미 피요르드에 들어서서 목적지로 향하던 중이었다. 9일 새벽 3시 30분, 리나운은 나르비크 상륙군을 엄호하던 샤른호스트와 그나이제나우를 발견했다. 리나운은 순양함 히퍼로 착각하고 1.7km 거리에서 포문을 열어 그나이제나우에게 3발을 명중시켰다. 두 척은 28cm 18문으로 반격해 리나운을 두 번 명중시켰지만 사소한 피해에 그쳤고 바로 북동쪽으로 빠져나갔다. 
독일군도 상대를 전함 리펄스로 착각했고 불필요한 모험을 걸지 않기로 했다. 

리나운은 천만다행으로 그나이제나우의 거리 레이더와 포격통제시스템(그림 참조)에 포탄을 명중시켜 고장을 냈다. 리나운은 아직 레이더를 장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영국해군은 7척에만 레이더를 장착했었지만 그나마도 대공포용이어서 높은 절벽이 있는 노르웨이 부근에서는 심각한 장애가 있었다. 

 


그리고 항모 퓨어리어스의 항공기를 싣기도 전에 너무 서둘러 출발해서 공중엄호가 전혀 없었다. 포브스는 항공기가 도착할 때까지 교전을 피하고 외곽에 머무르라고 명령했다. 
4월 9일 밤, 독일군이 목표물을 점령했지만 신형 중순양함 블뤼허Blucher가 노르웨이요새의 포를 받고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다시 어뢰를 맞아 1,000명 이상의 승무원과 함께 가라 앉았다. 경순양함 카를스루에Karlsruhe도 잠수함 트루언트Truant의 어뢰를 맞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어서 독일어뢰정이 자침시켰다. 
뤼초우와 쾨니스베르크도 노르웨이 해안포를 맞고 피해를 입었다. 

독일군 1 작전군, 3산악사단의 2,000명이 탄 구축함 10척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노르웨이 본토로 향했다. 나르비크에 접근하자 구축함 3척은 노르웨이요새를 점령하기 위해, 4척은 마을을 점령하기 위해 떨어져 나갔다. 나머지 3척은 계속 나르비크로 향하면서 노르웨이 연안경비선 2척을 격침시켰다. 
소수의 노르웨이 수비대는 바로 제압되었고 구축함 4척이 나르비크 안으로 들어왔다. 병력이 상륙하자 독일로 돌아가기 위해 속력을 높였지만 도착했어야 할 기름보급선이 한 척만 나타났고 이튿날까지 차례를 바꿔가며 급유하고 대기했다. 
잠수함 U-51이 밤 10시에 영국구축함 5척이 남서쪽으로 멀어져갔다고 보고했다. 실제로는 나르비크로 향하고 있었고 절대로 상륙을 허용하지 말고, 이미 상륙했다면 적선을 격침시키고 나르비크를 탈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디Hardy, 헌터Hunter, 해벅Havock, 핫스퍼Hotspur와 호스타일Hostile이었다. 영국구축함전대는 기뢰부설 지역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을 기습할 수 있었다. 내리는 눈을 뚫고 나르비크에 접근했다. 
핫스퍼와 호스타일이 해안포대를 무력화시켰고 하디가 항구로 들어가 새벽 4시 30분에 어뢰 7발을 발사했다. 1발이 하이트캄프Heidkamp의 선체를 뚫고 탄약고에서 터졌다. 잠들어 있던 대부분의 승무원과 함장이 죽었다. 2발은 안톤 슈미트Anton Schmitt를, 4발은 상선을 맞추거나 빗나갔다. 

 


하디는 선수를 돌려 12cm포를 퍼부었고 헌터와 해복도 차례로 항구에 진입했다. 다시 어뢰로 한스 루데만Hans Ludemann을 맞췄고 다이터 폰 뢰더Diether von Roeder도 불덩이로 만들었다. 함장은 간신히 해변에 좌초시켰다. 
남은 헤르만 쿤네Hemann Kunne는 공격을 피했지만 슈미트를 맞췄던 어뢰폭발로 엔진이 고장을 일으켜 움직이지 못했다. 

영국구축함전대는 항구에서 빠져나와 15노트로 귀환 중이었는데 아직도 탄약이 충분한 상태였다. 우현쪽에서 독일구축함 3척이 나타났고 서로 포문을 열었다. 영국군은 30노트로 속도를 높였는데 전방에서 독일구축함 2척이 더 나타났고 영국군은 양쪽에서 협공당했다. 
하디가 맹공격을 당해 함장이 중상을 당했고 해안근처에서 좌초되었다. 170명 정도가 해안으로 탈출해 함장도 구조했지만 함장은 곧바로 죽었다. 
헌터도 포격을 당해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핫스퍼는 이탈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이미 파손된 상태여서 헌터를 들이받았다. 핫스퍼는 가까스로 침몰하는 헌터에게서 벗어났다. 해복과 호스타일이 핫스퍼를 구원하며 독일구축함 2척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독일구축함이 물러나 전투가 중단되었고 헌터의 승무원 200명 중에서 50명만 독일군에게 구조되었다. 

영국구축함이 대양쪽으로 항해하자 거대한 독일상선과 마주쳤다. 포격 2발만으로 항복을 받아냈고 두 발을 더 쏘아서 침몰시켰다. 독일군은 나르비크를 계속 점령했지만 이제 보급을 받을 구축함이 없었다. 
이렇게 나르비크 1차전이 끝났다. 독일은 구축함 2척을 잃고 3척이 반파되었고 2척은 수리가 필요했다. 영국은 구축함 2척만 잃었기 때문에 대승이었다. 구축함전대를 이끌었던 워번튼 리Warburton Lee는 빅토리아훈장을 받았다. 
그날 이른 아침에도 승전보가 있었다. 블랙번 스쿠아 급강하폭격기 16대와 No. 803 9대가 베르겐의 독일함선을 향해 이륙했다. 베르겐에는 쾨니스베르크와 쾰른, 포격훈련함이 있었는데 이미 야간공습을 가까스로 모면한 상태였다. 

해가 막 뜨기 시작할 때에 2,4km 높이에서 쾨니스베르크를 향해 급강하했다. 3발이 정확하게 명중했고 10발이 근접폭발하면서 쾨니스베르크가 폭발하며 침몰했다. 2차대전에서 공습으로 격침된 첫번째 대형전투함이었다. 
맹렬한 대공포화로 스쿠아 1대가 격추되고 2대가 파손되었다. 독일군에게는 다행히도 쾰른과 다른 선박은 베르겐 작전군 지휘관의 명령으로 이미 바다로 나가 있었기 때문에 공습을 피할 수 있었다. 
영국잠수함전대도 괜찮은 전과를 올렸다. 트루언트의 전과는 앞에서 설명했었고, 다른 잠수함이 10여척의 수송선, U-1과 기름보급선을 격침시켰다. 그렇지만 3척의 잠수함을 잃었다. 

4월 11일, 스피어피시는 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해상에 있었는데 중순양함 뤼초우가 포착되었다. 전속력으로 귀국 중이었다. 어뢰 2발을 발사해 프로펠러와 방향타를 부쉈다. 그렇지만 배터리가 아직 완충되지 않았고 호위함이 있을 까봐 더 이상 공격하지 않았다. 
뤼초우는 침몰직전에 키엘로 예인되었고 다시 바다로 나가는데 1년이 걸렸다. 독일해군에게는 너무나도 귀중한 1년의 시간이었다. 
4월 11일, 포브스는 로드니, 베일리언트, 워스파이트, 퓨어리어스, 버윅, 데본셔와 요크를 트론헤임 방향으로 배치했다. 항모에서 페어리 소드피시 18대가 트론헤임에 있다는 히퍼를 찾았지만 히퍼는 이미 항구를 떠난 상태였다. 
보급선을 기다리던 구축함 3척이 공격을 받았는데 수심이 너무 얕아서 투하한 어뢰가 모두 바닥에서 폭발했다. 

13일, 워스파이트와 구축함 9척이 피요르드를 샅샅이 수색하며 독일함선을 찾았다. 워스파이트의 소드피시 수상정찰기가 U-64를 찾아 침몰시켰고 구축함은 보급이 떨어진 함선을 공격했다. 
독일군은 용감하게 맞섰지만 역부족이었고 모두 격침되거나 자침되었다. 나르비크 2차전에서 영국군 구축함 2척이 중파되었다. 소드피시는 9대를 잃었다. 나머지 항공기도 모두 약간의 피해를 입었다. 
4월 12~5월 2일, 연합군 11,000명이 욘달스네스Andalsnes와 몰데Molde(시클Sickle군), 남소스Namsos(모리스Maurice군)에 상륙했고, HMS 글로리어스의 글로스터 글레디에이터 전투기편대가 공중엄호했다. 
독일군 폭격기가 곧바로 날아와 두 항구를 파괴했고 영국은 독일군에게 항구를 넘겨주지 않으려고 순양함 서포크를 보냈다가 공습을 받아 침몰직전에 귀환했다. 

 


4월 말, 트론헤임을 공격하는 연합군의 상황이 절망적이었고 28일, 최대한 빨리 병력을 철수시키기로 했다. 5월 3일, 순양함 8척과 구축함 7척 등이 병력을 태웠다. 노르웨이왕가도 함께 피신했다. 영국과 프랑스구축함 1척이 공습을 받아 침몰했다. 
다른 함선은 나르비크탈환에 투입된 병력을 지원하고 있었다. 5월 21일, 상륙작전 중에 순양함 에핑험Effingham이 공습을 피해 급하게 움직이다가 해변에 좌초했다가 전복되었다.  
5월 26일, 대공순양함 컬류Curlew가 폭격기의 공습을 받아 침몰했다. 대공순양함 카이로와 구축함 등이 나르비크로 진격하는 프랑스외인부대와 폴란드군을 지원했다. 28일, 나르비크를 탈환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이미 연합군의 격전지는 프랑스와 저지대국가Low Countries로 옮겨갔다. 연합군은 한 명이 아쉬웠기 때문에 나르비크를 점령하자 마자 25,000명을 바로 철수시키기로 했다. 
6월 8일, 항모 글로리어스와 호위함이 샤른호스트와 그나이제나우를 만났다.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소드피시 정찰기를 단 한 대도 띄우지 않았기 때문에 무방비상태였다. 제대로 대응도 못해보고 격침되었다. 
호위 구축함들도 격침되었는데 어뢰 한 발이 샤른호스트를 맞췄다. 샤른호스트는 트론헤임으로 피신했고 6월 13일, 아크 로얄의 스쿠아 15대가 보복에 나섰다. 225kg 폭탄 한 발을 맞췄지만 불발탄이었고 8대를 잃었다. 

 


6월 21일, 트론헤임을 출발한 샤른호스트가 포착되었다. 구축함 8척과 어뢰정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영국공군의 뷰포트Beaufort 뇌격기와 소드피시의 공습이 실패했고 큰 피해만 입었다. 
6월 23일, 샤른호스트는 아무런 피해없이 키엘에 입항했다. 그렇지만 어뢰 한 발이 엄청난 전과를 올린 셈이었다. 샤른호스트 등은 원래 퇴각하는 영국군을 노리고 있었는데 어뢰 한 발로 막아냈다. 

 


대전과를 올린 아카스타Acasta함장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 도망안친다. 아던트Ardent가 침몰했고 글로리어스도 침몰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 뭔가 보여주자’
구축함이 침몰할 때에도 함장은 박살난 함교에 홀로 서서 시가를 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바다로 뛰어난 수병들에게 손을 흔들며 행운을 빌었고 그대로 바다로 사라졌다. 

시간과 장소를 앞으로 돌려, 5월 19일 프랑스 영국원정군은 대규모 소개작전만이 희망이 되었다. 기적을 바랄 수 밖에 없는 소개작전은 버트램 램지Bertram Ramsay제독이 지휘했다. 그는 주로 구축함전대를 지휘했었고 네덜란드 원정군에게 수송과 보급을 지원했다. 네덜란드가 점령당하자 그는 네덜란드 주요인사와 귀중품을 영국으로 후송했다. 
다시 벨기에에서 많은 선원, 바지선과 보급품을 후송했는데 소수의 구축함이 쉼없이 병력을 옮기고 해안목표물을 포격하고 공습을 막아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다의 대명사 램지 제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