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드레드노트부터 항공모함까지 - 덩케르크 철수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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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2021. 4. 29.

고유명사의 발음이 왔다 갔다... 그리고 현지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확성과 일관성을 지켜야 하지만, 여러분을 위해 정리하는 자료이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뭐, 오타는 그냥 그러려니 해주세요. 

 

연합군이 아직 불로뉴Boulogne와 칼레Calais를 방어하고 있었지만 덩케르크Dunkirk, 더 정확하게는 해변에서 초대형 철수작전을 당장 시작해야 할 판이었다. 이미 항구의 도크는 공습으로 파괴되거나 차단되었고 프랑스해군사령관 장 아브리알Jean Abrial이 독일군의 공격에 대비해 해군선박과 선원을 바다로 대피시켜 놓았다. 

 


구축함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수송선보다는 못하지만 적재공간이 있었고 속도와 기동성이 좋은 데다가 대공포가 있어서 공습을 피할 수 있었다. 문제는 숫자였다. 해군이 보유한 220척 중에서 대부분이 지중해와 극동에 배치되었고 본토함대의 구축함은 노르웨이전역의 전투에 휘말려 있었다. 
그리고 영국에게 생명줄인 대서양 항로를 보호하기 위해 구축함과 순양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덩케르크 철수작전에 선박을 투입할 수 없었다. 

영국에게는 천만다행으로 독일해군은 노르웨이해전에서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앞으로 다가올 대서양작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5월 26일 6시 57분, 다이나모Dynamo작전을 시작했다. 도버Dover성의 작전실이 이전에는 전기실이었기 때문에 붙여진 암호명이었다. 
구형선박 2척이 가장 먼저 병력을 태웠다. 모나스 아일Mana’s Isle은 1,420명을 태웠고 예정된 Z항로를 되돌아오다가 독일군의 포화가 쏟아졌고 잠시 후에는 메셔슈미트Messerschmitt가 저공비행하며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다. 23명이 죽고 60명이 부상당했지만 도버로 돌아올 수 있었다. 
27일 오전, 5척이 덩케르크 해변에 접근하다가 독일군의 포격을 받았다. 한 척이 침몰했고 나머지는 물기둥을 뚫지 못해 그대로 귀환했다. Z 항로가 봉쇄되면 우회할 수 밖에 없는데 독일공군의 공습에 그만큼 노출되었다. 

 


대공순양함 HMS 캘커타Calcutta, 구축함 9척, 기뢰제거함 4척이 해변에 접근해 보트로 병력을 소개하기로 했다. 수심이 낮아서 구축함은 1.5km 밖에 대기해야 하는데 1,000명을 수송하는데 최소한 6시간이 걸리고 날씨에 따라 더 길어질 수 있었다. 바람이 바뀌면 보트가 뒤집힐 수 있었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스트 몰East Mole(사진 참조)에 배를 대기로 했다. 27일 밤 10시 30분, 시험삼아 작은 배를 대는데 성공했다. 몰은 한 번에 16척을 댈 수 있었다. 구축함 5척이 첫번째 대규모 소개작전을 시작했다. 워낙 다급하게 출발했기 때문에 함장은 덩케르크로 가서 병력을 태우고 돌아오라는 말만 들었다. 

 


5월 29일 오전, 640명을 태운 구축함 웨이크풀Wakeful이 E보트 중 하나인 MTB S30의 어뢰를 맞고 침몰했다. 완전히 쪼개져서 바로 침몰했고 7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를 수색하던 구축함 그라프톤Grafton도 U62의 어뢰를 맞고 큰 피해를 입었다. 기뢰제거함 리드Lydd가 달려가 잠수함을 들이받아 침몰시켰다. 구축함 아이반호Ivanhoe가 생존자를 태운 후에 그라프톤을 침몰시켰다. 

 


독일군의 공격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29일 오후, 슈투카 180대가 덩케르크를 공습했고 구축함 그라나데Granade가 제물이 되었다. 폭탄 3발을 맞고 불에 휩싸였고 견인선이 밖으로 끌어내자 마자 폭발했다. 
구축함 재규어Jaguar가 폭탄을 맞아 승무원이 모두 다른 배로 피신했는데 그대로 떠있다가 나중에 견인되었다. 구축함 베리티Verity는 근접탄의 피해만 입으며 항구 밖으로 나가다가 좌초되었다. 
소형선박들이 폭탄을 맞고 침몰했는데 무장여객선 킹 오리King Orry는 몰과 충돌해서 몰을 한동안 못쓰게 만들었다. 
슈투카 후에 하인켈, 도르니에, Ju88이 몰려왔다. Ju88은 6,900톤 화물선 클랜 맥알리스터Clan MacAlister를 공습해 불태우고 1/3을 죽였다. 생존자는 기뢰제거함 팡번Pangbourne으로 옮겨 탔는데 이미 다른 선박에서 구조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덩케르크 서쪽 10km 지점에서 하인켈이 화물선 노르마니아Normania를 격침시켰다. 자매선인 루리나Lorina도 몇 분 후에 침몰했고 800명을 태운 기뢰제거함 웨벌리Waverley도 침몰했다. 구형여객선 크레스티드 이글Crested Eagle이 병사와 생존자를 가득 채운 상태에서 폭탄 한 발을 맞고 불탔다. 
불이 붙은 사람들이 기름바다로 뛰어 들었고 선박은 천천히 해변으로 다가가 좌초한 덕분에 나머지 사람들이 해변으로 뛰어내릴 수 있었다. 

 


어둠이 내리자 덩케르크 해변은 지옥 그 자체였다. 피해가 계속 발생했지만 이날 하루에만 47,310명이 탈출했고 이스트 몰이 망가지기 전에 33,558명이 이곳으로 탈출했다. 
하룻동안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에 최신형 구축함 8척을 아예 작전에서 빼기로 했다. 이제 구형 구축함 15척이 모든 작전을 책임져야 했는데 하루에 기껏해야 17,000명 수송이 고작이었다. 
5월 30일, 해변에 안개가 끼어서 소형선박이 안전하게 병력을 실어 날랐다. 안개가 계속되자 신형구축함을 다시 투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긴급수리로 이스트 몰도 다시 이용할 수 있게 되어 구조작업이 속도를 낼 수 있었다. 
30일에만 53,823명이 탈출했고 그 중 30,000명 이상이 해변에서 구조되었다. 

 


5월 31일, 이제 프랑스군도 구조하기 시작했는데 워낙 많은 선박이 투입되면서 충돌, 좌초, 기관고장 등의 피해도 급증했다. 가라앉은 선박이 통행을 막은 데다가 기상이 악화되어 소형선박이 접근하지 못했다. 그래도 68,104명을 구조했다. 
6월 1일, 날씨가 맑았고 해가 뜨자마자 독일공군이 몰려들었다. 병력을 태우던 기뢰제거함이 275명과 함께 바로 가라앉았다. 다른 기뢰제거함은 병력승선을 다급하게 중단하고 지그재그로 떨어지는 폭탄을 피했다. 
구축함 HMS 해번트Havant는 너무 많은 병력을 태워서 배 전체가 카키색으로 뒤덮였는데 폭탄을 기관실 승무원이 전원 사망했다. 기뢰제거함 2척이 옆에 다가오자 기울어진 선체에서 병사들이 뛰어내렸다. 해번트는 침몰했고 34명이 죽었다. 
구축함 아이반호Ivanhoe도 폭탄을 맞고 보일러실이 터졌지만 침몰하지 않아 예인되었다. 프랑스 구축함 포드로얀Foudroyant은 3발을 맞고 몇 분만에 가라앉았는데 물 위로 뛰어내린 병사들은 프랑스국가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부르며 버텼다. 
이날은 프랑스병사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구축함 HMS 에스크Esk가 침몰했고 HMS 워시스터Worecester는 30분 동안 공습을 당했지만 가까스로 해협을 건넜다. 750명이 죽거나 부상당했다. 
6월 1일에만 31척이 침몰하고 11척이 파손되었지만 64,429명을 구조했다. 이제 해변방어선도 독일군의 포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램지제독은 밤사이에 최대한 수송하기로 하고 모든 선박을 투입했다. 프랑스도 10척과 고기잡이배 120척을 투입했다. 
6월 2일 자정까지 26,256명을 더 구조했다. 

6월 3일, 방어선을 지키던 프랑스병사 30,000명 이상이 남아 있었다. 작전에 투입되었던 구축함 41척 중에 9척, 개인선박 45척 중에 5척만 투입할 수 있었다. 
6월 4일, 구형 구축함 시카리Shikari가 이스트 몰을 떠나면서 26,209명을 구조했는데 거의 모두 프랑스병사였다. 
저녁 7시, 덩케르크 수비대가 항복했고 해군성은 다이나모작전 완료를 발표했다. 9일 동안 198,284명을 구조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구조한 병력을 모두 합치면 366,131명이었다. 

 


그렇지만 피해도 컸다. 투입된 영국선박 693척 중에 226척이 침몰했다. 그리고 6월 4~25일 동안, 르 아브르Le Havre에서도 병사 191,870명과 민간인 35,000명을 구조했는데 병력수송선 랭카스트리아Lancastria는 9,000명을 태우고 침몰해 5,000명 이상이 죽었다. 

 


덩케르크 이후에도 영국해군은 쉴 틈이 없었다. 육군은 프랑스에서 입은 피해를 복구하고 독일의 침공에 대비해 방어선을 구축하는 동안, 해군도 구축함 32척으로 해안방어선을 만들어야 했다. 덩케르크에서 입은 피해 때문에 수리를 하고 있거나 프랑스의 다른 지역에서 여전히 병력을 철수시키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도 독일해군은 노르웨이해전에서 입은 피해가 막심해서 영국해군을 대놓고 위협할 처지가 아니었다. 1940년 6월, 독일군은 대형구축함 1개 전대, 소형구축함 2개 전대, 어뢰정과 S보트가 전부였다. 영국은 S보트(사진 참조)를 E보트로 잘못 알고 있었는데, 이제 프랑스항구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어서 잠재적인 위협이 되었다. 

 


6월 19일, S19와 S20이 화물선 로즈번Rosebrurn을 침몰시키면서 상선단에 첫번째 피해를 주었다. 24~25일 밤에는 S36과 S19가 유조선과 연안순시선을 격침시켰다. 영국은 어뢰정(사진 참조) 1개 전대로 S보트에 대응했지만 워낙 부족해서 효과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