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드레드노트부터 항공모함까지 - 그리스 방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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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2021. 7. 1.

고유명사의 발음이 왔다 갔다... 그리고 현지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확성과 일관성을 지켜야 하지만, 여러분을 위해 정리하는 자료이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뭐, 오타는 그냥 그러려니 해주세요. 

 

주요 위치와 영국함대의 배치를 다시 한 번 눈여겨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3월 28일 새벽, 지중해함대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로 가는 병력수송선단을 엄호하고 있었다. 독일군이 그리스를 침공할 것이 분명했다. 포미더블의 알바코어 정찰기가 크레테Crete남쪽으로 향하는 이탈리아 순양함과 구축함전대를 발견했다. 
전함 비토리오 베네토Vittorio Veneto(그림 참조), 중순양함 6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13척이 영국군 병력수송선단을 요격하려고 항해 중이었다. 이탈리아해군은 독일공군의 엄호와 정찰을 요구했고 3월 16일 He 111 폭격기가 크레테 서쪽 56km 지점에서 전함으로 보이는 2척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오보였고 심각한 결과를 불러왔다. 

 



3월 28일 오전 8시, 본대보다 160km 앞서 있던 지중해함대 순양함이 이탈리아전대의 포격을 받기 시작했고 퇴로가 막힐 위험에 몰렸다. 본대는 너무 멀리 있었기 때문에 포미더블의 탑재기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오전 10시, 알바코어 6대가 펄마 2대의 엄호를 받으며 이륙했다. 비토리오 베네토가 381mm 주포로 영국순양함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오전 11시, 알바코어가 어뢰공격을 했지만 전함이 회피기동으로 모두 피했다. 펄마는 고공에서 Ju 88 2대 중 1대를 격추시켰다. 

이탈리아전대는 공중엄호가 사라지자 전속으로 퇴각했다. 커닝햄은 2번째 공습을 명령했고 알바코어와 소드피시 5대가 이륙했다. 그리스에 있던 영국공군의 블렌하임Blenheim폭격기도 공습에 나섰지만 명중시키지 못했다. 
여러 방향에서 공습을 당하다 보니 전함의 포수들은 알바코어의 공습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첫번째 어뢰가 투하되었고 선미를 명중시켜 조타기어를 망가트리고 4,000톤의 물이 들어왔다. 
비토리오 베네토는 수리를 위해 정지했고 지중해함대의 전함은 겨우 3시간 거리까지 좁혀 들었다. 응급수리를 마친 전함은 18노트까지 속도를 높였고 순양함과 구축함이 주변에서 방어막을 쳤다. 
포미더블에서 알바코어와 소드피시 10기가 이륙해 다시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주변을 엄호하던 순양함 폴라Pola가 대신 어뢰를 맞고 중파되었다. 순양함 2척과 구축함 4척이 폴라와 함께 남고 나머지는 전함을 계속 엄호했다.  

밤 10시, 전함 베일런트와 순양함 오라이온Orion의 레이더에 남아 있던 이탈리아전투함이 잡혔다. 전함 베일런트와 워스파이트가 포문을 열었고 이탈리아순양함 2척이 불덩이로 변했고 폴라와 구축함 2척도 침몰했다. 
레이더가 없는 이탈리아전함은 영국함대의 전방을 가로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고 곧바로 포격을 받았다. 전투함 5척과 2,500명을 잃었다. 영국해군은 알바코어 1대만 잃었다. 이렇게 마타판Matapan Cape곶 전투가 끝났다. 
지중해함대의 완승이었다. 해군항공력과 울트라덕분이었다. 지중해함대는 이탈리아전대의 구성과 위치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4월 6일,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독일군이 유고슬라비아Yugoslavia와 그리스를 침공했는데 2일만에 유고군이 무너졌고 허술한 알리아크몬Aliakhmon방어선을 뚫고 그리스에 진입해 연합군을 밀어냈다. 
독일육군은 공군의 막강한 지원을 받으며 남하했고 그리스군은 완전히 와해되었다. 뉴질랜드사단,오스트레일리아 6사단, 1기갑여단과 얼마 안되는 영국공군이 고작이었다. 
5월 2일,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연합군 43,000명이 그리스를 탈출했고 11,000명은 크레테섬으로 퇴각했다. 

 

3호전차 초기 B형으로 기관총이 2총이 달려있습니다. 영국군은 포로입니다. 

 


5월 20일, 엄청난 공습 후에 독일공수부대가 크레테에 강하하면서 목성Merkur작전이 시작되었다. 크레테섬 부근의 선박에도 대대적인 공습이 이어졌고 구축함 1척이 침몰하고 순양함 1척이 파손되었다. 
5월 21일 밤, 독일군은 해상침투를 시도했다가 영국 D전대의 요격을 받고 실패했다. 10척의 상륙정이 침몰하고 297명이 죽었다. 이탈리아어뢰정이 필사적으로 막아내지 않았다면 나머지 2,000명도 모두 죽었을 것이다. 
C전대가 2번째 침투를 요격했지만 공습 때문에 겨우 2척만 침몰시켰고 대신에 2척이 파손되었다. 

 

독일의 최정예인 공수부대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아래는 제2차 세계대전 인포그래픽에서 인용한 자료이고 출판사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반드시 구입해서 읽어야 하는 최고의 자료집 중 하나입니다. 


영국해군은 대대적인 공습을 받았다. 워스파이트가 몇 발을 맞았고 순양함과 구축함이 선원과 함께 침몰했다. 순양함 피지는 피해가 너무 커서 그대로 포기했다. 베일리언트도 가벼운 피해를 입었다. 
5월 23일, 구축함 2척이 어뢰정전대를 공격하다가 공습을 받고 침몰했다. 
5월 25일, 알렉산드리아에서 전함 바햄Barham, 퀸 엘리자베스, 항모 포미더블, 구축함 9척이 카르파토스Scarpanto공군기지를 포격하고 귀환하던 중에 포미더블, 바햄과 구축함 1척이 큰 피해를 입었다. 
크레테섬을 더 이상 방어할 수 없었다. 독일군의 상륙을 막기 위해 그대로 머무르다가는 복구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5월 27일, 32,000명을 소개하기로 결정하고 첫날밤에 4,700명을 태웠다. 다시 구축함 1척이 파손되어 자침시켰다. 이튿날 밤에 6,000명을 철수시켰고 다시 구축함 1척이 침몰하고 순양함 3척이 피해를 입었다. 순양함 오라이온은 병력을 가득 태운 상태에서 폭탄을 맞아 1,100명 중에 540명이 사상당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5월 31일 밤, 6,000명을 소개시키기 위해 구축함 5척이 투입되었고 동이 트기 전까지 4,000명을 태웠다. 대공순양함 2척이 나가 알렉산드리아로 귀환하는 구축함을 맞이했다. 캘커타Calcutta와 코벤트리Coventry는 알렉산드리아 북쪽 185km 지점에서 Ju 88 2대의 공습을 받아 캘커타가 침몰했고 생존자 255명이 코벤트리에 올랐다. 

영국해군은 17,000명을 구해냈지만 15,743명이 죽거나 포로가 되었다. 순양함 3척과 구축함 6척을 잃고 병력도 2,011명을 잃었다. 그리고 항모 1척, 순양함 6척, 구축함 7척이 다양한 피해를 입었다. 덩케르크 이후 가장 큰 피해였다. 
독일군도 6,580명이 사상당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번에는 중동에서 위기가 터졌다. 4월부터 이라크에서 저항이 시작되었고 동인도전대가 수송한 인도병력으로 간신히 진압했다. 
6월 7일~7월 14일, 15순양함전대가 영연방군과 자유프랑스군이 비시Vichy프랑스 시리아점령을 지원하며 동지중해에 머물렀다. 공습이나 비시프랑스 구축함과의 전투로 여러 척이 피해를 입었다. 이 작전으로 홍해의 연합군 수송로와 기름 보급보를 지켰다. 
해군성의 가장 큰 걱정은 몰타방어였다. 몰타는 해상으로만 보급받을 수 있었다. 1940년에는 지중해함대가 알렉산드리아 수송선단을 엄호하며 보급했지만 엄호전투기가 부족해지면서 멀리 지브롤터에서 보급선을 보내야 했다. 

1941년 6월, 독일군이 러시아를 침공하면서 시실리의 독일공군이 시실리에서 동부전선으로 이동하면서 간신히 숨통이 트였다. 이제 이탈리아공군 혼자서 몰타를 맡아야 했다. 
4월 2일, 윈치Winch작전으로 아크로얄이 허리케인 12대와 스쿠어 3대를 싣고 지브롤터를 출발했고 무사히 몰타에 착륙했다. 4월 28일에는 허리케인 10대와 펄머 3대가 더 보강되었다. 그리고 전함 퀸 엘리자베스와 경순양함 2척도 지중해함대에 합류시켰다. 
7월 25일 밤, 이탈리아 10어뢰정전대가 그랜드Grand항에 침투해 상선을 공격하려고 했다. 프리깃 디아나Diana, 자폭선 8척, 어뢰정 2척과 인간어뢰팀이 몰타에 접근했지만 레이더에 이미 포착되었고 경고가 울려 퍼졌다. 

 


인간어뢰 1대와 자폭선 2척이 항구 진입장애물을 파괴했지만 오히려 도움을 주는 꼴이 되었다. 폭발여파로 세인트 엘모St Elmo다리가 무너져서 항구 입구를 완전히 막았고 남은 자폭선 8척은 해안포를 맞고 침몰했다. 어뢰정 2척도 전폭기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9월 8일~14일, 아크로얄과 퓨어리어스가 몰타에 허리케인 55대를 더 실어 보냈고 대량의 군수품도 반입시켰다. 
이탈리아해군과 공군은 1~2척의 수송선을 격침시킨 것이 전부였다. 

독일공군이 러시아에 전력을 기울이면서, 지중해는 이탈리아해군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영국해군의 독무대였다. 해군성은 몰타에 순양함과 구축함 몇 척으로 구성한 K전대를 배치했다. 
K전대는 배치되자 마자 11월 9일, 야습을 감행해 이탈리아상선 7척을 격침시키고 한 달 후에는 아프리카전선으로 향하는 기름보급선 2척을 침몰시켰다. 항공기를 계속 보강했고 추축군 수송선단의 피해가 급증했다.
그렇지만 항공기를 보급하고 귀환하던 아크로얄이 U-81의 어뢰를 맞았다. 선원 1명이 죽었을 뿐인데 하필이면 보일러룸에 맞았고 지브롤터를 40km 남겨두고 침몰했다. 

추축군의 북아프리카 보급선단은 몰타의 전투함, 잠수함과 항공기의 요격을 받았고 많은 보급품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심각한 상황까지 몰렸다. 독일은 지중해에 U보트를 대거 투입했다. 그리고 시실리에 독일공군을 재배치했다. Ju 88 폭격기와 전투기로 상당한 전력을 갖춘 2비행단이었다. 

 

몰타공략을 포기한 대전 중반에는 추축군의 보급선단 피해가 급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