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드레드노트부터 항공모함까지 - 진주만공습과 자바해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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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2021. 7. 26.

고유명사의 발음이 왔다 갔다... 그리고 현지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정확성과 일관성을 지켜야 하지만, 여러분을 위해 정리하는 자료이니까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뭐, 오타는 그냥 그러려니 해주세요. 

그리고 대서양과 지중해전선은 너무 지루해져서 태평양전선으로 잠시 이동합니다. 워낙 잘 알려진 이야기라 많이 요약해서 정리합니다. 

 

대한해협해전 이후 최대의 일본함대가 일본 북부 끝 쿠릴Kuril열도 히토카푸Hitokappu만에 집결했다. 항모 아카기, 가가, 히류, 소류, 즈이카쿠와 쇼카쿠의 제1항공함대1st Air Fleet가 핵심전력이었고 나구모 주이치南雲 忠一가 지휘했다. 

 

진주만기습으로 최절정기를 지낸 후에 미드웨이패전으로 몰락했고 사이판방어전에서 자살합니다.

 

제1항공함대 기함 아카기입니다. 2차대전 일본과 미국항모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s://blog.daum.net/uesgi2003/353?category=10783 에 정리해두었습니다. 

 


전함 히에이와 기리시마, 중순양함 토네와 치쿠마, 경순양함 아부쿠마와 제1구축함전대의 구축함 9척이 있었다. 
1941년 11월 26일, 태평양의 진주만을 공격하려고 출항했지만 일본과 미국이 협상에 성공하면 도중에 귀환한다는 계획이었다. 협상은 실패했고 12월 2일, 니이타카 야마 노보레(위산에 올라라) 암호명이 발령되었다. 

 

재미있게도 위산은 대만의 가장 높은 산입니다. 

함대는 오아후Oahu 북쪽 370km로 다가갔다. 12월 7일 새벽에 나카지마 B5N 케이트Kate 뇌격기 40대, 급강하폭격기 49대, 아이치 D3A1 발Val 급강하폭격기 51대, 호위전투기 미츠비시 A6M 제로Zero 43대가 이륙했다. 
오아후의 미군기지는 394대의 항공기가 있었지만 실전용은 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구식에 수리 중이었고 아예 조종사가 없는 기체도 있었다. 
일본과 긴장상태가 이어졌는데도 미국은 전쟁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진주만에 정박한 94척의 선박은 대부분 병력이 배치되지 않았다. 카후후Kahuhu 육군 레이더기지는 2명만 근무 중이었다. 
가장 중요한 샤프터Shafter 정보센터는 다들 아침 먹으러 자리를 비워서 1명만 남아 있었다. 잠수함과 어뢰공격을 막는 차단시설Boom Defence는 75분이나 열려 있었다. 일요일 아침이라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1차공격대 지휘관 후치다 미쓰오淵田 美津雄는 기습이 성공할 때와 실패했을 때의 2가지 계획을 세웠다. 기습성공에는 급강하폭격기가 연기를 일으켜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뇌격기부터 투입하고, 기습실패에는 급강하폭격기가 공군기지와 대공시설을 먼저 파괴하고 뇌격기를 안전하게 투입하리고 했다. 
기습성공에는 신호탄 1발, 실패에는 2발을 쏘아 알려주기로 했다. 아주 간단한 작전이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첫번째 신호탄을 보지 못한 조종사가 많아서 두번째 신호탄을 쏘았고 모든 항공기가 한 번에 몰려드는 혼란이 벌어졌다. 
그렇지만 미군의 방어시설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미군은 아군의 기동훈련으로 착각했다.  

 


첫번째 공습은 30분간, 정박시설과 외곽 공군기지를 공격했다. 1시간 후의 두번째 공습에 케이트 54대, 발 78대와 전투기 35대가 나섰고 65분간 공습했지만 워낙 두터운 연기와 강력한 대공포화에 방해를 받았다. 미군전투기도 몇 대가 요격에 나섰다. 
94척의 선박 중, 18척이 침몰하거나 반파되었고 8척은 전함이었다. 기함인 애리조나Arizona는 어뢰 1발과 폭탄 8발을 맞아 폭발하면서 1,404명과 함께 침몰했다. 캘리포니아California도 98명이 죽었고 3일 후에 침몰했다. 
네바다Nevada, 오클라호마Oklahoma, 웨스트 버지니아West Virginia, 메릴랜드Maryland, 펜실바니아Pennsylvania와 테네스Tenessee도 침몰하거나 좌초되었다. 단 몇 시간 만에 태평양함대는 완전히 사라졌다. 

 


다행히도 태평양함대의 항모 3척은 진주만에 없었다. USS 사라토가Saratoga(CV-3)은 샌디에고에서 전체정비 중이었고 렉싱턴Lexington(CV-2)는 미드웨이 남동쪽 680km에서 해병대항공기를 수송 중이었다. 엔터프라이즈Enterprise(CV-6)는 웨이크Wake섬에 해병대항공기를 공급한 후에 진주만 서쪽 320km에서 귀환 중이었다. 공습을 피한 항모를 중심으로 1942년 초에 태평양함대를 재건하게 된다. 
일본연합함대 총사령관 야마모토 오소로쿠는 1년 전에 있었던 영국의 타란토공습에서 진주만공습의 영감을 얻었다. 1884년 출생한 그는 양자였고 원래 이름은 다카노였다. 1904년에 일본해군학교를 졸업했고 대한해협해전에 참전해 손가락 2개를 잃었다. 
미국 하버드에서 유학했고 1925~27년 대위로 해군주재원으로 미국생활을 했다. 영어를 잘 해서 미국을 잘 알았기 때문에 절대로 미국과 전쟁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전쟁이 불가피해지자 최대한 미국에 피해를 주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아예 불가능에 가까운데... 오래 전에 번역출간하고 싶었던 책입니다.

언젠가는 요약정리해서 여러분과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주력함을 궤멸시켜 일본이 태평양의 전략요충지를 점령하는데 방해물을 제거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에도 영국과 네덜란드의 해군이 버티고 있는 인도양과 자바해가 남아 있었다. 
영국해군성은 프랑스항복 후에 재배치된 프랑스해군을 지중해에 투입하고 대신에 전함을 인도양에 보강하기로 했다가 다시 1941년 8월, 해군성은 전함 6척, 항모 1척과 각종 지원선박을 1942년 봄까지 극동에 배치하기로 했다. 
그동안에는 신형전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 구형전투순양함 리펄스Repulse와 항모 인도미터블Indomitable을 우선 배치할 계획이었지만 자메이카 앞바다에서 인도미터블이 좌초하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10월 25일, 우선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구축함 2척과 함께 출발해 11월 28일에 리펄스와 구축함 2척과 스리랑카Ceylon에서 합류(Z전대)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12월 2일에 싱가폴에 도착했다. 해군성은 싱가폴에 전력을 집중시키기 보다는 스리랑카를 선호했다. 
그 위치만으로도 일본의 야욕을 충분히 억제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인도미터블이 없었기 때문에 함대뿐만 아니라 싱가폴과 말레이Malay반도 전체가 공습에 무방비상태였다. 

해군성은 전대에게 빨리 싱가폴에서 벗어나라고 재촉했고 리펄스는 12월 5일에 오스트레일리아의 포트 다윈Port Darwin을 향해 출발했다. 인도-차이나 부근에서 일본선박이 발견되자, 다시 싱가폴로 가서 기함과 합류하라고 명령했다. 
몇 시간 만에 진주만공습 그리고 말라야Malaya와 태국Siam에 일본군이 상륙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12월 8일 저녁, Z전대는 말라야 북동해안의 송클라Singora에 상륙한 일본군을 공격하려고 나섰고 싱가폴주둔군은 항공전력이 없고 태국에 일본군폭격기 전력이 상당히 많이 집결했다는 경고를 했다. 이미 일본정찰기가 Z전대를 발견했다며 복귀하라고 설득했다. 

팔립Philips제독은 일본군이 말레이시아 쿠안탄Kuantan에 상륙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 상륙군을 요격하려고 방향을 바꿨다. 오보였고 잠수함 I-58이 Z전대를 발견했다. 어뢰공격이 실패하자 5시간 30분 동안 전대를 따라가며 정찰기가 올 때까지 신호를 보냈다. 
인도차이나 일본공군기지에는 폭격기 27대와 뇌격기 61대가 있었고 그 중 일부가 이미 남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아주 정교한 공습이었다. 고고도폭격기 미츠비스 G4M1 베티Betty는 3,7km 상공에 머물면서 전함의 대공포를 유도했고 그 빈틈을 노려 뇌격기 G3M2 넬Nell이 다양한 방향에서 어뢰를 투하했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2발을 맞고 방향타 등이 중파되었고 대공포가 상당수 부숴졌다. 
리펄스는 간신히 공습을 피해 다녔지만 너무 많은 적기가 몰려들었고 결국 어뢰 4발을 맞았다. 12시 30분, 전복되어 침몰했고 프린스 오브 웨일스도 2발을 더 맞고 50분 후에 침몰했다. 구축함이 2,081명을 구조했지만 840명이 죽었고 필립스제독과 함장도 죽었다. 리펄스함장 테넌트Tennant는 마지막 순간에 참모장교가 함교에서 밀어서 목숨을 건졌다. 

설상가상으로 비보가 계속 이어졌다. 크리스마스에 홍콩이 함락되었고 일본군은 마닐라Manila로 진격했다. 영국동방함대Eastern Fleet는 조프리 레이턴Geoffrey Layton가 맡았는데 전력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1942년 1월, 미국, 영국, 네덜란드, 오스트레일리아 연합해군사령부가 자바Java에 설치되었고 이리 저리 긁어모은 전투함이 싱가폴로 가는 수송선단을 엄호했다. 싱가폴 해군기지는 이미 큰 피해를 입었고 일본군이 2월 9일에 싱가폴까지 진격했다. 싱가폴을 포기하고 가능한한 많은 병력과 민간인을 수송했다.
2월 13일, 일본군이 수마트라Sumatra로 향한다는 보고가 들어왔고 연합사령부는 순양함 5척과 구축함 10척을 급파했다. 대대적인 공습을 받자 작전을 취소하고 귀환했다. 
2월 18일, 일본군이 발리Bali에 상륙했고 이튿날에는 제1항모연합함대가 포트 다윈을 대대적으로 공습해 지원선 11척을 침몰시키고 요새시설을 파괴했다. 이제 자바는 더 이상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2월 27일, 네덜란드와 미국혼합함대로 반동해협에서 일본군을 저지하던 도어맨Doorman제독은 수라바야Soerabaya에서 순양함 5척과 구축함 10척을 이끌고 자바해의 일본군을 요격할 생각이었다. 
일본군은 순양함 4척과 구축함 14척이 호위 중이었다. 오후 4시, 양측의 순양함이 포격전을 벌였고 HMS 엑서터Exeter가 큰 피해를 입고 퇴각했고 네덜란드 구축함 1척이 어뢰를 맞고 침몰했다. 다행히도 나머지 119발은 모두 표적을 빗나갔다. 
이제 남은 영국구축함 3척이 9척의 구축함과 근거리 포격전을 벌였고 HMS 일렉트라Electra가 침몰했다. 

 


도어맨제독은 남은 순양함 4척과 구축함 6척으로 북서쪽으로 나가 순양함 하구로Haguro와 나치Nachi와 야간전투를 벌였다. 영국구축함 주피터Jupiter가 네덜란드 기뢰나 미국 어뢰를 맞고 폭발했고 네덜란드순양함 자바와 두 로이테르De Ruyter가 어뢰를 맞고 침몰했다. 
USS 휴스턴Houston과 HMAS 퍼스Perth는 좁혀드는 포위망을 피해 자카르타Batavia로 선수를 돌렸다. 미국구축함 4척은 재보급을 위해 수라바야로 복귀했고 영국구축함 인카운터Encounter만 남아 생존자를 구조했다. 

 



28일 저녁, 두 순양함이 다른 상륙수송선단을 만났고 압도적인 전력차이에도 불구하고 전투를 벌이다 침몰했다. 그렇지만 수송선 2척을 격침시키고 구축함 3척과 기뢰제거선 1척에 피해를 입혔다. 
3월 1일, HMS 엑서터, 인카운터와 USS 존 디 포프John D. Pope는 적의 협공에 잡혀서 엑서터와 인카운터가 포격과 어뢰를 맞고 침몰했고 존 디 포프도 얼마 후에 침몰했다. 생존자 800명은 일본군에게 구조되었지만 포로상태에서 많이 죽었다. 
이렇게 자바해해전이 끝났고 일본의 남동아시아 침공을 막지 못했다. 


1942년 봄, 해군성은 스리랑카를 기지로 새로운 동방함대를 재건 중이었다. 항모 인도미터블과 포머더블Formidable, 소형항모 헤르메스Hermes, 1차대전의 구형전함 5척, 순양함 7척, 구축함 16척이었다. 
지브롤터에서 H전대를 지휘했던 제임스 소머빌James Somerville이 맡았다. 
4월 4일, 카탈리나Catalina수상기가 스리랑카로 접근하는 일본군을 발견하고 위치를 보고한 후에 격추당했다. 나구모의 제1항모전대로 아카기, 히류, 쇼카쿠, 소류와 즈이카쿠, 전함 4척, 순양함 3척과 구축함 9척의 막강한 전력이었다. 
그리고 항공기는 300대 이상이었는데, 소머빌은 겨우 구형항공기 147대가 전부였다. 만약 동방항대가 궤멸하면 인도뿐만 아니라 중동으로 이어지는 항로가 차단될 수 있었다. 그럴 경우 모든 수송을 아프리카 희망봉으로 크게 우회해야 했고, 북아프리카에서 롬멜이 8군을 이집트로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에 중동에서 추축국의 전선이 연결될 수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선박은 콜롬보Colombo항을 출발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4월 5일, 일본함대가 다시 포착되었고 곧이어 91기의 공격기와 36기의 전투기가 콜롬보항을 공격했다. 영국전투기 42대가 요격에 나섰고 일본항공기 7대와 영국항공기 19대가 격추되었다. 방어시설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항구시설은 의외로 피해가 적었다. 보조순양함 헥터Hector와 구축함 1척이 침몰했다. 
정오에 중순양함 도네Tone의 정찰기가 순양함 콘월Cornwall과 도싯셔Dorsetshire를 발견했고 급강하폭격기 53대가 아주 정확한 공습을 했다. 두 척 모두 침몰했고 다른 순양함과 구축함이 1,546명 중 1,112명을 구조했다. 
인도미터블의 알바코어Albacore가 야간레이더 탐색으로 적선을 추격했지만 이미 남동쪽으로 물러난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