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종전명령을 거부한 U-853의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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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2021. 10. 9.

(종전 3개월 후에야 남미까지 가서 항복한 최후의 유보트가 있지만 그건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녹슨 무덤은 의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프룀스도르프Fromsdorf는 도대체 왜 잠수함과 승무원의 목숨을 걸고 공격을 이어간 것일까?’

1945년 5월 4일 저녁, 잠수함구난함 USS 펭귄Penguin ASR-12(사진 참조)는 대서양전역에서 2차대전 종전을 축하하고 있었다.
히틀러가 4월 30일에 자살했고 카를 되니츠Karl Doenitz제독이 총통에 임명되어 이제 집으로 돌아갈 날만 생각했는데, 대서양전투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5월 4일 오전, 되니츠는 독일의 패망을 인정하며 ‘모든 유보트에게 명령한다. 작전을 즉시 중단하라. 연합군선박에 어떤 적대행위로 하지 말라. 총통의 명령이다’라고 알렸다.
바다에 있던 모든 잠수함이 이 명령을 바로 전달받지 못했는데, 아예 들을 생각이 없던 잠수함도 있었다.

펭귄이 축하를 벌이는 동안, 121m 길이의 석탄운반선 S.S. 블랙포인트Black Point는 석탁 7,500톤을 싣고 버지니아를 출발해 보스턴 에디슨 발전소로 향하고 있었다. 

 


1918년에 건조되었고 미해군이 1차대전 유럽파병군을 위해 프랑스 수송선으로 인수해 USS 페어몬트Fairmont라는 이름을 붙였다. 1918년 종전 후, 선박회사에 매각되어 네브라스칸Nebraskan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27년에 다시 매각되어 블랙포인트라고 불렀다.
미신을 믿는 선원들은 이름을 바꾸면 불운이 찾아온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그 미신이 들어맞았다. 

되니츠는 베를린시간으로 5월 5일 오전 8시부터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 시간 독일잠수함 U-853은 로드 아일랜드Rhode Island 앞바다에서 목표물을 찾아 숨어있었다. 2년 전에 건조해 55명이 탑승한 IXC/40형 잠수함은 헬무트 프룀스도르프 상급중위oberleutnant Zur See가 함장이었다.
그는 이전 임무에서 항공기의 공격을 받고 중상을 입은 조머Sommer함장을 대신해 승선했다. 침몰위기를 벗어난 후에 853을 줄타기꾼der Seiltanzer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미군해군은 아슬 아슬하게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고 모비딕Moby Dick이라고 불렀다. 
전임 함장은 부상 때문에 마지막 임무에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프룀스도르프에게 종전이 눈앞이기 때문에 절대로 위험을 감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의 부인이 1974년에 쓴 편지에 따르면 ‘동고동락했던 승무원 모두 살아남기를 간절히 원했다.’ 

 

다음 작전을 기다리는 853의 승무원입니다. 중앙이 무모한 공격을 감행한 햇병아리함장 프룀스도르프입니다.

 


5월 5일 정오, 블랙포인트가 롱아일랜드 사운드Long Island Sound 안전수역을 떠나, 뉴 헤븐New Haven 근처의 짙은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안개가 너무 심해서 찰스 프라이어Charles Prior함장은 닻을 내리고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시야가 어느 정도 확보되자 보스톤을 향해 속도를 높였고 U-853이 마지막 공격을 감행했다.
프라이어는 이렇게 회고헸다.
‘R-2 부표 왼쪽을 막 통과하자 포인트 주디스Point Judith등대가 한 눈에 들어왔다. 해변에서 겨우 몇 km 떨어져 있었다. 오후 5시 40분이었고 조타실에서 함교로 나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을 때에 폭발이 일어났다. 시계가 벽에서 날아올랐고 조타실 문이 뜯어졌다. 담배에 불을 붙였는지 아니면 통째로 삼겼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화약냄새가 진동했고 선미가 완전히 사라졌다.’

선미에 있던 블랙포인트 선원 11명과 미해군경비대 1명이 사망했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경비대원 4명은 살아 남았다. 배가 침몰하기 전에 구조신호를 급하게 발신했다.
유고슬라비아 상선 카멘Kamen이 공격현장에 있었다. 급히 구조신호를 보낸 후에 급히 달려가 생존자를 구해냈다.
포인트 주디스의 해안경비소는 폭발음을 듣고 보스턴 해군지역사령부에 알렸고 바로 지역의 대잠수함전투그룹 TG 60.7에게 현장출동명령이 떨어졌다. TG 60.7의  USS 에릭슨Ericsson DD-440, USS 아믹Amick DE-168, USS 애서튼Atherton DE-169와USS 모벌리Moberly PF-63는 정비받으러 보스턴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프룀스도르프는 최악의 전투장소를 골랐다. 해안에서 너무 가까워서 수심이 30m도 안되었다. 조머는 나중에 아내에게 자신이라면 절대로 그런 곳에서 공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TG 60.7가 현장에 도착하자, U-853은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깊은 수심은 몇 km나 떨어져 있었다. 
저녁 7시 30분, 미호위구축함 3척이 현장에 도착했다. 애서튼이 8시 14분에 탐침으로 U-853을 잡아냈다. 공격 3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애서튼이 바로 밑에 있는 독일잠수함을 포착하려고 애를 쓰는 동안 배안에서는 전쟁포로인 프란츠 크로네스Franz Krones가 맹장염수술을 받고 있었다. 그는 지브롤터Gibraltar에서 미국으로 호송 중이었는데 수술과 전쟁 모두에서 살아남아 2008년 5월 5일에 세상을 떠났다. 63년 전에 프룀스도로프가 어뢰를 발사한 바로 그 날이었다. 

 

지도는 오타입니다. U-835가 아니라 853입니다.

미군의 폭뢰와 헤지호그hedgehog(사진 참조)가 쏟아져 내려오자 U-853은 또 한 번의 줄타기를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기적이 없었다.

 


5월 6일 오전, 미해군수상함이 계속 합류했고 비행선도 2대가 띄워졌다. 비행선은 소노부이sonobuoy를 투하해 U-853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을 찾았다. 독일잠수함의 부유물이 해상으로 올라왔는데 그 중에는 함장의 모자도 있었다. 853의 최후가 분명했다. 5월 6일, 오전 10시 45분, 모든 작전이 중단되었다. 

 


운이 좋았던 모비딕은 최후를 맞이했고 모든 승무원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무모한 공격에 희생되었다. 
애서튼함장 아이슬린Islelin은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이 정도면 정말 충분한데, 모두 숟가락을 얹고 싶은 것 같다. 전쟁 중에 이렇게 두들겨 맞은 선박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853은 마치 투우장에 오른 모양새였다. 모두 한 번씩 창을 찌르고 싶어 했다. 

853이 침몰하던 그날 새벽 5시, USS 펭귄의 해군잠수부 클레어리 에드워즈Clary Edwards는 잠옷차림으로 해안순찰대의 호출을 받았다. 유보트를 몰아 넣었으니 바로 출근하라는 명령이었다. ‘지랄한다고 생각했다. 전쟁이 끝나서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어쨌든 옷을 입고 차에 올라 펭귄으로 갔다.’ 
잠수함의 해치를 열자, 문을 두들기다가 죽어간 사체가 가득했다. 22살의 헤르베르트 호프만Herbert Hoffman의 사체를 간신히 꺼냈고 나중에 수장을 치렀다. 
폭뢰불발탄 때문에 더 이상의 작업이 모두 취소되었고 해도에는 현재까지 ‘위험. 불발폭뢰. 1945년 5월.’라는 경고가 붙어 있다.  

 


공식적으로 미해군은 다시 853을 건드리지 않았지만 지역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개인잠수장비가 개발되면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람들이 U-853에 접근했다. 

 


1953년의 첫 번째 시도에서 프로펠러만 건져냈고 해군참모학교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1960년의 두 번째 시도에서는 승무원의 시신과 유품을 발굴해 뉴포트Newport에 정식 안장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프룀스도르프는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공격을 감행했을까?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확실한 정답은 없다. 
함장은 제3제국이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고 블랙포인트를 침몰시킨다고 해도 운명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충분히 고민했다면 그리고 바로 머리 위에서 아군이 유대미국인의 수술을 받고 살아난 것을 알았다면 U-853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독일해군장교들은 즉시 교전행위중단명령을 무시하겠느냐는 질문에 한결같이 ‘절대복종한다’고 대답한다. 
아마도 U-853은 그 명령을 수신하지 못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블랙포인트를 자살공격한 이유가 안 된다. 아무리 운이 좋아도 해안에서 너무 가까웠고 수심이 얕아서 탈출할 수 없었다.
유보트를 강철관이라고 부르는데, U-853은 수심 36m의 차가운 물속에서 영원히 잠겨 있는 강철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