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나르코스 멕시코배경 - 민간인 실종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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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타

2021. 11. 21.

긴 내용이고 제 원래 성격대로 다듬지 않았습니다. 

 

나르코스 멕시코 시즌3의 설명이 너무 없어서 많은 분들이 도중에 포기하기에 배경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부패한 경찰관이 실종된 소녀 그리고 연쇄살인을 추적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죠.

이번 이야기가 그 배경입니다. 

 

아나 카리나 사타라인Ana Karina Zatarain의 뉴욕커The New Yorker, 2020년 8월 5일 기사를 인용했습니다. 

 

 

멕시코 실종자 어머니들과의 수색 
멕시코에서는 7만 명 이상이 행방불명되었고 대부분이 마약관련 범죄에 희생되었다. 사랑하던 가족을 찾던 사람들이 이제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약 1년 전, 화요일 오후에 미르나 메디나Mirna Medina에게 문자를 보냈고, 급한 음성답신이 왔다. ‘안녕하세요. 예. 잘 지내요. 조금 전에 시신 한 구를 발견했어요. 어쨌든 시간낼 수 있습니다.’
멕시코 서부해안 시날로아Sinaloa주도인 쿨리아칸Culiacán으로 날아갔다. 어색한 위로를 전하고 언제 어디에서 만날 수 있는 지를 묻고는 답장을 기다렸는데 아무 답변이 없었다. 그 이튿날도. 

 


미르나는 쿨리아칸 북쪽으로 3시간 거리인 엘 후에르테의 로스 모치스Los Mochis에 살고 있으며 실종자를 찾는 200명의 모임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마약카르텔과 관련된 범죄에 희생된 2~30대의 가족을 찾고 있다. 대부분 자식의 시신이라도 찾기를 바란다. 

 


미르나의 모임은 라스 라스트레아도라스 델 후레프테Rastreadoras del Fuerte이며 마약카르텔 기사를 썼다가 죽은 하비에르 발데스 카르데나스Javier Valdez Cárdenas가 붙인 이름이다. 그는 2017년에 시카리오스sicarios(암살자)에게 살해당했다. 

 


라스트레아도라스(추적자들)만이 아니다. 멕시코 전체에 60개 이상의 비슷한 모임이 있다.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가족과 친구가 모여 들판을 샅샅이 뒤지며 잊혀져가는 사람의 시신을 찾고 있다. 실종사건은 약 15년 전, 펠리페 칼데론Felipe Calderón 대통령이 멕시코군을 동원해 마약운반을 대대적으로 단속하면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2006년 12월, 그는 취임하자마자 6,500명의 병사를 미초아칸Michoacán주에 배치했다. 다시 시날로아에도 군대를 배치했는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마약카르텔의 본거지이자 이 기사를 취재한 기자가 자란 곳이었다. 
이전에도 끔찍한 사건이 있었지만 대부분 교외에서 일어났었다. 군차향이 거리에 급증했고 군복차림의 병사가 총구를 하늘로 향한 채로 거리를 순찰했다. 담요로 둘러싼 시체Encobijados가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시체가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그냥 사라지기 시작했다. 거의 대부분의 희생자는 가난한 원주민태생의 남성이었다. 이들은 마약거래와 상관이 없었는데, 암살범들이 실제 대상과 착각하거나 경고용으로 죽이고 없애버렸다. 
카르텔은 지역경찰을 고용할 정도로 막강했다. 우범지역의 암살범은 200페소(약 10달러)만 지불하면 아무나 처리해준다고 했다. 농촌 낮은 언덕 위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묻었다. 
칼테론이 취임했을 당시에는 구덩이 2개가 발견되었는데, 5년 후에는 350개로 늘어났다. 2020년 초에는 비밀무덤fosas clandestinas이 2일에 1개 꼴로 발견되었다. 

 


1970년대에는 주로 정치적인 이유로 행방불명이 일어났었다.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Elena Poniatowska는 ‘침묵은 강하다’라는 책에서 자식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슬픔을 보도했다. ‘자식이 사라진 어머니는 영원히 고통받는다. 절대로 치유되거나 단념할 수 없다. 죽음은 희망도 죽이지만 실종은 죽은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심리학에는 이런 고통을 ‘모호한 상실감’이라고 부르는데 가족이 실종된 사람들이 겪는 슬픔이 아니라 고통이다. 시신을 직접 보고 전통적인 장례를 치러야 죽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지난 1월, 멕시코정부는 실종자가 공식적으로 6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그것만으로도 충격적인데 지금은 7만 3천명을 넘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가 북미에서 처음으로 보고되었다. 북미 대부분이 폐쇄되고 대중장례식이 금지되면서 수백만명이 멕시코 어머니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전염병을 가장 심하게 겪고 있는 멕시코의 시날로아의 집안에서는 여전히 어머니들이 실종된 자식을 눈물흘리며 기다리고 있지만 수색이 재개될 조짐이 없다.

미르나와 연락하고 며칠 만에 로스 모치스에서 만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쿨리아칸에서 북쪽으로 차를 타고 가서 카페에서 기다렸지만 그녀와 통화가 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에서 다시 수색을 떠났다는 글을 보았다. 그녀는 오후에 사무실 위치를 알려주면서 바로 돌아가겠다고 알려왔다. 

로스 모치스는 주변이 온통 농장인 작은 도시다. 호텔체인 몇 개와 간단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전부다. 거주민은 다른 곳이라면 무척 싫어할 거친 시날로아 사투리를 쓴다. 카페를 나와 맨흙의 도로를 걸으며 집과 가게를 지나쳤다. 유기견이 먹을 것을 찾는 폐가가 나왔고 바로 옆이 라스트레아도라스 사무실이었다. 
작은 건물에 유리창에는 실종자 정보가 잔뜩 붙어 있었다. 91장의 사진 중에 85장이 남성이었다. 많은 사진이 특징으로 문신을 보여주었는데 오른손에 크리스토퍼, 발목에 호세, 손목에 헤수스와 에스더 그리고 왼쪽 가슴에 아기의 발자국 문신 등이 있었다. 

 


전염병이전에는 실종자가족, 특히 경찰서로 가기 주저하는 사람들이 정보와 지원을 받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도움을 받으며 모임에 가입했다. 6년 만에 198구의 시신을 발견했다. 정부감식반은 DNA 테스트로 120구의 신원을 파악했고 66구가 라스트레아도라스의 가족이었다. 43번째 시신은 2014년 7월에 실종되었던 미르나의 아들 로베르토Roberto였다. 3년 만에 발견되었다. 

인도에 앉아서 그녀를 기다렸다. 오후 3시, 미르나가 트럭에서 내려 웃음을 보이며 기자에게 타라고 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전날 밤에 시신의 위치를 알려주는 익명의 제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수색팀이 현장에서 옷을 입히고 붉은 액체로 적신 모래주머니를 찾았다. 그녀는 ‘우리를 조롱하려고 했는지 아니면 함정을 판 것인지 몰라 걱정이 됩니다’라고 말했다. 

 


미르나는 실제 키보다 더 커보였다. 어깨가 넓었고 야외수색 활동을 계속 한 탓에 피부색이 완전히 짙어졌다. 그녀가 하는 일을 생각하면 쾌활한 모습이라 당황스러웠다. 가짜 시신을 설명한 후에 점심을 먹겠냐고 물어왔다. 그리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로스 모치스에서 즐겨먹는 새우칵테일 식당에 가자고 했다. 식당에 들어가는 동안에도 전화가 계속 울렸다. 의자에 앉자 전화기를 테이블 위에 뒤집어 놓고 기자에게만 집중했다. 

몇 개월 전까지, 라스테레아도라스는 일주일에 최소한 2일 이상 수색활동을 했다. 30% 정도의 인력은 제보를 받고 움직였고 나머지는 이전에 시신이 발견된 곳이나 증인이 실종을 신고했던 곳으로 갔다. 
수색을 나갈 때마다 1천페소(약 50달러)의 기름, 음식, 음료수와 장비값이 들었다. 시신이 발견되면 삽과 장화는 오염 때문에 버려야한다. 사무실 임대료로 매달 135달러가 나갔고 직원고용과 유지비로 700달러가 더 나갔다. 기부와 보조금으로 비용을 대부분 지불했고 요리책 발간 등으로 기금을 모았다. 2018년, 미국유대인세계서비스American Jewish World Service가 4천달러를 기부했는데 그동안의 최대금액 중 하나였다. 그리고 2020년에 8천달러의 보조금을 받았다. 

2012년, 멕시코정부는 희생자국가등록소National Registry of Victims를 만들고 실종의 비간접적 희생자, 실종자 가족 등에게 매달 200달러 정도를 지원한다. 라스트레아도라스 회원들도 지원금을 받지만 미르나는 받지 않는다. 남편의 수입과 이전 결혼에서 구입한 작은 집의 임대료로 충당하고 있다. 
그녀는 “돈 때문에 활동을 한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모든 회원에게 매달 20페소(1달러)의 회비를 내라고 했지만 강제할 수 없었다. 많은 회원이 자식의 시신을 수색하느라 정규직을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사인과 상관없이 죽음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행방불명은 슬픔정도가 아니라 아예 정신나가게 만든다. 소냐 차베스Sonia Chanez는 아들 파블로 산도발Pablo Sandoval이 2018년 5월에 실종되었고 그 후부터 분노, 절망과 슬픔의 복잡한 심정을 겪고 있다, 그녀는 20일 동안 몸져누워 요거트와 우유만으로 버텼다. 그녀는 “자살을 생각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하던 중에 신발을 벗어서 보여주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발톱을 모두 뽑아버렸다. 

미르나의 아들인 로베르토 코랄레스 메디나Roberto Corrales Medina는 21살로 로스 모치스의 주유소 밖에서 CD를 팔다가 납치당했다, 미르나는 근처에서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아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결혼 후 9년 만에 간신히 가진 아들이었고 하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이 실종되던 날, 그녀는 임신, 출산 그리고 젖을 먹이던 이야기를 몇 시간 동안 하고 있었다. 그녀는 기자에게 ‘바로 그 순간에 누군가는 아들을 어떻게 죽일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기자가 로베르토에 대해 말을 꺼내자, 미르나의 쾌활하던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며 ‘우선 시신 전부를 찾지 못했다는 것부터 말해야겠죠. 등뼈 일부, 팔 한쪽, 무릎 일부, 이빨 한 개, 손가락 일부를 찾았어요. 예쁜 관에 매장했죠.’ 
그녀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장례 후에는 슬픔이 달라졌어요. 아들이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묻었고 어디에 있을까? 밥은 먹고 있을까? 춥지는 않을까?하는 의문도 그만두었어요.’ 

아들이 귀가하지 않자, 미르나는 실종신고를 했지만 지역경찰은 무관심해보였다. ‘여기에서는 실종이 다반사로 일어났고 실종신고 전부를 추적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미르나가 신고했던 경찰서는 나중에 아예 폐쇄되었다. 
그 이전만 해도 그녀는 매장구덩이 뉴스를 흘려들었다. 갑자기 뉴스가 너무 중요하게 느껴졌다. 경찰서를 나서면서 아들에게 약속했다. '테 부스카레 아스타 엔콘트라르테Te buscaré hasta encontrarte(너를 반드시 찾겠다).' 그녀는 삽과 곡갱이를 들고 시날로아 들판으로 갔고 아들을 찾고 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다른 실종자의 어머니들이 합류했다. 그 어머니들도 경찰서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일부는 경찰을 믿지 않으며 DNA 샘플채취도 의심해서 아예 신고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2017년, 정부는 시날로아 등 여러 주에 지역수색위원회를 설립했고 이듬해에는 전국위원회National Search Commission로 확대했다. 현재는 인권변호사 카를라 퀸타나 오수나Karla Quintana Osuna가 이끌고 있다. 퀸타나 오수나는 ‘멕시코에서는 경찰에 대한 불신 때문에 범죄를 신고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찰이 실종사건에 관련되어 있다고 의심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거나 신고했다고 다른 가족이 보복당할 수 있다고 두려워한다.’ 

 


전국위원회 설립 몇 개월 후, 좌파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사진)가 노동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선되었다. 후보시절 오브라도르는 마약범죄를 근절시키려면 무력이 아니라 관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에 취임하자 멕시코의 마약전쟁이 끝났다고 선포했다. 1년 반 후, 그는 범죄는 더욱 심각해졌고 그는 최근에 카르텔을 상대로 군을 본격적으로 투입했다. 
미르나는 ‘대통령은 방향을 못 잡고 있다. 의도야 좋지만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중도주의 호세 안토니오 메아데José Antonio Meade를 지지했다. 

 


미르나는 기자를 집으로 데려갔다. 큰 정원 중앙의 단층건물이었다. 여전히 완공되지 않아서 상수도가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 라스트레아도라 회원인 레이나 로드리게스Reyna Rodríguez를 만났다. 아들 에두아르도Eduardo가 2016년 2월에 여자친구 수미코 펠릭스Zumiko Félix와 함께 실종되었다. 
여자친구도 21살인데 발렌타인데이 선물을 고르러 함께 외출했다가 변을 당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염려되어 전화를 했는데 ‘누군가 따라오고 있지만 괜찮아요. 엄마. 정말 사랑해요’라는 심상치 않은 통화를 했다. 수미코에게 뛰라는 에두아르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전화기가 꺼졌다. 두 사람은 실종되었다. 

레이나는 “첫 수색에 나섰을 때에 무척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쓰레기, 하수도, 잡풀더미 속에서 아이를 찾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단호한 표정으로 ’어머니라면 아이가 어릴 때에 넘어져서 무릎만 다쳐도 큰 고통을 받는다. 나중에 누군가가 아이를 고문하고 살해한다면? 더구나 아예 찾을 수 없다면?‘ 에두아르도가 실종된 날 이후, 창문 밖을 바라보며 울부짖고 아들의 시신을 집앞에 버려주기를 간절히 기도한 기억 밖에 없다고 했다. 

그날 라스트레아도라스는 익명의 제보를 또 받았다. 
이튿날 아침 6시 정도에 다른 여성 5명과 함께 미르나의 트럭에 올라 수색작업에 참여했다. 1시간을 남쪽으로 달렸다. 도중에 인근 구아사베Guasave의 여성 24명을 만났다. 5개월 전에 산하수색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아직은 수색성과가 없었다. 미르나는 시도 중 90%는 헛수고이기 때문에 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서로 가벼운 일상사를 이야기하며 활기찬 분위기였다. 
미르나는 여성들에게 얼마나 많은 보물(시신)을 찾고 싶냐고 물어봤다. 그들은 2~4구라고 대답했다. 

 


미르나는 시날로아 아오메Ahome의 수색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쓰레기매립지 옆에 정차해서 쓰레기소각장 부근에 시신이 유기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시신이 분해되면서 엔자임이 가스를 만들기 시작하고 시신이 2배로 부풀다가 가스가 새어 나온다. 시신을 흙에 뭍고 3일 정도 지나면 가스 때문에 흙이 몇 cm 정도 올라온다. 일반인은 전혀 알아챌 수 없는 정도다. 라스트레아도라스는 T자형 얇은 쇠막대를 가지고 다니다가 약간 올라온 지표면을 발견하면 쇠막대를 찔러 넣고 냄새를 맡는다. 시신 특유의 냄새가 나면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 

옥수수밭에서 의료용 마스크를 착용하고 수색을 시작했다. 30분도 안되어서 썩는 냄새가 났다. 죽은 개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청바지를 입혀놓았다. 
미르나는 “두려워하지 말라. 전에 봤던 것이고 계속 수색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두 그룹으로 흩어졌다. 1시간 지나자 기자의 그룹이 다른 그룹의 문자를 받았다. 그녀가 ‘발견했단다. 신이여 감사합니다’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다른 그룹으로 급히 달려갔다. 한 여성이 구멍을 가리켰다. 흰뼈가 흙더미를 뚫고 반짝였다. 불에 그을린 턱뼈에 이빨이 3개가 남아 있었다. 파블로Pablo의 어머니 소니아 차베스가 쓰러져 울부짖었다. 다른 여성들이 그녀를 잡아 일으키며 위로의 말을 건넸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나중에 아들이라는 증거가 없었지만 갑자기 현실로 다가와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들을 계속 찾고 있지만 아마도 살해당해 흙더미에 버려졌을 것이다. 

몇 시간 동안 땅을 팠다. 시신조각이 발견된 시간을 기록했고 그때마다 죽음의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뼈외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건네준 삽을 들고 땅을 팠다. 삽에 충격이 느껴졌다. 한 여성의 시신 중간을 쳤는데 부패상태로 보아 2주 전쯤에 매장되었다. 

미르나는 시신을 발견하자마자 경찰에 전화했고 2시간 후에 도착해서 매장터 부근을 테이프로 봉쇄했다. 미르나는 기자에게 매장구덩이에는 숫자를, 시신에는 문자를 붙여 자세하게 기록해달라고 부탁했다. 정부감식팀이 도착해서 정식으로 시신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시민은 시신을 발견해도 발굴해서는 안되었다. 
감식팀은 온전한 시신 2구를 들것에 놓고 뼈와 살덩이 등은 작은 더미로 모았다가 비닐봉투에 담았다. 미르나는 무표정한 상태로 지켜보았다. 그녀는 시신을 다루는 방식이 마음에 안든다고 말했다. 경찰에 맡겨두면 뼈 1~2개만 챙겨서 DNA 시험을 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버린다고 했다. 경찰은 유가족을 찾지도 않는다. 감식팀원이 시신 위로 올라가 허리띠를 잡고 잡아끌려고 하자 미르나가 ‘조심해! 조심하라고! 빌어먹을’이라고 소리질렀다. 시신이 조각나며 다리가 떨어져 나갔고 등뼈가 빠져나왔다. 미르나는 ‘누군가의 자식이라고!’라며 울부짖었다. 

기자는 시신의 특징을 기록했다. 매장구덩이 1번, 시신 B는 알베르티토Albertito와 카르멘Carmen이라는 문신이 있었다. 라스트레아도라스 사무실에 걸려 있던 사진을 떠올렸다. 몇시간 동안 91장의 사진을 자세하게 봤었는데 사람이 그냥 숫자에 불과했다. 
기자의 신분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기록하면서 무너져내려 무릎을 꿇고 흐느꼈다. 미르나가 일으켜 세우며 안아주었다. 몇 초 뒤에 어깨를 붙잡으며 ‘견딜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너무 힘들면 자리를 떠나도 된다’고 말했다. 

 


감정을 누르고 물을 먹으려고 트럭으로 갔다. 시신소식이 퍼졌는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실종자 가족도 왔는데 어린 아이도 데리고 왔다. 경찰차단선 뒤에서 실종된 가족의 옷, 나이, 피부색, 이름 등을 외쳐댔다. 에두아르도의 어머니 레이나는 우리와 오지 않았다가 시신발견 소식을 듣자 마자 차를 몰고 왔다. 기자가 시신을 기록했다는 말을 듣고는 팔을 강하게 붙잡고 팔찌를 찬 시신이 있는지를 물었다. 

후아니 에스칼란테Juany Escalante는 차단선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당뇨병 때문에 발이 너무 아파서 수색작업에 참여할 수 없었다. 몇 년전, 총소리를 듣고 밤중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큰아들이 집에서 살해당했다. 둘째 아들은 2018년에 실종되었다. 다른 이름을 부른 것을 보니 아들을 다른 사람과 착각해서 납치했다고 했다. 그녀는 ‘두 아들이다. 무슨 일이 있는 것일까?’라고 말했다. 

그날, 라스트레아도라스는 8개의 매장구덩이에서 시신 12구를 찾아냈다. 5구는 최근에 살해되었다. DNA 시험을 위해 모든 시신을 가져갔다. 현장에 있던 여성이 찾는 실종자의 시신은 없었다. 

10월 중순, 멕시코군이 시날로아 카르텔 후계자 오비디오 구스만Ovidio Guzmán을 쿨리아칸에서 체포했다. 오후내내 암살용병과 군인이 대치하다가 5시간 만에 석방되었다. 버스와 차가 불탔고 도시의 대로가 봉쇄되었다. 지역감옥에서 50명이상이 풀려났다. 
기자는 멕시코시티의 아파트에서 언론기관과 친구들이 보내오는 트위터 사진과 소식을 보며 그 상황을 지켜봤다. 최소한 14명이 살해되었다는 발표가 있었다. 기자와 대화한 모든 사람이 실제 숫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에서는 이 사건은 검은 목요일jueves negro이라고 불렀다. 

 


2주 후, 기자 혼자서 쿨리아칸으로 갔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부모님댁으로 향했다. 도중에 붉은 장미다발을 들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운전사는 웃으면서 ‘저 놈은 장미를 팔지 않는다. 보스가 누구인지 알아요?’라고 말했고 모른다고 하자 더 크게 웃었다. ‘저놈은 알콘halcón(감시꾼)이에요’라고 말했다. ‘여기 사람이 아니죠?’라고 다시 물어왔고 여기 출신이라고 했는데 너무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던지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이튿날, 버시를 타고 로스 모치스로 가서 라스트레아도라스의 새 사무실을 방문했다. 미르나는 ‘잘 왔어요. 다시 안 올 줄 알았어요’라며 사무실로 안내했다. 
에스칼란테가 소파에 누워있었고 미르나는 책상에 앉아 사진에 풀칠을 했다. 11월 1일이었다. 멕시코에서는 11월 1~2일에 사자가 생자를 방문한다는 디아 데 무에르토Día de Muertos(사자의 날)이었다. 
사람들은 가족의 무덤에 모여 좋아하던 노래를 부르고 즐거운 추억을 회상한다. 미르나는 작년에 붙여두었던 로베르토의 초상화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그녀는 ‘햇빛과 비 때문에 엉망이 되었어요. 그렇지만 올해는 실링을 해서 괜찮을 거예요.’ 초상화를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문지르며 ‘참 잘생기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사자의 날은 축제이지만 언제나 눈물로 끝난다. 특히 억울하거나 갑자기 죽은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로베르토가 묻힌 모치카우이Mochicahui에도 그런 무덤이 가득한데 2~30대에 죽은 남성들이었다. 
미르나가 조화를 가져와 심으려고 삽을 들었더니 남편인 리카르도Ricardo가 나섰다. 그녀는 ‘내가 땅도 못 팔 줄 알아?’라고 말했다. 

중년여성이 인사말을 건네왔다. 헤시 토레스Jessy Torres는 2013년에 동생인 호르헤 라모스Jorge Ramos를 잃었다. 어머니는 건강이 너무 악화되어 아들을 찾으러 다닐 수 없었고 헤시가 라스트레아도라스에 합류했다. 2016년에 호르헤의 시신을 발견했고 모치카우이에 매장했다. 
그녀는 수색기억을 떠올렸다. ‘T셔츠를 보고 바로 알았습니다.’ 가족은 마침내 그를 매장할 수 있어서 안도했다고 한다. 초를 밝히고 꽃을 놓으면서 평화를 찾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몇 년동안 호르헤를 위해 따로 식사를 준비했고 수면제를 너무 먹어서 나중에는 약효가 듣지 않았다. 

미르나는 몇 개월 전에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에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설명한 적이 있었다. ‘가족이 있기를 바라면서 구덩이에 접근하죠. 그래야 끝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구덩이 안에 없으면 다시 기뻐합니다.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요. 살아있을지 모르니까요.’ 
12월, 소니아 차베스는 니살로아에서 파블로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니아는 ‘아들이 아니기만을 바라며 지역검찰로 갔어요. 그들이 착각했다는 말을 해주기를 바라면서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DNA결과가 확실했다. 그런데 아들을 매장한 후에 다시 큰 슬픔을 겪었다고 한다. 

2월 말, 멕시코의료진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 중 한 명은 이탈리아를 여행했던 시날로아 남자였다. 3주 후, 전국이 봉쇄되었다. 라스트레아도라스는 수색을 중단했지만 제보는 계속 받았다. 미르나는 지역경찰에게 제보를 전달한다고 했다. ‘어머니들은 절대로 동의하지 않죠. 우리보다 보물을 더 잘 찾을 사람이 없으니까요.’ 

4월,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희생자전국등록소 등의 정부프로그램의 예산을 크게 줄였다. 2개월 후, 전국실종자수색여단National Brigade for the Search of Disappeared People은 멕시코시티의 대통령궁 밖에서 연좌시위를 했다. 
광장에는 시위현장이 그대로 남겨졌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에는 3월 시위의 페니미스트 그라피티가 있었다. ‘어머니에게서 투쟁하는 방법을 배웠다.’ 미국 낙태운동가의 슬로건인 acab(all cops are bastards. 경찰은 모두 개자식)도 최근에 남겨졌다. 전국여단은 C.E.A.V.(Comisión Ejecutiva de Atención a Víctimas. 희생자보호위원회)이사 마라 고메스Mara Gómez를 냉담하고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는데 그녀는 답변요구를 무시하고 있다. 대변인은 ‘시위단체, 위원회와 내부무장관 사이의 의사소통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지만 시위참여자는 전혀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라스트레아도라스는 여단과 협력관계가 아니며 미르나는 고메스를 칭찬하며 그녀가 법대로 처리해서 비난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미르나는 희생자 가족 중 일부가 정부의 지원금에 너무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러운 지원금을 절대로 받지 않고 있지만 다른 가족도 그래야 한다는 것은 아니예요‘라고 말했다. ’물론 그들의 권리예요. 그렇다고 남용하면 안되죠.‘ 며칠 후, 고메스는 C.E.A.V.가 정부의 예산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며 사임했다.

미르나와 기자는 7월 말에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스트레아도라스 중 13명이 코로나양성이었다고 한다. 2명이 아직 회복 중이지만 그룹을 좀 더 작게 만들어서 차 2대에 여성 2명씩 태우고 거리를 유지하며 수색을 재개했다. 

기자는 미르나와 회원들 사이가 너무 대조되어서 놀랐다. 미르나는 고통에 잠긴 피에타pietà가 아니며 이제 사회활동가로 공공기관과 밀접한 연계를 하고 있다. 기자가 수색에 참가했을 때에, 격려보다는 소리높여 지시를 했고 현장을 거의 지배했다. 라스트레아도라스 몇 명은 그녀를 대장으로 떠받들었다. 
미르나는 자신의 역할에 주어진 모든 것을 수용했다. 위험, 고통 그리고 명예까지. 2017년에 다큐멘타리가 공개되었고 한 편이 더 촬영 중이다. 미르나는 첫 번째 대화 중에 ‘다른 여성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 지 모르겠지만 즐기고 있어요. 수색을 나가면 로베르토를 찾는 기분이 들어요. 가끔 망상을 느끼기도 해요’라고 말했다. 7월에는, 코로나봉쇄 후에 수색을 3차례 수색을 나갔는데 ‘어제 보물을 하나 찾았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미르나는 사무실에 T셔츠 2장을 걸어 두었는데 흰색은 로베르토가 실종된 후에 반드시 찾겠다던 약속이 써 있었다. 녹색 셔츠에는 약속실행Promesa cumplida이 써 있었다. 실종된 자식의 사진이 새겨진 개인 셔츠를 가져오지 않은 회원은 두 셔츠를 입는다. 대부분 흰색을 입고 녹색은 시신을 찾은 운좋은 몇 명만이 입는다. 

 


미르나는 레스토랑에서 처음 점심을 함께 할 때에 셔츠를 입고 있었다. ‘아들을 찾았는데도 왜 이런 일을 계속 하는 지 궁금한 사람들이 있죠. 나중에 당신에게 회원들을 소개할텐데... 그들의 고통이 내 고통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녀는 식사 중에 며칠 전의 꿈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모두 시 중심가를 행진했죠. 마치 녹색물결같았어요. 우리 모두 녹색셔츠를 입었죠. 아이들을 모두 찾았어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