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대안역사)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지 않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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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2차대전

2021. 12. 30.

BBC 자료를 인용했고 여러분의 생각과 당연히 다를 수 있습니다.

일왕 등의 표현은 제가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로버트 크립교수가 전사전문이 아니기 때문에 심도깊고 자세한 분석보다는 그냥 대략 이랬을 것이다 정도입니다. 

당연히 진주만 등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미리 정리해두었습니다. 그걸 참조하면 더 재미있을겁니다. 

 

 

대안역사: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지 않았다면?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이른 아침, 일본항공기 수백 대가 진주만의 미해군기지를 기습해 미국인 2,400명 이상이 죽었고, 미의회는 중립을 깨고 참전을 결정했다. 로버트 크립Robert Cribb교수는 일본군이 기습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참전했을 것인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진주만기습이 없었다면 미국은 참전하지 않았고 대서양전선에 함선을 대거 투입하지도 않았고 D-Day도 없어서 유럽전선의 미래가 불투명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렇다면 태평양전선도 없었고 원자폭탄 투하도 없었다는 소리가 된다. 
미국이 계속 중립을 지켰다면 그렇게 되었을 수 있다.   

일본은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응해서 단 한 번의 기습으로 미태평양함대를 궤멸시키고 전쟁의지를 꺾는다는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계획은 공상 속에서만 그쳤을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의 아시아역사 로버트 크립교수는 “야마모토 이소로쿠Yamamoto Isoroku 제독 등의 많은 일본 지도자는 미국과의 엄청난 경제력격차 때문에 장기전을 반드시 피하려고 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미국의 제재를 완화시키는 조건으로 중국철수를 하기 원했다.” 

 

가장 왼쪽이 야마모토이고 1926년 워싱턴주재 일본해군 무관으로 근무해서 미국의 경제력을 무척 두려워했습니다. 

히로히토Hirohito일왕은 참전에 대해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밝혔다면 진주만기습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 강력한 선제타격이 지지를 받지 못했다면 군부도 미국의 요구에 마지못해 동의했겠지만 미국을 달래기 충분한 정도에서 그쳤을 것이다. 양국의 긴장이 크게 완화되면, 군부는 1937년 이후 중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에 집중할 수 있었다. 

 

종전 후에 맥아더가 잘 보살펴 준 일왕입니다. 

크립은 "일본은 언제나 점진적 확장이 관행이었다. 대만, 한국, 시베리아, 만주에 이어 중국북부였다“고 말한다. “중일전쟁은 계획에 없었고 평화협정에 동의할 중국파트너를 원했다.” 
협상을 통해 장개석의 중국국민당에게서 어느 정도는 받아낼 수 있었겠지만 1937년 난징대학살Nanjing Massacre이후에는 완전히 불가능 지경이 되었다. 일본군은 수천 명의 중국시민과 포로를 학살하고 대량 성폭력을 일으켰다. 

 

 

난징대학살은 실제 현장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에 동상사진으로 대신합니다.

무려 30만명이 학살을 당했는데 크립교수는 대충 이야기하는군요. 

 


실제로 일본제국은 석유금수, 미국내 일본자산 동결과 일본선박의 파나마운하 통행금지 등의 경제제재로 크게 흔들렸다. 자연자원 공급이 안정되어야 확장할 수 있었다. 소련군과의 전쟁에서 참패한 후에 러시아를 포기하고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렸다. 

 

할힌골전투에서 참패를 당했습니다. 러시아의 명장 주코프가 승리를 주도했습니다.

1940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Indochina를 점령했고 필리핀을 노렸지만, 필리핀은 미보호령이었고 이곳을 공격하면 진주만기습이 없더라도 미국을 전쟁에 불러들이는 셈이었다. 미국은 당연히 참전했을 것이다. 

일본은 동남아시아를 점령하면서 미국뿐만 아니라 버마, 말레이지사와 싱가폴의 영국군과 네덜란드군을 공격했다. 
“일본에게 가장 유리한 대안은 네덜란드 동인도East Indies에서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이다. 일본은 귀중한 유전공급을 받을 수 있지만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적고 미국이 그런 식으로 경제봉쇄를 피하게 내버려두지도 않는다.” 

 


진주만기습이 없었더라도 미국은 동남아시아 상황 때문에 참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침공 이후, 1930년대에 일본과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 “일본은 1940년 9월에 3국동맹조약Tripartite Pact을 맺으면서 절대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와 추축국Axis Powers을 구성하는 동맹은 일본에게 어떤 전략적 이점도 없었던 반면에 미국을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진주만기습 중 사망한 2,403명 중 1,177명은 USS 애리조나Arizona 승무원이었다. 애리조나전함은 폭탄 여러 발을 맞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탄약고를 직격해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미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는 추축국의 위협을 제대로 파악하고 중립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영국을 지원했다. 무기대여법Lend-Lease을 통해, 무기, 차량, 식품과 전쟁에 필요한 다른 자원을 지원했고 민주주의의 병기창이 되었다. 루즈벨트는 반드시 전쟁에 개입해야 한다고 고립주의진영을 설득했다. 

 

 



진주만기습이 없었다면 반대진영의 지지를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의 필리핀, 네덜란드 동인도, 영국령 동남아이사 공격만으로는 실제 역사만큼의 대응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루즈벨트는 연합군을 지원하기로 결정했고 고립주의 진영을 어떻게든 설득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미국도 참전했을 것이다. 

장기전으로 이어지더라도 일본은 동남아시아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와 일본의 경제력 차이가 워낙 커서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였다. 그렇지만 전쟁 말기에 이르면 양국은 소련의 역할을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게 된다. 일본군부는 소련의 상륙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기 때문에 미국의 국토진입에 반대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