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에 알아야 할 세계사 1001 장면

의미있는 1001번의 세계사 이벤트를 자세하게 정리해서 알려드립니다.

나폴레옹전쟁 (7부) - 전열병 일제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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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나폴레옹전쟁

2022. 4. 22.

당시 보병전술이 우리의 오해와 달리 유연하면서도 복잡했다는 것을 설명했고, 이번 이야기에서는 우리가 무척 답답하게 생각하던 전열병 일제사격에 대해 설명합니다. 

전쟁에 전쟁이 이어지던 시대라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죠. 우리가 그랬듯이, 100년 후의 후손들은 우리를 미개하게 생각하는 실수를 반복할겁니다. 

 

 

사격술

강선총을 무장한 병사는 거의 없었고, 절대다수가 전장식 수발총을 사용했다. 영국군의 소총은 구경이 약간 더 커서 프랑스군의 탄약을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의 소총은 성능보다는 생산성이 우선이었고 어느 소총이나 거의 비슷했다. 소총의 품질보다는 병사의 기량이 더 우선이었다. 
정교한 조준보다는 최대한 빨리 장전하고 적을 향해 적당히 조준한 후에 일제사격하는 훈련을 받았다. 부대가 한꺼번에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 
당연히 개혁파의 강한 반발을 샀다. 샤른호스트Scharnhorst는 ‘보병은 정확한 조준이 최우선이어야 한다. 병사들에게 신속하게 장전하고 조준하지 말고 신속하게 사격하라고 가르치는데,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온 힘을 다해 이런 오류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폴레옹전쟁은 아니고 50년 전의 7년전쟁에서, 오스트리아군과 프로이센군의 전투모습입니다.  

덕분에 경보병은 조준사격의 가치를 배웠지만 다른 전열병은 여전히 구식전술을 답습한데다가 실제 사격연습을 해보지도 못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소총은 너무나도 부정확했다. 140m 거리의 시험환경에서도 50% 정도만 표적에 명중했고 70m 거리에서는 2~30% 이상이 표적을 벗어났다. 조준과 사격훈련을 시키면 명중률을 높일 수 있겠지만 그만큼 병사들이 소총의 진실을 알고 불신하는 반대효과가 생겼을 것이다. 

 


전장에서 밀집대형보병은 조준사격을 하지 않았다. 동료가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대형을 유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리고 첫발을 사격한 후에는 연기가 눈앞을 가렸다. 적의 일제사격으로 적진이 가려졌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장전을 더 빨리 하라고 재촉해서 병사들의 공포와 동요를 막을 수 있었다. 


일제사격 훈련을 받았지만 실전에서는 자유사격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병사들에게 명령이 통하지 않았고 3열 전체가 알아서 사격하기 시작했다... 프랑스군도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사격했다. 연합군사령관 스테어Stair경은 많은 전투를 겪었는데 명령대로 사격하는 보병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프로이센군도 마찬가지였다. 
‘분대별로 사격을 시작했고 2~3차례 일제사격 후에는 마구잡이 사격이 이어지곤 했다. 모든 병사가 장전하는 대로 방아쇠를 당겼고 열과 횡이 뒤섞여다. 1열은 무릎사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훈련이 잘 된 부대가 첫 번째 전투를 벌이면 차분히 명령을 기다리며 규율을 지키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1864년 뒤브뵐전투에서의 덴마크군 모습입니다. 3분쯤부터 덴마크군의 대열이 마구 무너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번에도 프로이센군이 상대입니다. 


어쩔 수 없이 첫 번째 사격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병사들이 침착하게 서두르지 않고 장전했고 가장 좋은 상황에 명령에 따라 사격했고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지지도 않았다. 이후부터는 효과가 크게 떨어졌다. 
조악한 화약잔재물이 쌓였고 수석을 갈아야 했고 장전실수가 이어졌다. 꽂을대를 빼지 않거나 불발되었는데 다시 장전해서 얼굴 앞에서 터져버리기도 했다. 

 


건조한 날에는 15% 정도가 불발되었고 습기가 많은 날에는 25%나 불발되었다. 경험많은 병사는 소총의 반동을 줄이기 위해 일부러 화약을 땅에 흘리거나 화약을 완전히 쑤셔 넣지 않았다. 사격이 계속되면 총신이 과열되었는데 화약이 터질 수 있어서 총신에 소변을 누어 식힌 후에 다시 화약을 부어 넣고 불붙여서 건조시켰다. 
그리고 소음, 공포와 연기에 정신이 나가 장전하자마자 조준도 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기고는 바로 뒷열로 물러났다. 부상병을 돕는다던지 소총이 부서졌다며 전투에서 이탈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래서 지휘관은 최대한 근접거리까지 접근할 때까지 사격을 막았다. 
‘적에게 다가가면서, 병사들이 총을 어깨에서 풀고 원거리에서 사격하지 못하게 막기가 너무 어려웠다. 이미 장전된 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을 때에 사격통제는 불가능했다’
많은 지휘관은 적이 먼저 사격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적이 일제사격을 퍼부어도 병사들이 대열을 무너트리고 달아나지 않았고, 적은 급히 재장전하느라 허둥지둥거리며 공포심을 느꼈고, 적은 화약연기 때문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는지 알 방법이 없었다.

일단 사격이 시작되면 중단시키거나 적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막기가 정말 힘들었다. 네Ney원수는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롤리카Rolica에서는 영국군이 경사로를 올라가 산정상에서 프랑스군과 대치했는데, 프랑스군이 갑자기 일어나서 사격하기 시작했다. 장교들이 칼로 소총을 내리치며 사격하지 말고 돌격하라고 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레이크Lake대령이 ‘사격하지 마라. 사격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아군이 합류하면 바로 돌격한다. 영국군은 총검이 진리다’라고 외치다가 죽었고 우측 중대가 사격을 하면서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미숙한 장교들이 문제인 경우도 많았다. 정확한 상황판단없이 일제사격 명령을 내렸고 병사들은 자유사격 허가로 받아들였다. 심지어 사격방향도 마구잡이였다. 정말 귀중하게 사용할 탄약을 무의미하게 소음과 연기를 내는 정도로 낭비했다. 
단 한 번의 돌격으로 적진을 무너트려야 할 때에는 장전하지 않고 공격에 나섰다. 살라망카전투에서 데니스 팩Denis Pack은 절대로 장전하지 말고 고지를 총검으로 점령해야 한다고 명령했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서로를 아주 깨끗하게 볼 수 있는 경우에는 강심장의 대결이었다. 양측 장교는 섣부른 사격을 막느라 애썼고 공격측 장교는 빠른 속도를 전진하면서 대형을 유지시키려고 노력했다. 
수비측 훈련이 부족하거나 규율이 무너진 상태라면 원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사격했다. 수비측은 서둘러 재장전하다가 공격측이 기세등등하게 다가오면 공황상태에 몰려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공격측은 피해을 입었지만 적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수비측 규율이 잡혀 있고 적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면 공격측은 점차 공포에 질려 사격하거나 횡대로 공격대형을 바꾸게 된다. 수비측은 이 순간을 노려 일제사격을 퍼붓고 돌격하는데 공격측은 큰 피해를 입고 등을 돌려 달아나기 마련이었다. 
양측의 준비가 비슷하거나 적의 기병이 근처에 있는 경우에는 균형을 무너트릴 변수가 발생하기 전까지 총격전을 벌였다. 

 


그렇다고 훈련도가 전부는 아니었다. 전장에서는 산병의 사격이 양측을 괴롭혔고 견디다 못해 대응사격을 했다. 이전의 전투, 포격과 산병의 견제로 피해가 누적되어 부대의 전력과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공포는 전염되기 때문에 인근 아군부대가 마구 달아나면 신병은 공황상태가 되었지만 고참병은 복수심에 불타기도 했다. 지원군의 유무도 사기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반대로 적의 지원군이 갑자기 나타나면 전투도 벌이기 전에 패배를 직감했다. 

패티 그리피드Paddy Griffith는 영국군 부대가 사격을 개시한 사례 19개를 수집했는데 그 중 4건이 90m 이상이었고 평균 70m 거리였다. 격전 속에서 실제 거리를 제대로 기억할 수 없기 때문에 과장과 오류가 있을 수 있다. 70m는 너무 근접거리이기 때문에 의심스럽지만 어쨌든 영국군이 다른 군대보다 사격을 잘 통제한 것은 사실이었다. 
다른 군대는 상대적으로 근접거리 사격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클라우제비츠Clausewitz는 효과적인 사거리를 130~180m라고 했지만, 1813년 10월 영국군장교는 프랑스군이 스페인군처럼 원거리 사격에 환장해 탄약을 낭비한다고 조롱했다. 
비토리아전투에서 프랑스군은 원거리에서 사격을 시작했던 반면에 영국군은 90m 거리에서 응사했다. 
‘우리 99연대는 88연대 옆에 횡대로 섰고 적을 향해 전진했다. 침착하게 기다리고 있던 적은 250~350m 거리에서 일제사격을 했다. 우리 연대는 첫 번째 피해를 견디고 구멍난 대열을 메운 후에 적에게 40m 정도를 속보로 접근했다. 200m 거리에서 멈춰서 일제사격을 하고 고함을 지르며 적을 향해 돌격해 올라갔다. 
프랑스군은 아직 장전중이었고 우리가 달려들자 두 번째 사격을 하지도 못하고 마을쪽으로 퇴각했다.‘

포병과 달리 보병의 탄약소비의 효과에 대해 뚜렷한 증거가 없다. 가장 많이 인용되는 헤니건Henegan의 비토리아전투 계산도 심각한 오류로 도움이 안된다. 기록을 보면 200~500발 당 1명이 피해를 입힌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1806년 잘펠트Saalfeld전투에서 프랑스보병은 20만발을 사용했고 프로이센군 피해는 900명이었다. 대략적으로 프랑스군 사격효과가 70%라고 가정하면 600명이고 333발 당 1명의 피해였다. 
워털루에서 영국군보병 5만 명이 평균 8발을 사용했다면 총 4백만발을 발사했을 것이다. 1명 피해당 200발이라고 계산하면 프랑스군 2만 명 피해인데 실제 워털루전투 피해의 80%이기 때문에 너무 높은 가정이다. 
500발이라고 가정하면 8천명 피해로 이것도 너무 낮은 가정이다. 

전투에서는 분당 1~2발을 발사했다. 대부분의 보병이 60발을 소지했는데 1시간도 안되어서 바닥날 양이었다. 비토리아전투에서는 영국군 수송부대가 보병대에게 135만 발을 보급했다. 병사당 20발이었다. 
‘후열을 따라 탄약박스를 50~100보 거리마다 두어서 병사들이 알아서 보급할 수 있게 했다.’ 
겁에 질린 병사가 탄약을 채우겠다며 뒤로 물러날 구실이 되었지만 전사자나 부상자의 탄약주머니를 뒤질 필요가 없었다. 
1813년 소라우렌Sorauren전투 상황이다. 
‘대령이 쿠퍼하사에게 언덕으로 올라가 소령에게 탄약을 바로 내려보내지 않으면 퇴각한다고 전하라고 했다. 병사들이 부상병의 주머니에서 탄약을 뒤지는 상황이었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 명령을 전했다... 그리고 탄약을 가득 실은 노새를 중대로 끌고 내려왔다... 배낭을 벗어던지고 상자를 부수고 탄약을 바로 나누어주었다. 병사들이 사격을 퍼부었다.’ 

 

 

1879년 영국군 24연대가 궤멸했던 이산들와나전투입니다. 줄루족의 전략이 적중했는데, 영화 10분 이후를 보면 전멸위기상황에도 탄약보급 절차를 따지는 고문관이 등장합니다. 당연히 탄약이 떨어져서 전사자의 주머니를 뒤질 수 밖에 없죠.

탄약이 도착하지 않아서 부대가 퇴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경우도 많지만 반대로 정신과 육체가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사격한 경우도 많았다. 
71 경보병의 한 병사는 후엔테스 데 오뇨로에서 107발을 쏘았고, 비토리아에서는 108발을 쏘았다. ‘이튿날 아침 온몸이 아픈 상태에서 일어났다. 오른손으로 머리를 만질 수 없었다. 어깨는 석탄처럼 까맸다.’ 

대부분의 전투에서 피해 중 절반 이상이 총격피해였다. 어느 한 쪽이 돌격할 생각이 없다면 총격전이 이어졌다. 사격을 할 때마다 효과가 급감했더라도 피해는 쌓이기 마련이었고 훈련이 잘된 부대라면 소모전이 되어 부대를 궤멸시켰다. 
살라망카전투에서 페레이Ferey사단은 프랑스군의 퇴각을 엄호하다가 영국과 포르투갈군의 공격을 받았다. 
‘클린턴Clinton장군의 6사단이 3과 5사단의 지원을 받아 2번째 공격에 나섰다. 우리가 전진할 지역은 아주 깔끔한 경사로여서 적의 사격에 위험하게 노출되었지만 대형을 유지한 채로 전진했다.
180m 거리로 좁히자, 프랑스군이 갑자기 일어나서 일제사격을 퍼부었는데 그 어떤 총탄세례보다 강했다. 포도탄도 계속 날아들었다. 우리 병사가 돌격지점으로 가서 대응사격을 하는 동시에 우측 병사와 대열을 맞춰 적의 사격에 쓰러진 자리를 바로 메웠다.‘


영국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는데 헐즈Hulse여단의 경우 1,464명 중 115명이 죽고 729명이 부상당해 전체병력 중 60% 이상을 잃었다. 다른 여단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피해를 입었지만 하인드Hinde여단은 1,446명 중 345명을 잃어 24%, 르젠드Rezende여단은 2,631명 중 487명을 잃어 18.5%가 피해를 입었다. 
6사단은 1,676명을 잃어 30%의 피해를 입었는데 페레이사단은 정확하지 않지만 1,200명으로 22.3%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측했다. 두 사단 모두 더 이상의 전투를 벌일 상태가 아니었다. 

‘보병총격전은 귀가 먹고 충격이 심하고 잔인했다. 소총이 번쩍이면 타다 만 화약알갱이와 수석조각을 뒤집어썼고 소총이 심하게 어깨를 쳤다. 3열 횡대로 사격하면 중간 열은 이리 저리 밀려서 제대로 조준할 수 없었다. 
전열은 장전하다가 머리를 잘못 들면 3열의 총격에 맞았는데 평소 신망을 잃은 부사관이 두려워해야 할 운명이었다. 온 주변에서 소총이 불을 뿜었고 연기에 눈이 안보였다. 장약을 물어 뜯어서 입과 목이 말랐고 이와 혀가 까끌거려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깨는 검은 멍이 들었고 머리가 울려 아팠다. 목소리는 쉬고 엄청난 갈증이 몰려왔다.‘

 


‘전열병에게 정확하게 조준하라고 할 수 있을까? 한 병사는 장약을 채우고 다른 병사는 앞으로 나서고 또 다른 병사는 조준한다. 몇 발만 쏘면 주변이 온통 연기로 가득찼고 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일부는 연기 밖으로 한 두 발 나서 사격하고, 일부는 무릎을 꿇고 사격하고, 일부는 한 두 발 뒤로 물러난다. 운나쁜 병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하고 끔찍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이 늘어나면 용감한 병사도 몸서리친다. 부상당한 병사는 동료의 도움을 받아 후열로 옮겨진다. 
결국 대열전체가 완전히 혼란이 빠지고 대부분의 병사는 서둘러 장전하고 적이 있는 방향과 상관없이 마구 사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