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

울진군 2011. 9. 6. 16:30

 

밤늦은 시간. 후포항의 밤공기를 쐬면서 바다목장 펜션에 문을 두드린다. '목장이라더니 성이네?' 알전구로 밤을 밝힌 바다목장 펜션의 야경은 알록달록하게 불을 밝힌 성채 같다. 늦은 시각까지 우리 일행을 기다려준 주인. 마치 고향 친구를 만난 듯 정겨운 인상이다.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인 이곳에 펜션을 지었다니 더없이 편해 보였다.

 

'어어, 어디로 간 거지? ' 어느 페인트회사 광고 카피처럼 방문을 여는 순간 방을 두리번거렸다. 지방 출장 때 찾아가는 오래된 숙소에는 으레 눅진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고 새로이 지어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숙소는 갓 칠한 페인트 냄새로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이곳은 그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내 집 같은 이런 숙소를 만나기란 그리 쉽지 않아'.

 

개운하게 잠을 잔 탓인지 피곤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일찍 눈이 떠진다. 후포 바다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아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바다는 벌써 해를 쑤욱 끌어올리고 있다. 상쾌한 아침바다를 조망한 후 밤새 미처 둘러보지 못한 펜션 구석을 샅샅이 둘러보았다. '고향으로 내려와 정착했다'는 주인은 벌써 집 안팎을 정돈하느라 분주하다. 작은 연못, 쁘띠 수영장, 아담한 꽃밭 등 곳곳에 주인의 손때가 가득 묻어있다. 내 고향 집 같다.

 

마당 중앙에 서 있는 펌프가 어린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바다목장펜션의 중심을 잡고 있는 대장님 같다. 펌프로 물을 끌어 올리는 일은 이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지만 펌프 속에 물을 한 바가지 넣어 물이 솟아오르듯이 원하는 것을 한 줌 집어넣고 힘껏 펌프질을 하면 소원하는 것이 마구 쏟아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발칙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펌프다.

 

마당가에 심어진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렸다. 둘러보니 펜션 주변에 과수나무가 곳곳에 보인다. 풍요로운 마을이구나. 봄이면 사과꽃과 배꽃이 예쁘게 피는 전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주인의 깔끔한 손길이 돋보이는 펜션을 두루 둘러보면서 아침 명상에 젖어있을 때 안주인이 모닝커피를 내준다. '잠도 잘 자고 아침 정원에서 모닝커피까지 마시니 오늘 하루도 일이 잘 풀릴 것 같다.'

 

즐거웠던 울진여행을 접고 떠나려는 순간, 후포항의 수려한 해안이 가슴으로 밀려온다. 곡선을 그리는 해변에는 갈매기들이 그림처럼 노닐고 있다. 떠나는 우리를 붙잡으려는 듯 그들은 날개짓도 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마냥 주저앉아 있다. '다시 올거야.' 마음으로 다지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준다. 사진에도 담고 마음에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