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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자 2011. 11. 23. 20:30
  이번에는 경제적인 가격으로 1년 재난대비 비상식량 준비하기 위한 자료를 올립니다. 많이들 의료 보험, 자동차 보험 등은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재난대비 비상식량이나 재난대비 키트 같은 것에는 투자를 잘 하지 않지요. 우선 재난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니까요. 하지만 재난이 발생했을 때 준비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 생존확률을 높일 수 있다...
출처 : 시애틀 홈스쿨맘의 사는 이야기
글쓴이 : 시애틀 홈스쿨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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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자 2011. 11. 14. 12:46

※미리 밝힙니다. 저 진보쪽 아니고 굳이 꼽으라면 전 보수파입니다. 현 정치를 무조건 막고, 반대하고, 욕하고, 비판하고, 싸움분위기 조장하는 진보파? 저 싫어합니다.

그렇지만,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보수라고 100% 옳고, 진보라고 100% 옳다고 단정지을 수 있나요?

진보는 쓰레기야 ㅉㅉ 그래그래, 타살이겠지 하시는 분들. 님들이야 말로 더더욱 감정적입니다.

이성을 가지고 한 번 봐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노무현전대통령님 자살아닌증거


1) 최초 경찰조사에서 유서저장시간 오전 5시 44분


CCTV속 노통과 경호원이 사저를 나선 시간은 5시 38분


유령이 유서작성?


이 사실이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타살의혹과 CCTV 공개요구가


빗발치자 경찰은 CCTV를 공개


그러나 날짜와 시간이 지워져 있었다.




그리고 경찰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노통이 사저를 나선시간을 47분 으로 수정해 최종 수사 결과 발표



그리고 한때 변호사까지 하셧던 전노무현대통령께서 자살할생각을가지고잇엇다면


법적효력이없는 컴퓨터문서에 유서를 적었을 리가 있는가..






cctv를 조작했다는


1번째 증거자료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일 톨게이트 CCTV 원본 화면을 캡쳐하여 확대해 봤습니다.



1. 원본사진에 보면 톨게이트를 지나갈 때, 아무리 봐도


저것은 손으로 보입니다.


노통 대통령님께서 얼마나 도움을 요청하고 싶을셨을까요.





2. 운전사 뒷좌석에 노무현 대통령님이 쓰러져 계십니다.


얼마나 두렵고 아프셨을까요



이 CCTV가 공개되었다가 곧바로 노통님의 피흘리는 손대신 경찰 봉으로 편집된 조작CCTV로 교체 되었습니다.


아래의 확대된 화면을 보면, 픽셀 크기가 다른 것이 보이죠?


경찰봉을 붙였다는 증거입니다.






3. 노무현 대통령님이 타신 승용차의 운전사와 外 한 사람입니다.


운전사는 흰색 옷을 입고 있고, 옆사람은 검은색 양복과 안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네요.


확대해 봤는데, 운전사의 실루엣으로 체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양산부산대병원 CCTV가 공개되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지도..........














2번째 증거자료



사진1



연합뉴스에서 2009년 5월 12일 촬영한 사진입니다.



아래는
일반인이 노통 서거 후인 5월 24일에 같은 곳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2
위 사진 좌측 아래의 경호동건물 처마를 기준으로 사저 지붕까지 실선으로 표시해 보겠습니다.
빨간색 원 안에 바람구멍을 잘 보아 두십시오.
물론 빨간색 원 우측으로도 바람막이가 끝나는 지점까지 바람구멍은 계속 있습니다.



사진3
이해를 돕기 위해 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5월 이전(3~4월 사이)에 찍은 것입니다. 칸막이 어디에도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4
경찰이 공개한 CCTV의 한 장면입니다.
노통이 사저를 나서 맨 처음 풀을 뽑은 위치입니다. 칸막이의 라운드진 부분을 주목해 두십시오.



사진5
이 사진은 노통이 처음 풀을 뽑으신 위치를 위쪽에서 표시한 것입니다.



사진6
당연히 아래사진의 빨간 원안에는 사진 1의 구멍들이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은 반대쪽에서 찍은 CCTV화면입니다.


사진7 (추가)
경찰의 CCTV에 나오는 후반부 장면.
칸막이 끝부분에 구멍들이 보일 것입니다.
이 구멍은 4월 22일 전후로 먼저 뚫려 있던 것입니다.



사진8 (추가)
2009년 4월 19일 사진
사진을 잘 보시면 상단부분까지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까지는 구멍이 없었다는 예기.


2009년 4월 19일의 또다른 사진


2009년 4월 22일 사진.
바람막이가 끝나는 부분에 몇 개의 구멍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바로 옆 찬막이 늘어진 부분에는 구멍이 없습니다.
이것은 측면에서 강풍이 불어 그 위치만 먼저 구멍을 뚫은 것입니다.



사진9 (추가)
2009년 5월 10일 사진.
이 때는 이미 사저 정면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막기 위해 왼쪽방향으로 쭉 구멍을 뚫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사진 3에서 처럼 처음 공사를 시작하여 적어도 사진1이 찍힐 때까지는 칸막이에 바람구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강풍이 잦아지자 사저 맨 우측에 있는 바람막이쪽부터 바람구멍을 뚫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사진1의 바람구멍은 분명히
5월 12일에 촬영된 것이니 최대한 양보해도 5월 12일 아침부터는 뚫려 있었다는 예기
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공개한 CCTV(사진4)에는 있어야 할 위치에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건 CCTV영상이 적어도 5월 12일 이전에 촬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에 문제를 제기했던 제 글에 어떤 분께서 CCTV의 화질 때문에 구멍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 사진들을 보시면 다른 반박은 못하실 것입니다.

경찰의 CCTV영상은 5월 23일 것이 아닙니다!
경찰은 왜 5월 12일 이전의 CCTV를 5월 23일 것이라 했습니까?
아니라면 전문가들과 함께 CCTV를 분석하게 해주십시오!





2)
사건 종료와 함께 공개된


cctv속 마지막으로 사저를 나서는


노통이 착용하고 있는 의복<회색 양복 상의>


그러나 경찰은 <점퍼>를 노통 투신증거물이라며 공개







3)조선일보 하루 전날 미리 기사를 작성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사용된 추모 배너는


서거 전날인 2009년 5월 22일에 이미 제작 되어있었다.

(기사또한 미리 제작)



증거자료







4)



추락한 초응급 환자에게 <환자복>을 갈아입힌 세영병원 그리고 진술번복



★1차진술- 진료과정중 급격히 혈압이 떨어져 심폐소생 시행


★2차진술 - 처음 실려왔을때 이미 호흡이 없는 의식불명 상태 바로 심폐소생 시행



2차진술이 사실이라면 생사가 갈릴 긴박한 시간에 초응급 환자에게


환자복을 갈아입히며 엽기적인 고문을 하고있엇던 것이고


1차 진술이 사실이라면 노통은 부영이 바위에서 투신했다고 볼수없다.




왜냐하면 40m높이에서 떨어지면 여기저기 뼈가 부러지는 다발성 골절,여러 장기의 파열,동맥과 정맥 출형 등


급격한 쇼크로 곧바로 사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5) 40m암벽에 투신했다는 분


왜 각목으로맞을때 흔히 생긴다는


머리 꼭대기 부분의 11cm상처가 있을까?


만약 일부러 머리를 아래쪽으로 하여 투신하였다고 해도


두개골이 산산조각이 났으며 즉사할 상황이었을 것이다.


두정부는 검도를 한 조폭들이 각목,쇠파이프등을 휘두를때 노리는 곳..




6) 노통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한것이 사실이라면


40m 절벽아래 착지지점은 피칠갑이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부엉이 바위 아래서 발견된 혈흔은 <코피한방울>이 전부


즉,부엉이 바위는 노통의 사망장소라 할수없다.


부엉이 바위아래에서 노통을 발견했다는 경호원의 진술은 거짓이다





7)경호관의 거짓진술



경찰조사를 마친후, 이경호관은 정토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이 물으면 정토원에 들른적


없다고 진술해 달라고 부탁햇다는 뉴스를 mbc가 보도하자


경찰은 재조사를 했다며 당초 발표를 완전히 뒤집는 조사결과를 다시 발표



노통 투신하는 뒷모습 목격했다→정토원에 심부름 갔다오니 없엇고 그사이 투신한것 같다


정토원에..가지 않았다→정토원에 혼자 2번 갔다(노통 심부름 1회,노통찾으러 1회)



목격자(정토원장)의 진술과 일치하는 이경호관의 새로운 알리바이가 다시 발표된것이다.




8)경호관이 거짓말을 한 이유가 충격,흥분,죄책감,문책이 두려워서


라고했는데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분이 죽었는데


문책이 두려웠다..?


뭐..경호원이 직업의식도 없는 나쁜놈이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런놈이 엄청난 돈을 받고 노통을 살해햇을 가능성도 충분한거 아닌가?



충격,흥분,죄책감 상태에서도 목격자를 매수할 정신은 있엇나 보지?
죄책감이 들었다면 경호책임을 다하지 못한 내가 죄인이니 나를 벌해주시오


라고 말하는게 정상아닌가?






9)또다른 목격자 정토원보살..


<경호원 혼자 왔을리 없는데 하고 밖을 내다 보니


노통이 아래쪽으로 급히 내려가고 있었다.>



경호원이 정토원2회 방문(노통 심부름1회,노통찾으러 1회) 했다고 했으니 둘중하나다


노통 심부름 갔을때 목격된걸까? 그건아니다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하고 있을 시간이다.


그럼 경호원이 노통을 찾아 해매던 시간에 목격 ?다는 건데 이것도 말도 안되는게 투신후에 홀로 죽어 가고 잇을 시간


이기 때문이다.. 경호원과 정토원보살 둘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있다 누구일까?




10)확실한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수사했다면..


목격자 하나씩 나올때마다 수차례 번복될 이유가 없다.



경찰은 수사의 헛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타살의혹을 제기하는 네티즌들에게


단순한 추측,음해성 의혹을 사실인양 확대 포장해 유포하지말라고 충고 했다.


대한민국 경찰에겐 위의 사실들이 정말로 단순한 추축,음해성 의혹인가?


사건 당일 현장조사를 하면서 증거물인 노통의 상의는


왜 가지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은건가?
현장에 있는 증거물을 마음데로 옮겨서 사진을 찍는것이


우리나라 경찰의 현장감식 방법인가?



유일하게 투신을 목격햇다던 경호원의 진술이 거짓임이 들어났으니


누구도 투신 하는걸 본적없고 목격자,경호원 진술도 엇갈리고


수많은 증거 또한 자살이 아님을 가르키고 있는데


법적 효력도 없는 컴퓨터 유서 하나 내세워 수사3시간 만에 자살로 결론 내야할


사정이라도 있나?



살해된 노통을 자살로 몰아가기 위해 공권력 까지 동원해 조직적 은폐를 지시할수 잇는


권력자가 살인범인 것이다.








사건의 전말



●처음 계획은 노통을 부엉이 바위에서 밀어버리는 것이었지.


하지만 부엉이 바위는 산책로가 아니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노통은 잘 가지않았지 굉장히 위험한 곳이니까..


하지만 넌 노통을 부엉이 바위로 어떻게든 유인하려 했겠지.


부엉이 바위에 부엉이가 살아요? 라고 물으며 전망이 보고싶다고 말했니?
니가 최초 경찰조사에서 노통이 투신하기 전에 했던 그말은 노통이 한게 아니라


경호원 니가 한거야..노통은 봉하마을에 찾아오는 국민들에게 부엉이 바위에 대해 설명해


주시곤 했지 파견된지 하루밖에 안된 너에게 부엉이바위에 대해 물었다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니가 부엉이 바위로 유인하려고 수작을 부린순간


노통은 위험을 직감하셧을꺼야


그래서 널 따돌리고 약 200m앞에 있는 정토원으로 달아나신 거지


너에게 심부름을 시켰겟지.. 노통의 심부름을 거부 할수 없던


너는 자연스럽게 행동해 노통이 시킨 무언가를 하러가다 아차 싶어


뒤돌아보니 노통이 정토원 방향으로 급히 도망치고 있었니?
운동으로 단련된 니가 가까이 따라붙자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노통은


정토원어딘가에 급히 몸을 숨겼고.. 뒤따라 정토원에 들어선 너는


곧바로 정토원장과 마주쳤지.


정토원장은


니눈에서 무엇이 느껴?길래 첫인사가 <무슨일 있으십니까?> 였을까?
너는 <네,대통령이 오셨습니다> 가 아닌 <아무것도 아닙니다>로 얼버무렸지


뭔가.. 나쁜 짓을할때 <너 뭐하니?> 라고 물으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대답하지


넌 무언가를 정토원에게 들킨거야! 그래서 니가 정토원에


간 사실을 경찰에 말하지 말아달라고 정토원장에게 부탁해야만 했던 것이지


니가 대화하는 사이


노통은 죽기위해서가 아니라 살기위해 부엉이 바위 산 아래쪽으로 도망친거지


이때 노통은 정토원보살님께 목격되신걸테고.. 노통을 찾아내지 못한너는


노통의 사저에 있던 유서를 맡았던 또다른 경호원에서 연락을해


모든 경호원이 들을수 있는 무전이 아닌 휴대전화로..


처음부터 작당을 한게 아니라면 곧바로 한놈한테만 전화할 이유가 없잖아?


경호할분이 사라졌으니 당연한 조치였다고? 그럼 애당초 2인1조 경호원칙은 왜


어겼으며 정토원 심부름 갈땐 왜 노통을 혼자 두고 사라진거니?


<사저에 남아있던 공범>은 노통의 컴퓨터가 있던 방에 두번 들어간거야!


한번은 유서를 작성하러,또 한번은 놓쳤다는 전화를 받고 유서를 삭제하러!


그런데 인기척이 들리자 컴퓨터를 끄지도 못한채 나와 버렸지!


통화 내용에는 <놓쳤다..보이지 않는다>


노통이 무슨 범죄자니? 너는 형사가 아니라 경호원이야


노통살해를 모의한놈은 세놈이었어


산 아래로 도망치던 노통이 <산아래 어딘가에 다른놈>과 마주쳤던 거야


봉화산 정상에 잇는 정토원까지는 30분 정도가 걸리지


니 몸이 두개가 아닌이상 그시간에 니가 있다는건 말이 안되거든..


넌 뒤에서 쫓아가고 한놈은 부엉이 바위 근처에 숨어 대기하고 있었지!


정토원에 들렀다 도망치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렇게 돌아가셨겠지!


먼저 각목으로 두정부를 내리쳤니?


쓰러진 노통의 등산화를 양쪽다 벗겻다가 생각해보니 이상해서


한쪽은 다시 신겼니? 노통이 도망치는 사이 메모라도 남겼을까봐


주머니를 뒤지려고 상의를 벗겼니?투신할때 상의가 벗겨졌다구?


번지점프를 할때 일부러 양팔을 한껏 벌려도 상의는 벗겨지는 법이 없지


폭행으로 추락사를 꾸미려니 언론장악 밖에 길이 없었겟지! 그런데 인터넷


언론은 너무 많아 단속할 수 있는 시간도 여건도 불가능 했던거야!






(현재 글쓴이 입니다.)

*수정 사진 보이도록 수정했습니다. 몇개는 안보입니다. 변환중에 오류가. ㅠ.ㅠ

그래도 사진 많이 복구했으니, 봐주세요!

이번엔 또 다른 자료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이 아니다.
타살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노무현 대통령은 양팔 골절이었다.
이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넘어졌다는 것이다.

President Roh Moo-hyun is not a suicide.
Is murder.
Reasons are as follows:
First, President Roh Moo-hyun suffered a broken arm
This is not ready to have suddenly fell.
Sense, it means murder.


둘째로, 컴퓨터로 쓴 유서이다.
자필이 아닌 유서는 효력이 없다.
전직 변호사이신 노무현이 이를 모를리가 없다.

Second, the computer is writing a suicide note.
The effect is not a handwritten suicide note.
He is a former lawyer, Roh Moo-hyun does not know it.


다음은 경호원이다.
개인 경호원이 아닌 청와대에서 파견된 경호원이었다.
의뢰인을 보호할뿐이지, 제압을 할 수 없어 투신하는걸 막지 못한건 말이 안된다.

And then, the guards
Rather than personal security guards at the Blue House was dispatched.
The protection of our customers only, can not beat the investment's mothangeon not stop teasing.


넷째로, 혈흔이다.
사망장소에는 전혀 혈흔이 없었다.
뇌 안쪽에서 피가 나올경우 외부로 피가 나오질 않을 가능성이 있으나
상의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었다.
사망요인이 두부외상이라는걸 감안하면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건 이상하다

Fourth, the blood.
Place of death was not in the blood at all.
Brain from the inside of blood, but I probably naolgyeongwoo blood outside
Blood was found on your clothes.
Considering the fact that death was all head trauma
It is doubtful that blood was not found


다섯번째, 사망시간이다.
기사마다 서거하신 시각이 다르다.
공통점이란 이명박 대통령이 사망소식을 접한 이후에 사망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5th, is the time of death.
Every time the president is the story of death.
President Lee Myung-bak, seen the news of his death is common after the death is announced.

그리고, 경호원의 수이다.
경호원은 3명이상의 홀수로 경호하는 것이 원칙이다.
경호원들은 새벽 5시가 되면 조가 편성된대로 움직인다
특히 등산 같은걸 할땐 인원을 증가시킨다.
그런데 왜 한명일까?

And, the number of bodyguards.
With 3 or more of the security guards that principle is odd.
Bodyguard as they organize the morning 5 O'clock move coronach
The kind of climbing increases the number of beats.
But why does one?


노무현 부인인 권양숙 여사보다 이명박대통령에게 왜 먼저 통보를 했나?

President Roh Moo-hyun, Lee Myung-bak to his wife than Mrs. gwonyangsuk Why did you first notice?


일곱째로, 화장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장기기증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런 분이 화장을 해달라는건 말이 안된다.
이는 분명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정부의 조작이다.

To 7th, is Fire funeral.
President Roh Moo-hyun has promised to donate his organs.
Want us that he's not Fire funeral.
This certainly is the manipulation of the government to destroy evidence.


여덟번째로, 수습과정이다.
너무 빠르게 수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망시간으로부터 병원 이송시간까지가 20분 이내인 것은 말이 안된다.
그것도 경호원 혼자서 환자를 엎었다는 점.
산에서 내려오는데도 그리 빨리 왔다는건 거짓말이다.
병원이 흔한 도심에서도 구급차로 이송하는데 30분은 족히 걸린다.

Eighth, the situation is a process.
This would have been up too quickly.
Time of death until 20 minutes from the hospital, less than the travel time is not right.
Eopeot patient's point guards that alone.
And it is a lie, it has come down from the mountain so quickly.
Transferred to an ambulance to a hospital in the city often takes 30 minutes well.


마지막으로 증거물이다.
경찰은 현장에서 잠바와 신발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신발은 추락하는 당시 벗겨졌다고 쳐보자
잠바는 왜 벗겨졌는가?
그리고 왜 잠바에선 혈흔이 발견되는가?

Finally, the evidence.
The police found at the scene to the jacket and shoes.
Take off his shoes at the time was a let down.
I wonder why you take it off his jacket?
And that is why the jacket found in the blood?


분명히 경고한다.
Will warn you.


이는 살인이다.
This is premeditated murder.


다시말한다, 살인이다.
Again, is mu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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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제 오늘 눈물도 참 많이 흘린 국민의 한 사람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곳 저곳 기사를 보다가

아래 글들이 베플이 되어 있더군요. 글이 삭제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어떤 분 말씀을 들어보면 등산화는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고 하네요. 오늘 저도 한 친구랑 가까운 곳에 등산을 갔는데 저 역시도 등산화를 신고 있었는데 등산화란게 실제 자기한테 맞게 신기 위해서도 일반적으로 끈을 조이게 되는데.... 의문이 생깁니다. 상의 옷가지가 떨어져 있었다는 것도 좀 이상하구요.

한번 읽어봐주세요. 그리고 이왕이면 복사하셔서 퍼 날라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것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경찰과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데 있어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을꺼라 믿어 의심치 않기에 이곳에 옮겨 봅니다.

제발 이글퍼뜨려주세요. 삭제되고 있습니다


음모론 5가지 -

/ 1.양팔의 골절-노무현 전 대통령은 양팔에 골절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두 팔이 골절되었다는것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넘어졌다는 것이다.
자살한 사람이 다시 살아보려고 두 팔로 무언가에 저항하려 했다는 것은 법의학적으로 설득력이 없다./
2.컴퓨터 한글파일로 작성한 유서-노무현 전대통령은 전직 변호사였다. 자필이 아닌 유서가 법적효력이 없다는걸알면서
왜 컴퓨터로 유서를 작성했을까? 그리고 컴퓨터보다는 펜이 더 익숙하신 분이실텐데.../
3.같이 있던 경호원-투신할 당시 같이있었던 사람은 보좌관도 개인경호원도아닌 청와대에서 파견된 경호원이었다.
+ 경호원은 경호대상을 경호할뿐이지 제압할수없어서 투신하는것을 막을수없었다는건 말도안된다./
4.혈흔-사망장소에서 혈흔이 발견되지않는다. 뇌 안쪽에서 피가터질경우 외부로 피가튀지않을가능성이있으나
상의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었고 직접적인 사망요인이 두부외상이라는걸 감안하면 혈흔이 발견되지않는것은 이상하지않은가.
/ 5.사망시간-기사마다 서거하신 시각이 다르지만 모두다 이명박대통령이 소식을 접한 7시 20분보다 몇 시간 이후이다.


김구처럼 타살 같기도 합니다.
노무현의 서거라는 사건자체는 훗날 역사책에 사도세자가 뒤주에서
죽은사건과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사건만큼 영향력을 가지고있다고본다......

1.
경호원은 최소 3명이상 5명~7명 홀수로 경호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말로 의문을 가진 죽음이다. 경호원들은 새벽 5시가 되면 경호팀들은
조가 편성된 대로 움직인다 특히 밖으로 나와 등산 길에 오를 때는
인원을 증가 시킨다
근데 왜 1명인가?..........그리고 왜 권양숙여사보다
먼저 청와대관계부처에 통보를 했나?
코앞에 있던 사저에도 연락안하고 동료 경호원에게
평소 휴대하던 무전기로 긴급 연락도 안하고??

2.
아무리 생각해도 석연치 않습니다.
이름없는 촌부의 죽음도 아니고, 전직대통령의 죽음인데....
어떻게 그 수습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답니까?
모든 언론들이 경찰발표에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고 수긍하고 있습니다.
급작스런 상황에 제대로 된 수사팀도 꾸려지지 않았을텐데도
모든 상황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발표되고 있고
언론들은 일점의 의혹도 없이 기정사실로 재확인만 해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노짱께서는 구천에서 통곡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저를 욕하고 비난하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납득할수 없습니다.

경찰발표로 드러난 사건경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1. 23일 05:20 - 컴퓨터에 유서작성.
2. 23일 05:45 - 경호원1명 대동하여 사저를 나섬.
3. 23일 06:40 - 부엉이바위에서 투신.
4. 23일 07:00 - 세영병원 도착 (경호원이 일반승용차로)
5. 23일 07:20 - 청와대, 사고소식 보고받음.
6. 23일 07:35 - 부산대병원으로 후송(엠블런스로)
7. 23일 08:13 - 부산대병원 도착. 심폐소생술 시행.
8. 23일 09:30 - 소생술 중단. 노무현전대통령 서거.

특이사항 - 사고현장(부엉이바위아래)에서 투신충격으로 인한
혈흔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입니다.
경호원의 입을 빼면, 확실한 사실은 1,4,5,6,7,8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2번과 3번은 오로지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의 진술일뿐입니다.

1번도 사실로서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유서라고 알려진 파일이 저장된 시각으로 추정한 추측일뿐이며,
그 파일의 작성자가 누구인지 아직 확인된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사실로 확인된것은 4,5,6,7,8 뿐입니다.

세영병원도착 -> 청와대보고 -> 부산대병원후송 -> 서거.

이것이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의 진술을 배재한 확인된 사실의 전부입니다.
손쉽게 자살로 결론짓기에는 너무나 빈약하지 않습니까?
사고현장이 부엉이바위인지조차도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사고현장이 아예 봉하마을이 아니라고 해도
경호원 1명의 진술에 의존하는한 문제될것이 전혀없는것입니다.

5월 하순의 농촌에서 새벽 6시경이라면 모두가 잠들어있을 아주 이른시각은 아닙니다. 그 시각에 사저를 나서 뒷산으로 향했다면,
경호원 이외의 목격자가 분명히 있을것입니다.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 이외의 또다른 목격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려봅니다.

3.
경찰의 발표에 조그만 한 의혹이 있어서 문의하고자 한다
경찰주장에 의하면 신발과 잠바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신발은 바위에 부딛혀서 벗겨질수 있다고 본다
그른데 잠바가 벗겨진것은 어찌된 일일까
만약 나무에 걸렸다면 잠바가 벗겨 질수있는데
그럼 피묻은 잠바는 성립이 안되는데
일단은 잠바를 입고 바위에서 뛰어 내려 옷에 피가 묻엇는데
경찰이 업을려니 (?)

무거워서 잠바를 벗기고 갔다가 나중에
그옷을 경찰이 발견하고 가져왔다 이말씀인가
아니면 다른 곳에서 죽었는데
거기서 죽었음을 확인시키려고 거기서 잠바를 발견했다고 하엿을까
바위에서 뛰어내렸는데 경찰이 옷을 잡아서 옷만 산위에서 남아있었는데

그옷을 경찰이 가져오다가 마침 대통령이 죽었다는그 자리에서 넘어져서
잠바에 피가 묻었을까
경찰의 발표가 실수인지 방송국에서 가짜경찰의 발표를 모르고 한것인지
경찰외에는 아무도 없는 그 산속에서
마지막으로 대통령은 진짜로 무슨 말을 하였을까
미국의 특수무장 특공대가 그 산에 왔을리는 없는데
이해가 안간다
그 산속에서는 무슨일이 진짤 일어난것일까
각하의 잠바에는 왜 피가 묻었을까요
돌아가실 때 입고있던 그 잠바가 벗겨진 이유가 무었일까요
경찰은 그 잠바를 어디서 가져온것일까요

4.
궁금한게 있습니다.
왜 경호원은 추락사 한 사람을 (당연히 뼈가 산산조각 났을텐데)
119 부르지 않고 지가 직접 들어서 지 차에 태워서 동네 병원으로 갔나요?
것도 혼.자.서. 환자를 이송해??
천하무적이시네 그양반,, 온몸이 골절난 사람을 단독으로 옮긴다..
상식적으로 이해를 할 수가 없네 ㅉ 저 경호원 출입국조회해보는건 어떨지?
누구한테 사주 받아서 일 저지르고 딴 나라로 토끼는건 아닐까?
청와대 경호원이라면 뭐 이런저런 훈련도 받았을텐데 초딩도 알겠다
누가 온몸 골절난 사람을 들쳐업고 동네 병원가냐고요.
그리고 경호원이니까 무전기 같은거 있겠죠?
그렇다면 왜 사저에 먼저 연락 안하고 이명박한테 먼저 연락했을까
어떻게 이명박이 먼저 알고 권양숙 여사가 나중에야 알게 되어서 늦게 병원에 도착할 수가 있는지..
이게 말이 됩니까 상식적으로?
그리고 유서라고 공개된 사진 보니까 (연합뉴스에서 보고옴.)
원래 노무현 대통령님이 쓰시던 글 느낌하고 너무 다른것 같던데요.
보통 사랑하는 국민여러분 뭐 이런식으로 문장 하나하나가 좀 긴 느낌인데
컴퓨터에 남겼다는 유서는 대체 뭐가 뭔지 ...
글도 짤막짤막하니 이게 진짜 노무현대통령이 쓴 글인가
싶을정도로 느낌이 다르던데요.
글고 오전부터 들었던 유서 전문의 내용인 돈문제 깨끗하다
국정이야기 이런거 싹 빠져있고.
유서사진이라고 올린 연합뉴스 장난하나 지금?
그리고 유서 마지막에 있는 화장해달라는 소리가
꼭 부검하지 말아달라는 말같네요.
그리고 어떻게 온몸이 골절되고 두개골이 파손이 되었는데
피를 흘린 흔적이 하나도 없을까요?
왜 그부분에 대해선 언론이나 수사쪽에서 함구하고 있을까요?
제발 이글 퍼뜨려주세요. 삭제되고 있습니다

5.
상식적으로 보자..
자실인지 타살인지 두 가지 경우를 다 놓고 조사를 해야지
뭔가 다 짜고 하는 것이 아니면 언론도 무조건 자살이란다..
경호원이 바위에서 내려가서 들처매고 혼자 병원 후송했다..
상식적으로 그 짧은 시간에 그 높이에서 뛰면 몸 다 부서져서
경호원 혼자 못 들쳐 매고 가네
소설 쓰나..
유서도 아무래도 가짜야
컴에 저장된 유서 그런거 조작 가능하지..
명박이 노짱 잡으려다 지 자신한테 불리한 비리 사실 나올가봐 죽인거 같은데
노짱의 서거 사인을 밝혀라
아무래도 자살로 보기엔 상식선에서도 불가능해 보인다

6.
2002년 장기기증 서약하셨다던 분이 화장이라니..... 화장 유언 조작= 증거인멸

7.
한글 파일은 저장을 하면 첫번째 문장이 파일명으로 저장이 됩니다 그런데 유서의 내용을 밝힌 연합기사에 보면 두번째 문장이 파일명으로 저장되어있더군요.. 이해가 가시나요? 전 안가는데.

8.
첫번째, 경호원이라는 정규 교육을 받으신 분이 누군가가 낙상하여 골절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병원으로 이송하였다니요? 이건 말도 안됩니다. 저는 체대출신입니다. 체대출신도 기본적인 응급처치 교육을 받습니다. 누가 다쳐서 쓰러지면 척추신경 손상을 우려하여 절대로 환자를 옮기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것을 누구보다도 최고의 교육을 받은 청와대 경호원이 어기고 119를 부르지도 않은채 옮기다니요. 이것은 누가 봐도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두번째, 유서가 한글파일로 쓰여진 사실입니다. 유서는 내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남기는 글입니다. 이것을 '내'가 썼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지사입니다. 아무리 글씨를 못쓰더라도 한글파일을 이용해서 쓰다니요. 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법적효력이 없는 한글파일을 썼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세번째, 경호원과 같이 동행하던 중 잠시 눈을 돌리게 하고 스스로 자살하셨다?!? 자살할 분이라면 경호원을 동행했을 이유가 없습니다. 옆에 사람이 있는데 혼자 갑자기 떨어졌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는 행동일까요? 누구보다도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었던 노통인데 경호원이 겪을 심적인 부담감을 그대로 느끼게 하면서 혼자 자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누군가가 옆에 있는데 자살을 할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네번째, 이번 사건이 장준하 사건과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점입니다. 박정희 독재자와 칼을 겨누던 장준하님 역시 산악회에서 산악을 하던 중 떨어져 돌아가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정보원의 소행이라는 것을 의심하고 있지만 결과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독재자가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은 자신의 치부나 그와 관련된 정보를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이나 세력입니다. 정권을 뒤집을 수 있는 마스터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어떠한 수(권모술수)를 써서라도 그 사람을 제거하려고 노력했던 일이 많았습니다.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전 노무현 대통령을 조용히 지지하고 지켜보았던 사람으로써 이러한 논의를 반드시 밝히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현재 보도되고있는 거의 모든 언론을 믿지 않는 입장으로서 그들은 마치 노무현 대통령님이 죽기를 기다렸고, 그에 따라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요?

연합뉴스가 노무현 대통령님 유서조작설에 대해서 지나치도록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누가 조작설을 크게 떠들지 않았는데도 해명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네요. 참 수상하고도 어지러운 시절입니다.



네티즌 댓글


다들 그거 알아요?

MBC뉴스에서 맨 처음에 특보 나왔을 때 노무현대통령이 독극물 마셔서 중태라고 했어요..;;

그런데 3분인가 후에 갑자기 추락사라고 하더라구요....그냥 갑자기 생각났어요.....

전 정말 이 분 존경하고, 좋아했는데......한숨밖에 안 나와요. 안타까울 뿐입니다.

출처 : 그냥그냥
글쓴이 : 햇빛속으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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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자 2011. 11. 6. 18:09


예수회 (Jesuit)

 

예수회는 16세기 로욜라가 창립한 카톨릭 내의 결사 단체로 각 국에서 몰락해가는 로마 카톨릭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 카톨릭 내에서 교황청의 권력을 옹호하며, 기독교를 핍박·견제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예수회는 각 국에서 로마 교황청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치, 사회, 종교, 사회조직 등에 침투하였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모, 암살 등을 자행해 왔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추방된
경험이 있습니다.

예수회는 종교개혁 이 후 종교재판을 주도하며 수 많은 기독교인을 학살하였고, 많은 나라에서 카톨릭을
유지시키기 위해 정부와 협력해 기독교인이나 그리스 정교인을 고문하거나 강제 개종시켰습니다.

예수회는 파시스트와 나치당을 지원하여 2차 대전을 일으켰는데, 2차 세계대전은 카톨릭 신자인 히틀러와
교황청이 협력하여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던 전쟁입니다.
이 과정 중에 교황청은 히틀러의 대량 학살을 교사
(敎唆) 내지는 방조하였고, 한 번도 비난한 적이 없으며,
물심양면으로 나치를 지원하였습니다.

예수회와 교황청 사이에도 권력 타툼이 있었고, 교황청의 권력을 장악한 예수회를 축출하기 위한 시도는
교황의 암살 등으로 좌절 되었습니다.
예수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프리메이슨의 사상과 조직을 흡수하여 창립되었고, 프리메이슨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고, 많은 예수회 사제가 프리메이슨이라는 점입니다.

유대인 일루미나티는 시온 의정서에서 일반 민중과 정치인은 머리 나쁜 소 같은 사람들이라며 경멸하지만,
엘리트 결사 조직인 예수회는 존중하며 경쟁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회와 프리메이슨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때로는 협력하지만 서로 다른 사상과 기반을 가진 권력집단이며,
언젠가는 제거해야할 적으로 교황청은 말세 때 프리메이슨에 의해 파멸될 것입니다.(계시록 17/16)

 

* 목차

1. 예수회의 실체

2. 유럽의 예수회

3. 예수회의 동양 선교

4. 예수회의 기독교 박해

5. 교황청과 예수회

6. 2차 세계대전과 예수회

 

 

1. 예수회의 실체

a)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Ignatius Loyla)

예수회의 창설자인 로욜라(본명:이니고 로페즈 드 레깔데)는 1492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로욜라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한 때 십자군에 참여한 적이 있으며, 신앙을 갖지 않은 방탕하고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스페인에서 정부 관리와 친위병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스페인이 프랑스로부터 침략 당했을 때 팜펠루나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고
로욜라 성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는 마취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극심한 고통을 경험합니다.
결국 그는 다리를 절게 되었고, 그의 정신 상태는 극도로 예민해지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병상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성인들의 순교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진한 감동을 느꼈고, 사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영적 체험을 위한 신비주의적인 영성훈련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오랜 금식과 갖은 육체적 고행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철저한 신앙생활을 위해 무려 3일간이나 고해성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성모 마리아 등의 환상을 보고, 각종 계시를 받음으로써
선교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로욜라가 가지고 있던 성격인 경건함과 처세술, 금욕주의와 세속적 지식, 신비주의와 냉정한 계산성 등은 그대로
예수회의 특징으로 이어집니다.

 

b) 예수회의 창설

예수회는 1534년 'Assumption Day'(성모 몽소 승천 축일, 8월 15일)에 몽마르트의 노틀담 사원에서 조직되었습니다.
당시 44세의 로욜라는 동지들과 함께 베니스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으나 종교 재판소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회가 로마 교황청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맹세하자 1540년 로마 교황 바오로 3세의 승인을 얻게 됩니다.

이로써 예수회는 교황의 관리 하에 선교, 고해성사, 설교, 자선사업 등의 권한을 받게 됩니다.
1546는 예수회 사제가 교황청 신학자 자격으로 트랜트 종교회의에 참석함으로써 정치적인 색채도 띠게 됩니다.
교황청은 예수회를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하려고 했고, 예수회는 이에 부응하여 맡은 소임을 열성적으로 완수했기
때문에 교황청의 신임을 얻어 점차 세력을 넓히게 됩니다.

예수회 회원인 라네즈와 모론 추기경은 트랜트 종교회의에서 교황의 무오성을 주장하여 교황청의 권위를 높혔고,
사제들의 결혼과 자국어 예배, 교황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개혁파의 주장을 교묘한 책략과 논법으로 일축시켜
바오로 3세로부터 '교회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예수회는 해외 선교에도 힘을 써 정신적 지도자로 성장합니다.

예수회는 교황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 각국의 지도자를 포섭하는 정치조직으로 발전합니다.
이를 위해 지도층에 대한 권위 있는 고해성사를 주관하고, 고위층 자녀에 대한 교육을 담당합니다.
무섭게 성장하는 예수회의 세력에 당황한 교황청은 예수회 회원수를 60명으로 제한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조치는 금세 풀렸고, 1556년 로욜라가 사망할 당시에는 전 세계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c) 영성훈련

로욜라는 알칼라(Alcala) 대학교에 머물면서 추종자들을 모아 혼의 치료를 하였습니다.
사람이 기절할만큼 격렬했던 종교의식(신비주의적 영적 체험)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습니다.
카톨릭 종교재판소는 1527년 4월 로욜라를 구속했고, 고문을 실시했지만 그는 자신이 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로욜라는 일체의 종교집회를 금지 당한 채 석방되었고, 파리의 몽떼이그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영적 수련(Spiritual Exercises)에 관한 소책자를 배포하였고, 라네즈(Lainez)나 살메론(Salmeron)과
같은 추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영적인 힘에 매혹된 사람들은 마약 중독자처럼 이를 지속하기 위해 로욜라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련자들은 1달 동안 로욜라의 지도로 호흡법, 주문, 명상, 울부짖고 고함치는 행동 등을 교육 받고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행위는 자아의 의식을 잃게 해 불교에서 강조하는 무아지경에 이르게 하지만, 최면 상태에 빠져 쉽게
마귀들림 현상을 겪게 됩니다.

신비주의 의식을 하는 사람 가운데는 귀에 속삭이는 마귀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많으며, 결국 살인이나 음란한 행동
등을 하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 살인범은 대개 어릴 때 부모로부터 학대 받은 경험이 있으며 극심한 고통과 현실도피
의식은 자아를 잃게 해 쉽게 마귀를 불러드립니다.

제가 어릴 때 가족이 모두 성당에 다녔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성당에서 카셋트 테이프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마인드 콘트롤에 대한 테이프에 녹음된 내용은 심장박동 소리나 기관총 소리 같은 규칙적인 음이었습니다.
그걸 듣고 있으면 알파파 상태가 유도되 정신집중이 잘 된다고 하는데, 요즘 나오는 엠씨스쿼어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뇌파란 뇌의 활동에 따라 일어나는 전류로 '활동상태의 베타파', '학습상태의 알파파', '명상상태의 세타파', '수면상태의
델타파'로 나뉩니다.
세타파는 의식 상태와 무의식 상태의 중간단계로 최면, 세뇌, 빙의가 가능한 상태이고, 정신세계의 상위구조이며,
자기암시로 인한 행동조절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빛과 소리로 심신을 안정시키는 것은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이고, 잘못하면 간질발작을 일으킬
수 있으며, 자율적인 심신의 조절을 방해하고, 담배를 피듯이 감정조절을 기계에 의존하게 합니다.
명상이나 기 수련, 참선도 비슷한데 주로 강조되는 것이 '규칙적인 호흡', '규칙적인 주문', '정해진 생각', '차분한 음악',
'규칙적인 행위', '규칙적인 걸음걸이', '규칙적으로 반짝이는 불빛', '한 곳만 응시함' 등입니다.

이를 통해 세타파 상태에 들어감으로써 무아지경에 빠지게 되고, 쉽게 접신하거나 유체이탈 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귀신이 들리거나, 악령의 소리를 듣거나, 악령의 모습을 ?으로써 더욱 더 불안하고 힘든 삶을 살 수 있습니다.
TV에서 나오는 최면상태에서 전생을 대답하는 주체는 내 영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악령입니다.
우리 육신이 태어나면서 영은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며, 죽은 혼령은 절대로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오순절 계열의 교회에서도 이러한 신비주의적인 의식을 그대로 받아드려 성령체험 한다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체험하는 현상은 '몸이 부들부들 떨림', '정신을 잃음', '울부 짖음', '황홀함', '큰 충격', '데굴데굴 구름',
'개 처럼 짖음', '계속 웃음', '머리를 흔듦', '계속 춤을 춤' 등 이상한 육체적 표현입니다.
이러한 것은 전형적인 마귀들림 현상으로 심할 경우 마귀의 집적주관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신비적인 체험을 좋아하며 마귀는 이를 이용해 자신에게 끌어들여 말 잘 듣는 노예로 만듭니다.
물론 마귀가 수호령이 되어 그 사람의 앞날을 지켜주고 각종 재능과 능력을 선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마귀에게 의지함은 구원은 커녕 저주받을 행동이고, 영원한 불지옥행이
보장되며, 결국 마귀의 지시에 따라 사회를 타락시키고 오염시키는데 앞장 서게 됩니다.

서양의 마법사들은 정기적으로 여자를 납치해 피를 흘림으로써 사탄에게 인신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고, 그 외의 길은 모두 사탄과 마귀에게 나아가는 길입니다. (요한 14/6)
또한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능력이나 마귀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받을 것이요,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받을 것입니다.

 

d) 예수회의 사상

예수회는 로마 카톨릭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모든 활동을 전개하는 정치조직입니다.
이를 위해 카톨릭 내에서 교황의 강력한 독제체제를 추구하고,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 기독교를 교황권 아래로
편입시키려 하며, 각 국의 정치가가 교황에게 충성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포섭, 음모, 선전, 선동, 교육, 선교, 반역 등이 동원됩니다.

예수회 회원은 세뇌적 교육에 의해 상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도록 훈련됩니다.
그들은 이성과 도덕적 양심마저도 버리고 상부의 명령에 따라 살인도 자행할 태세를 갖추게 됩니다.
로욜라는 "총재가 지시하는 것이라면 그 모든 것은 정의로운 것이며 온당한 처사임을 모든 회원은 명심해야 한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회의 수련은 군대의 훈련과 비슷하며 자기의 판단을 배제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교육받습니다.
로욜라가 포르투갈의 회원에게 보낸 서신에는 "교회가 검은 것을 흰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대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어떠한 의심이나 가치관마저도 죄악시 되는 예수회 회원에게 절대적인 복종은 "자기 굴레로부터의 해방" 이라고
칭송되어집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이러한 예수회의 태도는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로부터 추방당하는
사태로 이어집니다.

 

e) 예수회의 조직

카톨릭 예수회는 6계급으로 이루어지는데 novices(초신자), scholastics(수학생), coadjustors(보좌주교),
temporal(교구주교), professed of the three vows(세가지 맹세를 한 자), professed of the four vows
(네가지 맹세를 한 자)가 있습니다.
이 중에 상위 두 계급은 예수회의 운영과 간부 임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네 번째 맹세는 로마 카톨릭 교황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특별한 충성의 표시이며 교황이 명령하는
때는 어떤 일이든지, 어느 장소든지 가야 하며 의문을 제기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 명령들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예수회 수장에 의해 실행됩니다.

예수회의 우두머리는 실질적인 총사령관으로서 수장(General)이라 불립니다.
예수회 총재인 라네즈와 살메론은 예수회 총칙을 만들었는데 '예수회 총재는 독재체제로 한번 부임하면 죽을 때까지
재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예수회 수장에게 주어진 권력중의 하나는 지원자를 비밀리에 받아들여 입회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예수회의 법규에 의하면 수장은 죽을 때까지 로마에 거주해야 하며, 간부들도 직접 임명합니다.
그의 임용권과 그가 제시한 의견은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예수회 총재는 로마 교황청의 훈계자요 대리자며 보좌역으로 불리웠고, 이태리,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
미국 등에 지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지회에는 총재가 임명한 감독관이 파견되고, 예수회의 재산은 총재가 직접하며, 그 책임은 교황만이 물을 수
있습니다.

모든 지부의 상관이나 수도원장은 예수회 회원에 관련된 모든 일과 회원들이 다루는 모든 사건을 자신의 상관에게
매주 정기적으로 보고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지부장들은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종합하여 수장에게 매월 문서로 보고합니다.
또한 예수회의 모든 지부장들은 3개월에 한번씩 수장에게 직접 보고해야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예수회의 감시와 고발체제는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서 과거 수도원에서 공개적으로 잘못을
고발하던 것과는 달리 모든 회원들은 비밀리에 자신의 상관에게 동료들을 고발해야 하며, 그 상관도 지부장이나
수장에게 같은 방법으로 동료들의 잘못을 고발해야 합니다.

심지어 수장의 잘못으로 예수회의 목적에 금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장도 조직의 감독을 받습니다.
여섯 명으로 구성된 심의회가 수장의 행동을 감시하는데, 심의회는 네명의 보좌관과 수장의 잘못을 충고하는
충고자, 고해신부로 이루어집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항상 수장과 함께 회의에 참석해야 하며 수장은 예수회의 허락없이는 수장직을 그만두거나
다른 성직, 관직을 받아들일 수 없고, 자격정지 당하거나 면직당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회 사제는 주교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1545년 교황 바오로 3세는 그들에게 사목권, 고해 청취권, 성례식 집행권,
미사 집례권 등을 부여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은 것은 결혼식 주례 뿐입니다.

예수회 총재는 강력한 사면권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회 회원이 가입하기 전 후에 지은 모든 죄, 이단 죄 등을
사면할 수 있고, 파문당한 자나 성무 금지조치를 받은 자도 충성을 맹세한 자는 사면할 수 있습니다.
그레고리 13세는 예수회에 교역과 은행거래의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경제적 활동도 보장하였습니다.
교황들은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국왕조차 파문하였습니다.

1574년 피오 5세는 칙서를 내려 훗일 교황이 칙서를 내려 예수회의 권한을 축소한다 하더라도 예수회 총재가
이를 회복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습니다.
교황이 이렇게 예수회에 엄청난 특권을 부여한 것은 예수회가 자신에게 절대 충성해 교황권을 옹호할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권력이 상당 부분 예수회에 넘어감으로써 교황체제는 예수회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예수회 또한 절대적
교황 권력의 비호 아래 성장함으로써 두 세력은 상호 의존적인 공생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교황을 'White Pope'(흰 교황), 예수회 수장은 'Black Pope'(검은 교황)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회는 겉으로는 교황에게 순종하나, 자신의 이익과 뜻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언제든지 교황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회는 교황의 전위부대로서 사회 일선에서 활동하기 위해 정치가, 장성, 판사, 의사, 교수 등 사회 저명 인사들을
포섭하였습니다.
여러 국가의 황제와 귀족 성직자등도 예수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기독교 내에도 침투하여 기독교를 사분오열
시킨 다음에 다시 통합해 교황권 아래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만약 카톨릭을 비판하는 개신교 목사가 있다면 그 교회에 침투해 각종 음해와 공작으로 그 목사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결국 교회에서 쫓겨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는 33,000명의 예수회 공식 회원이 공식 활동 중이며 이들은 교황권의 세계 지배를 위하여 불철주야 분주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f) 예수회 입단식

후보자는 길고 엄격한 금식을 통해 육체적으로 쇠약하게 되고, 환각을 증강시키기 위해 입회식 전에 환각제를
먹습니다.
그 후에 신비적인 장치가 된 장소를 지나가게 되는데 이곳에는 사악한 환영들이 나타나게 하고 죽은 자를 부르는
초혼, 지옥의 불꽃을 나타내는 화염, 해골, 움직이는 뼈, 인공천둥과 번개들이 장치되어 있는데 이 모든 것은 고대
신비종교의 유산이고 프리메이슨 의식입니다.

만일 세심하고 관찰당하고 있는 입후보자가 조금이라도 공포의 무서움을 나타내면 그는 영원히 하층계급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험을 잘 통과하면 그는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계급의 입회식 때에는 오랫 동안 금식을 한 이후 눈을 가리운 채 울부짖는 소리와 끔찍한 소리가 들리는
큰 동굴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때 그는 이러한 경우를 위해 준비된 기도문을 암송합니다.
동굴의 끝에 가까이 가면 좁은 입구를 기어나와야 하는데 입후보자가 기어나오는 동안 묶인 헝겊을 누군가
풀어줍니다.

그가 동굴을 빠져나오면 자신이 사각형의 지하감옥에 있는 것을 알게되는데 그 바닥에는 매장할 때 쓰는 천이
깔려있고 세 개의 램프가 움직이도록 장치된 해골과 뼈 주위에 희미한 빛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이 동굴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초혼의 동굴이며 '검은 방'(The Black Chamber)이라 불립니다.
입후보자는 여기서 기도문을 외우는데 그의 모든 행동은 하나하나 감시됩니다.

만일 그의 행동이 만족스러운 것이면 대천사를 나타내는 두명이 그 앞에 나타나서 피가 적셔진 흰천을 그의 이마에
묶어 줍니다.
이 천에는 비밀스러운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고, 목에 작은 십자가 형태를 걸어주며, 순교자들의 유골이 든 가방을
그에게 줍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입후보자의 옷을 모두 벗기어 동굴 구석에 쌓인 장작더미에 던져 놓고 칼로 자기 몸에 작은
십자가를 그어 피가 나오게 합니다.
이 때에 신비의식을 도울 동료들이 들어와 입후보자 몸 주위에 붉은 천을 둘러줍니다.
이 천에 피가 베이면 자신들의 단도를 그의 머리 위에 둥근원의 형태로 빼어듭니다.

바닥에 카페트가 깔리고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약 한시간 정도 기도를 드린 후 장작더미에 불을 붙힙니다.
그러면 동굴의 안쪽 벽이 열리면서 천사와 유령으로 가장한 사람들이 판토마임처럼 줄지어 지나 갑니다.
이 광대극이 진행되는 동안 입후보자는 다음과 같은 맹세를 합니다.

"나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교황)의 이름으로 아직 나와 연관이 있었던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친구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겠다고 맹세합니다. 나는 전에 내가 충성을 맹세한 왕이나 행정장관 혹은 다른 어떤 기관과의 관계도
끊겠습니다. 이순간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나는 새로운 상관이 내가 행하고, 생각하고, 읽고, 배우고, 보는
모든 일을 알기 원합니다. 나는 생명과 의지가 없는 죽은 시체임으로 모든 것을 나의 상관에게 양보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모든 유혹을 물리칠 것을 맹세하며 내가 어디에 있든지 이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이 맹세한 한 새로운 회원은 옆방으로 인도되고 목욕을 한 후, 흰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축하연회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그가 겪은 오랜 금식과 공포, 피로를 보상하기 위한 음식과 포도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g) 예수회 수장의 명령과 선서

하부조직 예수회 회원이 지휘부로 승진할 때 수장은 동시에 그에게 단도를 주는데, 그는 칼날을 쥐고 그의 심장을
향하여 칼끝을 겨누고 수장은 여전히 단도의 손잡이를 잡고 있으며 다음과 같이 지원자에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너는 이제까지 위선자로 행동하라고 훈련을 받아왔다. 로마 카톨릭 내에선 로마 카톨릭 신자로,
그리고 심지어 네 자신의 형제들 사이에서도 스파이가 되어라. 누구도 믿지 말고 누구도 신뢰하지 말아라.
개혁교도 사이에서는 개혁교도가 되어라. 위그노파 사이에서는 위그노파가 되고, 칼빈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칼빈주의자가 되고, 프로테스탄트 안에서는 일반적인 프로테스탄트가 되어라.
그리고 그들의 신뢰를 얻어내어 심지어 그들의 강단에서 설교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전적으로 열정적으로 우리의
거룩한 종교와 교황을 비난하려 하는 것처럼 하라. 그리고 심지어 유태인 사이에서는 한명의 유태인이 되기까지
변신하라. 그리하면 너는 교황의 충실한 군사로서 너의 예수회 조직에 이로운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스파이로서의 너의 활동을 명령받았다. 네가 가진 권력 안에서 가능한 모든 정보처로부터 통계자료, 사실들
그리고 정보를 수집하고, 프로테스탄트 회원 그룹들과 모든 계급과 특정한 이교도들의 환심을 얻도록 행동하라.
뿐만아니라 상인, 은행가, 법률가, 학교들과 대학교들 사이에서, 의회와 입법부, 법원과 주법원 안에서 또한 그렇게
행동하라.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방법들"로 행동을 같이 하라. 교황의 종으로서 우리가 죽을 때까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 예수회의 회원의 최종적 선서(The Extreme Oath of the Jesuits)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현재,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로우신 처녀 마리아, 은혜로우신 대천사 미가엘, 은혜로우신 성 세례 요한,
거룩한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울 그리고 모든 성인과 하늘의 신성한 성체들, 그리고 당신, 나의 영적 아버지,
교황 바오로3세의 재임 중,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에의해 조직되어 현재까지 이르는 예수회의 수장이 참석하신
곳에서, 처녀의 태, 하나님의 어머니,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징벌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선서하고 서약한다.

거룩한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자리이며 진실한 자요 지구상에서 카톨릭 혹은 우주적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다.
그리고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의해, 거룩한 자, 교황에게 주어진 매고 푸는 열쇠들로 인해 그(교항)는 이교도
왕들과 왕자들 국가들, 연방, 그리고 정부들, 모든 불법적인 것들을 그(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허락없이도
파멸시킬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을 완전히 멸망 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할 수있는한, 나는 이교의 모든 침입자, 혹은 프로테스탄트 당국이든 무엇이든, 특히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루터 교회와 영국, 스코틀랜드의 현재의 과장된 권위들과 교회들, 그리고 아일랜드와
미대륙과 다른 곳들에 현재 동일하게 세워진 조직들을 대적하는 로마카톨릭 교황의 교리와 그의 거룩한 권리
그리고 유전을 지켜야만 하며, 지킬 것이다.

또한 신성한 로마의 성모교회를 반대하며, 자신들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모든 이들과 이교도들에 대해서도
대항할 것이다. 나는 지금 프로테스탄트 혹은 자유주의자들의 이름을 딴 나라들, 왕들, 왕자들에대한 충성 혹은
그들의 법령들, 행정관들, 혹은 사령관들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고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더 나아가 선서하기를, 영국, 스코틀랜드의 교회들, 칼빈주의자들, 위그노파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혹은
자유주의자들이라는 이름의 교리들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며 그것들은 스스로 파멸된 것들이며, 그것들을 버리지
않는 자들도 동일하게 비난받아야 한다.

나는 더 나아가 선서한다. 나는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아일랜드, 혹은 미국, 혹은
내가 가게되는 어느 나라나 아무 영토 안에서, 내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 거룩하신 분 모두, 혹은 그 대리인중 누구라도
협조하고, 협력하며, 조언할 것이며 이교 프로테스탄트들 혹은 자유주의자들의 교리들을 근절시키고, 모든 그들의
위선적 세력들과 왕권들을 파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나는 더 나아가 서약하고 선서하기를, 내가 제거됨을 무릅쓰고, 어떤 종교가 이교라고 판단될 때, 어머니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교도들이 나를 신뢰하도록, 때때로 비밀을 유지하고, 어머니 교회의 대리인들의 충고들을
은밀하게 간직하며, 상황에따라, 직접적으로든 혹은 간접적으로든, 대화상으로나, 서면으로나 누설되지 않도록
비밀을 유지하면서 당신, 영적 아버지 혹은 이 신성한 수도회의 누군가가 나에게 지시하거나 명령하거나 제언하는
모든 것들을 실행한다.

나는 더 나아가 서약하고 선언한다. 나는 어떤 나 자신의 의견이나 혹은 어떤 의지도 갖지 않고 혹은 어떠한 심리적
두려움도 품지 않으며, 심지어 시체나 시신처럼,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내가 교황과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
상급자들로부터 받은 모든 개개의 명령들을 복종할 것이다.

나는 내가 파송되는 세계의 어느곳, 북극의 빙하 지역, 아프리카 사막의 불타오르는 모래지역, 혹은 인도의 정글,
유럽 문명지역의 심장부, 혹은 아메리카 야만스런 미개인들의 야생 소굴이라도 갈 것이다. 불평하거나 투덜거림 없이,
그리고 나에게 하달되는 모든 명령들에 복종할 것이다.

나는 더 나아가 서약하고 선서하기를, 나는 기회가 되면 비밀리에 혹은 공개적으로 모든 이교도들, 프로테스탄트들,
자유주의자들과 무자비한 전쟁을 일으키고 싸울 것이다. 지구상에서 그들을 전멸시키고 근절시키라고 지령받은
것들을 실행함에 있어 나이, 성별 혹은 조건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악명높은 이교도들을 목메달고
불태우고, 쇠약하게하며, 끓여죽이고, 채찍으로 치고, 가죽을 벗기고, 산 채로 매장해 죽일 것이다. 그 여자들의 창자와
자궁을 끄집어 내고, 그들의 신생아들의 머리를 벽에 처박아 죽일 것이며, 영원히 혐오스런 그 종족들을 전멸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공개적으로 이와 같이 할 수 없을 상황에서는 나는 비밀리에 독이 든 컵으로, 목졸라 죽이는
끈으로, 강철 단검으로 혹은 납총으로, 이교도들의 사회적 조건이 어떻든, 이교도 개인 혹은 개인들의 명예, 계급, 위엄,
혹은 권위를 고려하지 않고 공개적이나 비밀리에 교황 혹은 거룩한 교회 예수회의 상급자들의 대리인들로부터 명령을
하달받을 때는 어떤 때에도 즉시 암살해 버릴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나의 생명과, 나의 혼과, 모든 나의 힘을 바칠 것을 서약하며, 그 증거로써 내가 지금 받은 이 단도를
가지고 나의 피로써 여기 내 이름을 쓸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거짓이었거나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연약해질 경우 교황
군대의 내 형제들과 동료 군사들은 내 손과, 내 발과, 그리고 귀에서 귀까지 찢어지도록 내입을 찢으며, 내 목과,
내 배를 째고 그 안에 염산을 넣어 태우고, 지상에서 내릴수 있는 모든 징벌을 내린다. 그리고 내 영혼은 영원히
지옥에서 사탄에의해 고통 받으리라!

나는 은혜로우신 성삼위일체와 내가 지금 받아, 실행하고, 신성불가침으로 내 신체의 일부분으로 지켜야할 은혜로우신
성체로 맹세하며, 내가 이 서약을 지킬 것을 진정으로 원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모든 하늘과 영광스러운 하늘의 성체를
이 자리로 초청한다.

여기 증거로 나는 이 거룩하고 은혜로우신 성체를 받고, 나아가 내 자신의 피로써 이 단도의 끝으로 나의 이름을 쓰며
거룩한 수도회의 표면에 봉인한다."

(그는 수장으로부터 성체용 빵을 받고 그의 이름을 단도의 끝으로 그 가슴 상처에서 흘러나온 그 피를 적셔 쓴다.)

 

h 예수회의 교육

예수회는 회원들에게 성경도 못 읽게 하고 주입식으로 교리와 사상을 교육합니다.
또한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고, 예의범절이나 친절한 에티겟, 화법까지도 교육받습니다.
예를 들어 여인들에게 칭찬을 하거나, 생일 선물을 하고,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환심을 사는 방법도 교육받습니다.
예수회가 돈 많은 미망인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정신적으로 제압하거나 수녀원에 보내 재산을 빼앗기 위함입니다.

*
예수회에서 배우는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회의 새로운 지부를 세우는 방법

2. 예수회 회원들이 국왕이나 왕자 혹은 유명한 인물들과 친분관계를 갖고 유지하는 방법.

3. 정부에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과 예수회를 연결시키는 방법

4. 왕이나 유명한 인물의 고해신부에 대한 정보.

5. 다른 종교 단체나 성직자들을 관찰하는 방법

6. 부유한 과부들을 회유하는 방법

7. 과부의 자녀들을 종교적으로 교육시키는 방법

8. 예수회가 운영하는 대학 수입의 증가방법

9. 예수회 회원이 지켜야할 개인 사생활에서의 기준.

10. 예수회 회원들을 계속 예수회에 남아있게 하고 회원들 사이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11. 젊은이를 예수회에 입소시키는 방법

12. 수녀들이나 종교적으로 신실한 여자들에게 대하는 행동이나 규범.

13. 예수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일반적인 방법들.

 

  h) 예수회에 대한 명사들의 경고

"나는 죽는다...제수이트를 공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교황 끌레망 13세-

"매우 위험한 자들! 그들은 절대로 제국에서 용납되지 아니할 것이다." -나폴레옹 1세-

"진리의 우물에 독약을 탄 자들"  -토마스 칼라일-

"제수이트들은 영원히 박멸되어야 한다." -교황 끌레망 14세-

옥스퍼드 대학 토론회는 "로마 카톨릭교회는 서방 세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크게 위협하는 종교"라는
동의를구하는 가부투표에서 387명중 220명이 이에 동의하였다.
-The Times"1960.1.29.

"제수이트들은 피의 행동에는 명수들이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제수이트...흑암, 잔인, 배반, 전재독재제, 죽음"  -존 아담스 대통령-

"만약 미국이 자유를 박탈당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로마 카톨릭 체제를 통하여 올 것이다." -죠지 워싱턴 대통령-

"우리를 압도하는 한 역사적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것이니 당신의 자녀들을 카톨릭교 사제들로부터 피신시켜라.
그렇지 않는다면 그들은 당신의 자녀들을 인류의 적으로 만들 것이다."
-W.K.클리포드 교수

 

 

2) 유럽의 예수회

a) 16.17 세기의 예수회

이탈리아에서 예수회는 남부의 나폴리와 북부의 파르마에서 번성하였지만 많은 물의를 일으킨 끝에 1606년
추방당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예수회는 정치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국정을 좌우하였습니다.

스페인에서는 나잇하르트(Neidhart)라는 예수회 신부가 수상인 동시에 수석 종교 재판장으로 국가의 전권을
행사했습니다.
국권을 장악한 예수회가 국고를 탕진하자 스페인은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개신교도와의 갈등이 심했던 독일에서 예수회는 독일 남부의 바바리아 정부의 권력을 쥐고 개신교도를
핍박하였습니다.
재침례교도들에게는 추호의 관용도 베풀지 않고 수천명을 쇠사슬로 묶어 익사시키거나 화형시켰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예수회는 페르디난드 국왕을 통해 끔찍한 방법으로 개신교도를 처형하였습니다.
헝가리에서는 예수회가 레오폴드 1세를 위시해 개신교도를 핍박하였으나 헝가리인이 반기를 들어 물러 섰습니다.

예수회의 활동이 독일지역에서 초래한 것은 종교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처, 무력한 정치, 정신의 타락, 도덕의 부패,
인구의 대량 감소와 독일의 황폐화 뿐입니다.

스위스에서 예수회는 17세기에 무리하게 정치적 지배력을 확대하다가 18세기에는 경고를 받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예수회는 사회 고위층의 고해신부를 장악했고, 정치인들과 친분을 쌓아나갔습니다.
1620년 예수회는 카톨릭   교도들을 선동하여 개신교도 600명을 학살하였습니다.
오늘날 스위스 헌법 51조에는 스위스 연방 공화국 내에서 예수회의 어떠한 교육적 문화적 활동을 금지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폴란드의 경우가 가장 심각한데 온건한 역사가조차 폴란드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예수회에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폴란드 내에는 수백만의 기독교인이 있었는데 예수회는 이를 허용하지 않고 카톨릭의 충성을 다 바쳐야 하는 정치의
틀 속에 국민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1558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영국은 반수가 카톨릭 교도였고, 아일랜드는 완전한 카톨릭 국가였습니다.
예수회 회원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몰아내기 위해 아일랜드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습니다.
그들은 낮에는 설교를 하거나 성찬식을 베풀고, 밤에는 고해성사를 하면서 전국적인 활동을 벌였으나 결국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추방됩니다.

예수회는 여왕과 성공회에 대한 악성 팜플렛을 비밀리에 제작·배포하다가 발각되었고, 캠피온 신부가 국가 반란죄로
교수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국왕을 끌어들여 에딘버러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몄으나 실패합니다.
스페인 무적 함대를 통하여 영국을 위협하였으나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이를 극복했습니다.

영국에서의 예수회 세력은 크롬웰(Cromwell)의 등장으로 더 큰 힘을 가지게 된 유대세력에 밀리게 되었습니다.
예수회는 찰스 2세를 통해 부흥을 꾀하다 민중의 분노로 오히려 5명의 신부가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회는 전에 영국에서 휘두르던 권력을 다시 장악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임스(James) 2세의 치하에서 예수회는 저메인(Germain) 신부(주2), 후계자인 콜롬비에르(Columbiere) 신부를
통해 끊임없이 음모를 꾸몄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회는 제임스 2세를 통해 발판을 마련하려 했으나 이 역시 실패로 돌아 가고, 모든 예수회 회원은
투옥되거나 추방되었습니다.
영국 왕위는 프로테스탄트에게만 물려준다는 법률이 제정된 후에 예수회 외교관들의 행동은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예수회는 국민의 1/7을 카톨릭으로 개종시키고, 상류층에 파고 들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회는 귀족 가문의 힘을 빌어 1572년 성 바돌로매의 개신교도 대 학살을 주동하였습니다.
예수회는 종교전쟁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 앙리 3세를 암살하였지만, 주동자인 예수회 회원 귀나르(Guignard)는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회는 1592년 앙리 4세와 1594년 쟝 샤뗄 국왕의 암살 시도를 하였으나 결국 국왕으로부터 프랑스에서
추방되게 됩니다.
예수회는 루이 14세 때 국왕을 포섭하여 재기하여 권력을 장악했고, 개신교도를 핍박하였습니다.
예수회는 군인들을 동원하여 개신교도를 고문하여 개종시켰고 수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였습니다.

예수회가 개신교도를 핍박하자 수십만명의 고급인력이 프랑스를 빠져 나갔고, 프랑스는 쇠퇴하게 됩니다.
예수회는 18세기가 되서야 프랑스에서 추방되었습니다.

 

b) 예수회의 교육

예수회는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한 주입식 교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카톨릭 신학대학 후버 교수에 의하면 "로욜라에게 성모 마리아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자 종교적 헌신의
근원이었으며, 예수회에 대대로 전수되었다. 예수회의 진정한 종교는 성모 마리아 숭배다."라고 하였습니다.
로욜라는 자신이 영성훈련에 돌입할 때 성모 마리아가 영감을 불어 넣어 준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많은 예수회 회원들이 성모 마리아의 환상을 보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고, 그녀의 도움을 받으며,
그녀의 품에 안깁니다.
천주교 주보에는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란 구호가 적혀 있는데 이는 1845년 피오 9세에 의해
교리로 채택되었으며 예수님의 신성을 성경에 근거 없이 마리아에게까지 확대한 것입니다.

예수회는 성모 마리아의 다양한 유품을 만들어 내었는데 미카엘 성당에는 마리아의 옷자락, 머리카락,
머리빗 등이 성물로 숭배되고 있습니다.
자끄 뽕따뉘 신부는 성모마리아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배리(Barri) 신부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일백가지 헌신으로 천국의 문이 열린다.' 라는 제목의 책에서
조석으로 성모 마리아를 묵상하고, 천사들로 하여금 그녀를 찬양하게 하고, 마리아의 상징인 묵주를
항상 갖고 다닐 것 등을 권장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구원을 보장하고, 악마로부터 영혼을 지켜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회의 주입적인 교육은 학문의 자율적인 발전을 간과시킴으로 경직되 형식화 되게 됩니다.
따라서 시대의 따른 학문적 발전에 부응하지 못함으로 점차 도퇴되게 됩니다.
16세기의 예수회의 사상은 진보적인 면이 많았으나 18세기부터는 시대에 뒤쳐지게 됩니다.

 

c) 예수회의 정치 참여

예수회 회원들은 고해신부로 각 국의 상류층에 접근해 정치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17세기에 신부 나잇하르트(Neidhart)는 스페인의 수상이자 종교재판소장으로 정권을 장악했고,
페르난데스(Fernandez) 신부는 평의회 의원이었습니다.
라 셰즈(La Chaise) 신부와 그의 후계자들은 프랑스에서 각료직을 맡아 수행하였고, 페트르 신부는 영국의
장관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것을 좋아하는 대중의 기호에 부응하기 위해 고해소도 편법으로 운영했습니다.
원래 예수회는 명백한 위선과 범죄를 각종 변명과 억지로 넘기는 궤변으로 유명합니다.
그들은 고해성사에서 죄를 고백한 여자는 죄가 사해졌기 때문에 간통죄를 범하여도 법정에서 당당히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신부들은 중죄로부터 보호 받기 위해 '모호한 용어 사용', '자기 변명', '상대적 진리' 등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수도사나 성직자가 예수회를 비방한다면 살해해도 무방하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고,
국왕을 암살하는 일도 경미한 죄로 여깁니다.

예수회는 적대자나 탈퇴자를 거리낌 없이 제거할 정당성을 확립해 놓고 있습니다.
그들의 궤변 중 하나를 보면 '만일 신부가 여인을 범하였고, 그 여인이 그 사실을 공개한다면 그 신부의
명예는 더럽혀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신부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그 여인을 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예수회는 궤변을 통해 자신들의 악행을 선한 행실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d) 예수회의 붕괴

예수회는 유럽 여러 국가에서 번성하였으나 과학, 학문의 발전과 자유사상의 보급은 예수회의 지배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회의 활동은 국익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고, 예수회 신부들은 환전, 섬유산업, 식민지 교역, 흑인 노예를
이용한 대규모 농장 경영 등 종교와 무관한 경제활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해외 선교에 힘을 기울인 예수회는 피 정복민을 수탈하는 각종 경제활동에 참여하였고, 지금도 북 아프리카의
가장 부유한 지주는 예수회 신부입니다.
멕시코에서 그들은 은광과 설탕공장을 운영하였고, 파라과이에서는 차와 코코아 농장과 카페트 공장을
소유하였고, 소를 키워 매년 8만두씩 수출하였습니다.

팔라폭스(Palafox) 주교는 1647년 교황 이노센트 8세에게 "남 아메리카의 모든 부는 예수회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중국에서 예수회 신부들은 50%, 100%의 고리로 상인들에게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이러한 예수회의 탐욕과 부정, 음모와 권력장악은 어느 곳에서나 적의와 증오를 유발시켰습니다.
그 결과 예수회는 18세기 중반까지 30여 차례의 추방을 당했습니다.
예수회를 가장 먼저 추방한 곳은 전통적인 카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이었습니다.
예수회와 포르투갈은 남아메리카에서 영토 분쟁을 하였고, 1757년 폼발 수상은 예수회 고해신부를 쫓아내고,
예수회의 전도를 금지시켰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762년 4월 6일 예수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영장을 발부하였습니다.
"위 단체는 문명국가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단체이다. 그것은 위 단체의 본질이 종교적으로나 세속적으로나
모든 권위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위 단체는 종교라는 가면을 쓰고, 복음 완성이라는 진정한 목적을 외면하고,
부정하며, 은밀하고 사악한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권력을 추구해 온 단체이다."

결론적으로 예수회의 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모독하고, 시민사회에 유해하며, 국민의 권리와 왕권을 무시했고, 통치질서를 위협하였고,
국가적 소요를 조장하였으며, 종교적이며 기본적인 모든 윤리를 파괴한 조직으로서 그들 가슴 속에는 극악한
부패를 담고 있다."

프랑스에서 예수회의 재산은 몰수되어 국고에 귀속되었으며, 예수회 회원들은 예수회 서약을 철회하고, 프랑스
목사의 일반적인 규칙을 따를 것을 맹세함으로써 겨우 추방만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파라과이의 예수회 통치도 막을 내리게 되었고,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도시에서도 쫓겨났습니다.

스페인 부르봉 왕가마저도 식민지 뿐만 아니라 대도시에서 모든 예수회의 조직과 활동을 금지시켰습니다.
스페인에 있던 6000명의 예수회 회원들은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교황의 판단에 맡긴다는 친서와 함께 교황에게
보내졌는데 그들이 상륙하려 하자 대포 세례를 받았고, 그들은 여러 곳을 떠돌다가 결국 코르시카 섬에 정착했습니다.

교황 클레멘트 13세는 예수회의 처벌을 요구하는 여러 국가의 탄원을 받아드려 예수회를 개혁하려 했으나
독살 당합니다.
클레멘트 14세는 결국 여러 국가의 압력에 굴복해 1773년 예수회의 해산 교서에 서명하였습니다.
예수회 총재 리키 신부는 앙게 성에 감금되었습니다.

예수회의 재산이 몰수되자 예수회는 이에 반항하여 교황을 비난하는 홍보 책자를 발간하는 등 반역을 도모했습니다.
예수회를 탄압한 교황 클레멘트 14세는 결국 1774년 9월 22일 독살 당했습니다.

여러 곳에서 추방당한 예수회 회원은 호의적인 러시아로 몰려들어 군대와 귀족 사회를 선동하고 러시아 정교회를
위협하였습니다.
급기야 짜아르가 직접 나서 1815년 12월 20일 예수회를 추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예수회는 1814년 교황 피오 7세에 의해 재창립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서방 세계에 발을 붙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e) 예수회의 재기 (19세기)

클레멘트 14세는 예수회가 해산되고 나서 "나는 나의 오른 팔을 잘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교황은 세계를 지배하는데 있어 필요한 정치적인 조직인 예수회가 없으면 힘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피오 6세와 피오 7세는 예수회의 권한을 점차 회복시켰습니다.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은 예수회를 매우 위험한 존재로 보고 그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정이 복구된 후 예수회는급성장 하였고, 전국 곳곳에 개신교도와 맞서 싸우자는 기념물을 세웠습니다.
예수회 회원들은 또 다시 가는 곳곳마다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19세기에 예수회는 자유주의자들과 충돌을 빚어 1834년에 포르투갈에서, 1868년에 스페인에서, 1848년에
스위스에서, 1872년에 독일에서 , 1901년에 프랑스에서 또다시 추방당했습니다.

 

 

3. 예수회의 동양 선교

인도에서 로마 카톨릭 포교는 하층민 사이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드노빌리(Robert de Nobili)가 1605년 바라문(Brahmon; 인도의 사성중 최고위의 승려계급)을
포교하기 위해 그들의 기장(記章)과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고 1623년 그레고리 14세에 의해 인가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의 선례를 따르는 신부들은 바라문 개종자들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하여 바라문들이 하층민에 대한 포교와
성례전을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한 새로운 카스트 제도를 지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로잘리아(Rosalia)의 주교와 노베르트(Norbert)에 의해 로마 교황청에 보고된 이 시도는 1645년 이노센트
(Innocent) 10세의 교서에서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비난당했으며, 1669년에는 클레망(Clement) 9세, 1734년과
1739년에는 클레망 12세, 1745년 베네딕트(Benedict) 14에게 거부당했습니다.

똑같이 9명의 교황들에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거부당한 중국식 선교방법은 1744년 베네딕트 14세의 교서에
의해 마침내 허락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예수회 포교사들이 새로 만든 미사의식들은 결국 카톨릭에 힌두이즘을 융합시키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1700년 교황의 교서에 반대하던 예수회 포교사들은 중국황제로부터 예수회 포교사들이 행하는 의식은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칙령을 얻어냈습니다.

 

 


4. 예수회의 기독교 박해

도미니크 수도회(Dominicans)가 지휘한 종교재판소(Inquisition)는 원래 예수회가 만들었으며 그들이 종교재판
때 사용하던 악명높은 고문 방법도 예수회가 고안한 것들입니다.
1545~1546년 사이에 포르투갈에 종교재판소를 설치한 사람은 로욜라 자신이였으며, 1655년 포루투갈
종교재판소의 소장은 예수회 회원이였던 니타르드(F. Lithard) 추기경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곳곳의 종교 재판소와 개신교도의 탄압, 학살, 고문, 개종은 거의 예수회가 담당했습니다.

 

 

5. 교황청과 예수회

예수회는 교황청의 정치적인 기반이 되었고, 교황청은 예수회의 보호막이 됨으로써 상호 의존적이고 공생적인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회가 각 국에서 물의를 일으켜 쫓겨나자 교황청은 이들을 탄압했고, 예수회는 교황청을 음해하고,
교황을 암살하면서 이에 맞섰습니다.
교황청과 예수회 자신의 이익을 최 우선시 하는 권력집단이고 협력하면서도 때로는 견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19세기 들어서 예수회는 '하나님의 여인들'이라는 여성단체를 만들어 많은 교사와 기숙사를 설립함으로써
세력확장에 나섰습니다.
예수회는 성모 마리아 숭배에도 심혈을 기울여 예수회의 제안으로 1854년에 성모 마리아의 '무염 잉태설'
(원죄 없이 잉태)이 교리로 발표되었고, 프랑스 등의 성모 마리아 출현 사건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습니다.

1870년 바타칸 공회를 통해 믿음과 도덕적인 모든 문제에 '교황의 절대무오류성'이 선언됨으로써 교황의
위상과 권위도 높아졌습니다.
교황을지지하는 예수회는 점차 교황청을 장악했고, 마침내 지배하기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유행어 가운데 '교황의 펜대는 예수회의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수회 회원 중 상당수가 프리메이슨이라는 점입니다.
예수회 자체가 프리메이슨의 신비주의적인 영성훈련과 사상, 조직을 모방해 만들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회와 프레메이슨은 서로 다른 사상과 기반을 지닌 권력집단으로 때로는 협력하지만 언젠가는
굴복시켜야 할 적입니다.

한편 요한 바오로 1세의 급작스런 죽음도 프리메이슨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1984년 6월 영국에서 출간된 신의 이름으로라는 책에서는 요한 바오로 1세가 독살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요한 바오로1세는 즉위한 후 교회 사상 유례없는 대개혁을 결단하려고 했습니다. 

1978년 9월 28일 오후 5시 30분 바티칸 교황청의 국무장관인 잔 비로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1세로부터 호출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바로 추기경은 교황 자신이 조목조목 쓴 인사 이동 목록을 전해받았고, 교회사상 없었던 많은 해직
대상자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명단에 실렸던 사람들은 바티칸 국무장관 아고스티노 카사롤리 추기경, 로마 부주교 우고 볼렛티 추기경, 
바조 추기경, 바티칸은행 총재 폴 마칭쿠스 주교(현재 대주교), 조반니 베네리 추기경 등이었는데 이들 전원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프리메이슨의 단원이라는 것입니다. 

인사이동 명단을 본 비로 추기경도 바티칸 내부의 프리메이슨 중 중심인물이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1세는 바티칸 내에 침투되어 세계통일을 꿈꾸는 프리메이슨을 일거에 제거하려고 했으나 완강한 
저항에 봉착, 결국 교황 즉위 33일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6. 2차 세계대전과 예수회

a) 1차 세계 대전

20세기 초 유럽의 강대국들은 로마 교황청의 영향력을 벗어나 서로 연합하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정교회) 등이 연합하였고, 교황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곳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페인
정도였습니다.

동 로마제국에서 발현한 그리스 정교는 발칸반도에서 번성하였고, 슬라브 민족을 기반으로 한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는 교황청과 오스트리아의 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정교회는 러시아 짜르의 후원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세르비아를 응징하기 위해서 스페인의 부르봉 왕가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연합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태자 프랑소아 패르디난트(Francois-Ferdinand)가
사라예보에서 마케도니아의 학생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
이 일은 세르비아 정부와 아무 관련이 없었으나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랑소와 조셉에게 충분한 전쟁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예수회 회원인 오스트리아 각료들과 교황청은 조셉 황제에게 전쟁의 불가피성을 강조했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독일을 이용하여 유럽을 정복함으로써 유럽에서의 옛 권력을 회복하려
하였습니다.

교황청은 우선 프랑스를 멸망시키기 위해 독일 연합 군대를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은 수 많은 사상자를 낸 채 독일이 패배했고, 이로 인해 교황청의 위신은 크게 추락하였습니다.
따라서 1919년 6월 연합국이 베르사이유 조약을 조인할 때 1차 대전을 조장한 바티칸은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되었습니다.

 

b) 예수회의 파시즘과 나치즘 지원

1차대전의 실패로 교황청은 큰 손실을 입었는데 친 로마적 합스부르크 왕가는 무너졌고, 유고의 정교인들은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났고, 러시아는 공산화되어 무신론자가 되었고, 독일은 완전히 파멸했습니다.
예수회는 권세를 회복하기 위해 각 국에서 활동을 재개하였는데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는 샤를 황제를
지지하였고,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를 후원하여 정권을 잡게 하였습니다.

무솔리니는 전체주의자로 1차대전 제대군인들을 모아 파시스트당을 창립하였고, 1922년 10월 로마진군이라는
쿠테타로 정권을 잡고 정치, 문화, 경제를 개혁해 독재정부를 수립했습니다.
타키 벤추리 신부는 예수회 회원으로 당시 무솔리니의 고해신부였습니다.
당시 교황청은 7억 5천만리라를 무솔리니에게 주고 바티칸에 대한 정치적 지배권을 확보하였습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로부터 자극을 받았으며 나치즘은 파시즘의 전체주의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히틀러가 전체주의적 나치즘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회복하자 바티칸은 또 다시 독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치즘은 반 민주주의, 우생학적 인종 우월주의, 독일민족 지상주의, 전체주의, 군국주의, 반공주의 등을 바탕으로 한
독재적 정치이념입니다.

1차 대전 이 후 예수회 총재가 된 할케 폰레도코브스키는 오스트리아, 체코, 보헤미아, 폴란드, 헝가리, 크로아티아,
바이에른(독일 남부) 등을 포함하는 중부와 동부 유럽의 카톨릭 국가 연맹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중앙 제국은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하는데 동부는 공산주의로 무장한 소련이고, 서부로는 개신교 국가인
영국과 혁명사상으로 뭉친 공화국 프랑스입니다.

바이에른(독일 남부)은 카톨릭 국가이고 히틀러는 카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교황청은 나치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히틀러는 중대사안에 대해 교황청과 상의하거나 인가를 받았습니다.
1924년 교황청과 바이에른은 협정을 맺었고, 베를린 주재 교황 대사인 파셀리는 1932년 7월 20일 반정부 시위를
주동하고 군의 개입을 막음으로써 바이마르 공화국(당시 독일의 중심)을 붕괴시킵니다.

예수회는 주로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였고, 1933년 풀다(Fulda) 회합에서 독일 주교들은 히틀러가 발표한 선언
(독일 사회주의 운동은 신성한 카톨릭 교리에 의거하고, 교회의 사명과 권리를 보장)을 받아드렸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카톨릭 정당을 이끄는 스투르조가 무솔리니에게 권력을 이양하였고, 독일에서는 카톨릭
중앙당(Zentrum)의 대표인 폰 파펜의 지원으로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교황청의 외무대신 파셀리 추기경은 히틀러에게 반 카톨릭 종파를 척결하도록 건의했습니다.
히틀러는 1933년에 유대인과 자유주의자 4만명을 45개 수용소에 분산 수감하였습니다.
한편 교황청은 무솔리니의 이디오피아 침공을 비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지지 발언을 하였습니다.
파시스트는 1939년 알바니아도 침공했는데 이는 카톨릭 세력을 넓히려는 교황청의 계획에 부합하는 일이었습니다.

한편 스페인에는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교황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스페인의 혁명군에게 군자금, 전쟁물자, 항공기 등을 지원하였습니다.
교황은 스페인 공화국의 수반을 파문하고, 교황청과 마드리드 간의 영적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바티칸은 내란이 끝나기 20개월 전인 1937년 8월 3일 혁명군 프랑코 정부를 인정하였습니다.

 

c) 2차 대전의 발발과 유럽의 카톨릭화

독일 뮌헨에서 퍼레이드 하는
오른쪽의 히틀러와 왼쪽의 무솔리니

1938년 3월 히틀러가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의회에서 오스트리아의
합병을 공표하여 지지를 받는 모습.

왼쪽부터 히틀러(A. Hitler),
괴링(R. Goering), 괴벨스
(P. Goebbels), 헤스(R. Hess).

1930년대의 경제 공황과 자본주의 열강의 경제 블록화는 식민지가 부족한 독일을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1937년 독일과 이탈리아와 일본은 3국동맹을 맺고 영국, 프랑스, 소련에 대항하였습니다.
1937년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병합함으로써 중부 유럽의 세를 넓혔습니다.
히틀러는 산업을 발전시켜 전 후 보상금 등으로 피폐한 경제를 일으켰고 군사력을 대폭 증강하였습니다.

1939년 독일은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음으로써 서부전선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은 폴란드와의 영토 협상이 결렬되자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였고,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은 발발합니다.
히틀러, 괴벨스, 히믈러 등은 카톨릭 신자였고, 중대사를 결정할 때는 항상 교황청과 협의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나치와 교황청이 힘을 모아 유럽을 정복하려 했던 전쟁입니다.
교황청은 2차 대전을 전후해서 독일의 무력을 이용해 비 카톨릭 교도를 제거하고, 세력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병합 때 비엔나의 대주교인 이니찌(Initzer) 추기경은 "히틀러 총통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고 있으므로 신도들은 독일 제국을 받아드려야 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해 독일군을 환영했습니다.

독일과 병합된 체코 의원 중 일부는 카톨릭 사제였고, 그들은 교황청의 허가로 공직을 겸할 수 있었으며,
그들 중 한명은 국가 원수로 임명이 되었고, 최고 영예인 철십자 훈장을 받았습니다.

1941년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여 '크로아티아 독립국'이란 위성국을 만들었고 루이 바소
(Louis Barthou)라는 테러리스트를 수상으로 앉혔으며, 크로아티아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리스 정교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이 결과 30만명의 세르비아인과 유대인이 추방되었고, 50만명이 학살되었으며, 24만명의 정교회 신자가
고문과 협박으로 개종되었습니다.
이를 주도한 경찰총장 등 공직은 카톨릭 사제들이 차지했으며, 가장 끔찍한 수용소인 자세노바크(Jasenovac)의
소장인 미로슬라프 필리포비치(Miroslav Filipovitch) 또한 사제 출신입니다.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수상이 된 예수회 회원 티소(Tiso) 경은 "카톨릭 정신과나치주의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세계를 개조하는데 힘을 모았다."고 선언했습니다.
1940년 6월 바티칸은 라디오로 티소의 선언문이 교황의 승인을 얻었다고 발표하였고, 티소 정권은 국민의 20%에
해당하는 개신교도에 대해 탄압을 가했고, 정교회 신자들을 카톨릭으로 개종시켰습니다.

프랑스에서는 F.N.C.(카톨릭 국민 연합회)가 조직되어 드 카스텔노(de Castelnau) 장군이 선임되었고,
3백만명의 지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78세의 이 군 장성은 파시스트적인 교회 선전 전략의 기수가 되었습니다.
F.N.C.는 카톨릭의 행동대원으로 예수회 신부들이 창설에 일조하였습니다.

예수회는 '예수 성심회'를 통하여 F.N.C.를 결성, 조직하였습니다.
교황 피오 11세는 "카톨릭 행동대는 신념에 찬 사도들이다."라고 하며 F.N.C.를 지지하였습니다.
또한 프랑스 파리의 카톨릭회 회장 보드릴라르 추기경은 "히틀러의 전쟁은 유럽 문화를 수호하고자 착수한
숭고한 사업이다." 라고 언급하였습니다.

 

d) 히틀러 측근과 예수회

대주교 세자르 오르세니고(Cesare Orsenigo)
주독 교황청 대사가 1936년 1월 베를린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히틀러와 담소하고 있다.

1934년 새로운 성직자-파시스트 정관 선언 입회한,
작은 돌푸스(Dollfuss-오스트리아 독재자)와
오른편의 인니체르 추기경(Cardinal Innitzer)

스페인 카톨릭 성직자들이 1937년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에서 파시스트들(독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스페인 시민 전쟁동안 카톨릭 “개종작업”
(신부들이 대포와 총을 들고 시민을 사살하고 있다).

히틀러는 교황청과 반 카톨릭주의자들을 섬멸하기로 조약을 체결하고, 자유주의자와 유대인을 가둘 수용소를
건립했습니다.
그 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리거나 학살당했습니다.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회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 제도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조직을 대대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비밀리에 사람들을 유도해 갈 기관을 설립할 것이며,
그 기관을 이용해 젊은이들을 선동하며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다."

SS(독일 친위대)는 예수회의 영성훈련과 규칙을 본받아 히믈러가 조직하였습니다.
SS의 조직은 카톨릭 교회의 성직제와 거의 유사하며, 베벨스보르크(Webelsbourg)라는 SS의 본부는
'SS 수도원'이라고 불리웠습니다.

독일에서 활동한 교황의 밀사 폰 파펜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제 3제국은 교황의 숭고한 정신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실천으로 옮긴 첫 번째 세계적 권력이다."
여기서 '실천으로 옮긴다'란 말의 의미는 반 카톨릭교인을 척결한 것을 의미하며 UN의 공식 집계로 무려
2천 5백만명이 수용소에서 희생되었습니다.
폰 파펜은 나치와 교황청의 연결 고리 역할을 했으며, 교황이 제시한 안을 나치 수뇌부가 받아드리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나치 정권의 열렬한 선전장관이었던 조셉 괴벨스는 예수회 대학에서 신학을 교육을 받았고, 로욜라가 주장한
도덕적 상대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자 나치 독일의 2인자인
히믈러 역시 예수회 출신입니다.
히틀러는 "나는 히믈러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로 보인다네!"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친위대와 게슈타포와 독일 경찰의 사령관인 히믈러가 가장 성직자다운 면모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히믈러의 부친은 카톨릭 학교 교장이있고, 형은 수도사이며, 삼촌은 예수회 회원이었습니다.

예수회의 총재 폰 레도코브스키 백작은 예수회와 독일 사이에 작전을 수행할 첩보기관을 기획합니다.
그 결과 친위대의 중앙 안전부 안에 한 기관이 창설되었는데 대부분의 요직은 검은 제복을 입은 성직자들이 차지했고,
최고 요원 중 한 사람은 예수회 신부 히믈러였습니다.
히믈러는 전쟁이 끝난 후 도망다니다가 1960년 이스라엘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교수형 당했습니다.

 

e) 죽음의 강제수용소와 바티칸

아유슈비츠 수용소

독일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독일 예나의 수용소

독일 바이마르의 시체소각장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설치한 강제수용소를 KZ(Konzentrationslager)라고 합니다.
KZ는 A.히틀러의 나치스 독일이 구금·강제노동·살육을 위하여 국내외에 설치한 감옥으로 1933년 2월 제정된 ‘국민과
국가의 방위령(防衛令)’에 의하여 그 해 수십개 지역에 설치되었습니다.

공산당원·사회주의자·민주주의자 등 모든 반(反) 파쇼주의자와 나치스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자들을 일반국민으로부터
고립시켜 말살하고, 나아가서는 전국민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에서, 반대파나 교도소에서 만기석방된
반 파시스트의 대부분이 아무런 재판절차도 거치지 않고 SA(나치스돌격대), SS(나치스친위대) 등에 의하여 수용소로
끌려가 기한도 없이 구금되었습니다.

1934년부터 히틀러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SS가 수용소의 관리를 맡아, 정치적 반대자에 이어 인종적·종교적 이유에서
유대인과 불복종하는 그리스도인을 구금하고, 나중에는 일반범죄자·변절자 등도 수용하였습니다.
개전(開戰) 후, 파시스트와 그 배후의 융커들은 폴란드와 소련의 일부를 독일인의 이주지역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
지역의 원주민을 전멸시키려고 그들을 점령지구에 설치한 절멸(絶滅)수용소에 구금하는 등, KZ는 타국민 특히
슬라브인·유대인의 조직적 근절시설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 실례로서 폴란드에 설치되었던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루블린 근교 마이다네크의 가스실(室), 시체소각장 등을
들 수 있습니다.
KZ는 처음 수용인원 1,000명 안팎의 소규모 시설로서 수십 개소에 산재해 있었으나, 그 뒤 세계여론이 두려워
작센하우젠을 비롯한 5~6개소의 대수용소로 통합하였고, 1938년 H.W.괴링이 유대인의 절멸을 제의한 이래,
1100만명의 유럽거주 유대인 중 약 600만 명이 학살되었고 그 중 180만명이 어린이였습니다.

아우슈비츠(Auschwitz)는 폴란드 남부 비엘스코주(州)의 도시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건립되었습니다.

1940년 4월 27일 유대인 절멸(絶滅)을 위해 광분하였던 H.히믈러의 명령 아래 나치 친위대(SS)가 이곳에 첫번째
수용소를 세웠으며, 그해 6월 이 아우슈비츠 1호에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습니다.
그 뒤 A.히틀러의 명령으로 1941년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어 아우슈비츠 2호와 3호가 세워졌고, 1945년 1월까지
나치스 이곳에서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로 인해 ‘아우슈비츠’는 나치스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수용소를 40개의 캠프로 나누었는데, 피수용자는 강제노동과 영양실조·전염병으로 죽거나 또는 ‘욕실·청결·건강’이라는
등 거짓 푯말이 붙은 독가스실로 연행되어 학살되었으며, 일부는 의학실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학살된 자의 금니·모발 등은 자원으로서 회수되었습니다.

이러한 학살은 히믈러가 지휘하는 SS와 게슈타포에 의해 자행되었습니다.
1942년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탄압하는 조치가 내려지자 프랑스의 카톨릭과 개신 교회가 이의를 제기했으나 카톨릭
당국자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히틀러는 카톨릭 람바흐 학교를 다녔고, 수도원 성가대원이었으며, 나치의 기장인 철 십자가는 수도원 원장
하겐(Hagen) 신부의 전령관의 표지에서 따 온 것입니다.

 

"나는 죽는다...제수이트를 공격하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교황 끌레망13세-


"매우 위험한 자들!그들은 절대로 제국에서 용납되지 않을것이다" -나폴레옹 1세-


"진리의 우물에 독약을 탄 자들" -토마스 칼라일-


"제수이트들은 영원히 박멸되어야 한다" -교황 끌레망14세-
 
옥스퍼드 대학 토론회는"로마 카톨릭교회는 서방세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크게 위협하는 종교"라는 동의를 구하는
가부투표에서 387명중220명이 이에 동의하였다.The Times"1960.1.29.
 
"제수이트들은 피의 행동에는 명수들이다."
"포교하겠다는 미명 하에 날마다 우리 영토로 상륙한 로마 카톨릭 사제와 성직자들이 학교와 병원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남북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안다면 힘을 합쳐 그들의 손아귀에서 권력을 박탈할 것이다. 그들은 교황이나 유럽
전제군주의 대사로서 질서를 해치고 우리 국민의 마음을 헌법과 법률에서 멀어지게 하며, 아일랜드·멕시코·스페인 등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들이 있는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무정부 상태를 도모하고 있다."
-아브라함 링컨-

"마피아와 여러 비밀단체들이나 정보기관이 한 통 속이 되고, 거대 기업들이 바티칸과 손을 잡고, 비밀스러운 목적을
위해서 거액의 돈이 뿌려지고, 정치와 종교와 첩보와 금융과 조직범죄 사이의 경계선이 희미해져서, 마침내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아브라함 링컨-

"내 목숨을 노리는 그토록 많은 음모들이 꾸며졌었기에, 그 모든 것이 실패했다는 것은 정말 기적이다. 특히 거의 대부분이
숙련된 로마 카톨릭의 살해자들, 명확하게 예수회에의해 훈련된 자들의 손에서 꾸며졌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예수회는
피를 흘리는 임무에 매우 전문적이어서, 헨리 4세는, 그들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그리고비록 그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에게 희생되었다. 그들의 손아귀에서 내가 벗어나는 것은,
제퍼슨에게 쓴 교황의 편지가 나의 가슴을 찌르는 백만 비수를 갈게하였기에, 기적을 훨씬 뛰어넘는 일일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들의 죄들로 인해, 그가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의 입술에서
나오는 어떤 불평도 듣지 않으셨던 것처럼; 그렇게, 내가 내 나라를 위해 쓰러질 때, 그분께서 나의 불평을 듣지 않으시길,
다만, 나는 소망하고 기도드린다."

-아브라함 링컨-
 

"제수이트...흑암,잔인,배반,전재독재제,죽음" -존 아담스 대통령- 


"만약 미국이 자유를 박탈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로마 카톨릭체제를 통하여 올것이다." -죠지 워싱턴 대통령-


"우리를 압도하는 한 역사적 교훈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것이니 당신의 자녀들을 카톨릭교 사제들로부터 피신시켜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당신의 자녀들을 인류의 적으로 만들것이다."
 -W.K.클리포드 교수

 

"나는 제수이트의 부활을 기뻐하지 않는다. 대다수는 더욱 가장을 하게 될 것이므로 인쇄업자, 작가, 출판업자,
학교 교사 등과 마찬가지로 보헤미아의 수장도 받아들일 것이다. 영원한 저주를 받아야 할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면
바로 이 로올라 협회이다." (John Adams, 1816)

"나는 예수회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 제도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조직을 대대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비밀리에 사람들을 유도해 갈 기관을 설립할 것이며, 그 기관을 이용해
젊은이들을 선동하며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다."
-히틀러-

'나폴레옹의 세인트 헬레나섬 포로 생활에 대한 기억'(제 2권)이라는 책에서, 프랑스 장군 Montholon은 예수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수회는 종교 단체(order-질서)가 아니라 군대 조직이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군대의
장군이지, 단순히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이 아니다. 그리고 이 조직의 목적은 권력이다. 가장 전제적으로 행사되는 권력
절대권력, 우주적 권력, 한 사람의 의사에 따라 전세계를 통치하는 권력. 예수회 사상은 최고로 절대적이고 전제적이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거대하고 가장 엄청난 폐단이다.'

 

'우리가 카톨릭 교회와 일치되어 한마음으로 함께 하기위해서는, 만일 카톨릭 교회가 어떤 사물을 검다라고
확정한다면, 우리의 육안으로 희게보이는 것도, 그것은 검다라고 단언하는 그런 자세를 지녀야 한다.'
-로욜라-

 

출처 : 일상 사는 이야기
글쓴이 : 주장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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