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러본 문화재 이야기/포항

무진(無盡) 2013. 5. 16. 17:26

 

 

 

 

 

   장기(長冀) 말목장 석성(石城)

  구룡포에서 흥환까지 약8Km의 장기반도를 가로질러 쌓은 말목장성은 나라에서 필요한 말을 방목하여 키우던 말목장의 

  돌울타리로 아직 5.6Km가 남아 있는 국내 최대 규모로 여지도(與地圖, 경주도회좌룡지도(慶州都會左地圖)등 고지도에도

  전하여진다. 정확한 축조시기는 알수 없으나 조선 세종실록(世宗實錄)에 목장 감목관을 장기수령이 겸임한 기록이 있어

  세종이전 부터 존재 했던것으로 추정된다

  또 삼국유사에는 장기반도 안에 있는 호미곶면 강사리 명월암이 신라 선덕여왕 5년(636년)에 지역 수장의 군마사육을 기원하는

  사찰로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 기록이 현재의 석성을 의미하는지 알수 없지만 장기목장의 근원은 간접적으로

  약 1400년의 역사성을 갖게된다 할 수 있다.  일성록(日省錄)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는 당시 화랑이의 피해가 극심해

  산행장(山行將)이 목장에 배치되고 포수와 창군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는 구룡포돌문이 당시 말의 출입과 수를 헤아리던 문지기 2명이 있었다 한다 또한 구룡포 삼정리에는

  목아문(牧衙門)을 설치하여 양육하는 말을 관장했고 장기반도에는 물을 먹이는 웅덩이 50여개소와 누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마구

  19개소가 있었다 특히 관찰사의 지휘아래 있는 종6품의 관직을 가진 관리가 목장을 관리했으며 목자군이 목장안에 살면서 말의

  분뇨를 치우거나 관리에 동원됐다

  효종실록(孝宗實錄)에서는 효종6년(1655년)에 울산 감목관이 관할하는 울산 남목 휘하에 장기목장을 두게 했다 하지만

  1894년 갑오경장이후에는 탐관오리들이 들끓으면서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경상관찰사가 직접 절목(節目을 만들어 공포했다

  이완 관련 동해면 흥환리에는 목장의 폐해를 일소했다는 흥인군(興寅君) 이최응(李最應)의 영세불망비(永世不望碑)가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구룡포 호미반도연구회 자료에서 발췌>>

 

 

   발산(發山) 봉수대

  발산봉수대라 하지만 행정구역상 구룡포에 위치한다

   규모는 둘레가 409m 높이는4.5m로 조선시대 중기에 설치하여 조선 후기까지 존속하다 고종31년(1894년)에 철폐됐다

   이 봉수대는 위치상 연해봉수이나 발산이라는 이름과 같이 중계지의 역활을 하는 내지 봉수의 기능을 하였던 매우 중요한 봉수대다

   응보관계는 동쪽으로 동을배봉수, 남으로 뇌성산봉수, 북으로 바다건너 흥해군이 관장하는 지을산봉수 서쪽으로는 영일현이 관장하는 

   사화랑봉수에 응한다.  실측 조사결과 봉수대를 보호하는 담장과 봉돈(烽墩), 연대(煙臺) 그리고 입구쪽에서는 우물이 확인되었고

   봉수군이 기거하였던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 동대해문화연구소 자료에서 인용>> 

 

 

   박바위

  암산은 멀리서 보면 매가 앉아있는 형상을 하고 또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남성스러운 해발 158m의 낮은 산이다

  이 응암산 바위에 능선으로 연결된 박바위는 바가지를 엎어 놓은듯한 형상을 하고 잇어 지역민들이 박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또 아주 옛날 이곳까지 바다속에 잠겨 있을 때 바가지를 엎어 놓은 듯한 모습을 보이던 바위라 해서 박바위라고도 한다

  박바위 위쪽에는 두뼘 크기의 작은 구덩이가 있는데 심각한 갈수기를 제외하고는 물이 마르지 않아 매가 자주 찾아와 목을 축이며 쉬어 가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