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바로 알기

    원불사 단현 2009. 11. 11. 01:16

     

     

     

    만주군관학교

     

    참 암울하고 절망의 시절이 있었다.

    1931년 9월 일제국주의가 조선을 식민지로 병탐한 후,관할 만주철도를 스스로 폭파하는 자작극을 일으키면서 본격적으로 만주 북간도 일대를 무력 점령하면서 국제 이목상 허수아비 나라 傀儡國을 세우는데 그 이름이<滿州國1932~1945>이다. 

    일제의 주력 關東軍이 滿州事變을 일으켜 일시에 만주 전역을 점령한 후 沒落한 淸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簿儀)를 허수아비 王으로 앉히고 실질적으로 정치 경제 군사상으로 모든 실권을 행사 장악한 것은 일본 관동군 사령관으로 일제의 완전한 꼭둑각시 허수아비 나라 괴뢰국이 만주국인 것이다. 

    이 더러운 일제 괴뢰국 나라 만주국에서 유명한  민족 저항 시인 북간도 출신 尹東柱(1917~1945)가  1943년 延喜전문(延世大전신)을 마치고 일본 同志社대학 영문과 재학중 여름 방학을 맞아 고향 북간도 龍井에서의 反日 활동이 문제되어 사상범으로  日警에 체포되어 후쿠오카(福岡)형무소에서 28세의 청춘의 나이에 獄死한 일도 그  시절이었다.  

     

    1911년 反淸 반봉건주의 기치하의 손문의 신해혁명으로 만주 여진족이 세운 조선의 사대국 淸나라가 망하고 대륙 도처에서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중국공산당과 중국 대륙 패권을 놓고 내전 상태에서 만주 일대는 張학량 등 여러 軍伐이 장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만주국의 성립은 만주 북간도 일대에 산재하던 조선의 항일 독립군 무장세력에게 치명적인 타격이었다.관동군의 배후 조종을 받은 일본 낭인과 친일 중국인들이 독립군들의 삶의 터전을 지원하던 조선인 마을을 습격 방화,약탈.체포,살륙 하면서 국내에서 어려운 항일,투쟁의 이동 근거지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독립군들은 여러 산악지대로 피신하여 빨치산 투쟁을 끝없이 전개한다.

     

    관동군 사령관은 점증하는 군사 수요에 대비하여 만주국에 군관(장교) 양성학교를 두개 설립한다.즉 봉천군관학교와 신경(長春)군관학교이다.

    철저한 사상검증을 통해 친일 조선인과 친일 만주족 중 엄선하여 입학 허가를 하고 皇國 군인을 양성한다. 불운의 민족 저항 詩人 尹東柱님이 있는 반면에는.....

     

    지위 신분 명예에 모험적 야심으로 가득찬  朴정희(1917~1979)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경북 문경에서 전망없는 국민학교 선생의 교편 신분을 내던지고 제발로 찿아가 만주국의 新京(長春)군관학교에 입학하여 과정을 마치고 만주국 소위가 되어 독립군 토벌대 소대장으로 1945년 8월15일까지 복무한다. 물론 그사이 근무 성적이 탁월해 일본 정규 육군 사관학교까지 마치고 중위로 진급하여 천황폐하를 위해 일제가 패망 할 때까지 복무했다.

     

    또 다른 以北의 야심가 白선엽(1920~ ) 평양사범을 마치고 평양 대동에서 국민학교 센세이 접장을 접고 자진하여 만주국의 奉川 군관학교에 입학 독립군 토벌을 위한 <간도 특설대> 소대장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물론 함경도 출신 육참총장, 국무총리 정일권도 만주국 군관 출신이다.

    묘하게 탁월한 두 분 모두 괴뢰국 만주 군관학교 입학직전 신분이 국민학교 교사 출신이 이채롭다. 

     

    수많은 독립군 항일 빨치산들이 관동군 사령관 두 꼭두각시 그들의 손에 붉은 피를 뿌리며 무참이 죽어갔다. 생생한 목격과 증언이 있었다고 담배를 피시면서 그 분은 그 날을 회상했다.

     

    이제 악랄한 일제가 패망하여 만주국이 사라지고 해방이 되자 재빨리 조선인 만주 군관들은 군복을 벗어던지고 점령군 소련군의 체포를 피해 남한으로 잠행 미 군정 하에 국군 준비대(조선 경비사령부)에 자원하여 해방된 대한민국의 기간 장교 간부가 되어 백은 사단장 군단장 육군참모총장,장관.국영기업체 사장이  되고 박은 공산당(남로당) 군사 프락치에 연루되어 죽음 직전에서 같은 괴뢰국 군관 백의 생명 보시로 기사회생하여 6.25를 거치면서 복권  나중에 군사 쿠데타로 대통령까지 되어 조국 근대화 산업역군 위대한(?) 지도자 된다. 

     

    <정말로 황당한 정의가 죽은 이런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런 요지로 한숨을 쉬시면서 그 분은 그날 엄청난 통음을 하셨지만 한치의 허트러짐없이 두시간 이상 말씀을 이어갔다.

    김구 백범 선생님과 만난 이야기도 많이 많이 들려주셨다.

     

    나에게 바른 세상보는 눈을 뜨게 해 주셨다.

    나도 같이 크게 취하여 선생님에 대해서 이른 저런 질문을 했다

    "고향이 어디셔요? 어디서 학교 다니셨나요?일군에서 어떻게 탈출하셨나요?"

    압록강 중류  江界에서 나시고 하류 신의주로 유학하여 <新義州고보> 5년을 다니셨단 말씀도 들었다.

    괴뢰국 만주국 항일 빨치산 토벌 조선인 군관의 지위는  위대한(?) 대한민국의 출세의 영원한 보증 수표를 천황폐하로 부터 하사받은 셈이다.

    이제 곧 아직까지  살아있는 북에서 온 예비역 육군대장 白은 6.25전공과 지리산 빨치산 토벌대장의 공훈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명예 원수>로 추대받을 지위에 까지 와 있다. 만주, 지리산 빨치산 토벌 군사 전문가였던 것이다.

    죽어서 愛國,殉國 선열 열사 의사들이 묻히는 국립묘지에 이미 한분은 누워계시고, 이어서 白도 그 곳에서 그 날이 오면 영면하게 될 터이다.

    진실로 그 시절 殉國 애국 선열은 국립묘지에 누워 계신 분은 거의 없고 무덤도 없고 이름도 없고 그 후손도 거의 별로 없다. 

     

    둘은 이미  민간 일제 식민지 시대 역사 연구 전문기관인 <민족문제 연구소>가 곧 간행할  "친일파 인명사전"에 친일 업적과 소행이 자세하게 기재 등재하게 될 것이다. 

    功은 功이고 과는 과이다,

    뉘우침없는 民族 앞에 罪있는 자 歷史와 眞實 앞에 누구도 비껴갈 수없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의 詩句를 슬프게 되내어 본다. 

     

    참고: 金俊燁  현대사 長征  "나의 광복군시절" 나남출판사 서울 1989.   

     

         

     

     한국불교개혁카페 원불사(原佛寺)

     http://cafe.daum.net/wonbulsatemple

     

     

     

    철저한 사상검증을 통해 친일 조선인과 친일 만주족 중 엄선하여 입학 허가를 하고 皇國 군인을 양성한다 라고 설명하셨는데 박정희 대통령의문경보통학교 교사시절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수업시간에 몰래 태극기의 역사, 한글을 가르쳐 주셨다고 하고 1940년 2월 면직된후 1940년 4월 입학하시는데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독립군들은 여러 산악지대로 피신하여 빨치산 투쟁을 끝없이 전개한다.
    일제강점기에서 왜 빨치산 얘기가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빨치산은 6.25때 인민군과 인민군에 협력하여 공산주의에 동조한 자들이 인천상륙작전과 유엔,국군의 북진으로 오갈데 없어서 전향하지 않고 인민군 오기를 기다리다가 무참히 죽어간 자들이 독립군이라뇨, 공보처 통계국에서 6.25사변 피살자 명부 5만 9천명중 4만명이 전남지역이라고 합니다.
    위 글을 읽고도 박정희를 두둔하다니
    박정희의 우민화에 세뇌된 병씬 같은 시민이다.
    주인이 종에게 조롱당하면서도 종을 철떡 같이 믿는 꼴이다.
    독립군들이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처럼 빨치산 투쟁을 했다고 한 것을
    빨치산이라고 하니 625부터 들먹이는구나.
    모자란다.
    빨치산은 러시아어 파르티잔(partizan), 곧 노동자나 농민들로 조직된 비정규군을 일컫는 말로
    유격대와 가까운 의미이다.

    625 끝에 전국의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하던 분들이 지리산을 중심으로 모였다가
    토벌 당한 숫자가 4만명이라는 얘기를 바로 이해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