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개혁,원불사

    원불사 단현 2011. 1. 25. 12:18

     

     

     

     

    부처님이 인도에서 태어난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단현 

     

     

    부처님이 인도에서 태어났다는데 의미가 있다는 말씀은 진실로 옳습니다.
    장담하건데 부처님이 조선이나 고구려 일본이나 영국 혹은 하와이에 나셨다면 당연히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화나 학문 철학의 수준이 그 시대 인도와 비교하면 현저히 떨어져 한 마디로 표현하면 미개한 수준이었으니까요.

     

    그 시대 인도는 나이 들어 자손들이 먹고 살만한 여유가 된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구도자가 되어 세상을 떠돌았습니다.
    청년 야사를 비롯한 그의 친구 총각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여사로 출가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과 문화가 있었습니다.


    여념집의 노인들은 누구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출가하는 문화가 있었죠.

    부처님 전후로도 왕자나 왕제, 대상의 장자, 여염집의 노인들이 거의 모두 출가하고, 젊은이들이 단체로 쉽게 출가를 하던 때라서 부처님이 29에 출가한 것이 특별할 것도 없었습니다.


    사문유관 등에는 싯달타가 사문 비구를 만나는 장면이 한두 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출생시 싯달타의 앞 날을 예견한 아지따 선인을 비롯한 수많은 수행자들이 궁을 드나들며 청식을 공양하였을 것이고, 그들에게 수없는 가르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길에 흘러 넘치는 것이 탁발비구였으니까요.
    다만 후대 경전 기록자들이 부처님의 출가를 거룩하고 은혜롭게 묘사한 부분도 없지 않았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형제나 아버지가 출가자로 탁발하는 문화였기에 국민들은 누구나 비구들에게 공양하는 것을 지극히 당연하고 의무적으로 여기고, 최고의 공덕으로 여겼기에, 탁발하는데 자존심 상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공양은 음식 의약품 의복 토굴 등 수행자로서 최소한의 생활을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고, 그래서 더욱 출가가 쉬웠던 것입니다.
    요즘으로 보면 노후가 보장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가 그 시대 수많은 교단과  6외사도 등의 문화와 사상을 공부해 보면, 이미 학문적으로 대단히 높은 경지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각 교단들은 그들 나름의 교리적 체계를 세워 제자 양성에 혼신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고, 한 소식했다는 양반들은 누구나 부처님께 와서 토론하는 척, 실력을 겨뤄보고 자기 깨달음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모습을 수없이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때의 구도자라는 것은 학식있는 자들의 대학이나 마찬가지였었습니다.
    도리어 구도자 즉 비구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으니까요.

     

    부처님께서 쉬 출가할 수 있었고 성도하실 수 있었던 인도,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을 성지로 여기듯, 우리는 인도를 고향처럼 아련하게 마음에 그리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입니다...

     

      

    한국불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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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원불사(原佛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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