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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불사 단현 2012. 8. 7. 00:41

     

     

     

     

    이 글은 진흙속의연꽃님의 글

    [불교적 우주론과 신통에 대하여] (http://cafe.daum.net/wonbulsatemple/ao1M/876) 라는

    니까야나 논장의 신통이나 초월적인 이야기에 대해서 논한 글의 답글로 쓴 것입니다.

     

    이 글의 답글을 쓰기 전에 참고로 몇일 전 썼던 다른 글을 한편 올린 후 아래에 답글을 씁니다.

     

     

     

    불교에 신이나 영혼, 천국이나 지옥이 있는가?

     

    평생을 절에 다닌 보살님들이 병원에 전도하러 온 기독교 전도인들의 따뜻한 손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 개종하는 데에는, 불교에도 보살이나 신이 있고 참나나 영혼이 있어 죽어 영생하거나 천국을 가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가, 기독교인들 말대로 관세음보살이나 아미타불보다 훨씬 더 권능이 크다는 여호와 앞에는 하릴없이 무너지는 것이 또한 한국불자들입니다.

     

    그러나 스리랑카를 비롯한 남방불교국에서는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 등의 기독교국가로부터 수백년의 식민시대를 살면서악랄한 기독교 전도사들의 학교 병원을 지어 공부시키고 병을 치료해주고 회사나 상점을 설립해 취직시켜주고 유학 보내주며 먹을 것 입을 것 원조해주면서까지 개종을 획책했으나, 기독교인은 아직 전 국민의 2~3%도 안되는 것을 보면 우리 한국불교의 교리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남방에서는 재가자들도 부처님이 신이 아니라 인간이며, 기독교나 이슬람교 힌두교에서 말하는 신이나 영혼 천국이나 지옥은 착각이라고 명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로 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그당시 사람들이 브라만교의 유일 창조신인 브라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전쟁과 살륙, 5계급 등의 차별과 구원관이 모든 중생의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시고, 그들이 가르치는 천국 지옥 신이나 영혼이라는 것은 없는 것이며 사기라고 단언하신후, 사람은 영혼이 없는 무아로 자신의 업이 새로 태어나는 다른 생명에게 전해져 윤회하는 것인데, 그 윤회는 이 땅 5도, 6도에만 한정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선업을 쌓은 자는 천상(이 땅, 지구)이나 아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악업을 쌓은자는 축생이나 아귀(아주 가난한자) 그리고 지옥같이 참혹한 환경에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무상 무아를 깨달아 나나 내것이 영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욕심과 악한 마음을 버리고 이 땅에서 서로 도우며 행복하고 평화롭게 사는 이곳이 바로 불국토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누더기를 걸치고 걸식하면서 무소유하고 탐욕을 버린 성자로서의 모범을 보이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무상과 무아를 죽어도 이해하지 못했던 힌두논사들이 불교로 들어와서 무아가 아니라 어떤 식이 영원히 남는다는 이론으로 부파불교를 만들고, 일체법은 무상이 아니라 허망한 여몽환포영 공이고 부처님의 근본교리를 모두 허망한 공이라고 부정하는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만든 다음, 일체법이 허망한 것이니까 참나를 찾는 것이 해탈 열반이라는 대승교리를 만들고, 결국 그 참나가 영속하고 신, 보살이 있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평생을 대승불교를 하면서 무상 무아의 진리를 모르고 신이 있고 영혼이 있고 천국도 지옥도 있는 줄 알고 수행하던 74살의 해광스님(강원 교수사로 오랜 세월 수행하신 후 미얀마에서 수행도 하신 스님)이 노년이 되어 병들고 외로울 때, 전도에 혈안이 된 기독교인들이 따뜻하게 다가와 유일신 여호와를 믿으면 천국 가서 영생을 얻는다는 말에 너무나도 쉽게 현혹되어 자신의 집 한 채를 판 돈 3억원을 헌금하며 개종한 사례입니다.

     

    74살 평생 수행에 전념하신 스님의 삭발머리에 새파란 젊은 장로의 손이 안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낍니다.

     

     

    ▲두부전도왕 반봉혁 장로와 성도들이 해광승려에게 기도하고있다 

     

    [공이나 알고 참나를 찾던 해광스님 장로에게 안수받다]http://cafe.daum.net/wonbulsatemple/c18q/81 (전문)

     

     

     

    논장불교에 대하여

     

     

    위의 글을 쓴 이유는 어떤 허황된 환상이나 신비한 기적이야기에 속아서 현실을 불행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신 영혼 천국 지옥 같은 허황된 개념에 속아서, 또 다른 환상적인 세상을 바라보고, 단 한 번밖에 없는 이 땅에서의 삶을 허망한 것이라 착각해서 불행하게 살지 말라고 니까야 전편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부처님께서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고 과학적이면서 이성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출가자에게는 무아지만 업이 윤회한다고 가르치신 분이 재가자들에게는 영혼이 있어 다음생을 계속해서 윤회하며 영속하는 것으로 가르치셨습니다.

     

    이를 두고 부처님은 이중인격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부처님이나 제자스님들이나 주석가들이 법문을 하시거나 니까야를 기록하거나 주석을 쓸 때, 신통이나 초월적인 이야기 혹은 천신이나 마라에 대해서 말하고 기록했다 해서 이를 비불교적이라거나 비불설이라거나 후대 변질되었다라고 말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꽃님의 위 본문은 단 하나도 그름이 없는 지극히 옳은 견해이고 저의 견해와 추호도 다르지 않습니다.

     

    경이나 주석서의 신통이나 초월적인 이야기, 천신, 마라이야기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인 무상, 고, 무아, 연기 등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사람들이 신통 그 자체만 문제삼는다면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실 모든 종교의 경전이나 주석들의 신통이나 기적이 종교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표현되었다는 것을 의심하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말씀처럼 불자가 진정한 정견을 갖기 위해서 빠알리 니까야와 주석에 의존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나 이슬람교 등 유일신을 신봉하거나 사이비교주 아래 무식한 교인들은 그 신통이나 기적을 사실 그대로 믿고 혹은 천국이나 지옥을 사실 그대로 믿고 현혹되어 그런 복을 받거나 영원히 살기 위해 갖은 악행을 저지르기도 하는 것이 종교적인 영역일 것입니다.

     

    말씀처럼 불자 혹은 니까야를 공부하는 사람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지만, 지금 보살신앙을 하고 기복하는 분들의 눈에는 니까야나 주석의 신통이나 기적을 어떻게 볼까요?

     

    임란 때 잠시 활동했던 사명대사의 신통은 그 당시부터 전설이 되어 지금도 스님들의 법문에 마치 사실인 것처럼 회자되고 있습니다. 잡아함경에 부처님이 물 위를 걷고 가섭 존자가 따르다 물에 빠지니 믿음 없는 자여 하며 손을 잡아준다는 이란의 태양신 마이뜨레아의 신화를 신약성경에도 그대로 가져가 예수의 기적으로 둔갑시켰지요. 증일아함경에는 부처님이 순간이동하고 사자 코끼리 용으로 변하고 불을 내 품는 장면도 아주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니까야를 암송하여 제자들을 가르친 스승이나 수백년 후 니까야를 기록한 스님들이나 1000년 뒤 많은 주석을 종합해서 청정도론을 집필하신 붓다고사 스님 등의 주석가들이, 여러가지 신통을 사실 그대로 믿고 기록하셨는지, 혹은 너무 밋밋한 불교를 종교화 하기 위해 일부러 신비적인 요소를 차용했는지, 아니면 믿음에 감동을 더하기 위해 방편으로 인용해서 기록하셨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초기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상 고 무아, 부처님의 생애를 더욱 리얼하게 전하고 가르치기 위해 방편적으로 도입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의 교화의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 그 시대 가장 좋은 전설 신화나 문화적인 사고나 지식 사상들을 방편적으로 동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불교의 깊은 속내를 모르는 분들이 보면 저런 신통이나 우주론 후생에 대한 이야기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되고, 때로는 불교를 하찮은 것으로 볼 소지가 충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솔천 대범천 정거천을 지나 비상비비상처천, 멸진정을 지나 탐진치를 완전히 소멸했을 때인 열반이 최고의 가치라는 교리를 강조하기 위해 만든 33천 이야기는, 그냥 이야기 정도로 슬쩍 보고 지나치면 되는 것인데, 초심자가 이것을 실재적인 불교의 우주관으로 받아들일까봐 염려되는 것이지요.

     

    니까야나 주석의 그 신통을 그대로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것 때문에 불교경전이나 주석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도리어 니까야마저 비불설로 인식하거나, 단멸론으로 빠져버리는 사람이 생기거나 원인제공의 소지가 될 수 있다면, 니까야나 주석의 신통을 인용할 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얼마간의 설명이나 해제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도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부처님께서 무기하셨던 우주론이나 후생에 대한 것이 너무나 허황되고, 혹은 아비담마에서 너무 깊이 마음을 잘게 쪼개서 불교가 어렵고 복잡난해한 것처럼 보일 소지가 너무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고, 또한 초심자라면 더욱 불교의 진리를 오해하거나 부정하거나 공부하는데 지극히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저는 니까야를 니까야로 해석해야 한다는 해피스님의 견해를 상당부분 존중합니다. 물론 그 안에서도 교리가 너무 복잡하게 해석되는 것 같아 아쉬움을 느낄 정도입니다.

     

    니까야에서 부처님께서는 12연기를 순관 역관으로 단순하게 설명하셨지만 후대 주석이나 마하시 사야도의 12연기로 오면 그것이 과연 불교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렵고 복잡해져 있어 초기불교를 공부하거나 믿으려는 분들에게 크다란 장애가 되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무기로 일관하셨던 우주관이나 후생에 대한 논설이 논장에서 아주 많은 비중으로 허황하게 설명되어 있다는 것은 사실 희론이라고 해도 원망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랬다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만...

     

    사실 불교교리는 너무나 단순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이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가" "그것은 개개인에게 있는 탐욕과 악의 때문인데, 그 근저에는 나 내것이라는 이기심이 그 원인이다"라고 깨달으시고, 그 이기심을 제거하기 위해 무상 무아의 진리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4제8정도 12연기 5온 12처 18계 37조도품이라는 모든 교리교학이 무상 무아를 설명하는 것이고, 대념처경의 사마타 사띠 위빠사나 역시 무상 무아를 뼈속 깊이 체득하기 위해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불교교리라는 것은 지극히 쉬운 것입니다. 바보 쭐라 판다까 존자께서 그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이나 위빠사나를 해서 아라한이 된 것이 아니었고 단지 부처님께 몇 시간 지극히 원론적인 가르침을 듣고 4쌍8배의 깨달음을 얻은 분들에 대한 기록이 한없이 많은 것을 보면, 교리교학은 무상무아적 삶과 수행을 위해 고안된 방편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각각 다른 수많은 출가수행자들 혹은 외도들에게 근기에 맞는 말씀으로 무상 무아를 철학적 논리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8만 4천 법문을 하셨지만, 그 많은 교학을 모두 공부할 필요는 없는 것이고, 더구나 불요의한 경을 해석한답시고 무수히 확대재생산하고 침소봉대된 논장을 해석하는데 수십 년 날밤 샐 필요는 더더구나 없는 것입니다. 부처님당시에 그런 논장들이 있어 아라한이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과 20년, 이 땅에 초기불교가 들어온 이후 부처님을 모르는 위빠사나학원이 성행하고, 부처님의 생애나 행적이 없는 아비담마 논장불교가 성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가 이런 많은 글을 쓰게 합니다. 물론 저의 개인적인 견해이고 노파심이었으면 합니다.

     

    연꽃님의 오늘 글을 읽으며 다시 한 번 더 공부하고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한국불교에 연꽃님 같은 선생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항상 감사드리고 더욱 좋은 법문 부탁드립니다_()_

     

    원불사 단현- 

     

     

    근본불교대학

    http://cafe.daum.net/wonbulsatem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