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바로 알기

    원불사 단현 2012. 12. 27. 12:14

     

     

     

     

    조갑제가 이미 다 한 이야기

    박정희의 실체와 박근혜

    단현 2012.12.22

     

     

    이미 조갑제가 다 말해 놓은 사실에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료를 더한 것입니다.

     

    박정희 집권 18년간 노동자 월급 12배 오를 동안 전국평균땅값은 180배 올랐습니다.

    1억 2천 주고 살 수 있었던 50평 대지를 18억 원을 줘도 부족한 것입니다.

     

    노동자가 10년 먹고 저축하면 서울시내 주택지 50평에 35평 양옥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은 초등학교교사가 69년을 한푼도 안 쓰고 모아야 서울에 아파트 한 채 살 수 있다지요.

     

    이것은 박정희가 일당독재를 공고히 하고 영구히 유지하기 위해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기위해 재벌들에게 막대한 대출을 해주고 뒤로 몇십 억씩 받고 돈 되는 개발정보를 흘려 준 덕분입니다.

     

    대체로 100억 대출해 주면 2~3억 정치자금으로 받았다더군요.

    그러나 그 돈으로 개발지 땅을 사두면 곧 수십 배로 뛰었습니다.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땅값 폭등으로 도리어 부자가 되는 기현상이 수십 년 계속되었습니다.

     

    그때 서민들은 박정희의 저축만이 살길이라는 꾀임에 넘어가 버는 족족 저축했지만

    돌아서면 끝없는 인플레와 땅값 집값 상승으로 15평짜리 자기 집 하나 갖지 못하고 평생 빈곤을 대물림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박정희가 우리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준 은인이라는 세뇌에 아직도 박근혜를 대통령을 뽑는 병,씬 짓을 하고 있습니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자마자 처음 한 짓은 증권시장을 조작해 주식을 깡통으로 만든 일입니다. 물론 그 자금으로 야권을 파괴하고 공화당을 창당했지요.

    그 이후 한국주식시장은 독재자의 손아귀에 있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으로 10년 동안 외국의 투자가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국 차관조차 받지 못했기에 한국 경제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한 짓이 10환을 1원으로 바꾸는 화폐개혁입니다.

    그 결과 모든 유통과정이 엉망이 되어 한참동안 은행예금조차 동결하는 통에 경제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엉망이 되었습니다.

    이병철에게 한 말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경제인들에게도 좀 물어 봐야겠구만..."

     

    박정희가 뒈,지는 79년까지 북한이 더 잘 살았습니다.

    일제아래 도로 물류 등의 인프라와 각종 직물공장 섬유공장 비료공장 각종 경공업 공장 학교 등에 평야만 해도 북한보다 훨씬 넓고 크고 인구도 배 이상 많았던 남한이 못 살고,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진 보잘 것 없고 인구마저 반도 안 되는 김일성이의 북한이 박정희의 남한보다 훨씬 잘 살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입니다.

     

    물론 그 이후 북한이 남한보다 지지리도 못 사는 것은 미국의 60년이 넘는 악랄한 경제제재와 무역제재 때문입니다.

    북한은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팔아먹을 곳이 없으니 자연 망해 갔고, 우리 동포들은 굶어죽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통일한국의 미래를 망치는 것은 미국이지만, 우리 자식들이 그 막대한 통일비용을 세금으로 지출해야 하는 끔찍한 상황을 격어야 하는 것이지요.

     

    한국의 못 배우고 가난한 미친 병,씬들이 박정희가 경제를 잘해서 잘 먹고 사는 줄 세뇌되어 박정희를 찬양하지만, 사실은 박정희가 지들과 그 자식 후손들까지 깡그리 망친 장본인인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박정희 19년 동안 필리핀 대만 싱가폴 등이 경제성장이 훨씬 앞섰고, 중국은 이미 30년간 GDP 성장률이 매년 10~13%입니다.

    김일성이가 경제를 22%씩 성장시킬 때 박정희는 평균 8%도 못 미쳤지요.

     

    그러면 한국 경제발전은 누가 시켰는가?

    미안하지만 미국입니다.

     

    박정희의 경제실정을 보다 못한 미국이 한국이 곧 공산화 되면 일본이 위험해지고 결국 동북아에 미국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을 염려해서 대규모 경제자문단을 파견해서 박정희를 꼼짝 못하게 하고 미국의 지시대로 경제를 이끌어 준 것이지요.

     

    젊고 패기 있고 천재적인 대통령 케네디의 지시로 만들어진 한국경제개발 프로젝트를 설명한 프레이져보고서 그대로 적용한 것이 한국의 경제발전인 것입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민족문제연구소의 미국은 왜 박정희를 'SNAKE(스네이크) 박'이라 불렀나 http://cafe.daum.net/wonbulsatemple/c18o/251를 보면 상세히 알게 됩니다.

     

    첫째로는 3차에 걸친 경제개발5개년계획입니다.

    박정희는 이 프로그램이 장면정부의 것이라 무조건 반대하며 자기식대로 밀어붙였습니다.

     

    그의 수출전략이라는 것은 이쑤시개 토끼털과 생선 돼지고기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중장기적으로 경공업 중공업 제조업이 아니면 북한을 이길 수 없다고 설득하고 그래도 안 되자 원조를 끊었고, 결국 박정희가 손들고 미국의 지시를 따라 경중공업의 5개년계획들 받아 들였고...

     

    그 다음은 고환율정책으로 133원하던 환율을 300원으로 올려라는 것을 듣지 않은 박정희에게 9개월 동안 원조를 끊어서 굴복시켜 결국 255원으로 환율을 올렸는데, 그때부터 한국 수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133원일 때 수출기업이 1달러 팔아도 5원도 남지 않았지만 그 다음부터는 1000원어치 팔면 500원이 남는 장사였으니, 수출을 하려고 난리가 났고 결국 오래지 않아 수출 10억 달러(1조원)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박정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경제는 내가 하는 것 반대로만 하면 잘 되는구만..."

     

    그때부터 박정희는 한국 경제에는 아예 손을 떼고, 다니면서 사진만 찍었습니다.

    논두렁에 밀집모자 쓰고 막걸리나 마시는 사진 찍고, 공장에 다니면서 손가락을 달을 가리키면서 사진 찍고, 어디든 공사장마다 다니면서 사진 찍고... 밤이면 양주에 어린 연예인 끼고...

     

    선진국 어느 나라 대통령이 그런데 가서 사진 찍습디까?

    그런데 무식한 국민들은 박정희가 우리를 먹여 살린 줄 알아요...

     

    육영수는 무슨 돈으로 육영재단 만들었을까요?

    지 친정 일가친척들은 어떻게 해서 모두다 갑자기 대기업 회장이 되었을 까요?

    지 남편 독재에 민주화운동이나 큰 대모라도 벌어지면 그 다음날 고아원 양로원 가서 그윽한 미소 지으면서 사진밖에 안 찍었는데...

     

    수출만이 살길이다, 표창하고 연설하고, 경제가 우선이다면서 민주인사 간첩 만들고 사형시키고 독재에만 혈안이 되어 자기우상화를 전개해갔고, 병,씬 같은 서민들은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빠듯한 지 밥벌이에 정신 팔려 오늘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쿠테타 성공 다음 달 위대한 선각자 김지태씨의 서면땅 10만 147평을 강제로 빼앗아 착복하고, 다른 기업주들에게 정경유착하여 정수재단 육영재단 영남재단 한국문화재단 만들어 박근혜에게 물려준 것이 일설로 수십 조 원이랍니다.

    최태민 목사의 자식들이 모든 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는 것도 아실 것입니다.

     

    자신의 친인척과 처가 사돈의 팔촌까지 모두 대기업 재벌을 소유하도록 만든 장본인이 박정희지요.

    그 부하나 그 당 아래 모든 상위 1%가 한국 부의 65%를 점령하도록 만든 이 현실을 보면서도 무지랭이들이 박근혜를 찍어 줍니다.

     

    얼마전 박근혜의 5촌 조카 둘이 비명횡사했지요.

    박근영이 말로는 자기 남편을 죽이라고 박지만이가 두 조카에게 지시해서 고모부를 중국에 데리고 갔다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고백하고 돌아온 후, 박근혜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고모부의 증인을 서겠다고 증인신청한 다음 북한산성에 가서 하나는 칼로 찔러 죽이고 하나는 근처 나무에 목 매달아 죽었다고 경찰발표나자 바로 사건은 뭍혀버렸지요.

    그런데 그 조카들 둘 다 수면제를 먹었다는군요.

     

    기회주의 변절자 박정희가 그랬습니다.

    나이 23살이 되니 만주군관학교지원이 안되자 멸사봉공진충보국 혈서를 쓰, 이놈 됐다 싶어 하락하니 만주군관이 되고 13개월 장교로 독립군 소탕하고, 만주국 황제 부의로부터 표창까지 받고, 갑자기 해방되니 맨붕 상태로 북경 광복군을 찾아가니 장준하선생에게 혹독한 욕만 듣고 홀로 귀국한 다음 집안에 숨어 있는데, 이승만이가 친일 앞잡이들만 가려 국가 요직을 맡길 때, 다시 국군장교로 복무하다가, 북한은 토지개혁해서 지주들 논밭을 국가소유로 하고 농민들은 아무 걱정 없이 사는데, 남한은 미국으로 부터 받는 원조조차 모두 친일 앞잡이들에게 먼저 바쳐지니 국민들이 곧 반란을 일으켜 남한도 공산화되겠다 싶어 약삭빠르게 스스로 남로당에 가입하고 남조선노동당군사총책으로 임명받아 군내에 거대한 빨갱이 조직을 결성하고 김일성의 남침을 기다리다가, 우연한 편지 한 장으로 들통나자 즉결처분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천우신조로 만주군에서 함께 활약한 선배들이 그들 도와 살려주겠다고 나섰으니 그들에게는 친일의 동지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군내 빨갱이 조직을 밀고하는 것이었기에, 그가 지명한 100명이 넘는 자들과 이후 200명해서 300명 이상 즉결처분 총살당하고 결국 박정희는 사형을 면하고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제대했고, 실의에 술만 퍼 먹던 그에게 다시 기회를 준 것은 625로, 역시 친일선배들인 백선엽 김창룡 등이 그를 불러 다시 소령으로 전방도 아닌 후방에서 전공도 없이 무한 진급되는 아이러니가 그 시대 그들에게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후 돈 되는 요직 중에 요직인 부산군수사령부 사령관으로 복무하면서 후배군인들을 부추겨 516쿠테타를 벌인 것입니다.

     

    그 이후 친형 박상희가 선산경찰서를 점령하고 경찰들을 살해하기 직전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쫓겨 가다 논두렁에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었고 스스로 남조선노동당군사총책으로 활약하던 극악한 빨갱이가 왜 반공법을 만들어야 했는지, 31살의 조용수 민족일보사장을 왜 간첩죄로 사형시켰는지, 왜 친형 박상희의 친구이자 박정희가 친형처럼 따랐던 황태성을 총살했는지, 왜 사흘들이 무고한 사람들을 무슨무슨 간첩단사건이라며 수천 명을 간첩으로 만들고, 고문하고 사형시키고 망치로 머리를 때려 죽여야만 했는지....

     

    스스로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한국불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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