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최상석 사제 2012. 6. 6. 11:40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2012년 6월 3일(성삼주일, 환경주일) 요한3:1-17 이사6:1-9 로마8:12-17

 

오늘 우리는 환경주일로 지킵니다. 환경주일은 우리에게 우주와 온갖 피조물 그리고 우리의 소중한 생명(生命)주심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주일입니다. 환경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환경을 우리가 아닌 ‘그것(it)’ 혹은 ‘나를 위한 물질(物質)’로만 여기던 이분법적 자세와 물질주의적 생활태도를 돌아봅니다. 또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며 녹색마음과 녹색 삶 그리고 녹색 신앙의 회복을 다짐합니다.

신앙과 삶, 기독교 신앙인과 환경문제는 둘이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환경문제와 신앙은 별개라고 생각합니다. 신앙과 환경은 다른 분야이지만, 신앙인의 생활과 실천은 자연 환경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일상의 삶은 곧 신앙의 삶이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연 환경의 위기와 종교는 무관할 수 없습니다.

6월은 ‘세계 환경의 날’(World Environment Day)이 들어 있습니다. 1972년에 유엔총회가 6월 5일을 ‘세계환경의 날’로 지정한 이래 올해로 40회를 맞이합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환경을 위하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환경의 소중함을 자각하여, 친환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모으고 함께 축하 하자는 것이 그 취지입니다. 올해에는 브라질에서 환경의 날 행사가 열립니다.

자칫하면 ‘환경의 날’이 몇몇 기관이나 환경전문가들에 의하여 주도되는 요식적 행사이거나, 지구촌 지구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이루어지는 이른바 ‘그들만의 행사’가 될 우려도 다분합니다. 그러나 환경의 날이야말로 지구촌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국적, 민족, 종교, 이념을 떠나 ‘아름다운 지구별’과 그 안에 사는 ‘모든 생명의 풍성함’을 위하여 한 마음으로 참여하고 지혜를 모으고 기원을 담아내야하는 날이 되어야합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에는 약 70억 인구가 살고 있으며, 2050년에는 90억 명을 넘어설 예정이라 합니다.

환경주일을 맞이하여 친환경적 삶의 방식과 생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날 환경문제 해결은 정치, 경제, 과학, 소비, 가치관, 종교 등등 각각의 ‘부분체계’가 아닌 이들 모두를 포함하는 우리사회의 ‘전체 사회체계’ 와 관련하여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전체 사회체계로 풀어야 할 환경문제에 나는 어떻게 참여 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지구 환경문제의 근원적 해결은 ‘전(全)지구적으로’ 그리고 ‘전체 사회체계 안에서’ 일어나야 하지만, 그 시작은 ‘한 개인으로부터’ 그리고 ‘일상의 작은 실천으로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한다.’(Think Globally Act Locally) 는 환경운동과 시민운동의 고전적인 모토(motto)는 지금도 매우 유용하며 현실적인 표어입니다. 이 표어는 또한 환경뿐 아니라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매우 유용한 실천지침이기도 합니다. 신앙인은 넓고,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내 이익을 넘어 모든 사람의 이익을, 내 자녀를 넘어 모든 자녀를, 우리 민족을 넘어 모든 민족을, 우리 종교를 넘어 모든 종교로 넓어지고 깊어 져야 합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에서 성숙한 삶, 사랑과 진리와 함께 하는 맑고 따듯하며 선한 삶이 나옵니다.

다시 환경으로 돌아갑니다. 먼저 환경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요즘 환경오염, 환경위기, 생태계 파괴, 집중호우, 핵발전소 재난, 사막화, 지구온난화, 기상이변 등등 환경관련 용어가 일상화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엘니뇨(El Nino)나 라니냐(La Nina)처럼 해양학이나 기후학에서 사용하는 생소한 전문용어도 익숙해 있습니다. 그 만큼 전지구적 생태계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의 환경위기는 온갖 쓰레기와 오염물질 그리고 온실가스로 모든 생명의 터전인 지구의 땅과 물과 공기를 오염시킨 지구촌 모든 지구시민의 문제입니다. 물론 지구 오염물질의 약 80%를 배출하고 있는 경제 규모가 큰 약 20여 개의 국가가 더 큰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환경문제와 관련하여 식물이나 동물은 쓰레기를 만들지 않습니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쓰레기를 만듭니다. 인간 곧 우리는 쓰레기와 오염물질로 환경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가해자(加害者)이며 동시에 그 피해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환경문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요청합니다.

환경문제는 우리 삶의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자연자원을 통하여 얻는 에너지 소비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현재 우리의 삶은 지나친 소비를 추구합니다. 오늘의 문화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문화입니다. 필요 이상의 소비를 권하는 사회입니다. TV 방송의 대부분은 무언가를 사라는, 곧 소비하라는 광고로 채워져 있습니다. 유한한 지구의 자연자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삶의 방식은 결코 지속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과도한 소비와 편리를 추구하려는 욕심을 절제해야 합니다. 자연자원을 아끼고, 절약하고, 순환하여 쓰고, 녹색 에너지를 찾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미국 사회에 새로운 삶의 철학과 삶의 방식을 제공한 지구촌의 현인(賢人)인 스코트 니어링(Scott Nearing)이 몸으로 보여준 소박하고 단순하며 조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주목해야 합니다.

끝으로 환경의 날을 맞이하여 생명을 바라보는 마음, 곧 생명에 대한 영성(靈性)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와 존중 그리고 감사와 어울림(調和, 相生)이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창조주이신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이 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생명은 거룩하고 신비하며 소중합니다.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없습니다. 모든 생명은 서로 이어져 있습니다. 모든 생명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합니다. 생명에는 남이 없습니다.

환경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가 환경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임을 깊이 자성하고, 서둘러 친환경적인 삶의 방식으로 바꾸고, 지구별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 한 생명임을 깊이 깨닫는 가운데 소박하고 단순하며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은 녹색마음, 녹색문화, 녹색 삶, 녹색문명이 답입니다. 이제는 ‘나’ 혹은 '인간만의 웰빙‘이 아닌, 지구별에 사는 ’모든 생명의 웰빙'(Well-being of Earth and Humans)을 위하여 살아갈 때입니다.

 

오늘은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어느 날 밤 니고데모라는 유다의 지도자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는 이른바 집안 좋은 명문가문이요, 재산도 많은 부유한 집안의 사람이었습니다. 학벌도 좋아 당대의 지식인요 석학이었습니다. 산헤드린 멤버로 오늘날 국회의원 격에 해당되는 사회적 지위를 가졌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눈에 띄기가 부담스러웠는지 어느 날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랍비 곧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하느님 나라 진리에 대하여 예수님과 몇 차례 선문답(禪問答) 같은 대화를 주고받지요. 여기서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물은 질문입니다.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매우 중대하고 심오하며 근본적인 갈망을 담고 있는 질문입니다. ‘태어난다’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이런 질문을 하지요, ‘만약 당신은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아내(남편)와 결혼 하겠습니까’, 특별히 아내나 남편이 옆에 있을 때에는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저도 이런 질문을 몇 번 받았습니다. 특별히 아내가 있을 때 이런 질문을 받았지요. 많은 생각을 해야 할 질문입니다. 옆에 아내가 있는데 아니오(no) 라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전에 한국의 어느 결혼문제 관련 기관에서 이 질문으로 여론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을까요? 남자는 약 60%가 ‘예’라고 했는데, 여자는 약 40% 정도만이 ‘예’라고 대답 했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도 한번 묻겠습니다. “만일 다시 태어나면 지금의 아내와(남편과) 또 결혼하겠습니까?” 대답 안하셔도 됩니다. 그러나 한번 쯤 깊이 생각해 볼 질문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이번에는 꼭 의사 표현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만일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나로 그대로 다시 태어나고 싶으십니까?” 손들어 보세요.

어떤 생명으로, 어떤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태어난다는 ‘탄생 혹은 출생’ 그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를 매우 좋아합니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바람이 불고, 천둥이 일고, 봄이 오고, 소쩍새가 울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억겁의 세월을 담은 우주가 합작해서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운다는 이야기지요. 시인은 한 송이 국화 꽃 안에서, 하나의 태어남을 통하여 온 우주를 보지요. 한 존재 혹은 한 생명의 태어남은 이처럼 복잡하고 신비하며 우주적입니다.

예수께서 태어남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누구든지 새로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헬라어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는 태어남을 말씀하실 때 사용한 단어는 아노덴(anothen)입니다. 이 말은 위로부터(above) 난다, 다시(again) 난다, 새로(anew) 난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아노덴’이라는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는 위로부터 혹은 새로 태어난다는 것을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예수께 묻지요, 다 자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아노덴’의 의미를 설명해 주십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어머니의 몸을 빌어 몸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그 마음이, 그 정신, 그 영혼이 새로 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늘로부터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니고데모의 생각은 다시(again) 태어나는 것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영적으로 그리 큰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에 태어난 100년을 살다가 죽고, 다시 그 마음 그 생각 그대로 다시 태어나 100년을 살고 이것을 계속 반복한다는 것은 영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예수께서 말씀하신 아노덴 어떤 뜻인가요? 이것은 세례 곧 새로운 회개의 결단과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이 새로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으로 우리의 존재가 다시 새로워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우리의 몸은, 우리의 유전자는 이미 바꿀 수 없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성형은 진정한 바꿈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과 정신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습니다. 몸은 부모님이 지어주시는 것이지만, 마음은 내가 지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이 마흔이 넘으면 얼굴의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합니다. 얼굴의 눈 코 입은 부모가 주셨지만, 풍겨 나오는 인상은 내가 만들어 냅니다.

새로 태어난 사람은 말씀과 성령 안에서 마음과 생각이 다시 빚어지는 것입니다. 마음과 정신이 새롭게 바뀌는 것이요, 새롭게 지음 받는 것입니다. 존재가 바뀌면 먹고 사는 양식이, 육의 양식에서 영의 양식으로 곧 삶의 에너지가 바뀌는 것입니다. 새로 태어난다는 말음 또한 가치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우(上)로부터 태어남은 존재의 중심이 바뀌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과 방식이 바뀌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자아상이 바뀌는 것입니다. 자아상이 부정적인 자아상에서 긍정적인 자아상으로 바뀝니다. 나는 부정한 사람, 불행한 사람에서 나는 할 수 있는 사람, 나는 행복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늘 보좌를 목격한 이사야의 변화된 모습에서 이러한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 그는 ‘나는 부정한 사람’이라는 생각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체험 한 후에 그는 긍정의 사람으로 바뀝니다. “저를 보내 주십시오.” 나의 존재가 바뀌는 것입니다.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땅의 사람에서 하늘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 태어나는 것은 내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부모의 도움이 있어야 태어나듯이, 태어남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자력 탄생은 없습니다. 모든 탄생은 타력탄생입니다. 새로 태어나는 것, 위로 나는 탄생은 물과 성령의 도움이 있어야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나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으로 살겠다는 회개의 세례와 진리의 말씀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축복의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업자 정보 표시
| | | 사업자 등록번호 : -- | TEL : -- | 사이버몰의 이용약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