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최상석 사제 2012. 8. 1. 11:42

                                             인생의 궁극적 필요(必要)

                                               2012년 7월 29일(연중17주) 요한6;1-21 사무하11:1-15 에페3;14-21 시편14

 

    요즘 한국에서는 여당과 야당 그리고 무소속을 대선예비 후보자들이 예비선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언론에 사진을 찍어 알리고, 후보자 연설을 하고, 자신의 정책과 선거공약을 조금씩 선보이고 있습니다. 자신을 알릴뿐 아니라 유권자의 마음 곧 민심을 정확하게 헤아려 그 민심에 부합하려고 굉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선거에 임하는 후보자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의 정책과 비전을 유권자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권자의 마음 곧 민심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민심이 무엇을 원하는지, 유권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시대의 정신을 파악하는 일입니다. 한마디로 유권자의 가장 절실한 요구가 무엇인지, 시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요구(need)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대선 후보자들의 슬로건(slogan)을 보면 국민의 요구나 시대정신을 얼마나 잘 파악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 김문수 후보는 ‘마음껏! 대한민국’, 임태희 후보는 ‘걱정 없는 나라’, 김태호 후보는 ‘정치의 세대교체’,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는 ‘사람이 먼저다’, 손학규 후보는 ‘저녁이 있는 삶, 마음 편한 세상’, 김두관 후보는 ‘내게 힘이 되는 나라, 국민아래 김두관’, 무소속 안철수 후보는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정의, 복지, 평화’ -을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슬로건이 마음에 드십니까? 각 후보의 슬로건은 나름대로 지금 유권자와 시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후보자로서 유권자와 오늘의 시대가 참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정확한 요구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합니다.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세상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필요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나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나의 궁극적 필요를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 이야기를 통하여 궁극적 필요에 대하여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요한복음서에 나오는 말씀은 갈릴래아 호숫가 산등성이에서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어른들 오천 명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고도 남은 기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병이어에 대한 기적은 네 복음서가 모두 기록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만큼 기적의 의외성과 초월성이 예수 공동체에 강력하게 남아있고, 기적의 의미가 초대교회 공동체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 당시 너무 강렬하여 결코 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너무 합리적으로 해석하여 먼저 자신의 도시락을 내 놓은 한 어린아이나 제자들을 보고 사람들이 아껴 두었던 혹은 어물쩍 자신의 짐 속에 감추어 두었던 자신의 도시락을 열어 서로 나누어 먹은 기적으로 해석합니다. 비록 자발적 나눔의 강력한 폭발성이나 나눔의 중요성을 부각 시킬 수 있는 매우 교훈적인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는 요한복음 기자가 전하는 복음의 상황에는 맞지 않는 듯합니다. 더구나 예수님 앞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도시락조차 기꺼이 내놓으려하지 않는 매우 이기적인 사람들로 만들어 버릴 여지를 담고 있는 해석입니다.

 

   또 어떤 신학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예전적으로 축소하여 해석하여 오늘날 교회에서 영성체 하듯이 빵을 조금씩 떼어 나누어 먹는 성만찬의 기적으로 해석하려 하기도 합니다. 이 역시 요한복음서를 쓴 기자의 의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야기는 분명 기적 이야기이고 그러기에 이 말씀은 기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턱없이 적은 빵으로 어떻게 수천 명이 먹었는지를 수고롭게 혹은 친절하게 일일이 합리적인 방법이나 과학적인 논리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말씀입니다.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신 기적도(루가복음서에만 나오지 않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합리적인 해석이나 과학적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함께하신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으로 이해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요한복음서 기자는 오병이어를 분명 하느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기적”으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출애굽 시대에 광야에서 모세가 하느님께 기도하여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을 것이 없어 고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식량 문제를 해결한 기적을 연상시킵니다. 즉 출애굽시대에 모세가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의 배고픔을 해결하여 주었듯이, 예수님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굶주린 하느님 자녀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 기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중들로부터 다시 한 번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된 하느님의 예언자 곧 메시야로 들어나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요한6:14)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오해하고 억지로라도 왕으로 삼으려하기도 하였습니다.(6:15) 여기까지는 요한복음서가 전하는 오병이어의 기적 이야기가 다른 복음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병이어의 기적이 지닌 의미에 대하여 요한복음서 기자의 해석은 다른 복음서와 구별됩니다. 오병이어 기적의 진정한 의미는 단지 육신의 배고픔을 위한 기적이 아니라, 영의 양식 곧 생명의 양식을 깨닫게 하려는 기적이라는 것이지요. 이 말씀은 바로 뒤이어 나오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지금 나를 찾아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 이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에게 그 권능을 주셨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 (요한6;26-27)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 기적의 참 뜻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요한복음서 기자는 예수께서 떡 다섯 덩이어리로 수천 명을 배부르게 먹이는 기적을 베푸셨지만, 주님이 기적을 베푸신 것은 단순히 육체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만일 육체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기적의 목적이라면 예수님은 가시는 곳마다, 혹은 배고픈 자를 만날 때마다 수시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여 육체의 굶주림을 해결 해 주셔야 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서는 오병이어를 ‘육체의 양식’ 이라기보다는 하늘의 양식 곧 ‘생명의 양식’을 내려 주시는 기적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곧 오병이어 기적의 참뜻은 바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주시는 빵이 진정한 생명의 빵이요(요한6:32), 하늘에서 내려온 예수가 곧 영원한 생명의 양식임을(요한 6:35, 41)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참 뜻은 일시적 배고픔을 해결한 일종의 육신의 민생고(民生苦)를 해결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곧 하늘로부터 내려 온 생명의 양식임을 드러내는 영적, 신비적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병이어는 곧 예수께서 그리스도요, 생명의 양식으로 자기 자신의 본질을 드러낸 결정적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기적의 목적은 기적 그 자체가 아닙니다. 기적은 자신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기적을 목적으로 하는 기적은 기적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오는 기적을 대할 때 기적의 초월성에 관심을 두기보다- 기적이 상식적으로 세상에서 과학적으로 재현 가능한 가 여부에 관심을 두는 것도 아니고- 기적이 담고 있는 기적의 진정한 의미를 보아야 합니다. 기적에서 그 기적이 의미하는 참 뜻을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기적은 육신의 시력(視力)이나 과학의 눈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기적은 ‘믿음의 눈’으로 보아야 보이는 것입니다.

 

   참으로 필요한 궁극적 필요 역시 저절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대개 현상적 필요(必要)에 매몰되어 참으로 필요한 것을 모르며 살아 갈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보통 목이 마르면 물을 생각합니다. 배가 고프면 밥을 생각합니다. 몸이 아프면 빨리 낫기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라면 현상적 필요를 넘어 궁극적 필요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요한복음서의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육체의 일시적 배고픔을 해결하는 육의 양식을 넘어, 인생의 궁극적 필요인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보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에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태6:31) 이 말씀은 곧 그 때 그 때의 현상적 필요에 매몰되어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현상적 필요가 무엇인지 바로 알아야 되겠지만, 여기에 매몰되어 살지 않아야 합니다. 현상적 필요에 매몰되어 살면, 자신의 몸을 위한 식의주(食衣住)만을 의식하며 살면 늘 부족함 가운데 살게 됩니다. 우리 일상의 살림살이는 대개 늘 부족하고 늘 무언가를 필요로 합니다. 상대적으로 연봉(年俸)을 꽤나 받는 사람에게 물질적으로 풍족하냐고 물어보면 그래도 부족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현대인은 늘 무언가를 채워야 할 것이 생깁니다. 그러다 보니 늘 무언가를 구하게 되고, 무언가를 필요로 하게 되고, 무언가가 부족하다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결국 일생을 결핍을 느끼며, 결핍(缺乏)의식 속에 살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하느님의 자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삶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곧 의식주나 일시적 필요에 매몰된 삶을 넘어 궁극적 필요를 생각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일시적 필요나 현상적 필요를 넘어 나의 인생에서 참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내 인생의 궁극적 필요는 무엇입니까? 아직도 이름 석 자 명예입니까? 아직도 재산이나 돈입니까? 아직도 바람처럼 흘러가는 육신의 젊음입니까? 아직도 일시적 필요를 위한 이런저런 생활용품들이나 가구들입니까? 썩어 없어질 몸을 치장할 옷이나 썩어 없어질 몸을 위한 기름진 양식입니까?

 

   예수께서는 우리 인생의 궁극적 필요에 대하여 여러 번 말씀하십니다.

   궁극적 필요란 곧 먼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는(마태 6:33) 삶을 사는 것입니다. 궁극적 필요한 또한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쓰는(요한6:27) 삶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구해야 할 궁극적 필요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는 것이요,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하늘 양식을 의미 합니다.

 

   다시 풀어 말하면 궁극적 필요의 첫 번 째는 우리의 생명과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없는 삶은 생각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필요로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모든 필요의 근원이십니다. 하느님이 계시기에 우리에 일상의 필요도 생겨나는 것입니다.

궁극적 필요의 두 번 째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자비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요 용서요 오래 참으심입니다. 공기 없이 생명을 살 수 없듯이, 하느님의 자비 곧 사랑과 용서 없이는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궁극적 필요의 세 번째는 하느님이 지으신 모든 이웃들과 피조물과 함께 살아가는 ‘섬김과 평화’의 삶입니다. 우주는 하루도 쉬지 않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섬김을 통하여 우주가 존재합니다. 하늘과 땅은 서로를 섬기고, 낮과 밤 역시 서로를 섬기며, 있음(有)과 없음(無) 역시 서로를 섬깁니다. 섬김과 조화와 평화는 우주와 인간 세상의 존재 원리입니다.

 

   오늘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하여 일시적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궁극적 필요인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일시적 필요에 눈멀지 않고, 급급한 현상적 필요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도록 인도하며, 영원히 살도록 안내하는 인생의 궁극적 필요를 구하며 사는 여러분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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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