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최상석 사제 2012. 8. 22. 02:17

 

 

                                                                              신앙의 목적

                                              2012년 8월 5일(연중18주) 요한6;24-35 사무하11;26-12;13 에페4;1-16

 

시중에 로또(lotto)라는 복권이 인기입니다. 길을 가다보면 각종 복권을 파는 복권방이라는 곳을 볼 수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꾸준하게 혹은 성실하게 노력하여 돈을 벌고 성공하려는 사람들보다 작은 노력으로 일확천금(一攫千金)을 누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그 어떤 기적(奇蹟)이나 요행(僥倖) 등 인생 대박을 바라는 서민들 마음의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복권의 유래를 보면 원래 복권이 처음부터 큰 요행이나 대박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고대의 역사를 보면 도시를 세우거나 만리장성 같은 큰 건축물을 세우기 위한 경비 마련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혹은 여러 명 가운데 제비뽑기로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적임자를 선출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47년 런던 올림픽 참가경비 마련을 위한 올림픽후원권, 1956년 전쟁 복구를 위한 애국복권, 1967년의 서민 주택 건설을 위한 주택복권 등이 복권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본래의 복권의 목적은 모두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고 이러한 일에 동참하려는 선한 마음에서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은 복권 본래의 목적보다는 요행이나 행운으로 인생 대박을 노리는 도구로 변질 되었습니다.

  

일상의 삶에서도 본래의 목적을 잊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면 점점 화려해지고, 거창해지고, 위선적으로 되고, 퇴색하게 되고, 타락하게 되고 결국은 망하게 됩니다. 백성을 생각하며 검소하게 사는 왕이 있었다지요. 어느 날 총애하는 신하가 왕에게 이웃 나라에서 만든 최고급 금 수저와 금 대접을 바쳤답니다. 그러자 왕은 그것을 물리고 예전처럼 놋쇠 그릇과 놋쇠 젓가락을 가져오게 하여 식사를 마쳤습니다. 선물을 한 총애하는 신하가 임금님 어찌하여 저 좋은 금 수저와 금 대접을 물리시고 놋수저로 음식을 드셨습니까? 그러자 임금이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마음은 고맙소, 하지만 만일 내가 금 수저로 밥을 먹으면, 이내 곧 금 수저에 어울리는 화려한 음식을 만들어 올려야하고, 화려한 음식이 올라오면 다음에는 수라상(床)도 금 그릇에 어울리게 크고 화려한 상으로 만들어야하고, 상이 크고 화려해지면 이 방의 가구들도 비싸고 화려한 가구들로 바꾸어야 하지 않겠소? 나중에는 식당도 궁궐도 더 크게 지어야 하고, 결국 금 그릇 하나 때문에 백성들의 삶이 더 고단해 지지 않겠소? 나는 그것을 두려워하는 바이오” 일상 속에서 작은 것 하나에도 그 본래의 목적을 잊지 않는 지혜로운 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도 본래의 목적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신앙인은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몇 년 전 릭 워렌 목사님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 우리 사회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습니다. 릭 워렌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삶의 목적을 다섯 가지로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1.우리는 하느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

2.우리는 하느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3.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4.우리는 하느님을 섬기도록 지음 받았다

5.우리는 사명을 위해 지음 받았다.

 

인생을 살면서 또는 자신의 일들을 해 나가면서 자신과 자신이 하는 일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목적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먼저 목적은 우리 인생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합니다.

해양학자, 수영선수, 어부, 화가 등 여러 사람이 바닷가를 갈지라도 그 행동은 다 다릅니다. 누구는 연구를 하고, 누구는 수영을 즐기고, 누구는 고기를 잡고, 누구는 그림을 그립니다. 왜 이렇게 서로 다릅니까? 바다에 간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목적은 인생의 역경과 고난 가운데 이길 기운을 가져 옵니다.

위대한 인물들의 생애를 보십시오. 무엇이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로 하여금 그런 큰 일을 하게 했습니까? 그들이 큰 업적을 남긴 비결이 무엇입니까? 분명한 목적의식 혹은 확고한 사명감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19살 때 뉴올리언즈의 노예 매매 시장에서 흑인 노예들이 짐승처럼 매매되는 처참한 비극을 보고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언가 때가 오면 저 놈의 제도를 힘껏 때려 부수겠다." 그는 노예 시장의 비참한 상황을 보고는 자신의 사명 곧 자신의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명감과 목적의식이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후에 노예해방의 위대한 일을 성취시키게 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목적은 시련과 고난 가운데 다시 일어설 힘과 용기를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주님 안에서 목적을 분명히 하고 새롭게 해야 합니다. 분명한 목적의식 없이는 역경에서 일어 설 수 없습니다. 또한 목적이 새로워지지 않고는 결코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오병이어 기적 후에 많은 사람들이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신 예수님을 찾아오자 예수께서 조금은 퉁명스럽게 물으십니다. “정말 잘 들어라, 너희가 이렇게 나를 찾아 온 것은 내 기적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부르게 먹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썩어 없어질 세상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썩지 않는 양식을 얻기 위하여 힘쓰라 하십니다.

신앙의 목적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왜 주님에게 나오십니까? 왜 주일마다 경건한 마음으로 주일 미사를 드립니까?

단지 세상에서 먹고 마실 세상의 양식 때문입니까? 건강 때문입니까? 가족이나 자녀의 문제입니까? 이러한 것은 우리를 주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는 신앙의 동기(動機)는 될 수 있지만 목적(目的)은 아닙니다. 우리는 신앙의 동기에서 더 나아가 신앙의 목적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의 목적은 세상의 양식에서 하늘의 양식어야 합니다. 일상의 크고 작은 문제 해결에서 궁극적 문제해결로 나아가야 합니다. 생로병사를 넘어 인생의 모든 문제로부터의 구원(救援), 인간적 한계를 넘어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닮아 가는 것 그것이 우리 신앙의 목적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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