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최상석 사제 2012. 2. 22. 12:18

 

 

                                                                모든 인생은 치유(治癒)를 필요로 합니다.

                                                                           (Everyone needs Healing)

 

2012 2 12(연중 6주일) 성공회 워싱턴 한인교회 첫예배,                            마르코 1:40-45  열왕하 5;1-14   1고린9:24-27

   오늘 성공회 워싱턴 한인교회 첫 예배를 드리는 기쁨과 감사의 자리에 함께 하여 주신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이 거룩한 예배의 자리에 참석한 우리 모두 위에 주님의 은총과 평화,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위로 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 동안 전화도 드리고, 이메일도 보내드리고, 직접 만나 뵙기도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제가 미국에 와서 처음 만나 본 분들입니다. 여러분이 미국에서 저의 첫 사람이십니다. 참으로 소중한 인연이고 반가운 얼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서 뵙게 되니 더 반갑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그전보다 더 예쁘고, 멋있고, 품격이 있어 보이십니다. 요즘 한국 젊은이들 말로 있어보이십니다. 꽃은 화초나 나무에 붙어 있어야 예쁘고, 군인은 제복을 입어야 멋있습니다. 주님의 자녀는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멋 있고 아름답습니다.

그 동안 우리 교회는 지난 1월부터 수요일 저녁에 기도모임을 가져 왔습니다. 이제 처음 주일예배를 드림으로, 교회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생 교회를 오래 다녀도 기존 설립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분들은 많지만, 이렇게 처음 시작하는 교회에서 첫 예배를 드리는 신자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은 오늘 매우 뜻 깊고, 중요한 자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여는 역사의  첫 페이지를 만들어 가는 자리에 앉아계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교회를 운영해 갈지, 교회의 방향에 대하여 간단히 소개를 드리고,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이 곳에 오니 많은 분들이 이곳 워싱턴에 이미 400여 개의 교회들이 있는데 뭐 하러 오셨습니까 하고 물으십니다.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와 서울교구, 그리고 미국의 워싱턴교구의 생각은 다릅니다. 이미 400여 개의 교회가 있지만 한인 교포들이 몇 십만 명 사는 이 넓은 곳에 성공회는 버어지니아주 지역에 두 개 남짓합니다. 이 지역의 교회들도 한국교회처럼 개신교와 천주교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서로 자신들의 예배와 교회모습만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같은 개신교와 천주교는 같은 기독교임에도 서로 가깝지 않습니다. 같은 주님에게 받은 같은 영성임에도 마치 다른 영성인 양 서로 받아들이기를 힘들 합니다. 요즘 교회를 알리는 포스터를 붙이는데, 붙이고 다음주에 가보면 누가 떼 버려 없어집니다. 그 자리에 다른 교회 포스터가 붙어있습니다. 교회가 교회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일부 극성스러운 교회 이겠지요. 그러나 이게 우리 교포사회 교회의 현실입니다. 한쪽은 개교회주의를 강조하며 말씀 위주와 개별적 영성을 강조합니다. 다른 쪽은 교회의 직제를 강조하며 성사와 미사중심의 영성을 강조합니다. 서로를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협력적 존재로 보기보다는 경재 상대로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 여기서 시작하는 교회는 400여 개 교회와 다른 성공회 워싱턴 한인교회입니다.

성공회는 자신만을 완전한 교회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는 완전하시지만, 이 세상에 완전한 교회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개신교, 천주교 어느 한 교회가 세상의 진리를 모두 소유했다고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마찬 가지로 지구상에서 어느 종교도 혼자 모든 진리를 다 가졌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성공회는 다만 주님 안에서 완전한 교회로 나아가려는 교회라고 말합니다. 성공회는 기독교의 모든 형제교회를 존중하며, 형제교회로 여기며, 서로에게 배우려는 교회입니다.

성공회는 세가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입니다. 첫째 무엇보다 성서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둘째 초대교회로부터 이어 온 교회의 전통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세 번 째로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신 인간의 이성을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개인의 영적 체험이나 신앙적 확신을 존중하지만, 그 것이 교회공동체 안에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하여 공동체 안에서 식별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입니다. 성공회는 개신교와 천주교 양극단이 보여주는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서로의 다양성과 다름을 존중하는 가운데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을 따라 가는 교회입니다.  성공회의 특징은 Via MEDIA WMR 중용적, 포용적 진리 추구방식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러한 정신에 입각하여 한인 사회에 복음을 선포하고, 한인 사회와 지역사회를 섬기며, 초대교회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전통에 입각한 교회를 만들어가고,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하여 기도하고 우리의 사회가 그러한 세상이 되도록 실천해 가며, 지구 생태계 위기 속에서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보전하고 모든 생명과 더불어 사는 생명존중을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앞으로 우리교회가 이러한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여 주시고, 우리교회가 한인 사회에 복음을 전하고 섬기며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올바른 교회상을 만들어 가는데 함께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모든 인생은 치유(治癒)를 필요로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복음은 나병환자가 주님께 나아와 깨끗이 나은 치유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에게 나아와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합니다. “저를 깨끗이 고쳐주십시오.” 주님께서는 이 나병환자에게 손을 갖다 대시어 그를 깨끗이 낫게 하셨습니다. 나병(癩病)은 한자어 이름이며, 우리말로 문둥병(leprosy) 보통 병명으로 한센씨 병(hansen's disease)이라고 합니다. 나병은 예수님 당시 불치의 질병으로 여겨졌습니다.  또한 하늘이 죄를 지은 자에게 내리는 천벌인 천형(天刑)으로 여겨졌습니다. 그 당시 나병 환자는 육체적 고통과 함께 더 고통스러운 정신적, 사회적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율법적인 제재를(레위기13)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그 불치의 질병이, 하늘이 내린 천형으로 앓던 나병이 오늘 주님의 말씀 한마디로 깨끗이 나은 것입니다. 치유의 기적이요, 치유의 축복을 받은 것이지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서 치유 받아야 할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설교 제목을 모든 인생은 치유를 필요로 합니다.’로 정했습니다. 영어로는 Everyone needs Healing 입니다. 여러분 모든 인생은 주님 안에서 치유를 필요로 합니다. Healing이 필요합니다. 병원이나, 의사 앞에 가는 사람들이 모두 치료 받으러 가듯이 주님 안에서 우리는 치유적 존재입니다. 나는 지금 건강한데, 나는 지금 꽤 괜찮은 인격인데, 나는 지금 세상에서 잘 나가는데, 내가 무엇이 부족해서 치유를 받아야 해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안에서 치유가 필요한 치유적 존재입니다. 이 말을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이가 60이 되어도 연로하신 부모님 앞에서는 어린 자녀이듯이, 우리가 세상의 학력이나 사회적 경력이나, 육체적 건강지수가 아무리 높아도 주님 앞에서는 어린이요, 치유적 존재입니다. 즉 유한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그 누구도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것은 제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마태오복음 19 17절에,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에게 나아와 묻습니다. “선생님, 제가 무슨 선한 일을 헤야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왜 너는 나에게 와서 선한 일에 대하여 묻느냐?” 선하신 분은 오직 한 분 뿐이시다.” 선하신 분, 완전하신 분은 하느님 이 외에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서 부족합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서 치유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서 치유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나올 때에는 오늘 나병환자처럼 가난한 마음, 겸손한 마음 자신의 부족과 단점을 치유 받으려는 갈급한 마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이 것이 가난한 마음이요, 겸손한 마음이요, 온유한 마음이요, 텅 빈 마음입니다. “주님 저는 치유적 존재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나를 괴롭혀 온 육체의 가시들이, 내면의 결점들이, 인격적 결함들이, 잘못된 습관들이 주님 안에서 깨끗이 치유되는 치유의 은총과 기적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혹시 아직도 주님 안에서 치유적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분이 계신지요? 누구나 치유적 존재로서 자신을 인정하기보다는, 자신의 능력이나 인격이나 인생의 경험을 더 내세우고 싶어합니다.  오늘 1독서 열왕기 하에 나오는 시리아 장군 나아만이 그러한 사람입니다. 그는 전쟁터에 가기만 하면 이기고 돌아오는 시리아 최고의 장군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나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병을 고치려고 부하들을 데리고 마차를 몰고 위세를 갖춘 채 예언자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직접 나가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 요르단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씻으면 몸이 깨끗해 질 것이라는 말을 전 합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크게 화를 내며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는 나병에 걸린 몸은 가지고 왔지만, 치유가 필요한 마음은 가지고 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는 하느님의 사람 앞에서 자신이 몸뿐 아니라 마음과 삶에 치유가 필요하다는 치유적 존재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듭된 부하들의 간청에 마음을 돌렸습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사람 앞에서 대국의 장군이 아니라 하나의 연약한 치유적 존재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 마음이 그를 결국  요르단 강물에 일곱 번 몸을 씻게 했고, 마침내 나병 걸린 몸이 어린애 피부처럼 깨끗해 지는 치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주님 안에서 연약한 치유적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을 신학적으로 수동(受動)의 영성이라고 합니다. 능동과 반대되는 수동의 영성이란 오늘 나병 환자가 보여준 가식 없는 겸손과 가난한 마음과 간절한 희망을 의미합니다. 치유는 근본적으로 수동(受動)의 영성을 필요로 합니다. 온전한 치유는 마음에서 받아들임, 비움, 낮춤이 있어야 일어납니다.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혈기를 버리고, 고집을 버리고, 자존심을 버리고, 안 된다는 부정적 생각을 버리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치유란 내가 무엇을 하는 게 아니라 가난한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무릎 꿇을 때, 나를 버리고(無我) 낮아질 때, 욕심과 혈기를 내려 놓는 빈() 마음의 상태 일 때, 그 때 주님이 역사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치유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주님 안에서 치유의 축복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나병환자에게서 불치의 나병이 물러가듯이, 주님 앞에서 치유적 존재임을 고백하는 여러분 위에, 우리 몸에 붙어 있는 불치의 질병이 사라지는 육체적 치유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 붙어 있는 미움이나 원망, 분노와 절망, 부정적인 생각이나 고쳐지지 않는 나쁜 습관들에서 모두 깨끗해 지는 정신적, 영적 치유의 은총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이면 치유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오늘 주님께서 나병환자를 고치시고 아주 엄하게 이르시기를 사제에게 가서 율법대로 예물을 바치고 네 몸이 깨끗해진 것을 증명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성전으로 가기도 전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해서 주님이 꽤 어려움을 당하셨습니다. 먼저 사제에게 가서 몸이 깨끗해진 것을 증명하라는 말씀은 이제 육체적 치유도 되었으니, 어서 가서 다시 새 사람으로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사회적 치유도 완성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주님 안에서 일어나는 치유는 단순한 치유가 목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치유는 더 건강한 사람, 더 좋은 사람, 더 행복한 인생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치유는 더 새로운 사람, 더 행복한 인생의 과정입니다. 우리가 형편없는 사람, 문제가 있는 사람이어서 치유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더 새로운 사람, 더 행복한 사람, 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치유가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일어나는 치유는 좋은 것이며, 축복입니다. 우리 인생에 반드시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날마다 육체, 마음, 믿음, 인격, 습관 모든 면에서 치유의 축복이 있기를 다시 한번 축복합니다.         

 

모든 인생은 주님 안에서 치유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치유적 존재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궁극적 치료의 근원이시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영원한 의사이신 주님 안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치유되고 새로워지고 행복해지는 치유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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