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최상석 사제 2014. 1. 1. 10:05

 

 

 

                                                           거룩한 성탄, 거룩한 참여

                           2013년 12월 22일(대림4주) 마태1;18-25 로마1:1-7 이사7:10-16

 

대림절 4주입니다 우리는 4주간의 대림절 기간 동안 메시아의 탄생 곧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주님을 맞이할 영적 준비를 해왔습니다. 이제 화요일 저녁이면 성탄절이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말씀은 성탄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경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위는 과정이나 경로를 의미합니다. 경위라는 말을 영어로는 how it started, details, story

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먼저 성탄시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어둠에 깊이 싸인, 그 밤에 빛이 오셨네, 세상을 비출 큰 빛이 오셨네

모두가 잠든, 그 밤에, 왕이 오셨네, 천지를 다스릴 만왕의 왕으로 오셨네

아무도 모르는, 그 곳, 그 마구간에, 속죄의 어린양 예수님 오셨네

아무도 모르는, 그 때, 그 시간에, 깨어있는 사람들만이

구세주의 오심을 보았네! (공두훈님의 예수님이 오실 때라는 시입니다.)

 

세상은 교회보다 훨씬 먼저 성탄절이 시작됩니다. 백화점이나 상점가나 거리나 방송은 이미 성탄 분위기가 한창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 성탄절이 화려하고, 상업적이고, 연말연시 선물을 주고받고, 공휴일 휴가를 즐기는 세속적인 성탄으로 변질된 면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상업화된 성탄절이 아닌 성탄 본래의 의미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해마다 성탄이면 더욱 경건한 자세로 기쁨과 감사, 겸손과 자비의 마음으로 세상에 빛이요, 평화요, 사랑이요, 진리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의 의미를 되새기고,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도록 성탄 본래의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입니다.

 

성탄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는 예수의 오심으로 내 안에, 우리 안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고, 사납고 어두운 세상에서 어둠과 폭력이 물러가고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분단된 한국을 고국으로 둔 한인으로서 상호 불신과 대결적 긴장이 가득한 남한과 북한에 상호 신뢰와 화해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해야합니다. 미국에 사는 한인으로서 미국이 국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윤리적으로 모든 면에서 다른 나라의 모범이 되는 더 아름답고 더 정의로우며 더 따듯한 나라기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신자유주의나 힘의 논리에서 오는 국제간 부의 불평등, 폭력과 전쟁, 생태계 파괴로 달려가는 지구촌 모든 국가들 안에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과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마태오 복음서 1장에는 예수님의 탄생에 얽힌 내용이 나옵니다.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아직 함께 살기 전에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 하였다고 복음서는 말씀합니다. 여기서 마태오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은 날 때부터 보통 사람들과 달리, 비보통적으로(extraordinary) 태어났다 하는 점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매우 특별하게 이 세상에 오셨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성령잉태의 과학적 가능성 여부는 마태오의 관심이 아닙니다. 마태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수께서 하느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곧 성령의 도우심으로 마리아와 요셉을 통하여 전적으로 하느님의 신비 가운데 사람으로 몸으로 곧 아기 예수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탄의 가장 큰 기쁨, 가장 큰 선물, 가장 중요한 핵심은 하느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단순히 기독교의 창시자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평화의 왕이요, 영원한 진리요, 영원한 생명이요, 영원한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아기 예수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성육신적 진리가 드러난 났다는 것입니다.(마태1;23)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출생을 일반적인 출생이 아니라 거룩한 탄생은 곧 성탄(聖誕)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온 세상에 모든 사람들에게, 오고 오는 모든 시대 속에서 진정한 기쁨이요, 은혜요, 감사가 될 수 있습니다.

마태오 기자는 어떻게 이처럼 놀랍고 거룩한 성탄이 어떻게 마리아와 요셉을 통하여 이루어졌는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 평범한 사람 요셉이 선택 되었는지, 왜 하필 시골 처녀 마리아를 선택하셨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왜 하필 결혼 후 출산이라는 자연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을 통하지 않고, 정식 결혼을 하기도 전에 성령을 통하여 기이하게 잉태하게 하셨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시 세상에서 별로 주목 받지 못하는 무명에 가까운 평범한 두 처녀와 총각을 통하여 아기 예수께서 태어나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은 어떻게 하여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는 평범한 마리아와 요셉이 거룩한 성탄에 참여하는 거룩한 참여자가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이점에 대하여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마리아와 요셉의 순종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루가복음에는 여성인 마리아의 순종이 강조되어 나타납니다. 마태오 복음에는 남성인 요셉의 순종이 강조되어 나옵니다. 오늘 복음서를 보면 마리아가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도 전에 아기를 갖은 것이 들어 났습니다. 요셉은 너무나 놀랍고 당황하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조용히 파혼하고자 합니다.

 

요셉은 가장 쉬운 방법을 찾습니다. 결혼 전 함께 자기도 전에 배우자가 아기를 갖았다는 소식을 들을 때 남편 될 사람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파혼입니다. 약혼 관계를 끊으면 그만입니다. 다시 다른 여성을 찾으면 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이요, 가장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대부분이 취하는 인간적인 방법입니다. 그나마 그래도 요셉은 품성이 좋은 사람이어서 동네방네 소문 내지 않고 조용히 파혼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의 잉태는 도덕적 부정(不貞)이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일러줍니다. 요셉은 자신이 생각한 가장 쉬운 길, 가장 편한 길, 자신의 생각에 바탕을 둔 인간의 길을 내려 놀고 천사가 일러준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길, 말씀에 순종하는 길을 따릅니다. 마리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리아 역시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하는 몹시 위험하고 부담되는 길을 거절하고 요즘 방식으로 낙태의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쉬운 길, 편한 길을 내려놓고 “주님의 여종이니 말씀대로 하옵소서.” 하며 처녀의 몸으로 아기를 잉태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순종의 길을 따릅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때로 어렵고 복합한 문제 앞에서, 여러 가지 중대한 선택 앞에서 어떤 길을 택합니까? 혹시 언제나 가장 쉬운 길, 가장 편한 길, 자신의 생각에 바탕을 둔 인간적인 길을 추구하지는 않습니까? 가장 쉬운 길, 편한 길에는 의미 있는 ‘이룸’(成)이나 ‘열매 맺음’(實)이 없습니다. 하느님께 드릴 영광이 없습니다. 은혜가 없습니다. 축복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열매가 없습니다.

 

오늘 마리아와 요셉은 쉬운 길을 버리고, 인간의 길을 버리고 말씀의 길, 순종의 길, 주님과 함께 하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결국 아기 예수를 출산하는 거룩한 성탄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거룩한 성탄을 이 땅에 오게 하는 가장 중요한 거룩한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세상의 일을 홀로 이루시지 않습니다.

특별히 의미 있고, 아름답고, 거룩한 일은 더더욱 혼자 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을 통하여 하십니다. 아담을 통하여 인류를 내셨고,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을 이루셨고, 마리아와 요셉을 통하여 말씀이 육신이 되시는 거룩한 성탄을 이루셨습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일에 장애인도 동참 시키셨는데, 시각 장애인이나 지제장애인이나 나병환자나 12년간이 혈루병 앓던 여인을 통하여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성경은 마리아와 요셉이 자신들의 생각을 내려놓고, 쉬운 길을 버리고, 조용하게 하느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사람이 보기에 쉬운 길을 버리고, 하느님의 길을 가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편한 길이 아닌 ‘애씀’이 있는 길 곧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축복의 길로의 초청입니다. 이 길이 인간의 길과 다른 하느님의 길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야훼의 말씀이시다.

"하늘이 땅에서 아득하듯 나의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이사야55:8-9)

"좁은 문으로 들어가거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다."(마7:14)

 

이 시간 다시 한 번 쉬운 길, 편안 길을 내려놓고 말씀의 길,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순종의 길 곧 주님의 길을 추구하는 길을 인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탄생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은 다 쉬운 길을 버리고, 수고와 헌신이 따르는 순종의 길, 말씀의 길을 따랐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처럼, 밤을 새워 양들을 지키다 말구유로 달려간 가난한 목자들처럼,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찾아가 예물을 드린 동방 박사들처럼, 마리에게 소식을 전한 천사들처럼 하느님의 선하신 일에, 위대하신 일에, 거룩하신 일에 쓰임 받는 거룩한 참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교회 역사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다 쉬운 길을 버리고, 인간의 길을 버리고, 말씀의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걸어 하느님의 선하신 일 거룩하신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노아가 그랬고, 아브라함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가 그랬고, 순교한 성인들이 그랬고, 한국의 주기철 목사나 손양원 목사가 그랬고, 독일의 본 훼퍼가 그랬고, 미국의 마틴 루터 킹이 그랬습니다.

 

이 대림절 4주를 맞이하여 마리아와 요셉처럼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기를 비우는 워 주님의 말씀과 사랑을 실천하는 거룩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고, 겸손하고, 깨끗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십시오. 비록 힘들지라도 마리아와 요셉처럼 쉬운 길을, 인간적인 길을 버리고 말씀의 길, 순종의 길, 주님과 함께 하는 길을 택하여 하느님의 거룩한 일에, 선하신 일에, 위대하신 일에 참여하는 거룩한 참여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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