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

양은영 2011. 4. 5. 12:16

 

 

 

 

 

 

 

내가 ㅅ 거리를 가끔 스쳐 지난 지도 어언 30년이 되어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ㅅ 거리도 참 많이 변했다.

낡은 건물을 헐고 새 건물을 짓고 개천을 덮고 도로를 만들기도 했다.

얼마 전 ㅅ 거리를 지나다가 예전 모습 그대로 서있는 이 경신여인숙을 발견했다. 근처의 여인숙들이 건물을 약간

수리해서 여관이나 모텔로 거듭 변신하는 데도 꿋꿋이 여인숙이란 간판을 고수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무슨 사연

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해본다.

물론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그 사연은 아닐 것이다. 보통 건물에서 안좋은 일이 일어나면 이미지 변신을 위해 일부

러라도 간판을 바꾸는 것이 통념인데 말이다.

 

1980년도 초반에 경신여인숙에 탈영병이 들어서 ㅅ 거리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적이 있다. 내가 근무하던 지하철

2호선 공사 현장 건물이 바로 경신여인숙  앞에 있어서 그 날을 또렷히 기억한다.

그 날은 일요일. 점심 시간을 좀 넘겼을까, 이른 점심을 마치고 돌아온 소장님과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데, 갑자기

'따다다다~'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와 동시에 현장에 나갔던 기사 한 분이 놀라고 흥분된 표정으로 들어오더니 지금 바깥에 군인들이 쫙 깔

리고 경신여인숙 건물에서 따발총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길을 지나가던 시민 하나가 총알을 맞고 쓰러진 것 같

은데, 어쩌면 자신도 간발의 차이로 총알을 맞았을지도 모른다고 무용담을 늘어놓듯이 자랑을 했다.

 

건물의 지하에 있어서 바깥 상황을 내다볼 수 없다고 답답해했지만 사실 그것은 행운이었다. 건물의 이층에는

감독실이 있었는데, 만일 그 날이 일요일이 아니고 직원들이 출근했다면 불상사가 생겼을지도 몰랐던 것이 다

음 날 출근한 직원들 말에 의하면 사무실 창문으로 날아들어온 탄피가 있었다던가.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현장에 나간 기사들이 무사한지 어쩐지 걱정을 하면서 지하 사무실 안

에서 대기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콩 볶아 먹는 소리를 내는 총소리도 들리지 않고 바깥은 쥐죽은 듯이 고요

해서 더욱 불안하기만 할 때쯤.

확성기에서 탈영병을 타이르는 소리가 났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자수해라, 목숨은 살려준다 어쩌

고 하는 소리였을 것이다. -이런 비슷한 사건을 다룬 영화와 똑같다-

그 소리가 끝나자마자 다시 따발총 소리가 났다. 곧이어 쥐죽은 듯한 정적.

이번에는 확성기에서 힘없는 늙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얘야, 자수하거라...어쩌고 하는. 아마 탈영병 중에

한 명의 어머니인 듯...

다시 따발총 소리. 그리고 정적.

잠시 후에 확성기 안에서는 앳된 여인의 우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마도 주최(?)측에서는 이 탈영병들에게 무기를 버리고 투항시키기 위해 그들의 가족을 총동원해서 설득

을 하려는 작전인 것 같았는데, 확성기에서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따발총 소리는 더욱 요란해졌다.

탈영병들은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고 자수보다는 오히려 더 자포자기적 심정이 되어갔던 것 같다.

급기야 확성기 안에서 갓난아기의 우는 소리가 났다. 우는 소리와 동시에 따발총 소리는 다른 때보다 더 길

게 이어졌고 다음에 오는 정적도 유난히 깊었다. 파리 날아다니는 소리가 날만큼.

 

탈영병들이 총만이 아니고 수류탄도 가지고 있어서 그걸 던지기라도 한다면 내가 있는 사무실도 날라가서

죽을지도 모르는 판에 나는 슬슬 그 탈영병들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왜 탈영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늙은 어머니에 아내에 갓난아기까지 동원되어 투항을 시켜야했을까.

날은 점점 어둑해지는데, 이제 바깥에서는 확성기 소리도 따발총 소리도 들리지 않고 정적만이 감돌았다.

이런 상황에도 내 장난끼는 도져서 집에 전화를 해 어머니에게 이렇게 작별인사를 고했다.

'엄마, 어쩌면 탈영병들이 수류탄을 던져서 건물과 제가 통채로 날아가버릴 수도 있으니 미리 인사 드립

니다...'어쩌고 저쩌고.

 

바야흐로 어둠과 정적만이 전부인 밤이 찾아오자 배도 고프고 불안하고 초조해진 소장님과 기사 한 분 나

는 탈출을 감행했다. 마치 영화 같은 순간에 사태 파악도 못한 나는 왜 그리 웃음이 나던지...

웃음을 참으면서 살금살금 건물 입구를 빠져나오는데, 평소 그렇게 밝던 ㅅ 거리는 어둠의 덩어리였다.

그 어둠에 채 눈이 익기도 전에 발치에서 나즉한 위협의 목소리가 들렸다.

세상에!~

탈영병 몇을 잡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군인들이 땅바닥에 엎드려 총을 겨누고 깔려있을 줄이야. 살다 살다

그런 광경은 또 처음이었다. 나도 놀랐지만 군인들도 나를 보고 놀랐나보다.

'아닛! 이 아가씨가 겁도 없이 어디서...얼른 살금살금 기어서 저리 가지 못할까!~'

그제서야 심각한 상황을 파악한 나는 '네네~~'하면서 살금살금 기어서 저리 갈 수밖에.

 

ㅅ 거리를 빠져나와 집에 돌아온 나는 이 역사적인 사태의 현장에 있었던 나의 무용담을 식구들 앞에서 손짓

발짓을 하면서 자랑을 했고, 들리는 말에 의하면 탈영병들은 특공대가 들어가 모두 소탕을 했다는 말도 있고

그들 스스로 자살을 했다는 말도 있었다.

다음 날부터 현장 기사들은 모이기만 하면 한동안 그 탈영병 사건 이야기로 지칠줄 몰랐는데, 경신 여인숙 근

처에서 탄피 몇 개를 발견했다느니, 그들이 쏜 총알이 자기 옆구리를 비켜 갔다느니 하면서 과장된 후일담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그 후일담보다 나를 궁금하게 했던 것은 여인숙 주인의 안위였다. 또한 지금까지도 궁

한 것은 보통 건물에서 살인 사건이나 안 좋은 사건이 일어나면 가장 큰 피해자는 건물주인데, 어찌 지금까

지 간판 이름 하나 바꾸지 않고 이 날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인지.

 

가끔 내가 몸소 체험한 이 탈영병 사건을 아는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그들은 재밌다는 듯이 이렇게 답한다.

'한 번 여인숙에 들어가보지 그래요? 죽은 탈영병의 유령들이 반겨줄지도 모를텐데...~'

글쎄, 정말 그럴까.

아마도 그 사건이 잊혀질 때쯤, 여인숙에는 사랑의 장소를 찾는 가난한 연인들이 들락거렸을테고, 탈영병

들이 죽은 그 방에서 사랑의 행위를 나누었겠지.

소설적 상상을 가미한다면.

어쩌면 죽은 탈영병들의 유령이 여인숙에 남아 그 건물을 새로 짓게도, 간판을 바꾸지도 못하게 하지 않

는가 생각을 해본다.

덧붙여.

그때, 이층의 감독실에는 현재의 남편이 현장기사로 근무를 할 적인데, 만일 그 날이 일요일이 아니었다

면 무대포로 날아온 총알에 유명을 달리했을지도 모를 일.

그러고보면 한 사람의 삶과 인생은 어떠한 사건으로 그 획을 달리 긋기도 하는 것 같다.

만약 탈영병들이 탈영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일요일에 탈영하지 않았다면.

ㅅ 거리의 그 여인숙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 모든 일들이 우연인 듯 보이지만 어쩌면 보이지 않는 필연으로 엮어져 가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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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넘 오랫만에 들렀습니다.

전에는 비공개로 전환되어 있다고 해서 그냥 발길을 돌렸었는데..

잘 지내시져, 가을님.. ^^*

어떻게 지내셨어여??

소식 많이 궁금했는데 이렇게 다시 뵈서 넘 반가워여 ^^*
빠리불어 님, 오랜만이네요. 반가워요^^
왜 열정을 쏟은 어떤 일이 갑자기 시들해지는 느낌 있잖아요. 요즘 그런 것 같아요. 작년에 그렇게 재밌게 열심히 했던 블로그 활동에 흥미가 떨어지고...하지만 비공개로 두기엔 뭔가 허전하고..그래서 열었다 닫았다 변덕인 거죠^^
저도 다시 뵈서 반갑고요...앞으로 자주 찾아볼게요~
여인숙이 아직도 있네요...
그러고 보니...
탈영병 사건 생각도 나는것 같습니다...

않았다면....
정말 누군가의 짜여진 각본대로 내가 살고 있는건가요?

느낌있는 하루를 시작 합니다...
행복한 하루 열어 가세요...~_^
그 사건을 기억하시나부죠? 언론에서는 가족을 동원시켜서 확성기로 목소리를 내보낸 사실은 보도를 안 한 거 같아요. 갓난아기 우는 소리 나갈 때는...정말 기분이 이상하드라고요.
저는..운명을 믿는 편입니다~
그렇잖아요. 수많은 사람 중에 유독 어떤 한 사람과 만나게 되는 그런 시간과 공간의 법칙 같은 거..
깜부 님, 오늘 날씨가 아주 좋네요^^
이 동네는 아직 벚꽃이 필 생각도 않지만...
곧 환하게 피면...벚꽃 나들이 가야겠어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윤정로에 벚꽃이 만개할떄즘...

저녘 벚꽃놀이... 안에서...우연히 만나게 되면
그때...
차 한잔 하자구요...ㅎㅎ

오늘도 행복한 하루보내세요...~_^
저는 여의도 안 나가요. 사람이 버글버글해서..ㅎ ㅎ
우리 집 뒷산에도 벚꽃이 장관을 이룹니다. 호젓한 벚꽃길을 걷는 것이 더 운치있지요~
우리집 뒷산으로 오실래요? 제가 보온병에 커피 타가지고 나갈게요. ㅎ ㅎ
오늘도 행복하세요^^
뒷산이면 관악산이잖아요....

정상에서 "야호" 하고 부를테니까...
따뜻한 커피 보온병에 담아 얼른 올라 오세요...ㅎㅎ

행복한 부말 보내세요...~_^
저는 사십대 중반인데 생각이 나질 않네요....
시골에서 살아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고요....(므흣)
그때 그장소에서 있으셨기에 그 느낌이 더 와닿는데요.
경신여인숙 쥔장님이 아직도 운영하시면 한번 저도 묻고 싶은데요.
상호를 바꾸지 않으신 이유를(?)(?)(?)(?)(?)
실감나게 올려주셔서 (즐)감했습니다....(^^)
마망 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조만간 찾아가서 함 물어볼까요(?) (ㅎㅎ)
어쩌면 주인이 바뀌어서 그 바뀐 주인조차 그 사건을 모르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아침입니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세요(^^)
어쩌면 인간사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인숙이라는 단어가 친근감을 주는건 왜일까요? ㅎㅎ~~
하숙위에 여인숙, 여인숙위에 여관이건만 거의 사라지고 모텔 이라는 말로 위장되었습니다그려....
저도 여인숙이란 말이 참 친근합니다. ㅎ ㅎ
어쩌면 그 건물은 업그레이드를 안해서 모텔보다 더 좋을지도 몰라요.
요즘 모텔들은 사람 많이 받으려고 닭장처럼 짓는다고 합니다. 말만 모텔이지...
그나저나 지금 내리는 비...방사능비 아니죠?
이제 비의 낭만은 사라지고 대머리 되는 비, 방사능 비가 내리네요...ㅠㅠ
비밀댓글입니다
비밀댓글입니다
안녕하셔요~^^
저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글 잘 보고 갑니다..

따스한 주말 되셔요.. 흔적 슬쩍 내려놓고 도망갑니다..^^
순천미인 님, 반갑고 고맙습니다^^
재밌게 읽으셨기를 바라요.
님도 오늘 행복한 주말 되세요~
저도 경신여인숙 사건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그곳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군요
아구 가을님이 역사의 증인이기도하구요
그 무선운 총알이 날아다니는 곳에서 장난끼가 발동을 하였다니 ~
그때 여군으로 입대를 하셨음 지금쯤 장군이 되어있지는 않을까요??
말씀처럼 사람들의 운명은 알게 모르게 정해져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 시간을 다 보내고 지금은 이렇게 그 글을 통해서 이런 인연도 이어지는거구요
옷깃 스치는 인연도 전생엔 참 대단한 인연이라는데~~~~
지난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는 시간이였네요
가을님~
화창한 봄날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그 사건을 기억하시는군요. 티비에서는 어떻게 보도가 되었는지 모르지만..현장에 있어본 사람은
그 아비규환의 생생한 느낌을 알지요. 저는 건물 지하에 있어서 별로 실감이 안났어요. 밤에 나와보니
군인들이 총을 겨누고 포복을 하고 있어서 좀 무서웠기도 했지만..스릴이 있었죠.
어제도 저 경신여인숙 건물 앞을 지나갔어요. 정말 함 들어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 ㅎ ㅎ
군인 유령이 있는지 어쩐지.
보물창고 님도 행복한 주말 맞으세요^^
아참. 여군..ㅎ ㅎ
아마도 제가 키가 조금만 더 컸다면 여군에 지원을 했을 겁니다. ㅠㅠ
저도 생생이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뉴스로 접했던건 기억나요
총 무섭죠
힘쎄고 덩치가 커도 작은 총알한발이면 죽음이잖아요
언제 가면 저도함 들어가봐야겠는걸요
역사의 현장을 어떻게 보존하고있는지~
가을님은 밖에서 군인하세요
저는 안에서 탈영병할게요~
여군 키가 커야가는건가???
오늘은 날씨가 참 화창하네요
즐건 주말 되시기 바래요
ㅎ ㅎ 답글을 참 재밌게 적으셨네요^^ 그렇죠, 집채만한 호랑이도 총 한 방에 ~
보물창고 님은 숲 해설 하시죠? 저는 도시해설 해볼까 해요, ㅎ ㅎ
언제 오시면 ㅅ 거리의 역사를 설명해드릴게요~
근데 제가 군인하면...보물창고 님을 총으로 쏴야할텐데...ㅠㅠ
..여군이 키가 그렇게 많이 커야 하는 것은 아니고요. 암튼 여군 모집 공고에 나온 키에
제가 미달이 되었었어요.ㅠㅠ
알겠습니다
도시해설도 들으면서 보면 그 느낌이 새로울거 같네요
총알 없는총으로 쏴야죠
정말 총으로쏘면 죽잖아요
그런가요??
군인이 키가 작다고 키가 크다고 안된다는건 어떤이유인지 모르겠네요
나라를 사랑하고 아끼는 맘이 최고인거죠\
경신 여인숙 사진 보니 더욱 실감나네요~~ 어머니에게 전화는 잘하셨어요~ㅋ
ㅎ ㅎ 지금도 다른 모텔은 업그레이드 하는데..경신은 끝내 그 모습으로...아마도 탈영병 구신 붙은 듯?
탈영병은 죽을 각오하고 총 쏘는건데 웃음이 나고 주위에 자랑질이라... ㅉㅉㅉ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