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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st. 영화 후기 블로그입니다.

♬ 성탄 특집 8편 [8월의 크리스마스(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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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생활/2020년감상영화

2020. 12. 23.

쓸데없이 긴 글 주의!!!!!!!!!!!!!!!!!!!!

 

▶ 영화 기본 정보
제목: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영어제목: Christmas in August  
감독: 허진호 
출연: 심은하, 한석규  
기타: 97분, 15세이상관람가 

▶ 퍼온 줄거리
"좋아하는 남자 친구 없어요?" 
변두리 사진관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노총각 ‘정원’. 시한부 인생을 받아들이고 가족, 친구들과 

담담한 이별을 준비하던 어느 날, 주차단속요원 '다림'을 만나게 되고 차츰 평온했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저씨, 왜 나만 보면 웃어요?" 
밝고 씩씩하지만 무료한 일상에 지쳐가던 스무 살 주차단속요원 '다림'. 단속차량 사진의 필름을 맡기기 위해 

드나들던 사진관의 주인 '정원'에게 어느새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되는데... 

▶ 영화 내용 3줄 요약 
1.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사진사 정원.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주차단속요원 다림. 
2. 다림이 정원에게 점점 다가가던 어느 날, 정원은 병원에 실려가고... 
3. 사진관에 편지도 넣어보고 화가 나서 돌을 던져 유리도 깨던 다림. 그들의 만남은... 

▶ 영화 감상 3줄 요약
1. 20여년 전의 한석규와 심은하. 곱다. (나도 그땐 고왔을까 하면 아니요... ㅎㅎ)
2. 미묘한 감정들의 나열. 이어붙여놓으면 있을 법한 이야기.  
3. 이젠 필름 카메라 인화하는 곳도 잘 없던데. 어쩐지 그리워지는 90년대 풍경.

▶ 영화 평가 지수 (5점 만점)

재미 지수 ■ (3점 / 잔잔한데 계속 보게 되는)

감성 지수 ■■ (4점 / 감성으로 느껴야 하는 영화. 그래서 난 어려운 영화)

크리스마스 분위기 □ (0.5점 / 제목만 크리스마스... 죄송합니다 ㅎㅎ)

▶ 줄거리와 감상

 

어? 함정인가요? 12월에 웬 8월의 크리스마스... ㅋㅋㅋ 당신은 낚이셨습니다!!

8편이라 8월의 크리스마스 ㅋㅋㅋ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ㅎㅎㅎ 

 

단지 '크리스마스'라는 말이 제목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ㅎㅎㅎ 이번에 성탄 특선에 포함됨. 

뭐, 젊은 네티즌들은 안 봤을 거잖아요 다들~ (응, 젊은이들은 이 블로그 안 봐~ ㅎㅎ)
<8월의 크리스마스>는 누군가는 고전 명작이라고 부를 정도로 칭송 받는 영화다. 

주인공인 한석규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 중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영화이기도 하다. 

 

“사실 지금껏 했던 작품들 중에 ‘8월의 크리스마스’가 가장 점수가 높다. 80점 정도이다.

성적으로 따지면 ‘우’ 정도 된다고 볼 수 있다.

제 기준에 점수가 가장 높은 영화는 ‘일 포스티노’인데 나에게 있어서 역대급 영화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도 내게 ‘일 포스티노’ 같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웃음)” 

- 한석규의 2017년 인터뷰 중에서.

 

허진호 감독의 또 다른 작품인 <봄날은 간다>와 확실히 느낌이 비슷하다. 

굉장히 일상적이고 잔잔한, 그러면서도 보게 만드는 매력. 담백한 느낌. 

그냥 밥 먹고 수다 떨고 친구 만나고 일하는 얘기인데 그게 또 영화가 되네...

그런데 <천문: 하늘에 묻는다>도 연출한 줄은 몰랐네. 작년에 봤는데... (후기를 안써서...)

지난해에 <우상>과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보면서, 

한석규가 정말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걸 제대로 깨달았음. 

나는 왜 흥행에 실패하는 영화나 평가가 나쁜 작품을 볼 때서야 비로소 

배우의 진가를 알게 되는 걸까. 망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을 발견해서? ㅎㅎ

<천문: 하늘에 묻는다>를 본 후에는 한석규 인터뷰를 굳이 찾아서 볼만큼 

한석규에 대한 관심이 대폭발하기도 했다. 어우... 너무 잘해, 연기를. 

크게 선과 악이 나눠져있거나 아름다움과 추함, 어느 쪽에도 지나치게 무게가 실리지 않는, 

평범하면서도 어딘가 믿음이 가게 생긴 외모 덕분에 그는 어떤 역을 맡아도 잘 어울린다. 

왕도 의사도 동네 깡패도 첩보원도 사진사도... 전부 다. 

그리고 심은하가 있었다. (다림을 보며 심은하의 또 다른 캐릭터 다슬이를 떠올린 나는 장년)

심은하가 지금까지 연기를 계속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도 너무 곱던데... 

 

내가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면서 또 다시 느낀 건, 나는 감성이 참 무디다는 거다. 

그래서 'A는 B다'라고 정확하게 명제가 만들어지지 않거나 

기승전결이 없거나 극적인 사건이 없으면 약간 멍... 하게 영화를 보게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그런 상태.

그러니까 이해해야 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냥 느낌 가는대로 느끼는 영화가 어렵다는 것. 

(그렇다고 딱히 논리적인 성격도 아니다. 정말 그냥 감성이 부족한 것 뿐이다.)

근데 허진호 감독의 영화가 대부분 그렇다. '느낌'과 '분위기'가 가득함. 

굉장히 진부한 표현이지만 허진호 감독의 작품을 4글자로 표현하면 딱 이거다. '감성멜로'. 

그런 주인장의 당황스러움을 상기하면서(?) 줄거리를 정리해봅시다~ 

 

"아이들이 모두 가버린 텅빈 운동장에 남아있기를 좋아했었다. 

그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하고 아버지도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버린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영화는 주인공 정원(한석규)이 스쿠터를 타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집, 병원, 운동장으로 이동하는 카메라. 

이렇다할 사건은 없는 그저 평범한 모습들인데 사실 정원은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신체적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약을 먹고 병원에 다니는 장면이 몇 차례 나올 뿐이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원은 착하고 친절하고 주변 대소사를 잘 챙기는 인물이다. 

손님들이 다시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면 돈 따로 안 받고 그저 웃으며 다시 찍어준다. 

가까운 사람의 부모가 돌아가시면 한달음에 문상을 간다.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던 정원 앞에 어느 날 주차단속요원 다림(심은하)이 나타난다. 

무더운 여름. 사진 인화를 위해 출장 나간 정원을 한참 기다리던 다림은

빨리 인화를 해달라며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이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 

정원은 길가에서 사진 인화를 기다리는 다림에게 하드를 사주며 

되려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조금만 기다리면 인화를 해주겠다고 말한다. 

근데 한석규의 대사가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냥 감독이 상황만 던져주고 마음 가는대로 

대사를 쳐보라고 한 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성우 출신다운 정확한 발성은 덤. 

 

얼마 후 정원은 주유소에서 스쿠터에 기름을 넣다가 티코를 타고 가는(티코!!!)

다림과 마주친다. (스쿠터에 기름 가득 넣는데 3천원... -_-;;;)

그리고 또 다시 사진관을 찾아오는 다림. 이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계속 이어진다. 

 

이 무렵, 정원의 잔잔하던 일상에 약간의 변수 같은 게 생기는데 

정원의 동생 정숙(오지혜)의 친구이자, 정원이 학창시절 짝사랑했던 지원(전미선)이

친정에 온 것이다. 다시 말해 정원이 사는 동네에 온 것. 

그리고 정원이 지원을 골목에서 만난 그날, 정원의 여동생 정숙도 친정에 찾아온다. 

정숙은 지원의 남편이 노름을 또(!) 했으며 지원을 때리기까지 한다고 한숨을 쉰다. 

아직도 지원이를 좋아하냐는 동생의 물음에

수박을 먹던 정원은 그냥 수박씨를 마당에 퉤퉤 뱉을 뿐이다. 대답은 회피하겠다!!! 

나란히 수박씨를 뱉으며 웃어버리는 남매. 하지만 정숙의 표정은 끝내 어두워진다. 

아마도 시한부 인생을 사는 오빠의 모습을 웃으며 보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다. (... 라고 난 생각함)

 

얼마 후, 또 다시 정원의 사진관에 찾아온 다림은 사진기를 고쳐달라고 하면서

사진관에서 잠시 쉬어가도 되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내뱉은 말. 

 

"생일이 8월 아니에요? 사자자리가 나랑 잘 맞는다고 하던데." 

"근데 아저씨. 오늘은 왜 반말해요?" 

 

어? 이제 시동 거는 거니? 22년 전엔 썸탄다는 말도 없었지만 이게 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죠? 

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낮. 다림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다가 

우연히 스쿠터를 타고 가던 정원과 마주치는데 정원이 그냥 쌩 지나감. 

입을 삐죽거리며 가던 다림은, 뒤에서 스쿠터 소리가 가까워지는 소리를 듣자 입꼬리가 막 올라간다.

이 장면 진짜 귀여움. 쳇, 그냥 가는군... 했다가 어? 다시 와? 그럴 줄 알았어! 하는 표정 ㅎㅎ

 

"숙녀가 이렇게 무거운 걸 들고 가야겠어요?"

 

사실 무거운 걸 들고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ㅎㅎㅎ 난 지금 너한테 관심이 있다!는 게 핵심임 ㅋㅋ

정원은 다림의 짐을 스쿠터 앞에 싣고 다림을 뒤에 태워준다. 이렇게 또 한 걸음 가까워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에 왔다던 지원이 와서 정원의 안부를 묻고 한가지 부탁을 하고 간다. 

사진관 앞에 전시된 자신의 사진을 빼달라고 부탁한 것. 

잘 나온 사진들은 보통 전시하고 그러잖아요~ 근데 그 중에 지원의 사진이 있었던 거임. 그거 빼달라고... 

그건 어쩌면 아직 조금은 마음이 남아있던 첫사랑에 대한 감정이 

이제는 완전히 정리되는 그런 느낌 아니었을까...도 싶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꿔놓는다. 서먹하게 몇 마디를 나누고 헤어지면서 

내게 자신의 사진을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

 

버스를 탄 정원의 독백. 그리고 그 때 흘러나오던 노래는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 이 노래를 안다는 건 할매할배라는 뜻... 크흠, 크흠. 

감독이 일부러 그 음악을 깔아둔 것 같다. 그런 슬픈 눈으로 나를 보지 말아요... T.T 

 

중간에 정원과 다림이 아이스크림 같이 먹는 장면, 

(식당 사장이 주차관리요원 싫다고 식당에 못 들어오게 해서) 길에서 햄버거 먹다가

정원이 지나가자, 친구에게 햄버거 맡기고 정원을 보러 가는 다림의 모습, 

지쳐서 차에서 잠들었어도 초원사진관 앞에서는 손을 흔들던 다림의 모습 등등은 

귀여우니 영화로 확인합시다 ㅎㅎ 

 

"철구야, 나 오늘 죽는다."

어느 날 밤, 절친 철구(이한위)를 만난 정원은 술에 잔뜩 취해 노상방뇨를 하다가 

철구의 귓가에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털어놓는다. 

 

"결국 농담처럼 녀석에게 말해버렸다. 이렇게 술에 취해 녀석에게 응석부리며 

웃고 떠들 수 있는 날들이 내게 얼마나 남아 있을지..."

 

술에 취해 남철 남성남 춤을 추는 건 그렇다쳐도 깽판쳐서 파출소에 가는 장면은 

띠용~하고 놀랄 수 있다. 그냥 정원이 시한부라는 걸 잊고 사는 것 같아도

실은 자신의 처지에 분노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시적 화자 해석에 연연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은 커서 이렇게 계속 분석을 하게 됩니다... ㅋㅋ)

정원의 만취 장면에 이한위도 나오고 파출소에 가면 김기천도 나온다. 눈에 익은 배우들. 

 

일을 쉬는 날. 다림은 평소와 다르게 사복을 입고 정원의 사진관에 찾아온다. 

 

"아저씨는 왜 나만 보면 웃어요?"

"근데 왜 아저씨는 결혼 안하셨어요?"

"아저씨는 사는 게 재밌어요?"

 

정원에게 어쩌면 시덥지 않아보이는 질문들을 던지는 다림. 그게 관심이라는 거야!!!!!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나가겠다는 강한 의지. 너의 모든 게 궁금하다는 호기심. 

이것은 사랑. ㅎㅎㅎ 꺄~~~ 

이날 정원은 다림의 증명 사진을 찍어주는데 이때 정원이 한마디 하죠. 

"다림 씨, 침 좀 묻혀봐요."

입술에 생기가 없어보였는지 정원이 입술에 침 좀 묻혀보라고 하는데 

이 말이 신경 쓰였는지 집에 가던 길에 다림은 화장품 가게에 들러 립스틱을 산다. 꺄~~ 

 

사실 다림과 정원의 이야기보다 내가 이 영화에서 

꽤 인상깊게 본 장면이 있었는데 바로 영정 사진 찍는 할머니 에피소드다. 

가족끼리 사진을 찍었는데 찍고 나니 아들이 어머니 독사진 한 장만 찍어달라고 따로 부탁한다.

나중에 영정사진으로 쓰려고... 그게 뭔가 서글펐는지 할머니 얼굴이 좀 어두웠음. 

그런데 그 날 저녁 할머니가 다시 찾아와, 사진을 다시 찍어달라고 한다. 

낮에는 조금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 같은 옥빛 한복이었는데 

밤에는 꽃분홍빛 한복을 입고 오심. 그리고 표정도 더 밝아짐. 안경도 벗고 찍으심. 

뭔가 훨씬 만족스러운 분위기였달까... 무엇보다도 이 할머니 역을 맡은 배우가 

전혀 연기 같지 않게, 자연스럽게 연기를 해서 놀라울 지경이었음. 

나중에 찾아보니 김애라라는 배우였는데 이미 작고하셨음. 

혹시 이 영화 보실 분이라면 이 할머니 연기 한 번 주목해주시길. 이건 연기가 아님. 리얼임. 

(영화에서 찍었던 영정 사진이 실제 이 배우의 영정 사진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할머니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다시 찾아온 그 날 저녁. 

원래는 다림이 술 한 잔 하러 7시나 7시 30분쯤? 오겠다고 했었더랬다. 

헌데 비가 억수같이 내려서였는지 그 날 다림은 나타나지 않았다. 

늦게까지 다림을 기다리다가 이부자리에 누운 정원은 천둥번개소리에 놀랐는지 

불을 켜놓고 잠을 청하다가 아예 아버지(신구) 옆에 몸을 뉘인다. 어쩐지 짠한 모습. 

 

얼마 후, 다림은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진관에 들른다. 

"아저씨, 저번에 저 안 와서 삐쳤죠?"

"왜 안 왔어?"

"그냥 오기 싫어서 안왔어요."

뭐지? 입덕부정기인가? ㅎㅎㅎ 새침하게 말하고 돌아서는 다림. 

 

중간에 친구들과 감자, 고구마 구워먹고 단체 사진 찍는 장면은 넘어가고~~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정원이 아버지에게 리모컨 사용법 가르쳐주는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 아버지가 한 번 해보세요 설명 해드릴게요. 

테이프 넣으시면 자동적으로 플레이되거든요. 

그러니까 TV전원 하시고요 TV 쪽으로 요 단추를 하신 다음에 

채널 4로 요렇게 4번이죠? 봐주시면 돼요." 

이 영화보면서 예전에 어떻게 비디오를 봤는지 기억이 살아났다. 

맞아, 비디오 볼 때는 채널4번... T.T 예전에는 비디오, 만화책 대여점이 많았는데... 

200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사라지더니 이제는 아예 볼 수가 없네. 

암튼, 정원은 아버지에게 여러 차례 리모컨 사용법을 가르쳐주지만

아버지는 3단계 중에서 번번히 1단계씩 빼먹는다... -_-;;; 

화도 나고 안타까운 아들 정원. 내가 없으면 아버지는 어떻게 비디오를 볼까... 

방에 들어온 정원은 잠시 생각하더니 종이에 큰 글씨로 사용법을 써놓는다.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아들이, 아들보다 더 오래 살아갈 아버지를 위해 남겨두는 배려랄까.

 

얼마 후, 다림은 화장도 하고 옷도 예쁘게 차려입고 정원을 찾아온다. 

주차단속요원 옷을 입고 있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에 깜짝 놀라는 정원. 

"화장했네?"

"... 네."

"이야~ 화장하니까 아주 예쁘다~"

커피? 아이스크림? 뭘 먹을까 했더니 테이블에 오른 건 맥주와 오징어와 땅콩. 

가볍게 맥주 한 잔 하며 이런 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는 두 사람. 

그러면서 다림은 본심이 섞인, 약간 다른 얘기를 슬쩍 꺼낸다. 

 

"내 친구도 일요일날 굉장히 바쁜데."

"친구 뭐하는데?"

"어, 내가 얘기 안했나? 서울랜드에서 일하거든요. 언제든지 오면 공짜표 준다고 그랬는데."

"..."

"그냥... 그렇다고요. 언제 한 번 가긴 가야되는데 시간이 나야 말이죠."

 

나와 서울랜드를 같이 가주지 않으면 삐치겠다. ㅋㅋㅋ 이 말을 돌려 말한 것? 

바로 다음 장면은 롤러코스터를 타는 정원과 다림의 모습이다. 

22년 전 서울랜드 풍경에 잠깐 놀람. 저랬나? 싶어서. 

정원과 다림이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그 뒤로

웨딩드레스 차림의 여자와 일행이 지나가기에 영화적 장치인가? 했는데 아닌가봄. 우연.

운동장에서 같이 달리기를 하고, 대중목욕탕에 가고, 귤을 사먹고,

돌아오는 길에 팔짱 끼고 무서운 얘기를 하고... 제대로 데이트를 한 정원과 다림. 

특히 운동장에 혼자 남기를 좋아했다는 정원의 독백을 생각해보면

둘이 갔다는 건... 좀 의미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내 맘대로 생각해봄. 

 

그러나 정원은 여전히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시한부 인생이었고

동생과 병원을 다녀온 날엔 사진 인화하는 방법에 대해 

아주 자세히, 폴라로이드 사진까지 곁들여가며 종이에 써둔다. 혼자 남을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는 밤에 베개로 얼굴을 꾹 누른 채 오열한다. 

영화는 단 한 번도 정원의 병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상태의 경중도 모른다. 

다만 정원의 행동과 반응을 통해 그가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음을 눈치껏 알아챌 뿐이다. 

같은 날이었던 것 같은데, 늦은 저녁 사진관을 찾은 다림은 

사진관 불이 꺼져있는 걸 보고 시무룩하게 돌아선다. 

그러고보니 둘이 서울랜드에서 데이트했던 게 마지막 만남이 돼버렸구나... 

 

얼마 후, 정원은 상태가 악화됐는지 누군가에게 업힌 채 병원에 실려가고 그대로 입원한다.

그 사실을 모르는 다림은 사진관 앞에서 마냥 그를 기다리지만

사진관 문은 열릴 줄을 모른다. 비오는 어느 날엔 편지를 써서 문틈에 꽂아두고 가기도 한다.

새벽감성(?)으로 쓴 편지가 조금은 부끄러웠는지 

다림은 도로 편지를 가져가려하지만 되려 밀어넣어서 편지가 가게 안으로 떨어진다. 

정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정원을 잊으려는 듯 가벼운 만남을 즐기려고도 하지만

춤을 추다가도 화장실에서 다림은 괜히 눈물이 흐른다. 

춤추다 화장실에서 눈물을 흘린 그 날, 초원 사진관을 다시 찾아간 다림은

울컥하는 마음으로 사진관을 향해 돌을 던지고 사진관 유리가 박살나는데... 

 

시간이 지나 조금 회복을 했는지, 정원이 사진관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우편물 더미에서 다림이 보낸 편지를 찾아낸다. 

그 내용이 뭔지는, 감독이 안알랴줌을 시전해버려서 모름. 

정원이 답장을 쓰긴 쓰는데 결국 부치지 않음. 아, 왜... 

그저 구청을 찾아간 정원은 멀찍이서, 이제 계절이 바뀌어 좀 두툼한 옷을 입은

다림이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아주 아련하게. 유리 너머로. 이제는 닿을 수 없는.

 

자신의 물건을 정리해둔 상자에 다림의 사진과 다림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를 넣어둔 정원은

스스로 증명 사진 한 장을 찍는다. 그리고 그것은 정원의 영정 사진이 된다. 

 

겨울이 오고 눈 내린 운동장. 아무도 없다. 

초원 사진관 앞에도 눈이 쌓여있다. 

이제 가게에서 나오는 사람은 정원이 아닌 정원의 아버지다. 

가게가 비어있는 사이, 어쩐지 조금은 더 성숙한 이미지가 느껴지는 다림이 찾아온다. 

그리고 발견한 건 가게 앞에 전시된 다림 자신의 사진이다. 

정원이 찍어준 사진을 보며 다림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미소를 짓고는 돌아선다. 

 

나무위키를 보면 이 장면에서 보여준 심은하의 표정연기를 극찬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종의 성장, 다음 사랑을 준비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그 웃음에서 뭘 생각했냐 하면... 

나만 짝사랑한 게 아니라 정원도 나를 좋아했구나... 라고 생각한 것 같았음. 

뭐, 이 미묘한 웃음 속에 이 정도 감정 하나 더 들어갈 수도 있지 않겠어요? ㅎㅎㅎ 

 

"내 기억 속의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 추억으로 그친다는 것을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혹시 이 포스팅을 읽고 <8월의 크리스마스>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분이 있다면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 2배속 절대 하지 말고 ㅋㅋㅋ 보다 쉬다 보다 쉬다 하지 말고 

시간적 여유가 좀 있을 때, 천천히 보기를 권해드린다. 

사건의 흐름은 어떻게 줄여서 설명할 수도 있고 보여줄 수도 있지만

감정의 흐름은 압축해서 보여주기 어렵다. 그러니 꿋꿋하게, 여유를 가지고 봐주시길. 

크리스마스에 난데없이 여름을 배경으로 한, 크리스마스의 '크'자도 안 나오는 영화이긴 하나

걍... 성탄 특선에 끼워넣어보았음.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후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