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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파고스 st. 영화 후기 블로그입니다.

[상속자들] 영도-은상 상플 5편.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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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말고/드라마방

2013. 12. 8.

아무 생각 없이 쓰다가 여기까지 오니

자료조사가 필요하고 머리를 써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끝을 어떻게 낼 지는 대충 생각을 했으면서도, 중간 과정을 채우려니 미칠 지경~~~~

먹고 사는 일도 바쁜데, 이거 쓰느라 머리를 2배 3배 쓰니 과부하 걸리고 있음...

그러니 부디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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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은상이 사는 집에 가본 적이 있다.

김탄과 함께 살던 그 으리으리한 저택에도 물론 가봤지만,

그 이전에 살았던 허름한 집에도 갔었더랬지.

라헬에게서 은상의 세관신고서를 얻은 다음,

‘다 쓰러져가던’ 은상의 옛날 집을 찾아간 것이었다.

그 집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은상에게 했고, 그 말에 자신이 졸부가 아니며,

사회배려자 전형으로 제국고에 전학온 것이 맞다고 말했었지.

사회배려자가 아니든, 졸부가 아니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을까.

이미 그 때, 은상이에게 마음이 가버렸는데.

 

 

[조금 기다리고 있어요 금방 저녁 되니까]

 

 

은상이 엄마는 이 말을 써놓고는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셨다.

따지고 보면 은상이네 집 방문은 사실, 세 번째라고 봐야겠지.

세 번째 찾아온 은상이네는, 예상보다는 작지 않은 집이었다. 많이 허름하긴 하지만.

은상이 어머니를 따라 거실까지 들어서자 방문이 빼꼼히 열린 작은 방이 하나 보였다.

아마도 은상이 방인 듯 싶었다.

주인 없는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게 예의는 아닌 줄 알지만

영도는 무심결에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여기 은상이 방인가봐요 어머니. 들어가 봐도 되나요?”

 

 

여자 혼자 지내는 방에 들어올 일은, 영도에겐 거의 없을 일이었다.

그런데 게다가 은상이 방이라니. 영도는 발걸음 하나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여기가 은상이 책상이구나. 영도는 책상 쪽을 무심히 바라본다.

한가득 쌓여있는 책들 위에 놓인 노트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것도 안 써있나... 싶었는데 아주 작은 글씨 3개가 영도의 시선을 끌었다.

‘TAN’이라... 설마... 녀석인가.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방문 밖으로 살짝 나와 저녁을 준비하는 은상이 어머니 쪽을 쓱 바라본다.

도마 위에 칼질을 하느라 전혀 이쪽의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신다.

영도는 슬쩍 페이지를 넘겨보려는데 노트 사이에서 뭔가가 툭 떨어진다.

허리를 굽혀 주우려는데, 영도는 그만 그 자세로 멈춰버렸다.

 

 

“맞네... 김탄...”

 

 

노트 안에서 떨어진 건 김탄의 사진이었다.

영도는 갑자기 가슴 쪽을 한 방 맞은 듯, 아파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는 이내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노트를 펼쳐들었다.

 

 

“...뭐야...”

 

 

노트에는 김탄에 대한 기사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김탄이라는 이름만 나오면 아무리 작은 기사라도, 찌라시라도, 다 붙어 있었다.

어떤 건 프린터로 출력해서, 어떤 건 신문에서 오려 붙어놨다.

주주총회에 참석했다,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학교를 졸업했다...

모든 기사들이 거의 붙어 있었다. 그 끝은 봄에 어느 신문에서 낸 기사였다.

지금은 겨울. 거의 반 년 넘게, 스크랩이 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영도는 혹시라도 들릴까 소리를 죽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못 잊은 건가. 아직도 좋아하는 건가. 차은상, 정말 그래? 그런 거야?

 

 

 

 

영도는 되도록 티가 나지 않게 노트를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가 영도의 눈에 들어왔다.

책이 쌓여 있어 벽에 붙여놓은 뭔가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책을 슬쩍 치우던 영도는, 그것이 사진이라는 걸 알고는 책들을 좀 더 벽에서 떼어놓는다.

은상의 책상 앞엔 2장의 사진이 붙어 있다.

보나-찬영 커플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그 옆에... 영도 자신의 사진.

엄밀히 따지자면 영도가 은상을 바라보는 투샷이었다.

영도는 천천히 그 사진에 손을 대더니 살짝 벽에서 떼어냈다.

명수가 찍은 사진이구나.

내가... 차은상을 이렇게 바라본다는 걸 알게 해준... 그 사진들 중 하나구나.

영도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잠시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이때의 마음과 나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옅어졌을까 짙어졌을까. 무거워졌을까 가벼워졌을까...

그리움은 짙어졌고, 생각은 무거워졌다. 너에 대한, 내 생각.

다시 사진을 벽에다 붙여두려는데 뒷면에 뭔가 써있는 게 보였다.

흘려쓰긴 했지만, 무슨 말인지 제대로 보인다.

 

 

‘잘 지내니... 영도야’

 

 

그 글씨를 읽는 순간, 영도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혹시 은상이 엄마가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입술을 깨물고 참았지만,

빨개진 눈은 숨기기가 어려울 것 같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차은상. 너 왜 이런 말을 써놓은 거냐, 포기 못하게.

다시 한 번 방을 나와 부엌 쪽을 바라봤다. 아직은 은상이 엄마가 요리에 한창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이 모습을 보면 놀라실까봐.

 

 

 

 

[식기 전에 먹어요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어요]

 

은상이 엄마가 차려준 저녁상을, 영도는 한동안 뚫어지게 보고만 있었다.

그런 영도의 모습에 은상이 엄마가 또 메모지에 이런 말을 쓴 것이다.

식기 전에 어서 먹으라고.

그리고 혹시나 입맛에 안 맞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마음까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영도는 맛을 보기 전부터 벌써 알고 있었다.

아마 지금껏 먹어본 음식 중에서 이보다 더 따스하고 더 맛있는 음식은 없었을 거라고.

영도 앞에는 잔치국수가 한 그릇과 김치가 놓여져 있었다.

 

 

[은상이가 집에 국수 있으면 해주라고...]

 

[아마 잔치국수 좋아할거라고...]

 

[식당에서 일하니까 재료가 좀 있어요]

 

열심히 할 말을 적던 엄마는, 영도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국수 그릇을 영도 앞으로 좀 더 밀어주었다. 반찬 그릇도 조금 옮겨주었다.

그리고 혹시나 잊을까, 양념장을 국수 그릇 옆 가까이로 옮겼다.

 

[많이 있으니까 많이 먹어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발 위에 달걀지단이 얹어져 있고,

그 위에 김과 파가 좀 더해진... 누가 봐도 평범한 국수 일 뿐이지만,

영도에겐 그 어떤 음식보다 특별했다.

차은상, 이건 반칙이야.

아직 ‘같이’ 먹은 게 아니니까 나중에 잔치국수 먹은 셈 치자고 말하지는 마라...

오늘은, 어머니께서 주신 거니까.

 

“감사합니다 은상이 어머니...”

 

은상이 엄마의 시선을 느낀 영도가 그제야 양념장을 한 숟가락 넣었다.

그리고는 젓가락을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한 젓가락을 집어 맛을 보기 시작했다.

짭조름하면서도 시원한 맛... 그리고...

 

“와~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좋으세요. 진짜 맛있어요. 호텔 밥보다... 더...”

 

... 그리고 거기엔 은상이를 향한 마음, 떠나가버린 엄마에 대한 마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그리움’ 같은 것이 양념처럼 배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