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김일근/팔공산 2014. 6. 12. 16:28

한미연합군, 최후의 보루 낙동강 방어선 지켰다

호국보훈의 달 기획 6ㆍ25전쟁 11대 전투 <1> 낙동강지구 전투
2014. 06. 11   17:43 입력 | 2014. 06. 11   18:58 수정

 

기사사진과 설명

사진(위·아래)은 지난해 열린 낙동강지구전투 전승행사 장면. 김태형 기자

 

   국방부는 올해 6·25전쟁 발발 64주년을 맞아 6·25 당시 국군과 연합군의 빛나는 승전을 기리기 위해 각종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특히 낙동강지구 전투, 인천상륙작전, 춘천지구 전투 등 대표적인 승전기록인 3개 전투기념행사를 국방부가 주관하는 전승행사로 추진하고 있다. 이와 함께 화령장 전투, 대한해협해전, 공군작전, 9·29서울수복, 38선돌파 등을 기념하는 각종 기념행사도 각군의 대표 전승행사로 준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임진강·가평지구 전투, 지평리 전투, 네바다 전초전투 등 주요 UN 참전국 전투기념행사도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국방일보는 행사를 통해 재조명되는 국군과 연합군의 빛나는 전과를 다시 한번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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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914일 북한군과 일진일퇴 거듭하며 공방

915일 인천상륙작전 개시와 더불어 총반격 성공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전투이자 적의 남침을 저지하고 반격의 기틀을 마련한 낙동강지구 전투는 국군과 유엔군이 한반도 최후의 보루인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1950년 8월 1일부터 9월 14일까지 북한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치른 공방전이다.

 한미연합군은 7월 말까지 ‘공간을 내주는 대신 미국 본토의 증원군이 한반도에 전개할 시간을 얻는 데 필요한 지연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나 유엔군의 제공 및 제해권 장악에도 불구하고 소련제 T-34전차와 자주포 등 현대장비와 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미연합군으로서는 북한군의 남진을 막고 유엔군의 반격의 발판이 될 부산을 중심으로 한 교두보 확보가 절대적이었다. 부산 교두보는 유엔군의 생명선과 같은 존재였다. 유엔군은 부산항을 통해 병력·무기·장비·군수물자를 공급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북한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미군 증원부대의 관문이자 전략적 거점인 부산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낙동강을 따라 연결된 지역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결정했다. 이에 한미연합군은 1950년 8월 1일부터 4일까지 천연의 장애물인 낙동강을 따라 연결된 새로운 방어선을 점령하게 됐다. 낙동강 방어선은 최초 낙동강을 연해 형성된 방어선(X선)과 후에 다부동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방어선(Y선)으로 구분된다. 최초 형성된 낙동강 방어선은 동서 길이 90㎞, 남북 길이 150㎞로 총 240㎞에 달하는 방어선이다. 그 가운데 국군이 128㎞를 담당하였고, 미군이 112㎞를 담당했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중동부 및 동부의 산악지역을 국군 2개 군단 예하 5개 사단(1·3·6·8·수도사단)이 담당했고 중부 및 서부 방면의 비교적 넓은 평야지대와 교통이 발달한 지역은 미8군의 직접 통제를 받는 미군 4개 사단(1기병·2·24·25사단) 및 미1해병여단이 맡아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을 치렀다. 낙동강 방어작전 시 미8군은 군단이 편성되지 않은 채 직접 예하 사단을 통제하며 전쟁을 수행함으로써 군사령부의 지휘부담이 매우 컸다.

 반면 북한군은 개전 이후 공격 기세에 힘입어 1950년 7월 말에는 낙동강 방어선 외곽까지 진출하였다. 북한군은 8월 초에 한미연합군이 낙동강 선에서 방어진지를 형성할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기 위해 신속한 추격전으로 낙동강을 도하한 뒤 대구와 부산을 점령함으로써 그들의 작전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북한군은 ‘한반도 공산화’라는 그들의 전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8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총공세를 단행했다. 8월 공세 때 북한군은 13개 보병사단 가운데 11개 사단을 투입해 전 전선에 걸쳐 총공세를 펼쳤다. 이때 북한군은 대구 정면과 아군의 배치가 취약한 마산 정면에 주공을 지향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이곳에서 부분적인 돌파에는 성공했지만 돌파구 확장에 실패했다. 여기에는 한미연합지상군의 조직적인 방어와 성공적인 공·지 합동작전 수행 결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북한군은 8월 공세 실패 후 9월 공세 때는 13개 사단 모두를 5개 공격집단으로 편성하여 대구·영천·경주·창녕·마산 정면에서 동시다발적인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북한군은 9월 공세도 실패했고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에 이은 낙동강 전선에서의 총반격작전에 밀려 38선 이북으로 퇴각했다.

 낙동강전선 방어작전의 성공은 정부의 총력전 체제 구축과 전쟁지도, 한미군 수뇌부의 역량 있는 작전지도, 이를 믿고 따른 국민과 장병들이 하나로 굳게 뭉친 결과의 산물이었다.

 국방부는 6·25 전쟁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한 이 전투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도 오는 9월 25~26일 경북 왜관 등의 낙동강 둔치에서 전승기념행사를 열 예정이다.

 이를 통해 치열했던 낙동강지구 전투에서 구국의 결의로 목숨 바쳐 싸운 참전용사와 유엔군의 숭고한 헌신에 감사드리고, 학생들과 시민에게는 역사적인 전투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올해 행사는 낙동강 세계평화축전과 연계해 추진,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첫날인 9월 25일에는 전시·홍보·체험마당 행사로 6·25 사진 및 유해발굴 유품 전시, 서바이벌 체험, 주먹밥 만들기, 한국군·미군 장비 전시회 등이 마련되며 참전용사·장비·고적대·시민군 등의 시가행진도 마련되고 합동군악연주회 등도 예정됐다.

 둘째 날인 26일에는 참전용사 위로연, 전승기념식, 전쟁영웅 기념 표창, 전투재연 행사 등이 마련된다.

이석종 기자 < seokjong@dema.mil.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