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통일관련

김일근/팔공산 2005. 11. 20. 18:27
국군포로 외손자 3번째 脫北 성공
국군포로 외할아버지의 유골을 한국에 1년반 전 먼저 보낸 탈북 청년이 11월 13일 중국 내 한국 영사관에 진입해, 한국행을 기다리고 있다.
 
성화민(가명·23)씨의 행로는 기구하다. 2000년 어머니(백영숙·48), 누나(25)와 함께 탈북한 그는 2002년 4월 초 야음을 틈타 두만강을 건너 다시 북한으로 들어갔다. 국군포로인 할아버지 백종규씨의 유골을 갖고 오기 위해서였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너희 할아버지께선 고향인 경북 청도에 묻히고 싶어하셨는데…”라며 탄식했다. 성씨는 70리가 넘는 산길을 헤치고 함북 온성에 있는 할아버지 묘소 근처까지 갔지만 경비가 삼엄해 되돌아 왔다. 같은 달 26일 그는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어려서 할아버지의 등에 업혀 자란 성씨. “살아서 못 가면 죽어서라도 고향에 가겠다”는 할아버지의 한 맺힌 소원을 외면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혼이 돌봤던 것일까. 성씨는 할아버지의 유골을 수습해 무사히 옌지(延吉)로 돌아왔다.


하지만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두 달 뒤 성씨 가족은 중국 공안에 체포돼 강제 북송됐다. 잡혀가기 전 할아버지의 유골이 담긴 여행용 가방 만은 조선족 집주인에게 맡겼다. 누나의 행방은 알 길이 없고, 어머니와 함께 함북 노동단련대로 끌려간 성씨는 4개월여의 강제 노역 끝에 2002년 10월 다시 탈북에 성공했다.

기쁨도 잠시. 두 사람은 2003년 3월 또다시 잡혀 북송됐다. 이번에는 뿔뿔이 흩어졌다. 어머니는 홀로 2003년 7월 탈북한 뒤, 작년 4월 할아버지의 유골을 안고 한국 땅을 먼저 밟았다. 백씨는 유골로 한국 땅을 밟은 국군포로 1호로 현재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성씨는 함북 회령에 있는 수용소에 있다가 지난 9월 세번째로 탈북했다.

성씨는 정부에 보낸 탄원서에서 “인생을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어머니 생각에 악을 쓰고 지옥문에서 살아나갈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강제 북송된 누나가 인신매매당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자 어머니가 몸져 쓰러져 누웠던 기억 때문이었다.

성씨는 탈북 후 지난달 11일 드디어 어머니와 통화했다. 두 사람은 내내 눈물만 흘렸다. “살아서 나온 것만도 고맙다. 며칠만 기다려라. 곧 만나 지난 세월 회포 풀자꾸나. 첫째도, 둘째도 건강이다. 밥 많이 먹어라….” 기자가 수화기를 넘겨 받아 성씨에게 “한국에 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자 “공부를 하고 싶다. 뭐든 다 배워 어머니와 열심히 살고 싶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대학 공부까지 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입국한 뒤 식당 일에서부터 아파트 청소까지 닥치는 대로 했다. 13일 아들이 무사히 중국 내 우리 공관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다시는 못 보게 될 줄 알았던 아들을 보게 돼 반갑고 고맙다”면서도 “우리 딸은 살아있기나 한 건지…”라며 말끝을 잇지 못했다.(KO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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