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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보경사서운암동종(浦項寶鏡寺瑞雲庵銅鍾).경북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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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남/경 북

2019. 2. 16.

































포항 보경사서운암동종(浦項 寶鏡寺瑞雲庵銅鍾)


보물 제11-1호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리 622 보경사


1667년(현종 8) 7월에 승려 장인 사인(思印)과 태행 (太行) 등이 제작한 동종.


보물 제11-1호. 현재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내연산에 위치한 보경사에 소장되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되기 전에는 보경사의 산내 암자인 서운암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운암동종은 종신에 “경상도 자인현지 동령 구룡산 반룡사 중종 강희 6년 정미 칠월 일 … 연화질 화원 사인 태행 부 도겸 담연(慶尙道 慈仁縣地 東岺 九龍山 盤龍寺 中鍾 康熙六年 丁未七月日 … 緣化秩 畵員 思印 太行 副 道謙 淡衍)”이라 양각된 주종기(鑄鍾記)가 남아 있어, 1667년 7월 경상도 자인현(현재 경상북도 경산시) 구룡산에 위치한 반룡사에 봉안하기 위해 수장(首匠) 사인과 태행의 지휘 아래 보조 장인[副匠] 도겸(道謙), 담연(淡衍) 등이 참여하여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 짙은 녹색이 감도는 서운암동종은 전체 높이가 53.5㎝이고 입지름이 41㎝로, 17세기 중·후반의 다른 동종들에 비해 크기가 상당히 작은 편이다. 종의 형태는 천판(天板)에서 종신 1/4 부분까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2/4 부분에서 종구까지 직선으로 떨어지고 있어, 짤막한 포탄을 엎어 놓은 형상을 보인다. 둥글게 솟은 천판 위의 종뉴(鍾?)는 여의주를 물거나 든 전통적인 용의 형상이 아니라 Ω 형태의 단순한 고리로 바뀌었다.


반면, 종신에는 다양한 문양을 장식하였다. 가장 윗부분에는 민머리의 비구를 촘촘하게 표현한 입상화문대(立狀花文帶)를 부조하였고, 그 아래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연화당초문(蓮花唐草文)을 둘렀다. 그리고 바로 밑에는 굵은 당초문 띠에 5개의 만개한 연꽃을 부조한 정사각형 연곽(蓮廓)을 총 4개 배치하였다. 연곽과 연곽 사이에는 원권(圓圈)으로 구획된 범자(梵字)를 2개씩 총 8개 부조하였다. 범자는 ‘옴, 마, 니, 반, 메, 훔’으로, 일체의 죄업을 소멸하고 지혜와 공덕을 얻을 수 있는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이다. 그리고 가장 아랫부분에는 종신 전체를 당초문으로 둘렀다.


서운암동종은 그 동안 17세기 중·후반에 활발한 활동을 한 승려 장인 사인이 3명의 보조 장인을 지휘하여 제작한 작품으로만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주종기의 “연화질 화원 사인·태행, 부(副) 도겸·담연”은 동종이 사인과 태행의 공동 작업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말해 준다. 즉, 연화질에 사인 다음에 태행을 기재하고 보조 장인을 뜻하는 ‘부’라는 표현을 도겸과 담연 앞에 사용한 것은, 사인과 태행이 함께 우두머리 장인 역할을 하였음을 의미한다.

서운암동종은 천판 위에 부착된 종뉴의 형태가 Ω형으로 단순하게 표현되었지만, 천판과 접합되는 부분의 입상화문대에 촘촘하게 부조된 민머리의 비구, 종신 상부와 하부에 둘러진 연화당초문 및 당초문의 패턴, 연곽 내부에 만개한 연꽃 봉오리의 형태와 연곽 사이에 위치한 원권의 범자 표현 등은 17세기 전·중반에 활동한 승려 주종장 정우(淨祐), 신원(信元), 원응(元應) 등이 제작한 남원 대복사동종(1635년), 부여 무량사동종(1636년), 보은 법주사동종(1636년), 하동 쌍계사동종(1641년), 서산 부석사동종(1669년)과 같은 계열에 속한다. 사인과 태행은 이들의 계보를 직접 계승한 후배 장인으로 여겨지며, 포항 보경사 서운암동종은 이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초기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이는 동종의 크기가 소형임에도 불구하고 종신에 부조된 연곽과 종뉴의 표현 등이 간략해진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사인과 태행은 포항 보경사 서운암동종(1667년), 문경 김룡사동종(1670년 2월), 홍천 수타사동종(1670년 5월), 안성 청룡사동종(1674년)의 주종기에 함께 기재되어 있어, 1667∼1674년의 약 7년 간 우두머리 장인으로 공동 작업을 진행한 것으로 여겨진다.


서운암동종은 17세기 중·후반에 경기도,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등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승려 주종장 사인과 태행이 자신만의 독립적인 유파를 형성하기 전에 공동 작업을 진행한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다. 이 동종은 비록 소형이지만, 종신에 기재된 주종기의 내용과 동종의 전반적인 양식을 통해 조선 후기의 사원 경제사를 비롯하여 조선후기에 활동한 승려 주종장의 체계와 계보, 그리고 양식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자료*


 
포항 보경사서운암동종(浦項 寶鏡寺瑞雲庵銅鍾)


보물 제11-1호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중산리 622 보경사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사인비구가 만든 종 중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꼭대기에는 종을 매달기 위한 둥근 고리가 있다. 어깨 부분에는 인물상이 새겨진 40개의 연꽃잎을 세워 두어 넓은 띠를 형성하였다. 이 띠 아래로는 일반적으로 9개의 돌기가 있는 것에 반해 5개의 돌기를 가지고 있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이 4곳에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부처의 말씀인 진언(眞言)을 새겨 이 종의 특징이 되고 있다.


비록 크기는 작지만 사인비구의 초기 제작기법을 볼 수 있으며, 아울러 조선 종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문화재청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