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원푸리 2013. 3. 7. 07:30

첫키스 1초 전의 설렘,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발명품, , 우리들만의 세상.’

이 표현의 공통점이 뭘까. 나열한 단어들만 봐서는 공통점을 찾기 힘들다.

바로 여성가족부가 주최하고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 주관하는 기숙형 치료캠프인 인터넷치유학교에 참가한, 중고등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집단활동 시간에 나에게 인터넷이란을 주제로 생각해낸 표현이다. (한겨레 기사 2013.03.04)

 

 

인터넷 중독. 이젠 스마트폰 중독도 같은 범주에 포함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어쨌든,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인터넷 중독에 관한 정보를 너무 자주 접하다보니 무감각해지는 면도 있지만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반증임엔 틀림없다.

위의 인용도 인터넷 중독 관련기사로 이젠 기숙형 치료캠프까지 생겨 중독자의 회복을 돕기 시작했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첫 줄 첫키스 1초 전의 .... 우리들만의 세상만큼 인터넷 중독자의 심경을 엿보기 쉬운 표현도 없는 것 같다.

벗어나기 힘든 저 상태에 붙잡혀 있어야 하는 본인들은 얼마나 힘들까? 어쩌다 저 지경이 됐을까?

그들이 감당해야 했던 현실이 어떠했길래 저리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매일 아침 아프리카에서 가젤이 눈을 뜬다.

가젤은 자신이 가장 빠른 사자보다 더 빨리 뛰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야 잡혀 먹히지 않는다.

매일 아침 사자도 잠을 깬다.

사자는 자신이 가장 느린 가젤보다 빨리 뛰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야 굶어 죽지 않는다.

아프리카에서는 날이 밝으면 무조건 뛰어야 한다. (토마스 프리드먼)

 

 

아마 경쟁사회가 주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좋은 고등학교에 가려면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준비

해야 한대나 그것도 늦대나 하면서 시작되는 경쟁.

점수, 등수, 학교 레벨 등의 끝없는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이나 밀려나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는 사람이나

힘들긴 매 한가지일 터이다.

무슨 정보든지 접할 수 있는 인터넷 만능 환경 자체도

인터넷 중독의 상당한 원인이 되겠지만 경쟁

스트레스에 비할 바는 아닐 듯 싶다.

 

내가 10여 년 전에 귀농한다고 했을 때 기차에서 내리는 것 아니냐는 추궁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여기서 기차는 크게는

자본주의, 적당하게는 주류사회, 작게는 경쟁사회 쯤 되겠다. 내린다는 건 포기한다는 거고.

기차를 갈아타는 것이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자본주의, 주류사회로부터의 도망인지는 모르겠고 경쟁사회를 단순하게 살아가기

엔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확실했었다. 좀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귀농 초기엔 생각하지 못한 어려움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했지만 괜한 짓 한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떨치기가 제일 힘들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참 별 것 아닌데. ‘산 입에 거미줄 치랴는 말을 믿지 못하게 됐을까?

교육도 그렇다. ‘이제는 개천에서 용날 수 없는 시대야. 한국의 교육 중심지 강남 3구에서 저렇게 공부하해도 될동말 동한데 산골

에 들어가서 어쩌려고그러느냐는 시선 뿐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을 떨쳐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배움에서 경쟁을 배제시키니까 아이들이 재미있게 아니면 적어도 덜 고통스럽게 배우게 됐고 당연히 성과도 좋을

수 밖에 없다. 당연한 귀결이다. 산골에서 홈스쿨링 한다고 반드시 대안적인 방향도 아니다. 그 성과엔 좋은 대학을 목표로 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홈스쿨링을 하다보니 가장 힘든 점이 홈스쿨러의 늘어짐과 외로움이다. 그래서 그룹 홈스쿨링 형태로 확장해서 홈스쿨러의 늘어

짐과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었다. 여럿이 있어도 경쟁심리가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선악이 개오사’(皆吾師 - 좋든 나쁘든 다 교훈

삼을 만한 배울거리)가 된다.

경험상 신기한 것은 나이가 다르면 잘하든 못하면 자신과 비교하지 않는데 나이만 같으면 다행이다, 쪽팔린다, 기분좋다는 생각

을 자연스럽게 한다는 것! 괜찮은 대학교 자리 6만개를 놓고 60만명이 경쟁하는데 너도 그 중의 하나 아니냐는 경쟁유전자가 후천

적으로 생겼나? 하는 생각까지 해본다^^

 

미래를 어둡게 볼수록 두려움은 커지고 시급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을 집단이 공유할 때 경쟁이 심해진다.

그럴수록 살기가 팍팍해지고 자신의 능력을 불신하기 시작한다. 경쟁이 힘들거나 탈락했다고 판단하면 더 이상 자신을 가꾸려

하기보다는 인터넷게임 같은 짜릿한 자극을 찾게 되겠지.

 

놀이는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것이 문명 발달을 좌우하기도 한다.

놀이자체가 그 목적이며 놀이정신은 행복한 영감의 원천이 된다. (하위징어)

 

인터넷 중독 원인으로 경쟁 말고 다른 하나를 더 들라면 놀이문화의 부재가

아닐까 싶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

우리는 국어책에서 개미와 베짱이를 통해 놀면 안된다고 배웠다.

멀게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으로부터 가깝게는 자본의 요구로부터 놀지

말고 일하라. 그렇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리라.’는 명령에서 벗어날

생각을 못했기 때문이다. 노는 것은 나쁜 것이라는 가치가 내면화되어 잠깐 놀라

치면 죄책감이 먼저 든다.

당연히 급격한 경제개발과 함께 공동체가 순식간에 해체된 이후 놀이문화가 위축

되었고,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자취를 찾기도 힘들어졌다.

문화사회학자 하위징어는 그래서 사람을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라고 선언

하면서 진지한 놀이, 성찰의 놀이를 통해서 사람다워 질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며칠 전 그룹 홈스쿨링하는 아이들과 함께 윷놀이를 했다. 3명을 한 팀으로 묶어

세 팀으로 나눠 놀았는데 윷놀이 두 판 놀고 나니 아이들 얼굴이 전부 상기되어 있고 몇은 목이 쉬었다. 윷놀이에서 말을 쓰는 게

어디 쉬운가? 같은 편끼리 의견 조율하다 그런 것이다^^ 경쟁을 고립을 부르지만 놀이는 소통, 협업, 공동체 삶을 배운다. 놀이문화만 제대로 자리잡아도 인터넷 중독은 줄어들 것이다.

 

인터넷 중독자가 10대에만 68만명(2011년 통계)이라고 한다. 경쟁사회,

놀이문화 부재 환경이 바뀌지 않는 한 인터넷 중독 현상은 심해지면 심해

졌지 완화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 중독이 상당히 습관성이라는 점에서 담배에 의한 니코틴중독에

비견될 수 있겠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담배를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

하고 통제하지 않듯이 자본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한 온라인게임, 야동

따위를 소비자위해정보로 지정하여 통제하진 않을 것이다.

앞으로 자본의 시장지배력은 더 커질 것이고, 상황은 더 악화되기 쉬워

보인다. 미래의 생존에 대한 두려움은 더 커질 것이다. 당연히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놀이문화는 자리잡기 힘들 것이다.

자본이 생산한 문화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더 늘어나겠지만 그 행위가

놀이라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고.

 

답은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 그래야 청소년을 두려움 속으로 밀어넣지 않는다.

청소년이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야 경쟁에 끄달리지 않을뿐더러 패배했다는 또는 쓸모없다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는다.

인터넷 중독의 시작은 자괴감에 닿아있을 테니까.

정말 신기한 것은 두려움에 떨며 경쟁하는 것보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놀며 공부할 때 더 성과도 좋다는 것이다.

신기하다는 말도 적당한 말이 아니지 싶다. 억지로 하는 것보다 쉽게 하는 것이 성과가 더 좋은 건 자명한 것 아닌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차를 갈아타는 것도 유효하다.

   

                                                                                            * 위 사진들의 출처 : 다음 이미지 캡처